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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주흥사단

    콘텐츠/미주흥사단 [] 에 대한 전체 1490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311 세계신문 전람회 개최 협조문 (1935.4.16)

    辰下季春에 旅中 文體大安하심을 仰祝하나이다. 就白來六月初旬 弊社社屋新築落成紀念事業으로 世界新聞展覽會를 開催하려 하옵난데 貴下의 뜨거운 協助를 仰望하나이다. 展覽會를 完全히 하기 爲하여는 勿論 여러 가지 點으로 貴下의 努力을 要望하는 바이오나, 時日이 迫到하였으니만치 于先 貴 地方 諸種新聞 及 各大學新聞을 各一部式投送하여 주시기 바라오며 其他 本展覽會를 裝飾할 만한 繪畫文獻等을 蒐集하여 보내신다면 弊社로서는 無限이 感謝하겠나이다. 公私間多忙하심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마는 弊社의 意圖가 朝鮮文化 向上을 爲하여 微誠이나마 다하려 함에 專在함을 諒解하시고 貴下의 助力을 바라는 바이외다.

    312 E.K가 김군(金君)에게 보낸 편지

    (附言) 지난 大會사진 남았으면 부쳐 주십시오. ●장 다도 좋습니다.

    313 한선용이 김병연에게 보낸 편지

    謹詢陽春에 貴體大安하심을 斗祝 하나이다. 龍은 今番 弊社에서 世界新聞 展覽會를 開催하려 하옴은 弊社 社長의 通牒(同封)으로 아실 바 이거니와 展覽會의 米酉(미국.유럽)部門을 完全히 하기 爲하야는 西部 地方에서 貴下의 助力이 絶對 必要함을 믿고 竝에 特別히 付託하는 것입니다. 貴下가 누구인지는 親友 韓昇寅(한승인) 君으로부터 잘 紹介받았습니다. 展覽會 材料 蒐集에 關한 것은 말씀드리지 않아도 잘 아시겠지만은 時日 關係로 于先 貴 地方新聞及 他地方 小新聞(地方新聞 파는 스탠드에 가 보시면 많이 發見할 수 있을 것입니다) 其他 學校 新聞을 사 보내 주시고 다음 滋味있는 繪畵, 統計, 傾向 其他에 留意하여 주십시오. 如何튼 速한 것이 무엇보다도 第一입니다. 以上 蒐集된 材料輸送郵料로 金拾元을 付送하오니 그리 알아주십시오. 아직 뵈온 적이 없는 貴下에게 너무 無理한 付託을 해서 罪悚합니다. 끝으로 貴下의 健康을 빌고 이만 不備 합니다.

    314 흥사단 편지

    時間이 急하여 참으로 電逢雷別之感이 적지 아니 하는데 短 時間이나마 兄께서 받은 사랑은 적지 아니합니다. 去 七日 埠頭에서 作別하고 그 翌日 桑港(샌프란시스코)에 到着하여 宋 先生及 其他 團友 諸氏를 만나 뵈옵고 九日 아침 桑港(샌프란시스코)을 떠나 只今 太平洋을 건너고 있는 中입니다만 多少 波濤가 괴롭게 하여 出船以來 아직 寢床을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韓君도 一二次에서 더 보지를 못하였으니 아마 亦是 就床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明日은 布哇(하와이) 到着된다고 합니다. 更生之感이 일어납니다. 船上에서는 時間이 좀 있을 줄 믿었더니 航路가 不順하여 아무것도 못 할 모양입니다. 只今 이 便紙도 寢床에서 數字 記錄하오니 용서하여 주십시오. 秉瑍(병환)兄. 弟가 歸國後 우리 團의 消息을 많이 못하나 傳하게 할 제 便宜를 看하여 本紙 後靣의 記錄한 바와 같이 隱語를 使用하여서 大綱이나마 本國 內의 團의 形勢를 通知하려 하오니 如是下諒 하옵시고 後日 弟의 書面에 弟의 本名이 없고 團友 號 二八七이 七八二가 되어서 집 番地 數字가 되는 境遇가 있다 하더라도 서로 알아주십시오. 勿論 普通書信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金聲龍(김성룡) 宋鍾翊(송종익) 兩 先生께도 말씀 드리어 주십시오. 北美領土를 떠나기 前의 必要한 말씀은 이만 드리고 歸國 後 다시 쓰겠나이다. 아무쪼록 安寧히 계시어서 일 많이 보아 주십시오.

