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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병자료에 대한 전체 704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611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전송 제122호 회령에서의 폭도 봉기 풍문에 관한 통감부 내전(來電) 요지 전전(轉電) 건 발간일: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발신일: 1909-01-14 발신자: 봉천(奉天) 주재 고이케[小池] 총영사 수신자: 봉천(奉天) 주재 고이케[小池] 총영사 메이지 42년(1909) 1월 14일 제3호 귀하의 전보 1호에 관해서 전보를 보내 이토[伊藤] 통감에게 문의한 바로는 어느 지점에서도 이를 보고한 바가 없으므로 다분히 허보라고 믿어지지만 만일을 위해 회령(會寧)에 질의의 전보를 보냈다는 회답을 받았기에 이런 사정을 일단 전보로 보냅니다.

    612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기수 제158호 한국 각도에서의 폭도 토벌 정황에 관한 동국 주차군사령관의 보고 이첩 건 발간일: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발신일: 1909-01-15 수신일: 1909-01-15 발신자: 외무대신 수신자: 외무대신 참1발(參一發) 제363호 메이지 42년(1909) 1월 15일 한국주차군사령관의 보고 요지 1. 평안남도 방면 덕천(德川) 및 영원(寧遠)의 헌병이 1월 2일 함경남도 영흥군(永興郡) 내에서 적 25명을 토벌하여 그 중 14명을 죽였다. 2. 황해도 방면 12월 24일 청단(靑丹)의 헌병이 그곳 서남 약 4리의 지점에서 15명의 적을 격퇴시켰다.평산(平山) 관할 구역 연합수색대가 12월 27일 온정원(溫井院) 부근에서 약 240명의 적을 토벌하고 또 1월 2일 평산 서남 4리 지점에서 약 250명의 적을 토벌하였다. 3. 강원도 방면 임계(臨溪)의 헌병이 12월 27일 밤 그곳에서 습격한 약 30명의 적을 격퇴하였다. 4. 경기도 방면 포천(抱川)의 헌병 및 그곳 수비대가 1월 3일 밤 그곳에서 습격한 약 300명의 적을 격퇴하였다.유산리(杻山里)의 헌병이 1월 7일 그곳에 습격한 약 200명의 적을 남방에서 격퇴하였다. 5. 충청남도 방면 진령(鎭嶺)의 헌병이 1월 2일 그곳 동방 약 1리 지점에서 약 30명의 적을 토벌하고 그 중 4명을 죽였다. 6. 경상북도 방면 예안(禮安)의 헌병이 12월 23일 그곳 동북 약 4리 지점에서 15명의 적을 토벌하였다.영양(英陽)의 헌병이 12월 23일 동 군 내에서 13명의 적을 격퇴하였다. 7. 경상남도 방면 안의(安義)의 헌병이 12월 24일 그곳 북방 약 5리 반 지점에서 약 30명의 적을 패하여 달아나게 하였다.산청(山淸)의 헌병이 그곳 수비대와 협력해서 12월 27일 그곳 북방 4리 지점에서 약 20명의 적을 격퇴하였다. 8. 전라남도 방면 완도(莞島) 주재 순사가 12월 12일 고금도(古今島)에 상륙하여 적 14명을 격퇴시키고, 12월 20일 완도에서 약 40명의 적에게 습격 받은 재류 일본인과 같이 목포(木浦)에 데려왔다.해남(海南) 주재 순사가 12월 16일 동 군 내에서 약 30명의 적을 격퇴하고, 동복(同福)의 헌병이 12월 22일 그곳 남방 3리 지점에서 약 150명의 적을 토벌하여 그 중 9명을 죽였다.순천(順天) 경찰서 관원이 12월 25일 밤 동 군 내에서 약 30명의 적을 격퇴하였다.고막원(古幕院)의 헌병이 1월 1일 습격한 약 100명의 적을 맞아 격퇴하고 그 중 3명을 죽였는데, 우리측 헌병 보조원 2명이 죽었다.광주(光州) 경찰서 관원이 1월 6일 동 군 내에서 약 20명의 적을 토벌하고 그 중 5명을 죽였다. 비고(備考) 이 한국 정보는 이후 화요일, 금요일에 인쇄 배부하는 것으로 변경한다.

