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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병자료에 대한 전체 704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1 丁未年 倡義歌

    창의가 정미년(1907년) 창의가 어와 세상 사람들아 금세 형편 들어보소 아 태조 창업하사 오백여 년 내려오며 오천년 요순지치 이천년 공부자도 인의예지 법을 삼아 삼강오륜 분명하다 계계성성 내린 덕화 팔역이 안돈하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중간 기침 근심 이라 태서양이 이르기를 인의 있다 칭찬터니 불행할 사 을사조약 오적의 농간이라 제 임의로 천편하여 살림천택 전수하니 천지도 희맹하고 일월도 무광하다 국가가 요란한데 창생인들 편할손가 누백년 양반종사 이씨 은우 뉘 아닌가 가슴에 끓는 피는 개인 개인 일반이라 죽자하니 어리석고 살자하니 성병이라 주소로 잠 못이뤄 전전 반칙 누웠더니 柴門에 개 짖으며 喧譁之聲 撓亂하다 門을 열고 探問하니 關東大陣 警通이라 二千萬 우리 同胞 晏然히 있단 말가 軍律을 黨치말고 하루바삐 出頭하소 칼을 집고 일어서서 本邑을 들어가니 重南陣이 先着하여 賊兵을 消滅이라 翌日에 行陣하여 葛坪 場터 들어가니 土伐隊 數百名이 北陽寺로 넘어온다 湖左陣 附合하여 終日토록 接戰하니 彼此 死亡 未判하고 날이 이미 저문지라 용못와 밤새우고 五名을 사로잡아 卽地에 목을 베어 萬軍 中의 回示하니 心中의 쌓인 忿心 萬分之一 풀릴손가 집으로 돌아와서 이틀을 留한 後에 行裝을 수습하여 故鄕을 離別할제 山川도 서러워하고 草木도 悲悵한 듯 荊卿이 易水갈제 不優還 노래로다 自古로 英雄烈士 오늘날 適當하다 慶卿이는 내가되고 剡溪水는 易水로다 冠帽 하나 우산 하나 짚신 감발 憔忰하다 이틀에 豊基 가서 叔侄이 相面하고 竹嶺재 올라서서 丹陽을 鄕望하니 雲水山 壯한 精氣 禹易東 氣象이라 島潭三峰 솟은 바위 儉㦸이 分明하고 만악江 흐른 물은 嗚咽之聲 完然하다 뒤뜰을 들어가니 趙氏家이 입입했네 一家집 婦女 한 분 전지도지 뛰어나와 반가이 迎接하니 敦睦之誼 寬厚하다 닭 잡고 밥을 지어 留해 가라 挽留하네 四 五百里 他關客地 이 아니면 누구래리 二 三日 留한 後에 가노라 하직하고 商山 가서 召募하니 多 不過 百名이라 雲崗을 보라하고 寧越 上洞 들어가니 반갑다 인사하고 領率 불러 分付하되 선 걸음에 부진하여 丹陽邑 달려드니 五 六名 男女 倭人 哀乞하고 비는구나 一令의 結縛하여 將坮에서 砲殺하고 官廳의 徙處하고 소 잡아 餉軍한 後 翌日에 行軍하여 고리뜰 들어가니 成判書 집 大小家家 士夫風效 寬厚하다 소 잡고 밥을 짓고 떡을 처서 餉軍하니 愛國思想 있다해도 이 地境은 쉽잖겠네 이틀을 쉬고 나니 四方의 檄書로다 土伐隊 五百名은 醴泉으로 넘어오고 守備隊 四百名은 原州 堤川 덮어오고 馬兵隊 五百名은 忠州 淸風 들어온다 매 바위 留陣하고 鐵銅같이 단속할때 旗號를 높이 달고 諠譁를 一禁하라 各 將官 聚立하고 軍令을 傳布할제 本陣 先鋒 全世榮(전세영)은 竹嶺을 防禦하고 湖左 先鋒 河漢西(하한서)는 將任을 收拾하고 左翼 右翼 突擊將은 西嶺을 堅守하고 前軍 後軍 左軍將은 南坮에 蟄伏하고 司令 遺格 中軍將은 中央에 留陣하되 賊兵이 乘●하여 一時의 砲放하라 軍令을 어긴 者는 私情 없이 斬하리라 未時末 申時初에 天地가 뒤뉩는다 속사砲 기관砲는 탄알이 빗발이요 千步大去來大는 소리가 霹靂이라 火藥 煙氣 안개되어 東西를 難分일내 四 五日 지내도록 勝敗를 不分터니 七十餘 戰 싸운 後에 賊兵이 退陣하네 軍士를 收襲하니 銃 맞은 者 七 八이라 賊兵을 收歛하니 數百 名 死亡일세 翌日에 行陣하여 寧越邑 들어가니 老牧과 노略하는 趙東圭(조동규)가 留陣한대 壯坮에 坐起하고 趙哥를 拿入하여 坮下에 꿇려 놓고 嚴刑으로 問招할제 네 罪를 네가 알면 죽는 것을 恨을 마라 爲國도 하려니와 蒼生을 건지려고 萬民을 揮同하여 義陣으로 다니면서 閭閻에 노략하고 人民을 偪迫하니 賊兵의 웃음이라 살려두진 못하리라 先鋒시켜 목을 베어 萬民의 懲習하고 그 時로 行陣하여 花落岩을 나가니 端宗大王 모신 侍女 形跡이 完然하다 古事를 生覺하니 感悵悲懷 새로워라 大化方林 얼른 지나 江陵땅 넘어서서 李海秀(이해수) 집 들어가니 點心참이 되는구나 魚卵을 고배하고 滿盤 珍羞 차려 내네 作別하고 일어서니 날이 이미 夕陽이라 鬱密한 竹林 속에 賊兵이 일어난다 一馬場 외통길에 속사砲를 걸어노니 㒹之例之 달아날제 죽는 者가 太半이라 二十里 退陣하니 層巖絶壁 當頭했네 數百名 賊兵들이 벌떼 같이 달려오니 갈길이 茫然하여 살아날 곳 바이 없다 雲崗(이강년) 前軍 尹起英(윤기영)이 할길 없어 自訣하네 三陟땅 넘어가니 人家가 바이 없다 山川은 高峻한데 海風 참도 찰사 雲崗(이강년)을 依지하여 바위 밑에 밤 지내고 中軍을 指揮하여 前軍將 運喪하라 五 六百名 軍卒들이 베 끊어 건해쓰니 機具도 壯할시고 滿山遍野 喪制로다 堤川와 安葬하고 祭文 지어 慰勞하고 悲⊙를 抑制하고 聚軍하여 돌아서서 忠州牧溪 留陣하고 四五近邑 募集하니 擔銃하고 오는 軍士 千有餘名 되는구나 東倉으로 斥候 놓고 彈琴坮 올라가니 申 壯士 간 곳 없고 戰壘만 남았구나 山川은 依舊하여 愁色을 띠어 있고 江水는 潺潺하여 嗚咽之聲 뿐이로다 遺名은 다를망정 寃憶之心 一般이라 炮軍 불러 소를 잡고 祝願하여 祭 지낼제 岩上에 높은 旗발 左右를 둘러싸고 將卒의 壯한 劍戟 日月을 戱弄한다. 싸리재 넘어와서 堤川와 宿所하고 蔚津, 平海 내려가서 申乭石(신돌석)이 相面하고 그길로 行陣하여 魔鄕亭 잠깐 보고 三陟땅 들어서서 竹雪樓 올라가니 樓閣도 좋거니와 風景이 더욱 좋다 前後左右 題名書는 古來 騷客 興致로다 眼前의 萬頃蒼波 一望無地 廣闊한데 波濤는 山을 넘고 水光은 接天일내 길 위에 섰는 石碑 眉叟(許穆) 先生 退潮碑라 碑文을 보라한들 去路가 悤急하다 安東西壁 留陣하니 賊兵이 들어온다 終日토록 接戰해도 彼此 死亡 없는지라 退陣하여 물러서서 晝夜倍道 하는구나 永春邑 들어가니 날이 이미 밝는지라 無心히 밥 받으니 左右 伏兵 일어난다 許多한 將官軍銃 手足을 놀릴손가 雪風은 瀟瑟한데 大江을 臨했구나 죽음이 泰山같고 건너는 者 死境일내 진밧와 聚軍하니 多不過 四十이라 雲崗(이강년)이 땅을 치며 痛哭하여 하는 말이 天地亡我 分明하지 非戰之罪 아니로세 蹤跡을 隱匿하고 七十里 行陣하여 提川 桃洞 들어오니 닭이 이미 우는지라 人家가 넷뿐이라 深邃하고 閑寂하다 하루를 쉬려하고 脫身하고 누웠더니 討伐隊 數百名이 鐵銅 같이 에워싸네 칼을 들고 나서보니 彼我 陣이 渾合이라 釼戟으로 單兵接戰 大將 목 베어들고 東坮희로 退陣하여 雪中의 몸을 피고 다시금 들어가서 戰陳을 探問하니 生擒者가 二十이고 死亡者가 十三이라 쇠멱이를 들러가니 義陣이 密密하다 從士 보내 探問하니 後軍將 鄭汝昌(정여창)이 餘卒을 收拾하여 大陣을 기다린다 그길로 付陣하여 운주제골 들어가서 소 잡아 餉軍한 後 三日 後 行軍할 때 行道官 불러내어 잣두로 斥候하라 黃昏에 들어가니 一村이 다 모였다 申密⊙ 집 大小家家 面面히 반색이라 밤내로 떡을 치고 닭 잡고 밥을 하여 留해가라 挽執하니 百代之誼 敦厚하다 村人을 指路하여 金火屯을 나가니 平昌으로 連絡憲兵 두 놈이 오는구나 영졸에 趙守安(조수안)이 별포에 金雲先(김운선)이 伏地하고 하는 말이 賊兵 두 놈 當到하니 小卒에게 命令하면 軍令章에 다음두고 一放에 砲殺하여 帳下에 바치리라 적다고 壓視말고 克力하여 大敵하라 萬一에 失數하면 軍令施行 當하리라 軍務委員 이런 말을 心中에 잊지마라 聽令하고 물러서 六穴砲 몸에 넣고 服裝 벗어 짐에 넣고 보통이를 꾸려 지고 手巾으로 頭上 싸고 지팡이를 끌면서 바람 맞은 病身처럼 비틀비틀 건너간 後 麥食境이 채 못되어 砲聲이 狼藉하다 先鋒을 指揮하여 山上에 올라보니 두 놈을 砲殺하고 機械收拾 하나이다 行軍하여 들어가서 田學子 집 徙處하고 領卒 別炮 불러들여 二百兩式 賞給하고 時計 돈푼 있는 것은 別給으로 너 가져라 酒店에 술을 걸러 한 잔씩 먹인 後에 公新院서 밤 지내고 羽香山 들어가니 人家는 稀少한데 處處에 戰陣이라 七陣이 付合하여 襄陽邑 嚴殺하니 兵參에 守備隊들 銃 들고 내닫는다 數三千名 將及軍卒 겹겹이 에워싸고 一時에 沒放하며 鼓喊하고 달려드니 藉雲洞 안개속에 天地를 未分하고 天動 같은 銃 소리는 山川이 뒤눕는다 一合이 채 못되어 賊兵이 消滅이라 官廳에 徙處하고 財産을 收合하니 廣木이 두 수레요 四十萬兩 葉錢이라 그 外에 許多之物 어찌 다 記錄하리 四 五日 留한 후에 斥候將 指路하여 萬物草 들어가니 奇巖怪石 壯觀이네 石上의 앉은 石佛 眉目이 天性일세 絶壁에 흐른 瀑布 銀河꽃이 흩어지니 蘇夫 許裕 問答하던 岐山潭水 恰似하다 四方을 둘러보니 石面이 조정이네 글을 지어 題名하고 三日浦 넘어가니 淮水는 隆隆한데 漁船이 密密하다 새벽 달 찬바람에 船人들이 짝을 지어 북을 둥둥 울리면서 어기여차 닻 감아라 旅館寒燈 客의 마음 憾悵悲懷 새로 난다 杆城 땅 들어가서 淸江亭 求景하고 通川땅 들어서서 총석정 올라가니 海風은 潛潛한데 元山가는 商賈船이 쌍돛을 높이 달고 羅懌不絶 往來하네 閭閻의 初見으로 그도 또한 壯觀일세 오며가며 數多 戰場 歷歷 記錄 다 못할세 死地出世 하는 사람 