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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주흥사단

    콘텐츠/미주흥사단 [] 에 대한 전체 1490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101 천세헌이 최희송에게 보낸 편지

    兄의 形便은 團報로 略知하였습니다. 얼마나 汨沒하십니까? 微友는 傷處가 거의 完差되어서 四月 二十二日부터 村家 家役을 始作하였습니다. 今日은 本團 創立紀念한다고 市內에 돌아왔습니다. 이 事役을 그대로 繼續케 되면 團에 대한 債務를 速히 淸帳하겠습니다. 前者에 말씀한 바 廉光燮(염광섭) 博士의 復團 件은 웃음거리 모양이 되었소이다. 弟의 橫傷入院키 前에 廉과 屢次 討論한 바 廉의 말이 自己는 團에 對하여 義務를 實行한 사람으로 其時 어떠한 難關으로 退團書를 提出한 바 團에서 接受與否도 一無通知하였고 其後론 一切 通信이 斷絶된 바 本 地方 團友로는 亦是 冷冷하였다 하고 다시 말하기를 至今 千君의 말씀에 對하여 반갑고 感謝云云. 또 말하기를 나는 團友를 나의 同志로 아는 바 여러 團友도 나를 同志로 안다면 文字로 나에게 表示를 하도록 하면 나는 復團 手續을 곧 달게 하겠다 하였기로 去二月 團友會 團會 後에 私式으로 그 意向을 發表하고 總務나 書記 名義로 廉君의 復團을 歡迎한다는 便紙를 하는 것이 어떠냐 한 즉 其時 出席 團友 總務 · 書記外 望甫 及弟 四人인데 總務가 絶대 不可를 宣言한 후 弟의 생각은 다른 形式으로 實行하려 하였던 바 不幸히 弟의 橫厄으로 그 일을 마감치 못하고 있다가 去 四月 初에 廉과 再論한 바 自己는 自己의 主見을 絶對 主唱함으로 일이 實現치 못하였습니다. 이 廉君 事件에 대하여 弟는 特別 本 地方 團友에게 對하여 異常한 感이 發生하는 것은 特히 廉의 出團 問題로 因하여 理事部 處事 不復한다는 意味로 式年·年會·月會 때마다 如何한 意案을 理事部에 提出하다가 及其也 本 問題 解決할 만한 데에는 奇言怪態를 做出하는 것입니다. 勿論 兄도 잘 아시는 바이지요만은 其時 總務 李炳斗(이병두) 君은 此 所謂 獨善其身格으로 自己 個人 義務는 特히 잘 履行하지마는 自己 周旋으론 一介 團友를 아직까지 募集하지 못한 것으로 그 周邊을 可知할 것이외다. 安先生은 同胞間엔 無抵抗을 主唱하셨지만은 弟는 團友間엔 無抵抗을 絶對 主唱함으로 다시 辯論치 않겠습니다. 그리고 今後 弟의 社會에 對한 態度는 不干涉입니다. 國民會·敎會 무엇할 것 없이. 마지막으로 兄에게 알리고자 하는 것은 團友인 金剛(김강) 君이 本地方 敎會 牧師로 오게 된다 함에 對하여 敎會 內容을 略錄합니다. 이는 金君이 團友인 까닭에 前者 韓承坤(한승곤) 君의 經驗으로 兄도 짐작하시리다마는 우리 敎友로는 敎會를 治理할 形便이 絶對 不可能입니다. 其中에도 우리 同胞끼리 所謂 南北이 分立하여 北便 小數 中에 學生이 多數인 즉 財力이 全無합니다. 昨年度 境遇는 美國 宣敎會에서 每朔 一百元式 一年에 一千二百元 中에서 牧師 五百元 幹事 二百五十元을 주고 其餘在와 房貰 收入을 가지고 敎會貰 每朔 七十五元을 물어 왔습니다. 그런데 幸인지 不幸인지 宣敎會에서 今 四月分에 그 敎會를 우리에게 買給하였은즉 每朔 百元은 自然 停止되었습니다. 然卽 今後 牧師 月給은 房貰 收入으로 抵當하여야 될 形便이고 우리의 自給으론 豫測키 難하외다. 들은즉 金剛(김강) 君의 夫人이 房貰를 잘 收入하면 月給 作定한 대로 받고 그렇지 않으면 아니 될 內容이니 事實 難言한 中이외다. 勿論 已爲 作定한 대로 金君이 오시면 力及處까지 방조야 하겠지요만은 多少 困難이 있으리라고 豫測하고 오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弟는 恒常 無事 奔走하여 事實을 다 詳論치 못합니다. 恕諒하소서. 餘祝 兄體 健康하나이다.

