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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주흥사단

    콘텐츠/미주흥사단 [] 에 대한 전체 1490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391 허진업이 김병연에게 보낸 편지

    今日 上午 九時 三十分에 會館에 火災를 當하여 Roof 의 2/3가 燒火 되었는데 Roof 全部를 새로 덮어야 되겠습니다. 燒火의 全部를 고치려면 五百元이 들어야 되겠다고 합니다. 出火의 原因은 알 수없으나 Stove에서 火光이 Roof에 미쳐 된 듯 하외다. 電氣를 連絡하여야 新聞을 할 수 있는데 다음號 新聞이 아니 가면 燒火로 因하여 新聞이 못나가는 줄로 여기소서. 餘不備上

    392 허진업이 김병연에게 보낸 편지

    十餘日前에 惠示를 拜承하옵고 卽地 鄭敬煕(정경희) 君의 入團問答을 施行하라하였으면 여러 關係로 비로소 本月 二十二日에야 那地團友一人과 鄭君이 合席하여 問答을 마쳤습니다. 弟와 一聯團友가 같이 鄭君의 우리團에 對한 覺唔가 徹底하며 決心이 굳은 것을 發見하여 君의入團에 다 贊成하더이다. 弟가 入團問答委員으로는 鄭君의 우리團의 過去歷史나 約法에 對한 智識은 넉넉지 못함을 말하고 앞으로 本團約法과 歷史를 더깊이 參考하라고 付托하고 問答을 畢하였지오. 特히 鄭君께 約法一部를 보내어주시와 이約法이 興士團에게 얼마나 必要한 것을 알게하여 주시옵소서.

    393 김세형이 김병연에게 보낸 편지

    오랜만에 붓을 들게되어 甚히 未安합니다. 其間 몇 번 宋君을 通하여 問安을 하였습니다마는 評調한 內容은 李岩(이암)께 말한 理由로 至今 京城와서 붓을 들었습니다. 嚴煕松(엄희송) 君은 반가히 만나보았고 平壤여러 親舊들도 잘 있으며 京城 亦是 그렇습니다. 一個月前 宣川에 가서 宋夫人을 만나뵈었는데 봉성 君과 同行이었습니다. 윌리는 어른이 되었으며 日語를 잘 합니다. 매리 亦是 大端히 컷고 낫습디다. 장리욱 校長도 잘 있었으며 特別히 宋夫人은 宋君이 왜 않나오느냐고 묻습니다. 弟의 就職은 자리가 있으나 좀더 朝鮮事情을 기다리는 中이고 좋은 데도 기다립니다. 그리고 作曲 發表會 音樂會를 하려고 方今 上京 中입니다. 여러 親友들에게 問安을 드려주시며 特히 宋君께 以上과 같은 말을 들어주소서. 피아노에 對하여는 내해를 온 여름을 每日 다니다시피 하여 겨우 얼마전에 무사히 찾고 선천 것은 아직 해결이 나지를 않았다고 말씀드려주소서. 時間이 나는대로 또다시 問安爲計입니다.

