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글자크기조절

콘텐츠

선택

선택

    미주흥사단

    콘텐츠/미주흥사단 [] 에 대한 전체 1490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141 송창근이 최희송에게 보낸 편지

    日前에 信速히 보내주신 東光은 반갑게 받어 적지 않은 生覺을 거기에서 얻었사외다. 이어서 오늘 便紙를 주시니 고맙습니다. 당신 便紙는 받으면 받을수록 마음에 神通한게 그렇게 좋습니다. (헤 十年 前에 女學生들 달래는 便紙式에서 나왔음. 그리 아쇼) 如何間 당신은 夫人께만 孝子인줄 알았더니 나한테까지 孝子구려. 그렇게 信實하게 해달라는 대로 척척하시는 양이. 내가 新韓民報 代金은 五年째 떼먹는 판이요. 三一申報 代金은 一年 半 떼먹고 그만 停刊이 되니 더 못 떼어먹었소. 하지만 東光 값일랑 안 떼어먹을 作定임. 大히 安心하시오… 요즘 日氣가 좋소. 참 좋구려. 하루건너 놈의 自動車 얻어 타고 山으로 가서 놀다가 돌아오는 玆味가 중우절의 糧食이오. 大關節 당신은 날더러 “目死” 님이라 했음. 님 字는 好好하나 “目死” 二字는 不好耳. 소같이 우둔한 兩班은 당신 外에 없겠소. 내가 여기서 무슨 工夫를 크레지 되도록 한다고 웬 쌔끼를 꼬구 앉았소. 먼 前番에 다 일러 주었어도 健康을 爲해서라고. 개똥이나 한 그릇 잡수시오. 허이 너무 큰 待接을 했군. 이것 보. 선생(先生) 大關節 六月 初에 그리 가면 어디서 일 좀 할 데 있소? 누구 집 채소 장사하는 데 가서 일 좀 해주고 돈 좀 못 모을까? 牧師님이 돈 때문에 눈이 어두웠소. 돈을 모아야 旅費해 가지고 집에 가서 큰 딸은 시집을 보내고 작은 딸은 普通學校에 보내고 큰 아들 놈은 平壤을 보내서 中學工夫 어서 시켜서 내 아이 늙으면 그놈들 德에 아니 살겠소. 내 希望은 이렇건만 世上이 자꾸 惡變을 하는데 그놈들 마음이 바뀌어서 우리 늙은 兩主를 돌아보지 않으면 어떻게 하우? 이것도 한가지 큰 근심이오. 얼마 前 우리 집에서 내 늙은 아내가 게발 개발 같은 國文 便紙를 했는데 날 보고 싶어 운다고 하였음. 정말일까? 아들놈의 便紙에 “아버지는 집안 식구들 다 굶어죽게 되는데도 本國을 안 오시니 우리는 어떻게 살람니까?” 大端히 正直한 便紙지만 責望. 딸의 便紙 曰 “本國에는 어느새 봄임과 아버님의 주신 아름다운 그림 葉書와 便紙를 받어서 읽고 읽고 또 읽고 몇 百番 읽었슴당”. 百番! 文學的이지만 거짓말. 熙松大人아 요즈음 世上이 어떻게 돌아가오? 大關節 말 좀 하오. 呼嗚라. 슬프다. 打倒資産本主義敎育·左傾·右傾·農村問題. 아아 님이여. 눈물이 남네. 콧물이 남네. 이것이 내 보는 世上이요. 아멘. 부디 앓치 말고 大夫人 모시고 잘 계시우. 또 쓰오리다. 大字는 尊稱의 쓰는 까닭을. 貴夫人은 大夫人이라 称함.

    142 Say B. Kim이 최희송에게 보낸 편지

    당신과 가족 모두 안녕하시겠지요.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지만 저희가 집을 장만하여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패터슨(Paterson) 시의 바로 외곽에 있는 곳입니다. 저희의 새 주소는 N.J. Kindly의 토토와(Totowa) 보로(Borough), 토토와(Totowa)가 528번지입니다. GKG 회보는 이쪽 새 주소로 보내주십시오.