景槪處가 不當하고 心思 自然 悵忽한데 物色 조차 有感하다 長安 포운 兩大刹은 風景處라 일럿건만 數百名 영솔하고 求景을 다할 손가 추지령 넘어서서 安邊邑 嚴殺하니 兵參에 있는 憲兵 四 五人 뿐 이로다 生擒하여 잡아다가 장거리에 炮殺하고 鄕廳에 徙處하니 六房이 다 나온다 一等 妓生 鳳月이가 睡請으로 現身하네 慈色도 있거니와 歌舞가 名唱일세 四 五日 消暢하고 가노라 下直하니 鳳月이 눈물 짓고 細聲으로 하는 말이 小女 八字 기박하여 娼女로 들어와서 一夫從事 못하여도 心腸은 本心이라 厚德하신 使道德澤 사람 하나 살려주소 好貪한 배 아니언만 永絶은 일 아닌 듯 古來로 英雄烈士 如寃이 詳審處라 그리하라 許諾하고 行裝을 재촉하니 男服지어 變服하고 머리 내려 뒤로 땋고 銃대 메고 바랑 지고 賢哲이라 이름 갈고 當番으로 뒤 세우고 鐵嶺으로 올라갈제 賢哲이 불러내어 甘言으로 달랜 말이 軟弱한 女子 몸이 死地 戰場 不可할 뿐 예전 人君 唐明皇이 絶代佳人 楊貴妃를 馬嵬波下의 土中에 釼頭魂을 시켰으니 제계의 積怨이요 後世의 웃음이라 네게로 돌아가서 數月을 있게 되면 天下를 平定 하고 너를 分明 데려가마 賢哲이 이말 듣고 한숨 짓고 일어서서 毒하도다 嶺南 兩班 어이 그리 木石이오 가노라 下直하고 선연히 돌아서니 虛薄한 壯夫 心腸 悵鬱之心 없을 손가 金化 金城 얼른 지나 楊口 下隣 들어와서 하루를 留한 後에 洪川으로 넘어가니 賊兵이 길을 막아 晝夜로 接戰한다 彼此 死亡 太半인데 軍卒이 勞困하기에 橫城으로 退陣하다가 어깨를 맞았구나 將官 軍卒 聚立하여 雲綱(이강년)에게 傳任하고 窮峽으로 들어와서 避身하여 調理할때 다래 순 국 끓이고 문메물 감자밥은 今時에 죽더라도 먹을 수 全혀 없네 새털 바지 노랑머리 족지도지 노래하며 우리집에 손님 와서 別食한다 자랑 터니 콩고물 감자떡을 別味라고 일컫더라 數十日 調理한 후 春川 地境 넘어와서 芳洞을 探問하니 多不過 數十里라 先祖墳墓 謁過하니 不肖之心 절로 난다 화천 간척 들어가니 賊兵이 嚴殺하네 이틀을 接戰하여 數十 名 殺害하니 春川 있는 守備隊가 討伐隊로 合陣하여 山上에 陣을 치고 嚴殺하고 달려든다 士卒도 勞困하고 藥丸이 乏絶이라 險路로 몸을 빼어 晝夜로 行陣할때 胡地가 不遠하여 西北風 참도 찰사 말고개 넘어서서 실운을 들어가서 山中人心 淳朴할 사 白沸湯 반갑도다 四 五日 留連하고 軍卒을 쉰 後에 楊根 砥平 斥候 놓고 元帥府陣 찾아가니 重南이 반겨 나와 손잡고 人事하네 皇勅을 의지하여 各陣에 警通이라 楊州 山安 들어가니 津東陣이 先着이네 朴華南(박화남), 閔兢鎬(민긍호)는 靑松에 留陣하고 南弼煥(남필환), 金玄國(김현국)은 伐村땅 留陣이라 三日을 留한 後에 報撥이 羅繹하다 서울로 오는 賊兵 東頭내에 留陣하고 春川 있는 守備隊는 討伐隊를 揮同하여 抱川 永平 올라올제 意氣가 揚揚하다 開城 있는 憲兵大將 馬兵을 領率하고 麻田 積城 덮어오며 濁亂이 無雙하다 曉頭에 밥 먹이고 將卒을 揮同할제 서울로 오는 賊兵 洞口를 防御하고 거 남은 許多將官 各處로 分送할제 山上에 높이 올라 陣勢를 살펴보니 日本 大將 장삼랑이 皓躂馬 높이 타고 칼춤 추며 들어올제 揚揚自得 하는구나 壯夫의 鬱憤之心 怒心이 절로 난다 노새를 잡아 타고 萬軍 中에 나아갈제 개 같은 倭賊들아 天時를 모르느냐 聞慶 사는 申 大將이 너 잡으러 예 왔노라 一刻이 채 못되어 賊將 머리 베어들고 本陣으로 돌아오니 날이 이미 黃昏이라 앉아서 밤 새우고 曉頭에 밥을 지어 各處로 分送하여 賊兵을 對敵하라 巳時末 午時初에 玄德鎬 戰亡이라 各 陣이 渾合하여 四山奔走 解散이네 餘卒을 收拾하여 度嶽山 들어가니 嶂谷도 深邃할 뿐 人心도 淳博하다 春川으로 鬱向하여 數朔을 留宿하니 加平 있는 守備隊가 물골로 올라 온다 三日을 接戰해도 勝敗를 未分터니 左先鋒 姜昌根(강창근)이 倭服裝 꾸며 입고 銃 버리고 말을 타고 뒤로 달려가서 엄살하고 달려들어 大將을 殺害하고 左右充突 들어오니 快活하기 測量 없다 賊兵의 擧動보소 거꾸로 銃대 메고 退陣하여 물러갈제 哭聲이 震動하네 士卒을 收拾하여 番號시켜 聚立하니 軍卒 亡子 七八이요 居民 亡子 五六이라 베 끊어 염장하고 그 길로 行陣하여 淸溪洞 들어가서 金정성집 警通하니 무른 담이 積置한데 八百餘石 綠紙왔네 翌日에 作來하여 士卒에게 賞給할제 떡 찌고 술을 걸러 含哺鼓腹 놀고나니 枹川 있는 守備隊가 이를 갈고 달려든다 죽기를 무릅쓰고 晝夜不得 接戰할제 말굽은 紛紛하고 霜雪은 潺潺한데 우뢰 같은 鼓角喊聲 左右 山川 녹여낸다 陣勢를 살펴보니 賊兵이 勝勝하다 旗를 돌려 收軍하여 桃城岭 넘어오니 雲綱(이강년)이 손을 잡고 落淚하고 하는 말이 天運이 이 같으니 人力으로 못할지라 東峽으로 行陣하여 後軍 中軍 만난 後에 다시 率軍하고 와서 이 雪寃하여 보세 忿思亂이란 말이 이를 두고 이름이라 오늘날 이 離別이 僉意에 어떠하오 初也에 나설적에 죽기를 무릅쓰고 以死報國 허잔 마음 一時들 잊을손가 自意로 하다가서 勝敗를 當하리라 作別하고 돌아서니 心神이 詰難하다 華南(박화남)과 付陣하여 報價山 들어가니 人心이 不古하여 舟中이 賊國이라 沉沉한 七夜 中에 江山도 生面이라 細雨는 濛濛한데 伏兵이 일어난다 東西를 不分한데 地形을 어이 알리 地向 없이 가노라니 報價山 中턱이라 松木 下에 담요 펴고 油端 덮고 누웠더니 寒風은 蕭瑟한데 四肢가 옮겨든다 苦極히 밤 지내고 聚軍하여 돌아서서 利川邑 들어가니 邑樣이 雄壯하다 士卒이 勞困키로 三日을 留한 後에 斥候로 指路하여 고미탄 들어가니 五 六十里 長谷 속에 人家가 질비하다 深山窮峽 遍踏하다 別乾坤을 初見일세 村人이 반겨나와 迎接하여 들어가니 강낭쌀로 밥을 짓고 銀鱗玉尺 반찬하고 귀이로 술을 빚고 蓁芙草로 안주하니 食味가 淡泊할 뿐 香氣롭고 精潔하다 安貧樂道 하는 모양 山中滋味 極盡하다 점심 먹고 行陣하여 新溪 谷山 잠깐 지내 遂安땅에 宿食하고 肅川邑 들어가니 憲兵 하나 순교 넷이 四山奔走 달아난다 客舍에 留陣하고 一夜를 지낸 後에 熙川으로 斥候 놓고 積儀嶺 當頭하니 안팎의 四十里에 人家가 바이 없다 원집에 잠을 자고 翌日에 넘어가니 六房이 다 나와서 欣然히 迎接한다 소를 잡아 餉軍하고 留해가라 만접하네 이틀 後에 行陣하여 江界땅 들어서서 의암(유인석) 장석 뵈온 後에 그곳서 召募하니 一等炮軍 九百餘 名 擔銃하고 오는 구나 큰 소 잡아 餉軍한 後 次례로 將官내니 軍禮도 溫全할 뿐 軍令이 嚴夙하다 六 七日 지낸 後에 賊兵 온다 報撥 왔네 二 三日 接戰하니 彼此 死亡 많은지라 各其 退陣 돌아서서 山谷에 留陣하니 先蜂이 來告하되 砲軍 一名 被殺이라 올라가 收歛하니 寧越 있는 金成道(김성도)라 山上에 같다 놓고 붙들고 痛哭할제 불쌍하고 慘酷하다 이를 어찌 하잔말인가 不遠千里 날 쫓아와 客地孤魂 되었단 말인가 너의 父母 너 보낼제 全軆를 흩어 잡고 歷代로 常漢되어 나랏일이 무엇이냐 六男妹를 다 죽이고 너 하나를 滿足하여 甘苦를 같이 하고 暫時離側 맞았더니 國家가 不幸하여 이 地境이 되는구나 날 죽이고 네가 가지 살려두고 못 가리라 厚德하신 大將使道 小女子息 놓아주오 堂上의 鶴髮 老親 어찌하여 奉養하며 腹中의 깃든 子息 依托할 곳 全혀 없다 울음 울고 辭哭소리 내 귀에 젖어있다 回軍 길에 寧越 들어 무엇이라 對答하노 江東 弟子 八千人을 하룻밤에 다 죽이고 江 건널 낯이 없이 虞美人 손목 잡고 彷徨하는 楚覇王이 내 아니면 뉘가 될까 私處로 돌아와서 夕飯을 全廢하고 故鄕을 生覺하니 千餘里 길이로다 春日이 和暢한데 꽃도 피고 잎도 피네 杜鵑鳥는 슬피 울어 손의 마음 搖動한다 心思를 抑制하고 月餘를 지내더니 朴華南(박화남)이 令을 내어 領率 불러 聚立하라 形便을 둘러보니 成事할 길 茫然하다 西間道 건너가서 上馬賊과 合陣하여 倭賊을 消滅하고 國權을 回復하면 國家에 忠臣이요 萬民에 榮光이라 令대로 行陣하되 二心을 먹지마라 千餘里 門往門來 同時死生 하자더니 意表가 各各이라 分離가 適當하오 晏然히 作別하고 回軍하여 돌아서서 永平 東面 들어가니 左右에 親舊로다 五 六日 쉬고나니 李彦贊(이언찬)에 警通이라 枹川서 付陣한 後 廣陵내로 回陣하여 泰陵에 伏兵하고 이틀을 기다리니 서울로 오는 賊兵 報撥이 丁寧하다 馬兵이 四十이요 騎兵이 三十이라 탄환 砂糖 실은 유마 五 六匹이 넘는구나 上下로 埋伏하고 約束을 定할 적에 賊兵이 들어와서 後陣이 끊기거든 一時에 呼軍하고 嚴殺하고 沒放하라 卯時末 辰時初에 陵아니 녹는구나 無心히 가다가서 제 어이 防御하리 엎어지고 折脚된 놈 팔 접치고 銃 맞은 놈 가다 죽고 오다 죽고 五十餘名 다 잡았다 오붓하고 快活함은 어떻다 말할 손가 유마에 실은 物品 雪糖이 절반이네 헐價로 放賣하니 軍士에 酒用替라 永平 二洞 들어가서 사당에 留陣하니 四方이 고요하고 賊兵消息 바이 없다 無心히 자노라니 銃소리 震動하네 呼角처 聚軍하여 大門 밖에 나서보니 數百名 賊兵들이 後園을 덮은지라 田野로 가노라니 都先蜂 戰亡이네 붙들고 통곡한들 죽은 사람 살릴소냐 數步를 채 못가서 다리를 맞았구나 砲軍의 등에 업혀 山上에 올라갈제 走馬같이 따라오며 가지마라 소리하네 左先蜂 姜昌根(강창근)아 내말을 잊지마라 우리가 이러다는 沒死 죽음할 터이니 나는 이미 죽거니와 너희들은 살아가서 賊兵 退陣하거들랑 내 신체 찾아다가 네 손으로 歛拾하여 向陽之地 묻어놓고 내 집으로 기별하여 魂歸故國 시켜다오 죽는 事情 보지말고 날 버리고 바삐가라 將官 士卒 달려들어 