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글자크기조절

콘텐츠

선택

선택

    대한인국민회

    대한인국민회 [국제회의] [파리강화회의] 에 대한 전체 36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1 파리강화회의 한국대표단이 작성한 독립청원서(Petition) - THE CLAIM OF THE KOREAN PEOPLE AND NATION(1919.4.)

    1919년 4월 파리강화회의 외교활동을 위해 한국대표단을 이끌고 있는 김규식이 대표 서명해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하는 각 정부 대표단들에게 보낸 한국인과 한국민족의 독립청원서이다. 오랫동안 독립국가이던 한국이 일본의 불법 침략으로 강제합병을 당해 독립을 상실한 지 10년이 되었지만 이제 1천8백7십만의 국내외 한인들과 새로 설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대신해 열강 대표단에 독립을 호소한다고 했다.

    2 파리강화회의 한국대표단이 작성한 독립청원 각서(Memorandum) - THE CLAIM OF THE KOREAN PEOPLE AND NATION(1919.4.)

    1919년 4월 파리강화회의 외교활동을 위해 한국대표단을 이끌고 있는 김규식이 대표 서명해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하는 각 정부 대표단들에게 보낸 독립청원서(Petition)의 내용을 보다 구체화하고 세분화해 작성한 각서(Memorandum)이다. 4,200년 동안 독립국가로 살아온 한국인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혔고 일본에 대한 침략과 강제병합, 식민통치하의 한국인의 열악한 삶, 일본의 침략적인 대륙정책과 이것이 향후 국제질서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 외 강제병합의 조약과 한국 기독교 탄압을 자행한 소위 '105인사건'의 진상을 부록으로 실었다.

    3 파리한국대표단이 파리강화회의에 보낸 비망록(CONFERENCE DE LA PAIX-MEMOIRE)(1919.4.)

    1919년 4월에 작성된 파리한국대표단이 파리강화회의에 보낸 불어판 비망록(CONFERENCE DE LA PAIX-MEMOIRE)이다. 파리강화회의에 보낸 비망록(CONFERENCE DE LA PAIX-MEMOIRE)은 파리한국대표부 대표 김규식이 1919년 4월에 작성해 5월 10일 제출한 독립청원서에 언급된 각서이다. 본 문건의 서문에는 1910년 8월 22일 일본이 대한제국을 합병하고자 서울에서 체결된 조약을 폐기하거나 무효로 선언하는 파리강화회의에서 일본으로부터의 해방과 하나의 독립국가로서의 한국의 재건을 위한 한국 국민과 한국의 요구를 선포한다고 했다. 그리고 내용에는 '한국의 요구'를 비롯한 27개항의 소주제와 부록으로 병합조약과 한국인의 음모사건을 싣고 있다.

    4 파리한국대표단이 파리강화회의에 보낸 독립청원서(Petition)(1919.4.)

    1919년 4월 파리한국대표단이 파리강화회의에 보내기 위해 작성한 독립청원서(Petition)다. 본 문건은 일본으로부터의 해방과 한국의 독립국가 재건을 위한 한국 국민과 한국의 청원서로 독립된 한국을 일본이 침략해 강제병합시킨 것과 한국 독립을 위한 한국인의 혁명, 즉 3.1운동의 진상과 여기에 대한 일본의 탄압상을 밝혀 파리강화회의에서 한국문제를 다루어 줄 것을 요구했다. 서명자 김규식은 신한청년당 대표, 대한인국민회 대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표로 서명했다.

    5 김규식이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에 보고한 파리강화회의 한국대표단의 재정결산서(1919.1.3.~1919.8.7.)

    상해 신한청년당에서 파리강화회의 한국대표로 파견된 김규식이 1919년 1월 3일부터 8월 7일까지 펼친 파리 한국대표단의 외교활동 경비를 총정리해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에 보낸 결산서다. 1919년 8월 7일까지 총수입 115,236프랑, 총지출 88,854.82프랑이고 총잔액은 26,401.18프랑은 김규식이 황기환에게 인계하였다.

    6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가 이승만을 파리강화회의 대표로 임명하는 임명장(1919.1.17.)

    1919년 1월 17일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총회장 안창호(C. H. Ahn)와 서기 백일규(E. K. Paik)가 이승만(李承晩)을 파리강화회의에 파송할 국민회 전권대표로 임명하는 임명장이다. 국민회 집행부 임원들은 미주한인 2,500명, 멕시코한인 1,000명, 하와이한인 5,000명, 만주와 시베리아한인 25,000명 등 미주와 원동지역의 한인들을 대표하여 정당하고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이승만을 파리강화회의에 파송할 국민회 전권대료로 선임하였음을 공포하였다. 아울러 국민회는 이승만에게 국민회를 대표하여 파리강화회의에서 활동하는데 있어 전권을 승인했음을 인정해 주었다. 이 임명장은 원본이 아니라 사본이다.

    7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가 김규식을 파리강화회의 한국대표로 임명한다는 공포문(영문)(1919.3.25.)

    1919년 3월 25일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총회장 안창호(安昌浩, Chang Ho Ahn)와 서기 백일규(白一圭, Earl K. Paik)가 김규식(金奎植, Kyusic Kimm)을 파리강화회의 한국대표로 임명한다는 공포문이다.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는 만주와 시베리아의 150만 한인, 미국의 2천 한인, 멕시코 1천 한인, 하와이 5천 한인들을 대표하며, 한국내 2천만 한인들을 대표하는 300만의 단원을 지닌 조선독립단(Korean National Indenpence Union)과 연대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어 중앙총회는 1919년 3월 2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Hewes 빌딩 419호에서 회의를 개최하고, 일본이 1904년 한국의 독립보전을 약속한 조약을 어기고 한국의 독립을 침해하였고, 국제법을 어기고 한국을 무력으로 대하고 있으며, 일본이 한국을 강압적으로 지배하는 동안 한국인의 지적, 정치적, 경제적, 상업적 발전을 심대하게 훼손하였음을 비판하고, 이러한 문제를 국제무대에 알리고 독립을 청원하기 위해 김규식을 대한인국민회의 파리강화회의 전권대표로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8 중앙총회장 안창호가 파리강화회의 대표 정한경에게 보낸 공문(1919.2.4.)

    1919년 2월 4일 중앙총회장 안창호가 파리강화회의 대표자 정한경에게 보낸 공문이다.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장 안창호는 정한경의 1월 26일자 보고를 받고 학생 입국 청원이 성공하게 되면 우리 동포의 무한한 행복이 될 것이니 힘써 진행할 것과 뉴욕타임즈에 게재된 기사는 백일규가 번역하여 신한민보에 게재할 것임을 알렸다.

    9 파리 한국대표단(김규식)이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에 보낸 전보(1919.3.24.)

    1919년 3월 24일 파리 한국대표단(김규식)이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에 보낸 전보다. 파리 한국대표단(대표 김규식)은 이승만, 민찬호, 정한경이 어디 있는지를 묻고 김규식의 주소로 신임장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10 파리 한국대표단 대표 김규식(Chin Chung Wen)이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에 보낸 전보(1919.3.30.)

    1919년 3월 30일 파리 한국대표단 대표 김규식(Chin Chung Wen)이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에 보낸 전보다. 김규식은 신임장에 쓸 본인 이름의 편지에 프랑스어로 사용할 것과 가능한 자금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1234
    1 / 4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