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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인국민회

    대한인국민회 에 대한 전체 4117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11 김구의 통고문이 실린 주미외교위원부 통신 제122호(1945.11.27.)

    1945년 11월 27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주미외교위원부가 1945년 9월 3일 김구(金九) 주석이 중국 중경에서 발표한 "국내 국외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의 통고문을 그대로 베껴 주미외교위원부 통신 제122호로 미주와 하와이 동포들에게 제공한 것이다. 이 통고문은 임시정부가 귀국에 앞서 현재의 시기가 복국(復國)과 건국(建國)의 중간시기라는 판단하에 당면정책 14가지를 발표한 것이다. 그 당면정책은 임시정부의 조속한 환국, 연합국과 협력해 세계평화 실현, 연합국과 우호협정 체결, 한국 주둔 동맹군에 적극 협력, 국제회의에서 한국의 발언권 확대, 임시정부 수립을 위해 민족 영수 소집, 국내 임시정부 수립시 중경임정의 임무 양도, 국내 임시정부는 독립국가, 민주정부, 균등사회 지향, 임시정부 수립 전까지 중경임정이 치안과 대외교섭 담당, 동포의 안전귀환과 국내외 동포의 구제사업 신속 추진, 구법령 폐기와 신법령 선포, 왜적의 재산 몰수, 일제에 강제 편입된 군인의 국군 편입, 독립운동 방해자와 매국역적의 공개 처단 등을 약속하였다.

    12 대한독립운동역사와 대한민국독립운동의 참상(1919.4.12.)

    1919년 4월 12일 재동경조선독립청년단 대표 송계벽[宋繼碧: 송계백(宋繼白)의 오류)]과 고지영(高志英)이 ‘대한독립운동역사’와 ‘대한국독립운동의 참상’이란 제목으로 재외 동포들에게 보낸 문건이다. 두 사람은 2월 8일과 3월 1일에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이 한국의 독립문제를 전 세계로 널리 알림과 동시에 왜정부[일본정부]로 하여금 한국의 식민통치에 큰 타격을 가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재외 동포들에게 파리강화회의에 대한 외교활동을 비롯한 각종 외교를 통해 더욱 선전활동에 매진해 줄 것과 독립만세운동으로 왜정부로부터 당한 각종 만행의 참상을 널리 알려줄 것을 당부하였다.

    13 조선민족독립회의 진술서(1919.5.)

    1919년 5월 경성[서울]에 있는 조선민족독립회 본부가 3.1 독립운동으로 일어난 조선 민족의 독립 염원을 전 세계에 있는 유지들에게 알리기 위해 작성한 진술서다. 진술서에는 조선과 일본의 역사적인 관계를 논한 뒤 일본의 조선 침략과 지배에 대한 부당성과 조선 독립의 이유와 그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고 정의를 표방하는 세계 만국에게 이러한 조선 민족의 원군이 되어 줄 것을 호소하였다.

    14 한국적십자사 모의문(1919)

    1919년 국내외 동포들에게 적십자의 자애(慈愛)와 인도의 정신을 잘 헤아려 한국적십자사(대한적십자회)의 고귀한 뜻이 잘 펼쳐질 수 있도록 협조와 지원을 요청하는 글이다. 병원에서 부상자의 치료조차 원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우리의 힘으로 적십자사의 본의를 일으켜 세워나갈 것을 호소하였다.

    15 대한민국적십자회 제1회 의회 회록 초등(抄謄)(1919.11.15.)

    1919년 8월 29일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부령 제62호로 설립 인가된 대한적십자회가 동년 11월 15일 상하이에서 제1회 정기총회를 개최한 후 부회장 안정근의 이름으로 회의 결과를 간략히 정리한 문건이다. 정기총회에서 의결된 사업방침은 임시의원 설립, 간호원 양성과 구호대 편성, 의약부 설립이다. 새로 보결된 직원으로는 부회장 안정근, 이사장 서병호, 감사 옥성빈·김태연, 감사 김병조이며 그 외 명예총재 서재필, 고문 이승만·이동휘·안창호·문창범을 비롯해 만국적십자연맹회 파견 대표로 이관용이 선임되었다.

    16 대한민국적십자회 선언서(1919.8.)

    1919년 8월 일본의 강제로 1909년 7월 23일 대한국적십자사가 대일본국적십자와 합병 형식으로 폐지된 치욕을 당한 이후 일본과 단절하고 새로 대한민국적십자회를 조직함을 전세계에 알린 선언서다. 선언서 안에는 본연의 임무 수행하지 않는 일본적십자와의 단절, 국제적십자연맹회 가입, 독립전쟁으로 생명과 신체를 희생하는 우리 국민들을 구호하는 제일의 급선무에 성심성력을 다할 것이라는 결의사항 등을 담았다. 선언서 말미에는 대한민국적십사회에 참가한 발기인 78명의 명단이 적혀 있고 주요 인물로는 안창호·이희경·안정근·김성겸· 여운형·김창세·김순애·이광수·장건상·손정도·원세훈·옥성빈·서병호·정인과·이화숙·조완구·손두환·김구·강태동 등이다.

    17 대한적십자 회원수 메모(1919.9.~1920.4.)

    1919년 9월부터 1920년 4월까지 대한적십자 회원수를 조사한 메모다. 조사된 총 회원수는 한국인 545명, 서양인 59명, 중국인 16명 등 총 620명이다. 대한적십자의 공식 문서로 작성된 메모지에는 본부 직원, 상의부(常議部), 명예총재, 고문부에 등재된 주요 인물들이 총 망라해 인쇄되어 있어 대한적십자회의 당시 면모를 잘 드러낸다.

    18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독립선언의 포고(1919.3.9.)

    1919년 3월 9일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가 총회장 안창호의 이름으로 3.1 독립선언[3.1운동]을 적극 지지한다는 것을 널리 알린 문건이다. 대한 민족 전체가 단결한 조선독립국민단이 1919년 3월 1일 공포한 독립 선언과 공약 3장은 대한인국민회가 선언하고 결의한 것과 다를 바 없고, 조선독립국민단 대표 33인은 대한인국민회를 대표하는 대표라는 것을 공포하여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는 3.1 독립선언을 적극 찬동하며 지지하였다.

    19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의 대한독립선언서 배포 공문(1919.5.5.)

    1919년 5월 5일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가 3.1운동 때 발표한 대한독립선언서는 우리 민족의 유일무이한 신성한 선언서로 간주해 그 복사본을 배포한다는 공문이다. 대한인국민회중앙총회는 새로 인쇄해 배포하는 독립선언서가 향후 많은 한인 동포들에게 매우 소중하고 영원한 기념품으로 간직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20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재정결산서 (1919.12.16.~1920.4.30.)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가 제1기(1919.12.16.〜1920.3.31)와 제2기(1920.4.1.〜4.30)에 걸쳐 보고한 재정결산서이다. 결산 내용을 보면 제1기 총수입은 23,754.71달러, 총지출은 20,746.67달러, 총잔액은 2,567.35달러이고, 제2기 총수입은 3,923.88달러, 총지출은 3,578.34달러, 총잔액 345.54달러이다. 수입 내역을 보면 애국금, 공채표, 인구세, 독립의연금, 구휼금, 21례금 등이고 지출은 임시정부, 구미위원부, 교육비, 외교비, 사무실 인건비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