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글자크기조절

콘텐츠

선택

선택

    신문자료

    국민보 : 1913-08-13 ~ 1963-12-26
    발행일자검색

    국민보 : 1913 년 08 월 13 일 기사 56 건

    번호 신문명 기사제목 기사내용
    국민보 진강(전장)에 대전

    진강(전장) 수성군은 북군에게 크게 공격을 받아 며칠 동안 휴전조약을 체결하였더니 남군은 그 조약을 배반하고 불의에 북군을 엄습하여 북군을 이백 명을 상하고 또 풍범선 두 척을 포획.

    국민보 廣告

    본인은 부나가파호에서 캠프일을 주장하다가 금월 十二日 선편에 배재원 씨와 동행하여 본국으로 들어가옵는데 회환할 기약은 대개 四, 五삭 후가 될듯 하옵고 그동안 캠프에 모든 일은 유해종 씨로 주관케 하였사오니 본인으로 더불어 재정상과 통신상에 모든 거래가 있는 첨위 동포께서는 유해종 씨에게로 즉접 교섭하시옵.

    국민보 平海旅館廣告

    경계자 본인이 하와이 힐로항에 여관을 신설하온 바 숙식범절이 정결할 뿐더러 혹 물품거래와 윤선 기차에 모두 편리케 주선하오며 또 각국 손님네를 잘 영접하오니 보세군자는 육속내림하심을 바라나이다.

    번지는 공마당 맞은편 三층집

    우함 五二○.

    국민보 광고

    위생에 유익한 아이스크림

    의복에 부속한 잡종물품들

    권연초, 여송연 각색담배와

    이외에 여러가지가 구비하오니 첨동포는 한 번 시험하십시오.

    호텔스트리트 청인 연극장에서 강변쪽으로 향하여 그 중간 一四八호.

    국민보 廣告

    경상도 경주군 서면 방안동에서 살던 이원일이 지금 어느 곳에서 유하는지 아시는 동포는 본인에게로 기별하여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국민보 조선 사나이 하나를 다시 찾을 듯 김학준이 국어를 배우고자

    본래 우리 동포 김영순의 아들로 부모된 자가 등한이 버림으로 인하여 처음에 토인종의 집에 가서 기르고 다시 백인의 구세군 교회의 보호를 받고있는 김학준은 나이 이제 열아홉이나 조선말을 한 마디도 모르는 고로 매양 조선 사람을 만나면 피차에 다른 나라 사람보다 더 설어하므로 본항에 있는 동포들이 섭섭히 여기는 자가 많더니 본월 九일 오후에 김학준이 본보 사장을 찾아보고 슬픈 기색으로 말하기를 나는 본래 조선 아이로 어찌하다가 국어를 배우지 못하고 외국말만 알아 우리 동포와 통정을 못하니 이는 이 아이의 지극히 슬퍼하는 바이라. 아이가 이제 거의 二十 세가 되였음에 자기 나라를 위하여서도 능히 일분의 의무를 담당할 터인데 나는 말을 모르고 본국 풍속을 모르매 나의 충성을 나의 나라에 향하여 다하지 못하고 다만 남의 나라를 위하여 성명(性命)을 살게 되였으니 나를 위하여 길을 열어주어 미국으로 가게 하여주면 캘리포니아 남방 로스앤젤레스에 가서 한인 학생에게 국어를 배우며 또한 성서학원에 가서 성서를 공부할 터인데 이 두 가지는 나의 지극히 한하고 지극히 원하는 바이라. 대개 선비와 차비는 그동안 벌어놓았고 또 학교 정도도 二년 전에 소학교를 마쳤노라 하는 고로 본보 사장은 기쁜 마음으로 환영하여 우선 자기의 원하는 대로 주선하여 주기를 허락하고 또한 부모국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필요를 말하였더라.

    김학준의 부친은 곧 김영순이니 현금 마위(마우이)에 있다 하며 그동안 다시 장가들어 실가를 다시 이루었는데 학준은 의연히 버려두고 거두지 않으며 또 그 아내가 데리고 들어온 딸 둘은 시방 본항 왜슬리홈에 있다 하더라.

    국민보 본국으로 온 목사의 언론

    본국서 삼년 동안을 전도하다가 미국으로 들어가는 장로교 목사 우●닉이라 하는 이는 본월 팔일 싸이베리아(시베리아) 선편에 호항(호놀룰루)에 도착하여 신문기자들을 대하여 조선현상을 진술하는데 일인이 한인에게 악형을 행하는 것은 천고역사에 일찍이 없는 일이라 하며 만일 이것을 증거하려면 이번 윤치호 사건에 잡혔던 자를 누구든지 검사하여 보면 알리라 하여 본항 영문보에 기재하였다.

    국민보 김호연 씨 형제의 미국 유학

    하와이 힐로에서 금년에 중학교를 마친 김호연 씨는 그 아우 호식을 데리고 미국 네브라스카로 들어가 공부하기를 위하여 본월 십삼일 윌헬미나 선편에 발정한다더라.

    국민보 명예를 요구하면 욕이 돌아오는 법

    오아후 어느 지방 통신을 의지하여 보건대 본 지방회 임원 중 몇 사람은 향일 신한국보 지방회록에 자기들의 성명이 누락이 되였다고 총회와 신문사를 향하여 못할 말을 많이 하며 또 순량한 동포를 충동하여 반심을 품게 한다더라.

    국민보 공화국 안에 공화국

    갈라파우 지방 유희학 씨는 근자에 경내 각 지방을 순행하며 공화국 안에 공화국이라는 문제로 도처에 연설할 때에 대 조선국가의 사천년 역사와 조선 전도의 운명이 국민회에 직접 관계가 있는 것을 절절히 설명하므로 갈라파우 일경은 온전히 새 정신과 새 현상을 드러낸다고 본지방 송원혁 씨의 보고가 있더라.

    1 / 6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