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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인국민회

    대한인국민회 [재미한족연합위원회] [기타] 에 대한 전체 7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1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 회의 메모(1943.5.18.)

    1943년 5월 18일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 회의 메모다. 제2차 전체위원회를 마친 직후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의 김호, 김병연, 송종익, 송철과 임시위원 송헌주, 김용중 등 6인이 토의한 내용을 적은 회의 기록으로, 회의 결과 집행부 위원의 증원, 신설한 연구부 위원 5인의 선정, 영문잡지 담당 서기는 임창용, 임병직, 박상엽 중에서 택일하기로 했다.

    2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 회의 메모(1943.4.20.)

    1943년 4월 20일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 회의 메모다.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가 1943년 4월 20일 김호, 김병연, 송종익, 송철, 김성락, 김용중, 김종림 등 7인이 모여 회의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한미친우회[한미협회]의 재정 지원은 당초 6개월(1942.9-1943.2)까지인데 2개월을 더 늘리는 것으로 했고, 그 외 집행부 사무원의 경비 예산을 책정했다.

    3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 회의 메모(1943.4.21.)

    1943년 4월 21일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 회의 메모다.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가 1943년 4월 21일 김호, 김병연, 송종익, 송헌주, 송철, 박원걸, 김성락, 김용중, 김용성 등 9인이 모여 회의한 내용을 적은 것이다. 의결사항은 한인경위대의 경비 외 관병식 거행, 집행부 4개 과(사무과, 재무과, 국방과, 선전과)의 인원을 새로 선임한 것 등이다.

    4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 회의 메모(1943.5.5.)

    1943년 5월 5일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 회의 메모다.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가 1943년 5월 5일 김호, 김병연, 송종익, 송철, 이원순, 조병요, 김종림, 박원걸, 임병직, 김성락, 송헌주 등 11인이 모여 회의한 내용을 적은 것이다. 정한경을 주미외교위원부의 새 외교위원으로 추천하기로 했고 주미외교위원부의 경비 지출(500원) 등을 논의했다.

    5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제3차 전체위원회 의장 한시대의 연설문(1944.4.2)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제3차 전체위원회 의장 한시대가 1944년 4월 2일 개회식 때 전한 연설문 중 일부를 영문으로 정리한 글이다. 한시대는 미일전쟁이 한창일 때 제3차 전체위원회의 개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으며 이러한 때 중국 내 한국광복군의 지원과 미군부와의 전시협력, 워싱턴사무소 설립 지원, 재미 한인 단체들의 재미한족연합위원회로의 대단합 등을 촉구하였다. 그리고 카이로선언에 제기된 '적당한 시기'의 한국 독립문제를 명확히 할 것과 신탁통치를 배격한다는 중경 임시정부 주석 김구의 입장을 전했다.

    6 재미 한인 전체대표회 순서(1944.10.28.)

    1944년 10월 28일 재미 한인 전체대표회 순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시에 따라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위원장 한시대)의 주관으로 주미외교위원부 개조를 위해 재미한인사회 13개 단체 대표들이 로스앤젤레스의 대한인국민회총회관에 모여 1944년 10월 28일부터 11월 5일까지 개최한 재미 한인 전체대표회의 행사 순서다.

    7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가 재미 한인 전체대표대회를 통해 나타난 미주 각 단체들의 주제별 관심사 초안(1944.11.)

    1944년 11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가 재미 한인 전체대표대회를 통해 나타난 미주 각 단체들의 사안별 관심사를 분류한 초안이다. 조선민족혁명당북미총지부, 하와이의 각 단체, 북미 대한인국민회,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가 8개의 사안에 대해 보이고 있는 각자의 성향을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가 임의로 분류해 메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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