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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자료

    콘텐츠/독립운동가 자료 [] 에 대한 전체 5845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151 李喜儆(H.K.Rey)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하와이 호놀루루 : 1917.2.10)

    152 정인숙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하와이 호놀루루 ;1917.2.13)

    혜서를 봉독이온 바 용렬한 사람을 이와 같이 지의하시오니 황구함을 마지마지 아니하나이다. 존형께서 하와이 오시는데 대하여는 다속한 동지가 있을 듯 하오며 저도 지금 존형을 하와이로 오시게 하고자 하는 의행은 무슨 방면을 구처하여 놓고 옵소서 하는 연유는 한 가지도 없소이다. 존형께서도 이미 아시는 바려니와 하와이 형편이 그와 같소이다. 존형 하와이를 한번 다녀 가신 후 그간 여러 가지로 생각도 많이 하였사오나 능력이 없고 주선이 민첩지 못한 까닭으로 조그마한 기회라도 걷지 못하였소이다. 존형 완장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정인숙과 누누 몇이 무슨 일을 할 것 같으면 자본을 주겠다 하기로 제는 항상 공담으로 말씀하여 드리기를 아직 아무 사업도 착수하시지 말고 먼저 함씨와 의논하신 후 무슨 일을 착수하시는 것이 좋다고 몇 차 말씀을 고한 후 피차간 상격하였사오나 자주 말씀을 듣지 못하였더니 일일은 종용히 만나 말씀을 하시다가 미주로 가실 의향을 말씀하시기에 다시 연유를 듣고자 하여 말씀을 문한 즉 미주로 들어가기로 작정하였는데, 아직 여행주선이 다 되지 못한 고로 아직 미주에서 편지오기만 기다린다 하시기로 제가 말삼기를 미주로 가시는 것보다 창호(안창호) 씨를 하와이로 오시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하며 완장께서 말씀하시올 하와이로 오게 하면 아무 생활도 없고 오게 할 수 없다 하시기로 제가 부를 없이 생각나는 대로 말하기를 이히경 씨와 동사를 하게하면 어떠하오니까 한즉 존형 완장 말씀이 만약 이씨와 창호 두 사람이 합의하여서 동사로 생활을 할 것 같으면 지금 있는 돈을 다 창호를 주어 일을 시작하게 하고 우리 두 늙은이는 아직 기력있는대로 부려먹고 우리 두 늙은이 몸을 창호에게 부탁하겠다 하시온 말씀듣고 즉시 이희경 씨 집에 가서 이말 저말 하다가 안 선생 창호 씨를 아시느냐 한즉 이씨 말이 한 두번 뵈었고 친절치는 못하다 하기로 제가 이말 저말로 이씨의 중심을 대강 짐작한 후 이씨 들어 묻기를 안 선생을 믿느냐 한즉 이씨 말이 안 선생을 내가 믿노라 하기의 대강영으로 존형 완장의 말씀을 하며 또 의행을 문한 즉, 이씨 말이 나는 지금 사업이라고 차려놓았으나 자본도 없는 사람이요 설혹 자본이 있을지라도 나의 주의대로 할 수 없고 만약 안 선생이 와서 후 주견을 마친 후 일을 결정할 것이요 안 선생을 내가 믿으니 안 선생이 오신 후 일을 의논하겠다 하기로 지금껏 존형이 하와이로 오시기 전에는 다시 아무 말도 할 것 없기로 대강 연유을 말하오니 하양하시오며 이씨에 주견과 인도목적은 자기의 말과 같이 아직 생활에 골몰한 고로 인도의 주의는 아직 확실한 증거를 헤아리지 못한 고로 양달치 못하오나 연소하고 십여 년 동안 영어의 잠심한 고로 조선 국어에는 능통치 못한 모양이요 위인과 자격은 과인한 줄로 생각하나이다. 저의 생각에는 존형께서 오셔서 이씨와 상의하여 이씨에 사업을 확장하고 이해를 같이하면 좋을듯 하오나 존형은 만만심여하시와 일을 조처하시기를 바라오며 존형 완장께서는 매사를 존형에게 부탁차로 수삼차 말씀합니다. 존형께서 하와이를 오시면 이상 말씀한 바와 같이 조그마한 기회라도 지은 것이 없고 존형께서 오시면 무슨 기회를 진히기를 줄아오며 기회도 차차 있을 줄 아나이다. 이씨는 하와이 온 지가 불과 몇삭이 못된 고로 민족에 대한 주지를 남에게 보일 타임이 없을듯 하오며 사업으로 말하면 말하는 본의가 존형에 오시면 존형의 의행을 받아 처리코자 하는 모양 같습니다. 제의 생각에도 하와이로 오셔서 먼저 가도에 주선과 생활상 문제를 해결 하신 후 하와이 동포를 도와 유익한 일을 많이 하실 줄 믿습니다.

