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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병자료에 대한 전체 704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601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기수 제3107호 한국 각도에서의 폭도 토벌 정황에 관한 동국 주차군사령관의 보고 이첩 건 발간일: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발신일: 1908-12-17 수신일: 1908-12-18 발신자: 외무대신 수신자: 외무대신 참1발(參一發) 제358호 메이지 41년(1908) 12월 17일 한국주차군사령관의 보고 요지 1. 함경남도 함흥(咸興) 수비대의 일부가 11월 5일 그곳 부근에서 적 10여명을 토벌하여 그 중 1명을 죽이고 1명을 부상시켰다. 2. 평안남도 영원(寧遠)의 헌병 및 보조원이 12월 3일 그곳 동북방 약 28리 지점에서 적 약 30명을 토벌하여 그 중 3명을 죽이고 총 1정을 노획하였다. 3. 강원도 옥동(玉洞)의 헌병 및 보조원이 11월 23일 그곳 서남방 약 4리 지점에서 적 35명을 토벌하여 그 중 3명을 죽이고 총 8정과 화약 약간을 노획하였다.춘천(春川) 수비대가 27일 동 군 내에서 적 13명을 토벌하여 그 중 1명을 체포하고 총 1정을 노획하였다. 금화(金化) 수비대의 일부가 30일 그곳 부근에서 인원수 불명의 적을 토벌하여 그 중 3명을 죽였다.진부(珍富) 분견대의 일부가 12월 3일 수비지역 부근에서 인원수 불명의 적을 토벌하여 그 중 4명을 죽이고 총 3정, 탄약 약간을 노획하였다. 4. 황해도 신원(新院)의 헌병 및 보조원이 12월 3일 그곳 서남방 약 2리 지점에서 적 약 20명을 토벌하여 그 중 5명을 죽이고 총 5정, 탄약, 잡품 약간을 노획하였다. 5. 경기도 양성(陽城)의 헌병 및 보조원이 11월 27일 그곳 남방 약 3리 지점에서 적 12명을 궤멸시켰는데, 우리측 통역 1명이 부상당하였다.적성(積城)의 헌병이 12월 4일 양주군(楊州郡) 내에서 적 약 30명을 토벌하여 그 중 3명을 죽이고 총 3정을 노획하였다.주포(周浦)의 헌병 및 보조원이 5일 그곳 서남방 2리 반 지점에서 적 약 30명을 토벌하여 그 중 5명을 죽이고 총 4정을 노획하였다.영평(永平)의 헌병 및 보조원이 6일 동 군 내에서 적 46명을 토벌하여 그들을 궤멸시켰다. 6. 충청북도 화녕장(化寧場)의 헌병 및 보조원이 9일 그곳 부근에서 적 15명을 토벌하여 그 중 4명을 죽이고 총 4정, 탄약 약간을 노획하였다. 7. 전라북도 진안(鎭安) 수비대의 일부가 12월 7일 금산(錦山) 서남방 약 3리 지점에서 적 약 32명을 토벌하여 그 중 7명을 죽이고 병기 약간을 노획하였다. 8. 전라남도 천원(川原)의 헌병 및 보조원이 11월 12일 그곳 남방 약 1리 반 산간 지역에서 적 약 70명을 격퇴시켰다.나주(羅州)의 헌병 및 보조원이 15일 그곳 북방 약 4리 지점에서 적 약 80명을 토벌하여 총 1정과 탄약 약간을 노획하였다. 정정(訂正) 참1발 제357호 7항 제1행 곡산(谷山)은 곡성(谷城)의 오류이다.

    602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기수 제3115호 한국 중부 각도에서의 폭도 토벌 정황에 관한 동국 주차군사령관의 보고 이첩 건 발간일: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발신일: 1908-12-19 수신일: 1908-12-19 발신자: 외무대신 수신자: 외무대신 참1발(參一發) 제359호 메이지 41년(1908) 12월 19일 한국주차군사령관의 보고 요지 1. 함경남도 원산(元山)의 헌병 및 보조원이 12월 11일 강원도 이천군(伊川郡) 내에서 적 약 20명을 토벌하여 그 중 3명을 죽였다. 2. 평안남도 덕천구(德川區) 토벌대가 11월 24일부터 30일에 걸처 함경남도 영흥군(永興郡) 내에서 적 3명을 죽이고 8명을 체포했으며 총 3정과 탄약 약간을 노획하였다. 3. 황해도 연안(延安)의 헌병 및 보조원이 12월 4일 배천군(白川郡) 내에서 적 45명을 토벌하여 그 중 2명을 죽였다.온정원(溫井院)의 헌병 및 보조원이 10일 그곳 동방 약 1리 반 지점에서 적 약 200명과 충돌하여 그 중 3명을 죽였는데, 우리측 상등병(上等兵) 1명이 전사하였다. 4. 강원도 원주(原州)의 경찰관이 12월 10일 동 군 내에서 적 9명을 토벌하여 그 중 1명을 죽이고 1명을 체포하였다. 5. 경상북도 김천(金泉)의 헌병 및 보조원이 11월 19일 그곳 서북방 약 8리 지점에서 적 약 30명을 토벌하여 그 중 5명을 죽이고 총 4정, 화약, 잡품 약간을 노획하였다. 6. 전라남도 영산(靈山)의 헌병 및 보조원이 12월 4일 나주(羅州) 북방 약 6리 지점에서 적 약 60명을 토벌하여 그 중 2명을 죽였다.

