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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자료

    콘텐츠/독립운동가 자료 [] 에 대한 전체 5845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141 崔正益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평양 을밀대 사진엽서](호주시드니;1917)

    고시(古詩) 한 수를 베껴 보내며 나는 호기를 품고 노니네.꽃이 만발하고 버드나무 우거지어도 하늘을 따라 걱정스러워높은 데까지 오르고도 또 오르네.외로운 기러기에게 어데 가느냐고 묻고 싶지만내 신세도 몰라서 방황하네.

    142 李聖徽가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북미 ; 1917.1.2)

    이전에 보내주신 서신 감사합니다. 소망하지는 모든 일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143 "呂運弘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무스터대학|| 오하이오 ; 1917.1.3)"

    새해 氣候 安寧하시나있까? 生은 休暇 中에 잘 놀고 있습니다. 든 元이나 能히 벌이라고 休暇 前에 經營하였더니 일이 마음과 같이 아니되어 經營함 바와같치 많이 벌지도 못하고 다만 數 元을 맨드는데 까지 못하였습나이다. 前日 先生께 여쭌바와 같이 나의 學費는 거진 다 내가 벌어 쓰는바 物價는 無∽ 올라가는데 품삭은 더 주지 아니하여 生活의 困難함을 다 말하기 어렵삽나이다. 昨年에는 四元만 가지면 能히 한 週日 지내겠더니 今年엔 五元이라도 오히려 不足하옵나이다. 生이 아는바와 같이 先生은 財政上에 對하여는 甚히 큰 能力 없으시고, 또한 財政 去來가 他人과 많치 아니하시며 또한 즐기어 하지 아니 하시옵나이다. 그런 故로 先生께 對하여 財政上 補助를 請함은 甚히 용열한 생각인줄 아오나 先生밖엔 다른 사람을 對하여 말할 곳도 없음으로 모든 것을 무릅쓰고 先生님께 事實히로 아뢰옵나이다. 萬一 先生이 先生의 親舊 中 돈 있는 분에게 말씀하사 保하시고 二十五元만 취하여 주시면 來年 夏期에 決斷코 먼저 갚겠삽나이다. 今年 夏期에도 일을 하겠지만 今年엔 갚을 수가 없음으로 來 秋期에 다시 學校에와 明年 夏期에 卒業하겠음으로 多少間 今年 夏期에 버는 것은 來年 學費로 쓰겠음으로 今年 夏期엔 갚을 수가 없지만 來年 夏期엔 卒業할거며 卒業한 後엔 일을 하든지 또한 다른 方面으로든지 돈을 준비를 할 수 있겠삽나이다. 生이 생각하건데 萬一 先生의 手中의 돈이 없고, 또한 先生이 말할 만한 분 中에 돈 가진 이가 없으면 先生이 甚히 不敏히 생각하실거며 또한 많이 애쓰실 줄로 아옵나이다. 萬一 先生님 가진 돈 없삽고 또한 親舊 中 돈 가진 이가 없거든 많이 애쓰지 마시고 事實대로 下書하여 주시옵소서. 萬一 하실 수 없으면 조금이라도 不便히 생각 마시옵소서. 先生이 하실 수 없다 하시면 진실로 하실 수 없는 줄로 믿삽나이다. 先生께 對하여 財政 上 輔助를 求함은 甚히 不敢한 줄로 아오나 事實 上 甚히 어려운 때를 當한 故로 事實대로 여쭈옵나이다.

    144 金東鉉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멕시코시티 ; 1917.1.6)

