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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임시정부

    콘텐츠/대한민국임시정부 [] 에 대한 전체 277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101 임정 재정 지원에 관한 전보

    우선 이렇게 서신을 통해 고마운 마음을 표시합니다. 한국임시정부의 기타 금액 관련 사항은 공개할 수 있지만, 김구(金九) 주석님의 활동비 관련 사항은 절대 기밀로 해주십시오. 1. 혁명동지의 일시적인 어려움을 해결. 2. 비밀리에 전구(戰區)및 한국 활동 지역에 사람을 파견 조사 결과, 상술된 내용은 필수 사항이고 이에 관한 비용은 이미 받은 지 오래지만 현재 물가 상승으로 지원 금액을 추가하시기 바랍니다. 수현(壽賢) 님께서는 최선을 다해 이 일을 성사시켜 주시길 바랍니다. 아울러 순조롭기를 바랍니다.

    102 오철성(吳鐵城) 비서장과 김원봉 회담

    오철성(吳鐵城) 비서장이 조선민족혁명당 김약산[金若山 김원봉(金元鳳)의 호] 선생을 접견 오철성 비서장과 김원봉 회담 요점(要點) 시간: 34년 8월 17일 오전 11시, 장소: 중앙 당부(黨部) 1. 일본이 투항한 후, 멀지 않아 한국 독립 운동의 성공을(한국인민을 대표하여) 경축한다. 2. 중국은 반드시 중경에 있는 한국임시정부를 원조하여 그들이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도와 주고, 선거 방법을 통해, 민선정부를 설립해야 한다. 3. 위의 방법을 실행할 수 없을 경우, 동맹국의 협조를 바탕으로, 한국독립운동…(원본판독불가)…선거를 통해 민선정부를 설립하기 바란다. 4. 동맹국은 한국이 군사정부 설립을 과도시기로 하여…(원본누락)… 5. 중국과 한국은 양국의 관계를 밀접하게 한다. 또한 한국은 중국의 전쟁 지역 범위 내에 있어, 이후 한국문제에 관하여 중국은 보다 많은 발언권(發言權)을 갖게 되므로 최선을 다해 한국독립운동을 지지해야 한다.

    103 오철성(吳鐵城) 비서장 김구주석 회담 요청

    오(吳) 비서장이 한국임시정부 김구 주석을 접견하여 나눈 담화의 요점 중화민국 34년 8월 22일 오전 11시 중앙당부 1. 일본이 투항하고 한국독립의 소원이 곧 이루어지게 되어 한국인민과 한국임시정부에 대하여 깊은 축하를 드립니다. 2. 항전 8년간 중국은 간고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한국의 독립운동에 대하여 물질상의 원조도 많지만 정신상의 원조가 더욱 큽니다. 카이로 회담의 선언이 바로 한국독립의 보장입니다. 3. 우선 한국의 각 당파가 단결을 강화하여 독립운동을 완수하기를 희망합니다. 4. 중국정부는 응당 중경(重慶)에 있는 한국임시정부가 조국에 돌아가서 한국인민을 영도하여 선거를 진행하고 민주선거에 의한 정식정부를 창립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5. 그리고 위의 방법이 아직 실행되지 않았을 때, 동맹국의 협조아래 한국독립운동의 관련되는 방면에서 공동으로 임시정부를 조직한 후, 선거를 진행하여 민주선거에 의한 정부를 창립하기를 희망합니다. 6. 동맹군이 한국에 상륙하여 아마 군정부를 설립하여 과도시기의 정부로 할 것입니다. 한국 혁명동지들이 많이 참가하시기를 바랍니다. 7. 한국의 북부는 소련군대가 상륙하고 한국의 남부는 미국군대가 중국군대와 협동하여 상륙하여 적들의 무장을 제거합니다. 8.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한국이 아마 신탁통치 방식 아니면 군정부의 과도시기를 거쳐 장래에 폴란드 방식을 채택하여 하나의 통일된 임시정부를 성립할 것입니다. 김구 주석의 두 가지 희망을 첨부함. 1. 중국 국민당(國民黨)과 한국 독립당의 역사적 관계는 매우 깊습니다. 앞으로 더욱 발전시키고 적극적으로 원조하면서 공산당세력이 뻗치는 것을 방지합시다. 2. 중국정부가 즉시 한국임시정부를 정식으로 승인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 승인하지 않았더라도 한국임시정부가 귀국한 후 각계의 지도자들을 소집하여 새로운 임시정부를 조직한 후에, 그때가 되면 중국정부가 먼저 승인해주기를 바랍니다.