    315 흥사단 편지

    靜中氣體候 萬安하시옵고 閤內均護하십니까? 무섭습니다. 단제는 이곳 온 두 달 난 每每히 잔병으로 고생 이옵다가 이제는 좌편 팔을 잘 굴신하지 못하게 됩니다. 島山 先生께서 외과에 제일 한다는 醫士를 불러다가 진찰을 시켜 주옵신 結果 醫士의 말이 더 눈물 땀을 하여보라면서 特別한 藥이 없다합니다. 先生께서 白髮이 星星하시오나 피부는 오히려 更少年언 같이 있습니다. 兩次나 찾아보았사오나 問客이 하도 많으니까 私情은 못 드렸삽고 다만 넘어 되는 것은 장차 先生께서 무엇을 하시게 되면 잘 후원을 할까함 이올시다. 우리가 밖에서 추상하기는 심한 고통을 받으시리라 하지만 덧날까만은 先生께 묻사온 즉 上海서부터 대우를 잘함으로 곤란한 것이 없었다 하더이다. 지금 복부에 가시가 생겨서 온 정으로 가셨는데 특히 대처하시기를 바랍니다. 先生께서 必榮 이것 아니 맘에서 밤부록이라는 편지를 받아보겠노라 하옵더니 꽤 차가 되었습니까? 願望함니다. 지금에 申允局(신윤국) 君 께서 常務로 있삽는데 年二元式 義物金 내는 것을 兩年條四元을 바치면서 諸益의 誠力與否를 묻삽는 즉 다 睡眠此態라 합니다. 透徹한 引導者는 없고 生活은 困難한 즉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만은 태산고악과 같은 心理는 없고 남의 風潮에 노는 靑年이 多數한 것은 어떠하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華成頓(워싱턴) 政府에서 外國人을 逐出하기로 法案을 만든다고 하오니 我同胞도 그 영향을 얻게 될는지 근심이 됩니다. 餘不備上候書.

    316 흥사단이 김병연에게 보낸 우편엽서

    安寧하심을 祝하나이다. 小弟가 早晩間 羅城(로스앤젤레스)으로 移直하려고 經營이옵는바 只今 兄에게 問議하고자 함은 團所에 方을 얻을 수 있는 것과 또한 團所에서 밥을 지어 먹는 與否와 其他 規定을 알고자 하오니 時間을 내시와 곧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此處에 살기 速히 難합니다. 餘不備上

    317 이성식이 송종익에게 보낸 편지

    건강하심을 묻습니다. 벌써 이곳에 온지도 두 주일이나 가깝지만 오는 날부터 국수 만드는 데 잡혀서 좀 분주한 중에 형님께 통지까지 못했습니다. 저간 시작하신 새 사업에 많은 재미를 보시리라고 믿습니다. 이곳 국수회사는 장호 군의 애쓴 결과로 지금은 자리가 잡힌 모양입니다. 와서 본즉 제조하는 국수의 품질이 남만 못하지 않고 지금은 손이도 군을 밖에 일을 보게 한 결과 성적이 좋습니다. 성식은 할 일즉 일후에서 추로 있을 심방하려고 합니다. 좌우간 이곳 일이 정돈되는 때까지는 몇 주일간 이곳에 있고자 하나이다. 어젯밤 통상단우에 문답을 지났습니다. 이곳 형편의 변경을 보아 다시 기별할 터외다. 지금 형편으로는 들어오는 주문을 가지고 세 사람이 긴 시간을 가지고야 꾸려 나아갈만 하지만 침일이 들어오나이다. 다시 형님 건강과 새 사업에 많은 재미를 바라고 또 쓰리다.

    318 이광수가 김병연에게 보낸 편지

    안부는 간접으로 듣사오나 요새에도 더욱 건강하시고 회무에 더욱 정성과 힘을 쓰시기 바라오며 그곳에 여러 동지께도 같은 뜻으로 항상 비옵니다. 광수는 지난 오월에 조선일보에서 나왔사오며 그것은 방응모 씨와 뜻이 맞지 아니하는 까닭이었습니다. 거기서 나온 뒤로는 몸과 마음을 쉬고 닦노라고 서울을 떠나서 숨어 있습니다. 지혜롭지 못하게 처사한 것을 심히 부끄러워합니다. 도산 선생의 건강은 그만하시다고 하오며 겨울 전에는 가출옥으로 나오시게 될 듯하다는 말이 대판 매일신문에 실려 있사오나 확적할 것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늦더라도 오는 봄 안으로 나오시게 되리라고 총독부 사람 중에도 말하는 이가 있습니다. 이곳 여러분은 별고 없사오며 신윤국 군이 회일을 맡으셔서 전력을 다하시고 계십니다. 도산 선생께서 나오시기 전에 회의 기초를 좀 더 굳게 하여 선생께서 나오시는 길로 위로와 일거리를 장만하여야 하겠는데 그리하자면 회관 건축이 급선무라 하여 신윤국 군이 중심으로 회관기금을 모으고 있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금후 우리 운동의 중심과 본무대가 본국에 있사오며 또 도산 선생이 안에 계시게 되니 앞날의 희망이 심히 크옵니다. 십수년 내로 청년의 마음이 공산주의로 많이 쏠리었었으나 이삼년 내로 점점 제 길에 돌아와서 요새에 와서는 우리 뜻에 공명하는 이가 많이 늘어갑니다. 이러한 시기에 있어서 모일 곳을 장만하고 우리가 일제 동지를 모집하기에 힘을 쓸 큰 효과를 얻을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이왕 회관을 마련하는 바이면 건물은 비록 크지 못하더라도 기지만은 장차 확장할 여유가 있도록 잡을 필요가 있사오니 미국 계신 동지가 기지를 부담하시고 안에 있는 사람들이 건물을 부담하는 생각으로 일본 돈으로 일만원만 보내시도록 힘써 주시기를 바랍니다. 만일 준비 적립금 중으로 보내신다면 그것으로 사는 기지를 준비 적립금으로 대신할 수 있을 듯하오며 일본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땅 값이 금년 안에 벌써 이할이나 올랐사오니 기지를 넉넉하게 사두는 것은 어느 편으로 보거나 유리한 줄 믿습니다. 이곳서 회관기금으로 이미 허락된 것은 삼천원 가량이오나 기지를 살 일만원이 거기서 오게 되면 이곳서도 육칠천원은 모일 듯 합니다. 동광도 매양 실패로 끝나고 이런 말씀을 드릴 면목이 없사오나 회관이 되면 동광도 속간할 수 있고 동지도 많이 모일 줄 믿습니다. 오늘날의 조선청년의 사상경향이 좋은 것과 도산 선생이 나오실 날이 가까운 것과 신육군 군이 몸을 바치고 나서신 것과 또 지금 일·미(일본·미국)간의 위체시세가 좋은 것과 조선 내의 토지에 투자하는 것에 위험성이 없는 것과 금후의 우리 일의 중심이 서울에 있을 것과를 아울러 생각하시여 송종익 선생 기타 여러 동지와 잘 상의하시여 우리들의 간청을 한 번 더 들어주시도록 힘쓰시기를 바라오며 그곳 여러 동지께 골고루 문안을 드리옵니다.