    153 李周淵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버클리 ; 1917.2.14)

    154 李來洙가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하와이 호놀루루 ; 1917.3.8)

    李博士 偏에서 近日에 出生한 所謂 韓人公報라한 新聞과 國民報를 下覽하셨스면 現今에 무슨 충돌이 發生한 줄을 已燭하셨을 줄 아옵거니와, 現今에 李氏와 國民會 사이에 始作되는 충돌의 모양을 보건대 再昨年 風波와 方不할듯하외다. 其 內容인즉 今 正議會에때 立案하기를 再昨年 臨時 의회록을 詳考한 즉 敎育費로 七千元을 支出하자고만 기록하였지 誰를 주자고 指目한일도 없을 뿐 外라 兼하여 의회에서는 但 立案已矣오 行政까지 할 수가 없는 고로 該 七千元을 李氏에게로 支出 與否를 決議할 수없으니 但 敎育費 事件은 學務部에 付하야 行政케할 뿐이라 함에 對하야 李氏가 누아누 地方會 代議員의 資格을 帶하고 의회에 參席하였는데 의회의 규칙을 범함이 다수함에 對하야 公席에께 무류한 책망을 누차당하다가 自己의 계획한바 七千元 事件 中이 落失됨에 추후로는 의회의 참석을 스스로 거절하고 四面으로 同志를 求得하야 新文을 發刊하며 各 地方에 片紙를 하야 現今 소동이 大發하였는데 대개 其 偏黨을 分間하건데 今正에 會集하였던 의원 中에 終末까지 정중한 태도를 지켜 의회를 필하고 돌아간 대의원 七人들과 現今 總會 行政 任員들이 一偵이고 李氏가 의회를 거절하던 同時에 따러가 같이 물러서던 의원 十餘人들과 李人과 一偏인데 現今 形勢를 보건대 李氏의 偏이 勝한 모양이나 結末기필 할 수 없사오며, 또한 其 偏黨의 內容을 察컨대 前日에 李氏의 偵이 되였든 사람 幾人은 무슨 他 감정을 因하야 至今에는 李氏를 返對하는 偏으로 立한자도 있는데 (그는 中央學校와 李氏의 寄宿舍 事件으로서 이미 교회 목사들과 충돌되든 감정) 今番 風波도 수월치 않소이다. 弟는 左右間 間涉이 一無하고 局外에서 但 반광已矣니 可否間 말할 필요는 무하지마는, 弟의 보는 바에는 李氏가 신성하고 회를 존중히 공경치 않고 자기의 낭중 지물이나 일리 용건으로 생각하는 것과 또한 파괴시킬 주의를 품는 것을 보건데 一大 野心家로 認証하옵니다. 又는 上年 十二月에 本國서 同船에 渡布한 趙容和(조용화)氏는 李氏와 同和하였고 로백인氏는 朴容脫(박용탈)氏와 同和하였는데 로氏는 只今 時節에 間涉이 全無하고 단유전 中이외다. 客月 十二日에 下付하신 惠函을 感謝히 接承하였습니다. 這間 主恩 中 渾宅이 一體 大安하시오며 事務도 如一하시오니까? 弟도 主保와 遠念으로 渾券이 如前하오니 杏이외다. 下諒하소서. 就先告하올 말씀은 已燭하시는 바의 弟의 肉身이 恒常 忍苦하야 果然 片紙 一章 書 하기가 어찌 그리 極難하온지 오래동안 一無 書信하옵고 兼하여 本團에 對한 義務를 實行치 못하와 於心이 恒常 重 又 憫하옵니다. 下諒하시사 弟의 處地의 如何한 情形을 察하야 愛로 容恕하시옵소서.敎示중 申永振(신영진) 女子의 事故는 大綱 如左합니다. 上年分에 美洲로부터 오는 風說에 該 女子가 何處에 再嫁하여 家庭을 成하였다는 말을 其 夫 李某가 듣고 분두막심하야 어찌할 줄을 모르다가 該 女를 징치할 차로 合衆法所에 定章을 하였는바 左右間 其 羞恥가 不遠間에 共同한 韓人 全體上에 影케될 염려가 有하옵기 李某를 手端껏 만류하야 該 정중 사건을 얼마동안 정지케 한 後 該 事件을 擧하야 上年 十一月 分에 姜君 永韶(강영소)에게 片紙한 注意는 該 女의 事實이 果 若 其然이면 彼此間 離婚을 시켜서 外人으로 하여금 수치 됨이 없게 하여 보라고 該 女의 事案을 만일 아시거든 通寄하여 달라고 委託하였더니 姜君의 回答 內開에 該 女의 居留地는 全不知오 또한 某氏와 成婚하였다는 말은 全無히 낭설로 說明하였기에 該 자세한 이유를 其 夫 李某에게 已寄하고 數三次 說明하며 勸告하기를 마지아니하였더니 其가 半이나 回心하야 好意를 持하던 同時에 마침 該 女 處에서 片紙가 來着하야 其의 疑心을 稍히 解케하야 彼此間 書信 來往이 빈번하더니 該 女가 至今은 回心하야 家政을 反執할 意로 回遂하기로 作定하였고 李某도 또한 該 女를 携來하랴고 周旋하는 中이오니 如此히 된 것은 大幸한 事로 아오며 또한 先生께 치하를 말지 안삼나이다. 下諒하옵소서.又는 各候못하오나 團友 諸君에게 아시는 대로 問安하여 주시옵고 恩寵 中 來來 平康이 在하시옵소서,

