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글자크기조절

콘텐츠

선택

선택

    독립운동가 자료

    콘텐츠/독립운동가 자료 [신채호] [단재신채호전집7권] 에 대한 전체 8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1 용과 용의 대격전

      내리신다, 내리신다, 미리(龍)님이 내리신다.   신년이 왔다고 신년 무진(新年戊辰)이 왔다고 미리님이 동방 아시아에 내리신다.   태평양의 바다에는 물결이 친다.   몽고(몽골)의 사막에는 대풍이 인다.   태백산 꼭대기에는 5색 구름이 모여든다.   이 모든 것의 모두가 다 미리님이 내리신다는 보고다.   미리님이 내리신다는 보고에 우랄산 이동의 모든 중생(衆生)들이 일제히 머리를 들었다. 부자(富者)와 귀자(貴子)들은 물론 미리님의 입에 맞도록 중국요리, 서양요리 등 갖은 음식을 장만하여 미리님의 귀에 흐뭇하도록 거문고·가야금·피아노 등 모든 음악을 대령한다. 그러나 가련하게 헐벗고 굶주린 빈민들은 미리님께 정성을 드리려 하나 아무 가진 것이 없다. 가진 것은 그 빨간 몸뿐이다.  이에 하릴없이 피를 뽑아 술을 빚고 눈물을 짜 떡을 만들어 장엄한 제단 위에 창피하게 모양 없이 벌여 놓고 미리님의 내리심을 기다린다.   1월 1일 상오 2시 첫 닭이 홰를 치자 아무 기별도 없이 구름의 비행기 탄 미리님이 닥치셨다. 일반 부귀자들은 노래하고 춤추며 거룩하신 미리님을 맞이하는데 모든 빈민들은 일제히 땅에 엎어져 운다.   울면서 미리님께 빈다.   “님이시여 님이시여 미리님이시여, 금년에는 세납이나 많이 안 물리도록 하여 주옵소서, 금년에는 도조(賭租)註1)지세의 일종나 많이 안 달라게 하여 주옵소서, 금년에는 감옥 구경이나 않게 하여 주옵소서, 금년에는 생활난에 철도 자살이나 없게 하여 주옵소서, 금년에는 타국 타향에 비렁거지나 안 되게 하여 주옵소서, 금년에는 ○○○○○○○이 흥왕(興旺)하게 하여 주옵소서.” 하면서 손이 발이 되도록 빈다.   그러나 그 비는 소리가 미리님의 귀에는 들리지도 아니하고 다만 그 가련하고 모양 없는 제물만 미리님의 눈에 띄었다. 그래서 미리님이 골을 잔뜩 낸다.   “이놈들, 정성을 내지 않고 행복을 찾는 놈들 죽어 보아라.” 하고 아가리를 딱 벌린다.   아이구 어머니, 그 아가리가 놀부의 박이던가 그 속에서 똥통 쓴 황제이며, 쇠가죽 두른 대원수며, 이마가 반지르르한 재산가며, 대통이를 뒤로 달은 대지주며, 냄새 피우는 순사 나리며 기타 … 모든 초란이註2)기괴한 여자의 탈의 일종들이 쏟아져 나온다. 나와서는 모든 빈민들을 모조리 잡아먹는다.   피를 짜먹고 살을 뜯어먹고 나중에는 뼈까지 바싹바싹 깨물어먹는다. 먹히지 않으려면 탄알의 받이요, 감옥의 채임이다. 아, 지옥의 세계! 가련한 인민!  

    2 신채호문학유고선집

      「꿈하늘」이라는 이 글을 짓고 나니 꼭 讀者에게 할 말씀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一. 한 놈은 元來 꿈 많은 놈으로 近日에는 더욱 꿈이 많아 긴 밤에 긴 잠이 들면 꿈도 그와 같이 길어 잠과 꿈이 서로 終始하며 또 그뿐만 아니라 곧 멀건 대낮에 앉아 두 눈을 멀뚱 멀뚱히 뜨고도 꿈같은 지경이 많아 님나라에 들어가 檀君께 절도 하며 번개로 칼을 치며 平生 미워하는 놈의 목도 끊어보며 飛行機를 아니 타도 한 몸이 훨훨 날아 萬里天空에 돌아도 다니며 노랑이·검덕이·흰동이·붉은동이를 한 집에 모아 놓고 노래도 하여 보니 한 놈은 벌써부터 꿈나라의 백성이니 讀者 여러분이여, 이 글을 꿈꾸고 지은 줄 아시지 마시고 곧 꿈이 지은 줄로 아시옵소서.  二. 글을 짓는 사람들이 흔히 排鋪가 있어 먼저 머리는 어떻게 내리리라, 가운데는 어떻게 버리리라, 꼬리는 어떻게 마무리 하리라는 大意를 잡은 뒤에 붓을 댄다지만, 한 놈의 이 글은 아무 排鋪없이 오직 붓끝 가는 대로 맡겨 붓끝이 하늘로 올라가면 하늘로 딸려 올라가며, 땅속으로 들어가면 땅속으로 따라 들어가며, 앉으면 따라 앉으며, 서면 따라 서서 마디마디 나오는 대로 지은 글이니 讀者 여러분이시여, 이 글을 볼 때에 앞뒤가 맞지 않는다, 위아래가 文體가 다르다 그런 말은 말으소서.  三. 自由 못하는 몸이니 붓이나 自由하자고 마음대로 놀아 이 글 속에 美人보다 향내 나는 꽃과도 이야기하며 평시에 사모하던 옛적 聖賢과 英雄들도 만나보며 오른팔이 왼팔도 되어 보며 한 놈이 여덟 놈도 되어 너무 事實에 가깝지 않은 詩的 神話도 있지만 그 가운데 들어 말한 歷史上 일은 낱낱이 『古記』나 『三國史記』나 『三國遺事』나 『高句麗史』나 『廣史』나 『繹史』 같은 속에서 參照하여 쓴 말이니 讀者 여러분이시여, 섞지 말고 갈라 보시소서. 讀者에게 말씀은 끝났습니다.   이제 著者의 제 말할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一. 책 짓는 사람들이 모두 그 책을 많이 사보면 하는 마음이 있지만 한 놈은 이 마음이 없습니다. 다만 바라는 바는 우리 안 어느 곳에든지 한 놈 같이 어리석어 두 팔로 太白山을 안으며 한 입으로 東海물을 말리고 기나긴 半萬年 時間 안의 높은 산, 낮은 골, 피는 꽃, 지는 잎을 세면서 넋 없이 앉아 눈물 흘리는 또 한 놈이 있어 이 글을 보면 할 뿐입니다.  二. 책 짓는 사람들이 흔히 그 책으로 무슨 影響이 있으면 하지만 한 놈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바라는 바 이 글 보는 이가 우리나라도 美國 같아져라 德國(독일) 같아져라 하는 생각이나 없으면 할 뿐입니다.檀君 4249(1916)년 3월 18일한 놈 씀

