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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한선교사보고문건

    재한선교사보고문건에 대한 전체 535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211 맥켄지에게 보낸 편지

    발신일: 1920-01-03수신주소: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 웨이튼(Weighton) 빌딩한국 정보국안녕하십니까,F. A. 맥켄지(F. A. McKenzie) 선생이 쓰신 ‘자유를 위한 한국의 투쟁(Korea’s Fight for Freedom)’ 사본을 보내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저 또한 한국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이 여러 가지 문제에서 해방되기를 바라고 기도드리고 있는 사람으로서 주의 깊게 읽을 것입니다.한국인들은 분명 한국이 겪고 있는 심각한 문제를 참아 내는 데 있어서 대단한 정신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새 날이 밝기를 바라며 기도드립니다.재배(再拜)AWH-AS

    212 플로이드 해밀턴이 보낸 편지

    발신일: 1920-02-15발신주소: 한국 평양대한민국 전역의 선교사들과 토착 교회들은 모두 한국에서 부흥운동이 일어나 교회 전체를 뒤흔들고 비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집회가 열리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런 기도에 답변이 돌아오고 있는 것 같은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러 방향에서 교회의 그런 자각과 새로운 신자들의 집회 소식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 스왈른(Swallen) 박사는 기독교인들이 오랫동안 들어가려고 노력해 오던 세 마을에서 상당수의 사람들이 믿음을 갖기로 하고 가르쳐 줄 사람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는 소식을 받았습니다. 지난 일요일 이곳 평양의 중앙교회에서는 집회가 끝나 갈 즈음 10여 명의 사람들이 와서 새로운 신자로 등록을 했습니다. 홀드크로프트(Holdcroft) 씨는 지난 주 자기가 맡은 교구 가운데 자신이 직접 방문한 적이 없는 마을에서 12명의 사람들이 신자가 되기로 했다는 소식을 받았는데, 그 사람들은 믿음에 대해 더 배울 수 있도록 두 달간 자기들 마을에 머물면서 가르쳐 줄 사람을 보내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왔습니다. 지난 주만 해도 같은 교구에서 비슷한 요청을 해온 데가 두 군데나 되었습니다. 블레어(Blair) 씨는 자기가 맡은 교구 가운데 기독교인들이 학습반을 운영하고 있는 곳에서 150명의 새 신자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제 신께서 정말 우리의 기도에 응답을 보내 주기 시작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하지만 이런 고무적인 보고와 함께 우리를 슬프게 하고 분노를 일으키게 한 소식도 있었습니다. 어제 동해안에서 선교 활동을 펴고 있는 블레어(Blair) 씨로부터 전보가 도착했는데, 그곳 교구의 정부 관리들이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고 활동을 방해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저께는 블레어(Blair) 씨 교구의 교회에서 여러 명의 여성 교인들이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집회를 열었다는 죄로 체포되었다는 전보가 왔습니다. 그 교회의 목사님은 어제 평양에 와서, 그곳 경찰이 자기를 불러들여서는 다시는 병자들을 위한 기도를 하지 않겠다는 서류에 서명을 하라고 명령을 했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그는 명령에 거부하고 경찰에게 자신은 평생동안 병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지금 독립운동에 연루되었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감옥에서 풀려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감옥 내부의 사정 이야기를 들어보면 거의 믿기가 어려울 정도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들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증명해 줍니다. 이런 끔찍한 사정은 소위 개혁이 시행된 지 수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겨울은 영하 10도까지 내려가는 매우 추운 날씨였습니다. 그러나 가장 추운 날씨에도 감옥에서는 거의 난방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거의’라고 한 것은, 강당에 스토브 한두 개를 두어서 겨우 얼지만 않을 정도로 난방을 했던 감옥이 몇 군데는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인 관리들도 인정하고 있는 바이지만 대부분의 감옥에서는 전혀 불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감옥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얼어죽었다고 합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지난 주에는 영하 17도까지 내려간 날이 여러 날 있었습니다. 모펫(Moffett) 씨가 하루나 이틀 전에 감옥에서 풀려 나온 한 남자에게서 직접 들은 바에 따르면 감옥에서 그 남자 옆에서 자던 남자가 밤새 얼어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죽은 사람이 얼마나 더 많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손이나 발이 언 사람이 많다는 것은 저희도 증명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감옥에서 나왔을 때 그들의 언 손과 발을 저희가 직접 봤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로 일본인들이 특히 잔인하다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주장에도 일리는 있지만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문화 수준에 대해 선전하고 개혁을 했다고 자랑하는 것을 생각하면 흥미롭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몇 가지 알아야 할 사실이 더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은 영하 17도까지 내려가는 날씨였고, 게다가 바람까지 심하게 불어서 밖에서 걸어다니기가 거의 힘들 정도였습니다. 제가 밖에 직접 나가 보았기 때문에 얼마나 춥고 바람이 심했는지 증명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일본인들은 그날 감옥에서 풀려나게 되어 있는 한 여성을 끌고 나와 맨발로 눈을 헤치고 한쪽 감옥에서 다른 쪽 감옥까지 반 마일을 걷게 했습니다. 그 여자는 그리고 나서야 석방되었습니다. 감옥에서 사람들은 모두 매일 밤마다 옷을 한쪽 건물에 다 벗어 두고는 벌거벗은 채 실외로 마당을 가로질러서 30미터 정도 떨어진 취침용 건물로 갑니다. 거기에서 차가운 잠옷을 입고 난방도 되지 않는 곳에서 이불도 제대로 덮지 못한 채 잠을 자는 것입니다. 아침이면 다시 취침용 건물에다 잠옷을 벗어 두고 벌거벗은 채로 바깥 마당을 다시 가로질러 건너편 건물로 가서 밤새 차가운 데다 벗어 두었던 주간용 옷으로 갈아입는 것입니다. 남자들뿐 아니라 여자들도 이렇게 해야 하며, 날씨가 얼마나 춥든 상관없이 매일 겪어야 하는 일이라는 점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식사 시간에는 죄수들이 하는 일에 따라 사람들을 여덟 그룹으로 나눈다고 합니다. 첫번째 그룹이 가장 많은 음식을 받는데, 그래 봐야 보통 사람들이 한 끼에 섭취해야 할만큼의 양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 그룹은 그보다 적은 양을 받고, 세 번째 그룹은 더 적은 양을, 이런 식으로 해서 여덟 번째 그룹이 받는 음식은 전체 가운데 제일 적은 양입니다. 여자들은 모두 일곱 번째 그룹에 소속됩니다. 네 번째 그룹에 있었던 한 소년이 제게 말해 준 바에 따르면 그나마도 그는 어머니가 밖에서 따로 음식을 들여보내 주고 있었는데도 항상 배가 고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덟 번째 그룹에 속해 있던 가련한 사람들은 얼마나 음식이 모자라서 고생을 했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죄수들이 지켜야 하는 감옥 규칙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고문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한국식 풍습이 아닌 일본식 풍습에 맞춰 바닥에 앉게 하는 것입니다. 한국식 풍습은 다리를 꼬고 앉습니다. 헌데 일본식 풍습은 무릎을 꿇고 앉습니다. 익숙해져 있지 않은 사람에게 이런 자세로 앉게 한다고 해서 고문이라고는 할 수 없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한다면 직접 30분만 그렇게 앉아 보시면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인들도 우리들이나 마찬가지로 이런 자세에 전혀 익숙하지 않지만 몇 시간을 계속 그렇게 앉아 있어야만 합니다.일본법에 따르면 사람은 무죄라는 것이 증명될 때까지는 유죄로 간주합니다. 따라서 일본법대로 하면 누구라도 아무 증거가 없거나 빈약한 증거만 가지고도 남을 고발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의심을 받는 사람은 체포되어 ‘예비 조사’라는 것을 받게 됩니다. 피고는 변호사의 조언을 받을 수도 없고, 자신을 위한 증거를 제시할 수도 없습니다. 이런 예비 조사 상태는 몇 주 심지어 몇 개월이나 계속될 수도 있으며, 그 동안 피고는 유죄이건 무죄이건 상관없이 외부 세계와 연락도 취할 수 없습니다. 즉결 재판소에서는 이 예비 조사 결과를 조서로 꾸며서 피고를 판사에게 데리고 가면, 제출된 조서를 증거로 해서 피고에게 판결이 내려지는데, 피고는 자신을 위한 아무 증거도 제출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어떤 체계로 처리되는지 사례를 설명해 보겠습니다.약 1개월 전 우리 선교사들을 돕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 체포되어서 즉결 재판소로 끌려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그때부터 예비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 사람의 아버지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그 사람과 이야기조차 나눌 수 없었습니다. 감옥에서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과거에는 고문으로 자백을 받아 냈습니다. 일본인들은 고문이 사라졌다고 주장하지만, 정말 그런지 아닌지를 직접 조사해 보거나 알아볼 수 있게 허가를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냥 그들이 말하는 대로 믿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전에 죄수들을 고문하고 있었던 사람이 지금도 그대로 ‘예비 조사’를 하고 있음은 물론입니다.하지만 한국인들은 감옥에서 이런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나와서 독립을 위한 투쟁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전보다 더 투철하게 다질 뿐입니다.글을 쓰다 보니 빼놓아선 안 될 것 같은 새로운 사실들이 생각납니다. 위에서 저는 일본인들이 새 정권이 들어선 이후로 고문을 폐지했다고 주장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바로 이런 말을 쓰는 지금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일이 있습니다.아파서 정신을 잃고 병원에 있던 한 남자가 체포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 상태 그대로 병원에서 끌려가 차가운 방에 수감되었다가 정신이 돌아올 때까지 따뜻한 방에 수감되었다가 조사를 받으러 재판소로 갔습니다. 독립운동에 연루된 다른 사람들에 대해 말하라는 요구를 그가 거부하자, 그는 다시 10일 동안 차가운 방에 수감되었습니다. 그 후 거의 죽기 직전에 풀려났지만 그는 결국 풀려난 다음날 죽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죽기 전에 그는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가 풀려나기 바로 전 날 한 신학교 학생이 자기가 있던 감방에 들어왔는데 거의 죽어 가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신학교 학생은 온갖 종류의 고문을 당했던 것입니다. 여러 가지 고문 가운데에서도 그가 당한 고문 한 가지를 말해 보겠습니다. 경찰들은 그의 머리를 뒤로 젖혀서 콧구멍에 세 주전자의 물을 들이부었다고 합니다. 새 정권이 들어서서 개혁이 이루어지기 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바로 1920년 2월 1일부터 2주일 동안 일어난 것임에 유의하여 생각해 주십시오. 그러고도 일본인들은 고문이 종식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 감옥에서 풀려난 또 다른 사람은, 네 사람이 얼어죽었다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한 한국인 친구가 제게 오늘 이야기해 준 것인데, 감옥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발에 동상이 걸렸다고 합니다. 가장 훌륭하고 정신적으로 신심이 두터운 우리 사제들 가운데 한 사람인 장로교 의장님도 감옥에서 발에 동상이 걸려서 고생한 나머지 그 안에서 죽음을 맞이할 것 같습니다. 이분은 일본 헌병의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의 장례식을 주재하던 중 거기 참석한 사람들이 “만세!”를 외쳤다는 이유로 2년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입니다. 제가 지금 이런 이야기를 전하는 이유는, 일본인들은 미국 여론으로 하여금 자기들이 한국에서의 문제를 개선했다고 여기게 하기 위해 지금도 계속 미국 신문에 선전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께서 영향력을 이용하셔서 이 사실을 신문과 단체들에 가능한 한 널리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원하신다면 은밀히 제 이름을 이용하셔도 좋습니다만 공표는 되지 않도록 신경 써 주시기 바랍니다.재배(再拜)주한 장로교 선교회플로이드 해밀턴(Floyd Hamilton)