붙들고 痛哭할제 죽으면 같이 죽지 使道 두고 못 가겠소 이 情曲, 이 경상은 木石도 感動이네 日月도 慘憺하고 山川도 悲悵한 듯 賊兵이 가까이오니 아니 가든 못하리라 뛰지고 가는 경상 鬼神도 遺感하다 守備隊 달려들어 銃대 뺏고 軍刀 떼고 가마 안에 집어 넣어 永平邑 들어갈제 憲兵대장 종견이가 畵像을 내어 들고 誤着은 아니겠지 申議官이 分明하다 萬里他國 戰爭와서 大將 하나 잡았으니 國家에 忠臣이요 賞與金도 不小찮다 우리나라 運數좋아 處處의 勝戰일세 웃음 웃고 즐겨하며 노래하고 춤을 춘다 忿心이 復發하니 四肢 없는 둥걸이라 勇맹도 쓸데 없고 造化도 虛事로다 마루방에 누었으니 戰兢病이 절로 난다 一身의 流血이요 아픈 데가 頭痛이네 八 九日 寂然터니 서울로 올라가다 白鷺洲 들어가니 萬歲橋 곁이로다 風景도 좋거니와 山水가 더욱 좋다 沃野千里 넓은 들이 大村이 즐비하다 平日에 過次하면 時興도 나려마는 끝없는 걸음이라 悵然之心 뿐이로다 솔모로서 點心 먹고 築雪嶺 올라서서 京城을 瞻望하니 悲悵하고 可憐하다 三角山 第一峰은 愁雲이 덮혀 있고 南山嶂頭 烽火터는 霧烟이 잠을 잔다 議政府서 歇脚하고 다락원 넘어서서 東小門 들어가니 半日이 넘은 지라 博石堆 넘어가니 宗廟담이 곁이로다 墻垣은 무너지고 愁雲이 참담하다 鍾路로 올라가니 萬人이 落淚하네 裁判所로 들어가니 魚頭鬼面 列坐로다 內亂 强盜罪名으로 處絞가 마땅하니 監獄으로 내려가라 號令이 서리같다 忿心이 命門 막아 말할 수가 전혀 없어 麥食境 鎭定하여 精神을 가다듬어 司訟床 앞 들어서서 큰 소리로 吐罪할제 以臣伐君 한적 없고 國穀偸食 안했거든 內亂이 무엇이며 白晝衝火 아니하고 殺人奪財 안했거든 强盜가 웬말이뇨 兩班 凌辱 너무 말고 時刻內로 죽여다오 凶悘한 伊藤博文(이등박문) 大鳥圭介 도해씻겨 滿州 大病 偸得하고 朝鮮降書 찾아올제 萬國에 公布하고 自主獨立 시킨다고 億兆蒼生 旋同시켜 甘言으로 꾀우더니 統監이라 自稱하고 國權을 휘어잡고 姦臣을 요래하여 山林川淎 勒奪하니 千斬萬戮 아깝잖고 殺之無惜 마땅하다 鬱忿을 못이기어 司訟床을 훑어치니 巡檢이 달려들어 捕縛하여 끌어낸다 監獄으로 내려가서 漠漠히 앉았으니 빈지쪽 벽돌담에 찬바람 簫瑟하다 건너 山 杜鵑鳥는 不如歸로 밤 새우고 새절경퇴 胡笛聲은 옥수심회 조아낸다 庭樹의 부는 바람 寃恨을 아뢰는 듯 분국에 맺힌 이슬 義兵 눈물 아니련가 國運이 不幸키로 이럴 수가 있단 말가 忠義烈士 몇몇이며 亂臣賊子 몇몇인고 聰明이 過人키로 歷歷히 다 알손가 萬古忠臣 崔勉菴(면암 최익현)은 對馬島에 餓死하고 事君節忠 李駿(이준) 氏는 萬里他國 米國[네덜란드] 가서 萬國共會 列座 中에 肝을 내여 피를 품고 閔忠貞(민영환) 樓軒閣에 四節竹이 自生이네 마디마디 忠節이요 葉葉이 義字되고 생게 大將 元龍八(원용팔)은 原州獄에 餓死하고 白頭書生 安重根(안중근)은 數萬餘里 하얼빈에 伊藤博文(이등박문) 殺害하고 旅順口에 處絞당하고 平壤兵丁 金鳳鶴(김봉학) 氏 제 가슴을 제가 놓아 萬人에게 功布하고 營門 앞에 伏死하고 영상의 趙英河(조영하) 氏 內侍의 柳在鉉(유재현) 氏 甲辰年 四凶亂(갑신정변)에 慶運宮에 腰斬하고 國內大臣 李敬直(이경직) 氏 營門大將 洪在熙(홍재희) 氏 慶會樓 殿閣 앞에 三浦에게 被殺하니 부분은 다를망정 愛國思想 一般이라 淸州 大將 盧炳大(노병대) 氏 大邱監獄에 餓死하고 榮陽 大將 申乭石(신돌석) 氏 原州 特務 閔兢祜(민긍호) 氏 정선 大將 南弼煥(남필환) 氏 春川 大將 李炳相(이병상) 氏 湖左右軍 卞鶴基(변학기) 氏 生擒하여 被殺하고 陣東 大將 許蔿(허위) 氏며 湖左 大將 李康秊(이강년) 氏 關東 大將 李麟英(이인영) 氏 加平 大將 朴來鳳(박래봉) 氏 丹陽 大將 李明相(이명상) 氏 楊州 大將 鄭龍大(정용대) 氏 關東 中軍 李彦贊(이언찬) 氏 湖左 中軍 金相泰(김상태) 氏 本陣 中軍 柳齋七(유재칠) 氏 原州 中軍 金鉉國(김현국) 氏 丹陽 中軍 趙弼煥(조필환) 氏 楊州 中軍 金錫永(김석영) 氏 本陣 參謀 嚴海尹(엄해윤) 氏 平壤 書生 李在明(이재명) 氏 處絞는 當했으나 遺芳百歲 아니될까 人在名 虎在皮가 이에 適當한 말일세 四凶은 누가 되며 五賊은 누가 될까 金陵尉 朴永孝(박영효)와 吏曹參判 金玉均(김옥균)이 제조에 徐光範(서광범)이 參議에 徐在弼(서재필)이 內部大臣 李在龍(이재용)이 軍務大臣 朴齋順(박재순)이 農商大臣 宋秉俊(송병준)이 外部大臣 李完用(이완용)이 議政大臣 韓圭卨(한규설)이 七姦은 누가 되며 八賊은 누가 되며 國內大臣 閔炳錫(민병석)이 軍務大臣 李炳茂(이병무)며 國內讚政 閔永基(민영기)며 全權大臣 李遐永(이하영)이 軍務讚政 權重鉉(권중현)이 萬古姦臣 尹泰永(윤태영)이 中樞院將 金加振(김가진)이 軍務總將 李根倬(이근탁)이 遺醜萬年 되오리다 밤이 이미 깊었기로 抑制하고 잠을 자니 無情한 빈대벼룩 벌떼 같이 달려든다 樓坮의 鬼哭聲은 사람 心神 驚動하네 五六朔 지낸 後에 永平서 등소 왔네 裁判所서 呼出터니 三等 減해 七年이라 四五年 苦極함은 口不可 形言이네 좋을시고 壬子 七月 睦仁이가 絶命이네 우리가기 바쁘자나 日本 運數 다 되기를 晝宵로 仰祝타가 所願成就 되었으니 이 아니 즐거우며 어찌 아니 快樂할까 十二月 十八日에 本監에서 呼出 왔네 典獄窸 들어가니 교호사 演說이라 特赦章 내어주며 放免이라 稱讚하네 門 밖에 나와보니 眞夢을 未分일세 盛德하신 우리 父母 慈愛도 남달라서 不肖한 이 子孫을 晝宵로 誦祝하사 天德을 빌어나서 日月을 다시 본 듯 昔事를 推仰하니 悲悵之心 새로워라 餘厄이 未盡하여 寸步가 相難하다 二十里를 終日 와서 路中에 누었더니 永平 親舊 三 四人이 서울로 오는 길에 내 模樣 것더보고 申議官이 아니신가 손잡고 落淚하며 저성 親舊 다시보네 말을 태워 앞세우고 四 五人이 扶握하여 永平 東面 들어가니 男女老少 다 나왔다 數三朔 調理하니 本 形象이 돌아온다 鐵原 있는 崔參奉은 平日의 誼兄弟라 前처럼 찾아가니 훑어 잡고 들어간다 옷을 주고 挽執하기 月餘를 留宿하니 衣獘가 自甚할 뿐 厚對가 不安하다 집으로 오느라고 서울로 올라와서 主人집에 잠을 자고 發行次로 떠났더니 居昌 사는 金主事는 前日 사귄 親舊러니 偶然히 그를 만나 내 집으로 가자하니 아무리 悤急하나 행행히 못갈러라 내 집이 狹窄하나 修修이 못가리라 자내 所遭 알았으나 風俗이 다른 故로 一次 相面 못했으나 定理에 泛然한 듯 積年 喫苦하던 餘毒 行役을 急히 하면 能力도 不足할 뿐 成病도 될 것이니 數十日 調理한 後 完完히 發行하라 信誼로 挽執하니 고맙고도 感謝하다 날만한 이사람을 누가 그리 寬曲할까 안 밖이 如一하여 對接이 寬厚하다 月餘日 묶고나니 身勢가 泰山이라 後日 報恩 할지라도 當場 厚對 不安하다 晏然히 作別하고 구리개 얼른지네 光化門 第一樓에 완연히 올라서서 長安을 굽어보니 慷慨之心 새로워라 慶會樓 光化門은 樓閣만 남아있고 春塘坮 옥유처는 쑥밭이 되어있고 德壽宮 大韓門 앞 蕭條하고 悲悵하다 南北村 故家 世族 痕迹이 바이 없다 벽돌담 二層집은 四方에 왜놈이라 國家가 없어지니 다시 오기 杳然하다 三角山아 잘있거라 漢江水야 언제 볼고 송파강 얼른 지나 利川邑 宿所하고 장원장 求鏡하고 丹陽邑 자고나서 竹苓을 올라서니 豊基邑이 멀잖구나 北門通 들어서서 기침하고 소리하니 四從 叔母 同婿분이 버선발로 뛰어나와 살아서 참 왔는가 죽어 靈魂 아닐런가 반갑기도 그지 없고 즐겁기도 測量 없다 甘酒하여 願을 풀고 버선 기워 발 덮으니 人事 않던 집안이냐 不安之心 없을손가 數日을 留宿하고 故鄕으로 돌아온다 百戰老卒 壯夫심장 國恩을 못다 갑고 獨行千里 무삼일가 無面渡江 내아닌가 彔彔할사 同胞들아 非戰之罪 아니건만 桀紂風波 搖亂하다 堯舜世界 언제 볼고 醴泉邑 잠깐 보고 龍宮邑 잠을 자고 咸昌邑 點心 먹고 안은재 굽어보니 山川은 依舊하여 나를 보고 반기는 듯 仁慈하신 우리 慈親 朝夕으로 바래시다 所願을 못이루고 世上離別 하셨으니 九泉에 맺힌 寃恨 何年何日 풀릴손가 泉坮가 몇 萬里며 유명이 무엇인고 蹤跡을 은닉하고 반기실줄 모르시네 不肖한 이 心腸도 悲悵之心 새로워라 骨격이 무너진 듯 骨節에 脉이 없어 痛哭하고 구불다가 如狂如醉 미치겠네 憶第하고 일어서서 村前에 달렸더니 一村이 모두 나와 울음 웃음 泰半이라 妻子의 多情함은 옷깃 잡고 落淚하고 親族의 즐겨함은 손목 잡고 웃음 웃고 더풀더풀 뛰어남은 며느리의 기상이요 人事 드려 반긴 양은 여러 嫂氏 情曲일세 澠池를 건너가서 從叔母宅 들어가니 갖은 飮食 차려놓고 寬曲히 권하실제 飢膓도 되려니와 때도 마침 窮節이라 햇콩 놓고 밀개떡은 고량진미 生覺없다 抱子戱孫 樂을삼아 農夫 漁翁 좋을시고 이 다음 남은 말은 後錄 記載하오리다 倡義歌 終

    2 춘수당일기

    명 나라 영력(永曆) 244년(庚寅) 춘수당 일기(春睡堂日記) 오늘은 우리 종조비(從祖妣) 양천 허씨(陽川許氏)의 기일이었다. 첫닭이 울 무렵 제사를 지내고서 아침에 다례(茶禮)를 행하였다. 종손 상철(相轍)이 앞에 서고 그의 7세 된 맏아들이 그 뒤에 섰으며 내가 좌우에서 도왔다. 사판(祠版) 앞에 세 장부다운 후손이 이렇게 늘어선 것은 수십년 이래 처음 있는 일로서, 삼양(三陽)이 비로소 시작하는 것이라 이를 만 하였다. 우리 선조의 영령이 황천에서 흐뭇해 하셨을 것이니 어찌 기쁘고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다만 어머니께서 미처 보지 못하고 세상을 버리셨으니 새해를 맞이하는 아픔이 더욱 사무친다. 더구나 어머니께서는 일찍이 조상님께 제사지내는 일로 한을 품고 늘상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종제(從弟) 상철이 일찍이 지각을 갖고 처가살이하는 잘못을 짓지만 않았다면 어찌 이런 한을 가지게 되었겠는가. 다만 눈물이 옷깃을 흠뻑 적실 뿐이다.