    104 한적 병사 수용 개편을 위한 비용 지원 요청 공문

    일전에 직접 당신의 가르침을 받고 탄복해마지 않습니다.최근 우리 임시정부는 동맹군을 따라 곧 귀국함과 동시에 간부를 파견하여 수항군(受降軍)을 따라다니며 귀 군에 협조하여, 적군 가운데 강요에 의하여 종군한 우리나라 청년들을 수용 개편하여 이동하려 하는데 장비, 운송 등 각종 비용이 매우 많이 들게 되므로 특히 서한을 보내어 부탁합니다. 널리 헤아려 5천 만원을 차관하여 대처하도록 해주실 것을 부탁하며 시급히 처리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가 수십 년간 귀국의 협력을 받음으로 하여 오늘과 같은 결과가 있게 되어서 우리 한국 온 나라 민중은 실로 감격해마지 않습니다. 이번의 요청에 대하여 상의하여 주셨으면 대단히 고맙겠습니다. 항상 일이 성사되도록 하여 주신데 대하여 감사 드리면서 절절한 감복의 마음을 편지로 다 쓸 수가 없습니다. 공훈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105 한국독립당 중경총지부 성립을 알리는 공문

    작년 10월 한국독립당 중앙집행위원장 김구(金九) 이하 다수의 중앙위원들이 귀국할 때, 중국의 여러 지방에서 활동하고 있는 당원이 많기에, 대회의 의결을 거쳐 복순(濮純, 박찬익(朴贊翊)의 호), 이청천(李靑天), 민석린(閔石麟) 등 중앙위원을 남겨두어서 중경에서 주 중국 한국독립당 총 지부를 창립하였습니다. 그 후 소수의 간부들이 귀국함에 따라 생기는 빈자리는 당총부가 서울에 옮겨간 후 보궐 선거하여 당의 사무를 돌보게 하였습니다. 중국에 남아 있는 동지들은 지난 8월 27일에 주 중국한국대표단의 명의로 임시당원대회를 열었습니다. 회의에는 서울에 있는 당원을 제외하고 동북당 지부 최태산(崔太山), 북평당 지부 이광(李光), 개봉당 지부 이상만(李象萬), 박영준(朴英俊), 그리고 그외 각 지역의 당 지부 주요간부 등 30여명이 참가 하였습니다. 위원장 복순(濮純)이 해외의 당의 사무의 여러 가지 발전계획에 관한 토론을 주최하였습니다. 동북지방에 당원이 많기에 중요한 간부를 동북지방에 파견하여 그곳의 당의 사무 조직을 강화시키기로 하였습니다. 회의에서 만장일치의 동의를 거쳐 곧 선거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복순(濮純), 민석린(閔石麟), 이광(李光), 김은충(金恩忠), 최태산(崔太山) 등 5인을 집행위원으로 선거하고 이상만(李象萬), 한금원(韓錦源), 김동수(金東洙) 등 3인을 감찰위원으로 선거하였습니다. 그리고 제1차 집행 및 감찰연석회의를 열고 집행위원회에서는 복순(濮純)을 위원장, 김은충(金恩忠)을 비서, 민석린(閔石麟)을 선전위원, 이광(李光)을 조직위원, 최태산(崔太山)을 훈련위원으로 임명하였으며, 감찰위원회에서는 이상만(李象萬)을 위원장, 한금원(韓錦源)을 비서, 김동수(金東洙)를 감사위원으로 임명하였습니다. 이에 편지를 보내어 알려 드립니다. 문서의 내용대로 시행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06 "고국내외 동포서 임시정부 당면 정책"