    213 서재필이 만세지 편집자에게 보낸 편지

    발신일: 1920-01-06발신자: 서재필수신자: ‘만세(Mansei)’ 지 편집자께수신주소: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 웨이트만(Weightman) 빌딩 825저는 지금 귀사의 간행물을 보고 있습니다. ‘한국의 어린 순교자들(Little Marthus of Korea)’이라는 제목의 간행물입니다. 저희가 이 간행물 내용 가운데 일부를 발췌해서 홍보 활동에 사용한다면 장로교 해외 선교회(Presbyterian Board of Foreign Missions) 홍보부에 이의가 있으신지를 여쭙고자 합니다.저는 매달 약 35종의 종교지와 몇몇 비종교지에 저희 포교 구역에서 받은 편지와 보고서 발췌본을 보냅니다. 괜찮으시다면 귀사의 간행물에 난 두세 가지 글을 인쇄해서 이런 식으로 이용하고 싶습니다. 물론 출처는 밝힐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우선 제가 그렇게 해도 이의가 없으신지 확실히 허락을 받고 싶습니다.물론 저희 선교회에서 보수를 지불하는 것은 아니고|| 단순히 홍보에만 사용할 것입니다. 빠른 답변을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재배(再拜)홍보부

    214 맥밀란에게 보낸 편지

    발신일: 1919-01-07발신자: 한국 정보국(Bureau of Information for the Republic of Korea)발신주소: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 체스넛 스트리트(Chestnut Street) 825 웨이트만(Weightman) 빌딩 825수신일: 1920-01-081920년 1월 8일 수신수신자: 장로교 해외 선교회(Presbyterian Foreign Mission Board) 홍보부발신자: 서재필(Philip Jaisohn)수신자: J. 맥밀란(J. McMillan) 귀하수신주소: 뉴욕 주 뉴욕장로교 해외 선교회(Presbyterian Foreign Mission Board)홍보부J. 맥밀란(J. McMillan) 양께||저희의 소책자 ‘한국의 어린 순교자들(Little Marthus of Korea)’을 발췌해 홍보 업무에 사용하도록 허락해 달라는 내용으로 1월 6일 보내 주신 편지는 잘 받았습니다. 그 소책자에 포함된 기사나 내용은 얼마든지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그 책자는 미국 국민들이 한국인들|| 특히 한국의 어린이들이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를 알게 하려는 목적으로 간행된 것입니다. 귀하께서 이 이야기를 더 홍보해 주실수록 저희로서는 더 기쁘게 생각할 것입니다.귀하의 업무에 도움이 되기 위해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기꺼이 도와 드리겠습니다.재배(再拜)서재필(Philip Jaisohn)