    작년천사체별후(昨年天使滯別後)로 형무아신(兄無我信)하고 아무형신(我無兄信)하였으니 차(此)를 악(握)하여 붕우유신(朋友有信)이라 합니까? 저간형장(這間兄長)은 우리 장래(將來)를 위(爲)하여 주야로 무한 골몰하였으려니와 제(弟)는 차처(此處)에 재(在)하여 허송 세월(歲月)이니 이 스스로 부끄러운 일이 많습니다. 제(弟)가 형장(兄長)께 간절히 앙고(仰告)하는 말씀은 제(弟)가 묵경(墨京, 멕시코시티)에 일년(一年)동안이나 있어서 각경물태(各頃物態)와 인심풍속(人心風俗)을 말하여도 보고 구경도 한 소이인데 연고로 한 가지 생각한 바는 차처(此處)에 묵대(墨貸)한 사업(四業)도 자본(資本)만 있으면 본국물건(本國物件)을 수입(收入)하여 개시(開市)하고 또 한편은 유럽물품(物品)을 수입(收入)하여 전하면 원삼년(原三年)동안이면 크게 이익이 유(有)하겠습니다만 황금(黃金)이 무(無)하여 묵경(墨京, 멕시코시티)에 상점(商店)을 개(開)하지 못하오니 형장(兄長)께서 많이 생각하여 차처(此處)에 상점(商店)을 개(開)하게 하십시오. 제(弟)가 차(此) 생각을 일삭일일(一朔一日)에 하고 앙고(仰告)하는 말씀이 아니오니 많이 생각하십시오. 차처자본가(此處資本家)들이 다(多)하고 외국(外國) 물산을 대단히 좋아하고 숭배하는 성질인 고로 결단코 본국(本國) 물산을 택출하여 가져만 가면 대단히 망이 유(有) 하겠습니다. 차처(此處)에 일본인(日本人)이 재작년(再昨年)에 상점 하나를 근근이 개(開)하고 일본물품(日本物品)을 수래매방(收來賣放)하는데 불과(不過) 뉵년간(朒年間)에 큰 상점을 설하였으니 크게 생각하시되 형장(兄長)께서는 삼백원(三百元) 자본(資本)을 합(合)하여 무슨 영업(營業)을 하려는지 부지(不知)시겠지만 많이 생각하여서 답장하시되 본국(本國) 물건 여(與) 유럽 물건, 무엇을 가지고 이익(利益)을 본다는 말씀을 물으시면 세세히 기록하여 부송(付送)하겠습니다.餘不備●書墨京(멕시코시티)

    145 李鎭成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샌루이스아비스페 ; 1917.1.7)

    恭祝新年一月 七日 鎭韓伏祝 逖未 承敎이오니 彌切伏慕이외다. 伏懷而已 新元氣侯萬安而奄節均寧否 竝誌不任憧日 雜誌啓刊事在於不遠乎잇가? 爲之頂祝而已 向者 送書于邊君處이러니 姑未得回息이온바 尊處何有來奇乎잇가? 生之家君自己誨?過于安東縣處에 彼人에게 被捉되셔 保安法違反之說에 流配一年을 當하여 全羅北道沃溝郡에 隨居하신 事一朔前 得聞하였습니다. 生昨初에 來此銕道工場하여 事役中이올시다. 餘不備 伏乞賜鑑鎭韓 敬啓

    146 玄承烈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북미 ; 1917.1.23)

    147 邦化衆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하와이 호놀루루 ; 1917.6.14)

    敬啟者 貴叔父主께서 日前入城하셔서 반갑게 만나보았으며 당신은 次子를 渡米케 하는 대로 速히 還國하시어 餘年을 終하겠다 합니다. 貴兄께서 男條를 周旋하시어 該俱를 渡米케 하십시요.此處서 信便이 有한지도 弟가 桑港까지 ●할 터이오니 羅省으로 데려가십시요. 此處社會形便은 至今 잘 歸正됩니다. 國民報도 事週부터 繼刊합니다.餘●嬈不備上候

    148 姜永韶가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샌프란시스코 ; 1917.8.15)

    向書는 奉承하였습니다.여러 가지 方聞으로 生覺하여도 그만두는 것이 可하겠고 또는 할 事勢도 못 되는 故로 總會任 亦 辭免하였습니다. 第一債務 關係가 重大하온 바 辭員의 理由로 此로써 提擧하였나이다.

    149 林俊基가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다뉴바 ; 1917.10.19)

    伏承 下書 卽旅中 貴 體候 少有 完康云하시니 實時 願祝耳.所謂 加州 米 會長은 近 五六年間을 雜誌나 言論 上으로도 米를 人民에게 給介하였고 本 政府에 對하여 日本 米의 收入을 막는 運動도 많이 하는 者인데 吾儕가 勸先치 아니터래도 進行할 터이지만은 常當히 同情을 發表함도 亦 爲好일 듯 하오니 深 亮照處하시옵소서. 已告한 李鎭涉(이진섭)君이 契約한 土地는 何如일것이 未定임으로 다시 멕스웰과 윌리암 中間 하이웨 접해 一千二百坪을 每坪 三千元式 稅定하고 爲先 契約金 一百元만 걸고 成文치 아니함은 一은 本數에 對한 幾萬坪에 水나 得케 될는지 二는 水道며 家室이며 레불잡는 諸般 等事를 契約과 같이 實行할는지 疑問임으로 每坪에 對한 先給 二十元式을 某 銀行에 積立(반)하였다가 再事가 歸結 後에 出給하마 하였는데 此事를 土主에게 問決云 하더이다. 平平하기는 此近境 만만히 못하며 土品은 그만하면 禾稻를 種할 만하고 水路는 此 近境 보담 好할터인대 土地稅로 말하면 明年에 對하여서는 헐하나 每坪 二十元 先給이 過하고 또는 물이 減水가 되면 耕作地도 減할터이니 此 亦 難한 文提이올세다. 近 三四日 北風에 禾에 害도 不少하옵고 餘間 幾●로 出入을 定止하였는데 다시 康健을 기다려서 再事를 探問 後에 成文할까 하옵내다. 貴意엔 何如●잇까?

