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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임시정부

    콘텐츠/대한민국임시정부 [] 에 대한 전체 277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161 주화대표단 비망록 공문

    우리대표단이 최근에 열리는 4국 외무장관회의에 비망록을 보내려 합니다. 비망록 한 부를 보내드리니 자세히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귀하의 건강과 행복을 축원합니다.

    162 한국 해방 후 제2년 3・1절 기념사

    한국 해방 후 제2회 3·1절 기념 소감 한국 3·1절 기념일은 한민족이 독립을 얻기 위하여 피 흘려 싸운 혁명적 기념일이자 한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기념일이기도 하다. 지난 1919년 3월 1일, 한민족은 일본 제국주의의 잔혹한 억압에 분개하여 모두 궐기해 조직적인 대규모 항일독립시위운동을 진행하였다. 도시와 농촌에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태극기를 높이 들고 열을 지어 행진하면서 "대한독립만세"를 큰소리로 높이 외쳤다. 당시에 탄압을 받아 일본침략자에게 참혹하게 살해당한 사람이 7만 여명이고 체포되어 옥에 갇힌 사람이 30만 여명이다. 심지어 초등학생들이 시위할 때 일경이 태극기를 높이 든 오른손을 잘라 버리자 태극기를 다시 왼손에 바꿔 쥐고 "대한독립만세"를 높이 외쳤으며 일경이 다시 왼손을 잘라버리자 두 손이 다 잘리어서 선혈이 낭자하고 옷이 몽땅 피로 물들었는데도 그들은 계속 "대한독립만세"를 높이 외쳤으며 일경이 그들의 혀를 자르고 목을 베기 전에 마지막 숨이 남아있을 때까지 외쳤다. 이러한 세상을 놀라게 하는 정신이 한국 혁명세력의 조류가 되어 오랫동안 널리 퍼졌다. 같은 날에 33명의 전국대표가 모여서 서울 탑골공원에서 한국 임시정부의 성립을 선포하였다. 그 후에 할 수 없이 중국에 망명하였지만 조국을 되찾는 독립운동을 계속 진행하였다. 해외에 망명한 혁명 지사들이 독립운동을 위하여 희생한 숫자도 몇만 명이나 된다. 중국의 항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후 우리 한국의 지사들이 동맹국의 각 전장(戰場)에서 대일작전에 참가하였다가 희생된 사람이 더욱 많아 얼마나 되는지 알 수도 없다. 한민족은 동맹국이 승리하고 한국이 해방한 후 부강하고 독립된 한국을 건립하여 혁명선열들의 영혼을 위로하기를 깊이 바랬다. 그런데 재작년 8월 15일에 미소 양국이 한국의 남과 북을 나눠 점령한 후 지금까지 한국이 진정한 독립과 해방을 얻도록 하려는 의도가 없을 줄을 어찌 생각이나 했겠는가? 지금 한국이 해방한 후의 두 번째 3·1절을 맞으면서 우리는 너무 실의에 빠져서 자제할 수가 없다. 미국은 언제나 약소국가를 지원한다고 자처하면서 카이로회의에서 한국의 독립을 공개적으로 선포하여 한인들의 깊은 환대를 받았다. 그런데 뜻밖으로 얄타회의에서 약소민족을 팔아먹고 3대강국 비밀협정을 체결하여 한국으로 하여금 오늘의 지경에 이르게 하였다. 3·1혁명을 계승하고 한인들의 유혈혁명에 의하여 수립된 한국 임시정부가 중경에서 환국할 때 한국 전체 민족의 전무후무한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미소 양국이 진정으로 한국의 독립을 원하였다면 그때 임시정부 지도자들의 인망(人望)과 임시정부의 "백성을 위한 정치를 실시한다"는 선언에 의거하여 국민대표대회를 소집한 다음, 국민대표대회를 통하여 선출된 민선지도자들로 임시정부의 기초를 확대하여 적은 노력으로 많은 성과를 거두어 오늘과 같은 국면이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미소 당국은 한인들이 수십 년간 피 흘려 얻은 대가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고의적으로 임시정부를 무시하였으며, 심지어는 임시정부의 구각(軀殼)마저 소멸하였다.그러면서 오히려 온종일 미소공동위원회 소집에나 집념하고 있으니 간단한 것을 버리고 복잡한 것을 취하는 격이며 고생만 하고 아무런 이득도 없었다. 한인들은 언제나 36년 전에 일본이 한국정부를 멸망시킨 것을 망국의 아픔으로 여긴다. 뜻밖에 36년이 지난 오늘날에 우리가 피 흘려서 수립한 임시정부가 해방자라고 불리던 동맹국 당국에 의하여 소멸되었다. 오늘날과 옛날의 침통함이 어찌 다르단 말인가? 주한미군 하지 중장은 소련 군사 당국이 북한에서 한인 군대 50만 명을 훈련시키고 있다고 공언하였는데 소련 군사 당국의 의도가 한인들의 커다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그 의도는 전체 한국을 적화시키지 않으면 한인 군대를 적색 제국주의 선봉대로 삼으려는 것이다. 남한에서는 미국이 북한과의 교통을 봉쇄하고 북한으로의 모든 항행과 우편을 금지시켰기에 한국경제가 파탄되고 인민의 생활수준이 나날이 내려가고 치안질서가 날로 문란해졌다. 이러한 현상으로 볼 때 한국은 사실상 패전국의 대우보다도 많이 못하다. 우리는 미소 당국이 한국에 대한 속셈이 무엇인지 정말 모르겠다. 한인들은 한국문제가 3월 15일에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4대 열강회의에서 합리적으로 해결이 되기를 크게 바라고 있다. 그러나 여러 소문에 의하면 회의에서 한국문제를 다룰 지도 아직 미정이라고 한다. 내가 보기엔 이번 회의도 열강들의 세력분할을 위한 회의이며 한국의 독립에 아무런 도움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약소민족의 앞길은 두 가지 밖에 없다. 하나는 공동 연합하여 진정한 독립과 해방을 얻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약소민족이 전부 궤멸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망설일 여지마저 없다. -끝-