    국내외 동포들에게 고하는 글 친애하는 국내외 동포들에게 최후의 보루를 고수하면서 완강하게 반항하던 일본제국주의 파쇼강도가 끝내 9월 2일에 투항서에 서명하였습니다. 이번의 일본침략자의 패망으로 온 세계가 매우 기뻐하며 특히 우리 삼천만 한국민족은 조국의 해방을 직접 보게 되어서 환호하면서 뛸 듯이 기쁜 심정을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본 정부가 30년 동안 오매불망 갈망해온 조국의 전진으로 향하는 전야에, 본 주석은 특별히 본 정부의 광복사업을 사랑하고 독려하여 주신 여러 만(累万=누만) 동포들과 본 정부를 따라 중국대륙을 떠돌아 다니면서 공동 분투하던 다수 동지들에게 본 정부가 짊어진 사명을 피력하며 감사의 마음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국가의 흥망과 민족의 성쇠는 절대로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전에 우리나라의 국운이 단절된 것은 꼭 여러 가지 사망원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조국이 해방된 것도 역시 몹시 애를 쓰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라는 것을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해방을 되새겨보면, 수많은 선열들의 보귀한 피의 대가와, 중국, 미국, 소련, 영국 등 동맹국의 용감하고 혁혁한 전과가 없었다면 이런 뛰어난 성공이 있었겠습니까? 이러한 연고로 우리들은 조국의 독립이 눈앞에 다가오는 이때에 마땅히 선열들의 공적을 먼저 기리면서 동맹군의 업적을 선양하여 우리의 뜨거운 감사의 뜻을 표시합니다. 우리들이 처하여 있는 현 단계는 이에 앞서 본 정부가 제정한 건국강령에서 명백히 밝힌 바와 같이 건국시기의 과도단계에 들어섰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아직 복국(復國)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건국초기의 단계에 잇따라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의 임무는 매우 깊고 복잡하고 어려우며 책임은 더욱 가중하여졌습니다. 무릇 우리의 동포들은 자기 자신의 말 한마디와 글자 하나, 일거수일투족이 조국의 독립을 이루는데 영향을 준다는 것을 반드시 똑똑히 알고 무슨 일에 부딪치게 되더라도 반드시 세밀하게 생각하고 분석하여 명확한 판단을 내린 다음, 이 명확한 판단에 근거하여 과감히 나아가서 성공의 길에 도달하기를 바랍니다. 본 정부가 의정(議定)한 현재의 정책, 효칙(效則)을 아래에 피력하여 본 정부가 현 단계에서 짊어져야 할 사명을 국내와 국외에 분명히 밝히며, 이것을 본 정부의 전진노선과 여러 동포들의 현재의 진로에 대한 지침으로 삼습니다. 친애하는 동포들이여! 우리 조국의 독립과 자유, 민주단결을 위하여, 그리고 국제간의 안전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인류의 평화를 위하여 함께 노력하고, 본 임시정부의 현재의 정책을 실시하기 위하여, 함께 일어나서 휘황찬란한 미래로 나아가는데 최선을 다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임시정부의 당면정책 1.본 임시정부는 최단기간 내에 환국합니다. 2.우리 민족의 해방과 독립을 위하여 싸운 중국, 미국, 소련, 영국 등 모든 우방 및 그 민족과 반드시 확실하게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동맹국을 협조하고, 연합국헌장에 의거하여 세계의 안전과 평화를 실현합니다. 3.연합국 가운데의 주요한 국가인 중국,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등 5대 열강과 반드시 먼저 우호협정을 체결하고 외교경로를 별도로 모색합니다. 4.동맹군이 한국에 주둔하는 기간에 우리는 이들의 필요로하는 모든 사무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협조합니다. 5.장래에 열리는 평화회의와 여러 국제집회에 반드시 참가하여 한국이 응당 누려야 할 발언권을 행사합니다. 6.국외의 임무가 끝나고 국내의 임무가 전개되며 서로 교체되는 시기의 필수적인 과도조치를 반드시 집행하고, 머지않아 전국 총선거를 통하여 정식민주정권을 세우기 전에, 국내의 과도정권을 임시로 수립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국내외의 각 계층, 각 혁명당파, 각 종교집단, 각 지방대표 및 유명한 민주 지도자들 간의 회의를 열어 임시정권을 수립합니다. 7.국내에서 과도정권이 수립되면, 본 임시정부는 임무를 다한 것으로 여기고 곧 모든 정권과 문물을 과도정권에 반환합니다. 8.국내에 수립되는 정식정권은 반드시 독립국가, 민주정부, 평등사회를 원칙으로 하는 새 헌장에 의거하여 수립합니다. 9.국내에 아직 과도정권이 수립되지 않았을 때, 국내의 모든 질서와 모든 대외관계는 본 임시정부가 임시적으로 책임지고 유지합니다. 10.교포의 안전과 귀국사무 및 국내외에 거주하고 있는 동포의 구제사무를 급속히 처리합니다. 11.적들이 실시하였던 모든 법령을 무효화하고 새로 반포한 법령이 유효함을 선포하는 동시에 적의 통치아래 생긴 모든 범죄자를 사면합니다. 12.적들의 재산에 대한 몰수 및 적들의 교포에 관한 사무를 동맹군과 협상하여 진행합니다. 13.적에게 강요 당하여 출전한 한적병사들을 국군으로 재편성하는 문제를 동맹군과 협상하여 진행합니다. 14.모든 독립운동을 방해한 자와 매국노들은 반드시 공개적으로 엄벌에 처합니다.