    3

    故園文物總依前儒雅風流不用仙 峰樹擁蒼爲特地 哯永呵白又凉天鄕愁越鳥註1)『문선(文選)』고시(古詩)에 “호마는 북풍을 의지하고, 월조는 남쪽 가지에 깃드는구나(胡馬依北風 越鳥巢南枝)” 하였는데, 월조를 통해 꿈에도 고향을 생각하는 바를 나타내고 있다.方成夢詩意吳蠶註2)오나라는 양잠을 많이 하는 까닭으로 양잠을 오잠이라 한다. 여기서는 누에가 잠을 잔다고 하여, 새로운 도약을 위하여 시 창작을 멈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正入眠 吟罷讀叢兼話閒人趣味信悠然註3)신영우에 따르면, 이것은 단재(신채호)가 17세(1896) 때 자신의 집에 와서 詩作한 것이라고 함.고국의 문물은 모두 예전 같아서,文雅한 풍류에 선풍을 쓰지 않는다네.봉우리의 나무는 울창하여 특별한 경계를 이루었고,길게 흐르는 물 피어나는 안개, 날씨 또한 서늘하네.향수어린 월나라 새는 바야흐로 꿈을 꾸고, 시심어린 오나라 누에는 막 잠에 드는구나. 읊기를 마치고 읽을 것을 모아 이야깃거리로 삼으니,한가한 사람의 취미가 참으로 유유하다네.

