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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자료

    콘텐츠/독립운동가 자료 [] 에 대한 전체 5845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111 金基昶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멕시코 메리다 ; 1918.7.10)

    第七回去月二十六日 에서 出付이신 下書與同卄八日에 에서 出付이신 下書共二度를 昨與今에 차례로 奉讀이옵고 仰慰千萬이로이다. 書後有日에 氣力이 更何하옵시고 齒痛에 受術이 有效이옵심에 在美同志의 片紙나 자주 보와 계시옵니까? 基昶은 所率亦僅支이온 중 輪症으로 辛苦이던 것은 蘇服이 된 모양이오나 徃徃히 頭痛與怔忡症으로 좀 괴로우나 此는 數年間習症이니까 오히려 尋常이오되 業務는 依昔이옵고 在此一般亦别無欠損이옵기 幸이온 중 勞動은 形이 漸漸無勢하여 念慮가 不無이 올시다. 公私間詳情은 今月一日二日에 第五號六號两度上書에 詳俱하와 墨京 러순여집 蕭地로 付郵하왔삽더니 洞燭하였을 듯하옵기 更陳치 안사옵는 중 株金은 先生님 發程하신 후 昨日에 朴昌植君이 비로소 一百元을 가져왔고 其餘는 勞動無勢가 無恒心한 사람들의 한 핑계거리 이옴에 出據에 團難은 向日보다 甚하여 不少한 時間만 日復日虛送하옵나이다. 入美에 交涉하시는 事은 料컨데 國境에 가서 移民局에 直接交涉하라는 貴地美領事의 말이 近理하던 바외다. 朴永魯金?作宋鍾翊三君의 片紙를 其間一二次보았사오나 别無可告事이옵고 問安이 올시다(기창에게 온 것이외다) 此地方會各項事는 如一인 중 이왕도 앙달이옵거니와 鄭會長과 安女之事로 社會에 拘碍가지 無하온 중 鄭梁을 逐出하자는 隅論까지도 有한 모양인지 鄭梁는 일향잠통이 有한 모양이옴에 梁也誰也가 勸誘할만한 경위로 달랄 수도 지금은 無하게 되었삽기 할 수 없이 방관할 뿐 있습니다. 督拜●此處서 入團淸願을 한 者 友는 來月五日에 第一回는 會集커를 經綸이 올시다.崔正穩君도 一安인 중 선생님께 向해 出於眞情하는 걱정이 대단하외다.

    112 金東鉉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멕시코시티 ; 1918.7.4)

    旅行에 貴體候一向萬康하십니까? 貴地에 安寧히 到達하셨다는 消息은 李敬在 李仁汝 兩君의 말씀을 得聞하여 知하였습니다. 然而나 弟는 여태까지 不安한 마음은 先生께서 發程하시던 날과 其前夕에 進拜치 못한 故는 其前日 午食後에 협식이 되어 頭痛과 몸이 苦痛됨으로 ?日 동안을 臥床하였다가 起動하였습니다. 그럼으로 會見餞別禮을 絶하였습니다. 弟가 몸이 좀 나빴던 것은 莫論하고 先生의 餞別 못한 것과 佐其前夕에 좋은 말씀을 많이 하셨다는데 其와 같이 좋은 말씀을 듣지 못한 것과 또 弟도 將來에 對한 말씀 問議코자 한 것인데 前後를 다 못하였습니다. 萬萬不安한 마음 不已입니다. 然이나 不遠他日에 好機會를 乘하여 面會키를 祝禱합니다. 우리 다시 만나 볼 동안 하나님이 함께 계셔 늘 안녕하시기를 祝禱합니다. 弟에 對하여 訓戒하실 말씀이 有하시면 간절히 듣고저 합니다.

    113 이원형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멕시코시티 ; 1912. 7.28)

    본월 十三日에 주신 은함은 감사히 받아보았삽고 마사뜰난까지 무사히 도착하신 줄 알았삽나이다. 생들은 항상 선생 여중 기체 안녕하시기를 복축하오며 유카탄서 온 등기편지와 편지 열두 장은 다 부쳤사오니 추심하시고 곧 회답하여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114 유계상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로스앤젤레스 ; 1918.7.21)

    115 崔正植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멕시코 메리다 ; 1918.7.21)

    答上函今月 九日에 出付하신 惠函이 今月 二十一日에 到着, 伏承하온 바 만사니오港에서 乘船하신다 하오니 금월 十八日에 付郵한 答函은 下覽치 못 하셨을 듯하오이다. 美州로 가시는데 陸路로 가시는지 水路로 가시는지 궁금하오이다. 農處는 어디가 合當하신지 아직 定치 못하셨을 듯하오며, 소노라지방에 가시면 며칠이나 留連하셨다 發程하겠삽나이까? 此處에는 別無事故이옵고 鄭會長은 梁熙用(양희용)의 母親과 約婚하여 先生님의 指揮만 기다린다 하오며, 安氏의 妻는 아직 留宿於方擎日(방경일) 氏宅이되, 會長은 一切 禁足하여 相關이 無하오니, 우리 社會에 아무 구애함이 없사오니, 感謝하오이다. 至今 有佳坦(유카탄)形便이 比前하면 韓人의 勞働이 매우 困難하오며, 物價는 高騰하고 雇는 日減하는 바, 소시얼리스트(사회주의자)派가 强盛하여 入會치 아니하면 逐出을 하여 進退兩難하니 將次 어찌될지, 아직 社會에 別無妨害하오나 每期 月捐金도 如一치 못하며, 股本金은 朴昌植(박창식) 氏가 一百元을 來納한 外에 他人은 一分도 不納하였으며, 여기 同胞가 이와 같이 되면 不知何境되겠사오이다. 本會에 積立金은 一百六十元 씩을 가지고 두 달째 설탕을 貿易하였소이다. 소노라지방에 가실는지요? 객지에 얼마나 고생하시는지 답답하오이다.