    163 "조선민족혁명당 한국독립당 명부"

    민족혁명당이 달마다 정부로부터 받는 금액(대한민국 26년 2월 달) 과목(科目)요지금액비고 생활비정부로부터 생활비를 받는 민혁당 당원의 수는 성인 85명, 아동 5명 모두 90명이다37,500성인은 일인당 매월 450원이고 아동은 일인당 매월 360원이다 특별보조금생활의 어려움 때문에 연령을 따지지 않고 한교(韓僑)마다 300원씩 지급한다27,000 정부직원 월급정부에서 재직하고 있는 민혁당 당원24,700정부에서 재직하고 있는 민혁당 당원은 부장 2명, 차장 4명, 과장 6명, 위원 3명, 과원 3명 모두 19명이다 학비민혁당 당원자녀의 대, 중, 소학교 학생의 학비를 정부에서 지급한다 20,503 운반비민혁당의 양식운반비를 정부에서 공급한다1,10 의료비민혁당 당원의 의료비2,000 의원교통비민혁당 당적 의원의 교통비14,300민혁당 당적의 의원은 13명이며 대한민국 25년 7월부터 26년 2월까지의 교통비이다 민혁당경비정부에서 달마다 지급한다15,000 합계142,103십사만 이천 백 삼원(元) 첨부:정부에서 재직하고 있는 민족혁명당 당원 명단 선전부 부장 김규식(金奎植), 교통부 부장 김철남(金鐵男) 차장 윤징우(尹澄宇) 총무과 과장 문일민(文逸民) 총무과 과장 한지성(韓志成) 군무부 차장 윤기혁(尹琦奕) 과원(科員) 장희수(張熙秀) 학무부 부장 장건상(張建相) 편집과 과원 이영수(李英秀) 차장 김상덕(金尙德) 발행과 과장 김인철(金仁哲) 총무과 과장 이해명(李海鳴) 과원 김복옥(金福玉) 교육과 과장 주세민(周世民) 선전위원 손두환(孫斗煥) 외무부 총무과장 이정호(李貞浩) 신기언(申基彦) 생활위원 김순애(金淳愛)

    164 신한민주당 총장

    신한민주당(新韓民主黨) 총 장정(章丁) 제 1조. 신한민주당의 강령과 정책에 동의하는 18세 이상의 한인은 신앙, 사상, 신분에 구애 없이 모두 신한민주당의 당원이 될 수 있다. 제 2조. 신한민주당의 당원은 당비를 바치고, 당의 결의를 실행하고, 당의 사업인 민족해방과 신 공화국의 건립에 헌신해야 하는 등의 의무가 있다. 제 3조. 신한민주당의 당원으로 되려면 2명의 당원의 소개를 통하여 지원(志願)을 제기하여야 하며 허가 받은 후 즉시 당원이 된다. 제 4조. 신한민주당 당원은 발언권, 표결권,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있다. 제 5조. 신한민주당의 조직계통은 다음과 같다. 1.전당대표대회-중앙집행위원회 2.지부대표대회-지부집행위원회 3.구역대표대회-구역집행위원회 제 6조. 본당의 권력기구는 다음과 같다. 1.최고권력기구는 전당대표대회이다. 그러나 회의기간의 최고권력기구는 집행위원회이다. 2.각급 당의 기구의 최고권력기구는 각급 당의 기구의 대회 혹은 대표대회이다. 그러나 회의기간의 최고권력기구는 각급 당의 기구의 집행위원회이다. 제 7조. 중앙, 지부, 구역의 집행위원회의 소집에 의하여 전당대표대회는 매년마다 열고, 지부대표대회는 매 6개월마다 열고, 구역대표대회는 매 3개월마다 열며 필요할 때에는 임시대회를 연다. 제 8조. 각급 당의 기구의 대표대회의 규정은 중앙집행위원회를 거쳐 결정된다. 그러나 각급 당의 기구의 대표는 직접적으로 평등하게 선거하거나 비밀투표의 방식으로 선거한다. 제 9조. 중앙집행위원회에는 주석단, 비서부, 조직부, 선전부, 재무부, 특수위원회 등 기구를 설치한다. 제 10조. 주석단과 중앙집행위원회의 인원수은 전당대표대회에서 결정한다. 제 11조. 주석단은 중앙집행위원회에서 호선(互選)한다. 제 12조. 주석단은 중앙집행위원회 회의를 소집하며 대외적으로 당을 대표한다. 주석단은 중앙집행위원회 회의기간에 중앙상무위원회의 결의안을 재가(裁可)한다. 결의안을 재가하지 않았을 때에는 중앙상무위원회에 재심의를 요구할 수 있다. 중앙상무위원회가 재심의를 거치고도 결의안을 원래대로 유지하면 반드시 중앙집행위원회 회의를 소집하여 결의안의 통과여부를 결정한다. 제 13조. 중앙집행위원회는 각부의 부장과 특수위원회의 주임위원을 호선(互選)하며, 중앙상무위원회를 조직하며, 전당대표대회와 중앙집행위원회의 결의의 범위 내에서 당의 일체사무에 대하여 결의하고 집행한다. 제 14조. 각부와 특수위원회의 규칙은 중앙집행위원회에서 규정한다. 제 15조. 본 총 장정(章程)중 불완전하거나 아직 타결되지 않은 사항이 중앙집행위원회의 결의에 의해 실행되었다면 반드시 차기 전당대표대회의 추가승인을 받아야 한다. 제 16조. 본 총 장정을 개정하려면 전당대표대회 대표 총수(總數)의 절반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165 신한민주당 당원 명단