    3 義士三戎元公 乙巳倡義遺蹟

    의사 삼계 원공 원용팔 을사 창의 유적[義士三戒元公乙巳倡義遺蹟] 권상(卷上)

    4 신의관 창의가

    신의관 창의가 어와 세상 사람들아 금세 형편 들어보소 아 태조 창업하사 오백여 년 내려올 제 오천년 요순지치 이천년 공부자도 인의예지 법을 삼아 삼강오륜 분명하다 계계성성 내린 덕화 팔역이 안돈하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중간 기침 근심 이라 태서양이 이르기를 인의 있다 칭찬터니 불행할 사 을사조약 오적의 농간이라 제 임의로 천편하여 살림천택 전수하니 천지도 희명하고 일월도 무광하다 국가가 요란한데 창생인들 편할소냐 누백년 양반종사 이씨 은우 뉘 아닌가 가슴의 끓는 피는 개인개인 일반이라 죽자하니 어리석고 살자하니 성병일네 주소로 잠 못이뤄 전전 반칙 누웠으니 시문에 개 짖으며 훤화지성 요란하다 문을 열고 탐문하니 관동대진 경통이라 이천만 우리 동포 안연히 있단 말가 군율을 당치말고 하루바삐 출두하소 칼을 집고 일어서서 문경읍 들어가니 충남진이 선착하여 적병을 소멸이라 익일에 행진하여 갈평 장터 들어가니 토벌대 수백 명이 북양사로 넘어온다 호좌진 부합하여 종일토록 접전하니 피차 사망 미판하고 날이 이미 저문지라 용못 와 밤새우고 오 명을 사로잡아 즉지에 목을 베어 만군 중의 회시하니 심중의 쌓인 분심 만분지 일 풀릴손가 집으로 돌아와서 이틀을 유한 후에 행장을 수습하고 고향을 이별할제 산천도 설허하고 초목도 비창한듯 형경이 역수갈제 불분한 노래로다 자고로 영웅열사 오늘날 적당하다 경경이는 뇌가되고 섬계수가 역수로다 관모 한개 우산 한개 짚신 감발 초췌하다 이틀에 풍기 가서 숙질이 상면하고 죽령재 올라서서 단양읍 향망하니 운수산 장한 정기 우역동 기상이라 도담삼봉 소신 바위 검극이 분명하고 만악강 흐른 물은 오열지성 완연하다 뒤뜰을 들어가니 조씨가이 입입했네 일가집 부녀 한 분 전지도지 뛰어나와 반갑게 영접하니 돈목지의 관후하다 닭 잡고 밥을 지어 유해 가라 만접하네 사 오백리 타관객지 이 아니면 뉘 그리리 이 삼일 유한 후에 가노라 하직하고 상산 가서 소모하니 다 불과 백 명이라 운강을 보라하고 영월 상동 들어가니 반갑다 인사하고 영솔 불러 행진하다 선 걸음의 부진하여 단양읍 달여드니 오 육명 남녀 왜인 애걸하고 비는구나 일령에 결박하여 장대에서 포살하고 관청의 사체하고 소 잡아 호군한 후 익일의 행군하여 고리뜰 들어가니 성판서 집 대소가가 사부풍효 관후하네 소 잡고 밥을 짓고 떡을 처서 호군하니 애국 사상 있다해도 이 지경은 쉽잖겠네 이틀을 쉬고 나니 사방의 격서로다 토벌대 오백 명은 예천으로 넘어오고 수비대 사백 명은 원주, 제천 덮어오고 마병대 백여 명은 충주, 청풍 들어온다 매 바위 유진하고 철통같이 단속한 후 기호를 높이 달고 훤화를 일금하라 각 장관 취립하고 군령을 전포할제 본진 선봉 전세영은 죽령을 방어하고 호좌 선봉 하한서는 장입을 수습하고 좌익 우익 돌격장은 서령을 견수하고 전군 후군 좌군장은 남대에 칩복하고 사령 유격 중군장은 중앙에 유진하되 적병이 승시하여 일시의 포방하라 군령을 어긴 자는 사정 없이 참하리라 미시말 신시초에 천지가 뒤뉩는다 속사포 기관포는 탄환이 빗발치요 천보대거라대는 소리가 벽력이라 화약 연기 안개되어 동서를 난분일내 사오일 지나도록 성패를 불분터니 칠십여 전 싸운 후에 적병이 퇴진하네 군사를 수습하니 총 맞은 자 칠팔이라 적병을 수습하니 수백 명 사망이라 익일에 행진하여 영월읍 들어가니 노목과 노략하는 조동규가 유진한대 장대에 좌기하고 조가를 나입하여 대하에 꿇려 놓고 엄형으로 문초할제 네 죄를 네가 알면 죽는 것을 한을 마라 위국도 하려니와 창생을 건지라고 만인을 휘동하여 의진으로 다니면서 여염에 노략하고 인민을 핍박하니 적병의 웃음이라 살려두진 못하리라 선봉시켜 목을 베어 만인의 징습하고 그 시로 행진하여 낙화암을 나가니 단종대왕 모신 시녀 형적이 완연하다 고사를 생각하니 감창비화 새로워라 대화방님 얼른 지나 강릉땅 넘어서서 이해수 집 들어가니 점심참이 되는구나 어란을 고배하여 만반 진수 차려 내네 작별하고 일어서니 날이 이미 석양이라 울밀한 죽림 속에 적병이 일어난다 일마장 외통길에 속사포를 걸어노니 전지도지 달아날제 죽는 자가 태반이라 이십리 퇴진하니 층암절벽 당두하네 수백 명 적병들이 벌떼 같이 달려오니 갈길이 망연하여 살아날 곳 바이 없다 운강 전군 윤기영이 할길 없어 자결하네 삼척땅 넘어가니 인가가 바이 없다 산천은 고준한데 해풍 참도 찰사 운강과 의지하여 바위 밑에 밤 지내고 중군을 지휘하여 전군장 운상하라 오육백 명 군졸들이 베 끊어 건 해쓰니 기구도 장할시고 만산편야 상제로다 제천와 안장하고 제문 지어 위로한 후 비희를 억제하고 취군하여 돌아서서 충주목계 유진하고 사오일 소모하니 담총하고 오는 군사 천유여 명 되는구나 동창으로 척후 놓고 탄금대 올라가니 신 장사 간 곳 없고 전루만 남았구나 산천은 의구하여 수색을 띠어 있고 강수는 잔잔하여 오열지성 뿐이로다 유명은 다를망정 원억지심 일반이라 포군 불러 소를 잡고 축원하여 제 지낼제 암상의 높은 깃발 좌우를 둘러싸고 장졸의 장한 검걱 이월을 희롱한다. 싸리재 넘어와서 제천와 숙소하고 울진, 평해 내려가서 신돌석이 상면하고 그길로 행진하여 마양정 잠깐 보고 삼척땅 들어서서 죽설루 올라가니 누각도 좋거니와 풍경이 더욱 좋다 전후좌우 제명서는 고래 소객 형치로다 안전의 만경창파 일망무지 광활하다 파도는 산을 넘고 수광은 접천일내 길 위에 섰는 석비 미수 선생 퇴조비라 비문을 보라한들 거로가 총급하다 안동서벽 유진하다 적병이 들어온다 종일토록 접전해도 피차 사망 없는지라 퇴진하여 물러서서 주야배도 하는구나 영춘읍 들어오니 날이 이미 밝는지라 무심히 밥 받으니 좌우 적병 일어난다 허다한 장관군총 수족을 놀릴손가 설풍은 소슬한데 대강을 임했구나 죽음이 태산같고 건너는 재 사경일내 진밧 와 취군하니 다불과 사십이라 운강이 땅을 치며 통곡하여 하는 말이 천지망아 분명하지 비전지죄 아니로세 종적을 은닉하고 칠십리 횡진하여 제천 도동 들어오니 닭이 이미 우는지라 인가가 넷뿐이라 심수하고 한적하다 하루를 쉬려하고 탈신하고 누었는데 토벌대 수백 명이 철통 같이 에워싸네 칼을 들고 나서보니 피아 진이 혼합이라 검걱어로 단병접전 대장 목 베어들고 동대희로 퇴진하여 설중의 몸을 피고 다시금 들어가서 전진을 탐문하니 생검계가 이십이고 사망자가 십삼이라 쇠멱이를 들러가니 으진이 밀밀하다 종사 보내 탄문하니 후군장 정희창이 여졸을 수습하여 대진을 기다린다 그길로 부진하여 운주제골 들어가서 소 잡아 호군하고 삼일 후 행군할제 행도관 불러내어 좌우로 척후하라 황혼에 들어가니 일촌이 다 모였다 신미량 집 대소가가 면면히 반식이라 밥내로 떡을 치고 닭 잡고 밥을 하여 유해가라 만즙하니 백대지의 돈후하다 촌인을 지로하여 김화둔 올라가니 평창읍 열락 헌병 두 놈이 오는구나 영솔에 조수안이 별포에 김운선이 복지하고 허는 말이 적병 두 놈 당도하니 소졸에게 명령하면 굴연의 다음두고 일방에 포살하여 장하에 바치리라 적다고 압시말고 극역하여 대적하라 만일에 실수하면 국영 시횡당하리라 군무이은 이런 말을 심중에 잊지마라 청영하고 물러서 육혈포 몸에 넣고 복장 벗어 짐에 넣어 보통이를 굴려 집고 수건으로 두상 싸고 지팡이를 끌면서 바람 맞은 병인처럼 비틀비틀 건너간 후 맥식경이 채 못되어 포성이 낭자하다 선봉을 지휘하여 산상에 올라보니 두 놈을 포살하고 기계 수습하니이다 행군하여 들어가서 전 학사 집 사처하고 영솔 별포 불러들여 이백 양식 상겁하고 시계 돈푼 있는 것은 별금으로 너 가져라 주점에 술을 걸러 한 잔씩 먹인 후에 공신원서 밤 지내고 배행산 들어가니 인가는 허허한데 처처에 의진이라 칠진이 부합하여 양양읍 유살허니 병참에 수비대들 총 들고 내닫는다 수삼천 명 장관 군졸 겁겁이 에워싸고 일시에 모방하며 고함하고 달려드니 자운동 안개속에 천지를 미분하고 천둥 같던 총 소리는 산천이 뒤눕는다 일합이 채 못차서 적병이 소멸이라 관청에 사처하고 제산을 수합하니 광목이 두 수레요 사십만냥 엽전이라 기외에 허다 재물 어찌 다 기록하리 사오일 유련 후에 척후 장지로 하여 만물초 들어가니 기암괴석 장관이다 석상의 안전석불 미목이 천성일세 적벽의 허런 폭포 은화꽃이 흩어지니 소부 허유 문답하던 기산여수 헙사하다 사방을 둘러보니 석명이 조정일네 글을 지어 제명하고 삼일포 넘어가니 회수는 웅웅한데 어선이 밀밀하다 새벽 달 찬바람에 선인들이 짝을 지어 북을 둥둥 울리면서 어기엇차 닻 감아라 여관한등 손어 마음 감창비희 세로 난다 간성 땅 들어가서 청장정 구경하고 통천땅 들어가서 총석정 올라가서 회풍은 잔잔한데 원산가는 상고선이 쌍돛을 높이 달고 낙엽부절 왕래한다 