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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인국민회

    대한인국민회 에 대한 전체 4117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221 이대위가 윤병구에게 보낸 서한(1919.6.9.)

    1919년 6월 9일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사무장 이대위(李大爲, David Lee)가 윤병구(尹炳球, P. K. Yoon)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대위는 활발히 활동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윤병구가 어떻게 염출하고 있는지를 질문하고, 윤병구를 위해 강사직을 얻어보려 노력했으나 비용 문제 때문에 실패한 점, 윤병구를 초청만 하고 지원을 거절한 것은 부당한 처사였다는 사실, 본인은 사직서를 제출했으나 아직까지 처리되지 않은 점, 필라델피아로 가는 임정구(C. K. Yim ) 편에 윤병구가 놓고간 만년필을 보냈다는 점 등을 전달하였다.

    222 윤병구가 이대위에게 보낸 서한(1919.6.16.)

    1919년 6월 16일 윤병구(尹炳求, P. K. Yoon)가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사무장 이대위(李大爲, David Lee)의 6월 9일자 편지에 대한 회답 편지이다. 윤병구는 이대위의 그간의 도움에 감사하며 자신이 구상하는 사업을 위해 이대위에게 재정 지원을 요청한 적이 없다는 점, 워싱턴에는 2천만 한국인을 돕기 위한 조직적인 노력을 찬동하는 분위기가 강하다는 점, 한국을 돕기 위해 창설된 한국친우회가 워싱턴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 자신이 워싱턴 한국친우회의 결성을 통해 미국 친구들을 돕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 워싱턴의 부유하고 저명한 인사들을 한국친우회에 가담시키려 노력하고 있다는 점, 이대위가 사직서를 제출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국민회가 해 오던 사업을 계속하기 바란다는 점 등을 전달하였다.

    223 이대위가 워싱턴DC에 있는 윤병구에게 보낸 전보(1919.7.11.)

    1919년 7월 11일 이대위가 워싱턴DC에 있는 윤병구에게 보낸 전보다. 임시정부 소식에 의하면 왜적이 공공장소에서 여학생들을 모욕하고 감옥에서 학대하고 있으며 선천에서는 일본놈들이 우물과 어류에 독약을 넣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했다.

    224 윤병구가 이대위에게 보낸 서한(1919.7.14.)

    1919년 7월 14일 윤병구(尹炳求, P. K. Yoon)가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사무장 이대위(李大爲, David Lee)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한국 관련 뉴스를 전송하자는 주장은 지난 편지에서 이미 말했기 때문에 재론하지 않을 것이며, AP통신을 비롯한 통신사들은 워싱턴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미국과 타국의 유력 언론사들도 워싱턴에 특파원을 두고 있으며, 미국 이외 지역에서는 신문기자도 거의 없기 때문에 뉴스를 전 세계인에게 최대한 전달하려는 의도에서 뉴스 전송을 제안했으며, 뉴스 전송은 비용 대비 파급 영향력이 훨씬 클 것이라는 것 등을 언급하였다. 이어 승용환(承龍煥) 문제와 관련하여 이승만이 하와이에서 미본토로 가기 전 하와이지방 총회장 이종관(李鍾寬)이 이승만에게 승용환을 만나면 그를 국민보(Korean National Herald) 주필로 임명하려 한다는 것을 전해달라고 부탁한 점, 승용환은 이승만의 부탁이 아니라 하와이 한인들의 부탁을 받고 국민보 주필이 되었다는 점을 언급했으며, 이승만의 하와이 지도자 모욕문제와 관련해 이승만은 절대로 그런 일을 범하지 않았으며 반대로 이승만은 전보와 편지로 하와이 한인들의 우호 증진을 역설하고 통합을 촉구했다는 사실, 따라서 이승만이 승용환과 손창희(孫昌熙) 문제 때문에 비판이나 비난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점 등을 언급하였다.

    225 윤병구가 이대위에게 보낸 서한(1919.7.18.)

    1919년 7월 18일 윤병구(尹炳球, P. K. Yoon)가 대한인국민회 사무장 이대위(李大爲, David Lee)에게 보낸 편지다. 1) 신한민보에 수록된 한국 독립운동 관련 소식들은 주목할 만한 흥미로운 것이라 가능한 이를 널리 공표해야 하며, 2) 한국독립운동 관련 뉴스를 전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를 번역하여 샌프란시스코에서 세계 각지로 전보를 보내는 것이라 했다.

    226 이대위가 윤병구에게 보낸 서한(1919.7.19.)