    143 흥사단에 보낸 편지

    아름답지 않나? 내 상황이 힘들어지면, 자네는 언제나 나를 도와주었지. 감사 - 이 단어가 내 마음을 설명해주고 있다네. 나는 지금 잘 있네, 부족한 것 하나 없이 편안하게 지내고 있지. 내 마음과 몸이 강한 정신적 물리적 힘을 갖게 되도록 날마다 소망하고 있네. 연례 회의에 참석하지 못해서 미안하군. 자네도 알겠지만, 어머니의 호박 파이가 잘 팔리고 있네, 그래서 웃을 수 있는 것 같군. 안타까워하고 걱정하는 것보다는 웃는게 나을 테니 말일세. 이건 내가 병원에 있을 때 지었던 재미있는 시라네. 웃으면 얼굴이 붉어지고 화를 내면 안 좋은 얼굴이 된다. 웃으면 마음이 밝아지고, 걱정하면 못생긴 얼굴이 된다.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새해 복 많이 받게나.

    144 오익은이 최희송에게 보낸 편지

    只今에야 비로소 執筆할 機會를 얻은 듯 싶소이다. 數年間이나 一次로 直接 消息이 막히었던 諸位 同志들에게 한글 같은 問安을 드리나이다. 朝鮮內 會友들은 如前하오며 우리들이 하는 事業이라고는 今年初부터 東光을 續刊하는 것 뿐이올시다. 東光 經營에 對하여 數字를 드리려고 하옵나이다. 東光豫算에 對하여는 打算的으로 如左히 設劃을 세웠습니다. 部數는 今年에 二千五百部, 明年에는 三千部, 第三年에는 三千五百部, 第四年에는 四千部 以上으로 讀者를 求하리란 것입니다. 이만한 讀者를 求하는 일이 勿論 容易한 것은 아니로되 우리의 勞力과 또는 協助와 其他 모든 聲名으로써 될 것을 確信하는 바이올시다. 雜誌가 四千部 以上만 팔리면 收入과 支出이 相殺되옵니다. 然이면 先金隔通金(一月前 出版 及事務費)으로 日貨로 千円 以內면 잘 할 수 있겠습니다. 初年 卽 今年에서부터 이 앞 三年間은 四千部 未滿이니만치 損을 우리가 보게 되옵니다. 其三年間 全數 보는 損을 日貨로 六千円을 豫算하였습니다. 第一年(今年)損이 三千元, 第二年에 二千元, 又第三年에 千元을 豫算하였습니다. 처음 해에는 部數도 적게 出版될 뿐 아니라 二年 前 東光 發刊 時 先金 받은 것을 갚게 됨으로 損金이 部數에 比하여는 많이 豫算되었습니다. 其 後年도 同一한 理由의 損을 보게 되옵니다. 以上에 세운 豫算에 따라 六千元이란 돈을 아니 모으고는 事業을 할 수 없으므로 各 同志들이 負擔케 하였습니다. 負擔金 收入은 一定한 期會대로 收入됨으로 事業은 進行中이올시다. 其負擔金 六千元 中에서 四千五百元은 되었으나 一千五百元은 아직도 못 되었습니다. 未準中에서 三百円으로 內至 五百円 可量은 될 可望이 있습니다. 同志 中에서 아직도 아니 내신 이가 있음이올시다. 餘千円으로 內至 千二百円(美貨로는 六百弗)은 不得不 海外同志들에게 懇請하나이다. 會友數 로 말하더라도 義務하는 會友 數는 海外가 二倍 以上이오며 經濟的 形便이 어렵다 하시더라도 朝鮮보다는 나을 것이올시다. 打算的 計算이 없이라도 否認할 수 없는 事實이올시다. 그러면 二倍 以上의 會友들이 經濟的 形便이 比較的 나으신 곳에서 千二百円이라 하여도 全 六千円에 對하여는 五分之 一에 不過합니다. 