    215 재판 없이 살해되는 한국인들

    일본 침략자들이 영사들이 제공한 정보를 바탕으로 토착민들을 처형했다.주니어스 B. 우드(Junius B. Wood)『뉴욕 글로브』와 『시카고 데일리 뉴스』에서 온 전보(저작, 1920년 『시카고 데일리』 뉴스)12월 16일, 일본, 도쿄 - 일본군 토벌대에 의해 처형된 한국인들이 재판 없이 그리고 한국 독립운동에 연루되었다는 증거 없이 살해되었는지에 대해, 만주 간도에서 일본군과 선교 당국 간에는 큰 차이가 없다. 군은 민간 혹은 군사 법정에서 재판이 없었고, 그것이 사람들을 죽이고 마을을 파괴하라고 지시하는, 그 지역 일본 영사로부터 사전에 확보한 표명에 따라 집행되었다고 시인한다.일본인들은 황급히 취한 그런 방법들 때문에 실수가 있었을 개연성에 유감의 뜻을 표한다. 선교사들은 희생자들이 혁명적인 운동에 연루되었음을 보여주는 일본 당국의 정보가 살해된 많은 이들이 결코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그들의 생각보다 더 확실한지를 말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간도 지역에서 캐나다 장로교 선교사들이 확보한 수치는 기독교인보다 비(非)기독교인이 더 많이 살해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그 지역에 살고 있는 30만 명의 한국인들 가운데 기독교인은 1/5이 채 안 된다.일본인들의 최근 작전들에 관한 추가적인 보고는 선교사들로부터 나왔는데, 이는 살해당한 사람들 그리고 가옥, 교회, 학교, 가축, 농작물의 소각을 담은 긴 목록이다.그 보고에 따르면, 흩어져 있는 몇몇 마을들을 포함하는 창산 지역에서, 130채의 가옥과 일부 교회, 학교가 불탔고 90명의 사람이 사살되었다. 이런 곳들 가운데 30채의 가옥과 70명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비기독교인 마을이 있었다. 이들 마을은 일부 한국 군인의 소재지에 관해서 일본 군대에 허위 보고를 한 벌로 완전히 파괴되었다.무성한 숲 속에 위치해 있고 보도(步道)를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는 한 마을이 2달 동안 독립군의 본부로 사용되었다. 잿더미, 돌, 탄 나무만이 현재 그 곳이 마을이었음을 말해준다. 일본 군대는 남자들을 처형한 다음, 여자와 아이들을 이륜마차에 태우고 45마일 남쪽 한국 국경으로 출발시켰다.1920년 3월 23일 화요일 기독교계학교에서 일어난 분쟁우리는 서울과 평양에 있는 일부 기독교계학교에서 분쟁이 일어난 것을 크게 개탄한다. 우리는 여기서 문제의 분쟁이 갖는 본질을 되풀이할 필요가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여러 차례 우리에게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학교들에서 발생한 사건들, 전반적인 분쟁의 원인이 한반도의 상황에 관해서 해외에 매우 나쁜 인상을 줄지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 여기서 그 사건들이 그저 사소한 일들에 불과하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지만, 관련된 모든 이들에게 그것들이 잊혔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불행하게도, 그것에 책임이 있는 외국 주동자들 때문에 분쟁은 불법의 차원을 띠게 되었다. 총독부의 적들이 그것을 이용하여, 신속하게 해결되고 있는 상황을 매우 나쁜 색채로 묘사하고자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마치 조선은 여전히 불안과 반역으로 소용돌이 치고 있다. 당국은 적들의 선전이 미국과 다른 나라들에서 멋대로 활용되지 않게끔 조심해야만 한다.우리는 또 다른 이유로 그 분쟁을 개탄하는데, 왜냐하면 우리에게 그것은 당국과 외국 교육자들 간의 분쟁이 주로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후자는 의심 없이 전자에게서 정치적 사안에 참여하고 공안과 질서를 유지하는 데 그들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정치적인 중립을 선언했던 그들이 당국이 요청한대로 행동하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다른 한편, 그들이 책임지고 있는 학생들을 훈육하는 일이 그들의 의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들이 감히 학교 규칙과 국법 둘 모두를 위반한 학생들에게 이에 상응하는 처벌을 하겠다는 자세를 좀 더 기꺼이 취했다면, 당국은 그들에게 반대하여 취한 조치를 강행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동시에, 우리는 당국이 외국인 교육자들을 향해 그처럼 신속하고 단호하게 행동을 취한 것이 현명했는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에게 그들과 함께 그 문제를 우호적이고 솔직한 논의를 통해, 외국인 주동자들이 그들의 경고를 의도적으로 무시했다는 확신을 갖고 그처럼 성급하게 행동하지 않는 상호 이해에 이르는 길은 전혀 없었던가? 우리는 우리의 의심이 진정 정당한 근거가 없는 것이라면 기쁘겠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을 한탄하는 것은 무익하다. 중요한 것은 당국과 외국인 선교사 간의 불미스러운 마찰은 사소한 것일지라도 가능한 한 신속하게 제거되어야만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쌍방은 각기 열린 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1920년 3월 23일교육자들은 경찰에 협력하라는 요청을 받는가?책임 있는 관리의 견해교육자들은 법률 위반자 수색 과정에서 경찰에 협력하라는 요청을 받는가? 우리가 들은 바에 따르면, 이 이상한 질문은 배재학당과 한국인을 위한 다른 몇몇 기독교계학교에서 최근 있은 분쟁과 관련하여 일부 선교사들에 의해 실제로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우리는 그들이 당국이 아펜젤러 씨(Mr. Appenzeller)와 스미스 양(Miss Smith), 모우리 씨(Mr. Mowry)의 학교장 인가 취소를, 법을 위반한 학생들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그들이 경찰을 돕기를 거부한 것에 대한 처벌로 해석하는 듯하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는 그 분쟁과 관련하여 그들 측에서 한 이런 오해가 불식되지 않은 채 남겨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우리의 대표자가 어제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관리를 방문하여 그의 의견을 들었다. 그는 답변을 하면서 다음의 결과에 대해 말했다.언급된 문제는 전혀 관련이 없다. 어떤 학교의 학생들이 비난받을 행동을 했을 때, 학교장이 교육 정신을 존중하고 학교 규칙에 따라 즉각 그 문제에 대한 조사에 착수해야 하고, 위반자를 제적이나 다른 징계 수단으로 처벌해야만 한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경찰은 교육 문제에 간섭할 권한이 없지만, 학생들이 법을 위반할 때 그 사건을 조사하는 것은 경찰의 고유한 역할이다. 달리 말하자면, 학교장이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학생들을 교육 정신과 학교 규칙에 따라 통제할 의무를 이행해야하는 반면, 경찰은 공안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법률 위반자를 찾아낼 권한이 있다. 그들의 역할은 완전히 다르다. 이제 배재및 배화 학당의 경우, 학생들 사이에 소요의 징후가 있기 때문에, 교육 당국과 경찰 양자 모두 그 어떤 법률 위반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조처를 취했다. 전자는 교육을 위해, 후자는 공안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교육 당국은 자신들의 감독하에 있는 청소년 및 소녀들 가운데서 성가신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이들 학교의 교장들에게 몇 번이고 경고했다. 