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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한선교사보고문건

    재한선교사보고문건에 대한 전체 535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531 데이비드 김이 마목사와 부인에게 보낸 편지

    7407-12번 가 디트로이트, 미시간 주 1933년 8월 7일맥래(D. M. MacRae) 목사 부부 귀하 함흥, 조선 맥래(MacRae) 목사님과 사모님께, 저에게는 마치 어제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지만, 제가 조선의 함흥과 두 분을 떠나온 지 벌써 20년 하고도 5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래서 두 분께서는 이미 저를 거의 잊어버리셨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두 분의 어린 자녀들 모두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자녀들은 이제 어엿한 청년과 숙녀로 성장했을 테지요. 저는 가족들과 함께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저는 1925년에 이곳 미국에서 다시 결혼해서 어린 세 딸을 두고 있습니다. 여덟 살인 에스더(Esther)와 일곱 살인 미리엄(Miriam), 그리고 막내인 다섯 살 엘리자베스(Elizabath) 모두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제 마음 속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과 수치심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제가 전처와 외동아들인 동호(Donho)에게 한 일 때문입니다. 심지어 지금까지도 저는 동호의 교육비로 한 푼도 도와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목사님과 사모님 두 분께서는 제가 이렇게 오래 동안 이곳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어떤 인간이 되었는지 짐작하고, 또 이해하실 것입니다. 저는 직접 저의 사악한 열매를 목격하였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제 자신의 사악한 열매를 직접 목격한 것입니다. 저는 그 동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 속에서 살지 못했습니다. 비록 기독교인으로서 부름을 받았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세속적으로 살았던 지난 과거의 생활 때문에 좌절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비록 제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죄인이라 해도 주님께서는 제 심장에서 빛을 거두어 들여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주님의 강력하신 손이 밤낮으로 제 내부에 전조를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는 용기를 내어 두 분이 빌려주신 돈과 베풀어준 호의를 갚지 않고 떠난 이유에 대해서 더 이상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마시라고 목사님과 사모님에 간청드리고 있습니다. 저는 조선에서 아주 어린 꼬마였을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두 분에게 너무나 많은 빚을 졌습니다. 지금 저한테 두 분에게 갚을 수 있는 돈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 주님께서 때가 되면 두 분에게 금화 백 달러를 지불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저를 주님의 목사로 만드시어 두 분과 고국 동포들에게로 보내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저는 지금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시에서 1928년 12월에 처음 세탁소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가족들과 함께 M. E. 교회의 신자가 되었습니다. 지금 다니는 교회는 제가 고향에서 다니던 교회가 가장 비슷하기 때문에 선택했습니다. 그 뒤 저는 일리노이즈 주 시카고의 시카고 신학대학 성경 통신교육 과정을 시작하였고, 올 5월까지 그 과정을 마쳐야 했습니다. 저는 또 이곳 디트로이트에 있는 야간학교에서 졸업장을 받을 것입니다. 야간학교에서는 기독교 교회의 역사(고대부터 근대까지), 종교 심리학, 그 외 몇 가지 과정을 이수하였습니다. 야간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주님께서 저를 이삼 년 정도 더 주님의 말씀을 공부할 수 있도록 최상의 신학교에 보내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더 공부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말입니다. 이제 사모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모님께서는 사모님이 사랑하시는 모친께서 아직까지 살아 계시다면, 모친의 안부를 저에게 부탁하실 것입니다. 사모님 모친께서 주님을 위해서 저에게 베풀어주신 관용은 절대 잊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강력한 손으로 저를 단단히 잡고 계시기 때문에 주님의 애정 어린 친절을 상실하지 않을 것입니다. 목사님과 사모님 모두 건강하시고,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두 분의 충실한 벗이자 돌아온 탕아, 데이비드 김(David Kim) 올림

    532 김주가 마목사에게 보낸 편지

    신학교(Theological Seminary)조선, 평양 1930년 11월 12일 맥래(MacRae) 박사님께, 박사님의 편지를 받아서 기쁩니다. 박사님께서 그렇게 힘든 상황에 처해 계시다니 너무 안타깝습니다. 박사님께서 저를 위하여 어떤 자리에 저를 소개시켜 주시거나 자리를 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를 위해서 롭(Robb) 박사님께 소개시켜 주십시오. 제 미래의 행동이 저에 대한 박사님의 신뢰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것입니다. 친애하는 맥래(MacRae) 박사님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박사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김주 올림 신학교(Theological Seminary)조선, 평양 1930년 11월 10일 맥래(MacRae) 박사님께, 저는 지금 몹시 곤궁한 처지에 있습니다. 제 심장은 터져버렸습니다. 저는 몹시 가난합니다. 김주 올림

