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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인국민회

    대한인국민회 [선언서/격문/전단류] [기타] 에 대한 전체 14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1 미국 연방기독교회협의회와 한국상황(1919.6.1.)

    1919년 6월 1일 미국 연방기독교회협의회(The Federal Council of the Churches of christ in America) 홍보국(국장: Jasper T. Moses)이 발표한 입장문이다. 이 입장문은 미국 연방기독교회협의회 산하에 설립한 동양문제 담당 위원회(The Commission)가 발표한 것이다. 일본 군경이 혁명적인 비무장 봉기를 일으킨 한국인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고문한다는 소식이 담긴 한국발 소식은 한국을 지켜보는 미국인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으며, 이에 위원회는 미국과 일본에 영향력 있는 이들을 동원하여 한국상황에 대해 많은 회의를 개최하고 책임 있는 자들과 함께 가장 효과적이고 신속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방식으로 한국문제를 처리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입장문의 하단에 한국친우회 시카고지부 서기 구타펠(Minerva L. Guthapfel)이 이대위(李大爲)에게 보낸 필기체의 짧은 기록이 적혀 있다.

    2 유호임시국민대회 선포문(1919.11.17.)

    1919년 11월 17일 중국 상해 일대의 독립운동가들이 조직한 유호임시국민대회(留滬臨時國民大會)가 여운형(呂運亨), 최근우(崔謹愚), 신상완(申尙玩)의 3인이 일본에 건너가 일본정부와 교섭한 사건을 성토하기 위해 발표한 선포문이다. 여운형 등 3인이 일본인과 일본 밀정을 접촉한 후 도일한 사건에 대해 여운형 등이 정부와 국민을 속이고 독립의 원수인 일본인 등과 비밀왕래를 하여 독립의 대의를 위반한 것이라고 성토하였다. 그런데 이 문건은 유호임시국민대회에서 문건 기초자로 선정된 신채호(申采浩), 원세훈(元世勳), 한위건(韓偉健), 옥관빈( 玉觀彬), 신국권(申國權)의 5인 중 신채호, 원세훈, 한위건의 3인이 옥관빈과 신국권의 동의 없이 임의로 작성하여 선포한 것이다. 이에 1919년 11월 25일 열린 유호임시국민대회 제3회 회의에서는 11월 17일자 선포문은 유호임시국민대회의 선포문이 아니며 선포위원의 착오로 인해 임의로 발표된 것이라며 이 선포문의 무효를 선언하였다.

    3 주러공사 이범진이 고종황제에게 올린 상소문(1903.9.)

    1903년 9월 주러공사 이범진(李範晉)이 고종황제에게 올린 상소문이다. 1) 고국을 떠나 구미 5개국을 떠돈 지 8년에 몸은 상하여 나라를 위해 죽고자 해도 팔순의 노모가 자식의 귀환을 고대하고 있으며, 2) 열강의 중병(重兵)정책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나 내치를 저버리고 외원(外援)만 추구하는 대한의 정치불립(政治不立)을 가장 우려했으며, 3) 제반 도감 혁파, 토목사업 정지, 매관매직 차단, 기도와 음사(淫祀)의 일체 타파, 재용절약과 재정의 탁지부로의 일원화, 관리등용 신중, 외교정책의 평형감 유지 등 많은 건의사항을 아뢰고 고종황제에게 사직을 청하였다.

    4 구타펠(Minerva L. Guthapfel)이 미국 기독교인들에 보낸 한국 지지 호소문(1919)

    1919년 구타펠(Minerva L. Guthapfel)이 만든 미국 기독교인들에게 한국 실정을 간략히 언급하고 한국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만들어 보낸 문건이다. 문건의 제목은 An Explanation이다. 이 문건에서 구타펠은 3년간 선교사로서 서울 체류 경험, 9년간 한국 관련 강연활동 경력, 12년간의 한국 관련 저술 활동, 2달간 한국의 식민상태를 종식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국제연맹에서 미국정부와 미 대통령이 한국을 어떻게 지원하는가를 지켜본 경험을 토대로, 일본의 한국에 대한 야만적인 제국주의적 무단통치를 끝내기 위해서는 기독교인들이 솔선하여 나서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여 한국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이러한 활동이 기독교 교단이나 조직과 아무런 연관 없이 순수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전개하는 것임을 통지하였다. 이 문건은 구타펠이 한국 지지활동에 대한 재정적인 후원을 얻어내기 위해 만들어 배포한 문건이다.

    5 미국정부에 제출한 한국 독립 청원 지지 결의문에 기입한 교회와 주소 메모(1919)

    1919년 미국정부에 제출할 한국 독립청원 지지 결의문에 기입한 교회 이름과 주소명을 적어놓은 메모이다. 이들 교회들은 모두 시카고 일원의 교회들이다.

    6 시카고 지역 목사 휘플(W. L. Whipple)이 미 국무성에 한국 독립을 청원했음을 구타펠(Minerva L. Guthapfel)에게 알리는 통지문(1919.6.2.)

    1919년 6월 2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지역 목사 휘플(W. L. Whipple)이 미 국무성에 한국독립을 구타펠(Minerva L. Guthapfel)에게 알린 통보문이다.

    7 에반스톤지역의 목사 쓰롤(Victor Throll)이 미 국무성에 한국 독립을 지지하는 전보를 보냈음을 구타펠(Minerva L. Guthapfel)에게 알리는 통지문(1919.6.9.)

    1919년 6월 9일 미국 일리노이주 에반스톤 지역 감리교 목사 쓰롤(Victor Throll)이 미 국무성에 한국 독립을 지지하는 전보를 보냈음을 구타펠(Minerva L. Guthapfel)에게 알린 통지문이다.

    8 산타바바라지역의 연합선교회 회장 브론스(A. R. Brons)가 미 국무성에 한국 독립을 지지하는 전보를 보냈음을 구타펠(Minerva L. Guthapfel)에게 알린 통지문(1919.6.26.)

    1919년 6월 2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바바라 지역의 연합선교회 회장 브론스(A. R. Brons)가 미 국무성에 한국 독립을 지지하는 전보를 보냈음을 구타펠(Minerva L. Guthapfel)에게 알리는 통지문이다.

    9 오크 파크의 윌라드감리교회 목사가 미 국무성에 한국 독립을 지지하는 전보를 보냈음을 구타펠(Minerva L. Guthapfel)에게 알리는 통지(1919.6.18.)

    1919년 6월 18일 미국 일리노이주 오크 파크 윌라드(Willard) 감리교회 목사가 미 국무성에 한국 독립을 지지하는 전보를 보냈음을 구타펠(Minerva L. Guthapfel)에게 알린 통지문이다.

    10 신형호가 미주 한인들에게 보낸 국민대회 선포문 고지문(1919.6.10.)

    1919년 6월 10일 신형호가 미주 한인들에게 보낸 국민대회 선포문 고지문이다. 신형호는 1919년 4월 23일 서울 명월관 근처에서 13도 대표자들이 모여 발표한 국민대회 선포문은 정식 국회를 소집하여 헌법을 반포하기까지 준행해야 하는 것임을 주장하여 미주 한인들에게 이승만의 한성정부 집정관 총재 선출 사실을 널리 알리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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