    613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전송 제136호 회령 방면 폭도 봉기 풍문에 관한 통감부 내전 제5호 전전(轉電) 건 발간일: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발신일: 1909-01-16 수신일: 1909-01-16 발신자: 봉천 주재 고이케[小池] 총영사 수신자: 봉천 주재 고이케[小池] 총영사 메이지 42년(1909) 1월 16일 제4호 지난번 전보 3호에 관해 통감이 조사한 결과를 전보로 보내왔는데, 현재 귀하의 전보 1호가 전한 바와 같은 폭동은 없습니다.

    614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기수 제198호 북한 및 남한에서의 폭도 토벌 정황에 관한 동국 주차군사령관의 보고 이첩 건 발간일: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발신일: 1909-01-19 수신일: 1909-01-19 발신자: 외무대신 수신자: 외무대신 참1발(參一發) 제364호 메이지 42년(1909) 1월 19일 한국주차군사령관의 보고 요지 1. 함경북도 방면 무산(茂山)의 헌병이 12월 23일 그곳 서남 약 5리 지점에서 약 100명의 적을 궤멸시켰다. 2. 함경남도 방면운산동(雲山洞) 수비대에서 나온 토벌대가 1월 7일 그곳 남방 약 14리 지점에서 인원수 불명의 적을 토벌하고 그 중 7명을 죽였다. 3. 강원도 방면 창암점(窓岩店)의 헌병이 12월 19일 그곳 동남 약 2리 지점에서 25명의 적을 궤멸시켰다. 4. 경기도 방면 장단(長湍)의 헌병이 1월 8일 동 군 내에서 약 60명의 적을 토벌하여 북방으로 패하여 달아나게 하였다.의정부(議政府)의 헌병이 1월 12일 그곳 동북방 약 3리 반 지점에서 약 60명의 적을 토벌하여 그들을 궤멸시켰다. 5. 충청남도 방면 부여(扶餘)의 헌병이 1월 7일 그곳 북방 약 3리 지점에서 18명의 적을 토벌하여 그 중 2명을 죽였다. 6. 전라북도 방면 흥덕(興德) 수비대의 일부가 1월 7일 그곳 동방 약 1리 지점에서 약 40명의 적을 토벌하여 그들을 패하여 달아나게 하였다. 7. 전라남도 방면 담양(潭陽)의 헌병이 12월 29일 그곳 서남 약 2리 지점에서 약 30명의 적을 토벌하여 그 중 3명을 죽였다.함평(咸平)의 헌병이 1월 3일 그곳에 습격한 약 60명의 적을 격퇴하여 그들을 패하여 달아나게 하였다.진도(珍島) 주재 순사가 1월 4일 그 섬에 습격한 약 50명의 적을 격퇴하였다.고막원(古幕院)의 헌병이 1월 5일 나주(羅州) 서남 약 1리 지점에서 약 40명의 적을 토벌하여 그들을 궤멸시켰다.능주(綾州)의 헌병이 1월 6일 그곳 북방 약 1리 지점에서 약 40명의 적을 토벌하여 그 중 5명을 죽였다.광주(光州) 수비대의 일부가 1월 10일 그곳에서 서쪽으로 3리 반 떨어진 산 속에서 적의 괴수 조경환(曹京煥) 이하 약 50명의 적이 술잔치를 여는 중에 기습하여 그 중 20명을 죽이고 10명을 체포하였다.