    533 캐나다연합선교회의 조선선교 통계표|| 사본

    캐나다 선교단 연합교회(THE UNITED CHURCH OF CANADA MISSION)1898 - 1928, 조선의 비교 통계     1898 1903 1908 1913 1918 1923 1928 세례 받은 조선인 66 311 932 2683 3642 6881 7794 신도 조직         3 8 31 87 114 세례 받은 조선인 평균헌금(달러) .82 1.58 2.72 4.05 5.41 11.06 14.00 조선인 총 기부금                         56,232 달러 외국인 선교단 위원회 책정액                         110,000 달러 여성 선교단체 책정액                         83,000 달러 발전의 30년1898 ------ 1928 1898     1928 0 예배가 열리는 지소 399 0 주일학교 장학생 21,069 0 신도 조직 114 66 세례 받은 조선인 7,794 266 총 기독교 공동체 수 17,426 82센트 세례 받은 조선인 평균 헌금 14달러 5 캐나다 선교사 46 현재 우리 담당 2,138,000중앙 지부 : 원산(Wonsan), 함흥(Hamheung), 성진(Sungjin), 회령(Hoiryung), 용정(Yongjung) 평양과 서울에 있는 유니언 대학(Union College)의 대표 선교단 직원 : 12명 - 성직에 임명된 목사 1명 - 임명되지 않은 교육 전문가 3명 - 의사(남성) 1명 - 의사(여성) W. M. S. 여선교회 5명 - 간호사(W. M. S.) 여선교회 12명 - 독신 여성(W. M. S.) 여선교회 14명 - 기혼여성 48명 조선인 직원 : 355명 인구 원산(Wonsan) 함흥(Hamheung) 성진(Sungjin) 회령(Hoiryung) 용정(Yongjung) 225.000 625.000 700.000 263.000 325.000 총 기독교 공동체 수 원산(Wonsan) 함흥(Hamheung) 성진(Sungjin) 회령(Hoiryung) 용정(Yongjung) 1,852 4,991 3,337 2,764 4,482 세례받은 조선인 원산(Wonsan) 함흥(Hamheung) 성진(Sungjin) 회령(Hoiryung) 용정(Yongjung) 845 2,184 1,315 1,209 2,241 총 교회수 원산(Wonsan) 함흥(Hamheung) 성진(Sungjin) 회령(Hoiryung) 용정(Yongjung) 24 102 52 43 108 신도 조직 원산(Wonsan) 함흥(Hamheung) 성진(Sungjin) 회령(Hoiryung) 용정(Yongjung) 12 31 23 14 34 세례받은 조선인 평균 헌금(달러) - 복음 활동 목적으로만 기부한 원산(Wonsan) 함흥(Hamheung) 성진(Sungjin) 회령(Hoiryung) 용정(Yongjung) 4.33 4.95 3.51 4.20 3.09

    534 의료사업에 관한 설문지(QUESTIONNAIRE ON MEDICAL WORK)