    4 소설

      삼척 비봉면 봉래장(飛鳳面鳳來市) 앞산 봉황산(鳳凰山) 봉우리에 검은 구름 한 장이 떠 들어오며 천둥소리가 우루루 땅땅하더니 소낙비 한줄기에 온 장군들이 산지사방으로 흩어진다.  봉래 장터에서 삼 마장쯤 되는 데서 마을이 있으니, 그 동명은 정문동(旌門洞)이라. 그 동리 앞에 정문이 있는 고로 정문동이라 하는데 그 정문은 뉘 집 정문인고 하니 봉래장에서 그 동리 접어들면 바로 길가 첫째 집에 사는 김장하 씨의 고조 김효자의 정문이라.  김효자의 이름은 상원인데 일찍이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여 가세는 비록 가난하나 남의 집의 품도 팔며 일도 부지런히 하여 부모의 상에 고기가 떠나지 않고 만일 친환이 있으면 잠시를 떠나지 않으며, 밤에 옷끈을 풀지 않는 고로 강원 일도 내에서 김상원이라 하면 다 철천지 효잔 줄 아는 고로 그 사후에 유림의 정소가 분분하고 조정의 공론이 있더니, 필경   숙종조 때 와서 정문을 세우라 하시고 사액까지 하셨는데 김장하 씨가 그 자손으로 가정지학이 있어서 그 부모 생존하였을 때 효도로 섬겼고 지금은 김씨의 나이가 예순 둘이오, 아들이 삼형제니 맏아들은 서른 살이오, 둘째 아들은 스물일곱 살이오, 셋째는 열여덟 살이라. 그 아들들도 효성이 매우 장하더라.  이때 김장하 씨의 아들 형제는 먼 들로 나가 감농하다가 우의가 있는 것을 보고 급히 돌아오더니 중도에서 비를 만나 남의 집으로 잠깐 비 피하려 들어가 미쳐 못 오는데 김장하 씨 마음이 궁금하던지 마루 위에 혼자 나가 거닐면서 혼자 말로 하는 말이  이 애들은 왜 아니 오나.  어디쯤 오다가 비를 만났노.  아마 흠뻑 맞았지.  오다가 새온골 이덕삼의 집으로 들어갔나.  그리나 들어갔으면 좋겠지만,  아마 오다가 중도에서 맞았기가 십상팔구지.  얘 삼홍아. 네가 우비하고 네 형들 오나 좀 가보아라.  삼홍아, 삼홍아.  건너 사랑방에서 대학지도는 재명명덕하며 재신민하며 재지어지선이라 하고 흥이 나서 읽다가 삼홍을 부르는 소리에 글소리를 뚝 그치고 예 하고 나오는 아이는 곧 김장하 씨의 셋째 아들 삼홍이더라.  삼홍이 김장하 씨 앞에 와서 예 하고서 가로되   부르셨습니까?  김장하 씨 가로되  오 네가 급히 우비 하고 가서 네 형들 오나 좀 보아라.  삼홍이가 예하고 달려가며 김장하 씨는 사랑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더라.  문은 막 닫히자마자 하는데 사랑 마루 위에 웬 신발 소리가 나며 기침을 애함 한다.  김씨가 안으로 행하다가 그 사람 소리 나는 것을 듣고 다시 돌아서서 사랑문을 열며  게 누구냐?(문)  예, 내요.(답)  내라니 내가 누구란 말이냐?(문)  두 번째는 대답 않고 방문을 열고 썩 들어서는데 나이는 한 이십 가량이나 되어 보이고 얼굴은 과히 고을 것도 없고 과히 험하지도 아니한 떠꺼머리 총각애인데 등에는 쌀 두어말이나 팔아 지고 손에는 익모초 한 대공 꺾어 들었더라.  김씨가 재차 누구냐고 물어도 대답하지 아니하고 우선 진 신발부터 끌르더니 질목 빼고 쌀짐 벗어놓고 제 집 들어오듯 하더니 김씨더러 하는 말이  댁이 이 집 주인이오?(문)  오냐 내가 주인이다.(답)  여보 방 차서 어디 자겠소?(문)  김씨가 그 아이 거동을 보고 기가 막히고 입이 벙벙하여 말이 안 나온다. 혼자 속말로 하는 말이  허허, 세상에 오래 살면 별일을 다 보는 것이로고.  완만하다 완만하다 한들 저렇게 완만한 아이 녀석이 어디 있나…  지각이 못나 그러한가. 이십이나 되어 보이는데…  숙맥이라 그러한가. 얼굴이 과히 숙맥스럽지 아니한데…  삼척이 암만 두뫼라 한들 어디 그런 놈이 있던고…  이리 저리 생각하며 그 아이를 물끄러미 보다가 다시 묻는다.  여보게 저 총각 어디 산다니?(김)  어따 그 양반 참 잔소리 대단하구, 숨이나 좀 두르거든 사는 데를 묻던지 죽는 데를 묻던지 하오.(총각)  미처 들어앉지도 않아서 어디 사나 어디서 왔느냐 하고 겹 좇아 물으니 그런 법이 어이 있소?  댁은 성품이 매우 급한가 보오만은 나는 성품이 매우 눅은 사람이오.   어디 댁 묻고 싶은 대로 물어보시오. 나는 대답 좀 못하겠소.  여보 댁이 떡국 몇 그릇이나 먹었소.  허참…  김씨가 그 완만한 말버릇에 참기도 무던히 참았거니와 다시 더 참을 수는 없다.  잡아내어 버릇을 좀 가르치려고 금돌아   부르려 하다가 다시 문득 생각한다.  옛 성인 말씀에도 분사란(忿思難)이라 하셨거든…  내 아무리 분이 난들 어찌 잠깐 참지 못하리오.  황 저놈이 미친놈이거나 어리석은 놈 아니면 무슨 곡절이 있는 일이라.   내 어찌 경솔한 거조를 하리오.  하고 다시 웃으며 말한다.  여보게, 이 총각. 내가 묻기는 너무 급히 물었네마는 그다지 할 것이야 무엇 있나?  늙은이 대접도 좀 아니 하나?  허 허 허…  김씨는 그렇게 공손히 묻는데 그 총각은 점점 더 완만하여지는 모양이라, 아가리가 함부로 뚫은 창구녁인지 말이 아무 버르장이 없어 펄펄 나온다.  여보 이 양반 나이 먹었으면 댁 나이 먹었지 내 상관이 무엇이오?  여보 나도 낫살이나 먹었소.  내가 아이라고 그렇게 만만하여 보이오.  여보 나도 사십 년만 지나면 쉰여덟이오.  이렇게 함부로 말이 나오니 당장 광경을 보면 김씨는 육십 노인이오, 그 총각은 이십이 못된 아이인데 김씨의 공손함은 도리어 아이가 노인 대접하는 것 같고 총각아이의 완만함은 도리어 노인이 아이들과 수작함과 같으며, 또 그 총각아이가 주인의 자리에 엄연히 올라 앉았고, 김씨는 손같이 운묵에 가 앉았더라.  김씨가 일변 분하기도 하고 기막히기도 하고 의심도 나고 겁도 나고 우습기도 하던 차에 사람 한 떼가 몰려 들어온다.  소는 저기 매어라.  장기는 저기 갖다 두어라.  옷 말리게 불 좀 가져 오너라.하며 여러 십명이 들어오니 이는 다 누군고 하니 김장하 씨의 아들 삼형제와 김장하 씨 집의 일하러 온 사람들일너라.  김씨가 문을 열며 하는 말이  인제 들어오나?  춥지?  비들 많이나 안 맞았나?  어서 방으로 들어오게.  그 소와 연장은 다 거기 그대로 두게  내가 금돌이 불러 치우라 할 것이니  얘, 삼홍아. 너희들 삼형제도 어서 들어오너라.  어. 웬 비가 그렇게 졸지에 쏟아지는 비도 있나.  김씨 말끝에 혹 비 얼마 아니 맞았다고 대답하는 이도 있으며, 혹 신발 빼고 들어간다고 대답하는 이도 있으며, 혹 요새 비가 무엇이 춥기야 하겠습니까 대답하는 이도 있으며, 혹 차차 들어가요 하고 대답하는 이도 있으며, 그 둘째 아들과 셋째 아들은 안으로 들어가고 그 맏아들은 사랑으로 들어온다. 그런데 그 완만하고 담대하고 기탄없고 버릇없이 아랫목에 앉아 함부로 지껄이던 총각아이가 사람 많은 것을 보고 겁이 났던지 어느 틈에 윗목 한구석에 가서 가만히 끼여 앉았더라.  김장하 씨의 맏아들 이름은 지완이오 자는 자선인데, 키가 훨씬 크고 몸집이 부대하고 수염은 배꼽에 달락말락하고 말소리 웅장하여 아무라도 보면 점잖기도 하고 힘도 많아 보일만 하더라.(미완) (『가정잡지』, 1908.3)    김장하 씨, 이에 최완길을 앞으로 다가앉으라 하고, 부모가 아이 나서 기르는데 애쓰는 일과 안고 받아 키우는 일을 일일이 이야기하며, 그런 고로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는데, 최완길이 홀연 감동하여 눈물이 비 오듯 하더니   그자왈 지나 청국 문종황제 때에 법국(프랑스) 군사가 원명원을 불사르고 청인을 다수히 사로잡아다가 역사를 시키는데, 오라 하면 오고, 가라 하면 가고, 때리면 맞고, 꾸짖으면 받는지라. 법국(프랑스) 사람이 쓰기를, 세계에 노예성 많은 자는 청국 사람 같은 자가 없으며, 세계에 나라 사랑할 줄 모르는 자도 청국인 같은 자가 없으며, 세계에 부려먹기 쉬운 자도 청국인 같은 자가 없다 하였더니, 하루는 법국(프랑스) 사람이 청국인을 대하여 너의 부모가 소와 말 같다고 욕을 한즉, 청국 사람들이 일제히 역사하던 독기를 들고 일어나 싸우고자 하거늘, 법국(프랑스) 사람이 그 모양을 보고 탄식하여 왈, 내가 청국인은 준준한 동물과 같이 애국심이 없는 자인 줄 알았더니, 이제 이것을 본즉 청국인이 어찌 애국심이 없으리오. 다만 가족 사랑하는 마음에 나라사랑이 뺏긴 바가 됨이로다 하였도다.  슬프다. 청국인이 애국심 없음이 아니라 가족생각에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잊었고, 최완길이 부모 사랑하는 마음이 없음이 아니라, 가르치지 아니한 고로 부모 사랑하는 방법을 모름이로다.   하는 말이 내가 김선생 말씀을 듣고 부모에 죄 지은 일을 죽음이 마땅하오이다.(未完)  (『가정잡지』, 1908.7)