이 적은 額數를 아니 도우시면은 아니 될 줄 아오며 또는 힘써 協助하실 것을 確信하는 바이올시다. 最少 限定하고 千二百円(美貨 六百弗)입니다. 此 以上되온다면 더욱 좋을 것이올시다. 海外會友는 도리어 負擔이 比較的 弱하온 것은 以上 말씀하였거니와 協助하지 않으신다면 우리들이 其間 드린바 精力과 物質은 水泡에 歸하고 말 것이며 다시는 무엇을 하여 보겠다는 勇氣부터 減縮됨을 不免될 이라고 하나이다. 必死的 精神으로 일이 成功되도록 勞力을 같이 하옵기를 바라나이다. 數多한 도움을 구한 것도 아니니만치 協助하실 것을 確信하오며 이곳 일은 此友가 擔保라도 하라면 擔保하겠나이다. 以上이 말씀한대로 도움을 請한 것이온데 朝鮮內와 如히 今年 當場에 美貨 六百弗을 請하는 것도 아니올시다. 三年에 分하여 損害를 보는 比例대로 第一年(今年)에 美貨 三百弗 第二年에 美貨 二百弗 第三年에 美貨 百弗을 要하나이다. 實로 쉬운 負擔입니다. 이것도 不可能하다고 하면 들은 손을 내리고 메인 띠를 벗어 버리는 것이 도리어 可하다고 보겠습니다. 今年條 中에서는 美貨 三百弗을 一朝에 速히 보내 주시면 더 좋겠으나 五十弗이고 百弗이고 모이는 대로 東光社로나 弟에게로나 보내 주시면 좋겠습니다. 할 수 있는 대로 海外同志들의 負擔이 輕하리만치 現金으로 速히 보내 주시어야 겠습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朝鮮內 會友들은 約束 手形들(Pronuissory notes)을 다 썼습니다. 其 期限들이 좀 늦습니다. 第一次로는 今春에 쓰고 第二次는 秋와 冬이 期限임으로 夏節을 지날 것이 큰 問題됨이올시다. 約束手形은 쓰셨다니까 冷笑하실지 모르나 不實한 이라는 約束手形은 아니 받고 現金 뿐입니다. 이만치 手形이 信用 있고 今春 것은 期限 前으로 다 收入 되었습니다. 이만해도 朝鮮도 모든 것이 事業化로 되었습니다. 할 수 있으면 小數의 負擔이니만치 陽四·五月 以內로 다믄 幾數金이라도 보내도록 하시옵소서. 모와 두었다가 一朝에 다 보내시려고 生覺지 마시옵소서. 朝鮮內에서도 여러분들이 얼마씩 每朔 或은 每三朔 或은 年二分해서 或은 年一次해서 出捐하는 것이니 同一한 態度를 取하시어야 事務經營이 困難을 좀 避하겠습니다. 其他 일은 여러분이 推想에 맡기시며 또는 물으시는 대로 速히 答코자 하와 이만 씁니다. 豫算計劃을 보내 주시기를 要求하실 줄 아오나 手中에 없어서 못 보냅니다. 細目뿐이지 大體로는 以上 말씀 드린 것과 같습니다. 其外 또 하나는 讀者 求得하시는 일과 先金받어 보내실 일을 잘 하시는 것이 우리 事業이 뿌리박는 것이올시다. 이것이 將來를 爲하여는 더 重要한 일이올시다. 모쪼록 輕視치 마시옵소서. 이만. 回答을 要하나이다.

    145 주요한이 최희송에게 보낸 편지

    주신 편지 고맙게 받아 보았습니다. 東光 二月號와 三月號는 아마 到着되었을 줄 아옵니다. 記錄하여 보내신 金相鉉(金相鉉)·金仁完(김인완)夫人·金東仁(김동인) 三氏에게는 四月號부터 無違發送하겠사오니 照諒하시오며 其他는 美洲에의 形便에 依하시어 適宜處理하시옵소서. 指示대로 하겠나이다. 삼가 在美 諸位同志의 健全을 비옵고 略白하나이다.