    394 최능익이 흥사단에 보낸 편지

    自本國으로 玄濟明(현제명), 鄭南洙(정남수) 兩君이 來此하여 國內 及 島山의 消息을 전해주어서 잘 들었습니다. 니처 兄께 告하고자 하였으나 하웓의 病이 重하다는 消息을 듣고좀 傷心 中이었어서 今日에야 붓을 들었습니다. 鄭南洙(정남수) 君 付託은 自己가 四月二十六日에 先生을 보고 왔노라고 先生의付托이 집 아이들이 片지를 좀 자주 해달랜다고 傳해 달라고 하시드랍니다. 國內同志들도 先生의 事業을 爲하여 念려 中인데 世上與論은 敎育事業을 말하나 現下情勢로 敎育事業도 바로할 수가 없으니까 차라리 숨은 財政을 動하게하여 經濟事業으로 치簿함이 좋겠는데 國內民心이 島山에 實業着手는 그다지 믿지들을 않으니까 先生은 資源을 動하게 하고 그앞에 實業을 할 줄 아는 同志들이 集合하여 輸出入事業을 實現해서 先生의 활동무대를 이루웠으면 함이 많다고 합니다. 玄濟明(현제명)君의 傳言은 這間 修養동友會가 發전못 된 理由는 一,鄭仁果(정인과) 君이 同友會員끼리 조직되었던 정米所事業에 對하여 不正壹한 일이 있는 관계와 二, 李光洙(이광수) 君이 처음 東亞日報에서 나와서 朝鮮日報로 오자 日本에 皇太子가 낳는데 皇太子 誕生의 祝賀論文을 쓴 理由로 思想靑年들 한테 매까지 맞고 新문社에서 나와서 金강山으로 갔던 일과 三, 安先生이 재판 壹時에 今後는 政治운동은 아니하겠다고 한데對한 비評도 不無이어서 同友會는 침체中에 있었다고 합니다. 至今은 安先生이 出世하여 對面하는 者가 많아갈수록 先生의 人格은 회복된다고 傳합니다. 鄭氏의傳함은 總督府 高等官吏 中에 先生을 숭배者가 많다고합니다. 弟의 말이 송종익 君이 귀國하여 實業에 對한 第 一선 활동者가 됨이 如何하냐고한 즉 鄭 氏 答이 宋 君은 還國하면 倭手에 잡히는 것이 事實이니까 아예 還國은 많이함이 可하다고 합데다. 事業에 對하여는 弟가 數年間을 此處에 있어 보았는데 무엇이나 大商業을 經營할려면 此處나 뉴욕에다 터를 잡아야 되겠습니다. 弟가 能인과 오래채 經營 中인데 아직 實現이 못되어서 兄과 의논을 않하였습니다. 今年 中에는 實現이 될 듯 한데 一, 녹두輸入과 다음은 太를 多종으로 들여다가 콩나물 낀잉을 했으면 거大한 事業이 될 터이외다. 띄추로잇에 柳一韓(유일한)이가 시작한 lachoy co. 이는 녹두나물낀 잉을 꼭하는 데 每年 녹두를 二百六七十톤씩을 씁니다. 鄭漢景(정한경)은 꼭 녹두나물 낀만 파는 쎌쓰맨인데 每朔 二百元式이나 받고 있습니다. 아직 누구가 콩나물낀잉을 하는 이가 없느데 유韓이 康永承(강영승) 君이 小規模로 콩나물을 길러서 작은 가게를 들여놓고 낀잉을 해서 市장에 내놓았는데 없어서 못 팝니다. 그래서 康君은 至今은 처음으로 잘 지내는 貌양입니다. 콩나물낀잉 事業은 아주 有望한 大事業인데 弟는 能딘과 녹두를 一次 해가지고는 이것을 해볼려고 生覺입니다. 그러고 이곳 十戔 전망을 대상하고 米國産 삿부채를 多種류로 몇百마介를 每年 미국으로 輸入해 쓰면 이것 역시 有望한 業입니다(八用扇)이라는 삿부채 十戔 전망에서 十戔에 팔 수가 있으니까 美國서 所用으론 위선 女子들이 自動車에서 씻어놓고 앉는데 삐취에서 팍에서 吾國서는 八用扇이었으나 美國서는 十用扇은 될터이외다. 以上이 弟가 이넓은 시장에와서 각오하고 있는 바인데 아직 누구보구나 말하지마시고 이에 對하여 더 많이 生覺도 하고 兄의 의見을 一次 들려 주소서 能딘과 녹두는四月內로 될 것인데 최희송, 우태경等과 北中國에 物品輸出이 大有望해서 그것부텀 한뱃짐하고 보내겠다고 해서 또 기다리고 있습니다. 金炳瑍(김병환) 君이 보고와 문의에 對한 片지를 좀回答해주소서 하웓놈이 정말 免死나 되었는지요 참 민망합니다.