이것에도 불구하고, 분쟁이 그들에게 나타났고 그것이 다른 학교로 확산될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경찰 당국은 그들 교장에게 분쟁을 조사하고 학교 규율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것에 책임이 있는 학생들을 처벌할 것을 요구했다. 그것이 의심할 바 없이 법률 위반 사례였기 때문에, 경찰이 그들 손으로 그 문제를 조사하는 것은 정당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겠다고 생각하기 전에 기다렸고, 교장들이 스스로 그것을 다루도록 두는 데 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것을 조사하지 못하였고 교육 당국의 조언을 무시했다. 그 결과 경찰이 개입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위의 설명에서 볼 수 있듯이, 두 학교의 교장들은 학생들을 올바른 방식으로 가르치고 지도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법을 위반한 이들에 대한 조사를 거부했다. 이것은 그들이 교장으로서 의무를 다하지 못했고, 그들의 공식적인 감독자인 도지사가 그들에게 내린 명령을 어겼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이유로, 당국은 그들이 차지한 그 자리에 적임자가 아니라는 것과 그들을 학교장으로 인정하는 것을 취소하는 방법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공식적인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그 문제를 조사하는 데서 경찰에 협력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학교장에게 경찰의 역할을 떠맡으라고 요구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 … (원문판독불가) …1920년 4월 7일 수요일정부는 여론을 들을 준비가 되었다.중추원의 모임이 월요일 오후 서울 사무소에서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교육청의 K. 유게 씨(Mr. K. Yuge)를 포함하여 총독부의 몇몇 관리들도 참석했다. 유게 씨는 그 기회에 교육 체계의 최근 개혁에 대해 말했다.중추원는 이전의 한국 정부에서 고위직에 있었던 한국의 저명인사들로 구성된 자문단이다. 신임 총독이 서울에 도착한 후 오래지 않아 그것이 처음으로 개최되었고, 미즈노 박사(Dr. Midzuno)가 총독부의 재편과 다른 개혁 조치들에 관해서 설명을 했다는 것이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그 외에도 묘지 규정의 개정에 관하여 그것의 의견을 구하고 있었다는 것이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총독부가 종종 그것의 개회를 요청하고 그것에 중요한 행정적인 수단을 맡기고 그것들에 관하여 그것의 조언을 구할 것임을 약속했다. 위에서 언급한 월요일 오후 모임은 이런 약속과 조화를 이루었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부터 중추원 위원들의 정례 모임은 매주 월요일에 열릴 것이고, 정부는 대리인을 파견하여 정부의 정책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의견을 들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정부가 내딛은 이런 새로운 출발과 한국인들에게 출판의 자유를 부여하는 것은 정부가 한국인의 여론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의도와 욕구를 보여주는 표시로 간주될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진심으로 환영하지만, 감히 당국에게 그들이 한국인 고문단에 새로운 피를 주입하라고 제안하고자 한다. 우리는 고문단의 현재 구성원들의 높은 사회적 지위와 원숙한 지혜, 풍부한 경험 때문에 그들을 존경하지만, 우리가 그들 대부분이 관념과 사고에서 상당히 구식이라고 말할 때 너무 무례하게 솔직히 말한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조선은 중추원을 구성하는 인사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통치했을 때의 조선이 아니다. 그들이 은퇴하고 사실상 현실 정치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던 지난 10년 동안, 시대는 크게 변했다. 따라서 그들은 한국의 신진 세대의 열망과 희망, 이상을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이제 나라를 운영하는 데서 지배자들이 나이든 사람들의 의견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전자의 목소리는 당연히 무시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후자의 급진적이고 극단적인 견해들을 상쇄하고 온건하게 함에 있어서 매우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직무를 수행할 때 보수적인 사람들의 의견만을 고려한다면, 그것은 곧 좀 더 자유주의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의 반대만을 초래하는 엄청난 오류를 범하게 될 것이다. … (원문판독불가) …우리는 지난 해 겪은 쓰라린 학교 경험을 통해 이전의 조선 총독부가 좋은 교육을 받고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대표적인 한국 젊은이들에게 … (원문판독불가) …. 현재의 총독부가 같은 잘못을 범할 것이란 우려는 거의 없다. 이미 그것은 『시사신문』의 편집자이자 조선의 떠오르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민원식(Min Won-sik)을 중추원 부찬의로 임명했다. 우리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점차 중추원 위원에 임명될 것이라고 확신한다.한국 문제의 다른 면… (원문판독불가) … 어떤 중요한 요소에 대한 새로운 해석프랭크 헤론 스미스(Frank Herron Smith)한국이 일본인 이주자들로 들끓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은 정당한 근거가 없는 듯하다. 우리는 이주의 조류가 언제나 가난한 나라에서 부자 나라로, 그리고 낮은 발전 단계에 있는 나라에서 높은 발전 단계에 있는 나라로 흐른다고 대학에서 배웠다. 물론 제3의 요소는 인구의 상대적인 조밀도이다. 따라서 두 가지의 요소는 일본인 이주에 반대하지만, 하나는 그것을 지지한다. 필자가 그 가운데서 살면서 일하고 있는 일본인들 사이에서, 그 어떤 일본인도 자본 없이 한국이나 만주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격언이다. 우리는 미국에서, 캐나다에서 일어났던 이주처럼 아주 소규모의 무언가를 볼 수 있지만, 미국과 캐나다로 몰려들었던 이탈리아인이나 보헤미아인이나 폴란드인처럼 이곳으로 떼지어 이동하는 가난한 일본인을 볼 수는 없다.동양척식주식회사는 자비로운 관심사를 갖고 있지 않고, 큰 이윤을 내고 있으며, 의심할 바 없이 고용인들 가운데 다수의 "부정한 직원들"이 있다. 하지만, 임원들은 이시즈카(Ishizuka), 가와카미(Kawakami), 이시바시(Ishibashi), 니노미야(Ninomiya)--유명한 손토쿠(Sontoku)의 후예--또는 세키야(Sekiya) 씨와 같은 임원들은 고상한 인격을 지닌 사람들이다. 필자는 그들 모두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다. 당신의 통신원은 그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사실로 판명된 부패의 사례를 수차례 제공했지만, 이제껏 이점에서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요구받지는 않았다.일반적으로 말해서 조선인 농민은 지난 10년 간 엄청나게 번영했고, 이 나라의 전체 역사에서 그들이 오늘날처럼 번영한 적은 결코 없었다는 점 또한 덧붙여져야만 한다.조선에서의 "종교 박해"그들 반대의 근거를 한국에서 추정된 기독교 박해에 두면서, 한국과 중국에 있는 일본의 "외국 친구들"은 도쿄에서 세계 주일학교 회의를 개최하려는 계획을 거의 좌절시켰다. 