    102 오천석이 최희송에게 보낸 편지

    오랫동안 막혔었습니다. 마음으로는 늘 가끔 消息을 전한다고 하면서도 이래저래 자연 생각대로 하지 못함이 유감이올시다. 近者에는 어찌나 지내십니까? 또 부인께서도 건강하셔서 계신지요? 그리고 團의 問題에 얼마나 골몰하십니까? 가까이 있어 도와 드리지 못함이 유감이올시다. 日前에 團을 代身하여 보내 주신 美麗한 書籍은 感謝히 받았습니다. 理事部 幹部 一同에게 혹 틈이 있으면 弟의 感賀를 傳하여 주십시오. 늘 記念하겠습니다. 申君이 弟의 論文出版을 대하여 仁兄게 말씀을 드린 줄 압니다. 弟가 直接도 말씀 드리려고 하였으나 변변치 못한 것을 가지고 여러분을 괴롭게 할까 두려워하여 말씀 못 드렸으나 이미 團報로도 記載되었으니 몇 말씀 드리겠습니다. 弟 論文의 長은 約 冊子로 二百五十面 가량 되겠는데 出版費는 約 九百弗 되리라고 합니다. 弟의 先生들은 이를 큰 敎育學에 對한 공헌이라고 생각하여 出版하기를 권고합니다. 그러면서 數處 出版所에 紹介하여 줍니다. 아직 正式으로 교섭은 못하였으나 出版費의 約 半分을 담보하면 出版도 하여 줄 듯 싶습니다. 그런데 그 半(約 五百弗)을 어떤 모양으로 담보하여야 좋을지가 問題인데 第一은 어떤 親友나 어떤 단체에서 多少 보조를 받는 일이겠고 第二는 親友나 단체에서 書籍구매 約束을 얻는 일이겠습니다. 어떤 方式으로 하여야 좋을런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一卷價를 二弗 五十仙으로 하면 二百部의 販賣 담보만 있으면 될 듯 합니다. 仁兄의 意向를 듣고 싶습니다. 論文 內容은 勿論 그것이 論文인만치 比較的 學者的 取扱이라 할 수 있으나 實인즉 日本이 朝鮮同化政策에 失敗했다는 것을 適發한 것이므로 우리 宣傳書籍으로도 使用될 듯 싶습니다. 東光 正月號는 十七部를 散賣하였는데 十四部代 $4.20 에서 우세 21전을 除한 3.99를 한군에게 傳했으며 三部代는 金永云(김영운) 君이 崔兄에게 直送하였다고 하니 받으셨을 줄 압니다. 仁兄 ●健康하심 빌며 郭 先生님께 安否나 드려 주십시오. 이곳 여러분은 다 無事하외다. 임근배 氏가 不遠間 쨘 君과 歸家합니다.

    103 최윤호가 최희송에게 보낸 편지

    公務多福을 祝합니다. 우리는 過樣이 如前하오니 萬幸이올시다. 歸國 期는 아직 期實이 없는 것을 이곳에서 計營하여 進行되는 일이 언제쯤 畢될는지 未詳함이로소이다. 宅夫人이 同行케 못됨이 퍽 遺憾萬千이올시다. 내내 健康하심 빌고 餘不備禮.

