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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인국민회

    대한인국민회 [선언서/격문/전단류] [격문] 에 대한 전체 10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1 신탁통치 철폐를 민족통일전선 결성의 계기로 삼자는 조선청년총동맹의 격문(1945.12.29.)

    1945년 12월 29일 신탁통치 철폐를 민족통일전선 결성의 계기로 삼자는 조선청년총동맹의 격문이다.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한국에 대한 5년간의 신탁통치 결정 소식을 듣고 조선청년총동맹은 신탁통치 결정의 부당함을 주장하였으나 이를 계기로 친일파와 민족반역자를 배제한 전 민족의 통일전선을 이룰 것과 인민의 힘으로 속히 완전한 자주독립을 쟁취할 것을 호소해 사실상 신탁통치 지지를 표명했다.

    2 조선공산당의 신탁통치 지지 격문(1946.1.1.)

    1946년 1월 1일 조선공산당의 신탁통치 지지 격문이다. 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와 서울시위원회는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결정된 5년간의 신탁통치 결정에 무조건 반대하지 말고 민족통일전선의 깃발 아래 전 민족이 총결집하여 절대 자주독립국가를 완성할 것을 호소하였다.

    3 조선공산당청년동맹의중앙위원회의 전민족 통일전선 수립 호소 격문(1946.1.2.)

    1946년 1월 2일 조선공산당 청년동맹 중앙위원회의 전민족 통일전선 수립 호소 격문이다. 조선공산당청년동맹중앙위원회는 모스크바 삼상회의에 나온 신탁통치 결정에 반대하는 세력을 파쇼적 민족반역자와 친일파분자로 간주하고 이들의 반민주주의정책을 절대 배격하고 전민족의 통일전선을 수립할 것을 호소했다.

    4 조선공산당경기도위원회의 신탁지지 격문(1946.1.)

    1946년 1월 조선공산당 경기도위원회의 신탁지지 격문이다. 조선공산당경기도위원회는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나온 신탁통치 결정은 조선의 식민지화를 방어하고 반파쇼민주주의 정권을 확립하라는 연합국의 협력이 일보 전진한 것으로 평가하여 그 결정을 적극 지지하는 동시에 민족반역자를 일소하여 민족통일전선과 완전한 자주독립국가를 이룰 것을 호소했다.

    5 경기지방노동조합평의회의 신탁통치 지지 격문(1946.1.)

    1946년 1월 경기지방노동조합평의회의 신탁통치 지지 격문이다. 경기지방노동조합평의회는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을 적극 지지하면서 완전한 독립은 민족통일전선을 완성하는 것과 친일파와 민족반역자를 소탕하는 것이라 주장하며 임시정부의 반파쇼적 망동 중지와 조선공산당 만세를 외쳤다.

    6 조선토건노동조합선전부의 신탁통치 지지 격문(1946.1.)

    1946년 1월 조선토건노동조합선전부의 신탁통치 지지 격문이다. 조선토건노동조합선전부는 민주주의의 가면을 쓰고 민족통일을 방해하는 자는 친일파와 민족반역자들이라 규정하고 이들을 소탕하여 강력한 민족통일전선을 이룰 것과 조선인민공화국을 적극 지지했다.

    7 전평선전부의 반임시정부 격문(1946.1.)

    1946년 1월 전평선전부의 반임시정부 격문이다. 조선노동조합 전국 평의회의 약칭인 전평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을 자칭 임시정부로 폄하하고 파쇼적 망동을 정지할 것과 조선인민공화국 만세와 민족통일전선 결성을 호소했다.

    8 남조선총파업맹휴투쟁인민응원단의 격문(1947.3.)

    1947년 3월 남조선총파업맹휴투쟁인민응원단의 격문이다. 1946년 6월 19일 미군정청은 경성대학과 경성의학전문학교·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경성법학전문학교·경성고등공업학교·경성고등상업학교·수원고등농업학교 등을 통합하는 국립대학안(일명 '국대안')을 발표하고 이후 8월 23일 「군정령」으로 국립서울대학교 신설을 강행하자 전국의 학생과 교수들이 반대운동에 돌입했다. 여기에 대량해고와 식량부족 등 경제적 혼란과 비민주적 정치 형태에 항거한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도시민들이 합세해 항쟁에 나서 많은 희생이 뒤따르자 남조선총파업맹휴투쟁인민응원단은 그동안 가혹한 테러방식의 진압으로 물의를 일으킨 살인 경찰과 경찰 수뇌부를 규탄하고 파업과 동맹휴학에 대한 경찰의 간섭 배제, 현 정권의 인민위원회 이전 등을 주장하는 격문을 발행해 대중의 지지를 호소했다.

    9 민주학생돌격대의 '국대안' 반대 격문(1947.3.)

    1947년 3월 민주학생연대의 '국대안' 반대 격문이다. 국대안은 국립대학안의 줄임말로 1946년 6월 19일 미군정청은 경성과 수원의 학교 등을 통합하는 국립대학안을 발표하고 이후 8월 23일 「군정령」으로 국립서울대학교 신설을 강행한 것을 말한다. 이렇게 되자 전국의 학생과 교수들이 국대안 반대운동에 돌입했는데 이때 민주학생돌격대는 국대안을 파쇼교육제도의 표본이자 식민지노예교육제도의 표본으로 간주하고 절대 반대를 외쳤다.

    10 반동과싸우자동맹의 야만 경찰 규탄 격문(1947)

    1947년 반동과싸우자동맹의 야만 경찰 규탄 격문이다. 파업노동자들을 검거, 투옥한 야만 경찰과 그 수뇌부인 조병옥에 대한 규탄, 풍년에 쌀을 창고에 쌓아두고 기아에 허덕이게 하는 지주 모리배, 학원의 민주화 보장과 노예교육을 하려는 유억겸 규탄, 그리고 인민공화국 수립 등을 내세우며 반동과 싸우자동맹이 노동자, 농민, 학생, 시민들에게 총궐기를 호소한 격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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