    신한민주당 책임인원 명단 주석단: 홍진(洪震) 유동열(柳東說) 김붕준(金朋濬) 비서부장: 신기언(申基彦) 조직부장: 김윤서(金允敍) 선전부장: 안원생(安原生) 재무부장: 유보동(劉振東) 중앙집행위원: 신영삼(申榮三) 이광제(李光濟) 손두환(孫斗煥) 문일민(文逸民) 이연호(李燕皓) 강창제(姜昌濟) 김철남(金鐵男) 강홍주(姜弘周) 조중철(趙重哲) 김자동(金紫東) 이석화(李錫華) 이웅(李雄) 장성철(張聖哲) 김좌경(金佐卿)

    166 조선민족혁명당 중요 간부 이력서

    조선민족혁명당 중요간부 간명 이력표 1.중앙집행검사(執檢)위원 성명연령본적출신약력비고 김약산(金若山)45경상남도황포군관학교 제4기 졸업조선의열단중앙집행위원장, 조선혁명간부학교 교장, 조선민족혁명당 중앙총서기, 조선의용대 총대장 역임. 현임조선민족혁명당 중앙총서기 및 한국광복군 부총사령 윤기섭(尹琦燮)56경기도한국 보성전문학교 졸업신흥군사학교 교무장, 임시정부 군무차장, 전범령(典範令)편찬위원회 위원장, 임시의정원 의장 역임. 현 조선민족혁명당 중앙상무위원 성현원(成玄園)52충청남도한국 보성전문학교 졸업신흥군사학교 학생단 단장, 임시정부 국무위원 역임. 현임 조선민족혁명당 중앙집행위원 신악(申岳)52충청남도황포군관학교 제5기 졸업 중앙군관학교 고급반졸업조선혁명간부학교 학생대장, 조선의용대 제1지대 지대장 역임. 현임 조선민족혁명당 중앙집행위원 김상덕(金尙德)46경상남도일본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과 졸업조선혁명간부학교 교관 역임. 현임 조선민족혁명당 중앙위원, 임시의정원 의원 왕통(王通)28함경남도중앙군관학교 특별반 졸업조선의용대 총무조장 역임. 현임 조선민족혁명당 중앙위원, 임시의정원 의원 왕웅(王雄)46평안남도귀주강무당(貴州講武堂) 졸업중국 군정부 상교(上校)설계위원 역임. 현임 제19집단군 자장고급참모, 육군대학 재학중, 조선민족혁명당 중앙위원 김홍서(金弘敍)57평안남도금릉(金陵)대학신학원졸업임시의정원 의원 역임. 현임 조선민족혁명당 중앙위원 김중문(金仲文)63서울미국 예일대학 법학박사임시정부 외무총장, 워싱턴 주재 구미(歐美)위원회 위원 역임. 현임 사천대학 교수, 동방문화협회 명예회장, 조선민족혁명당 중앙검사위원, 임시정부 국무위원 최우강(崔友江)54평안북도한국 보성전문학교 상업학과 졸업임시의정원 의원 역임. 현임 조선민족혁명당 중앙검사위원, 의정원 의원 이집중(李集中)49전라북도황포군관학교 제4기 졸업조선의용대 총무조장 역임. 현임 조선민족혁명당 중앙검사위원, 한국광복군 제1지대 총무조장, 임시의정원 의원 김윤서(金允敍)35평안남도미국 캔사스대학 농업학과 석사 졸업현임 조선민족혁명당 중앙위원, 중앙대학 농학원 교수 김준(金俊)45전라북도황포군관학교 제4기 졸업 중앙군관학교 고급반 졸업조선의용대 부대장 및 제3지대 지대장 역임. 현임 조선민족혁명당 중앙후보위원,노하구(老河口)구역당의 기구 책임자 최성오(崔省吾)32평안북도상해 동남의학원 졸업경성제국대학 의과에서 실습한적이 있음. 현임 조선민족혁명당 중앙후보위원 조빈(曺斌)44경상남도일본 와세다대학 졸업조선혁명간부학교 교관 역임. 현임 조선민족혁명당 집행위원회 비서