    116 이원형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멕시코시티 ; 1918.8.2)

    七月 二十二日 마사뜰난서 부치신 편지는 받아보았사오며 노비가 부족하여 여중 고생 많다 하오니, 대단 민망하외다. 선생께서 七월 九일에 만사니요항에서 하신 편지에 등기편지를 마사뜰난으로 부치라 하셨기에 유카탄서 온 편지 十二장과 등기를 부처삽는데 마지막 편지에 받으셨단 말씀이 없으니 필경 때가 늦은 모양이로소이다. 그 등기편지로 인하여 걱정이오며 등기편지가 마사뜰난으로 갔다가 임자가 없으면 돌아오겠지마는 그 동안이 오래 되겠으므로 마음이 송구하오이다. 부탁하신 돈은 곧 나성(로스앤젤레스)으로 부치겠사오니 염려마옵서소.

    117 金基昶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멕시코 메리다 ; 1918.8.21)

    안선생이 그곳서 떠나셨으면 이곳으로 도로 부쳐주시든지 안씨께로 다시 부쳐주시든지 하시면 대단 감사하겠습니다.

    118 金基昶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멕시코 메리다 ; 1918.8.7)

    안선생이 그곳서 떠나셨으면 안선생께는 가도록 부쳐주시던지 본인에게로 도로 부쳐주시던지 하시오.十回七月十三日同卄一日에 出付이옵신 两度惠函은 今午에 奉見이옵고 伏喜하였습니다. 水陸險路에 言語不通을 辛苦無比하올 것은 預想하온 바오나 路需不足을 意外에 困難을 더하심은 基昶의 不敏이올시다. 書后有日에 旅中寶體候淸穆이옵십니까? 基昶은 所率之僅支이고 業務亦依昔이옵고 諧同胞亦别無欠損이오나 勞働界가 日去益甚無勢하와 每事에 念慮가 不無하외다. 社會敎會는 如昔進行이옵고 株式金은 勞働無勢에 影響으로 收入이 零星이옵고 授金之事는 恒常困難이올시다. 下燭하시오되 基昶의 생각에는 農土視察도 急하지마는 하루라도 從速入美도록 周旋하시는 것이 每事에 더욱 有利하올 듯 하외다. 日前에 朴魯君의 片紙에도 南加洲巡行하실 時機가 늦어간다고 걱정을 많이 하였습니다. 團事로 하여금 비로소 今五日?에 會同하여 每事를 창립위원회 의결안대로 進行 아니치 못할 것을 義論하였고 來月初一日로 爲限하고 入團請願한 日字로부터 同盟貯金과 例然金團報費를 畢納기로 作定하였습니다. 先生님께서 告察하옵신 바이나 崔正植君을 入團케 하는 것이 無妨할 듯합니다. 至今은 每事를 基昶의 指揮를 ?하여야 하겠다는 同情이 有할 뿐더러 先生님 떠나신 후 두고 보온즉 前日 崔正植이 아니오, 참 새 사람이 되었사오되, 今日은 秘密로 지내지마는 必境은 世人이 共知할 터인데 其時에 今日事를 생각하면 自己의 處世事를 先生님께 依하여 되겠다던 마음이 오히려 墮落일 뿐더러 오히려 有害일 듯하고 將别團友로 入團을 시키고 每事를 愼勅하는 것이 何如하올런지요. ?謝上

    119 崔正植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멕시코 메리다 ; 1918.8.8)

    答函七月 十三日出 下書를 伏承한 後에 行旋番地가 想未住暇함으로 卽未仰答하고 數日姑停하던 次에, 金君便에 今日 伏探安節하온즉 客裏에 路儘이 絶乏하여 路中借贐에 乘車下求하며 買食於街에 貰寢于館云하신다 하니 有佳坦(유카탄)에 困難을 更到乎이까? 聞甚伏歎何極까? 此處에서 某樣錢이라도 付授키로 金君과 議論한 則 金君曰 君已請贐于美州하여 迅速이 勝於此云, 故로 止之하였나이다. 正植은 伊后로先生님 畵本을 前寢所 壁上에 크게 모시고 서로 談話하는 듯이 相對하다가 如此한 困難을 當하신단 말씀을 듣고 어찌 惶悚畓畓한지 測量이 無하오이다. 金君이 七月 二十四日 上午에 付授할 次로 레굴라도라門前에 先入하라고 衆人挾同에 不幸하여 墨貨(멕시코화폐) 二千元을 見先하여 只今 大爲愁劇中인 바, 此則 株式金 未付零條이라, 若爲發說則 似有妨害之慮, 故로 金崔兩人 外에 其所率도 全昧하오이다.先生님께는 此事를 告發치 아니치 못하겠는 故로 玆以仰達하오니 金마리아母女에게 或往復하실 때 此意를 勿訊이 似好하오이다. 今番 通常會의 股本金收入인 바, 朴昌植(박창식) 二百元 文武逢(문무봉) 一百九十元 李明源(이명원) 六十五元 李熙澤(이희택) 四十元 朴春逢(박춘봉) 三十元 都合 五七五元을 金基昶(김기창)君에게 付授할 次로 支給하였고, 金明順(김명순)은 五十元이외다. 此則 先生님께서 領受證하신 條件이외다. 追後에 旅費條로 同胞는 金漢鎭(김한진) 十五元 李起宗(이기종) 十五元 朴聖俊(박성준) 十五元 洪錫福(홍석복) 五元 合五十元內 前日用下 三十五元, 不足條 除하고 餘左 十五元이외다.

    120 安昌浩가 Y. H. Park에게 보낸 서신(1918.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