    150 姜明化가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샌프란시스코 ; 1917.2.10)

    兄의 愛國은 嘉尙하나 그른 人身 滅人家는 大不祥이라. 自今爲始하여는 愛國을 하려면 永大(강영대)·永韶(강영소)의 群兒를 一切 勿關하고 獨一自愛國하소서.一、永大(강영대) 渡美 十三年 尙不入學界하고 所謂 引導者라 名稱하고 空費 時日한 것이 都是 兄의 慈惠手段으로 釀出한 것이니 人身을 그릇되게 하는 暗毒이 孰甚於斯되오. 此 子息이 今日에야 始覺하고 加洲(캘리포니아)를 離發하여 東方으로 問學하기로 定志하였으니 悔之晩矣라. 然이나 晩學이라도 進入하는 것이 爲可이기로 我亦 許施하였사오니 兄은 更勿執持永大(강영대)之手腕如耳. 此 愚迷한 子息을 以吾兄能術로 又爲挽留則向東之志가 卽可破矣니 至於斯境則 兄은 與我로 非友人이오, 乃作仇人也. 深諒焉하소서. 能脫吾兄之術中而就學成功者는 梁柱三(양주삼) 李大爲(이대위)之穎特이오. 終陷吾兄之術中而不能修學者는 金永一(김영일) 姜永大(강영대)之愚迷也. 恨恨奈何며 悻悻之奈何리오.一、永韶(강영소)의 病身은 兄亦洞悉이라. 此兒의 天性이 眞率하여 待人을 如己하는 고로 他人의 籠絡手段을 不能覺察이라. 所以로 身病 中에 在하여 三四年을 獨務하였으니 그만하였으면 至矣盡矣라. 昨年에만 하여도 會長 投票 考閱하기 前에, 兄의 外面的 言이 白一圭(백일규) 氏가 되고 永韶(강영소) 氏는 아니되면 좋겠다고 하였으나, 兄이 南北方으로 巡行하여서는 非永韶(강영소)則會務를 無人可擔이라고 逢人則說한 고로, 昨年 總會長을 韶兒가 終不旣이라. 此兒의 公心은 惟天可質이라 身體 公務하여서는 不顧家事라는 一點心丹이 在한 까닭에, 女兒의 咽喉가 腐毁하였어도 不能覺察하였으므로 終至慘死而能救하였고, 鄙家子婦의 臟腑病이 發하는 데도 以其夫婦之間에 不能覺察함은, 都緣會務故也. 以弟所見으로도 現下會務之各公往復과 新聞刊行法은 非永韶(강영소)則不可爲也. 然則諸會務는 永韶(강영소)가 因病便死後에야 可代他乎? 吾兄의 滅人家하는 隱然 毒術이 孰甚於此리오. 永韶(강영소)는 桑港(샌프란시스코)을 離發하든지 退會를 하든지 하여야 會務를 不擔할 줄로 知하오. 兄의 毒術을 我又知之라. 必曰昨年에는 會長을 擔任하였지마는, 今年에는 會長은 他人이 擔任하고 永韶(강영소)는 總會事務員으로 視務케 하는 것이 可하다고 各人處에 運動하리니, 事務員이나 書記나 會長이나 三四年來에 永韶(강영소)가 獨自視務하였지 誰人이 更有幇助者乎? 此는 任名만 異할 뿐이라. 永韶(강영소)가 今年까지 又擔任하여 鄙子婦가 又致死하고 永韶(강영소)가 終至病死之境이면 兄은 與我로 不共日月之讐也라. 我當指 兄以殺人正犯하여 期必以手報復하리니 兄其自墨處之焉 如不備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