    167 선전부장 김규식의 재미동포 방송원고

    하와이 그리고 미국 본토의 한국 국민 혁명당에게 보내는 라디오 방송 메시지 신사 숙녀 여러분, 특별히 우리 한국 동포 여러분과 하와이와 미국 본토의 대한민국 국민 혁명당원 여러분. 여러분을 비록 라디오를 통해서이지만 다시 만나게 되서 무한히 기쁩니다, 그리고 또 하나 기쁜 일은 7월 26일, 국민당 사무총장 우 테이 청(Wu Teh cheng )장군의 친절한 관리 여러분, 몇 몇 임시정부 요인, 한국독립당, 그리고 한국국민혁명당 여러분, 김구, 조소앙, 이청천, 김약산 그리고 제가 영광스럽게도 총통과의 인터뷰에 초대되는 특권을 가지게 되었음을 알리게 된 것입니다. 이 인터뷰의 몇 가지 감동적인 일들 중 하나는, 총통이 한국이 전후 독립을 하는 것은 중국 정부의 명확한 정책이고 자신의 개인적인 입장이라고 언급한 것이며, 또한 그는 한국 혁명 운동의 지도자들이 곧 완전히 단결해서 가장 효율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조화 속에 일하기를 바란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는 비록 중국이 전후 한국의 독립을 후원한다 할지라도, 정말로 중요한 것은 한국인 스스로의 단결된 노력과, 합치된 행동, 사실적인 결과물들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 다음 차례로 우리는 개인적으로 총통에게 과거 한국 운동에 이루어진 원조에 대해 감사를 표했으며, 몇 가지 제안을 했고, 우리의 운동의 모든 면의 개선 계획에 관한 염원을 표했습니다. 주로 (1) 우리의 전투 단위의 더욱 효과적인 조직에 대해;(2) 임시 정부가 곧 승인을 받기를 바라는 우리의 염원- 만약 현재 법률상 승인이 적당하지 않다면 사실상 승인이라도- 우리가 국내외에서 더욱 효과적인 활동을 수행할 수 있고, 한국 내 국민들의 혁명적 세력의 일반적인 봉기를 더욱 격려, 고양,촉진시키기 위해 (3)우리가 중일 투쟁과 태평양 전쟁에서 작은 기여를 하고 국가 재건을 위해 더욱 효과적이며 촉진적으로 수행하면서 더욱 활동적이고 큰 규모로 운동을 수행할 수 있도록 계속적이고 증가된 상당량의 지원을 (4) 우리의 캠프 내에서 통일에 관해, 우리는 모든 면에서의 완벽한 협조 특별히 임시 정부의 특권과 권위를 높이고자 하는 우리의 염원을 향한 계획과 진보를 간단히 보고했습니다. 극동의 반파시스트 세력 그리고 자유의 승리 그리고 모든 동양인의 자유를 위해 총통과 UN 총사령관은, 국내 일의 많은 과중함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내어, 우리가 공동의 적을 약화시키는 일반적 절차로서 그 자신 뿐만 아니라 한국 문제에 관해 관심이 없는 UN의 지도자들이 가능한 최대로 한국의 운동에 협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알려 주도록 허락했습니다. 위의 사실에 의해서, 모든 임시정부의 요인들뿐만 아니라 모든 정당과 모든 그룹들이 3천만 명의 우리 한국인들 뿐만 아니라 총통과 존경하는 지도자들, 그리고 다른 UN 국 국가의 정치가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그들의 최상의 노력을 각각 그리고 모두 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더구나 우리는, 우리의 나라 안에서, 만주의 산채와 평원에서, 기억될만한 중국 북원정대의 광둥에서부터 북평까지, 그리고 최근에는 중일전쟁의 한국 자원군까지, 그들을 희생하고 우리의 앞에서 적에 대항한 전투와 투쟁에서 쓰러져간 우리의 영웅인 이전의 혁명 지도자들에 의해 우리에게 바쳐진 과업 수행에 실패해서는 안 됩니다. 정말로, 거의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는 우리나라의 자유를 위해 국내외에서 피와 목숨을 바쳐왔습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우리는 우리의 거대한 목표인 완전한 우리나라의 독립과, UN의 최후의 승리, 그리고 세계 모든 사람들과의 평화와 조화를 위해 총력을 다 해서 우리의 피를 더욱 더 뿌리고 희생하면서, 국내외에서 우리의 힘을 더욱 더 조직화하고 단결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위에 언급한 목표를 향한 한 걸음으로써, 우리 당 중앙 행정 위원회원들은 이미 LA에 우리 당의 미국 본토 총지부가 설립되었다는 것과 하와이 섬에 총지부가 조직화 과정에 있다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알립니다. 편지와 함께 우리는 허가서와 정관 그리고 시행되는 법률 사항을 당 중앙 본부에 보낼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 중앙 행정 위원회 모임에서 우리는 미국 총 지부에 관한 특별한 결의서를 통과시켰고,같은 방식이 하와이 총 지부에 적용됩니다. 결의서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총 지부는 3명의 대리인과 5명의 행정 위원을 선출할 것이다. (2) 이들 중 한 명은 의장으로 활동할 것이며(집행위원장) 다른 4명은 각각 다음 4 부서의 장이 될 것이다. (부장)-비서, 조직, 재무, 선전. 각각의 부는 과업을 수행할 제한된 수의 부원이 있다. (3) 총 지부는 통과된 결의와 행정 위원회의 결정 또는 대표 대회, 당의 본부에 일치해서 과업을 수행할 것이다. 그리고 이전에 소위 조선 민족 전선 연맹 안에 연합되었던 몇 몇 그룹들은 이제 본토에서 우리 당 총 지부의 원이므로, 우리는 언급한 연맹을 해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한길수 씨에게 이 효과를 통보해 주십시오. 우리는 또한 그에게 보낼 서신을 쓰고 있습니다. 같은 방법으로, 우리는 충칭의 4개의 당을 우리 당으로 올해 초 합병했고, 그것은 본토와 하와이의 몇 개의 당과 그룹들이 하나의 당으로 합쳐지는 위대한 걸음입니다. 제가 알려야 할 또 하나 중요한 소식은 우리 당의 약 500명의 지부원들이( 노소 모두) 활동적 그리고 체계적으로 적의 배후에서 활동에 관련하면서, 약 20명 남짓의 지부원들을 장시(Kiangsi), 앙웨이(Anwhei), 후베이(Hupeh), 허난(Honan), 그러나 주로 북중국에 심어놓았고, 지금은 심지어 청더(jehol) 국경까지 갔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제 만주에 분명한 잠재적 혁명 세력과의 연락을 확립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지부원들은 한국에서 온 신회원에게 주는 영향뿐만 아니라 적의 사기와 조직을 붕괴시키며 훌륭히 일을 잘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일은 우리 지부원들의 심각한 희생 없이는 수행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작년 우리는 다른 몇 명 이외에도 뛰어난 학자이며 웅변가일 뿐만 아니라 타고난 지도자이며 조직가인 숙정을(여러 해 동안 우리의 C. E. C 회원이었던) 잃었습니다. 그는 작년 6월 3 일 산시성(Shansi)에서 죽었고, 그 때 우리 부대 사령관은 혼자 단 하나의 기관총을 들고 일본의 공격을 경계해서 중국 야전 본부가 안전하게 철수하도록 했으며,다리에 총을 맞고 일본이 그 지점을 다시 공격할 때까지 언덕에 사흘 동안 남겨져 있었습니다. 숙정처럼 수완가이었던 김창화도 같은 전투에서 죽었습니다. 필사적인 전투 후 끝에, 그는 우리 당의 모든 서류와 문서들을 태우고 산의 다른 쪽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영웅적 희생의 이야기는 북중국 학교 교과서에 넣어졌습니다. 올해 4월 14일 또 다른 우리 당의 뛰어난 젊은이인 문명철이 산시성, 취씨엔(Chihsien), 황륭왕구(Whanglungwahg Kou) 5번가 지역에서 전투 중 죽었습니다. 그는 100 명이 넘는 일본인들에게 둘러싸였고, 탄약이 바닥날 때까지 싸워 수십 명의 적군을 죽였지만, 마지막 총알을 적에게 넘겨주느니 그것으로 그의 목숨을 끊었습니다. 문은 취씨엔 구역 외곽에 묻혔고, 그를 기념하는 현판이 세워졌습니다. 그의 장례식에서 수 천 명의 중국 군인들과 관리들 그리고 지역민들이 그를 위해 탄식하며 울었고 그의 영웅적 희생을 기억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정신은 영원히 우리 한국 전사들과 혁명가들 사이에 떠돌 것입니다. 왕사용(Whang Sah- yohg) 목사가 극동 운영에 합류하고 다가오는 의회 회기에 참석하기 위해 하와이 국민 대표로서 10월에 오는 것과 관해 우리는 충심으로 기쁘게 환영하며, 우리 당과 내 자신도 개인적으로 환영합니다. 우리는 입국 허가에 관해 이곳 당국과 협의할 것이며, 그 결과를 라디오로 알릴 것입니다. 결론으로서, 나는 여기 중앙 본부의 모든 구성원들이 우리의 커다란 목표인 우리나라의 완전한 독립과, UN의 빠른 궁극적인 승리, 전 세계 모든 나라들과 국민들의 평화와 행복을 위한 최대한의 노력을 계속하기를 바라는 바람을 개인적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168 한국 임시정부 승인 제창을 요구한 박찬익 공함