    395 최능익이 흥사단에 보낸 편지

    惠函과 영수증 林 康 兩友께 오는 公文 모두 잘 받았습니다. 日間 大會主석과 준바위원들이 合席하여 各部임원을 分任하겠소이다. 來日 즉 八月 二日이 本團主催인 피크닉날 인데 음식은 朴必(박필)君이 전담하고 市內全반 同胞를 모두 청해서 市內南部에 놓인 짹손 팍 벧딩하우스 그라운드로 나갑니다. 玄濟明(현제명) 君은 至今 愛團心이 좋아졌습니다. 玄 君은 연희전문學校 音樂部 기본金 적립과 樂器들을 爲하여 활동中인데 이곳 로드히버 音樂푸린팅 會社에서 全반을 주선하고 그會社에서 기본金 모집을 全담하고 玄君을 自己네가 定하는 곳으로 파송을 해서 至今도 위넬라 lake 이라고 富者들이 벡케이슌하는 그곳에 가서 今月 十九日까지 절차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本國 기독靑年會代表 위임을 맡아서 八月 二十三日부터 九月二日까지 美國靑年會總會가 오클랜드에서 모이는데 거기에 出席하기 爲하여 今月 十九日까지 위넬과 lake에서 마치고 當日 저 녁으로 加州(캘리포니아)를 向합니다 그리고 吾團大會는 羅城(로스앤젤레스)에가서 參席하기로 弟와 日程을 모두 말했고 大會절차에도 勿론 협助하기로 生覺 했습니다. 玄 博士의 말이 九月二日까지 오클랜드와 桑港(샌프란시스코)에 있다가 떠나서 우리들이 딴뉴바를 들러서 九月五日에 羅城을 가기로 爲定입니다. 萬若大會절차에 준비할 것이 있으면 中加州(캘리포니아)는 大會後에 가게하고 九月二日 羅城으로 곧 올 것은 形편대로 교섭하시오. 로드히버 會社에서 연전 음악部 기金을 自己네가 全담활동 하는데 在美한 韓人들도 얼마든지 多少間同力해달라는 理由下에서 加州의 韓人들을 심방함도 이會社에서 際費를 지願해서 玄君을 파송함이외다. 以此 下량하신 後 玄君을 爲한 音樂會나 한번해서 多少間 同情함이 玄君을爲한 成功인가 합니다. 敎會內 또는 黃 牧師께片지 하겠습니다. 玄 君이 七年동안 연전學校에서 敎授로 있으면서 社會를爲하여 봉사를 해 버릇해서 마음이 매우 좋습니다. 그리고 京城內에서 敎育界로는 굴지하는 同志인데 우리는 더욱 친절히 하고 우리主意를 더 잘 覺오시켜서 入國하게할 필요가 있는 줄압니다. 빼지는 大會時에 使用하게 할려고 이 곳 團友會로 의론하고 二百介를 六十元에 來明日에는 계약하겠소이다. 李逸(이일) 君이 今年 大會에는 꼭 온다는 기별이 왔습니다. 大會時에 討議할 무슨문제가 있거든 미리 보내주소서 玉懷虎(옥회호)君이 來日 이곳서 떠나서 羅城으로 갑니다. 玉 君이 다리는 딴다리를 해댔으나 事役은 무엇이나 잘 합니다. 이곳서는 그만 너무도 타락된 生活을 多年間해서 여기에 있어가지고는 處身을 고치기가 퍽 힘들게 되었는데 그래서 加州(캘리포니아)로 가는 것을 弟도 찬성합니다. 金成鳳(김성봉) 君과 가까운 친구이니까 金 君 商店에서 일이라도 얻어 한다고 나갑니다. 宋 夫人 本國 내왕에 貴처同志들이 많이 힘쓰신 줄 압니다.

    396 허진업이 김병연에게 보낸 편지

    오랫동안 音信이 막혔습니다. 요사이 陽春에 兄體 錦安하시어 公私務에 많이 勞力하십니까? 願仰이옵니다. 志弟는 依前이오며 同留 團友들도 無事합니다. 來 八月 下旬에 Oakland balf에서 國際學術大會가 召集되옵는 바 志弟가 進參케 될 것 같습니다. 其時에 貴邊에 數日間 滯留하려 합니다. 本團의 今年度 義務金으로 金永六(김영륙)·趙克(조극) 兩友에게 五弗式 推尋하여 送呈하오니 領受하소서. 領受證은 弟에게로 보내 주시면 좋겠습니다. 悤悤하여 以後는 이만 씁니다.

    397 최능익이 흥사단에 보낸 편지

    下送하신 글을 감사히 보았소이다. 合同에 對한 消息은 아주 기쁘게 받았나이다. 그리고 總會로서 보내준 글을 같이 받고 더 잘 알았나이다. 庶務員에 對해서는 志兄에 뜻을 弟는 同議합니다. 理事會 결의로나 各 部長들의 연명으로나 昌模君에게 命令 비슷이 請求書를 만들어 林君에게로 보내며 弟에게도 그 事緣을 말하고 林君을 권해서 보내라고 하는 글을 한번 해 보내 주소서. 林君이 가게 되면 이 地方에서 더욱 힘을 써서 每朔 五十元 式을 支出케 하고 또는 移民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方策을 자세히 알게 하여 주소서. 林君이 지금 아주 하드 웍(hard work)을 하고 每週 九元 式을 받고 朴君에게서 일을 하는데 至今도 썸머 스쿨(summer school)을 하노라고 하나 일이 힘들기 때문에 工夫가 잘되는 모양입니다. 林君도 울뚝한 고집이 있는 男子인데 이곳 同志들도 林君이 團務에 着手를 모두 찬성합니다. 弟 혼자서 권하다가 듣지 않으면 이곳 團友會의 결의로 권해 보오리다. 每朔 五十元 式 받고 團 일을 보는 것이 林君 自身에게도 害가 없을 듯 한데 移民局 문제만 잘 조처가 되면 半日을 工夫하고 半日을 일함이 좋을 듯 하외다. 同呈하는 三十元 첵(check)은 以下 三君의 義務金입니다. 받으신 후 곧 領受證을 보내 주소서. 조진환 十元 任用必(임용필) 十元 羅杜元(나두원) 十元 合 三十元입니다. 多事한 羅城(로스앤젤레스)에서 일 많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李秉斗(이병두) 君은 아주 버리는 듯 하외다. 至今은 金慶(김경) 氏와 밤낮 몰려다니며 同志들께는 더욱 失信中입니다.