그들은 그런 "야만스러운 나라"의 수도가 그 회의를 개최하기에 적합한 장소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일본 연합교회가 그들 대표인 이시자카 씨(Mr. Ishizaka)를 통해 한국에서 자행된 잔악한 행위들을 비난하는 강력한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면, 그 회의가 일본에서 개최될 수 없었을 것이다. (다이어 장군(Gen. Dyer)이 인도에서 한 일과 미국인들이 워싱턴과 시카고에서 흑인들에게 한 일을 생각할 때, 그 회의를 남아메리카 혹은 다른 어떤 평화롭고 개화된 장소에서 여는 것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한국에서 우리는 잘못의 비극을 겪었다. 폭동을 그처럼 잔혹하게 진압하면서 자행한 엄청나고 잔인한 잘못은 세상에 잘 알려졌지만, 그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인 측에서 범한 잘못 또한 있었다. 필자의 견해에 의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독립을 선언할 때 엄청난 실수를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스스로를 혁명가와 반역자로 만들었다. 그들은 스스로 모진 처벌을 면할 수 없게 만들었다. 분별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판단에 확신을 가질 수 없고 그것을 존중할 수도 없다. 나는 많은 선교사들이 그들의 의견을 표현하는 것을 들었지만, 그가 현재 한국인들은 독립에 적합하다고 간주하는 말에만 귀를 기울여야 했다. 오래된 한국은 죽었으며, 헐버트 씨(Mr. Hulbert)는 장례식 설교를 했고 "한국의 죽음"이란 추모가를 불렀다. 새로운 한국이 탄생했으며, 젊은 한국인들 가운데 가장 유능한 인물인 H. 신 씨(Mr. H. Cynn)는 최근 출간된 그의 책 『한국의 부활』에서 이에 관해 말하고 있다. 독립을 외치는 한국은 투표를 외치는 미국 젊은이와 같다. 한국은 거대한 희망을 지닌 훌륭하고 건강한 젊은이이며, 의심할 바 없이 밝은 미래를 가졌다. 한국인들이 그런 "연극적인 제스처"(grand-stand play)를 시도하기보다 그들이 필요하다고 간주한 개혁들을 요구했더라면, 우리는 지난 해 경험한 견디기 힘든 시간을 겪지 않았을 것이고 한국은 오늘날에 더욱 가까이 가 있었을 것이다.(계속)한국 문제의 다른 면… (원문판독불가) …어떤 중요한 요소에 대한 새로운 해석프랭크 헤론 스미스… (원문판독불가) …일본인 이주일본인의 한국 이주는 상당한 오해를 받고 있는 문제이다. 브라운 박사(Dr. Brown)는 그의 새로운 책 『극동의 정복(The Mastery of the Far East)』에서 진실에서 멀지 않은 이런 진술을 하고 있다. "합병 시기에 한국 영토의 10퍼센트 미만과 개간할 수 있는 땅의 절반 이하가 경작 중에 있었다. 일본인들이 현재 효과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근대적인 농업 방식들로써 한국은 현재 그곳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의 두 배를 먹여 살릴 수 있다. 다른 자원과 제조업의 발달이 가져올 부의 추가적인 수단은 말할 필요도 없고 말이다." 이것은 최소한 한국인들을 그 나라에서 내쫓지 않고서 향상과 진보를 위한 거대한 여지가 있었다는 점을 증명한다.1919년 12월 말, 개간할 수 있는 땅의 영역에는 논 1,544,430 정보, 밭 2,797,660 정보가 포함되었다. 개간과 관개를 통해 1년 동안 증가된 땅은 논 199,336 정보, 밭 357,673 정보였다. (정보는 2와 1/2 에이커에 해당한다.) 이것은 농업 인구의 대규모 확대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줄 것이다.동양척식주식회사(Oriental Development Company)동양척식주식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땅은 총 75,176 정보이고, 그 가운데 … (원문판독불가) … 가 논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동양척식주식회사는 보유지를 많이 늘이지 않았다. 회사가 토지의 대부분을 확보한 10년 전, 평균 가격은 정보 당 400엔이나 그 이하였지만, 오늘날 가격은 정보 당 1,000엔에서 2,000엔까지 다양하다. 지난 해 그 회사는 회사 소유 토지 1만 정보에 관개수로를 설치하였고, 800정보를 개간하였으며, 현재 2,500정보를 개간하고 있다. 그 회사는 12만 명의 한국인 소작 가구를 가지고 있고 가구당 평균 1 정보를 경작한다. 동양척식주식회사의 관리들은 그들이 … (원문판독불가) … 경작을 장려하고 있고, 따라서 매년 많은 한국인들을 활용한다고 말한다. 그런 많은 사람들 가운데 1년 동안 많은 … (원문판독불가) … 있었고, 비록 그들이 고용인 총수를 늘리지 않았지만, 그들이 매년 데려오는 300가구의 일본인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한국인 대다수를 해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일본인 이주자13,000명 이상이 포함되어 있는 일본인 이주 가구의 총수는 3,300인 반면, 한국에서 14,500,000명으로 구성되어 농업에 종사하는 가구의 총수는 2,660,000이다. 일본인들이 엄청나게 많이 한국으로 왔지만, 놀라운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한국인과 비교해 볼 때 일본인의 비율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동양척식주식회사가 일본인 농부들을 이주시킨 주목적은 농업 방식의 개량이라고 알려져 있다. 한국인 농민이 토지 매...당 평균 2... 벼를 생산할 수 있는 반면에, 일본인 농민은 3과 2/1...를 생산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6내지 7... 이다. 모든 일본인 농민은 한국 농민의 교사로 행동하고 있다. (계속)조선에서의 전망총독과 인터뷰하다.조선 총독인 사이토 남작(Baron Saito)은 도쿄에서 서울로 가는 길에, 열차에서 『아사히(Asahi)』의 대리인과 인터뷰를 했다. 『재팬 크로니클(Japan Chronicle)』에서 인용되었듯이, 총독은 지난 몇 년 간 한국 젊은이들의 생각에 두드러진 변화가 일어났다고 시인했다. 그는 이 같은 자각을 경험한 이런 젊은이들을 어떻게 적절하게 지도할 것인지가 당국의 가장 긴급한 주의를 요하는 문제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한반도의 미래 통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게 될 문제이다. 한국인들 가운데 이런 청년들을 적절하게 지도하는 과업을 수행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불행하게도 그런 사람들은 변함없이 "독립"의 생각을 갖고 있는 이들이다. 그들은 상하이에 망명해 있거나 한반도의 감옥에 있다. 사이토 제독(Admiral Saito)은 이런 한국인들이 그들의 현재 태도와 생각을 즉각 재고하고, 한국 청년들의 지적 증진의 과업을 진심으로 떠맡을 것이라는 강렬한 염원을 피력하고 있다. 그가 말하기를, 독립의 관념이 현재 한국인들에게 퍼져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이런 관념을 단시간에 근절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 (원문판독불가) … 그리고 당국은 이미 보통학교와 고등보통학교를 증설하기 위한 계획을 이미 수립하였다. 한국 어린이들의 교육의 유력한 조건은 … (원문판독불가) …. 미취학아동 1,300,000명 가운데 고작 200,000명이 실제로 학교에 간다.총독이 언급한 다른 문제들 가운데 중추원이 제안한 것을 확대한 것도 있다. 총독은 한반도에서 좀 더 자유로운 언론표현을 보장하기 위해서 그 제안이 긴급하게 요청된다고 확신하고 있다. 중추원은 한국인들이 현재 … (원문판독불가) …하는 유일한 자문 기관이다. 그렇지만, 사이토가 총독으로 취임하기 이전에, 중추원에 … (원문판독불가) …, 한국 통치에 관하여 한 차례로도 자문을 구한 적이 없다. 사이토 제독은 현재의 지위를 맡은 직후, 특정한 통치 사안에 관해서 중추원의 의견을 듣는 조치를 취했고, 이런 혁신은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에 의해 매우 우호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현재 중추원의 인원을 추가하고 그것의 의견을 좀 더 자주 들으라고 제안한다. 