    5 비평

      虎頭將軍 崔瑩(최영) 氏가 累次 支那(중국)·日本 等 外寇를 鏖退하고 其百戰百勝의 餘威를 席하여 大兵으로 遼瀋에 驅入하여 高句麗 舊彊을 恢复하려 하다가 時運이 不幸하여 大志를 未成하고 反히 刑戮에 就하매 至今까지 將軍의 事를 談하는 者― 慷慨의 淚를 不灑하는 者― 無하니라. 頃者에 一友人이 將軍의 詩 二首를 錄送하였는데 其語가 莊潔하고 其調가 激烈하고 其意가 雄渾하여 足히 將軍의 人格을 想像할러라.   其 一曰  까마귀 눈비 맞아, 희는 듯 검노매라.   夜光明月이, 밤인들 어두우랴.   님 向한 一片단心, 가실 줄이 있으랴.   其二는 曰  눈비 맞아 희었노라, 굽은 솔 웃지 마라.   春풍에 핀 꽃이, 每樣에 고울소냐.   풍飃飃 雪紛紛할제, 네야 나를 부르리라.   聲音의 道가 人을 感함이 深하도다 往年에 朴齊純(박제순)·李址鎔(이지용) 等이 其政權을 旣失하고 心火鬱鬱한 中에 消日하기 爲하여 琴주를 携하고 龍山江정에 伴往하더니 時에 秋葉이 正황하여 圍山이 蕭瑟하고 夕陽이 江면에 倒暎하여 琉璃世界를 作하니 失意者의 感懷를 助할지라. 주數巡에 纛島날탕牌 數人을 招하여 歌一曲을 奏케 하더니 其歌에 有云하되   處子 죽은 鬼신은, 道令의 房으로 몰아넣고,   道令 죽은 귀신은, 處子의 房으로 몰아넣고,   우리 죽은 귀신은, 민忠正大監 넋을 따르라.하였더라. 齊純(박제순)이 此를 聽하더니 愀然히 節을 격하며 曰   「人生이 誰가 一死가 無하리오만은 彼와 如히 死所를 得한 者― 능히 幾人인고?」   하고 手中의 주盃를 擲下하였다 云하니 噫라. 彼 朴(박제순)氏가 萬一 五條約(을사늑약, 1905) 以前에 此等歌를 早聞하였으면 민忠正(충정공 민영환)의 넋을 隨하였을는지(1909. 11. 9).  詩란 者는 國民言語의 精華라. 故로 强武한 國民은 其詩부터 强武하며 文弱한 國民은 其詩부터 文弱하나니 一國의 盛衰治亂은 大抵 其國詩에서 可驗할지오. 又 其國의 文弱을 回하여 强武에 入코자 할진대 不可不 其文弱한 國詩부터 改良할지라. 余가 近世 我國에 流行하는 詩歌를 觀하건대 太半 流靡淫蕩하여 風俗의 腐敗만 釀할지니, 世道에 關心하는 者가 汲汲히 其改良을 謀함이 可하며, 又 其中에서 特히 民俗에 有益할 많은 詩歌를 募集하여 詩界의 國粹를 保全함이 可할지나 但 古사가 殘缺하여 三國時代에 眞正 强武한 詩歌는 得見하기 難하니 惜哉로다.   往者에 雩崗이 風騷續選 一券을 寄送한 바 此를 開讀한즉, 是本朝 以來 帝王 將相 名儒 達士의 詩歌를 載했더라. 其名이 旣是 續選인즉 其前篇이 必有할지며, 是篇이 又是本朝初葉으로 爲始하였은즉 其前篇은 必是 三國 勝朝時代를 錄하였을지니, 然則 其中에 或 愚溫達(우온달)·乙支文德(을지문덕) 諸公의 出軍歌도 載有할지며, 又或 陽山歌[新羅人이 名將 歆運(김흠운)의 戰死를 慰한 歌]·會蘇歌(新羅人의 勸農歌) 等도 載有할지라. 此書가 若出하면 我國詩界의 一大紀念이 될 뿐더러 又 古사의 缺文을 補할 자― 甚多하리니 어찌 余의 夢寐渴求하는 바 아니리오만은 우강家에 所存은 只是 此續篇뿐이라 하며 又 其他藏書家들은 凡一般 서籍을 忠州 자린고비의 錢米를 吝惜함과 如하니 何處에 從하여 此를 得見하리오.   今에 我國人더러 問曰   「我國詩가 何時에 始하였느뇨?」 하면   或曰 「類利王의 黃鳥詩가 是라.」 하며   或曰 「乙支文德(을지문덕)의 遺于仲文詩가 是라.」 하나   是는 皆漢詩오 國詩가 아니라. 五百年來 文學家 案上에 但只 漢詩만 堆積하여 馬上寒食途中暮春이 童孺의 初等小學이 되며, 洛城一別胡騎長驅가 敎塾의 專門敎科가 되고, 國詩에 至하는 笆籬邊에 閑棄한지 幾百年이니 嗚呼라. 此亦國粹衰落의 一原因인저(1909. 11. 11).   余가 見하는 바 國詩中에 其流傳 最舊한 者를 擧하면 高僧 了義가 國文을 始創하고 佛敎를 讚美한 眞言이 是라 할지나, 然이나 此는 梵詩를 音譯한 者라 國詩로 冒稱함이 不可하고, 其次는 崔都統(최영)·鄭圃隱(포은 정몽주)의 丹心歌가 될지라. 崔都統(최영)의 詩는 前段에 記錄한지라 今에 圃隱(포은 정몽주)시 全篇을 錄재하노라. 시曰   죽어죽어 一百番 다시 죽어,   白骨은 塵土되고 넋이야 있던 없던   님 向한 一片단心 가실 줄이 있으랴 .  古代에는 人君으로 國家의 中心點을 삼은 故로 崔都統(최영)·鄭圃隱(포은 정몽주)의 丹心歌가 其終章에는 皆 (님 向한 一片단心)이란 語로 結하였스니 (님)은 人君을 謂함이니라(1909. 11. 12).  漢詩는 漢文과 共히 我國에 輸入하여 一種 文學을 成한 者라. 箕聖이 傳敎할 時에 必也 殷·周에 行用하는 풍雅頌 等으로 國人을 敎한 事가 有할지나 古사에 可徵할 處가 無하며, 或 麥秀歌를 箕聖의 作한 바라 하나, 此는 張谿谷(장계곡)이 微子詩로 昭哲히 辨正한 바라. 