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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인국민회

    대한인국민회 [재미한족연합위원회] [회의록] 에 대한 전체 13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1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 회의록 1회 ~ 30회(1941.5.-1942.6.)

    1941년 5월 18일 제1회 회의부터 1942년 6월 6일 제30회 회의까지 총 30회분의 재미한족연합위원회(在美韓族聯合委員會) 집행부 회의록이다. 이 기관은 1941년 4월 하와이 해외한족대회 결과로 설립된 미주한인사회 최대의 연합독립운동기관으로서 재미한인사회의 안녕과 복지를 도모하면서 독립전선의 통일, 대한민국임시정부 봉대, 군사 및 외교운동의 전개, 미국 국방공작의 후원, 재정의 수합 등 조국의 독립 실행을 위해 조직되었다. 이 단체는 하와이의 의사부(議事部)와 북미의 집행부(執行部)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이 회의록은 집행부의 초기 운영상황을 잘 보여준다. 집행부 출범 당시의 회의 참석 임원은 위원장(회장) 김호(金乎), 재무 송종익(宋鍾翊), 서기 이경선(李慶善), 위원 한시대(韓始大), 현정렴(玄正濂), 김병연(金秉연)이며, 집행부 회의는 로스앤젤레스 국민회관에서 열렸고, 시간은 오후 2시부터 8시 사이에 열렸으며, 회의록에는 회의 개최 일시, 출석과 흠석(欠席), 결정사항 등을 기술하였고, 회의록은 국한문으로 작성되었고 회의록 상단에 보충해 넣거나 타이핑된 영문문건을 첨부하기도 하였다. 회의는 제27회를 제외하고 제1-30회까지 김호가 위원장(회장)으로서 회의를 주재하였다. 서기는 제1회부터 제22회까지 이경선(2차례), 신두식(申斗湜, 18차례), 임병직(林炳稷, 임시서기 2차례) 등이, 제23-30회는 홍언(洪焉)이 맡았다.

    2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제2차 전체위원회의 1일차 및 토의사항(1943.4)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제2차 전체위원회의 1일차 및 토의사항이다. 재미한족연합위원회가 제2차 전체위원회 첫날인 1943년 4월 28일 회의 상황을 기록한 문건이다. 오후 3시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대한인국민회총회관에서 한시대의 사회로 개회한 제2차 전체위원회는 위원 대표들의 결석으로 인해 일단 정회하고 오후 8시 흥사단에서 회의를 재개하였다. 8시에 속개한 회의에서 8가지 토의 안건이 제시되었고 주미외교위원부 건으로는 워싱턴DC에 있는 이승만과 교섭한 이원순, 김원용의 보고회를 가졌다.

    3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제2차 전체위원회 회의록 초고(1943.5.3.~5.4.)

    1943년 5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제2차 전체위원회 회의록 초고다. 재미한족연합위원회는 제2차 전체위원회 일정 중 1943년 5월 4일 오후 8시 회의에서 연구부 설치와 중경특파 등의 회의 내용을 기록했다. 이날 회의에는 김용성, 한시대, 박원걸, 김호, 이원순, 김원용, 김병연 등이 참가했고, 작년 대회 때부터 제기된 연구부의 설치 여부를 토의해 가결시켰다. 그 외 중경특파건과 민중대회건, 이승만의 주미외교위원부건 등을 갖고 회의했다.

    4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제2차 전체위원회 회의록(1943.4.30.~5.7.)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제2차 전체위원회 회의 중 3일차인 1943년 4월 30일부터 8일차인 5월 7일까지의 회의 내용을 기록한 회의록이다. 회의 안건은 주미외교위원부 위원장에 대한 소환책과 융화책을 둘러싼 논의에서 융화책을 강구하기로 했고, 그 외 중경특파와 그 사명에 대한 논의, 연구부 설치, 민중대회 처리, 재미한족연합회 규약 개정 등을 논의했다.

    5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제3차 전체위원회 '일기요목(日記要目)' (1944.4.8)

    1944년 4월 8일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제3차 전체위원회 '일기요목'이다. 재미한족연합위원회가 1944년 4월 2일부터 8일까지 개최한 제3차 전체위원회의 내용을 일자별로 요약해 정리한 것이다. 4월 2일 오후 2시에 개회한 전체위원회는 주요 안건으로 'in due course'의 문제를 임정 주석 김구의 방침에 따르기로 했고, 논란이 많았던 워싱턴사무소의 설치를 가결했다.

    6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제3차 전체위원회 회의록 초록(1944.4.8)

    1944년 4월 2일부터 8일까지 재미한족연합위원회가 주최한 제3차 전체위원회의 내용을 정리한 초록이다. 개회 첫날 대회 의장 한시대와 서기 홍언과 이창희가 선임된 것을 시작으로 학생단체의 참가문제, 25표의 영향력을 가진 하와이 대표 김원용의 표결권문제, 군사운동 자금 모금문제 등 개인별 발언 내용들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7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제3차 전체위원회 회의록(1944.4.)

    1944년 4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제3차 전체위원회 회의록이다.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제3차 전체위원회(1944.4.2-8)의 회의 내용을 조항별로 세세하게 작성한 것으로, 그 안에는 여러 다른 회의기록들이 섞여 있고 전체를 정리한 최종의 결의안도 들어 있다. 제3차 전체위원회에서 나온 결의안은 각 분야별로 11개의 조항으로 정리되었다.

    8 제50회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 회의록(1943.1.8.)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 부위원장 김병연의 사회로 1943년 1월 8일 집행부 회의를 개최한 후 의결한 것을 기록한 회의록이다. 회의 참석자는 박원걸, 김용중, 김성락, 송종익, 이성례, 송철, 김용성, 김병연 등 10인이고 3개항(장세운 사임청원, 박상엽과 영문기자건 교섭, 3.1절 기념식)을 의결했다.

    9 재미한족연위원회 집행부 회의록(1942.10.11.)

    1942년 10월 11일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 회의록이다.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 위원장 김호 주재로 열린 회의에 참석한 사람은 김병연, 한시대, 송종익, 송헌주, 김용중, 송철, 김용성, 김종림 등 9인이다. 김호가 이승만과 주미외교위원부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전경무와 함께 워싱턴으로 떠나기 직전 열린 회의여서 새 외교위원 김호의 취임건, 주미외교위원부와 한미협회와의 관계 설정, 주미외교위원부의 통신 발행문제 등 주미외교위원부와 관련된 논의에 집중하였다.

    10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제3차 전체위원회 희의 초록(1944.4.)

    1944년 4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제3차 전체위원회 회의 초록이다.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가 주관한 제3차 전체위원회(1944.4.2-8) 가운데 4월 4일의 회의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중경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더욱 강화할 것과 9개 준승의 탈피로 한국광복군이 군사자주권을 회복하여 군사운동에 촉진할 것 등을 논의하였다. 중경 임시정부에 재미 한인의 의견을 담은 문구를 기초할 위원으로 전경무와 박상엽을 선정하였고, 그 외 독립금에 대한 재정예산, 미국과 연합국을 위한 승전 협력, 카이로선언에 대한 입장, 워싱턴사무소 설치건 등을 집중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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