    한국선전부장 김규식(金奎植)이 재미한교(韓僑)를 상대로 한 방송연설 전문- 한역(漢譯) 한국민족혁명당 선전부 부장 김규식(金奎植) 선생이 올해 8월 5일에 중경에서 재미한교를 상대로 한 방송연설 전문 -- 1943년 8월 5일 중경에서 각계인사 여러분, 한국동포 여러분, 하와이와 미국내륙에 계시는 한국민족혁명당 동지들. 오늘 비록 여러분과 라디오에서 만나지만 마음속으로 매우 기쁘며 특별히 흥분할만한 좋은 소식을 여러분들께 보고 드리겠습니다. 중국 국민당 중앙당부 오철성(吳鐵城) 비서장과 임시정부 몇몇 위원들의 노력으로 김구(金九), 조소앙(趙素昻), 이청천(李靑天), 김약산(金若山)과 저를 포함한 우리 한국독립당과 한국민족혁명당의 대표들이 영광스럽게 장개석(蔣介石) 위원장의 소견(召見)을 받았습니다. 이번의 회견담화에서 장개석(蔣介石) 위원장은 자신의 개인입장에서 볼 때 한국이 전후(戰後)에 독립해야 한다는 것은 중국정부의 일관된 정책이라고 특별히 지적하였습니다.때문에 장(蔣) 위원장은 한국혁명운동을 영도하는 지도자들이 신속히 단결하여 전투사업을 강화할 것을 희망하였습니다. 그리고 장(蔣) 위원장은 중국이 전후의 한국독립을 보장한다 해도 한국인 자신들의 단결된 역량, 단결된 행동, 실제적인 표현에 의거해야만 독립이 성공할 수 있다고 특별히 강조하여 말하였습니다. 장개석(蔣介石) 위원장이 지난날 한국의 혁명을 원조해주신데 대하여 우리 각 개인은 모두 심심한 사의를 표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들의 모든 운동계획에 대한 몇 가지 수정의견을 제기하였습니다. 그 중 주요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작전부대의 실력을 강화합니다. 둘째, 임시정부를 신속히 승인하여 (지금 법적으로 승인하기는 불편한 점이 있지만 사실상 승인한다는 표시라도 있기를 바랍니다.) 한국국내의 전투역량을 강화하고 한국국내의 인민들 가운데서 날로 높아가는 혁명정서를 제고시킵니다. 셋째, 우리에 대한 물질적인 원조를 증가하여 우리가 이 운동을 더욱 활기 있고 대규모적으로 진행하여 중일전장(戰場)과 태평양전쟁 중에서 미력한 힘이나마 다 바치어 싸우는 동시에 더욱 효과적이고 순조롭게 국가 부흥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도와줍니다. 넷째, 우리자신들의 단결문제에 관하여 우리는 우리의 계획과 여러 방면에서의 협력진전의 정황을 자신 있게 제공할 수 있습니다.우리들의 최고의 희망은 한국임시정부의 위망과 권력을 제고하는 것입니다. 장(蔣) 위원장님은 지금 연합국의 반 파쇼군대의 극동통수이자 아시아인민의 자유와 정의의 영도자이십니다. 매일 온갖 정사를 처리하면서 시간을 내어 우리를 소견(召見)한 것은 장(蔣) 위원장 본인뿐 아니라 연합국의 지도자들도 한국의 문제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며 이를 통하여 우리는 한국의 혁명과 공동의 적을 물리치는 두 행동에 대하여 동맹국 측에서는 경중을 구분하지 않고 수행한다는 것을 알게 하였습니다. 위의 사실들에 근거하여 우리 한국의 각 당파, 특히 임시정부 소속의 개인이나 단체는 전보다 더욱 열정적으로 온 힘을 다하여 장개석(蔣介石) 위원장과 기타 연합국 지도자들 및 정부측인사들의 희망에 보답하며 특히 우리 3천만 한국동포들의 간절한 기대에 보답하겠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이전의 혁명지도자들, 자신을 희생하여 우리 먼저 가신 분들, 우리 국내의 산지와 만주의 평야 및 중국의 위대한 북벌시기에 광주로부터 북평(북경)까지의 전장(戰場)에서 싸우다 희생하신 지사들, 지금 중일전쟁에 참가하고 있는 조선의용대의 영웅적인 지사들, 그리고 적들과 사생결단하다가 장렬하게 순국하신 지사들이 남겨놓은 피의 경험과 교훈, 휘황한 임무를 우리는 목숨을 내걸고 완성해야 합니다. 확실히 지난 반세기 동안 조선본토거나 국외에서 우리는 지극히 큰 피의 대가와 생명의 대가를 치르면서 우리나라의 자유를 위하여 투쟁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자신이 계속 조직을 강화하고, 긴밀히 단결하고, 우리의 국내와 국외의 역량을 보강하여 더욱 많은 피를 흘리고 더욱 많은 생명을 희생하여야만 우리의 위대한 목표인 우리나라의 완전독립과 연합국의 최후의 승리 그리고 세계인류의 평화를 건설하는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목적을 이룩하는 하나의 일환으로 우리 한국민족혁명당 중앙집행위원회의 동지들은 미국내륙과 교류할 수 있는 한국민족혁명당 총지부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성립되었고 하와이에서는 다른 총지부가 순조롭게 조직되고 있다는 소식을 기쁘게 들었습니다. 우리 중앙당부는 헌법에 부합되고 법령에 의거한 비준문건을 곧 보낼 것입니다. 먼젓번의 중앙집행위원회회의에서 미국 총지부 조직문제를 처리하는데 관한 의안을 통과하였습니다. 이 의안도 하와이 총지부에 보낼 것입니다. 의안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총지부에서는 5명 내지 9명을 선거하여 집행위원회를 조직하고 3인을 선거하여 상무위원으로 합니다. 2.