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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인국민회

    대한인국민회 에 대한 전체 4117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121 이승만과 정한경이 안창호에게 보낸 서한(1919.3.7.)

    1919년 3월 7일 이승만과 정한경이 안창호에게 보낸 서한이다. 프랑스 파리에 가 있는 미국대표단 단장 랜싱 국무장관의 말에 의하면 한인 대표는 현재 파리에 올 수 없다고 밝히고 있어 한인 대표인 이승만과 정한경은 프랑스로 건너갈 계획을 일단 정지하고 우리 사정을 각 신문에 광포할 계획으로 우선 정한경을 먼저 뉴욕으로 보냈다고 했다. 그리고 파리에 있는 미국대표단을 통해 파리강화회에서 한국문제를 공식으로 다루어 줄 것을 희망하여 한인대표의 이름으로 작성한 독립청원서를 미 국무부에 제출했음을 알렸다.

    122 이근영이 작성한 회우 최윤의 소략사(1930)

    1930년 이근영이 작성한 회우 최윤의 소략사이다. 이근영은 최윤의 죽음을 애도하며 작성한 것으로 나라를 위해 헌신한 그의 삶을 간단히 기록해 북미 대한인국민회에 올린 글이다. 작성 연대는 1930년대 초경으로 보인다. 최윤은 1882년 황해도 봉산군 출신이고 구학문을 배운 후 1903년 서울에서 대한제국 군인으로 복무하다 1905년 멕시코로 이민가 노동생활을 했고 1911년 겨울 57명의 동지들과 숭무학교를 설립할 때 참여했다. 1921년 쿠바로 이거한 후 이곳 대한인국민회 지방회의 서기로 그리고 아동교육을 위해 수년간 봉사 헌신하다1930년 4월 16일 하오 4시 별세하니 그의 죽음을 매우 슬퍼한다고 했다.

    123 대한인국민회 새크라멘토지방회에서 최진하에게 보낸 부고 서한(1940.1.4.)

    1940년 1월 4일 새크라멘토지방회에서 최진하에게 보낸 부고 서한이다. 대한인국민회 새크라멘토지방회 집행위원장 한성준(韓成準)이 치료를 받다 지방 요양원에서 결국 별세하였음을 본 새크라멘토지방회 회원들이 대한인국민회 중앙상무부 총무 최진하에게 알렸다. 그리고 한성준은 제주 출신으로 향년 73세인데 공제회 회원이니 100원을 지출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124 재미한족연합위원회 하와이 대표 유진석 환영회 보고 문건(1945.4.15.)

    1945년 4월 15일 재미한족연합위원회 하와이 대표 유진석 환영회 보고 문건이다. 샌프란시코회의(일명 국제연합창설대회) 참석을 위해 1945년 4월 1일 오전 9시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한 유진석을 위해 대한인국민회 나성지방회는 동년 4월 15일 오후 6시부터 8시 30분까지 로스앤젤레스의 대한인국민회총회관에서 환영회를 개최하였고, 환영사는 송종익, 연설은 유진석, 소감은 전경무가 각각 발표했다.

    125 대한인국민회 상항지방회의 1943년도 임원 선출 보고(1942.12.13.)

    1942년 12월 13일 상항지방회의 1943년도 임원 선출 보고다. 대한인국민회 상항(샌프란시스코)지방회는 한인감리교회에서 대회를 열고 1943년도 신임원을 선출했다. 1943년도 새 임원은 위원장 황사선, 총무 양주은, 서기 선우학원, 학무부 김하태, 선전부 최봉윤, 구제부 염만석, 실업부 차정천, 지방대표 염만석, 감찰 차정석이다.

    126 대한인국민회 새크라멘토지방 통신원 이옥형이 북미 대한인국민회에 보낸 지방소식 보고(1943.2.4.)

    1943년 2월 4일 새크라멘토지방 통신원 이옥형이 북미 대한인국민회에 보낸 지방소식 보고다. 이옥형은 고 박양래의 부인 박흥순의 자녀 윌리암, 박교상의 자 조지, 김선호의 자 우라벗 군 3명이 미군에 종군함에 따라 이들을 위해 박흥순이 개인적으로 전별회를 개최했고 2월 1일 국민회 창립 33주년 기념일에는 이들 3인의 전별회 외에 국민회의 유지 발전을 위한 대책도 강론하였음을 알렸다.

    127 새크라멘토지방회의 1943년 3.1독립선언기념식 순서(1943.3.1.)

    새크라멘토지방회가 1943년 3월 1일 독립선언 기념식을 위해 작성한 순서다. 3.1절 기념식은 새크라멘토지방회 집행위원장 홍순택의 주관하에 기도 이옥형, 독립선언서 낭독 박흥순, 연설 정몽룡이 담당했다. 기념행사를 펼칠 때 독립금과 3.1기념금 모금활동도 했다.

    128 대한인국민회 델라노지방회의 1944년도 새임원과 1943년도 경과 보고(1943.11.21.)

    1943년 11월 21일 델라노지방회의 1944년도 새 임원과 1943년도 경과 보고다. 대한인국민회 델라노지방회 집행위원장 윤응호는 1944년도 새 임원과 본 지방의 인구, 재정 및,실업상황, 학생 현황 등을 작성해 북미 대한인국민회에 보고했다. 1943년 11월 21일 오후 8시 델라노지방회 임원들은 박충섭의 여관에서 모여 1944년도 새 임원진을 선임할 결과 집행위원장 박충섭, 서기 조울림, 총무 김종학, 구제위원 김형각, 교육위원 이진섭, 선전위원 오관선, 감찰위원 한유범, 대표원 김탁을 선임하였다.

    129 대한인국민회 로스앤젤레스지방회의 대한인국민회 창립 31주년 축사(1940.2)

    1940년 2월 대한인국민회 나성(로스앤젤레스)지방회가 국민회 창립 31주년을 맞이해 발표한 축사다. 국민회가 창립된 이후 재미 한인은 재미 한인의 인격을 가졌고 광복운동의 토대가 만들어져 광복운동을 촉진하게 되었으니 나성의 한인들은 국민회 창립을 축하한다고 했다.

    130 대한인국민회 오클랜드지방회의 1943년도 재정 및 사업보고서(1943.12.)

    1943년 12월 오클랜드지방회의 1943년도 재정 및 사업보고서다. 오클랜드지방회는 1942년 12월 13일부터 1943년 12월 5일까지 독립금 410원을 비롯해 총 879원을 수봉했고, 한인 상황은 인구 31인, 학생 4인, 유아 사망 1인이라 했다. 그 외 중경 광복군 위로금 67원, 적십자회 20원, 국치기념금 21원 등 108원을 더 수봉해 총 987원을 수합했음을 보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