물론, 모든 통치 문제에서 그 중추원의 충고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한반도의 유서 깊은 조직과 관례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대해서 중추원의 의견을 구하는 것이 그의 의도이다. 중추원의 구성원 으로는 친일 한국인들뿐만 아니라 독립의 관념을 갖고 있는 반일 한국인이 포함되어야만 된다고 제안되었다. 극단적인 반일 성향을 지닌 일부 한국인들은 그들이 친일 편애적인 부류들과 나란히 앉아서 함께 논의를 한다는 생각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이런 생각에 적대감을 표현했다. 사이토 제독은 이런 견해에 찬성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는 대립하는 의견들이 자유롭게 토론되고 타협되는 협의 과정을 통해 나라의 건전한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총독은 한국 철도의 문제로 돌아가서, 그 철도를 남만주 철도에 통합하는 계획이 폐기되었다고 말한다. 한국 철도가 한반도의 산업 발전에 뒤지지 않고 따라가게끔 적절하게 운영되어야만 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철도의 경영을 남만주 철도 회사에 맡겨야 한다는 것에는 반대하는 의견이 있다. 비록 그것을 전적으로 이윤 추구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잘못일지 모르지만, 그 회사는 적어도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남만주 철도 회사의 이사회는 … (원문판독불가) …남조선의 사소한 반일 감정타이쿠(Taiku)는 경상북도 포항의 몇몇 일본인들이 최근 영덕 지역에 있는 국유림 2,000 정보의 임차권을 획득했다고 전신으로 보고한다. 그 지역의 한국인들은 국유림의 임차가 자신들의 연료를 얻는 원천을 빼앗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에 저항하기 위해 … (원문판독불가) … 20일 지역 사무소로 향하였다. 그들의 행진은 경찰에 의해 중도에서 제지당했다.이와 유사한 사건이 또한 전라남도 광주에서 보고되었다. … (원문판독불가) …, 동면, 장흥에 있는 국유림의 손실에 불만을 품은 천여 명의 한국인들이 지역 사무소를 에워쌌고, 해명을 요구하면서 질서를 위반하여 위협을 가하였다. 경찰이 그들 중 25명을 체포했고, 그 가운데 5명을 광주로 압송하여 그들에게 그 사건에 대해 해명을 했다. 그 해명이 수용되었고, 자신의 질서위반 행위를 발설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한 사람들은 풀려났다.오 박사의 박애적인 기획위와 관련하여, 우리는 며칠 전 이런 컬럼에서 충분하게 다루었던, 세브란스 병원의 오경선 박사(Dr. O Keung Syen)와 그의 친구들이 계획한 유사한 박애적인 기획이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쁘다. 200,000엔의 기금을 모아서 의지할 데 없는 아이들을 위해 건립하자고 제안하는 주택을 … (원문판독불가) … 건축하는 것이 오 박사의 의도이다. 그는 이미 거의 40,000엔을 모금했고 이 왕실의 왕자, 은행, 다른 대형 상업 회사들이 많은 기부를 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원문판독불가) …일본 신문… (원문판독불가) …19●●년 8월 ●일 금요일 도쿄반미 신문 캠페인(The Anti-American Press Campaign) "당신에서 기인하는 것은 당신에게 돌아올 것이다." - … (원문판독불가) …미국 귀빈의 길을 매끄럽게 하는 "환영 위원회"는 그 대중적인 신문을 읽지 않는다. 한꺼번에 여러 주와 여러 달 동안 미국이 일본의 … (원문판독불가) …에게 그들의 길을 막는 호전적인 강국의 예가 되고 있지만, 여하튼 그 구성원들은 놀라운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도쿄에 미국의 친구들이라 불리는 협회가 있지만, 그런 시기에 미국의 친구들은 벙어리의 고통을 겪고 있는 듯하다. 현재 맹렬한 폭발의 좋은 특징은 즉시 언급되어야만 한다. 최상의 신문들은 나머지 신문들이 도달한 깊이로 내려가지 않았다. 『지지(Jiji, 時事)』, 『도쿄 니치 니치(Tokyo Nichi Nichi, 東京日日)』, 『도쿄 아사히(Tokyo Asahi, 東京朝日)』, 『오사카 마이니치(Osaka Mainichi, 大板每日)』는 미국에 반대하는 운동을 하지 않았다. 이들 신문이 일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이다. 사주가 바뀐 이래 활기 있게 편집 발행되고 있는『요미우리(Yomiuri, 讀賣)』또한 분별 있는 정신으로 문제들을 논의했다. 『코쿠민(Kokumin, 國民)』, 『호치(Hochi, 報知)』, 『요로츠(Yorodzu, 萬朝板) 』와 같이 폭넓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기관지를 포함한 나머지 신문들은 자국의 거대한 영토에 만족하지 않고 아시아에서 일본의 정당한 권리와 열망을 끊임없이 저지하고 있는 나라로 미국의 본색을 드러내는 노력에 전면적으로 가담하고 있다. … (원문판독불가) … 그런 운명에 굴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원문판독불가) … 요로츠는 독자들에게 "미국이 결국 아시아 전체를 삼킬 것이라고" 경고하고, 미국인들이 일본을 멕시코와 같은 국가로 바라본다고 은근히 비추고 있다. 냉정하게 상업적인 『추갈 쇼교(Chugal Shogyo, 中外商業新報)』는 "최근 중국에서 일어난 소동의 배후세력이 영국과 미국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한다. 영국과 미국의 이런 동맹은 워싱턴 회담에 대한 보고에 기인하는 결과이다. 『코쿠민』은 사할린 점령에 관한 미국의 조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선언하고, "일본을 향한 미국의 태도가 언제나 본질적으로 도전적이다"고 분개한다. 극도의 경계심이 표현되었는데, 왜냐하면 워싱턴 모임의 추정된 목적 가운데 하나가 "중국 동방 철도의 국제적인 성격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요로츠』가 미국의 이해를 증진하려는 시도로 보는 움직임이다. 미국에 반대하는 전체 사건을 가장 간결하게 요약한 것이 『요로츠』에서 등장했다. 우리는 그것을 … (원문판독불가) … 인용한다. 이런 고발을 믿을 수 없고 평화를 믿을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미국은 동양에서 모든 특권까지 획득하려고 하는 것 같다. 미국의 눈에는 일본이 돼지우리로 보인다. 미국이 한국인과 중국인들 가운데서 일본에 반대하는 선동을 시작함에 따라서 일본은 자국의 영토를 확대할 길이 없을 것이다. 미국은 영일 동맹의 지속을 좌절시키고자 한다. 미국은 일본을 군국주의 나라로 먹칠하기 위해 선전 사업에 가담한다. 일본에서조차, 막대한 금액의 돈이 그 목적을 위해 낭비되었다고 한다. 미국은 중국에서 네 강국 차관단을 성공적으로 구상하였다. 그것은 일본으로 하여금 만주와 몽고의 면제를 위한 그들의 … (원문판독불가) …을 포기하게끔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제 미국은 중국 동방 철도를 … (원문판독불가) … 하기 위해 규모를 확대하고 있고 일본의 사할린 점령에 반대하고 있다. 일본이 이 모든 것을 참을 것이라고 생각되는가? 유럽의 세 강국이 중일전쟁 이후 일본의 구상을 방해했듯이, 미국이 이제 일본을 괴롭히려고 한다. 미국은 멕시코 일부를 획득했고, 하와이 제도를 강탈했으며, 필리핀과 쿠바를 합병했다. 이제 미국은 중국을 자국의 신탁통치아래 두기를 원한다. 이런 과정에서 고통을 받을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이 엄청난 액수의 돈을 소비하고 귀중한 많은 생명을 잃고서 획득한 권리는 미국에 넘겨야만 한다. 이제 미국은 일본의 남부 사할린 점령을 반대한다. … (원문판독불가) …… (원문판독불가) … 그렇지만, 『코쿠민』은 "3대 신문"인 『니치니치』, 『지지』, 『아사히』보다는 덜 중요하지만, 좋은 평판과 폭넓은 호소력을 지닌 신문이다. 편집장인 … (원문판독불가) … 씨는 일본에서 가장 유능한 작가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의 추종자들은 헤아릴 수 없다. 