    107 임시정부 고국 내외 동포서 발표 기사

    1945년 9월 8일 중앙일보 한국임시정부가 "국내외 동포들에게 고하는 글"을 통하여 임시정부의 당명정책을 발표하다 [중앙사소식] 한국임시정부가 방금 "국내외 동포들에게 고하는 글"을 발표하였는데 전문은 다음과 같다.

    108 4강 한국독립 동의 기사

    1945년 9월 19일 대공보

    109 임시정부 환국협조 요청 공문

    우리 나라 국내의 혁명지도자 송진우(宋鎭禹), 허헌(許憲), 여운형(呂運亨)(어제 게재되었던 ●원강(●元康)은 이 군(君)의 오역이다), 김성수(金性洙), 조만식(曺晩植) 등이 주최하는 국민대회는 우리 정부의 입국을 재촉하고, 상해(上海), 북평(北平-북경) 등지의 교민들도 각기 대표를 중경(重慶)에 파견하여, 우리 정부가 입국하여 민심을 안정시키라고 재촉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계로 우리 정부의 김(金) 주석은 급히 환국하여 정부를 국민들에게 돌려주려 하고 있습니다. 만약 가는 비행기가 있다면 그냥 타고 가는 것도 좋고 그렇지 않으면 뱃길도 이미 통하고 있으니 민영선박이라도 타고 빨리 떠나려고 합니다. 귀국에서 많이 성원해주었는데, 떠나기 전에 귀당(貴黨)의 장개석(蔣介石) 총재에게 작별을 고하고, 대계를 물어보고, 만나서 협력해주신 정분에 대해 감사 드리는 등 손님과 주인의 우의를 다지려고 합니다. 형께서 철성(鐵城) 비서장에게 앞당겨 접견해주실 것을 말해주시라고 전달해주시기를 깊이 바랍니다. 떠나게 되었을 때 접견해주시어, 기쁘게 고별하고 만나서 감사를 드리도록 해주십시오. 귀하의 건강과 행복을 축원합니다.