    615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기수 제201호 회령 방면에서의 폭도 봉기 풍문에 관한 헌병대장의 보고 이첩 건 발간일: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발신일: 1909-01-20 수신일: 1909-01-20 발신자: 외무대신 백작 고무라 쥬타로[小村壽太郞] 수신자: 외무대신 백작 고무라 쥬타로[小村壽太郞] 기밀(機密) 제51호 메이지 42년(1909) 1월 20일 접수 봉천(奉天) 총영사의 전보를 기초로 한국 회령(會寧) 서남에 2천여 명의 폭도 봉기 사건에 관해 귀하 전보 제17호로 질의한 것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번 전보 제4호와 제5호로 답변을 했는데, 오늘 아카시[明石] 헌병대장이 보낸 별지의 기밀 보고를 받았습니다. 간도(間島) 문제에 참고가 되기에 보고합니다. 삼가 올립니다. 메이지 42년 1월 12일 통감 공작(公爵)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인 외무대신 백작 고무라 쥬타로[小村壽太郞] 귀하 헌기(憲機) 제62호 1월 2일자 간도(間島) 헌병대 대장의 보고 폭도의 간도 침입 건 1. 무산군(茂山郡) 하면구(下面口) 지방에 출현한 폭도의 일부 약 40명이 12월 24일 날이 밝기 전에 무산간도(茂山間島)의 선화사(宣化社) 강장동(康庄洞) 복사평(伏沙坪) 분견소에서 남쪽으로 약 6리 떨어진 곳)에 들어와 그날 밤, 그 마을에 숙박했는데, 촌민들이 그들을 연동구(淵洞口) 강장동에서 동북쪽으로 약 1리 남짓 떨어진 곳)에 주둔하는 청국 병사에 밀고하자 바로 청국 병사 18명이 그곳으로 와서 그들을 조사하였다. 폭도가 청국 병사에게 청국인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이지만 단지 모국(母國)의 현재 안타까운 사정을 차마 볼 수 없어서 모국민(母國民)을 구하기 위해 행동한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답하였다. 이에 청국 병사는 무기를 휴대하고 청국 영토에 들어온 것을 금지하고 무기를 압수했으며, 또한 빨리 간도 땅에서 떠날 것을 명령하였다. 폭도가 이에 대해 관대하게 처리해 줄 것을 탄원했으나 청국 병사들은 상관의 명령이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하면서 아래의 물건을 압수한 후에 추방하였다. 폭도들은 한인 복장을 한 채 12월 25일 날이 밝기 전에 어디론가 도주하여 흩어졌다. 2. 청국 병사가 압수한 품목은 아래와 같다. (1) 러시아식 연발총 3정 (2) 러시아식 단발총 28정 (3) 탄약 1100발 (4) 군도(軍刀) (지나도(支那刀) 1, 한국도(韓國刀) 1, 러시아도(露國刀) 1) 3자루 (5) 다갈색(茶褐色) 여름옷과 바지, 기타 잡품 3. 연동구( 洞口) 주둔 청국 병사의 말에 의하면 아래와 같다. 폭도들이 가지고 있던 무기, 탄약은 모두 압수했으며, 대장인 듯한 자의 말에 의하면 이범윤(李範允)의 부하인 오(吳) 아무개(40세)가 지휘관이며, 그 자는 적색 웃옷에 청색 바지를 입었다. 또 이(李) 아무개는 부관과 같은 직책을 맡았으며, 총 인원수는 31명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와서 한국 내지에 들어오려다가 무산군 하면구에서 우연히 일본 헌병을 만나 어쩔 수 없이 그곳에 오게 되었다고 답하였다. 4. 12월 24일 폭도가 무산간도(茂山間島)에 침입하자 복사평 분견소장인 아오토 에이자부로[靑砥榮三郞]가 헌병 및 한국 순사 등을 파견하여 폭도의 체포에 노력했지만 폭도는 청국 병사에게 해산된 지 10시간 정도 지난 뒤에 어디론가 도망가서 조금도 손을 쓰지 못하고 헛되이 돌아오게 되었다. 부근 촌민의 말을 종합해 보면, 간도 평강(平崗) 상리사(上里社) 청산동(靑山洞)(복사평 동북방) 방면으로 도망간 흔적이 있다. 5. 폭도 해산이라는 청국 병사의 조치에 대해 12월 27일 복사평 분견소장 아오토 에이자부로가 그곳 청국 병영으로 가서 병영 대장인 양중동(梁中同)과 면담하였다. 양중동은 폭도를 체포, 감금 또는 참살하게 되면 바로 외교 문제를 일으키게 되므로 무기를 압수한 후 해산시키라는 내용을 미리 부대의 상사로부터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그대로 실행하였다고 답하였다. 이에 대해 아오토 조장(曹長)은 무기를 압수하였다고 해도 폭도를 모두 해산한 것은 지방의 안녕 질서를 해치는 것이고, 귀하가 일찍이 한민(韓民) 보호를 말했던 것과 관계없이 폭도를 해산하여 지방의 안녕에 해를 끼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 말했고, 양(梁)은 앞으로 이러한 사건이 있으면 귀관에게 통고해 주겠다고 답하였다. 이상(以上) 메이지 42년(1909) 12월 14일