    146 김동순이 최희송에게 보낸 편지

    二月 五日에 주신 공함과 영수증은 자세히 받아 보온즉 저금본액과 이자까지 병하여 부쳐주시니 감사만만이외다. 연이오나 한 가지 난처한 일이 있소이다. 다름이아니오라. 어제 본국 김정설 군에게서 편지가 왔삽는데 이간에 군과 면이 변경되여 開豊郡 嶺北面이라 하였으니 어찌하면 좋을는지요. 돈 부친 번지는 소용없이 될 듯 하오니 힘써 주시는 중 한 번 더 주선하시여 오착되온 번지를 돈 부친 지점에 가서 정오하여 주시기를 천만 바라옵나이다. 새 번지는 여하오이다. 朝鮮 京畿道 開豊郡 嶺北面 吉水里 兩合內分田一百六十番地 金貞實(김정실)이외다.

    147 임천택이 최희송에게 보낸 편지

    오랫동안 안부를 드리지 못해서 심히 죄송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인형의 공무상 체후 늘 건강하심과 귀회에 항상 발전을 축원하나이다. 쿠바에 계신 동포들은 육신상 별고는 없이 지내오나 경제상 공황으로 생활상태는 실로 불성모양입니다. 그래서 사회며 기타에 단체생활이 잘 되지 않습니다. 이제 청하올 말씀은 「동광」신년호, 二月호 두 달치 잡지를 지금이라도 구하여 볼 수 있습니까? 그것을 통지하여 주시든지 할 수 있으면 상기된 것이 있거든 부쳐 주시든지 하는 그것이올시다. 다만 이 몇 마디 말씀으로 재미동포들의 건강하심을 빌고 이만 그치나이다. 앙축만안