집행위원회내에서 주석(집행위원장) 1명을 선출하고 나머지 4명은 비서부, 조직부, 재무부, 생산부를 각기 맡으며 각부에서는 모두 약간의 간사를 초빙하여 사무를 돕게 합니다. 3.총지부의 모든 의안의 통과와 사무상의 결정은 집행위원회 혹은 대표대회에서 결정하고 집행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과 집행은 반드시 중앙당부의 허가거나 수리(受理)를 거쳐야 합니다. 동시에 알려 드릴 것은 몇 개의 당파로 조직된 이른바 조선민족전선연맹이 지금 우리의 미국 당총지부의 회원이 되었기에 우리는 이 ′연맹′을 해산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은 홍규소(洪奎蘇)선생의 이 일에 관한 통지를 기다리기 바랍니다. 우리도 바로 서한을 보내 홍(洪) 선생에게 알려줄 것입니다. 그리고 올해 초 중경에서 우리의 4대 당파가 하나의 당으로 뭉친 사실은 미국 및 하와이의 각 당파가 하나의 당으로 되는 서막으로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일부 중요한 소식을 여러분들께 알려드립니다. 지금 한국민족혁명당의 약 500명의 신규당원들이 적의 후방에서 조직적이고 대대적인 활동을 하고 있으며 약 20개의 부문이 화북(華北)을 중심으로 하여 강소(江蘇), 안휘(安徽), 호북(湖北), 하남(河南)에 분포되어 있으며 열하(熱河) 변계까지 발전해 갔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만주에서 활동이 완전히 정지되어 있는 혁명역량과의 연계를 건립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우리의 동지들은 적들의 조직을 파괴하고 적들의 한인을 총알받이로 내세우는 계획에 타격을 주는데 있어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러한 공작활동은 계속 진행 중에 있습니다. 우리측의 손실도 막대합니다. 예를 들면 작년에 몇몇 동지 외에도 우리는 천재적인 지도자이자 조직가(組織家)이고, 훌륭한 학자이면서도 연설가(演說家)이신 식중(式重)동지를 잃었습니다(그는 여러해동안 당의 중앙집행위원이었습니다). 그는 작년 6월 3일에 상해에서 서거하였습니다. 그는 부대의 지휘관으로서 한정의 기관총으로 혼자서 일본군의 공격을 막으면서 중국 야전군사령부가 안전하게 퇴각하는 것을 엄호하였습니다. 그는 발에 부상을 입고 일본군이 다시 공격해 올 때까지 3일 동안이나 황폐한 산속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그밖에 식중동지와 같은 재능을 가지고 있는 김종화(金宗華)동지도 같은 전역에서 정의를 위하여 장렬히 희생하였습니다. 전투가 결정적인 고비에 이르렀을 때 김종화(金宗華) 동지는 민족혁명당의 문건과 민족혁명당과 관련되는 서신들을 모두 태워버려서 적들이 증거로 삶을만한 것들을 깡그리 없앤 후 절벽에서 뛰어내렸습니다. 이렇게 장렬하게 희생된 영웅들의 사적이 이미 화북각지의 학교 교과서에 인쇄되어 나왔습니다. 만막구(滿莫久) 동지는 또 다른 장래성이 있는 전사였습니다. 그는 올해 4월 14일 산서(山西)성 기(祁)현 제5구 망룡만(望龍灣)외곽지방의 한차례 전투 중에서 희생되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그렇게도 비장하였습니다. 최후의 전투 중 그는 백여 명의 적들에게 포위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무기로 완강하게 저항하면서 적어도 20명의 적을 죽였으며 최후에 마지막으로 남은 한발의 총알로 자결함으로써 적들에게 포로 되어 능욕당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만(滿) 동지는 기현 성밖에서 희생되었는데 사람들은 그를 위하여 편액(扁額)을 새기어 그의 용감하고 의로운 사적을 기념하였습니다. 출상할 때 수많은 중국군대와 군관들, 그리고 당지의 대중들이 그의 죽음에 대하여 비통해하고 눈물을 흘렸으며 하루 동안 단식하는 것으로 그의 용감한 희생을 기념하였습니다. 위에서 말한 분들의 용감한 정신은 우리 한국의 전사들과 혁명동지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되어 있으며 우리들이 따라 배워야 합니다. 왕석양(王石陽) 동지가 중경에 와서 극동의 실제사업에 참가하고, 하와이동포를 대표하여 10월 6일의 국민대회에 출석하는데 대하여 당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우리들은 모두 깊은 환영을 표합니다. 우리가 여기 당국과 그의 입국사항을 협의하고 있으며 협상이 끝나는 대로 전보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저 개인과 중앙당부 전체 동지들의 열의를 여러분께 전달하며 여러분들이 최선을 다하여 우리의 위대한 목적의 최후의 성공을 위하여 투쟁할 것을 확신합니다. 즉 우리나라의 완전독립과 연합국의 조속한 승리 그리고 세계인류의 영구적인 평화와 안락을 이루는 위대한 목적을 위하여 투쟁합시다. 여러분들께 혁명의 경례를 올립니다.