    616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기수 제236호 한국 각도에서의 폭도 토벌 정황에 관한 동국 주차군사령관의 보고 이첩 건 발간일: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발신일: 1909-01-22 발신자: 외무대신 수신자: 외무대신 참1발(參一發) 제365호 메이지 42년(1909) 1월 22일 한국주차군사령관의 보고 요지 1. 황해도 방면 청단역(靑丹驛)의 헌병이 1월 4일 그곳 남방 약 3리의 해안에서 약 50명의 적을 토벌하여 범선 1척과 벼 20가마를 노획하였다. 2. 경기도 방면 파주(坡州) 및 문산(汶山) 양방 주재소의 일한(日韓) 순사가 1월 9일 파주군 내에서 약 100명의 적을 격퇴하였다.문산의 헌병이 1월 12일 교하(交河)의 헌병과 협력하여 문산 동북방 약 3리 반 지점에서 36명의 적을 궤멸시켰다. 3. 강원도 방면 금화(金化) 수비대의 일부가 1월 6일 경기도 영평(永平) 북방 약 1리 반 지점에서 약 30명의 적을 격퇴시켰다. 4. 전라북도 방면 고부(古埠)의 헌병이 1월 10일 그곳 서방 2리 지점에서 약 60명의 적을 패하여 달아나게 하였다. 5. 전라남도 방면 광주(光州)의 헌병이 1월 6일 그곳 지방 약 2리 지점에서 약 20명의 적을 토벌하여 그 중 5명을 죽였다.

    617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기수 제303호 한국 각도에서의 폭도 토벌 정황에 관한 동국 주차군사령관의 보고 이첩 건 발간일: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발신일: 1909-01-27 수신일: 1909-01-28 발신자: 외무대신 수신자: 외무대신 참1발(參一發) 제366호 메이지 42년(1909) 1월 27일 한국주차군사령관의 보고 요지 1. 평안남도 방면 안주(安州), 은산(殷山) 양방 헌병이 1월 11일 은산에서 동남쪽으로 약 16리 떨어진 양덕군(陽德郡) 내에서 적 9명을 토벌하여 그 중 6명을 죽였다.성천(成川) 경찰서 관원이 1월 13일 동 군 내에서 10여명의 적을 토벌하여 그 중 4명을 죽였다. 2. 황해도 방면 해주(海州) 수비대의 일부가 1월 19일 해주에서 남쪽으로 11리 떨어진 대연평도(大延平島)에서 65명의 적을 토벌하여 괴수 이하 46명을 죽였다. 3. 강원도 방면 낭천(狼川)의 헌병이 1월 12일 동 군 내에서 약 40명의 적을 격퇴하였다. 4. 충청북도 방면 회인(懷仁)의 헌병이 1월 12일 그곳 동북 약 2리 지점에서 약 10명의 적을 패하여 달아나게 하였다. 5. 전라남도 방면 광주(光州) 수비대의 일부가 12월 29일 장성(長城) 서방 1리 반 지점에서 약 50명의 적을 토벌하여 그 중 23명을 죽였다. 그곳 수비대의 일부가 12월 30일 장흥(長興) 남방 2리 반 지점에서 12명의 적을 토벌하여 그 중 8명을 죽였다.