어염의 초견어로 그도 또한 장관일세 오며가며 수다 전장 역역 기록 다 못한다 사지 출새하는 사람 경지처가 부당하다 심사 자연 창울한데 물색 좇아 유람하다 장안포 훈양 대찰은 풍경 처라 일너거만 수백 명 영솔하고 구경을 다 할손가 추지령 넘어가서 안변읍 엄살하니 병참에 있는 헌병 삼인 뿐일러라 생검하여 잡아다가 장거리에 포살하고 향청에 사처하니 육방이 다 나온다 일등 기생 봉월이가 수청어로 현신하네 자식도 있거니와 가무가 명창일세 사오일 소창한 후 가노라 하직하니 봉월이 한숨 짓고 세성어로 하는 말이 소녀 팔자 기박하여 창녀로 들어와서 일부종사 못하여도 심장은 본심이라 후덕하신 사또덕택 사람 하나 살려주소 호탐한 배 아니언만 영절리 일 안있듯 고래로 영웅열사 여원리 삼심처라 그리하라 허락하고 행장을 재촉하니 남복지어 변복하고 머리 달여 뒤로 땋고 총대 메고 바랑 지고 현철이라 이름 갈고 당변어로 뒤 세우고 철영으로 올라와서 현철이 불러내어 감언으로 달랜 말이 연연한 여자 몸이 사지 전장 불가할 뿐 이전 인군 당명황이 절대 가인 양귀비를 마의 파호 의로 중에 검두흔을 시켰으니 제계의 적원이요 후세의 우엄이라 네 계로 돌아가서 수월을 기다리면 천하를 평정 후에 너를 분명 데려가마 현철이 말 듣더니 한숨 짓고 일어서서 독하도다 영남 양반 어이 그리 목석이오 가노라 하직하고 아연히 돌아서서 헌박한 장부 심상 창울지심 없을 손가 김화, 김성, 얼난, 지네 양구, 하인 들어와서 하루를 유한 후에 홍천을 넘어가니 적병이 길을 막아 주야로 접전한다 피차 사망 태반인데 군졸이 뇌곤하다 횡성으로 퇴진타가 어깨를 맞았구나 장관 군종 취립하여 운강어께 전임하고 궁헙으로 들어가서 피신하여 조리할재 다래, 순, 국 그리고 문, 베물, 감자밥은 금방에 죽더라도 먹을 수가 전혀 없다 시털바지 노랑머리 족지도지 모래하며 우리집 손님 오셔 별식한다 자랑터니 콩고물 감자떡을 별미라고 일컷더라 수십 일 조리한 후 춘천 지경 넘어와서 방동을 탐문하니 다불가 수십이라 선조 분묘 알과허니 불초지심 절로 난다 화천, 간척 들어오니 적병이 엄살하네 이틀을 접전하여 수십 명 살해하니 춘천 있는 수비대가 토벌대로 합진하여 산상에 진을 치고 엄살하고 달려든다 사졸도 뇌곤하고 약환이 필절이라 혐로로 몸을 빼어 주야로 행진할제 호치가 불원하여 서북풍 참도찰사 말고개 넘어서서 실운을 들어가니 산중 인심 순발할 사 백비탕 반갑도다 사오일 유련하고 군졸을 쉰 후에 양근 지평 척후 놓고 원주 부진 찾아가니 중남이 반겨 나와 손잡고 인사하네 황칙을 의지하여 각 진의 경통이라 양주, 산안 들어가니 진동진이 선착이네 박화람, 민긍호는 청송에 유진하고 남필환, 김현국은 별말다 유진이라 삼일을 유한 후에 보발리 나역이라 서울로 오는 적병 동두내에 유진하고 춘천 있는 수비대는 토벌대를 휘동하여 포천, 영평 올라올제 어기가 양양하다 개성 있는 헌병대는 마병을 영솔하고 마전, 적성 덮어오며 탁난이 무상하다 효두의 밥 먹이고 장종을 휘동할제 서울로 오는 적병 동구를 방어하고 거나면 허다장관 각처로 분송한 후 산상에 높이 올라 진세를 살펴보니 일본 대장 장삼랑이 호달마 높이 타고 칼춤 추고 들어올제 양양자득 하는구나 장부의 울분지심 참을 수가 전혀 없다 노새를 잡아 타고 만군 중에 내려갈제 개 같은 위적들아 천시를 모르느냐 문경 사는 신 대장이 너 잡으로 얘 왔노라 일각이 채 못되어 적장 머리 베어들고 본진으로 돌아오니 날이 이미 황혼이라 앉아서 밤 새우고 효두의 밥을 먹여 각처로 분송하여 적병을 퇴적하라 사시말 오시초에 현덕호 전망이라 각 진이 혼합하여 사산분주 해산할제 영솔을 수습하여 관악산 들어가니 장곡도 심수할 뿐 인심도 순박하다 춘천으로 얼양하여 수삭을 유숙하니 가평 있는 수비대가 물꼴로 오늘 온다 삼일을 접전해도 성패를 미분터니 좌선봉 강창근이 위복장 꾸며 입고 총 버리고 말을 타고 뒤로 달려가서 엄살하고 달려드니 대장을 피희하고 좌우 충돌 들어오니 괘할하기 창양 없다 적병의 거동보소 거꾸로 총대 메고 퇴진하여 물러갈제 곡성이 진동하네 산솔을 수습하여 변호씨겨 취립하니 군졸 망재 칠팔이오 거민 망재 오육이라 베 끊어 영장하고 그 길로 행진하여 청계동 들어와서 김정성집 경통하니 무런 담이 적치한데 팔백여 석 녹지왔네 일일의 작매하여 사솔에게 상겁할제 떡이고 술을 걸러 함포고복 놀고나니 포천 있는 수비대가 이를 갈고 달려든다 죽기를 무릅쓰고 주야불분 접전할제 말굽은 분분하고 상설은 잔잔한데 우뢰 같은 고각함성 좌우 산천 녹여낸다 진세를 살펴보니 적병이 승승하다 기를 돌려 수군하여 도성명 넘어오니 운강이 손을 잡고 낙루하고 허는 말이 천운이 이같으니 인력으로 못할지라 동헙으로 행군하여 후군 중군 만난 후에 다시 솔곤하고 와서 이서원하여 보세 분사란이란 말이 이를 두고 이름이라 오늘날 이 이별이 협엄에 어떠하오 초야에 나설적에 죽기를 무릅쓰고 이사보구 허잔 마음 일신들 이럴소냐 자의로 하다가서 흥패를 당하리라 작별하고 돌아서니 심신이 헐난하다 박화람과 부진하여 보가산 들어가니 인심이 불고하여 주중이 적국이라 침침한 칠야 중에 강산도 생면일세 세우는 몽몽한데 복병이 일어난다 동서를 불분하데 지형을 어이 알리 지향 없이 가노라니 보가산 중턱이라 송목 하에 담요 펴고 유담 덥고 누었더니 한풍은 소설한데 사지가 옮겨든다 고극히 밤 지내고 취군하여 돌아서서 이천읍 들어간다 읍양이 웅장하다 사졸이 뇌곤키로 삼일을 유한 후에 척후로 지로하여 고미탄 들어가니 오육십이 장곡 소리 인가가 질비하다 심산궁협 편답타가 별곤곤을 초견일세 촌인이 반겨나와 영접하여 들어가니 강낭쌀로 밥을 지어 어린육척 반찬하고 귀이로 술을 빗고 진부초로 안주하니 식미가 담박할 뿐 향기롭고 정결하다 안빈낙도 하는 모양 산중재미 격진하다 점심 먹고 행진하여 신계, 곡산, 잠산, 지네 수안땅에 숙소하고 숙천읍 들어가니 헌병 하나 순교 넘어 사산분주 달아난다 객사에 유진하고 일양을 지낸 후에 현천으로 척후 놓고 적리령 당도하니 안밧재 사십리에 인가가 바이 없다 원집에 잠을 자고 익일에 넘어가니 육방이 다 나와서 흔연히 영접한다 소를 잡아 호군하고 유희가라 만접하네 이틀 후에 행진하여 강계땅 들어서서 으암 장석 배은 후에 그곳서 소모하니 일등포군 구백여 명 담총하고 오는구나 큰 소 잡아 호군하고 차례로 장관내니 군례도 은전할 뿐 군영이 엄숙하다 육칠일 지낸 후에 적병 온다 보발 왔네 이삼일 접전하니 피차 사망 많은지라 각기 퇴진 돌아서서 산곡에 유진하고 선봉이 내고하되 포군 일명 피살이라 올라가 수엄하니 영월 있는 김성뒈네 산상에 같다 놓고 붓 들고 통곡할제 불쌍하고 참혹하다 이를 어찌 하잔말까 불원천리 날 쫓아와 객지 고혼되는 말까 너의 부모 너 보낼제 전치를 훌처않고 누대로 상놈되어 나랏일이 무엇이냐 육남매를 다 죽이고 너 하나를 만족하여 갑고을 같이하고 잠시 잇칙 맞았더니 국가이 불행하여 이지경이 되는구나 날 죽이고 네가 가지 살려두고 못 가리라 후덕하신 대장사또 소여자식 놓아주오 연연한 네 처자도 손목 잡고 낭누하여 이제 가면 언제 오오 오마 날을 일러주오 당상의 학발 노친 어찌하여 봉양하며 복중의 깃친 자식 어탁할 곳 전혀 없다 울음 울고 사실소레 내 이목에 저저있다 회군 길에 영월 들면 무엇이라 대답하리 강동 제자 팔천인을 하룻밤에 다 죽이고 강 건널 낯이 없이 우미인 손목 잡고 방황하는 초패왕이 내 아니면 뉘가 될까 사처로 돌아와서 석반을 전체하고 고향을 생각하니 천여리 길이로다 춘일이 화창한데 꽃도 되고 입도 되네 두견조는 슬피울어 손의 마음 요동한다 심생을 억제하고 월예를 지내더니 박화람이 영을 내어 영솔 불러 취립하라 형편을 둘러보니 설사할 길 망연하다 서간도 들어가서 상마적과 합진하여 왜적을 소멸하고 국권을 회복하면 국가에 충신이요 만인의 영광이라 영대로 행진하되 이심을 먹지마라 의표가 작작이라 분이가 적당하오 아연이 작별하고 회군하여 돌아서서 영천 동면 들어오니 좌우에 친구로다 오육일 쉬고나니 이은찬이 경통이라 토천서 부진한 후 광능내로 행진하여 태릉에 복병하고 이틀을 기다리니 서울로 오는 적병 보발이 적영하다 마병이 사십이요 기병이 삼십이라 탄환 사탕 실은 유마 오육필이 넘는구나 상하로 매복하고 약속을 정할적에 적병이 들어와서 후진이 그치거든 일시에 군호더러 엄살하고 몰방하라 모시말 진시초에 능안이 녹는구나 무심이 가다가서 제어이 방어하리 엎어지고 절각된 놈 팔 접치고 총 맞은 놈 가다 죽고 오다 죽고 오십여 명 다 잡았다 오붓하고 쾌할함은 어떻다 말할소냐 유마에 실은 물품 설탕이 절반이라 헐가로 박매하고 군사의 주용체라 영평 이동 들어가서 사당에 유진하니 사방이 고요하고 적병소식 바이 없다 무심이 자노라니 총소리 진동하네 호각처 취군하여 대문 밖에 나서보니 수백 명 적병들이 후원을 덮은지라 전야로 가노라니 도선봉 전망이라 붓 들고 통곡한들 죽는 사람 살릴소냐 수보를 채 못가서 다리를 맞았구나 포군의 등에 업혀 산상으로 올라갈제 주마같이 따라오며 가지마라 소리하네 좌선봉 강찬건아 내말을 잊지마라 우리가 이러다는 몰사 죽음할 터이니 나는 이에 죽더라도 너희들은 살아가서 적병 퇴진하거들랑 내 신체 찾아다가 네 손으로 염섭하여 향양지지 묻어놓고 내집으로 기별하여 혼귀고토 씨겨다오 죽는 사정 보지말고 날 버리고 