    1. 병원명2. 병원 위치 3. 병원 설립 일시 4. 선교사 직원5. 조선인 의사 수 6. 조선인 간호학교 졸업 간호사 수 7. 수련 간호사 수 8. 그 외 조선인 간호사 수 9. 조선인 전도사 수 10. 그 외 다른 직원의 수 11. 조선인 고용인 총 수 12. 외래환자 방문 수 1929 1930 1931 1932 1933 13. 입원환자 수 14. 입원환자 입원일수 16. X-레이 검사 횟수(1933)17. 실험실 검사 횟수(1933)18. 전도사 가정 방문 횟수19. 환자 중 새로운 신도 수 20. 병원 외 새로운 신도 수 21. 확장 사업(Extension work)22. 예방 사업 23. 간호학교 졸업생 총 수 24. 의료시설 총액25. 장비 총액 26. 선교사 월급27. 선교사 보조금28. 선물29. 지역 영수증30. 선교사 월급을 제외한 총 영수증 31. 의사 월급 비용 32. 간호 업무 비용(월급과 기숙사 비용)33. 전도사 월급34. 그 외 다른 고용인 월급 35. 유지비36. 새 장비 구입비 37. 장비 교체비 38. 작년도 총 경비 39. 선교단 보조금이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율 40. 지방 소득원이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율 41. 입원환자 비율 지불 일부 지불 자선42. 외래환자 비율 〃 〃 〃결핵 의료사업 43. 폐결핵 환자로 진단받은 외래환자 수 44. 폐결핵 환자로 진단받은 입원환자 수 남성 여성 지불 일부 지불 무료45. 기독교인이 된 결핵환자 수 46. 환자 당 평균 입원 기간 47. 결핵병동 환자 당 일일 비용 병원 기반48. 도시의 인구 49. 20마일, 또는 71리 내 인구 50. 도시에서 온 환자 비율 30리 이내 30리 밖51. 도시의 개인병원 의사 수52. 도시의 병원 근무 의사 수 53. 도시의 다른 병원 병상 수 54. 주위 읍의 의사 수 (100리)55. 다른 의사와 병원과의 관계56. 병원과 교회는 어떻게 협력하고 있습니까?56. 다른 선교 사업 분야와는 어떻게 협력하고 있습니까? (a) 학교 (b) 전도 사업 세브란스 병원에 관한 정보 57. 세브란스에서 일하는 선교단 대표 월급 58. 세브란스에 대한 선교단 보조금 (W. M. S.)59. 우리 지역 출신 학생 수 60. 우리 지역 출신 졸업생 수 61. 선교단 병원 직원으로 일하는 세브란스 졸업 의사 수 의사 총 수 62. 선교단 병원 직원으로 일하는 세브란드 졸업 간호사 수 간호사 총 수

    535 용정 구술보고서(Yong Jung Narrative report)

