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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인국민회

    대한인국민회 에 대한 전체 4117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241 필라델피아 리딩(Reading) 시민들의 한국 독립 지지 결의문(1919.5.15.)

    1919년 5월 15일 미국 필라델피아 리딩(Reading) 시민들이 한국독립대회(the Korean Independence Meeting)를 개최하며 발표한 한국독립 지지 결의문이다. 리딩 시민들은 한국이 유구한 역사와 고유의 문화를 지녔다는 사실, 40년 전 개항 통상하여 국제적으로 독립국가로 인정을 받고 미국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사실, 미국 선교사 300명이 100만 신도를 양성하여 한국에 기독교가 크게 일어난 사실, 1910년 일본이 한국을 강제병합하고 한국인들을 잔혹하게 대우하자 1919년 3월 1일 한국인들이 전국에서 일어나 일제의 야만통치에 대항한 사실, 한국인들이 기독교인들이 요직을 맡은 공화제 정부를 수립했으나 일본이 한국인을 강압적으로 다루고 체포 투옥하고 있는 현실 등을 거론하며 한국 독립을 지지하는 결의문에 서명하게 되었음을 밝혔다. 이 결의문에 서명한 이들은 George M. Jones, John F. Moyer, Irvin E. Deer, J. F. Kiernan, Fred Brick, A. Roi. Illa, W. F. Teal, Max C. Wiant, Charles S. Foos, Robert M. Blackburn 등 10인이다.

    242 일리노이주 시카고 감리교전도자대회 결의문 (1919.5.19.)

    1919년 5월 19일 일리노이주 시카고 감리교전도자대회(Methodist Preacher's Meeting)에서 통과된 한국 독립 지지 결의문이다. 결의문은 일본이 한국을 강압 통치하여 한국이 국제연맹에도 가입하지 못하는 점, 지난 25년간 기독교선교사들은 3천개 교회를 세우고 37만 명의 신도를 양성했으나 침략자들은 한국의 산업, 상업, 정치 등에 대한 통제를 확대해 온 점, 기독교 교회와 학교가 폐쇄되고 목사와 선교사를 비롯한 기독교인들이 침략자들의 탄압 받고 있는 점, 1919년 4월 5일 시카고 장로교회 출신의 서기가 침략자들에게 살해된 점, 3.1만세운동 당시 1만 명의 기독교인들이 살해를 당한 상황, 선교사를 비롯한 기독교인들이 의지할 곳은 초월자인 하나님과 다른 지역의 기독교인 뿐인 현실을 미국관리들이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린 다음, 미국정부가 조속히 한국인들의 권리, 생명, 자유의 수호자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였다.

    243 일리노이주 시카고 트리티니장로교회협회의 한국 독립 지지 결의문(1919.4.5.)

    1919년 4월 5일 일리노이주 시카고 트리티니장로교회협회(The Trinity Presbyterian Church Association)의 아담슨(H. R. Andamson)이 서명한 한국 독립 지지 결의문이다. 결의문은 일본이 한국의 기독교인들에 대해 전례없는 박해를 가하고 있으며, 일제가 교회가 3천개 신도가 37만 명으로 늘어난 한국 기독교에 대한 탄압은 독립운동을 종식시키려 하는 것이며, 일본이 교회와 학교에 박해를 가하여 선교사를 비롯한 기독교인들이 체포되어 잔혹한 고문을 받고 사망하고 있으며, 지난 2주간의 잔혹한 탄압으로 한국에서 기독교인 1만 명이 사망한 상황을 지적한 다음, 일본이 한국에서 자행하고 있는 부정과 공포행위를 종식키기기 위해서 미국정부가 신속히 일본에 압력을 가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하였다.

    244 미국 장로교회 총회 의사록(1919.5.23.)

    1919년 5월 23일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발간되는 일간신문 The St. Louis Daily Globe-Demorat 에 보도된 미국 장로교 총회 의사록의 일부이다. 이 신문의 기사는 필라델피아의 로버츠(William Henry Roberts) 목사가 타이핑하여 서명한 것이다. 총회 의사록에 따르면 한국에서 일본의 군사통치에 대한 항거문제가 장로교 총회 해외선교위원회의 회의주제였으며, 그간 선교사들이 일본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기독교신자가 포함된 한국인들의 고통에 소극적으로 대처했음을 반성하고, 한국인들이 일본으로부터 비인간적인 잔혹한 탄압을 받고 있다는 정보가 넘처나고 있고, 재미한인들도 이러한 문제를 장로교 총회와 많은 장로교인들에게 호소해 왔다고 언급한 다음, 성직자들이 한국 지원활동을 확언하고 기독교적인 본능과 보편적인 인류애에 바탕하여 일본의 잔혹한 통치수단에 강렬한 저항을 언명하는 데 깊은 공감을 표명한다고 했다.

    245 미국 연방기독교회협의회와 한국상황(1919.6.1.)

    1919년 6월 1일 미국 연방기독교회협의회(The Federal Council of the Churches of christ in America) 홍보국(국장: Jasper T. Moses)이 발표한 입장문이다. 이 입장문은 미국 연방기독교회협의회 산하에 설립한 동양문제 담당 위원회(The Commission)가 발표한 것이다. 일본 군경이 혁명적인 비무장 봉기를 일으킨 한국인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고문한다는 소식이 담긴 한국발 소식은 한국을 지켜보는 미국인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으며, 이에 위원회는 미국과 일본에 영향력 있는 이들을 동원하여 한국상황에 대해 많은 회의를 개최하고 책임 있는 자들과 함께 가장 효과적이고 신속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방식으로 한국문제를 처리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입장문의 하단에 한국친우회 시카고지부 서기 구타펠(Minerva L. Guthapfel)이 이대위(李大爲)에게 보낸 필기체의 짧은 기록이 적혀 있다.