    319 흥사단 편지

    그간도 평안한지 알고자 하며 弟는 一주 전 퇴원하여 고향이라고 들어오니 쓸쓸하기 짝이 없소. 만일 도지지 않으면 눌러 있고 불연이면 또 나아가야 되겠소. 이만하기도 염려인줄 아옵니다. 그간 홀부가 또 된 모양이요. 송군은 아직 못보았소. 부송하신 절수(Check) 十六元 각수는 취심하였고 먼저 부송하였다는(정금은행으로) 九元 五十여 전은 아직도 통고도 없소. 그 은행절수도 아직 京城같은 데 가서 교환해 보고 不如意하면 수결두어 보내리다. 이러니 폐지하고 各三 지내기 전에 申君과 의논하여 하등선표게 하나만 부송하여 주길 바라오더구나. 건강을 위하여 그립니다. 총총

    320 흥사단 편지

    오래간만에 웃을 줄게 됩니다. 여름동안 무고히 지내셨는지요? 韓呂寅(한여인) 君을 通하여 兄님이 平安히 계신 것뿐은 알았습니다. 弟는 歸國하여 就職도 別로 좋지 못하고 惱惱이 지냅니다. 協成實業學校에 있기도 하였습니다. 日前에 本鄕 安州를 다녀왔습니다. 某某 親友를 다 만나 보았사오며 特히 兄님 本宅을 訪問하여 夫人과 아들들도 뵈었습니다. 夫人께서는 身病으로 계시고 매우 형님의 安否를 念慮하시는 貌樣이오며 三子息들은 無故하오나 生計에 窮으로 念慮 中 特히 魯泰(노태) 君이 여기 대하여 매우 근심하더이다. 형님의 令息 세 분은 安州에서 매우 칭찬하는 사람들이 오며 親知 間에도 愛惜하여 하는 것은 學業을 繼續지 못하는 것과 當場 生活에 어려움을 當하는 그것이외다. 형님 지금 당신이 每朔 貸取를 하여서라도 十弗가량 씩은 보내주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將次가 茫然하오니 형님이 남의 것을 진대로 지금弟가 付托하는 이것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就職하고자 하여도 每月 단돈 十圓 벌 자리도 얻을 수가 없이 窮하게 지내는 것을 볼 제 親友되는 弟로서는 兄님을 强迫하야 다만 얼마씩이라도 보내주라는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소이다. 魯泰(노태) 君이 父親께 上書하야 달라는 付托도 여러 번 갔었습니다. 이 편지 받는 卽時로 限二拾弗 美貨라도 爲先보내고 追後 每朔 拾弗以上씩이라도 보내야 糊口之策이라도 되겠습니다. 무슨 짓을 하여서라도 이 付托은 어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弟는 安州에서 여러분의 사랑을 업고 昨日 京城으로 왔습니다. 魯泰 (노태)君이 京城에 就職處를 問議하오나 어쩔 수가 없어 아직은 아무 運動을 그를 爲하야 못하오나 將次機會가 있으면 힘써 보겠습니다. 매우 明敏하고 점잖은 사람이외다. 형님이 만약 그 아들들을 對하면 더욱 生의 欲望과 그들을 爲하야 도와줄 생각이 懇切할 것이외다. 형님의 處地를 아오나 그래도 거기서는 每朔拾弗 以上은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렇게 上書합니다. 餘不備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