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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자료

    콘텐츠/독립운동가 자료 [] 에 대한 전체 5845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131 金裕學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뉴저지 메디종 ; 1918.9.29)

    相啓 世所謂雷逢電前이 去香 따유바에서 先生과 弟의 逢前을 爲하여 預言言鑑이다. 何如間 弟는 其時에 先生의 顔面을 對言과 우리 民族의 將來를 議論할 것을 기뻐하며 또한 좋은 結果가 有하기를 希望하나이다. 弟 特히 先生에게 시카고에서 얻은 幾想을 말하겠나이다. 今番 歷路에 三日을 該市에 留하여 觀察한 즉 果然 靑年들의 修學上이나 또는 一般同胞의 經濟上이나 또는 무엇으로든지 西方에 下치 아니하고 또는 該地에 留하는 우리 同胞가 四十餘 名 以上 米國 中央地가 되고 보니 오며 가는 同胞도 不小한 지라. 然한 즉 當地에다가 클리몬트와 뻐쿨니 同樣으로 우리 總會로나 또는 興士團에서나 一年에 얼마의 財政을 支出하여 한 學生 寄宿舍를 可合한 곳에 두고, 또한 可堪한 學務員으로 監督케 하였으면 우리 靑年들에게와 또는 여러 同胞에게 大有益이 有하겠더이다. 此處에 올 時에는 萬事를 數年間만 生覺치 말고 修學만 하겠다 하였는데, 諸般事爲를 難忘 中에, 시카고 市에 한 寄宿舍가 有하였으면 하는 生覺이 種發함으로, 先生께 여쭈오며 또한 意向을 願聞하나이다.弟의 修學上 情形은 一言으로 困難이외다. 方言不足하고 돈 없고 또한 親舊도 無하여 甚히 査査히 지내옵나이다. 그러나 已往부터 이러한 困境이 有한 줄을 預測하고 싸움하여 보겠다고 決心하고 온 것이니까? 吾도 落心은 아니되옵나이다.시카고에 至今도 한 韓人의 寄宿舍가 有하나 學生들에게는 可合한 處가 못되고 또한 靑年들을 도와 주는 이가 無한 故로 難言한 形便이 多하옵니다. 餘는 座又鴻恩中 先生 氣體以時金安을 伏望耳.

    132 조문해가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북미 ; 1918.10.2)

    경송하느님의 은혜중 기체후 일향만강하시고 온 댁내도 다 안녕하시오니까? 단보와 신한민보에 게재한 바를 보고 안선생께서 목국(멕시코)을 가셨다가 안녕히 돌아오신 줄은 알았사오나, 아직까지 일장 서신을 드리지 못하였으므로 매우 부끄러우나 용서하시기를 바라옵나이다. 제 지금까지 별일이 없이 평안하오니 감사하옵니다. 여는 은혜를 많이 받으시와 항상 안녕하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133 金致日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멕시코 ; 1918.10.5)

    拜別後 본 지방회관으로 來到한 片紙로 하여금 問安은 頻頻히 들었사오나 恒常 生計에 골몰하여 일차 문안 말씀도 告치 못하였습니다. 未審展下 寶體候?亨이옵시고 閤節이 安甯하옵시며 凡百入料하옵십니까? 伏慕願聞者입니다. 致日은 所率之僅支이옵고 勞働에 困難으로 하여금 業務가 別無滋味이온 중 僅僅支保입니다. 今番旅行에 辛苦하심은 果然 민망함을 마지 않사오며 在留 동포의 社會發展과 將來希望을 默想함에 雨露 같으신 惠澤을 못내 感謝하옵니다. 近日 此地形便은 先生님 계실 때보다 特異하여 勞働無勢로 一般經濟 困難이 極道에 達하였습니다. 何時에나 更히 渡此하시여 苦海에 在한 同胞을 福地로 導하실는지 時日로 苦待합니다. 餘略?上

    134 宋鍾翊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샌프란시스코 ; 연도미상 10월 10일)

    今早에 公債 五十元짜리를 買하였사오며 少弟亦 如何間 같은 價格을 買하였습니다.數日前에 이라 하는 美人이 來訪하여 前者에 모시노市旅館서 大兄을 面敍하여스려 該氏의 土地가 소노다道에 있는 者를 開拓하러 가는데 韓人中에 모시노市에 있는 者로 可信할 만 者를 薦하시면 믿고 보이로 두겠으니 한 사람을 薦하여 달라 하오니 可堪者를 弟에게 回示하시오면 포이손에게 答하겠습니다. 보이는 衣服 건사하는 身僕을 願하는 터이 올시다. 餘不備拜

    135 宋鍾翊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샌프란시스코 ; 1913.10.14)