    169 한국광복과 임정요인 환국 환송 축사

    조선의 광복을 경축하고 조선혁명지도자들의 귀국을 환송하는 축사 중국과 한국 두 나라는 지리상에서 국경이 잇닿아있는 동아시아의 문명고국입니다.주무왕(周武王)13년, 즉 서기 기원전 1122년에 주무왕이 기자를 조선왕으로 책봉한 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미 3천여 년이나 지났습니다. 이사이에 중한양국은 아교와 옻, 그리고 손과 발처럼 친분이 두터웠습니다. 중한양국은 3천여 년간의 역사적 교류를 통하여 혈통상에서나 문화와 사상상, 그리고 신앙과 도덕관념상,심지어 풍속습관상에서 이미 융합되어 서로 다른 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중한민족이 한 개의 민족에서 갈라져 나온 두 갈래라고 말하여도 하나도 과언이 아닙니다.우리의 손문(孫文) 총리께서 귀국의 혁명선열이신 신규식(申圭植) 선생에게 "중한양국은 동문동종(同文同種)으로 원래부터 형제의 나라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중한양국의 관계는 일반적인 국제관계와 비교할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충분히 나타낼 수 있습니다. 중한양국은 형제의 나라이기에 국가의 명맥을 이루는데 있어서 광대뼈와 턱, 입술과 치아가 서로 의지하는 것처럼 관계가 밀접하고 화복이 서로 관련되고 이해관계를 같이 합니다. 때문에 시종일관하게 서로 우호적이고 일치 협력하였으며 환난과 생사를 같이 하였습니다. 우리 중국이 이러한 관계를 중시하였기에 역사상에서 한국에 외환(外患) 생길 때마다 중국은 언제나 정의를 주창하여 나서서 도와주었습니다. 예를 들면 명나라의 한국원조전쟁과 청나라시기의 갑오전쟁이 바로 두 개의 좋은 실례입니다. 우리 중한양국에 있어서 공동의 적은 줄곧 배은망덕하는 일본입니다. 중한양국에 비하면 일본은 야만적이고 낙후한 민족이었는데, 우리 두 나라의 유도와 계발을 받아 점차 개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언제나 흉악한 야심을 가지고 깃털이 점차 풍만해지자 줄곧 중한 사이를 이간시키고 중한을 침략하는 것을 국책으로 삼았습니다. 명신종(明神宗)시기에 일본의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한국침략전쟁을 일으켜서 8도를 유린하였는데 매우 참혹하였습니다. 진주 한곳에만 하여도 군민 8만여 명이 살해 당하였고 성안에 쌓아놓은 시체가 성벽보다 몇 장(丈)이나 높았다고 합니다. 명조정부는 또 한번 정의를 받들어 군사를 파견하여 7년간의 고전을 거쳐 한국으로 하여금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중국은 한국에 대하여 그 어떤 요구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명조정부는 이 전쟁 때문에 수십만의 군사를 잃었고 군사비로 수백만을 허비하였기에 원기를 크게 상하였으며 끝내는 만청(滿淸)이 장성을 넘어오자 저항할 힘이 없어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정의를 위해서라면 이해관계도 따지지 않는 의로운 정신은 국제적으로 매우 드문 일입니다. 청나라의 갑오중일전쟁도 일본이 조선을 삼키려 하자 중국이 그냥 지켜볼 수가 없어서 일어난 전쟁입니다. 그때 만약 중국이 이겼더라면 반세기에 달하는 동아시아의 역사는 자연적으로 완전히 개변되었을 것입니다. 중한양국은 자연적으로 줄곧 형제간이 서로 합하여 화목하고 즐겁게 지내고 있는 상황이 되었을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그때 중국의 육군과 해군이 모두 대패하고 말았습니다. 이때로부터 한국은 일본제국주의의 압박과 착취 및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중국도 일본의 날로 거세지는 압박을 받게 되었으며 인간세상의 모든 괴로움을 다 당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반세기를 동아시아의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자신의 능력도 헤아리지 않고 중한양국을 함께 집어삼키려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참을 수가 없어 신성한 항전을 일으켰습니다. 8년간의 막대한 희생과 어려운 투쟁을 거쳐 우리의 공동의 적인 일본제국주의자들이 무조건적으로 투항하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되어 우리 중한양국은 갑오년부터 50년간의 내려온 크나큰 치욕을 씻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중국의 전역은 광복되었고 한국도 완전한 해방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중화민국이 건립되기 2년 전인 한국 융희(隆熙)4년 8월 29일에 일본이 정식으로 한국을 합병하자 한국의 지사들은 일본제국주의의 지배를 반대하고 한국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완강하게 투쟁하였으며 앞사람이 쓰러지면 뒷사람이 이어나갔습니다. 그들의 감동적인 사적들이 얼마나 많은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중화민국 8년 3월 1일에 한국임시정부가 영도한 독립운동은 거센 바람처럼 전국에 널리 퍼지었으며 일본침략자들이 무서워 떨게 하고 세계를 놀라게 하였으며 한국혁명사가운데서 가장 휘황찬란한 한 페이지를 장식하였습니다. 한국임시정부는 줄곧 "중국혁명이 성공하는 날이자 한국의 독립이 실현되는 날"이라고 여기면서 중화민국 8년에 상해에서 성립되는 즉시로 대표를 파견하여 광동(廣東)에 주재하게 하여 우리 국민당과 수시로 연락하게 하였습니다. 이번의 항전에서도 한국임시정부와 우리 국민당의 관계는 특별히 밀접하였습니다. 우리는 일치하게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중한양국의 자유와 독립을 이루고, 한 뜻으로 서로 돕는 등 목표를 위하여 함께 고난을 겪고, 마음을 합쳐 서로 돕고, 끊임없이 협력하였으며 서로 해이해지지 않도록 노력하였습니다. 우리의 장개석(蔣介石) 총재님은 카이로회의에서 한국의 독립이 국제적인 보장을 받도록 노력하였습니다. 따라서 중한양국의 금후의 우의를 위하여 더욱 큰 기초를 닦아놓았습니다. 지금 한국은 이미 해방되었습니다. 귀국의 무수한 혁명선열들, 한국임시정부의 여러 선생들 및 귀국 국내외의 3천만 동포들이 30여 년간 희망하고 기대하면서 피 흘리고 목이 날아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진행한 광복운동이 끝내 성공하였습니다.이것은 한국의 크나큰 기쁜 일이며 중국의 기쁜 일이기도 합니다. 중한인민이라면 누구 하나 최대의 기쁨과 크나큰 영광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한국임시정부의 여러 선생들이 영광스럽게 조국에 돌아감에 따라 우리는 만강의 기쁜 심정으로 이 환송회를 열어서 우리의 작은 성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우리의 장개석 총재님이 최근 중국의 전국동포들에게 "우리는 명지(明智), 이지(理智)적으로 제약을 받으면서 경각(警覺)과 정연한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여러분들이 조국에 돌아간 다음에 마찬가지로 귀국의 동포들로 하여금 "명지하고 이지적으로 제약을 받으면서 경각(警覺)과 정연한 상태로 돌아가게 하"며 동맹군의 해방 하에 부흥과 건설사업에 최선을 다하여 한국이 동아시아의 독립자주,부강한 나라가 되고, 중국과 장기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건립하여 일본의 재기를 공동으로 방지하고 동아시아의 영구적인 평화를 공동으로 유지하리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여러분들과 함께 이러한 공동의 목표를 위하여 계속하여 함께 최선을 다하렵니다. 여러분들께서 건강하시고, 여로에서 편안하시고, 귀국사업이 성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께서 귀국의 전체 동포들에게 우리들의 가장 성실하고 진지한 경의를 전달해 주시기 바랍니다!