제국의 젊은이들을 다룬 그의 기사들이 편집된 것은 엄청난 판매를 올렸다. 그는 기독교도이고 천황이 지명하는 귀족원(House of Peers)의 일원이다. 『호치』는 헌정회(Kenseikai, 憲政會)의 기관지이고 수년 동안 오쿠마 후작(Marquis Okuma)의 정치적 이해를 위해서 운영되었다. 『요로츠』는 독립적인 대중 신문으로, 상당히 화려하게 편집을 하고 상당한 발행 부수와 풍부한 기획력을 갖고 있다. 『추갈 쇼교』는 상업적인 기관지이다. 이것들 가운데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은 신문으로 간주될 수 없다.『코쿠민』은 신문의 3면, 즉 "인간적 흥미"의 이야기라는 보통 가정을 미국의 불신에 관한 선정적인 기사에 할애하고 있었다. 우리 독자들은 그 신문이 최근에 공을 들인 번역문을 보았다. 일본 신민들 중에는 미국이 불충을 조장한다고 비판하였다. 익명의 한 교수는 산아 제한의 신조를 선전하고 한국에서 폭동을, 중국에서 반일 운동을 조장하기 위해 한 달에 4천 엔이란 적지 않은 급료를 받는다고 말하고 있다. 한국인의 책무는 상당히 상세하게 열거되고 비난받는 선교사들의 이름이 상세하게 제공된다. 출처는 전직 관리라고 한다. 개혁들이 시작되자 은퇴한 관리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의 죄가 해고당한 공무원과 같은 비난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외국인 독자들을 놀라게 할 것이지만, 『코쿠민』은 그것들이 미국에 대항하는 무기로서 충분히 효과적임을 발견한다.일본 신문들은 느슨하게 조직되어 있다. 부서들은 때때로 서로 독립적으로 행동하고, 3면의 "편집자"는 편집장이 자신의 칼럼에 관해 많이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이따금 조미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중한 견해를 표현하는 신문의 방침은 칼럼에서 계속된다. 거기서 미국에 대한 비난들은 놀라우리만큼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코쿠민』은 사할린에 관한 조사는 "사할린에서 일본의 정책에 방해"라고 말한다. 『호치』는 최근 안푸 파벌(Anfu clique)의 타도가 "중국에서 영국인과 미국인의 음모"라고 말한다. … (원문판독불가) … 이제 미국은 일본의 북부 사할린 점령을 반대한다. 미국이 동양에 대한 야심은 그저 사치일 뿐인 반면, 이론이 획득했고 획득해야만 하는 권리들은 지극히 중요한 것이다. 만약 … (원문판독불가) … 일본과 중국의 관계가 미국의 개입으로 단절된다면, 어떻게 일본이 존속하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우리 동포들이 아무리 점잖은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에 찬성할 수 없다. 우리의 희생이 아무리 클지라도, 우리는 미국의 정책을 수용할 수 없다.이런 반미 운동은 부침이 있기는 하지만 새로운 것이 아니다. 유명한 미국인들이 환대받고 있을 때 … (원문판독불가) …. 대부분의 신문들이 지닌 국수주의적인 꿈과 완전히 조화를 이루지 않는 무언가가 발생할 때 마다, 일본인들은 미국이 우리의 적이요 미국이 우리의 길을 막는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다른 국가들은 이따금 … (원문판독불가) …, 눈에 띄는 예가 1916년에 있은 영국인에 반대한 질책 운동이다. 그러나 선호하는 주제는 미국의 공격성이다. 모든 행동이 기회를 제공한다. 새로운 차관단은 오늘날 중국에서 일본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방책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이 윌슨(Wilson) 대통령 임기 초에 구 차관단에서 물러났을 때 그것은 또 다시 불쾌함의 원인이었고, 『호치』는 대중에게, 미국이 "미국인만 관심이 있는 것--더러운 달러"를 벌고자 중국에서 단독 행동을 하기 위해서 동업자들과 결별하였다고 말했다.우리는 미국의 정책에 대해 어떤 변호도 할 필요가 없다. 그것의 사실과 동기들은 공개되어 있고 잘 알려져 있다. 우리는 모든 계층의 분별 있는 일본인들, 특히 미국에 대해 얼마쯤 알고 있고 미국에 호의를 나타내는 사람들은 미국에 반대하는 여론의 이런 완고한 결속력이 어디에서 끝날지에 대해 자문해봐야 한다. 그 입장은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그들이 돌 때마다 그들의 길이 미국에 의해 막힌다고 믿는 신문들에 의해 훈련받고 있다는 것이다. 정확히 이와 동일한 태도로 독일 대중들은 영국의 포위 정책에 대해 언급했다. 수년 동안 꾸준히 시행된 독일의 그 운동의 목적을 우리는 이제 알고 있고, 우리는 또한 그것의 종말도 알고 있다. "당신에서 기인하는 것은 당신에게 돌아갈 것이다."… (원문판독불가) …1920년 2월 10일 『뉴욕타임즈』에서 발췌한국인들이 반란을 일으키다. 일본인들이 참패했다.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의 지원을 받은, 폭동을 일으킨 본토박이들이 만주에서 고국으로 가다.… (원문판독불가) …700명의 수비대가 압도당했고, 300명이 살해되었다. 공산주의자는 북부가 소개되어있다고 말한다.2월 9일 워싱턴 - 오늘 워싱턴에서 수령한 긴급 공문서에 따르면, 한국에서 일본 통치에 반대하는 생생한 반란이 진행 중에 있다. 그것은 러시아 볼세비키에 의해 조장되었고 "엄청난 사건의 시작"으로 규정되었다. 그 통신문에 의하면, 볼세비키에 의해 무장된 2천 명의 한국인과 한국 북부에 주둔한 700명의 일본군 간에 최근 벌어진 충돌은 일본인의 패배로 끝났다. 그들 중 300명이 살해되었고 나머지는 패주했다. 전투의 상세한 사항은 보고되지 않았다.한국인들은 만주의 길림에서 고국으로 이동했다.소규모 일본 수비대들과의 다른 분쟁들이 발생했고, 일본인들이 거의 모든 경우에 수적으로 우세했고 압도했다.전투 소식은 여기서 놀라운 일로 다가오지 않았는데, 긴급 문서들이 볼세비키의 활동에 자극을 받아 혁명적인 정신이 한국에 퍼져 있다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주와 시베리아 국경 지역에는 많은 중국인 도적들이 있는데, 시베리아에서 볼세비키 조직들은 한국 침입을 위해 그들과 연합하는 징후들을 보여주었다.공식적인 정보에 의하면, 볼세비키 당국은 한국 지도자들과 긴밀한 접촉을 가지고 있고, 그들 군대에 적절한 장비를 제공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최근 여기서 받은 보고들에 따르면, 블라디보스톡에서 서쪽으로 만주 북부에 이르는 시베리아 철도의 전 지선이 볼세비키의 영향권에 들어갔고, 한국에 침입하기 위해 많은 무리의 중국 산적과 결합하여 지역 볼세비키 세력을 조직하려는 운동이 발족했다. … (원문판독불가) … 당국에 따르면, 이런 사람들 가운데서 실제 볼세비키의 감정은 없었지만, 그들은 일본인에 대한 적대심에 자극을 받아, 그들을 공격하는 데서 기꺼이 다른 어떤 분자들과도 제휴하려고 한다.2월 9일 런던 - 오늘 모스크바에서 급송된 무선 전보에는 옴스크(Omsk) 통신문을 인용하면서, 한국 북부가 일본인들에 의해 소개되어 적혀 있다. 그것에 따르면, 주민들이 중국 영토에서 한국 군대를 돕기 위해 일어났다.볼세비키 무선 전보에서 묘사된 옴스크(Omsk) 전보에 의하면, 2월 6일 중국 영토에서 분기한 한국인 무리들이 국경을 넘어서 일본인들을 공격했다. 그것은 많은 주민들이 반란자들에게 가담하고 있고, 일본인들은 후퇴하고 한국 북부를 소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1월 12일 상하이에서 호놀루루 한인협회로 온 해외 전신에 따르면, 한국 국민군이 시베리아에서 한국으로 건너갔고 일본 군대에서 En Chin을 생포했다.한국은 일본으로 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운동이 인구가 조밀한 많은 중심지들에서 공개적인 반란으로 타 올랐던 지난 봄 이후 불안한 상태에 있다. 일본인들은 그 봉기를 진압했지만, 동요는 한국 내에서 그리고 시베리아의 한국인들 사이에서 지속되었다. 시베리아에 있는 이런 한국인들의 활동은 한 일본 관리가 최근 일본군을 시베리아에서 즉각 철수시키는 데 반대한 이유들 가운데 하나이다. 지난 9월 사이토 남작 제독이 한국의 신임 일본 총독으로 부임하게 되자 그를 암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리고 명백한 한국 불안의 다른 증거들이 이후 때때로 등장했다.