    十三日 出大函伏見하고 仰慰이옵니다.吾團創立委員選擧에 對하여 發起會에서 一唱俱發토록 談話間에 念肺에 두시옵고 咸人은 ●●兄을 入團케 周旋하였으면 좋아할 줄로 알고 忠人은 南方에 絶無임에 ●方에 善●하여 보십시요.三志士를 辨費請來할 議는 日間●大를 相着하여 談討한 已來 金曜夕討論席에서 情誼所在에 不可無一次歡迎之意로 言及하여 보겠으며 他方面으로라도 徐圖하면 了得할 줄 所信입니다.鄭奉奎氏의 言及으로 土地買收事로 弟가 去木曜에 出程하여 日曜日에 鄭氏와 同伴還捷하였사옵거니와 該土地는 價格也位置也居留也謀利也가 都不適當故로 弟의 心中에 快決을 하였으나 孟鄭兩氏가 克●的에 融和를 徐破하여 誤解粗恨의 痛이 無하기로 所望인 故로 尙今買收與否는 歸決 않고 此處에 在留社員에게 循議하였습니다.而今 전유바에 來書를 ●見●주●●琳札置 兩氏가 樓望을 ●●하라 함이며 轉便에 聞한 즉 多●無根의 設이 沸騰하여 夢昧者의 誤解가 筆書로는 難解인 듯하오니 回程에 一訪을 作하실 旅費가 有하온지 深諒하신 後에 一別하십시요. 餘不說 槇節益●耳

    136 林俊基가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멕스웰 ; 1918.10.14)

    昨日에 上書이옵더니 想必入燭이실 듯하오며 今日 李鎭涉(이진섭)君을 更面 則該 土地 九百餘坪은 턱없이 一百元 契約金을 先給을하고 該君 名下로 契約文을 成하였는대 十一月初에 五千元과 其 後 五千元과 八千元으로 合 一萬八千元을 農事에 着手하기 前에 先給하고 其 餘는 秋收 後에 皆 爲 減報云하는대 土地는 甚好이고 水는 十에 對한 幾坪에 水以得께 될난지 難知이온대 爲先 巨額의 資金을 先給이 不可한 中에 該君이 此 農業에 其許 資本金을 出할는지 豫定키 難한 것은 今年 農事에 害를 見하기가 쉽겠는 연고인데 덮어놓고 自己가 三分之一을 圖事코쳐하오니 張某에 空想과 방불하올세다. 萬一 先生께서 貴體가 健康하신대로 來臨하셔서 권유하여 보시는 것이 何如일는지 高見을 願聞이올세다. 近日 吾 同胞間에 流行하는 큰 폐가 이것이 올세다. 무턱한 空想으로 土地를 稅得하고보니 이것을 應從할 수가 없고 본즉 必境 成事치 못하고는 악감정은 吾儕에게로 돌릴까 念慮이올세다. 餘祝大安耳 拜上

    137 千世憲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뉴욕 ; 1918.10.18)

    伏問此時氣體候 康旺하옵시며 公務에 無至惱神者丕이까? 仰慰且祝이오며 生은 今月初에 西國毒感에 傳染함이 되어 十餘日을 苦痛하였사오나, 醫藥의 效果로 生命은 保全하옵고 또 身體가 日漸完實하오니 遠念之幸을 仰賀하나이다.去九月 十三日 一書中에 우리 團友끼리 明年 稻農經營에 對하여 隨力出資하라신 敎示에 無限感激하여 其間에 宋兄으로 幾次 商議하온게 有하오며, 決定인즉 明年 一月內로 千元을 投資키로 하였사오나, 一千五百元 可量하고 辦納키로 極力하겠사오니 下許焉하옵시고 宣力하옵소서. 雜誌刊行에 對하여는 從速發刊을 欽仰하옵는 바, 發刊만 되오면 生의 所擔 年往支金을 逐季 辦納하오리다. 餘遠伏祝先生氣候 隨序康寧하옵나이다.

    138 金基昶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멕시코 메리다 ; 1918.6.14)

    島山 丈 旅軒第三回

    139 金基昶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멕시코 메리다 ; 1918.7.21)

    九回今九日 港에서 出付이신 下書는 今早에 奉見이옵고 仰慰 千萬하왔사오며 書後 有日에 氣力이 更何하시오며 船路에 別無辛酸이시고 齒痛은 這間 좀 沈息이옵신지? 日夜 伏問이올시다. 基昶(기창)은 所率之僅支이고 在留同胞 等 均吉이옵기 幸이외다. 詳請은 第八回 上書까지 下燭하시와 아실 듯, 其後는 別無可告件이옵기 更陳치 않습니다. 餘讓日后暫謝

    140 崔正植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멕시코 메리다 ; 1918.8.30)

    上函八月 九日에 르모시오地方에서 하신 편지 뵈옵고 卽時 答函하였더니, 下覽하셨는지? 追後에 積阻하여 답답하오이다. 這間에 到美하셨는지? 中路에서 絶贐하시와 困難하신 말씀을 듣고 晝宵爲腦하오나 빈 마음뿐이옵나이다. 그동안에 기운 안녕하시며 宅內諸節이 어떠하신지, 本宅을 還駕하셨는지 未詳하오이다. 그간 여러 번 問安한 편지 보신 말씀은 없고 만사니오港에서 편지 보셨다하시고, 그 後에는 편지 못 보셨는 듯하오이다. 여기 정형은 노동이 점점 부실하여 걱정이옵나이다. 그전에 고본 들어온 것은 말씀 이왕에 다 드렸거니와, 仁出이가 고본 一百五十元을 가져왔사오이다. 그 後에는 아무도 아직 들어온 사람 없소이다. 속사기계 서판을 아무쪼록 주선하여 부쳐 주옵소서. 아마 금년 안에 제가 사무보기 전에는 못 볼 듯하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