    603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기수 제3157호 한국 중부 각도에서의 폭도 토벌 정황에 관한 동국 주차군사령관의 보고 이첩 건 발간일: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발신일: 1908-12-22 수신일: 1908-12-22 발신자: 외무대신 수신자: 외무대신 참1발(參一發) 제360호 메이지 41년(1908) 12월 22일 한국주차군사령관의 보고 요지 1. 함경남도 운산동(雲山洞) 수비대의 일부가 11월 20일 그곳 부근에서 적 16명을 토벌하여 그 중 1명을 체포하고 총 2정을 노획하였다.하갈우(下碣隅)의 헌병이 수비병과 함께 12월 3일 장진군(長津郡) 내에서 적 10명과 충돌하여 이들을 패하여 달아나게 하였다. 2. 황해도 신천(信川)의 헌병이 12월 6일 그 수비 지역 부근에서 적 2명을 죽였다.시변리(市邊里)의 헌병 및 보조원이 12월 4일 금천군(金川郡) 내에서 적 60명을 토벌하여 그 중 2명을 죽이고 총 1정을 노획하였다.청단(靑丹)의 헌병이 8일 그곳 서남방 3리 지점에서 적 약 15명을 토벌하여 그 중 2명을 죽였다.평산(平山)의 헌병 및 보조원이 10일 그곳 서남방 약 6리 지점에서 적 약 30명을 토벌하여 그들을 궤멸시켰다. 3. 강원도 진부(珍富)의 헌병 및 보조원이 12월 4일 그곳 서방 약 4리 지점에서 적 7명과 충돌하여 그 중 1명을 죽이고 총 3정과 탄약 약간을 노획하였다.횡성(橫城)의 헌병이 7일 그곳 부근에서 적 20명을 토벌하여 그 중 6명을 죽이고 총 4정을 노획하였다. 4. 경기도 양주(楊州)의 헌병 및 보조원이 12월 7일 동 군 내에서 적 약 30명을, 또 삭령(朔寧)의 헌병이 같은 날 토산군(兎山郡) 내에서 적 6명을 궤멸시켰다. 5. 경상북도 부근을 누비고 다니던 적의 괴수 신돌석(申乭石)이 12월 12일 같은 도(道)에서 토민(土民)에게 살해되었다고 한다.

    604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기수 제3176호 한국 중부 각도에서의 폭도 토벌 정황에 관한 동국 주차군사령관의 보고 이첩 건 발간일: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발신일: 1908-12-24 수신일: 1908-12-24 발신자: 외무대신 수신자: 외무대신 참1발(參一發) 제361호 메이지 41년(1908) 12월 24일 한국주차군사령관의 보고 요지 1. 강원도 인제(麟蹄) 수비대의 일부가 12월 6일 그곳 남방 약 3리 지점에서 적 약 15명을 토벌하여 그 중 3명을 죽였다.가려주(佳麗州)의 헌병 및 보조원이 8일 이천군(伊川郡) 내에서 적 20명을 토벌하여 그 중 4명을 죽이고 총 3정 및 잡품 약간을 노획하였다. 2. 황해도 시변리(市邊里)의 헌병이 12월 12일 그곳 서북방 4리 반 지점에서 적 약 30명을 토벌하여 그 중 6명을 죽이고 총 3정을 노획하였다. 3. 충청북도 화녕장(化寧場) 및 병천(竝川)의 헌병 및 보조원이 12월 9일부터 11일에 걸쳐 합계 적 약 15명을 격퇴하고 그 중 4명을 죽이고 1명을 체포했으며 총 4정, 탄약, 잡품 약간을 노획하였다. 4. 전라남도 담양(潭陽)의 헌병 및 보조원이 그곳 순사와 함께 12월 9일 그곳 부근에서 적 약 30명을 토벌하여 그 중 4명을 죽이고 총 3정 및 잡품 약간을 노획하였다.