    148 양00이 흥사단에 보낸 편지

    나의 通信上 게으름을 자주 책하거든 兄이니까 별다른 말씀으로 용서를 청한다면 더욱이나 새삼스러운 일이지만은. 하여간 나로서도 좀 미안스러움을 아니 느끼는 바는 아닙니다. 거기는 더욱 몇 다른 무슨 실패는 없지만은. 하여간 모든 일에 經營되고 재미있게 잘 진행되지 않는 것만은 事實입니다. 지금으로부터 한 일삭 반 전에 上海를 떠나서 南洋에로 간다는 목적으로 香港(홍콩)까지 왔다가 다시 廣東省 廣東地方에 와서 당분간 머물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벌써 七·八年來 우리 獨立運動을 積極的으로 하는 사람이 몇몇씩은 늘 있어 오늘 가운데 特別한 것은 黃浦軍官學校가 이곳에 있는 이 인줄 그 學校에는 우리 學生들과 밀접한 관계가 많은 것도 형께서 잘 아실 줄 아옵니다. 최근 一年 餘間에는 特別한 活動이 이곳에 없었지만은 三四介月 前부터 다시 어떠한 사람에(權氏) 활동으로 전일인변이 다니시며 지기 시작되었는데 지금에 있어서는 재미가 대단히 많다는 것. 보다도 호대한 사상이 넉넉히 있습니다. 그간 中止 中에 있던 黃浦軍官學校가 今 六月初에 開學이 될 터인데 우리 학생을 中國人과 똑같은 취급을 하여서 乃至 五·六子 名이라도 養成할 수 있는 具體的 約束이 成立되었소. 그럼으로 至今부터 內地를 通하여 有望한 學生을 모집 중입니다. 그리고 또는 이곳에 航空學校가 벌써 얼마 전부터 있는데 그곳에도 우리 學生을 … (원본누락) … 지는 養成할 수 있는 교정이 되었습니다. … (원본누락) … 리는 勿論 어디서나 어떠한 거리 … (원본누락) … 動할 必要가 있다고 보는데 … (원본누락) …까지 모두 합하여 九人이나 여러 가지 관계로 交通이 되는 이만은 아직 六人뿐인데 數가 너무 적기 때문에 具體的으로 조성된 단체는 없으나 조만간 몇몇 同志가 來到케 되겠는데 그 때에는 韓國國民革命黨前衛摠部를 조직하려는 경륜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상 말한 포부와 주선을 가진 우리로서는 공당으로만이나 理論만이 無用하고 실지를 지켜 行함이 必要타 하며 항공대를 어떻게 조직한다는 것이 또한 절실히 필요함을 느끼게 되며 돈 없는 우리가 어디서 갑자기 비행기를 사올 수가 없으니까 두루 궁리하다 못하여 年前 金宗林(김종림) 氏에 기부로 된 우리 역사에 청함인 그 두처에 비행기가 지금 어떠한 형상으로 있는지 좀 알고 싶습니다. 金氏가 自己所有라고 하여 주지 않을 것은 미처 생각도 아니하여 보고. 하여간 그이도 그것을 우리 革命에 쓰려는 것이니까 遠東 다 같이서 허락해 주지 않을 것 같지는 않은지요? 勿論 時間내어 ●가 없는 光이지만은 兄의 분투무가한 그것이 벌써 우리 革命事業에 하나인 만큼 지금 제가 요구하는 그 비행기에 어떻게 되어 있는 것과 또 그이가 그것을 이곳에 줄는지 아니 줄는지 하는 문제입니다. 물론 여러해 동안 쓰지 않은 것이니까 성하였을 리는 없겠지만은 정말 아주 못쓰게만 안되었으면 또 그곳에서 할 수 없으면 몇 부분 어떻게 반이라도 이곳에 갔다가 그럭저럭 고쳐서 어떻게 쓰게 하였으면 대단히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곳에서 살아가고 活動하여 본다는 것은 전혀 本省 政府에서와 本市 國民黨摠部와 國民革命黨 陸軍 第六十三師에 特別 도와줌을 받는 것이니까 無를 교체하는 그래도 우리는 오직 붉은 마음과 손만 있다 하는 것 보다도 물질도 그래 이런 것이 있고 또 사람도 이같은 것이 있다 하는 것을 내어놓을 무엇이 있다고 하는 것이 안 좋겠습니까? 昨日 三一記念에도 우리 六人을 合하여 近 四十名 人士가 모여졌는데 各黨部 及官廳要人들과 安南(베트남)國民黨代表와 緬甸(미얀마)代表 等이 參席하였고 陸軍部로서는 銀牌紀念品이 來到하였습니다. 얼마만큼 성대하게 또 만족한 기념식을 지냈습니다. 