    170 김구 주석 답사

    김(金)주석 답사 오(吳) 비서장과 여러 선생들 오늘 저녁 김구(金九)와 우리나라 임시의정원 및 정부요원들은 오(吳) 비서장이 베푸신 성대한 연회에 참가하게 되어 커다란 기쁨과 영광을 느낍니다. 이러한 진지하고 성실한 대우를 우리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겁니다. 지난 30여 년간을 되돌아보면 귀국의 혁명지도자와 조야(朝野)의 많은 중국동포들이 일치하여 한국의 독립운동을 원조하여 주셨으며 우리는 충심으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러한 우애는 중한역사의 찬란한 한 페이지를 장식해 놓았습니다. 공리(公理)가 강권을 이긴다는 것은 사실이 이미 증명하였습니다. 일본이 제멋대로 침략하였다가 끝내는 패망의 운명을 맞았습니다. 귀국의 부흥과 우리나라의 독립으로 인하여 원동 평화의 기초는 잘 다져졌습니다. 김구(金九)는 얼마 후에 곧 귀국합니다. 이별이 다가오니 진정으로 아쉽고 차마 떨어지지 못하겠습니다. 우리의 전통적인 우의는 더욱더 진귀하게 느껴지며 실로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장개석(蔣介石) 주석께서 며칠 안에 특별기를 내셔서 우리를 보냅니다. 이러한 숭고하기 그지없는 우정은 역사에 길이 남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나위도 없습니다. 김구(金九)가 중경을 떠나도 중경에 대표를 남겨두어서 김구(金九)가 있을 때와 다름없이 귀국과 계속하여 긴밀하게 연락을 유지하렵니다. 그리고 빠른 시일 안에 각지의 한교(韓僑)에 대한 선무(宣撫)사업을 진행하려 하는데 귀국의 관민(官民)의 협력을 받아 적극적으로 진행되어 큰 성과를 거두리라고 믿습니다. 여러분들께 삼가 감사를 드리면서 여러분의 건강을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진심으로 다음과 같이 높이 외칩니다. 중화민국 만세! 중국국민당 만세! 장(蔣) 주석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