    104 김호철이 최희송에게 보낸 편지

    요사이 지내시는 재미 어떠하오이까? 그런데 未安한 말씀 드리옵는 바는 本總會 營業部長 한승인 氏의 말씀에 依하면 貴兄에게 "우라키" 판 돈 25$ 50仙 이 있으니 切尋하다고 하였었는데 其 25$을 弟에게로 付送해 주시면 大端히 感謝하겠나이다. 그와 같이 "우라키" 팔며 주시느라고 수고하여 주심에 甚히 感謝함을 드리오며 앞으로도 本會를 많이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當弟에게 명이 如意대로 되며 成功을 비는 此 一本 韓人 남동부 總會

    105 정석해가 흥사단 이사부장에게 보낸 편지

    本 團友는 오랫동안 단에 대한 義務와 報告를 행치 못하였으므로 실로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 단의 정신과 목적을 사모하는 정성만은 한결 같사오니 寬恕하심을 바라나이다. 전 단보에 依컨대 團友 義務金이 十弗인데 이것을 在留國 貨幣單位로 計算할 것이라고 온 이제 본 단우의 경우로는 佛國(프랑스) 돈 十弗 郞(franes)을 納하더라도 可할 듯 합니다. 그러나 佛貨(프랑스화) 一 franc이 美貨 四cents에 不過할 터인즉 이는 너무 輕小하오며 이즈음 제 處地도 좀 餘裕롭기로 一年義務金 佛貨(프랑스화) 五十弗式(美貨 二弗)으로 敢히 自量하여 昨今 兩年度 都合 美貨 四弗을 換送하오니 (受取人:young korean Academy라고 指名하였습니다) 적으나마 허수하여 받으심을 바라옵니다. 本 團友는 昨年 十一月에 이곳 파리大學 文學部內 哲學科를 畢業하였사오며 至今은 數學科에 學籍을 두고 지냅니다. 그런데 지난 三月 中旬에 西典(스웨덴) 서울서 留學하던 團友 崔英淑(최영숙) 女史가 還國하시는 途程에 이곳을 다녀가셨습니다. 로마·아테나·예루살렘·카이로·봄베이로 다녀서 지금은 아마 上海에 到着되셨을 듯 합니다. 김용정 氏는 이곳에 그냥 계신데 몸 평안히 지내십니다. 그이의 주소는 Y. Kim. 7 rue Leo Aelifes Paris. France 그이와 모든 通信을 그리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外封에 記한 바와 같이 下生의 住所도 變更되었습니다) 餘祝 理事部長 氣體大安

    106 최희송에게 보낸 편지

    至今 Denver에 왔네. 水曜日 夜半에 5th Main Unions tation에 到한다 하네. 夜半임으로 Salt Lake city에서 數時間을 보내며 木曜晝間에 羅城(로스앤젤레스)을 到할까 한 즉 適當한 車가 없기로 不可不 直行하여 夜半에 到하려고 하네. 停車場에 나올 것 없고 團所에 空房 있으면 豫備하고 居住하는 아무에게나 房門만 열어 두라고 하게. 내리는 대로 찾아가서 아무 때나 들어갈 터이니까 부디 나오지 말게…

    107 송창근이 흥사단에 보낸 편지

    便紙 부치고 꼭 사진을 잊었구려. 別封해 보내옴. 壁에다 붙혀놓고. 업드려 절을 하시오. 부디 付託한 계를 들어 주시오. 돈이 있어야 卒業狀을 사지 않겟소? 卒業狀 값이 二十五弗이라 조금 비싸지만 어쩌우. 中旬에는 로스앤젤레스로 가오리다. 만나면 여러 가지 이야기를 言上하오리다.

    108 송창근이 흥사단에 보낸 편지

    卒業式 後엔 곧 당신 계신 데로 떠날 豫定이외다. 中旬에는 볼 것 같소. 내 있는데 외다.

    109 김창세가 최희송에게 보낸 편지

    「東光」一年代金 (1931年度) 美貨 三弗을 胎送하오니 照收하옵소서.

    110 김주항이 최희송에게 보낸 편지

    주신 글월과 雜誌 고맙게 읽었습니다. 저는 興士團을 위하여 아무 일도 하지 않사오니 暫時 잊어 주옵소서. 外國에 다니는 處地라 뜻과 行實이 合치 않는 때 많사오니 어찌하리까? 언제나 비렁뱅이 生活을 免하게 되면 「同志」님네를 찾아보는 때 있겠습지요. 그렇다고 「大義」를 저버리는 것은 決코 아니외다. 金剛(김강)君 만나시오면 問安하여 주옵고 來六月에 그 못난 S.T.B 하나를 얻는다 하옵소서. 金剛(김강)君은 京城神學校에서 나보다 먼저 神學士가 되신 이외다. 모든 事業과 精神이 자꾸자꾸 자라시길 祝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