    110 미국의 대한국정책 보도 기사

    미국의 한국에 대한 정책이 변하다 아베(阿部)가 해직되고 미군이 경비 권리를 회수하다 한인들은 여전히 임시정부의 환국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중앙사(中央社) 조선 서울 12일 특별 전문] 하지(霞奇) 2급 상장(上將)은 오늘 오후 아베(阿部) 대장을 조선의 간접적인 통치자로 임용하던 것을 중단하고, 동시에 일본군의 경비 권리를 회수한다고 선포했다. 이로부터 미국의 조선에 대한 정책은 급전직하(急轉直下)하였다. 하지(霞奇)는 조선의 각 정당대표 천 2백 명이 집회한 가운데서 이와 같이 선포했다. 조선의 지도자들은 이 말을 듣자 오랫동안 박수를 쳤다. 아널드(阿諾德)중장이 이미 미 군정부의 총독으로 임명되어 아베(阿部)의 직무를 넘겨받았다. 근래에 조선인민은 아베(阿部)를 남겨둔 데 대해 극히 격분해 했었기에 이 결정은 정확한 길로 나아가는 하나의 조치라고 볼 수 있다. 일본경찰 무장 해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경비 우두머리의 직무를 해제하였으니, 조선청년들과 일본무장경찰간의 충돌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霞奇) 장군은 장래 조선인민들은 신문, 언론 및 차별 없는 완전한 자유를 향수할 수 있으며, 아울러 일본측의 산업도 접수하여 관리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이어서 만약 과격한 행동을 취한다면 곧 완전한 혼란에 빠질 것이며 조선의 민생도 나쁜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霞奇)의 발언은 한 시간이나 지속되었다. 계속하여 조선민주당(朝鮮民主黨)의 한 지도자가 연설을 통하여 지금 중경(重慶)에 있는 조선 임시정부가 하루빨리 환국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했다. [중앙사(中央社) 서울 12일 UPI소식] 하지(霞奇) 2급 상장(上將)은 조선방면의 보도를 통하여 일본인들이 20년 안에 다시 조선에 돌아온다고 공개적으로 큰소리쳤다는 것을 안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최선을 다하여 빠른 시일 내로 일본측 문관의 직무를 면제하겠으며, 10만 명의 미군이 상륙하여 동맹국의 명령이 반드시 집행될 수 있다는 것을 보장할 때 일본측 관원들의 직무를 면제하는 사업이 끝날 것이다. 하지(霞奇) 장군은 그가 지금 강경한 정책을 실시하지 못하는 것은 조선의 미군점령지 내에 아직도 일본 무장부대가 약 20만 명이 있지만 지금 조선에 진주(進駐)한 미군은 겨우 만 6천 명밖에 없으며, 그가 갑자기 일본 관원들을 면제하면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자세히 설명했다. 하지(霞奇)는 아베(阿部)가 지도하고 있는 일본측 정부는 미 군사당국의 동의가 없이 그 어떤 독립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이 금지되고 있으며, 군정부는 지금 조직 중이라고 말했다. [중앙사(中央社) 뉴욕 12일 특별 전문] 트루먼(杜魯門)대통령은 오늘 기자들을 초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은 현실적인 수요에 따라 잠시 조선에서 약간의 일본 관원들을 보류한다고 성명한다. 이 성명의 의의에 대해서는 어제의 "기독교과학잠언보(基督教科學箴言報)"의 미국의 전후(戰後) 정책에 대한 보도에서 더욱 충분히 알 수 있다." 이 신문은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미국 정부 당국은 미국이 일본인을 통하여 조선을 통치하는데 대하여 조선이 분개해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러한 정책을 취하는 데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미국이 조선의 행정권을 조선인의 손에 넘기지 않는 것은 조선 내에 조직을 가지고 있는 조선인사가 없어서 넘겨줄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조선인들의 요구는 이와 상반되지만, 미국 정부와 미 군사 당국은 아직도 그 어떤 조선 단체가 행정권 접수를 감당할 만한지 모르고 있다. 이외에도 일본인들이 일단 철거한 후에 앞에 나서서 접수할 거대하고 통일된 지하조직도 조선엔 없다. 중경(重慶)에 조선의 임시정부가 있지만 종래로 조선의 그 어떤 부문에 행정직권을 행사한 적이 없으며, 그 어떤 동맹국에게도 승인을 받지 못했다. 미국에 있는 조선인사들도 도대체 조선의 어떤 단체가 조선인민을 대표하는가에 대하여 일치한 의견도 없다. 미국은 조선의 행정권을 조선인들에게 넘기지 못하는 데다가 필요한 다수의 인원들도 없어 군정부를 즉시 조직할 수가 없다.따라서 유일한 방법은 잠시 일본인들이 질서를 유지하고 행정사업을 집행하게 하는 것이다. 만약 일본인들이 미국측과 협력하지 않거나 군정부를 성립해야 하는 것이 증명된다 해도 장래에 군정부를 성립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