    398 최능익이 흥사단에 보낸 편지

    日前 付呈한 돈들과 기부금 發記를 받으셨을 듯. 그리고 韓승곤 목사의 상배한 消息도 받으셨을 듯. 기부金에 朴容奎(박용규) 君 五元을 더 記入해 주소서. 이곳 地方 團友會로서 韓목사 위안會를 二十五日 저녁에 모이기로 했습니다. 하원 母도 十二月 四日에 在 本國人 自己의 父親께서 別世하였다는 訃音을 日前에 받고 아마 퍽 슬퍼하는 모양입니다. 될 수 있는 대로 만나서 위로하여 주십시오. 박용구 君이 피버시를 받고 昌模는 그냥 그곳서 일을 하는 中입니다. 弟는 能딘과 경영인 輸出入業이 實現되기 前에는 金錢用數가 도무지 없습니다. 義무에 對하여 未安할 뿐이나 하는 수 없이 늘어져 있을 뿐입니다.

    399 박생주가 김병연에게 보낸 편지

    一次도 相面치 못하옵고 如此히 失禮하옴은 惶悚千萬이오나 急함만 生覺하고 寸書로 仰告하나이다. 海外萬里에 貴體 萬福을 伏祝하나이다. 生의 再從弟 朴相眞(박상진) 君이 八年 前 美國 留學次로 渡美하여 目的한 바 成功하면 歸國할 줄로 思料하고 一日卽如三秋로 苦待이옵더니 一九三六年 三月 九日 付로 「미주 캘리포니아 쓰탁톤」에 계신 김경자 氏 書信으로 千萬意外의 自動車 事故로 不幸의 通知를 接하옵고 天地가 아득하며 家眷 全部 昏迷 中일뿐 不喜라. 家中一體가 可謂 口不可言이올시다. 事情은 親族 中 一人이라도 現場까지 出發함이 當然하오나 周圍環境과 諸般 實情上 不得已하오니 何以人事乎이까? 故로 百方으로 生覺다 못하여 遠地에 滯在하신 同胞의 體面도 不拘하옵고 貴殿이 受亂 現場을 目見하셨다 하여 敢히 書字로 仰問코저 하오니 寬大하신 度量과 民族의 愛情을 베푸시어 諸般 失禮를 寬恕하시고 目見하신 現場狀況과 本人의 相連有無 又 確實한 證據有無를 詳細히 調査 或은 探知라도 하시어 下敎하시면 傳子傳孫하여 白骨難忘이겠나이다. 或 實狀이라면 受亂者가 何 何地에 頭留하였으며 死後屍體는 如何히 되었는지요? 不幸者의 血續인 男妹의 子女가 有하오니 遺骨도 決心하고 歸國시키려 生覺이오니 運搬에는 如何 方法을 取하여야 似好일지 詳細 指導하여 주심을 千萬 바라나이다. 告하고 仰託하올 말씀이 泰山같사오나 昏迷 中 先後錯誤로 下筆하오니 불쌍한 人生을 爲하시어 細細通知하여 주십시오. 若 費用이 所要됨은 依例일 것이오니 前後를 細細히 下敎하여 주시기를 伏願하나이다. 右에 失敬됨은 容恕하실 줄로 그만 그치나이다.