再次 置疑할 餘地가 無하니, 我東의 漢詩鼻祖는 不得不 類利王 黃鳥詩로 推할지나 其詩旨가 自家 夫婦間 缺感을 叙述함에 不過하니 足히 稱道할 바 無하고, 其後에 乙支文德(을지문덕)이 平壤城下 兵馬공惚의 際에 五言 一首를 著하여 于仲文(우중문)을 欺弄하였으니 其臨陣閑雅의 풍度를 足히 想見할지나 將軍의 詩라 詩人의 詩가 아니며, 又 一時誘敵의 語라 任情率意의 作이 아니니 足히 諷詠할 바 無하고, 其後에 許多 詩學士가 輩出하였으나 皆 李(이백)·杜(두보)·韓(한유)·蘇(소동파)의 睡餘를 拾하여 戰事를 悲觀하고 苟安을 謳歌하여 事大主義만 鼓吹할 뿐이오, 能히 眼光을 大放하여 東國尙武的 精神을 發揮한 者 ―無하니 嗚乎라. 外語 外文의 國魂을 移奪할 魔力이 果然 如此한지, 余가 勝朝及 本朝 千餘年間 漢詩家 人物을 歷數하매 欷歔를 不堪하는 바로다. 故로 余는 嘗謂하되 我國의 流轉하는 漢詩는 南怡詩  白頭山石磨刀盡,   豆滿江波飮馬無,   男兒二十未平敵,   後世誰稱大丈夫.  一首와 崔瑩詩  三尺劍頭安社稷,   一條鞭末整乾坤.   一句만 存錄하고 其餘는 一切 火炬에 付코자 하노니, 嗚乎라. 此言이 비록 過滶한 듯하나 抑亦有志者의 同認할 바가 아닌가. 雖然이나 彼千餘年來 漢詩家가 腦를 腐하며 血을 嘔하여 螢窓雪案間 蕭條生涯로 其死後 姓名三字를 傳코자 하던 者가 今日 九原下에서 此言을 聞하면 齒를 切하고 哀哭할 者― 果然 幾人이나 될는지(1909. 11. 13).  往者에 金允植(김윤식) 氏가 前統監 願留次로 日本에 渡往하더니 彼中 漢詩家들이 金(김윤식)을 富士山下에 邀宴할새 金(김윤식)이 該山으로 爲題하고 一詩를 成하였는데  怪怪奇奇摠不同,   化工於此技應窮,   森沉劍戟皆兵氣,   羅列兒孫盡父風.이라 云云하였더라. 噫라. 彼의 外國崇拜하는 劣性이 何如是오. 外國人物을 崇拜할 뿐 아니라 外國山川까지 崇拜하였도다. 噫라(1909. 11. 14).  詩歌는 人의 感情을 陶融함으로 目的하나니 宜乎 國字를 多用하고 國語로 成句하여 婦人幼兒도 一讀에 皆曉하도록 注意하여야 國民智識 普及에 效力이 乃有할지어늘, 近日에 各學校用歌를 聞한즉 漢字를 雜用함이 太多하여 唱하는 學童이 其趣味를 不悟하며, 聽하는 行人이 其語意를 不知하니, 是가 何等効益이 有하리오. 是亦敎育界의 欠點이라 可云할지로다. 一友人이 일찍이 其著한 바 愛國吟 丈夫吟 各 一首를 余에 誦傳하는데 國語로 爲主하고 漢子는 若干 助入하여 老嫗도 可解라. 余― 此를 愛하여 左에 錄하노라.   愛國吟曰  제 몸은 사랑컨만, 나라사랑 왜 못하노,   國家疆土 없어지면, 몸 둘 곳이 어디메뇨,   차라리 몸은 죽더라도, 이 나라는,   丈夫吟曰   長劍을 높이 들고, 宇宙間에 徘徊하니,   萬古興兦 胸中에 歷歷하고, 六大部洲는 眼中에 恢恢하다,   아마도 丈夫의 得意秋는, 이때인 듯(1909. 11. 16).  『帝國新聞』에 일찍이 國字韻 (날발갈·닝징싱 等)을 懸하고 國文七字詩를 購賞하였으니 此七字詩도 或 一種 新國詩體가 될까?   曰 否라. 不可하다. 英國詩는 英國詩의 音節이 自有하며, 俄國(러시아)詩는 俄國(러시아)詩의 音節이 自有하며, 其他 各國詩가 皆然하나니, 萬一 甲國의 詩로 乙國의 音節을 效하면 是는 鶴膝을 鳧脚으로 換하며 狗尾를 黃貂로 續함이니, 其孰長孰短 孰善孰惡은 姑舍하고 狀態의 不類가 어찌 可笑치 않으리오. 試하여 此國文七字詩를 一讀하라. 其難삽함이 果然 何如하뇨? 且堂堂獨립한 國詩가 自有하거늘 何必 支那律體를 依倣하여 龍鍾崎嶇의 態를 作하리오. 又或 近日 各學校에서 日本音節을 效하여 十一字歌를 製하는 者― 間有하니 此亦 國文七字詩를 製하는 類인져. 余도 일찍이 某校學生의 託을 爲하여 此十一字歌를 製給한바 追後에 此를 悔悟하였으나 往事라 可追할 바 아니로다. 萬一 該校學生이 余에게 改製를 구하면 余가 補過하기 爲하여 此를 不辭하겠노라(1909. 11. 17).  甲午東學(동학농민운동, 1894)의 諸魁首는 皆 一時 妷鬼에 不過하나 獨彼古阜首擾者 全琫準(전봉준)은 革命家의 精神이 饒有하고 兵略이 神速하여 彼日本人의 崇拜를 大受하는 者라. 琫準(전봉준)의 起事하던 時에 一歌가 湖南에 流行하여 曰  새야 새야 八王(全字 破字) 새야, 네가 어이 나왔느냐,   솔잎 댓닙 포롯포롯, 幸하여 봄철인가 나왔더니,   白雪이 폴폴 흩날린다, 저 건너 蒼松綠竹이 날 속였다.   嗚乎라. 琫準(전봉준)의 才略으로 萬一 稍後히 出現하여 世界의 風潮를 觀察하고 時機를 利用하였다면 後來 其可觀의 成就가 必有함은 尙論家의 並認할 바니 此歌가 果然 明白히 道破하였도다. 未知케라. 其作者가 何人歟아(1909. 11. 18).  客이 漢詩 數首를 携하고 余를 示하는데 句句에 新名詞를 참入하여 成한지라. 其中   滿壑芳菲不等秀.   격林禽鳥自由鳴.이라 云한 一聯을 指하여 曰   「此兩句는 東國(조선)詩界革命이라 可稱할 바라.」   하고, 怡然히 自得의 色이 有하거늘 余― 曰   「吾子의 用心이 良苦하도다만은 此로 支那(중국)詩界의 革命이라 함은 可커니와 東國詩界의 革命이라 云함은 不可하니, 蓋東國(조선)詩가 何오 하면 東國(조선)言·東國(조선)文·東國(조선)音으로 製한 者가 是오, 東國(조선)詩革命家가 誰오 하면 東國(조선)詩中에 新手眼을 放하는 者가 是라 할지어늘 今에 子가 漢字詩를 作하고 貿然히 自信하여 曰 我가 東國(조선)詩界革命家라 하니 抑亦愚悖함이 아닌가(1909. 