바삐가라 장관 사졸 달려들어 붓들고 통곡할제 죽으면 같이 죽지 사또 두고 못 가겠소 이정곡, 이경상은 목석도 감동이네 일월도 참담하고 산천도 빗창한 듯 적병이 가까오니 아니 가든 못하리라 뛰치고 가는 경상 귀신동기감이라 수비대 달려들어 총대 뺏고 군도 띠고 가마안에 집어 넣어 영평읍 들어갈제 헌병대장 정견이가 화상을 내여들고 유착은 아니겠지 신의관이 분명하지 만리 타국 전쟁와서 대장 하나 잡았으니 국가의 충신이요 상여금도 불수찬타 우리나라 운수조와 처처의 성전일세 웃음 웃고 즐겨하며 노래하고 춤을 춘다 분심이 복발하니 사지 없는 둥굴이라 용맹도 쓸데 없고 조화도 허사로다 마로방에 누었으니 전금정이 절로난다 일신의 유혈이요 아픈 데가 두통이네 팔구일 적연터니 서울로 올라가라 백누주 들어간다 만세교 곁이로다 풍경도 좋거니와 산수가 더욱 좋다 옥야 철리 넓은 들이 대촌이 즐비하다 평일에 과차하면 시흥도 나려마는 끝없는 걸음이라 창연지심 뿐이로다 솔모로서 점심 먹고 축설령 올라서서 경성을 첨망하니 비창하고 아련하다 삼악산 제일봉엔 수운이 덮혀있고 남산 정두 봉화터는 무연이 잠을 잔다 의정부서 헐각하고 다락원 넘어서서 동소문 들어가니 반일이 넘은 지라 박석태 넘어가니 종묘담이 곁이로다 장원은 무너지고 수운이 참담하다 종로로 올라가니 만인이 낙루하네 재판소로 들어가니 어덕귀면 열좌로다 내란 강도죄명으로 처교가 마땅하니 감옥으로 내려가라 호령이 서리같다 분심이 명문 막아 말할 수가 전혀 없다 맥시경 진정하여 정신을 가다듬어 사송상 앞 들어서서 큰 소리로 토제할제 이신별군 한적 없고 구곡투식 안했거든 내란이 무엇이며 백주풍화 아니하고 살인 탈제 안했거든 강도가 왠말이요 양반 능욕 너무 말고 시각네로 죽여다오 흉턱한 이등박문 대조규 게도해씨여 만주 대만 투덕하고 조선황서 찾아올제 만국에 공포하고 자주독립 시킨다고 억조창생 선동시켜 감언으로 깨우더니 통감이라 자청하고 국권을 휘어잡고 간신을 요래하여 살림천척 늑탈하니 천참만륙 아깝잖고 살지무석 마땅하다 울분을 못 이기어 사송상을 훌처치니 순검이 달려들어 포박하여 끌어낸다 감옥으로 내려가서 막막히 앉았으니 빈지쪽 벽돌담에 찬바람 소설하고 건너산 두견조는 불여귀로 밤 새우고 새절경태 회적심은 옥수심회 도와낸다 정수의 부는 바람 원한을 아뢰는 듯 분국의 매친이설 의병 눈물 아니련가 국운이 불행키로 이럴수가 있단말까 충의열사 몇몇인고 난신적자 몇몇인고 총명이 과인키로 역역히 다 말할손가 만고충신 최 면암(최익현)은 대마도에 아사하고 사군절충 이준 씨는 만리 타국 의국 가서 만국공회 열좌 중에 간을 내여 피를 품고 민 충정(민영환) 누현각에 사절죽이 자생이네 마디마디 충절일 뿐 엽엽이 잇자 되고 생계 대장 원용팔은 원주옥에 아사하고 백두 서생 안중근은 수만여 리 하얼빈에 이등박문 살해하고 여순구에 쳐교당코 평양병정 김봉학 씨 제 가슴을 제가 노와 만인에게 공포하고 영문 앞에 복사하고 영상의 조영화 씨 내시의 유재현 씨 갑진년 사흉난(갑신정변)에 경운궁에 요참하고 궁내대신 이경직 씨 영문 대장 홍재히 씨 경회루 정각 앞에 삼포에게 포살하고 부분은 다를망정 애국사상 일반이라 청주 대장 노병대 씨 대구감옥에 아사하고 영양 대장 신돌석 씨 원주 턱무 민경호 씨 정선 대장 남필환 씨 춘천 대장 이병상 씨 호좌우군 변학기 씨 생검하여 피살하고 진동 대장 허위 씨며 호좌 대장 이강년 씨 관동 대장 이인영 씨 가평 대장 박레봉 씨 단양 대장 이병상 씨 양주 대장 정용대 씨 관동 중군 이언찬 씨 호좌 중군 김상태 씨 본진 중군 유재칠 씨 원주 중군 김현국 씨 단양 중군 조필한 씨 양주 중군 김석영 씨 본진 참모 엄해윤 씨 평양 서생 이재명 씨 처교는 당했으나 유방 백세 아니될까 인재명 호재피가 이에 적당한 말일세 사흉은 누가 되며 오적은 누가 될까 금능의 박영효와 이조참판 김옥균이 재조의 서광범이 참위에 서재필이 내무대신 이재용이 군무대신 박재순이 농상대신 손병준이 외부대신 이완용이 이정대신 한규설이 칠간은 누가 되며 팔적은 뉘가 될까 국내대신 민병석이 국무대신 이병무며 국내참정 민영기며 전거대신 이하영이 군문찬정 권중한이 만고간신 윤태영이 중추원장 김과진이 군문총장 이권탁이 유치만연 되오리라 밤이 이미 깊었기로 억제하고 잠을 자니 무정한 빈대, 벼룩 벌떼 같이 달려든다 교대에 귀곡성은 사람 심신 경동하네 오육삭 지낸 후에 영평서 등소 왔네 재판소서 호출터니 삼년 감해 십년이라 사오년 고격함은 구불가 형언이네 좋을시고 임자 칠월 목인이가 절명이라 우리가 기바부자나 일본 운수 다 되기를 주소로 왕축타가 소원성취 되었으니 이 아니 즐거우며 어찌 아니 쾌락할까 십이월 십팔일에 본 감에서 호출 왔네 전옥실 들어가니 교호사 연설이라 특사장 내어주네 방면이라 청찬하네 문 밖에 나서보니 진몽을 미분일세 성덕하신 우리 부모 자의도 남달라서 불초한 이 자손을 주소로 왕축하사 천덕을 빌어나서 일월을 다시 본 듯 석사를 추앙하니 비창지심 새로워라 여액이 미진하여 촌교가 상난하다 이십리를 종일 와서 노중에 누었더니 영평 친구 삼사인이 서울로 오는 길에 내 모양 것더보고 신의관이 아니신가 손잡고 낙루하며 저성 친구 다시보네 말을 태워 앞 세우고 사오인이 부익하여 영평 동면 들어간다 남녀노소 다 나왔다 수삼 삭 조리하니 본 형상이 돌아온다 철원 있는 최 참봉은 평일의 의형제라 전처럼 찾아가니 훌처 잡고 들어간다 오설 주고 만접하여 월여을 유숙하니 이패가 자심할 뿐 후대가 불안하다 집으로 오느라고 서울로 올라와서 주인집에 잠을 자고 발행차로 떠났더니 거창 사는 김 주사는 전일 사귄 친구더니 우연히 그를 만나 내 집으로 가자하니 아무리 총겁하나 횡횡히 못 갈러라 내 집이 협착하나 훌훌이 못가리라 자내 소조 들었으나 풍속이 다른 고로 일차 상면 못했으나 정의에 변연한 듯 적년 객고하던 여독 횡액을 겁피하면 능역도 부족할 뿐 성병도 될 것이니 수십 일 조리한 후 완완이 발행허라 신의로 만접하니 고맙고도 감사하다 날만한 이사람을 누가 그리 관곡할까 안밖이 여일하여 대접이 관후하다 월여 일 묵고나니 신세가 태산이라 후일 보원할지라도 당장 후대 불안하다 안연히 작별하고 구리개 얼런지네 광화문 제일루에 올연히 올라서서 장안을 굽어보니 강개지심 새로워라 경희문, 광화문은 누각만 남아있고 춘망대 옥유처는 쑥밭이 되어있고 덕수궁 대한문 앞 소조하고 현적하다 남북촌 고가 세족 흔적이 바이 없다 벽돌담 이층집은 사방에 왜놈이라 국가가 없어진다 다시 오기 모연하다 삼각산아 잘있거라 한강수야 언제 볼고 송파강 얼른 지나 이천읍 숙소하고 장원장 구경하고 단양읍 자고나서 죽영을 올라서니 풍기읍이 멀잖구나 북문동 들어서서 기침하고 소리하니 사종 숙모 동서분이 버선발로 뛰어나와 살아서 참 왔는가 죽어 영혼 아닐런가 반갑기도 그지 없고 즐겁기도 청양 없다 감주하여 원을 풀고 버선 기어 발 덮으니 인사 않던 집안이냐 불안지심 없을소냐 수일을 유숙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백전노졸 장부심장 국원을 못다 갑고 독행철리 무삼일고 무면도강 내아닌가 녹녹할사 동포더라 비전지죄 아니건만 걸주풍파 요란하다 요순시대 언제 볼고 애천읍 잠깐 보고 용궁읍 잠을 자고 함창읍 점심 먹고 안원제 굽어보니 산천은 의구하여 나를 보고 반기는 듯 인자하신 우리 자친 조석으로 바래시다 소원을 못이루고 세상 이별 하셨으니 구천의 맺힌 원한 하년 하일 풀릴손가 천대 가면 말리며 유명이 무엇인고 종적을 원익하고 반기실줄 모르시네 불촌한 이 심장도 비창지심 새로워라 흉격이 무너진 듯 골절의 맥이 없어 통곡하고 구불다가 여강여취 미친지네 억제하고 일어서서 촌전에 달렸더니 일촌이 모두 나와 울음 웃음 태반이라 처자의 다정함은 옷깃 잡고 낭누하고 친족의 즐거함은 손목 잡고 웃음 웃고 더풀더풀 뛰어나면 면나리의 기상이요 인사 더러 반긴 양은 여러 수씨 정곡일세 민지를 건너가서 종숙모댁 들어가니 갖은 음식 차려놓고 관곡히 권하실제 기장도 되려니와 때도 마침 궁절이라 햇콩 놓고 밀개떡은 고양진미 생각없다 포자회순 낙을 삼아 농부 어옹 좋을시고 이 다음 남은 말은 후로 기록하오리다 창의가 끝

    5 고광순 상소문