저번 강형섭 군에게 전하여 달라는 편지를 수차 부쳤지만은 인제 다시 전상되는 것은 飛行士입니다. 兄의 生覺에 만일 강형섭 군 외에라도 가능한 믿음직한 우리 동지 비행사가 있거들란 곧 편지하여 주옵소서. 어쩌면 여비까지라도 보내줄 수가 있겠고 또 나온다고 하면 순전히 희망적으로 우리 혁명을 원조하라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보수를 받고 敎官노릇 할 기회가 있습니다. 만일 일이 다 뜻과 같다고 하면 적어도 좋은 동지에 두 비행사가 두 대의 비행기를 타고 一週日 後에 이곳에 渡來한다고 하면 무엇보다도 더 큰 힘을 낼 수 있고 또 우리를 도와주는 저이들도 일층 새롭게 새 힘을 지을 것입니다. 廣東이 本是 孫文(손문)의 革命祖上地인만큼 革命에는 퍽 齊達되었다기보다 동정심이 많습니다. 不遠한 時日內에 東方小弱國民同盟會라는 名稱을 가지고 韓國·安南(베트남)·緬甸(미얀마)·印度人 等의 會가 조직될 것입니다. 부디 말한 以上 두 가지 요구에 用力하여 주심을 간절히 바라옵고 또는 이상에 쓴 말씀을 혹 必要에 따라 個人에게까지 비밀을 지키랄 수는 없지만은 신문이나 잡지 상에는 절대 비밀이오 물론 얼마 후에는 공개하겠지요. 사정은 첫 장 뒤에 있소. 벌써 얼마치 단보를 못 … (원본누락) … 그런데 금번 또다시 서무 주 … (원본누락) … 그리고 “ 부티색시‘ 경수 씨는 六介月을 … (원본누락) … 다는데 期限이 거진 되어가지 않습니가? 어떻게 다시 주민이 되오? 한 두번 편지하는 수가 있겠지요? 만일 없다면 참 섭섭한 일입니다. 어떻게 작별을 하려노? 畢竟 太平洋에 增水가 되겠구려. 안되게를 마시오. 여보 일출을 느꼈소. 그런데 그 따님이 인제는 퍽 컸을 모양입니다 그려. I think she is quite old enough to have a younger brother. Please d′ont Miss to have a young one by their time (이하 云云한 英文 二行 生略) 하여간 재미스러운 일과 꿰도 많았겠지만은 코열이 놓고 답답한 꾀로 퍽하였으리라고 추측합니다. 어쨋든 성공일 것입니다. 나도 한번 기회만 있다고 하면 그와 같이 재미있는 살림을 하여 보기 위하여 함께하여서라도 장가 들겠소. 不幸타 不幸타 해도 나같이 불행한 자는 世上 없을 것입니다. 생각하면 기가 막힙니다. 기가 막혀. 여보 그런데 장가가는 兄의 前途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소? 무슨 좋은 방략이 있소? 山翁에 度洋은 上海 있을 때에 대강 들었는데 무엇보다도 여비가 문제입니다. 참 그놈의 돈. 그 원수 왜 그렇게 일 當마다 따라 다니며 성화만 시키는지. 그런데 미국에 경제공황이 좀 풀리는 것 같지 않소? 어떻게들 지내시오? 신문 상으로 듣기는 너무 끔직하외다. 굶어 죽는 듯 싶구려. 뇌동이 몹씨 귀하오. 中國에 있어서는 말할 수가 없소이다. 은값이 어찌나 떨어졌는지 거진 대전 후 독일 마르크와 비슷하게 무루불과 거진 같이 갑니다. 美貨 十弗이 大洋 四十七元 角權을 하는구려. 그 이래로 外來品은 다 올랐지만은 아직 國廢物은 그다지 높지 않았소. 등으로 겨룬 교자 한 개에 大洋 三元式이면 얼마든지 사겠소. 관세는 五十五 %요. 겨우 산 것으로 떨군 것이나 천으로 만들고 떨군 것. 롱비치에 곳 벗은 처녀들·애들 만치 된 것인데 매때 장에 大洋 二元七八十錢이면 上等 것을 살 수 있소. 그 곳 형편이 웬만하고 또 이곳에서 物價가 갑자기 오르지 않은 때 한번 기회가 있다면 돈 남을 것 같소. 뻔히 보고도 못하니까 기가 막혀 죽겠소. 그만 두겠소. 부디 평안하셔서 하는 일이 그 무엇인지 스스로 만족을 느끼면서 잘 지내시오. 그리고 최부인이 계시면 특별 문안하여 주시오. 나의 입술이 즌득하여서 특별키쓰를 보내니 兄이 대신 집행하여 주시오. 여러 同志들께 大安을 祝합니다. 中國 廣東省 廣州市 中山大學 第一醫院內 金玉善(김옥선) 氏 交 굳 나이ㄷ. Y요.