    216 상하이 적십자 사무실에서 보낸 전보

    전보발신일: 1920-02-17발신자: 상하이 적십자 사무실 발신주소: 상하이에서번역 - 미국 적십자사는 중국 만주에서 온 피난민들의 호소문을 보냅니다. 상하이 적십자 사무실 담당 - 미국 적십자사 중국 중부 지역 담당관

    217 베이징 뉴스(1919. 8. 27)

    발간일: 베이징 뉴스사본모우리(Mowry) 씨, 서울에서 항소에 승소대법원에 의해 하급 법원으로 반송되다 - 무죄 방면 예상8월 18일, 서울목사인 모우리(Mowry) 씨가 오늘 대법원 판결에서 항소에 승소했다. 이 판결로 모우리(Mowry) 씨에 대해 유죄를 선언했던 원심은 파기되고, 이곳의 항소 법원으로 반송되어 재심에 부쳐지게 된다.평양에 선교사로 와 있던 모우리(Mowry) 씨는 도피 범인을 은닉시켜 준 혐의로 체포되었다. 이 도망자들은 경찰이 한국에서 초기 시위에 참여했다고 주장하며 수색하고 있던 다수의 한국인 청소년들이다. 이 소년들은 모우리(Mowry) 씨의 집에서 자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폭동이 예상되기 훨씬 전부터 그 집에서 자곤 했던 아이들이었다.모우리(Mowry) 씨는 평양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10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서울 법원에 유죄 판결을 확인해 달라는 항소에서 형량은 3개월로 줄어들었고, 3년 집행유예를 받았다. 그러나 모우리(Mowry) 씨는 자신에게 결코 죄가 없음을 주장하며 집행유예마저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대법원에 상고했으며, 대법원에서는 전술한 선고에서 그의 상고 내용을 지지했다. 이곳의 전반적인 여론은 이 판결이 다시 반송되면 소송이 기각되거나 무죄 판결이 날 것으로 보고 있다.

    218 국민회(Korean National Association) 미국의 기독교 교회에 전하는 글

    작성처: 국민회(Korean National Association)작성처: 이사회 회장 @/k@C. H. 안(C. H. Ahn)@/k@조국이 긴박한 곤궁에 처한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대표들은 세계 최대 강국의 시민이자 우리의 동료 기독교인인 여러분들께 정의와 인간애를 호소하는 바입니다.커다란 어려움에 봉착한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여러분을 우리의 유일한 벗으로 의지했습니다.지난 10년간 우리는 군국주의자와 제국주의 정부의 탄압을 받아 왔습니다.독일이 벨기에를 군화로 짓밟고 기독교도들을 유린한 것처럼 일본 정부는 우리로부터 국가적 자유를 빼앗았을 뿐 아니라 모든 인간이 지니고 있는 권리도 박탈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우리로부터 정의를 빼앗았고, 사고의 자유와 우리의 언어, 우리 의지대로 아이들을 교육시킬 수 있는 권리를 빼앗고, 우리에게 우리의 국가적 이상을 파괴하고 기독교의 근본을 위태롭게 하는 교육 체제를 강요했습니다.그들은 또한 우리로부터 종교적인 자유라는 신성한 권리도 빼앗았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전국적인 잔인한 탄압과 박해의 대상이 되었고, 많은 이들이 아무런 정당한 이유도 없이 감옥에 갇혀 잔인하고 무자비한 대우를 받았습니다.너무나도 많은 잔인한 사례들, 대규모 학살과 온갖 잔인한 방식을 동원해 자행되는 체계적인 탄압의 사례들로 우리 국민들은 가정을 짓밟혔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고, 사람들은 절망과 기아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적인 발전의 사례만을 과시하는 교활한 언론 선전을 통해 전세계가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은 신과 인간애 앞에 절규하고 있는 비극적이고 슬픈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침내 우리 민족은 들고일어나 탄압과 참을 수 없는 학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찾고자 하는 우리의 갈망을 전세계에 분명히 주장했습니다. 여기에는 어떤 강압도 없었습니다.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한국의 새로운 운동은 국가적인 잘못에 대한 자발적이고 합법적인 표현일 뿐입니다.그러나 일본인들은 무력과 잔인성으로 이에 답했습니다. 특히 한국의 기독교 교회들은 이번에도 무자비한 박해의 중심 대상이 되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종교에 대한 조롱 속에서 십자가를 짊어져야 했고, 그리스도의 이름은 더럽혀졌습니다. 손에 독립선언서를 들고 있던 어린 소녀는 팔이 잘렸습니다. 수천 명이 감옥에 가서 고문을 당했고, 수천 명이 살해당했습니다. 미국의 기독교 교회가 항의의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조용히 참을 수 있습니까?이제 결단의 시간이 왔고, 종교조차도 독립국의 자격을 강탈한 이런 결정적인 상황에 저항할 수 없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그리스도의 왕국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세계대전은 인류를 새로운 시대로 이끌었습니다. 1천만 명의 생명을 희생하여 세계는 독재와 군국주의로부터 자유를 쟁취했습니다. 민족자결주의가 전세계에 선포되었습니다. 세계는 더 이상 전세계적인 압박과 불법 행위가 없는 새로운 시대, 국제연맹이 약소국의 권리를 보호하는 시대를 기쁘게 맞이하고 있습니다.우리는 이러한 획기적인 움직임에 있어 지도자 역할을 하고 있는 국가의 시민인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국제연맹의 원칙은 단순한 표어일 뿐입니까, 아니면 진정으로 세상에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선언하는 것입니까? 세계가 독일에서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를 물리친 것이 그저 그 악습들이 몰래 극동으로 들어와 다시 활개를 치게 내버려두려고 그랬던 것입니까? 물론 아닙니다. 그리고 미국도 물론 우리를 이대로 혼자 고통받게 두지 않을 것이며, 그럴 수 없을 것이라 믿습니다. 최소한 미국의 기독교 교회들은 정의가 실현되어야 하며 많은 소중한 미국인들의 생명이 희생하면서 지키려 했던 그 원칙들이 세계의 유산이 되어 유럽뿐 아니라 극동에서도 지켜져야 한다고 항의와 호소의 목소리를 높일 것이며, 대한민국에도 압제에서 벗어나 정의의 시대가 열려야 한다고 촉구할 것입니다.국민회(Korean National Association) 이사회 회장 C. H. 안(C. H. Ahn)

    219 엘리 모우리(Eli M. Mowry) 목사의 재판과 관련하여 생긴 법적 비용

    6월 24일 회의록과 관련해 집행 위원회에서는 두 변호사와의 재정적인 계약을 보고했지만 저희는 귀하께서 이사회로부터 받으려고 하는 총 금액에 관해서는 보고를 받지 못했습니다. 사실 저희는 당시 귀하께서 행동을 취했을 때 아직 소송이 계류중이라는 것을 모르고 계셨던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사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했습니다.“일본 총독이 엘리 모우리(Eli M. Mowry) 목사에게 혐의를 두고 제기한 소송과 관련해 발생한 법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특별비에 대한 한국 선교회(Chosen Mission)의 요청은 관련 금액에 대한 보고가 없었으므로 연기됩니다.”저희는 모우리(Eli M. Mowry) 씨와 그 부인이 겪은 길고도 힘든 시련에 대해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극히 참기 어려운 노력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220 카터(Carter) 양에게 보내 온 편지를 한데 묶음

    발신일: 1919-11-14셸(Schell) 씨의 전언:위원회의 공보관이 상하이의 ‘신문(Press)’에서 발췌한 동봉된 자료를 보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