    고광순(高光洵) 상소문 전라도 창평 유학 臣 고광순(高光洵)이 머리를 조아려 백배 절을 하며 주상 殿下께 글을 올리오니 엎드려 생각하건대 臣은 곤충에 불과한 보잘것 없는 저질인간으로 서울에서 머나먼 千里밖 이곳에서 성장하였으니 草木과 더불어 함께 살다가 草木과 함께 돌아간 것이 분수에 온당할 것이로되 백성에게는 가지고 있는 떳떳한 것이 아름다운 德이라고 하였습니다. 臣은 入學하여 곧바로 五倫의 소중함을 알았고 차차 장성하여서는 父子와 夫婦와 長幼와 朋友의 도리를 몸소 행동하였지만 君臣에 이르러서는 그 義를 講明할뿐 어버이를 섬기듯 임금을 섬기고자 하는 소원을 이루지 못하였으므로 평생 아쉬워 한지 이제 四十년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臣의 선조인 충열공 高敬命(고경명), 효열공 高從厚(고종후), 의열공 高因厚(고인후) 등 三父子가 임진왜란에 殉節하였으므로 세상에서 忠孝古家라고 일컬었습니다. 여러 임금들이 報像하는 법에 依해 자손들에게 내려준 국은은 하늘같이 높고 땅처럼 두터웠습니다. 臣은 곧 의열공의 祀孫으로 조상의 지켰으니 임금을 그리는 마음이 일분 일초라도 어느 가문에게나 양보할 수 있었겠습니까. 조용히 생각해보니 국가에 출세하는 법은 科學에 합격하는 길이 아니면 비록 天理를 통달하고 인간에게서 뛰어나는 학문이 있다해도 조정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臣이 中年에 經學을 공부하여 科學에 누차 응시하였지만 누차 낙방하였습니다. 武科와 文科에 응시하기 위해 科場에 누차 들어가 儒巾을 쓰고 試券을 받들고 殿下의 수레가 지나간 길가에 많은 사람이 모인 가운데에서 殿下의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마음이 기쁘기만하여 나에게만 유독 임금을 아버지처럼 사랑하는 회포가 있는 것만 같았는데 어찌하여 나만 홀로 임금님을 알현할 수 없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바야흐로 그 때에 눈으로 서울 광경을 바라보니 天主堂에서 배운 사람은 어느 사람이며 昌盛하게 조직하여 외국 물건을 사고 팔기를 바라는 사람은 어느 사람일가 기묘하고 음탕한 技巧로 족히 남의 나라를 혼란에 빠지게 하고 電話로 빨리 아뢰고 火輪船으로 달려와 손님이 불러 主人노릇을 하니 이는 夕陽에 끝나는 저자처럼 쓸쓸하기만 합니다. 향리에 돌아와 人心을 보니 감당하기 어려운 徭役은 마치 살을 깎아내고 뼈를 방망이질 한것과 다름이 없으니 시달리는 백성들의 한탄이 날로 극심하였습니다. 어느날 침침한 방안에서 걱정하다가 아낙네처럼 울고도 싶었습니다. 오늘날에 이르러 개나 말이 主人을 연모하듯이 감히 儒生으로 격식을 어기면서 상소를 올리는데 이 상소문은 임금을 섬기는 도리를 담았습니다.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임금을 섬길 때는 직간하는 것이요 숨킴이 없어야 한다고 하였고 맹자는 말씀하시기를 감히 올바르게 對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하셨으니 엎드려 바라옵건데 殿下는 동촉하옵소서 지나간 옛날의 역사는 오늘날에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 堯와 舜 같은 임금이 있었고 幽王과 厲王이 있었으며 宣王과 光王이 있었는데 殿下를 어느 임금에게 비유한 것이 적당하겠습니까. 옛날 맹자가 말씀하시기를 모든 사람이 堯舜처럼 될 수 있다고 하였으니 殿下의 明聖하신 자품으로 天性을 이루셨습니다. 殿下께서 堯舜처럼 현명한 임금이 되지 않으려 하신 것이지 不可能이 아니니 어찌하여 堯舜이 되지 않으려 하십니까. 幽王과 厲王의 폭정을 殿下께서 잘 알고 있으니 반드시 陳達하지 않을 것이며 宣, 光 또한 나라를 中興시킨 임금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당당하게 큼직한(千乘之國) 나라입니다. 하늘에 계신 列聖祖의 영령께서 나라를 영원 무궁토록 발전시키라는 어려운 大業을 殿下께 맡기셨으니 殿下께서는 이 어려운 시기를 슬기롭게 처리하신다면 禍가 福이 되는 기회일 것입니다. 어찌 宣, 光만이 아름다운 역사를 남길 것입니까. 어찌하여 대대로 先王들은 憲章을 잘 지켰기에 태평세월이 항상 많았고 국민 모두가 이세상 끝까지 잊을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요즈음 殿下께서는 마음대로 憲章을 고쳐 때를 따라 적당히 사용하시는데 오히려 혼란이 많은 것은 어째서일까요. 비록 효도하는 자손일지라도 천백년 뒤에 難處함이 있을가 두렵다는 것입니다. 丙寅洋亂뒤 各道 各郡에 비를 세웠는데 그 비문에 가로되 洋夷가 침범할 때 싸우지 아니하면 和親하자는 것이라고 하였으니 화친을 주장한 것은 賣國을 의미한 것이니 1866년 丙寅에 시작하여 1871년 辛未에 세워 천만년 뒤 우리 자손을 경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殿下께서 영단을 내려 전국에 布告하신 것은 참으로 잘하신 일이며 최근에 開化를 새긴 비를 무너뜨리라 하시니 이 또한 어찌나 마음이 통쾌한지요 대저 開化二字의 뜻은 오랑캐가 되자는 것이고 인간을 금수로 만들자는 것에 불과하니 국가적 存亡과 安危가 코 앞에 다가와 있다는 것은 설명을 들을 것 없이 스스로 분명합니다. 조용히 들으니 他國人이 서울시내에 도사리고 있다니 실로 세계 어느나라 헌법 가운데에도 없는 조약인데 우리나라만 유독 그러하다고 합니다. 같은 방안에서 음탕하고 짐승같은 이민족을 보호하여 침범을 당하는 걱정을 모면하고자 하는 이치가 없으니 자신이 무시를 당하는 한탄은 이미 의론할 것도 없을 것이며 開化한 뒤 겹겹이 쌓인 변괴가 고기비늘처럼 일어날 것입니다. 다만 인연을 따라 벼슬을 얻을 것을 걱정하고 벼슬을 잃을까 걱정한 무리들이 外國人에게 아부하여 밖으로는 외세에 호응하고 안으로는 임금님께 협박하면서 권위와 복록을 마음대로 하며 殿下께서 쓰는 계획을 꾀하여 이로운 것은 자기에게 돌리고 해로운 것은 국가에 돌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人心은 즉 天心이기에 필경 스스로 곤란을 겪을 것이고 하늘이 반드시 죽일 것이니 金弘集(김홍집), 鄭秉夏(정병하) 등이 이들입니다. 이전날 金弘集(김홍집), 鄭秉夏(정병하) 등이 入侍하였을때 그들이 과연 곧은 말을 하더이까. 그들이 과연 기쁜 모습을 보이더이까. 신하를 아는 것이 主上같은 분이 없으니 그들의 말을 듣고 그들의 모습을 보면 어찌 감히 숨킬 것입니까. 요즈음 국가의 형세가 큰 병을 갖은 것과 같으니 平順한 약제는 가히 이야기할 것이 아니고 모름지기 大承氣湯과 十全大補湯을 사용한 뒤에 가히 回春할 것입니다. 큰 간신을 충신과 같이 생각되는 것이니 한마디로 말하여 殿下께서는 사랑을 주는 가운데 그들의 흉악함을 알으셔서 開化를 주장하여 나라일을 그리치려한 두목의 머리를 베어 대중을 깨우쳐 주시고 먼저 분개한 영령을 위로하시기를 엎드려 바라나이다. 臣이 아쉬워 하는 바는 박영효가 살아 入國하던 날 분한 것은 즉시 聲討文을 작성하고 그놈의 살을 씹지 못한 것이며 國母가 시해되던 즉시 달려가 복수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어 단발령을 내렸을 때 殿下의 상투를 그대로 보존하지 못하였고 臣의 상투는 옛날대로 보존하였습니다. 그러나 君臣과 父子는 한 몸이요 天倫이라고 할 때 臣의 상투가 비록 보존되었으나 보존한 것이 아니니 만번이나 죽고 싶습니다. 아라사(러시아) 공관이 모습을 드러냈고 임금님은 景福宮을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못한 이때 충신이 과연 누구인지 상세히 알 수 없습니다. 이와같은 변란이 많은 즉 외세 때문에 장차 국가는 국가답지 않을 것이고 임금은 임금답지 않을 것이며 신하는 신하답지 않아서 국운은 멈추어 버릴 것입니다. 엎드려 생각하니 역대 임금님들의 국은이 망극하였으므로 한 조각 陽脈이 이 義擧에 있는 듯 합니다. 전국의 거리에서는 擧義를 외치는 목소리가 날로 높아만 가고 있습니다. 돌아보건대 이곳 호남은 豊沛(전주의 옛이름) 故都로써 적막하여 알려지지 않았는데 長城에 前寢郞인 臣 奇宇萬(기우만)이 상소를 올리고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奇宇萬(기우만)은 故參判인 臣 奇正鎭(기정진)의 후손으로 家訓을 지키며 學德을 이루니 선비들의 領袖로서 泰山北斗처럼 우러러 바라 보았습니다. 그는 효도하는 마음으로 나라에 충성하다가 죽을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臣 또한 선비이기 때문에 서로 호응하여 국가를 함께 붙들 것을 약속하고 여러 고을에 通文을 발송 민심을 수습 대동단결하여 億萬心이 오직 一心으로 되었으니 이 어찌 임금님의 德化에 젖어 가만 둘 수 없는 떳떳한 인간성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아직까지 단결이 부족한 상태이니 임금을 호위하는 일이 늦어질까 두렵습니다. 군사를 이끌고 출정하는 날 전국 의병이 서로 호응할 것이며 즉시 대궐에 달려가 임금의 고통을 부채질하는 무리들을 깨끗이 소탕할 것이며 異民族에 대해서는 마땅히 알아서 사람들은 죽여야 마땅하며 太原(중국)의 경우 이해를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義에서 출발한 것이요 義롭게 죽는다면 죽음도 오히려 영광스러울 것이니 이는 실로 하늘도 알고 땅도 아는 것입니다. 이때 殿下께서 義兵을 해산하라는 어명을 누차 내리시니 이는 임금님 左右에 있는 신하 모두가 開化를 주장하는 주변 인물로서 꺼리낌 없이 법제를 고쳐 명령한 것인 까닭에 臣은 사실상 믿지 않았습니다. 殿下께서 本宮에 돌아오시고 국가 憲法이 옛날처럼 다시 밝아 교활한 무리를 제거하고 섬나라 오랑캐가 물러간 뒤 綸音(왕명)을 내리시면 臣等은 내일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해산할 것입니다. 