    155 李大爲가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샌프란시스코 ; 1917.3.22)

    日人이 我 國文鑄字 制造 及 發賣 禁止法을 成立 實行하오니 國文 發達이 於是乎絶矣 故로 美洲에서 國文 鑄字 會社를 成立 하는 것이 似好일 듯 하오니 兄 意 若何오 願聞 新鑄字는 國文 二百字로 定하야 器械로 植字도 하고 以手植字도 하되 但 二百字인 故로 一函에 置하고 坐如以手 植字도 돌리니 容易容易이웨다. 會社 本金은 一千元이면 一種國文(毋論 何等号 ,或 二号, 或 三号, 或 四号)을 住意 制造하겠소이다.

    156 金憲植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뉴욕 ; 1917.3.27)

    157 梁起鐸(禹卓)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만주 西間島 柳河縣 ; 1917.4.24 陰)

    臨楮에 悲淚而已오! 執筆에 太息而已로다. 東西雲水之迢迢가 是爲魔하여 日夜深情之源源이 亦歸虛하며 雁足이 蹇滯에 音信이 亦斷하니 此情을 其誰禦之리오. 向書는 信已俯覽이언마는 尙無回音하니 亦爲魔讐之暗偸歟아! 抑是貴邊之未發歟아! 旣訝且菀에 望東雲遙瞻仰者! 日已久 年已深이라. 更裁一書하여 以表孤衷하오니 乞卽賜答焉하소서. 姜 君 處付書는 已接回音이옵고 李逸(이일) 君處 來函을 亦已接讀이오니 以此煩傳言于兩處를 仰企耳. 弟가 到此地 觀形便則 東寧(동녕) 兄이 因事勢之不能하여 未得發展本會之南滿(남만주)經營하고 居然 移住俄(러시아)領하였고 厥後에 自俄(러시아)領 秋汀(추정)處로 有本會 發展之命이라가 隨卽有停止之令하니 從此로 憤菀 靑年은 或立秘密會하며 健全 志士는 或成精神團하여 三分四裂에 毫無統一之望하니 於此에 暗測其在俄(러시아)領美(미국)土者之亦如是라. 然則無聯絡機關之本部면 無統一主義之實擧오. 終無目的到達之期日이니 雖一處가 苦心血誠으로 癈餐忘寢而有爲焉인들 其可得乎아! 現今 人心이 歸一者난 只有兩件하니 一則 望先進者 諸人이 志同情合하여 携手 聯秩하고, 二則 望新民會 本部를 特設 一處하여 連合 各團하나니, 吾先進者 云云之輩가 其能實行否아? 吾新民會 云云之機關이 其能發展否아? 未可必也니, 今急務者는 只此 兩件而已라. 順人心이 得天心이니 得天心이면 順天時라. 今不速圖면 噬臍何及가? 在美同脆가 雖意爲凶加利族하나 如此文明磽薄時代에 豈可得乎아? 興士團之組織이 就意爲新民會機關이나 以此 團結 分裂 境遇에 豈可得乎아? 吾重盟 本體 同志는 不過 十數人而自盧令 以至秋汀(추정) 春郊誠齋 晴箑島山 不吾雲岡 鏡潭月松 全·崔 兩 兄은 已依故人則 除情分義理之俱沒甚傷者 以外互相輪回通信 以兩全情義 年年相會一處하여 以策論善後면 豈不美哉! 後進 靑年之歸一仰望者 亦在吾十幾人而已也라. 一派之所渴望者妄在 정도령 一人이나 十人이 因心에 其利斷金커든 不能當一人之本事乎아? 今有北滿(북만주)之光軍 美洲之興士團하여 各樹一旗精神은 互相仿佛하고 亦各吾家重盟者之所立이니 於一精神一規模一名義之下에 豈有不能統一聯合之實乎아? 名義則依衆望爲新民會가 可也이외다. 然則 國民會는 爲表面上 機關이오, 吾學校는 爲管轄內 機關이오, 在北滿(북만주)에 亦然하고 在南滿(남만주)則 弟가 到此 過去 一年間에 新民之名義로 各處에 組織하여 今已兩總監部를 設하고 將次 中央總監督部를 立할 預定이오며 英學校는 直轄케 하고 扶民團은 表面의 利用機關이 되었삽니다. 此地 同志者는 皆曰本會의 主腦者는 島山이니 尊意를 取探하라 하오매 特呈此一函이오며 專務者 誠齋(성재)에게도 亦探하라 하나, 誠齋(성재)는 已被捉이외다. 今年 內에 弟가 躬往北滿(북만주)하여 南•北滿(남만주•북만주)이 爲先 統一된 後에 漸次 勢力을 俄(러시아)領에 發展케 하려 합니다. 餘在竢回音不備上.再開後一、國民會 規則 一部를 郵送하실 事.一、吾幾個先進爲名者가 輪回煩數通信하며 年年 相會議事함이 可也否也를 尊意에 候하는 件.一、新民會 名義로 南•北滿(남만주•북만주) 及 美領에서 統一精神과 統一 機關을 立함이 可乎否乎를 示하실 件.一、統一 機關을 未立하더라도 貴邊의 興士團은 爲先 新民會로 編入하여 使人으로 各處 機關이 分裂된다는 觀點이 無케 할 件.一、昨年 送金救急은 尙今 感荷不已이외다.一、盧令이 渡彼云하니 煩傳問候를 仰企耳.