11. 20).  吾子가 萬一 詩界革命者가 되고자 할진대 彼阿羅郞 寧邊東臺 等 國歌界에 向하여 其頑陋를 改革하고 新思想을 輸入할지어다. 如此하여야 婦女가 皆 吾子의 詩를 讀하며, 兒童이 皆 吾子의 詩를 誦하여 全國의 感情과 風俗이 丕變되야 吾子가 詩界革命家 始祖가 되려니와 苟或 漢字詩를 將하여 此로 國人의 感念을 興起코자 하려다가는 비록 索士比亞(英國 大詩人)의 神筆을 揮할지라도 是는 幾個人의 閒坐諷詠함에 供할 而已니, 何故로 云然고 하면 卽 彼가 東國(조선)語·東國(조선)文으로 組織한 東國(조선)詩가 아닌 故니 吾子와 用心은 良苦하다마는 其計가 實誤로다.」하되 客이 憮然良久에 退曰   「先生의 言이 果然하다.」하더라(1909. 11. 21).  彼無知妄靑年들이 往往 呌唱曰   「我國을 兦케 한 者는 詩라.」하니 嗚乎라. 其不思함이 어찌 此에 至하뇨. 今에 姑且至近의 理로 喩하리니 大抵 吾輩가 喜가 有하매 歡呼가 無코자 한들 得乎며, 怒가 有하매 憤呌가 無코자 한들 得乎며, 哀怨이 有하매 凄凉灑泣이 無코자 한들 得乎며, 苦痛이 有하매 呻吟狂啼가 無코자 한들 得乎아.   大凡 詩란 자는 卽 此歡呼·憤呌·凄凉灑泣·呻吟狂啼 等의 靜態로 結成한 文言이니, 詩를 廢코자 하면 是는 國民의 喉를 閉하며 腦를 破함이니 此― 어찌 可하며 此― 어찌 可하리오. 故로 余는 嘗言하되   「詩가 盛하면 國도 亦盛하며, 詩가 衰하면 國도 亦衰하며, 詩가 存하면 國도 亦存하며, 詩가 兦하면 國도 亦兦한다.」하노라. 或曰   「然則 本朝 五百 年來에 有名한 詩人은 前代보다는 多하였으나 其國民은 前代에 不及하여 壬辰에 倭의 八道가 창攘하며 丙子에 胡의 京城이 不守하여   天心錯莫臨江水,  廟算凄凉對落暉.의 句에 君臣의 血淚만 灑하였으며   回思丙子年間事,   幾斷王孫塞外魂.의 語가 後人의 遺恨만 胎하였으니 詩의 功이 何에 在한가.」   曰 「噫라. 本朝 以來로 果然 詩學이 盛하였으며 詩學이 盛한 後에 果然 國恥가 頻來하였으니 子가 詩를 咎함이 亦宜로다만은 但 子가 詩의 何物됨을 不知하고 詩를 妄論하는도다(1909. 11. 23).  今에 余가 爲先 詩의 能力을 說明하고 其次 詩道와 國家의 關係를 詳論하리니, 子는 且頭腦를 冷靜하고 此를 聽할지어다. 卽今 吾齊가 漠然閒坐라가 金節齊(절제 김종서)의 朔風歌  朔풍은 나무 끝에 불고, 明月은 눈 속에 찬데,   萬里邊城에 一長劍 짚고 서서,   휘파람 한 소리에 거칠 것이 없어라.를 朗吟하매 忽然 肝膽이 斗大하며 소然疲臥라가 南(남이)將軍의 長劍曲   長劍을 빼어들고 白頭에 올라보니,   大東天地에 腥塵이 잠겼어라,   언제나 南北풍塵을 헤쳐볼까 하노라.를 快讀하매 突然 頭발이 上指하며 沉憂鬱鬱하다가   어와 저 白鷗!   一章을 漫誦하매 心神이 怡然하며 情事悠悠하다가   子規야 우지 마라.   一句를 微諷하매 感淚가 潛然하여 詩가 人情을 感發함에 如此히 不可思議의 能力이 有한지라.   是以로 其詩가 武烈하면 全國이 武烈할지며, 其詩가 淫蕩하면 全國이 淫蕩할지며, 其詩가 雄建하면 全國이 雄建할지며, 其詩가 柔弱하면 全國이 柔弱할지며, 其他 勇悍猖狂·猛奮纖劣 或善 或惡 或美 或醜가 無非詩歌의 支配力을 受하는 바인데, 試思하라. 我國에 流行하는 詩가 果然 何如한 詩이뇨(1909. 11. 24).  國詩로 言하면   南薰殿 달 밝은데 八元八凱 거느리시고  한 閑淡의 詩뿐이며,  말 없는 靑山 態度 없는 流水  란 放狂의 詩뿐이며,  말은 가자고 네 굽을 땅땅 치는데 님은 잡고 落淚한다  한 淫蕩의 詩뿐이며,   風波에 놀란 沙工 배 팔아 말을 사니  한 厭退에 詩뿐이오. 又 幾百年 以來로 漢詩가 一船社會間에 盛行하였으니 亦皆 此等語 此等意뿐이 아닌가. 落花芳草는 其心境이며 歎窮嗟卑는 其趣旨며, 對酒當歌 人生幾何는 其情懷며, 無可奈何 不如歸去는 其普通用語오. 此外에는 他境이 無하며, 此外에는 他情이 無하니, 此로 社會의 公德을 陶鑄 必不能이며, 此로 軍國民의 感情을 製造할까 必不能이로다. 仲尼― 云   禮云禮云 玉帛云乎哉   樂云樂云 鐘鼓云乎哉아 하셨으니 詩云, 詩云이여. 果然 此等詩를 云함인가. 噫라. 外面으로 詩가 我國이 莫盛하다 할지나 內容을 察하면 我國의 詩가 兦한지 已久라 할지라. 詩가 兦하였거니 國民의 思想이 何由로 高尙하며 國民의 精神이 何由로 結合하리오. 故로 我國 今日 現狀은 彼等非詩의 詩로 此를 致하였다 함도 亦可하도다. 切望하노니 今日 國家前途에 留意하는 志士여. 不可不 詩道를 振興함에 留意할지니라.」(1909.11.25.)  申震澤 光河(진택 신광하) 氏는 科詩로 鳴한 者나, 然이나 其實은 氏가 科詩에 長할 뿐 아니라 漢文과 漢詩에 尤長하며, 又詩에 長할 뿐 아니라 卽 其卓塋한 奇氣가 一世의 傑人이라 可稱할지라. 