    246 미국 켄터키주 베리아대학 교수단과 학생들의 한국 독립 지지 결의문(1919.4.24.)

    1919년 4월 24일 미국 켄터키주 베리아(Verea)대학 교수단과 학생들의 한국 독립 지지 결의문이다. 베리아대학의 교수와 학생들은 기독교가 놀라울 정도로 한국에 뿌리를 내려 동양 복음화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으니 미국정부는 가동 능력을 총동원하여 자존을 바라는 한국인들의 요구를 도와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247 펜실베이니아주 링컨대학교 총장이 전달한 서(西)체스터제일교회의 한국 독립 지지 결의문 (1919.4.8.)

    1919년 4월 8일 펜실베이니아주 체스터카운티 링컨대학교의 존슨(Eilliam. Hallock Johnson) 총장이 체스터카운티 코츠빌(coatesville) 장로회에 전달한 서(西)체스터제일교회(The First Church of West Chester)의 한국 독립 지지 결의문이다. 결의문에 따르면 동일한 신앙을 지닌 신앙가족으로서 한국의 기독교인들에 대한 모든 문제에 관심이 있으며, 미국의 기독교회들이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일본의 압제 때문에 겪은 비인간적인 학대에 대해 일관되게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 왔음을 반성하고, 한국의 많은 기독교회에 대한 일본의 야만적 압제와 박해에 대해 강렬한 항의를 제기하며,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종교적 학대와 압제로부터 자유를 찾아야 한다는 점을 촉구하였다. 이 결의문의 사본은 향후 샌프란시스코의 대한인국민회에도 보내겠다고 하였다.

    248 켄터키주 윌모어(Wilmore)의 한인구제회 발기문 <KOREA AND THE JAPANESE SHADOW(한국과 일본의 그늘)>(1919)

    1919년 켄터키주 윌모어(Wilmore)의 한인구제회(The Korean Relief Association)가 일본의 한국통치와 기독교 탄압을 규탄하고 한국의 독립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이란 제목을 달아 간략히 제작한 전단지다. 러일전쟁 이후부터 경술국치까지 일본의 침략상 지적, 일본이 한국을 자치 능력이 없다고 악선전하는 행위에 대한 반박, 행정, 교육, 종교, 군사 방면에서 일본의 한국통치의 잔학한 실상 고발, 일본은 한국의 우수한 문명을 배워 강대국으로 발전, 한국에 선교사로 파견된 코만(Coeman) 부인의 일본의 한국통치의 실상 보고 등을 언급하였고, 독립 선언문에 나타난 것처럼 300만의 한국인들은 일본에 복수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유와 자치를 찾아 독립을 외쳤으나 일본은 한국인들을 강하게 진압하기 시작했으므로 미국인들은 민주주의를 수호자로서 한국 기독교인들의 독립운동에 대해 공감과 지원과 기도를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249 워싱턴 제1감리교감독교회의 한국 독립 지지 결의문(1919.9.10.)

    1919년 9월 10일 미국 수도 워싱턴 에버딘(Aberdeen)의 제1감리교감독교회(The First Methodist Episcopal Church)가 미국 상원 대외관계위원회 롯지(Henry C. Lodge) 의장에게 보낸 1919년 9월 6일자 한국 독립 지지 결의문이다. 일본이 종교, 생명, 재산 부면에서 한국인을 착취 탄압하는 것을 비판하고, 세계 기독교국가들이 한국의 개명과 발전을 힘써온 사실에 비추어 일본의 잔혹한 탄압이 계속된다면 한국을 위한 희생자가 나올 것임을 알렸고, 미국 상원은 일본이 진리, 정의, 공정 등의 기본가치를 침해한 행위에 대해 강력히 항의해야 하며, 미국정부는 일본정부에게 한국인의 생명, 재산, 자유를 훼손하는 행위를 지속하지 못하도록 저지해야 하며, 군대와 통치시설을 한국에서 철수하고 한국인들에게 정치적 자유를 되돌려주도록 촉구해야 한다고 하였다. 결의문의 말미에는 홉킨슨(L. Hopkinson) 박사 등의 결의자들의 서명이 들어있다.

    250 아이오와주 더뷰크대학과 신학원의 교수와 학생들이 윌슨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1919.4.22.)

    1919년 4월 22일 미국 아이오와주 항구도시의 더뷰크(Dubuque) 대학과 신학원의 교수단과 학생들이 파리강화회의 참석차 프랑스에 가있는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이다. 일본이 극악한 방법으로 한국인의 봉기를 진압하고 있다는 사실, 미국은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의 거중조정(居中調停, good offices) 조항을 이행할 도의적 책임이 있다는 사실, 미국 선교사들이 일본로부터 위협받고 학대받고 살해당하고 있는 현실, 세계가 윌슨대통령을 약소국과 피압박민족의 옹호자로 간주하고 있는 사실 등을 언급하고, 한국인들과 미국인 선교사들을 위해 윌슨대통령이 조속히 중재에 나서줄 것을 요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