    158 全如永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뉴 아드리아 ;1917.5.19)

    宅內 大度勿●하시오니까? 少弟는 朴敦郁(박돈욱) 崔基●(최기●) 兩君을 作伴하여 此水館礦에 來役하는 中, 崔는 步役을 終是不堪하여 산타바바라로 귀가하였고, 朴與少弟는 身安勝役하며, 同留同胞 待君 亦皆安一하올시다. 餘● 請大安

    159 安昌浩가 미상에게 보낸 서신(1917.5.30)

    年前育約에서 所懷를 暢敍하지 못하고 天涯의 遠別을 仍作한 後 日月은 捉陽하여 五六星霜을 災經하였는데 中間의 消息은 杳然하여 願聞願言의 情緖가 萬端이나 東西가 旣遠에 啓訴가 無由한지라 東天을 遙望하셔서 延竚하기 時切하더니 千萬料外에 寵陽하신 耑函을 行承하와 爾來에 體候安旺하심을 憑審하오니 仰慰하기 萬千이외다. 弟는 依前이 無似하여 所謂 志業은 成就가 尙無하고 流水光陰의 歲月만 曠費하니 所以를 究竟하면 境遇의 所困도 不無한대 謀事하는 才識이 又疎하니 前途를 俯仰하면 憂心이 冲冲하외다. 下示하신 市國對峙의 方案은 再三思量하는바 吾兄의 憂國愛民하시는 徹底의 至誠을 欽服하며 觀機察變하시는 周到의 注意를 添歎하나이다. 亘古未有의 奇禍를 當한 吾族의 地구으로 亘古未見의 大變이 有한 世界의 形勢를 際會하였으니 可如할 機遇라 可如할 實力이 相副하면 戰地前線의 一勇卒되기를 自期하나 民族의 品格과 實力의 卑微함을 顧念하면 尙且自立을 希圖하기 實難한 지라 前日의 弊習에 健全한 改良을 勵行하며 後來의 事業에 完實한 準備를 力圖하여 自力의 增長에 一向努力함이 今日 下手의 第一着인가 思量하여 平日所志의 愚裏를 略陳하오나 民族의大計를 紙墨에 全藉하여 計議하기 不能하와 欲言을 不盡하나이다.

    160 姜明化가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샌프란시스코 ; 1917.6.3)

    卽交于安昌浩(안창호)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