    605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전수 제60호 무산(茂山)・간도 방면에서의 한국 폭도의 정황에 관한 간도 주재 파출소장의 보고 전전(轉電) 건 발간일: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발신일: 1909-01-07 발신주소: 경성 수신일: 1909-01-07 발신자: 고무라[小村] 외무대신(外務大臣) 수신자: 고무라[小村] 외무대신(外務大臣) 경성(京城) 발(發) 메이지 42년(1909) 1월 7일 오후 6시 본성(本省) 착(着) 오후 9시 40분 제1호 사이토[齋藤]가 보낸 전보 제1호 아래와 같음 지난 12월 23일 무산(茂山) 부근의 산카멘에서 무산 헌병과 충돌한 폭도 약 40명이 25일 무산간도(茂山間島) 센카샤(宣化社)로 잠입했는데, 그곳 연도구(沿道溝) 주재 청국 병사에 의해 그들이 휴대한 총기 및 탄약 등을 압수당했습니다. 또한 다갈색 양복 또는 중국옷을 입었던 자들은 전부 한인 복장으로 바꿔 입고 돌려보내졌다고 합니다. 그후 이들 폭도들이 몇 개의 조로 갈라져 사방으로 흩어진 것 같은데, 그 종적을 수색하는 중입니다.

    606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기수 제90호 한국 각도에서의 폭도 토벌 정황에 관한 동국 주차군사령관의 보고 이첩 건 발간일: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발신일: 1909-01-07 수신일: 1909-01-08 발신자: 외무대신 수신자: 외무대신 참1발(參一發) 제362호 메이지 42년(1909) 1월 7일 한국주차군사령관의 보고 요지 1. 함경남도 임도원(林道元) 분견초(分遣哨)(파출 초소)가 11월 7일 그곳 서방 약 1리 반 지점에서 14명의 적을 토벌하여 그 중 1명을 죽이고 총 1정을 노획하였다. 2. 함경남도 북청(北靑)에서 나온 순사 토벌대의 일부가 11월 26일 함흥군(咸興郡) 내에서 약 20명의 적을 토벌하여 그 중 1명을 체포하고 탄약 약간을 노획하였다. 3. 올해 2월 전라남도 광주(光州)에서 편성된 제2 순사대 및 함경남도 북청에서 편성된 제3 순사대가 12월 1일 해산하였다. 4. 강원도 황지리(黃地里) 헌병이 12월 7일 울진군(蔚珍郡) 내에서 12명의 적을 토벌하고 총 6정을 노획하였다. 5. 강원도 주천(酒泉) 헌병 및 보조원이 12월 8일 그곳 서방 약 5리 지점에서 25명의 적을 토벌하고 그 중 1명을 죽였다. 6. 전라남도 흥양(興陽)의 순사가 12월 7일 습격한 적 약 60명을 격퇴하였다. 7. 평안남도 영원(寧遠)의 헌병 및 보조원이 12월 9일 그곳에서 동남쪽으로 약 12리 떨어진 함남 영흥군(永興郡) 내에서 적 18명을 토벌하여 그 중 3명을 죽였다. 8. 강원도 낭천(狼川)의 헌병 및 보조원이 12월 10일 그곳 동방 약 3리 지점에서 적 35명을 토벌하여 그들을 궤멸시켰다. 9. 전라남도 창평(昌平) 주재 순사가 그곳 헌병과 협력하여 12월 11일 야습해온 적 17명을 격퇴시켰다. 10. 경기도 인천(仁川) 경찰서 관원이 12월 14일 강화도(江華島)의 적의 괴수 이능곤(李能坤)을 체포하고 총 15정, 탄약 566발 및 잡품을 압수하였다. 11. 전라남도 영산포(榮山浦)의 헌병이 12월 15일 해남군(海南郡) 내에서 약 30명의 적을 토벌하고 다음 16일 적의 간첩 1명을 체포하였다. 12. 황해도 시변리(市邊里)의 헌병이 12월 16일 습격해온 약 100명의 적을 격퇴시켰다. 13. 경기도 마전(麻田)의 헌병이 12월 16일 그곳 서북 약 4리 지점에서 약 40명의 적을 토벌하여 그 중 13명을 죽이고 총 3정과 현미(玄米) 15석(石)을 얻었다. 14. 같은 도(道) 적성(積城)의 헌병 및 보조원이 12월 16일 포천군(抱川郡) 내에서 적 30명을 토벌하여 그 중 5명을 죽이고 총 3정, 칼 1자루, 화약 제조 원료 크롬산(酸) 칼륨 10병을 노획하였다. 15. 강화도(江華島)에 파견된 특무조장 이하 15명이 12월 16일 철수하였다. 16. 