    도입부(Introduction)용정지부의 인적 구성은 일 년 전에 보고한 이래 다소 변화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따뜻하게 환영한 캐스(Cass) 양은 1월에 우리와 합류했고, 교육 사업과 전도 사업 양쪽 일을 하도록 임명되었습니다. 진료를 담당하는 매키넌(McKinnon) 양은 예정되었던 것보다 1년 빨리 휴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매키넌(McKinnon) 양이 상반기 6개월이 끝날 때까지 우리와 함께 지내준 점에 대해서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재 선교단 용정지부 직원들은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으며, 하고 있는 사업도 모두 큰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독립운동”이 우리 계획을 다소 변경시켰고, 몇 주일 동안 우리가 평상시 하던 활동 외의 다른 곳에 우리 에너지를 쏟아 붓게 되었습니다. 연말에 나온 정확한 통계는 없습니다. 하지만 간도(間島)지역에 있는 기독교 공동체 모임 장소는 100여 개이고, 여기에 모이는 인원은 8,000여 명으로 산출됩니다. 힐튼(Hylton) 여사, 스콧(Scott) 씨, 마틴(Martin) 박사 부부, 매키넌(McKinnon) 양, 캐스(Cass) 양, 페일소페(Palethorpe) 양은 2학년 언어 시험을 끝마쳤습니다. 힐튼(Hylton) 씨 부부는 용정지부 직원은 아니지만 선교단 주택에 살고 있고, 병원, 교회, 학교 사업 등 각 분야의 지역 사업에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푸트 씨 영역(Mr. Footes Field)복음 전도 사업(Evangelistic)모든 지역의 복음 전도 상황을 검토하는 대신 복음 전도 사업의 특징 두 가지만 언급하는 편이 나을 듯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보고서를 읽는 분들은 전도 사업이 점점 더 발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계속 숫자가 늘어나는 교회를 관리할 직원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겁니다. 그렇다면 먼저 얼마나 작은 집단이 자립적인 신도 조직으로 성장했는지 알려주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 이주의 물결이 어떻게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선교단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멀고 먼 곳으로 흘려보냈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도 조직의 진화(The evolution of a congregation)몇 년 전,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난 젊고 똑똑한 신학생이 간도(Kanto-間島) 지방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새롭게 열린 지역에서 지역 주민들의 정신적 행복을 위해서 평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 신학생은 가족과 함께 서울에 있는 집을 떠나 간도지방의 작은 마을에 정착하였습니다. 그 신학생이 당장 목사로서 부름을 받게 되리라는 희망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조수(helper)로 채용되리란 희망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신학생은 사물이 숙성되는 수확기에는 수확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회가 제공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갔고, 시골 전 지역의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전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노래를 잘 불렀고, 신선하고 유익한 설교를 하였으며, 성경 공부 모임에 나온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이런 성경 모임은 점점 힘을 얻기 시작하였고, 새로운 모임들도 생겨났습니다. 2년 전, 그 신학생인 H. Y. 이(Lee) 씨는 평양(Pyeng Yang) 신학대학(Theological Seminary)에서 대학원 과정을 이수하였습니다. 이(Lee) 씨는 졸업하자마자 곧 목사로 부름을 받아 간도로 돌아갔습니다. N. P. 김(Kim) 목사의 신도 조직이 분리되었고, 그 중 다섯 개의 모임이 독립된 신도 조직으로 확립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조직의 중심에는 이(Lee) 씨의 가정 교회(Home Church)가 있었습니다. 이(Lee) 씨는 새로운 책임을 맡아 현명하고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Lee) 씨는 복음 전도 단체를 조직하고, 학교를 도와주는 일 등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을 모두 하면서도 언제나 더 많은 영역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Lee) 씨는 여기저기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고, 상황이 허락하는 한 언제나 초대에 응하며, 초대에 응한 일에서 언제나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10월에 이(Lee) 씨는 “전진 운동(Forward Movement)”과 관련하여 신도들을 소집하여 회의를 개최했습니다. 이 회의에서 이(Lee) 씨와 신도들은 지역 조사를 한 뒤 3개 분야로 진척시키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먼저 첫 번째로, 이(Lee) 씨가 순회하는 지역에는 성서, 신약, 찬송가 등을 포함한 기독교 문헌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책방을 만들어서 부족한 기독교 문헌을 충당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두 번째, 그 동안 기독교 신자가 아닌 주민들을 지원하려는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비기독교 신자 지원 사업에 전심전력할 수 있는 복음 전도사 겸 성서 보급원(colporteurs)이 선출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각각의 담당 권사를 두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다음번 회의 때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하기로 하였습니다. 이것은 담당 권사의 조언과 승인아래 여성선교에 주목하기 위함입니다. 이 세 가지 분야, 즉 권사(Bible woman), 책방(Book-room), 복음 전도사(Evangelist)는 연간 진척사항이며, 이 세 가지 모두 현재도 운용 중입니다. 매달 2달러 50센트가 이 분야에 사용될 수 있는 선교단 지원금 전액입니다. 당분간 이 돈은 전도사 급여로 사용하는 편이 현명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적은 액수의 금액도 받지 않겠다고 바라고 있습니다.이 신도 조직은 지금도 상당히 잘 갖춰진 조직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이 신도 조직은 책방, 거의 모든 계층이 다닐 수 있는 남학교, 여학교, 권사, 복음 전도사 겸 종교 서적 보급원, 그리고 목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른 신도 조직들도 상당히 발전해가고 있습니다. 