    400 흥사단 편지

    실례합니다. 주님 사랑으로 용서하시고 불쌍하온 이 가족을 긍휼이 여겨주실 줄 자신하고 붓을 듭니다. 소생은 본적을 조선 홍성에 두고 나성(로스앤젤레스)에 유학차로 八年전에 가서 인생관을 맛보며 가진 파란을 겪어가며 고국 부모, 처자, 친척, 친우를 그리우며 무슨 일의 성공하기를 바라며 동분서주하다가 今年 二月 二十五日에 베니上 부근에서 자동차 충돌로 별세한 박상덕[朴周淳(박주순) 長子]의 아내올시다. 일전에 쓰탁톤에 계신 김경자 씨가 신문에 난 것을 오려 보내주시고 또 公州 후에 본적을 두신 임병춘 씨의 서신을 받고 사실인 줄 自信하고 보오니, 이곳 경상은 기록지 않사옵고 제일 급선무에 욕망은 비록 죽은 시신이나마 보고자 함이 유일의 소망이고 본즉 미칠 듯 합니다. 선생님께서만 주력해 주시면 꼭 내올 수 있다는 말씀을 듣사옵고 초면에 염치 불구하고 상서하오니 선생님, 자손 잃고 식음을 전폐하고 계신 상덕의 부모님 가군을 잃고 어린 것 남매의 앞길을 위해 가군의 부모님 위로를 위해 복잡한 머리를 가지고 있는 동시 또 한 가지는 그의 백골일지라도 고국 산골에 두어 자손에게 전해줌이 아내된 본분 어미된 책임이옴은, 선생님은 벌써 짐작하고 계신지도 알 수 없사오나 또한 제 의사를 선생님께 여쭈오니 선생님 진역하여 주시옵소서. 선생님 시신이 오면 더욱 좋사오나 어찌 감히 바라겠습니까. 고로 화장을 하시어서 백골을 소포로 보내주시오면 참으로 어떠하다 말씀 여쭐 수가 없습니다. 그 비용은 아내인 김현경이 부담하겠습니다. 지금 앙정코자 합니다. 몰상식하게 이 같은 시골구석에 있는 여자이니만치 두서를 차리지 못하고 급보의 마음을 어찌 할 수 없어 급히 실례됨도 불구하고 졸필을 드렸사오니 하해같은 혜택을 입사옵기 엎드려 바라오니 황송하오나 그 시신이 너무 상하기 전에 화장을 하사 보내주시옵소서. 김중수(重洙) 목사께서 장례식을 주장하시였다지요, 그 목사님께도 상서하고자 하는 마음 간절하오나 주소를 알지 못해 못하오니 선생님 말씀하시고 좀 도와주시옵소서. 참으로 막막하고 가슴이 터질 듯이 답답합니다. 죄송하오나 비용은 말씀만 하여 주시면 앙정하겠사오니 선생님 八개성상이란 짧지 않는 세월을 남편을 해외에 가시게 하고 남편의 객고하시는 것 보란 듯이 염려와 부모님이 아드님 보고 싶어 하시는 것, 어린 것 남매가 아버지 그리워하는 것을 만반으로 위로를 드리고자 나는 잊어버리고 가군 성공하시기 위해 부모님이 머루리의 안색으로 더욱 아들을 보시고 싶어 하실까 하여 늘 기쁜 안색을 나타내고 어린 것들이 아버지 없는 자태가 날까 정신적이나 물질적으로 여기에 주력하며 그의 성공만 기대하고 지내왔삽더니 지금의 의외의 변을 당하고 보온즉 하늘로 올라갈지 땅으로 내려갈지 아득합니다마는 그의 백골만 이땅에 갖다 놓으면 다시 용기가 날듯하오니 선생님, 선생님이 불쌍한 가족을 살리심인 혜택 베풀어 주시옵소서. 선생님, 사년총회 주일학교 대회에 조선대표로 유형기 선생님이 조선서 三月 三十一日의 조선서 떠나시었사온데 귀지에 도착이 벌써 되시었겠지요. 만일 만나시거든 제 사정을 그 선생님께 더 자세히 들어 주시고 그 선생님과도 상의하사 꼭 고국에 오도록 해주시옵소서. 선생님 六十 노모는 인사불성으로 자리에 누워 아드님을 생각하십니다. 이 어머님께 백골이라도 보여드리면 이 어머님께는 인삼이나 녹용이나 다름이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朴이 독신이고 어린 아들 있다 하나 어려(十二세)서 분별이 없으니 朴을 위해 해외에 계신 선생님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사옵나이다. 동봉하시는 분도 마음은 간절하시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가시지 못하고 이같이 상서하오니 만 번 양해하시고 꼭 좀 수고를 베풀어 주시옵기 엎드려 바라고 이것을 실례하오니 곧 회서(回書)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