    149 에드윈 황이 흥사단에 보낸 편지

    여러분께, 이전의 그 수표에 해당하는 금액을 충당하기 위해서 10 달러($10.00)짜리의 제 수표가 동봉된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제가 계좌 이체를 하였을 때, 그 이전에 발행했던 수표를 동봉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하여 불편을 끼쳐드린 점,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150 우태호가 흥사단에 보낸 편지

    二月 拾壹日 주신 글월은 고맙게 받았습니다. 兄님 그냥 團所에서 수고로울실 줄은 믿지 못하고 누가 지음 계신지 몰라 그냥 團所로만 前番 글을 부쳤습니다. 내가 兄님의 事情(個人)이 團所에 그냥 계실 형편이 못됨을 알음으로. 그리고 羅城(로스엔젤레스)諸友 消息을 듣고 기뻐하였습니다. 에. 저는 지금 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前보다 倍나 時間이 급합니다. 전學校 校長의 懇切한 紹介가 有力하였습니다. 그래서 入學도 쉽게 하였습니다. 어서 學校마쳐가 나갈 作定인데 前校門에서는 아무대로 無限歲月임으로 除萬事하고 校長에게 轉校를 부르니 이 처음에는 實力萬能이니 무엇이니 만류하였으나 結局 이 學校로 차나 ●...●를 주어서 許可를 얻고 旅費라고는 한 分 없었습니다. 250$은 다 달아났음으로요. 그래 Hornell 내가 아는 믿던 牧師에게 50$ 貸用을 請하였더니 그냥 少年척후대와 其外 某氏가 준다고 五拾元 해주어서 여기까지는 왔으나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음으로 처음 Y·M·C·A를 찾아 이 Town 學生牧師를 찾아 주인을 정하고 土자공학으로 九時間(大學과) 연구과 二시간 Art연구과에서 두시간을 택케 하는데 오는 여름에까지 하면 오는 聖誕放學에는 M.A.infine Art를 얻겠다고 합니다. 이 學校에 넷 여름에 열 가을에 열 合 二十四 Unite을 하고 論文은 先生님이 定해 주시는 冊 보고 열람해서 四拾項 가량 쓰리라고. 그것도 先生님이 도울 터이라고 합니다. 참 親切합니다. 늘 연구원에서는 先生님이 한 대 피우시면서 또 한 대 권하여 저는 안 먹었습니다. 그리고 돈은 다 떨어졌습니다. 五十弗에서 車비·房貰·食費하니 限 拾弗 남았는데 (이하 云云한 英文 二行 生略)서로 안 오면 큰 일입니다. 그런 中 Hornell 高級中學校長이 참 간곡한 천거를 이大學 農과 Weam에게 하였음으로 Weam의 편지(事實 及 만나 보자는)를 내 先生에게로 전해주어 월사금 채근인가 하고 놀랐더니 其와 반대로 自己가 經費 주선한다고 하였으므로 기뻣습니다. 학교 校費生으로 넣어 주려고 힘 썼으나 (그이가 교비生 선택위원長임으로) 一學期가 아님으로 못하고 어제 오늘 兩日이나 會社에 가서 이번 學期 學費(월사금·기숙비)를 얻어 주겠다고 安心하래서 참 기뻐합니다. 그리고 牧師는 또 어느 늙은 과수(근 五十 五歲) 부인이 매우 나와 같이 있기를 원한다고 하기에 일 시키려는 줄 알고 있으니 苦學生 하나가 있음으로 일은 할 것이 없고 거저 목사가 나를 좋은 學生이라고 하기 같이 있으라고 한다고 있자고 하면서 (自己 남편은 五介月 前 죽었고 自己는 無子女로 노리고) 지금 있는 집에조차 자기가 말해서 쫓겨 나오게 하겠다고 합니다. 참 小說같이 잘 됩니다. 그러나 여름까지 공부하기 위하여 받을 곳에는 다 다시 請求하였습니다. 여름까지 즐곧 工夫하려고요. 그리고 (이하 云云한 英文 二行 生略)이 Fah로 宣敎會에 請求하였다고 通知했습니다. 속히 마치고 나가겠습니다. 이번 여行은 참 모험이었습니다. 그러나 다 신기하게 잘 됩니다. 官立學校는 올 수 없다고 하나 여기서도 全學費를 주기로 작정인데야 어찌 합니까? 여름을 爲하여 얼마를 저축하였다가 여름까지 하겠습니다. 이것은 제 私函입니다. 金細炯(김세형) 君이 알고는 兄님이라니까 兄님에게 알게 함입니다. Philadelphia(필라델피아)는 二百五十哩라고 합니다. 단보는 받었습니다. 떠날 때에 새 住所를 우편소에 두고 왔음으로 옴. Hornell서 떠날 때 몇몇 사람이 늘 편지해 달라고 또 어려운 일 만나면 알게 해 달라고들 하였으나 편지만 하고는 잘 있음을 알게 하였습니다. 亂筆로 너무 길게 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