복음주의 운동에서 이런 조직의 완벽화, 기금 조성, 적극성 등이 선교사들이 각 지역에서 보고 싶어하는 발전된 모습입니다. 이주(Migration)간도(間島)로 건너온 대다수의 조선인들은 자신이 정착했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겨 다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2~3년 동안 이주 동향은 국경 마을에서 서쪽지역과 북쪽지역으로 돌아오는 추세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주민들은 계곡을 따라가서 땅이 비옥하고 산림이 울창하며, 인구가 드문 지방에 자리를 잡습니다. 이주민들은 그곳에서 경제적으로도 훨씬 더 윤택한 생활을 하며, 대부분 정치적 골칫거리로부터 자유롭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예전에 간도에서 정착했던 선대들이 지은 교회보다 더 큰 교회를 짓고, 더 좋은 학교를 세우고 있습니다. 그들은 거대한 토지를 차지하고, 그것을 오직 기독교 신자들에게만 매매함으로써 이런 일들을 해낼 수 있습니다. 선교사 뿐 아니라 목사와 전도사들은 이런 움직임을 신중하게 연구하고 있고, 이런 움직임을 따라잡는 방법에 관한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새롭게 간도에 정착한 이들은 기독교인들인데 그들이 계속 목사가 없는 상태로 지낼 수는 없었습니다. 작년에 N. P. 김(Kim) 목사는 자신이 맡고 있던 직을 그만두고 50마일 떨어진, 새로운 정착지의 중심인 명울고(Myung Wull Kou) 쪽으로 이주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교회의 헌신적이고 유능한 장로도 이 새로운 책임을 나누어지기로 굳게 결심하였습니다. 푸트(Foote) 씨는 장로교의 요청에 따라 11월 초에 새로운 정착지 인근 지역에서 열흘 동안 지낸 적이 있습니다. 푸트(Foote) 씨는 대략 20 세대로 구성된 신도 조직 두 곳을 방문하였고, 각 10 세대로 구성된 신도 조직 두 곳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모임 장소 네 곳에 관해서 들었습니다. 이 신도 조직들은 모두 김(Kim) 씨를 자신들의 목사로 모시게 해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이 요청은 12월 초 장로교 특별회의가 개최되기 전에 이뤄졌고, 받아들여졌습니다. 따라서 4년 전만 해도 미지의 곳이었던 이 지역은 신도 조직을 갖게 되고, 목사를 모셔왔으며, 2개의 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지역은 자급자족하고 있습니다. 닌구타(Ninguta)가 중심지인 또 다른 새 이주 지역은 앞서 말한 지역보다는 다소 힘든 지역입니다. 닌구타(Ninguta)는 용정(Yong Jung)에서 500리(165마일) 떨어져 있습니다. 닌구타(Ninguta) 이편의 50마일 정도는 산적들이 우글거리는 산맥입니다. 이런 환경 때문에 그 지역에서 기독교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영사는 우리에게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그 길로 가지는 말라고 충고했습니다. 닌구타(Ninguta)의 인구는 50,000 여 명이고 대부분 중국인입니다. 이 도시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Trans-Siberian Railway)가 통과하는 곳에서 20마일 이내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중국에 있는 이 도시와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 사이에는 선교단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신도 조직 50여 개가 있습니다. 새로운 지부(station)가 이 문제를 해결할 것입니다. 새로운 지부가 생기면 우리는 러시아에 있는 신도 조직을 포함해서 이 지역의 신도 조직을 인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 광활하고 비옥하며 매력적인 지역으로 끊임없이 이주해가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보살펴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독립운동(Independence Movement)독립운동은 도처에서 선교 사업을 방해하였습니다. 다른 어느 곳보다도 북부지역(Northern district)으로 알려진 곳에서 가장 심하게 교회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 같습니다. 북부지역에서는 지도자들과 장로들이 아직도 몸을 숨기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사직해야 했던 전도사도 있습니다. 전도사 두 명은 여전히 조심하면서 비밀리에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처한 북부지역에서도 새로운 집단이 생겨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집단에 대해서 보고하겠습니다. 북부지역 전역에 여학교가 몇 개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여학교들의 수준은 우리 미션스쿨의 수준보다 훨씬 낮은 편입니다. 우리는 학부모들이 적합한 학생들을 미션스쿨로 보내게 하도록 종교 지도자들과 장로회, 목사들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미션스쿨을 졸업한 여학생들은 여학교의 교사가 되거나 여성신도들의 지도자가 됨으로써 자신들이 다니는 교회에 큰 도움이 되는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남성들은 대부분 아들을 교육시키는 일에는 굉장히 열의를 보입니다. 하지만 딸 교육에 열의를 보이는 남성은 극히 드뭅니다. 우리는 지소(out-station) 출신 여학생 몇 명에게 훌륭한 기독교 교육을 시키는 방법의 일환으로 각기 다른 전도단체가 추천하는 적합한 학생들에게 매달 1달러를 지원하였습니다. 이런 방법은 규모는 작지만 바람직한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시골 교회와 도시 교회 출신 여학생 몇 명이 미션스쿨에 다니고 있습니다. 기독교 문헌 보급원(Christian Literature Colporteurs)올해는 이 분야에서 일할 일꾼이 고용된 첫해입니다. 경험이 많은 두 명의 일꾼이 많은 가정에 기독교 서적을 보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일꾼이 기독교 서적을 보급하지 않았다면 이들 가정은 기독교 서적 없이 지냈을 것입니다. 기독교 서적 보급원은 또한 복음 전도사이기도 합니다. 기독교 서적 보급원의 월급과 서적 구입을 위한 자금 출처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기독교 서적 보급원을 선출하고 그들의 사업을 감독하는 조선인 교회입니다. 두 번째는 해외선교부입니다. 세 번째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조선인들의 친구 두 명이 보낸, 실로 고마운 선물인 100달러입니다. 그 친구들의 고향은 캐나다 노바스코샤주(Nova Scotia)의 픽투(Pictou)입니다. 하지만 그 친구들은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친구들이 보내준 소중한 선물에 마음 속 깊이 감사드립니다. 푸트(Foote) 씨는 6개월 동안 교실 학습(class work)과 교회를 돌아다니면서 순회 연설하는 일에 헌신하였습니다. 푸트(Foote) 씨는 이 6개월 동안 849마일이나 되는 거리를 다녔습니다(그것도 거의 모든 거리를 달구지를 타고 다니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