들으니 各道에 수령들이 亂民賊子(개화파)에 의해 살해되었으므로 국민 모두가 그들을 죽여야 한다고 하니 밝은 하늘의 이치가 그림자와 소리처럼 빨라 왕께서 명령하지 아니하여도 다시 밝아진다는 것이 이와같이 분명하다. 臣은 조용히 생각해보니 일이란 제빠르게 수습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요즈음 고을에는 東匪(동학당)와 常人(상 사람)들이니 邪와 正이 이미 판단이 되고 廟堂(조정)에는 守舊派와 開化派이니 邪와 正이 스스로 분별되는 것이니 모름지기 대대로 벼슬해온 守舊派에서 나이도 많고 학덕도 많은 인물을 선택하여 고을 수령에 발령하시어 불안해 한 민심을 위로하여야 할 것입니다. 일찌기 옛분이 이르기를 오랑캐 나라에 임금있는 것이 중국에 임금 없는 것만 같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요즈음 세계정세를 살펴보면 대저 他國의 경우 이웃나라에서 혁명을 모사하다가 망명해 오면 서로 호응하고 받아드려 잘 보호한다고 하드이까. 이웃나라의 경우 국모를 시해하는 큰 변란을 별것 아닌 사건으로 생각하고 그들을 상대할때 조금도 두려워함이 없다고 하드이까. 이는 서양 각국도 그러한 일이 없는데 日人들이 유독 그러합니다. 이날을 당하여 우리나라는 廟堂(조정)으로부터 각 부처 공직자에 이르기까지 윤기가 이미 무너지고 生脈이 영원히 끊겼으니 통곡할 곳조차 없습니다. 진실로 올바른 신하 한사람이 있어 각국 대표가 모인 회의장에서 대의명분을 큰소리로 외친다면 日人 역시 인간의 마음이 있기 때문에 곧바로 사과할 것이고 극변하는 외국인이 모두 도망갈 것이며, 필경 박영효 등도 本國 헌법에 의해 죽을 그날이 어찌 멀 것입니까. 서양국가에 이르러서는 심려되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연유인고 하니 중국은 불행하게도 道德이 침체되었고 一脈陽春이 동방에 있으니 우리 孔父子께서 九夷에 삼고 싶다는 말씀이 이제야 확실시되고 있어 碩果를 먹지 않는다는 것이 믿음직한 이치가 아닌가 합니다. 진실로 王道를 실천할 자가 있다면 능히 우리나라의 法을 取하지 아니하겠습니까. 조정으로부터 邪學(예수교)을 금지하지 못한 것이 이제 몇 해가 되었습니다. 저들이 약을 주고도 대가를 바라는 것이 없고 재물을 주고도 보답을 생각하지 않으니 저들의 발전을 막을 수가 없으며 이 邪學(예수교)에 오염된 자는 산중 또는 바닷가에서 사는 백성들입니다. 孔子의 글을 아는 자는 비록 현삼금을 주면서 권고해도 반드시 물들지 않습니다. 저들이 敎勢를 확창하면서 절대로 바란 것이 없지만 取得하는 바는 利益이니 스스로를 지키는 길은 다만 검소할 뿐이니 기교한 물건을 어찌하여 求할 것입니까 중국(上國)을 예우하는 道를 언급하자면 1636년 丙子胡亂 이후에는 尊周의 정신과 大報壇(明나라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설치된 壇)을 설치하자는 것은 당당히 의론되어야 할 것이며 이제 淸國 역시 心服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의론이 분분하니 百世인 뒷날에 결정한 것이 可하다고 할 것인데 최근에 殿下께서 自主獨立을 언급하시니 어찌 마땅하다고 하겠습니까. 한마디로 말하여 殿下로 하여금 自主獨立을 설득한 자가 누구일까요 趙孟[조맹(晉나라 大夫)]이 貴하다고 여긴 바는 趙孟(조맹)이 능히 賤히 여긴 것입니다. 아주 소중한 왕명(絲綸)를 漢字와 諺文으로 기록한다는 것은 二典(堯典과 舜典)에 기재된 바도 아니요 訓誥에도 없으니 이처럼 간편한 것을 어느 곳에서 얻어냈다는 것입니까. 가히 天下에 알릴 것이며 가히 후세에 法이 될만 할 것입니다. 臣이 감히 自主와 例로써 임금님께 상소하지 못할 일인데 생각이 혼란한 소치이니 만번 죽어 마땅하므로 두렵기만 합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데 殿下께서는 정신을 쏟으시어 처분하소서 大를 小가 대적하지 못한 것이고 强을 弱이 대적하지 못한 것이니 뉘가 급박한 현상이라고 아니하겠는가. 이제 우리나라의 技藝가 다른 나라와 더불어 같으니 오랑캐를 공격하는데는 부족함이 걱정되지 않는 것은 전 국민 모두가 의롭게 싸우다가 죽는 것이 義가 되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孟子(맹자)가 말씀하시기를 敵國과 外患이 없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하였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殿下께서는 정력을 쏟아 나라안을 튼튼히 하시고 외부침략을 물리쳐 반드시 堯임금 舜임금 宣王과 光武같은 임금이 되신다면 국력에 大小와 强弱의 차이는 거론할 바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臣이 올린 상소는 노새의 자취를 계속 따라간 것이고(맷방아) 사람의 울타리를 밟는 것에 불과한 것이니 神奇하지 않습니다. 다만 齊나라 襄公이 九世祖의 원한을 복수한 것을 孔子(공자)께서 春秋를 쓰시면서 옳다고 하셨습니다. 일본인은 국가의 원수이니 君父의 치욕을 씻는 한편 선조의 원구를 위로한다면 臣이 비록 죽음을 당할지라도 살아있는 것이나 같은 것이니 臣은 할일을 다했다고 할 것이요 臣은 소원을 끝냈다고 할 것입니다. 臣은 격동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상소하나이다.

    6 메이지(明治) 37(1904)년 9월부터 메이지(明治) 39(1906)년 8월까지 러일전쟁시 한국주차군(韓國駐箚軍) 사령부 편성 일건

    동발(動發) 제58호 편성 명령 발간일: 메이지(明治) 37(1904)년 9월부터 메이지(明治) 39(1906)년 8월까지 러일 전쟁시 한국주차군(韓國駐箚軍) 사령부 편성 일건 발신일: 1904-09-07 발신자: 외무대신 남작 고무라 도시타로[小村壽太郞] 앞[殿] 수신자: 외무대신 남작 고무라 도시타로[小村壽太郞] 앞[殿] 한국주차군 사령부의 편성 개정을 명하였으므로 이를 통보함. 메이지(明治) 37(1904)년 9월 7일 오전 10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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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송(電送) 제952호 발간일: 메이지(明治) 37(1904)년 9월부터 메이지(明治) 39(1906)년 8월까지 러일 전쟁시 한국주차군(韓國駐箚軍) 사령부 편성 일건 발신일: 1904-09-15 발신자: 하야시[林] 공사 수신자: 하야시[林] 공사 수신주소: 한국 메이지(明治) 37(1904)년 9월 15일 오후 0시 5분 발 재한(在韓) 하야시[林] 공사 대신 제301호 귀하의 전보 680호에 관하여 하세가와[長谷川] 대장의 한국주차군 사령관 임명은 내정되었지만, 동 대장은 일단 귀조(歸朝)한 다음에 한국으로 출발할 것이므로 이상 귀관은 양해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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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6호 통보(通報) 발간일: 메이지(明治) 37(1904)년 9월부터 메이지(明治) 39(1906)년 8월까지 러일 전쟁시 한국주차군(韓國駐箚軍) 사령부 편성 일건 발신일: 1904-09-24 하세가와 대장, 오치아이[落合] 소장은 오는 25일 오전 9시 30분 신바시[新橋]정차장에 귀착한다는 보고입니다. 메이지(明治) 37(1904)년 9월 24일 대본영 육군 부관부(副官部)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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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본영육(大本營陸) 참통(參通) 제920호 발간일: 메이지(明治) 37(1904)년 9월부터 메이지(明治) 39(1906)년 8월까지 러일 전쟁시 한국주차군(韓國駐箚軍) 사령부 편성 일건 발신일: 1937-09-28 발신자: 외무대신 남작 고무라 도시타로[小村壽太郞] 앞[殿] 수신자: 외무대신 남작 고무라 도시타로[小村壽太郞] 앞[殿] 참모총장 후작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인 외무대신 남작 고무라 도시타로[小村壽太郞] 별지와 같이 한국주차군 사령관에게 훈령이 내려졌으므로 통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