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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인국민회

    대한인국민회 에 대한 전체 4117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371 제50회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 회의록(1943.1.8.)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 부위원장 김병연의 사회로 1943년 1월 8일 집행부 회의를 개최한 후 의결한 것을 기록한 회의록이다. 회의 참석자는 박원걸, 김용중, 김성락, 송종익, 이성례, 송철, 김용성, 김병연 등 10인이고 3개항(장세운 사임청원, 박상엽과 영문기자건 교섭, 3.1절 기념식)을 의결했다.

    372 재미한족연합위원회 대표단의 주미외교위원부 재정건보고 문건(1942.11.)

    1942년 11월 주미외교위원부 확장과 발전책을 강구하기 위해 재미한족연합위원회에서 대표로 선정된 김호와 전경무가 워싱턴에 가서 이승만과 협의한 재정사항을 보고한 문건이다. 이승만이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의사부에서 받은 2,500원 중 1,000원을 경상비로 사용하기로 한 바 그 잔액은 의사부에 반환해 줄 것을 이승만에게 요구하였다.

    373 대한인국민회 제7차 대표대회 입안(1943.1.3.)

    1943년 1월 3일 북미 대한인국민회가 북미 12개 단체 대표들을 모아 제7차 대표대회를 열고 최종 입안한 사항을 정리한 문건이다. 총 10개 조가 입안되었고 주요 안건은 이승만의 소환을 임시정부에 요청할 것, 묵큐 동포를 위한 구제활동, 1943년도 새 중앙집행위원회와 감찰위원 선임 등이다.

    374 재미한족연합위원회의 집행부가 호놀룰루의 의사부로 보낸 전보(1943.1.20.)

    1943년 1월 20일 미한족연합위원회의 집행부가 호놀룰루의 의사부로 보낸 전보다. 집행부는 이승만과 주미외교위원부 개조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재미한족연합위원회 대표로 김호와 함께 워싱턴에 파견된 전경무가 떠난 이후 북미 한인사회의 여론은 악화되고 있고, 이런 상황에서 재미한족연합위원회의 임무와 단합을 유지할 수 없다고 했다. 주미외교위원부의 문제를 즉각 해결하지 않으면 분열을 피할 수 없고 우리의 모든 노력도 수포로 돌아갈 것이니 다음 주까지 대표가 올 수 있도록 노력해 줄 것을 당부했다.

    375 재미한족연위원회 집행부 회의록(1942.10.11.)

    1942년 10월 11일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 회의록이다.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 위원장 김호 주재로 열린 회의에 참석한 사람은 김병연, 한시대, 송종익, 송헌주, 김용중, 송철, 김용성, 김종림 등 9인이다. 김호가 이승만과 주미외교위원부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전경무와 함께 워싱턴으로 떠나기 직전 열린 회의여서 새 외교위원 김호의 취임건, 주미외교위원부와 한미협회와의 관계 설정, 주미외교위원부의 통신 발행문제 등 주미외교위원부와 관련된 논의에 집중하였다.

    376 박상하가 한시대에게 보낸 공문(1944.10.3.)

    1944년 10월 3일 박상하가 한시대에게 보낸 공문이다.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의사부 위원장 박상하가 집행부 위원장 한시대에게 향후 개최할 예정인 재미한인 전체대표회에 하와이 대표로 파견될 김원용은 9개 하와이 한인단체를 대표하는 자임을 인정하고 동지회 측에 대표를 요청했으나 아직까지 회신이 없다는 점을 알렸다.

    377 주미외교위원부 위원후보자 초선 투표(국민회, 여자애국단, 학생회) 결과를 기록한 문서(1944.11.)

    주미외교위원부 위원후보자 초선 투표(국민회, 여자애국단, 학생회) 결과를 기록한 문서다.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가 주미외교위원부 개조를 위해 1944년 10월 28일부터 11월 5일까지 로스앤젤레스에서 재미 한인 전체대표회를 개최해 주미외교위원부의 새 외교위원 선정을 위한 투표를 실시하였다. 본 문건은 대한인국민회, 대한여자애국단,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의 세 단체가 새 외교위원 후보자를 투표해 그 결과를 기록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2표를 얻은 외교위원 후보자는 김원용, 김강, 김용성, 전경무, 한시대, 박원걸, 김현구, 김호, 정기원, 김병연, 배의환, 송종익 등 12명이다.

    378 재미한족연합위원회가 중경 임시정부에 보낸 공문(1944.4.)

    1944년 4월 재미한족연합위원회가 중경 임시정부에 보낸 공문이다. 1944년 4월 2일부터 8일까지 재미한족연합위원회가 주관한 제3차 전체위원회에서 군사운동을 적극 지원하기로 결의하였고 이를 토대로 중경 대한민국 임시정부에게 군사운동을 위한 특별자금을 후원하기로 했음을 알렸다. 그리고 한국광복군이 독립된 전투부대로 인정을 받을 것과 임정과 의정원이 상호 협력하여 내각을 더욱 강화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379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제3차 전체위원회에서 밝힌 '카이로선언'의 한국 독립 관련 입장문(1944.4.)

    1944년 4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제3차 전체위원회에서 밝힌 ‘카이로선언'의 한국 독립 관련 입장문이다. 카이로선언에서 제기된 '적당한 시기에' 한국이 독립될 것이라는 문구를 두고 소위 위임통치를 연상시킨다는 등 해석이 분분한데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제3차 전체위원회에서는 여기에 대해 자유와 독립을 얻기까지 일본과의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중경 임시정부 김구 주석의 절대 독립의 입장을 따를 것임을 밝혔다.

    380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제3차 전체위원회 희의 초록(1944.4.)

    1944년 4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제3차 전체위원회 회의 초록이다.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가 주관한 제3차 전체위원회(1944.4.2-8) 가운데 4월 4일의 회의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중경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더욱 강화할 것과 9개 준승의 탈피로 한국광복군이 군사자주권을 회복하여 군사운동에 촉진할 것 등을 논의하였다. 중경 임시정부에 재미 한인의 의견을 담은 문구를 기초할 위원으로 전경무와 박상엽을 선정하였고, 그 외 독립금에 대한 재정예산, 미국과 연합국을 위한 승전 협력, 카이로선언에 대한 입장, 워싱턴사무소 설치건 등을 집중 논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