性이 旅行을 喜하여 八域의 山河를 觀覽하며 其老年에 北遊하여 白頭山에 登하여  兩岸蒼崖三百里   女眞黃葉落朝鮮의 句를 吟하고 旣歸에 朝廷에 奏하여 兵을 養하여 鴨綠江 以西 並呑함을 主張하나 時人이 皆 狂士로 目하여 其言을 不用하였으니 後來 志士의 同感할 바로다. 嗚呼라. 氏는 어찌 五百年 蕭條오怪한 詩人과 並稱할 자리오.   南園綠草 봄白寀는 밤이슬 오기만 기다리고   우리 蒼生萬백성은 大院位大監(흥선대원군) 도로 오시기만 기다린다.   此는 大院君(흥선대원군)이 淸國에 被拘하였을 時에 各地에 流行하던 鄕歌니, 當時 人心이 大院王에게 繫함은 可히 推想할 바라. 王이 비록 梟悍함이 過하여 往往  國의 事를 作한 것이 多하나 能히 猛斷하며 能히 鷙擊하여 弊政을 除함이 不一하여 百餘年來 政治界에 第一指를 可屈할지니 斯民의 如斯히 謳歌想望함이 亦宜하도다(1909. 11. 26).  洪景來(홍경래) 年十餘에 鄕塾에 就하여 遊學하더니 一日은 其師가 危欄에 跨하였거늘 景來(홍경래)가 手로 擠하는지라. 師가 大驚回顔한즉 笑曰   「時勢가 하도 좋아 辜負하기 不可한 故니이다.」   하더라 其童年에 著한 科詩題曰 (送荊軻) 一句가 人間에 流轉하는데 曰   秋風易水壯士拳   白日阿房秦皇頭라 하였으니 其詩가 政히 其人과 酷肖하도다.  古代에는 儒賢長者가 皆國詩와 鄕歌를 喜하여 典重活潑한 著作이 多하며, 又 花朝月夕 朋儕會集의 際에 往往 長吟短唱으로 遺興하여 其풍流를 可想인데 邇來 百餘年間은 此一道가 但只 蕩子淫妓에 歸할 뿐이오. 萬一 上等社會 調修하는 士子이면 國詩 一句를 能製치 못하며, 鄕歌 一節을 解吟치 못하므로 詩歌는 愈愈히 淫靡의 方에 추하고 人士는  愈愈히 愉快의 道가 絶하니, 國民萎敗의 故가 비록 多端하나 此도 또한 一端이 될진저. 今에 先賢의 短歌 數節을 錄하노라.   退溪(퇴계 이황)詩曰   雷霆이 破山하나 聾者는 못 듣나니   白日이 中天하여도 瞽者는 못 보나니   우리는 耳目聡明 男子로 聾瞽같이 말으리라.   金裕器(김유기)詩曰   春풍桃李花들아 고은 빛을 자랑 마라.   長松綠竹을 歲寒에 보려무나   亭亭코 落落한 節을 고칠 줄이 있으랴.   尹善道(윤선도)詩曰   松間石室에 가서 曉月을 보려 하니   空山落葉에 길을 어이 찾아가리.   어디서 白雲이 좇아오니 女蘿衣가 무거워라.(1909. 12. 2.)  西河先生 林椿(서하 임춘)은 前朝에 大詩人이라. 蒙古亂後에 國恥를 雪코자 하여 海內에 奔走하면서 時調·雜歌·漢詩 等을 作하여 惓惓히 一禿筆로 國魂을 呌하며 民氣를 鼓하나, 時勢가 不利하여 마침내 孤憤을 抱하고 道塗에서 老死하매, 至今지 論者가 其志를 悲하는 바라. 然이나 先生의 死後에 遺音을 繼한 者가 無하고 又 其文集이 兵火에 泯沒하여 一葉도 傳後되지 못하였으니 嗚呼라 어찌 可惜지 아닌가.  余가 일찍이 先生으로써 伊太利(이탈리아) 詩人 단테에게 比하나, 然이나 단테는 其一村의 筆下에 能히 瑪志尼(마치니)를 産出하여 舊羅馬(로마)의 榮光을 挽回하였거늘, 先生은 死後 六七百年에 國은 依舊히 弱하고, 民은 依舊히 劣하니, 先生의 目이 將且 地下에서 不暝할진저. 余가 東文選 及 東詩選을 閱하매 林西河(서하 임춘) 先生의 詩文揭재된 者가 間有하나 其詩가 平平하여 氣力이 絶無할 뿐더러 且 一字一句도 民國의 憂에 及한 者가 無하여 사에 稱한 先生의 遺跡과 較하매 氣味가 一毫도 不近한지라. 是以로 매양 此에 疑를 置하였더니 밋(이윽고) 星湖사說을 讀한즉 此는 本朝 肅廟時에 淸道僧 某가 石窟中에서 發見한 者라 하였는지라. 噫라. 此가 어찌 先生의 詩리오. 其人의 贋造됨이 無疑하도다. 然이나 先生 眞作의 詩는 尙今까지 得見한 處가 無하고, 但 于山文抄에 先生文 一首를 재하였는데, 其中 一節에 云하였으되   國無大小係于民 時無利鈍係于才 苟能導民以勇 養才有法何畏乎 强敵何畏乎 劉徹楊廣忽必烈이리오하였더라. 其辭를 執하여 推求하건대 此先生의 文됨이 無疑하도다. 然이나 先生의 忠憤義烈이 如彼하지만, 其傳後된 者― 此一首뿐이니 可히 勝歎할까. 雖然이나 我國 奴隸文學의 社會에 此一首의 得傳함이 또한 天幸인저(1909. 12. 3).  自來 泰東人(동양인)은 詩人의 地位를 低看하여 詩가 風化에 無關하며, 政敎에 無關하고, 但只 黃葉村席門中에서 虫鳴蛙呌하는 一個世外棄物로 知하니, 嗚呼라. 此는 誤解의 大誤解로다.  大詩人이 卽 大英雄이며, 大詩人이 卽 大偉人이며, 大詩人이 卽 歷사上의 一巨物이라. 故로 亞寇馬 陶淵明(도연명)輩가 비록 山林에 居하여 足跡이 世에 不出하였으나 其著한 바 詩集이 一世를 風動하여 人心을 支配함에 至하니, 大抵 변士의 舌과 俠士의 劍과 政客의 手腕과 詩人의 筆端이 其效用이 遲速은 異하나 世界를 陶鑄하는 能力은 一이라. 故로 大宗敎家가 敎를 布함에 爲先 詩歌에 從事하여 此로써 人心을 移改하나니, 三國時代 佛敎徒의 鄕歌와 支那(중국) 六朝時 達摩(달마대사)·慧能(혜능)의 喝句와 舊約經中의 詩歌가 皆 詩니 詩의 功用을 此에 可知할진저(1909. 12. 4).