    618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기수 제340호 한국 각도에서의 폭도 토벌 정황에 관한 동국 주차군사령관의 보고 이첩 건 발간일: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발신일: 1909-02-02 수신일: 1909-02-03 발신자: 외무대신 수신자: 외무대신 참1발(參一發) 제367호 메이지 42년(1909) 2월 2일 한국주차군사령관의 보고 요지 1. 황해도 방면 신계(新溪) 수비대의 일부가 그곳 헌병과 협력하여 1월 20일 그곳 서남 1리 지점에서 약 120명의 적을 토벌하여 그 중 5명을 죽였다.평산(平山)의 헌병이 1월 19일 그곳 동방 약 4리 지점에서 10여명의 적을 토벌하고, 또 평산 동방 약 5리 지점에서 다시 약 30명의 적을 토벌하여 그들을 패하여 달아나게 하였다. 2. 경기도 방면 음죽(陰竹)의 헌병이 1월 11일 여주군(驪州郡) 내에서 적 11명과 충돌하여 이를 패하여 달아나게 하였다. 3. 경상남도 방면 하동(河東)의 헌병이 1월 19일 그곳 동북 3리 지점에서 약 20명의 적을 토벌하여 그 중 2명을 죽였다. 4. 전라북도 방면 순창(淳昌) 수비대의 일부가 1월 11일 그곳 서북 약 4리 지점에서 약 20명의 적을 토벌하여 그 중 2명을 죽였다.남원(南原) 수비대의 일부가 1월 16일 계수역(契樹驛) 북방 약 2리 지점에서 약 30명의 적을 토벌하여 괴수 이하 7명을 죽였다.무풍장(茂豊場)의 헌병이 1월 24일 무주군(茂朱郡) 내에서 약 24명의 적을 토벌하여 그들을 패하여 달아나게 하였다. 5. 전라남도 방면 광천점(廣川店)의 헌병이 1월 11일 순천군(順天郡) 내에서 약 140명의 적을 토벌하여 그 중 10명을 죽였다.나주(羅州)의 헌병이 1월 11일 그곳 서방 약 1리 지점에서 15명의 적을 토벌하여 그들을 패하여 달아나게 하였다.영산포(榮山浦)의 헌병분대 관내의 연합 토벌대가 1월 19일 고막원(古幕院) 동남 약 1리 지점에서 약 150명의 적을 토벌했고, 또 1월 21일 나주 서남 약 3리 지점에서 약 70명의 적을 패하여 달아나게 하였다.영광(靈光) 수비대의 척후가 1월 23일 그곳 동방 약 4리 반 지점에서 약 60명의 적을 토벌하고 그 중 9명을 죽였다.

    619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기수 제405호 한국 각도에서의 폭도 토벌 정황에 관한 동국 주차군사령관의 보고 이첩 건 발간일: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발신일: 1909-02-09 수신일: 1909-02-09 발신자: 외무대신 수신자: 외무대신 참1발(參一發) 제368호 메이지 42년(1909) 2월 9일 한국주차군사령관의 보고 요지 1. 황해도 방면 경기도 개성(開城)에서 나온 토벌대가 1월 15일 황해도 해주군(海州郡)내에서 약 100명의 적을 격퇴시켰다. 2. 경기도 방면 고양(高陽)의 헌병이 1월 31일 그곳 동방 2리 지점에서 12명의 적을 격퇴시켰다. 3. 강원도 방면 안흥(安興)의 헌병이 1월 20일 영월군(寧越郡) 내에서 약 50명의 적을 토벌하여 그 중 5명을 죽였다. 4. 전라북도 방면 임실(任實)의 헌병이 1월 29일 그곳 동방 약 3리 반 지점에서 적 약 20명을 패하여 달아나게 하였다. 5. 전라남도 방면 영암(靈巖) 수비대의 일부가 1월 17일 그곳 서남 약 11리 지점에서 약 20명의 적을 토벌하고 그 중 2명을 죽였다.

    620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기수 제479호 한국 각도에서의 폭도 토벌 정황에 관한 동국 주차군사령관의 보고 이첩 건 발간일: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발신일: 1909-02-16 수신일: 1909-02-17 발신자: 외무대신 수신자: 외무대신 참1발(參一發) 제369호 메이지 42년(1909) 2월 16일 한국주차군사령관의 보고 요지 1. 황해도 방면 대탄(大灘)의 헌병이 1월 14일 그곳 부근에서 약 37명의 적을 토벌하여 그 중 3명을 죽였다.청단(靑丹)의 헌병이 1월 15일 그곳 동방 약 2리 지점에서 인원수 불명의 적을 야습하여 그 중 4명을 죽였다. 2. 경기도 방면 영평(永平)의 헌병이 포천(抱川) 및 주포(周浦)의 헌병과 협력하여 2월 5일 영평 동쪽 약 3리 반의 지점에서 약 200명의 적을 토벌하여 그들을 사방에서 격퇴시켰다. 3. 강원도 방면 금성(金城) 수비대의 일부가 2월 5일 그곳 동북 약 12리 지점에서 15명의 적을 토벌하여 그 중 4명을 죽였다. 4. 전라남도 방면 남평(南平)의 헌병이 2월 1일 그곳 서북방 약 1리 지점에서 약 70명의 적을 격퇴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