    1919년 7월 19일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사무장 이대위(李大爲, David Lee)가 윤병구(尹炳球, P. K. Yoon)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대위는 이승만이 승용환(承龍煥)과 손창희(孫昌熙)의 부적절한 행위와 아무 관련이 없었다는 것을 알고 기뻐하며, 뉴스 전송에 필요한 기계와 자동식자기를 윤병구가 확보해 보기를 희망하고, 번역담당 인력의 부족과 이미 국민회 신문을 통해 중요 소식을알려 별도 비용이 소요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뉴스 번역 작업은 불가능하다는 사실, 최근 한국에서 받은 몇 가지 중요 문건들을 윤병구에게 보냈으며, 이를 조속히 타이핑할 것이라는 점, 국민회는 전보와 편지를 통해 이승만이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대통령이 아니라 국무총리로 선출되었다는 소식을 받았다는 점, 이승만은 임시정부 대통령이 아니라 국무총리임에도 이미 각국 정부에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고 통보하고 대통령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 임시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오던 국민회는 임시정부 국무총리 이승만을 배척하고 임시정부와 단절한 것인가와 이승만의 대통령 자임 문제를 수용할 것인가의 문제로 곤란한 지경에 빠져 있다는 점 등을 토로하고 이러한 곤란한 지경에 대해 윤병구의 의견이 어떠한가를 물었다.

    227 바로우스(David P. Barrows) 교수가 이대위에게 보낸 서한(1919.7.23.)

    1919년 7월 23일 캘리포니아대학교 정치학과 바로우스(David P. Barrows) 교수가 대한인국민회 사무장 이대위(李大爲, David Lee)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 편지는 이대위의 6월 27일자 편지에 대한 회신이다. 바로우스는 몇 년간 각지에서 한국인들을 만나본 결과 한국인들의 가치와 근면성을 알게 되었으며, 한국인들의 독립 열망은 숭고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폄하되거나 반대해서는 안되며, 한국인이 주권과 행정권을 되찾을 때까지 격려와 지원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다고 토로하고, 자신이 미연방 교회평의회 극동문제위원회의 일원으로서 일본의 한국통치의 잔혹성과 비인간성을 항의하여 일본 수상 하라로부터 시정하겠다는 통지를 받았던 적이 있었음을 말하며 한국독립운동에 기여할 수 있도록 자신을 국민회나 한국친우회의 후원자가 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228 대한인국민회 사무장 이대위가 바로우스(David P. Barrows) 교수에게 보낸 서한(1919.7.24.)

    1919년 7월 24일 대한인국민회 사무장 이대위(李大爲, David Lee)가 캘리포니아대학교 정치학과 바로우스(David P. Barrows) 교수의 편지에 대한 답장 편지이다. 이대위는 바로우스의 편지가 한국독립운동에 깊은 영감과 격려를 주었다고 감사를 표하고, 자신은 오늘 워싱턴으로 떠나기 때문에 바로우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함을 유감으로 표하고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오는 대로 직접 만나 한국의 정치적, 종교적 상황과 한국독립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말하였다. 이어 바로우스가 미연방 교회평의회 극동문제위원회의 일원으로서 벌인 활동들을 잘 알고 있다며 만족감을 표하고, 1919년 7월 17일 발행된 연방의회 의사록을 통해 교회평의회의 활동을 파악하고 있다고 답하였다.

    229 대한인국민회 사무장 이대위가 옥토비(W. H. Oxtoby) 의장에게 보낸 서한(1919.7.19.)

    1919년 7월 19일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사무장 이대위(李大爲, David Lee)가 San Anselmo Summer Conference 의장 옥토비(W. H. Oxtoby)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대위는 옥토비가 한국독립운동에 깊은 공감을 표해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한국친우회 지부결성을 위해 사무실을 개설하여 저명한 많은 시민들을 회원으로 확보했으며, 아직 회장을 뽑지는 못했으나 맥아피(Lapsley A. McAfee) 목사를 설득할 예정이니 옥토비에게 지부의 이사진에 참여해달라고 요청하였다.

    230 대한인국민회 사무장 이대위가 옥토비(W. H. Oxtoby) 의장에게 보낸 서한(1919.7.24.)

    1919년 7월 24일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사무장 이대위(李大爲, David Lee)가 San Anselmo Summer Conference 의장 옥토비(W. H. Oxtoby)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대위는 옥토비의 7월 22일자 편지를 잘 받았으며, 옥토비가 한국에 대해 깊은 동정을 표해준 것에 감사를 표한 다음, 24일 오후 워싱턴으로 떠나기 때문에 짧게 답장을 보낸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