    6 서신

      여러 번 편지를 받자와 형편의 안녕하신 줄 알았소이다.  그간에 미주(미국)로 이위 도달하셨는지 궁금이오다.  弟는 몸은 한 모양이오나 마음은 항상 여러 가닥이오이다.  미주로 오라 하신 말은 받자왔으나 아직 이곳을 떠나지 못할 관계오이다.  그만 그치옵니다.  以上.

    7 서문

      怪哉라, 卞君이여. 夫西國에 宗敎·哲學 等書가 亦多어늘 是는 不問하며, 倫理·衛生 等說이 亦備어늘 是는 不取하고, 乃此 世界三怪物 一篇을 是究是譯하여 怪筆怪舌로 怪談을 樂道하니, 怪哉라. 卞君이여. 將 全國人人이 惟怪를 是尙하여 語語怪하며 事事怪하면 卞君이 於心에 始快乎아. 曰 否否라. 無險無夷가 出河의 本面이며, 無寃無親이 萬物의 眞相이며, 無怪無不怪가 卞君의 素心이로되 只是 幻師作幻이 愈出愈怪하여 優者가 登壇에 劣者가 折角하고 强者가 張啄에 弱者가 喪軀하여 仁義道德이 白旗를 盡竪하고 神佛天龍이 悲悶을 空垂하니, 卽 此二十世紀 今日은 全世界 人類의 戰兢臨履할 時代인데, 維我海東 一方에 數千載 閉門頑夢하던 兄弟는 尙且 將開未開의 睡眼으로 朦朧一睨하고 怪物의 情態를 全然 不知하여, 或 虎狼을 狗로 狎하며, 或 蛙蚓을 蛇로 驚하여 彼勇은 太愚하고 此黠은 太㥘하니, 愚與㥘은 將來 怪物 腹中에 一律 埋葬할 者이라. 風塵이 慘變하고 白日이 晦黑일새 於是乎 卞君의 舌이 不得不 一怪며 卞君의 筆이 不得不 一怪로다. 禹鼎에 奸을 鑄하며, 渚犀로 妖를 燭하여 人人이 怪体를 目擊하며 人人이 怪腸을 手探하면 彼怪가 雖怪나 其怪를 莫施하리니 三怪物 譯者의 苦心이 斯에 在하며 斯에 在한저. 解頤書(我東稗談)에 載하여 曰   “一少年이 方夜獨行터니 一怪鬼가 突至하는데 髮은 丈餘나 披하며, 口로 沙石을 吐하고, 앙?앙?앙?하며 來噉하는 狀을 作하는데, 玉樞를 三復하여도 猶逼하며 星名을 歷數하여도 猶逼이라. 少年이 必死로 自分하다가 忽然 一策을 思하고 其髻를 解하여 鬼髮을 效하며, 其口에 沙를 含하여 鬼前에 噴하니 鬼呵呵笑하며 遂退라.”  하니 噫라. 我가 十年 以前에 解髻含沙라면 怪物이 當初에 不來하였을지며 五年 以前에 解髻含沙라면 怪物이 雖來나 卽退하였을지어늘, 前車가 旣覆에 後轍이 不戒하여 今日이 有하였도다. 不仁者—怪物이오, 無厭者—怪物이라. 彼且 我의 酣睡를 乘하여 謝天謝地 不勝之喜로 踞牙張吻하고 耽耽前來하여 一飽에 思充하나니 어찌 可畏치 않으며 어찌 可懼치 않은가.   鳴呼 讀者여. 怪物의 怪도 怪타 말며, 譯者의 好怪도 怪타 말고, 爾亦惟怪를 是學하며, 惟怪를 是夢하며, 是嚬是效하며, 是步是趨하여, 此地球上 黃白紅黑 千五万万 靈物이 一時 其頭를 扶桑半島에 齊回하고, 大驚하여 曰 怪哉 怪哉라. 白頭山下가 是第一巨怪窟이오. 靑邱民族이 是第一居怪種이라 하여 世界三怪物 主人翁의 名號를 我國으로 歸케 함이 何如오.  隆熙二年 三月 一日 무애生(신채호)은 敍하노라.

    8 범례

    • 제7권에는 신채호의 문학 저작물을 모아 수록하였다. • 수록 자료는 북한과 중국 연변에서 단재(신채호)의 여러 작품을 모아 기간행한 『룡과 룡의 대격전』(조선문학예술총동맹출판사, 1966), 『신채호문학유고선집』(김병민, 연변대학출판사, 1994)을 비롯해 기타 흩어져 있던 단재의 작품을 모은 것 등이다.• 『룡과 룡의 대격전』, 『신채호문학유고선집』 외에 수집된 작품은 시·소설·비평·서신·서문으로 분류, 편집해 수록하였다.• 체제는 원전과 새활자본으로 되어 있고, 필요한 원전의 새활자 작업은 김주현 교수(경북대)가 담당하였다.• 새활자본은 자료의 활용 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가능한 한 원전 그대로 옮김을 원칙으로 하였다. • 색인은 새활자본에만 국한하였다.

    1
    1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