황해도 탁영대(濯纓臺)의 헌병 및 보조원이 12월 16일 연안군(延安郡) 내에서 약 150명의 적을 토벌하여 다음 17일 탁영대 남방 약 2리 지점에서 적의 괴수 지홍일(池洪一) 및 이진룡(李鎭龍)이 거느린 약 120명의 적을 패하여 달아나게 하였다. 17. 강원도 금성(金城) 헌병의 일부 및 보조원이 12월 17일 그곳 동북 약 3리 반 지점에서 약 30명의 적을 토벌하여 그 중 6명을 죽이고 총 3정을 노획하였다. 18. 전란남도 영산포(榮山浦) 헌병의 일부가 12월 16일 장성(長城) 북방 약 4리 지점에서 약 40명의 적을 토벌하여 그 중 1명을 죽이고 18일 장성 북방 약 3리 지점에서 약 80명 적을 토벌하여 그 중 3명을 죽였다. 19. 황해도 청단(靑丹)의 헌병이 12월 18일 그곳 동북 약 2리 지점에서 인원수 불명의 적과 충돌하여 그 중 2명을 죽이고 쌍안경 1개를 노획하였다. 20. 경기도 구화장(九化場)의 헌병이 12월 18일 그곳 서북 약 2리 지점에서 약 50명의 적을 토벌하여 그 중 2명을 죽였다. 21. 전라남도 광주(光州) 수비대 및 충청남도 천안(天安) 헌병분대 양방에서 나온 토벌대가 12월 18일 같은 도(道) 장성(長城)의 서남 약 2리 지점에서 협력하여 적의 괴수 전해산(全海山), 조경환(曹京煥) 등이 거느린 약 200명의 적을 토벌하여 그 중 12명을 죽이고 총 2정을 노획하였다. 23. 경기도 퇴계원(退溪院)의 헌병 및 보조원이 일본・한국 순사와 협력하여 12월 19일 양주군(楊州郡) 내에서 약 130명의 적을 궤멸시키고 12월 20일 퇴계원에 습격한 적 약 140명을 격퇴시켰다. 24. 전라북도 임실(任實)의 헌병 및 보조원이 12월 20일 그곳 부근에서 적 34명을 토벌하여 그 중 3명을 죽이고 총 4정을 노획하였다. 25. 경성(京城)의 헌병분대의 일부가 12월 21일 양주군(楊州郡) 내에서 퇴계원(退溪院) 헌병 분견소를 습격한 100여명의 적을 격퇴시키고, 같은 날 다시 가평군(加平郡) 내에서 약 20명의 적을 격퇴시켰다. 26. 전라남도 영산포(榮山浦) 헌병의 일부가 12월 21일 나주(羅州) 서북방 약 4리 지점에서 약 50명의 적을 토벌하여 그 중 2명을 죽였다. 27. 군함 아키쓰시마[秋津州]가 12월 24일 목포(木浦)에서 출범하여 전라남도 연안 경비의 임무를 맡을 예정이다. 28. 전라남도 영암(靈巖) 수비대의 일부가 12월 25일 그곳 서방 약 5리 지점에서 약 40명의 도적을 토벌하고 그 중 9명을 죽였다. 29. 강원도 철원(鐵原)의 헌병 및 보조원이 12월 28일 그곳 남방 약 4리 지점에서 약 30명의 적을 궤멸시켰다. 30. 경비 전화 건설부에서 아래에서 기록하는 구간에 경비 전화의 건설하는 일전라남도 광주(光州) --- 전라북도 남원(南原) 사이위와 같음 --- 장성(長城) 사이접속한 곳 --- 광주, 담양(潭陽), 순창(淳昌), 남원 정정(訂正) 참1발 제362호 제7항 제2행 함남을 함경남도로 정정함

    607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전수 제97호 회령에서의 한국 폭도 봉기 풍문 및 제국 수비병의 청국 영내 파견에 대한 동국 관헌의 조회 구신(具申) 건 발간일: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발신일: 1909-01-10 발신주소: 봉천(奉天) 수신일: 1909-01-10 발신자: 고무라[小村] 외무대신 수신자: 고무라[小村] 외무대신 수신주소: 도쿄[東京] 봉천(奉天) 발(發) 메이지 42년(1909) 1월 10일 오후 1시 도쿄[東京] 착(着) 오후 4시 25분 제1호 임강현(臨江縣)의 지현(知縣)이 총독에게 보낸 보고에 의하면, 한국 회령(會寧)의 서남방에서 5천여 명이 폭동을 일으켜 일본 병사가 방비 중에 있다고 합니다. 위의 사건에 대해서 교섭 사절로부터 사실을 조사하고 과연 사실이라면 폭도가 청국 내로 도망치는 자가 있더라도 단속하는 데에 있어 일본 병사가 청국 내로 진입하지 않도록 작년(작년 5월 기밀 제30호)처럼 처리하라는 의뢰가 있으니 조사하신 후 지시를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폭도 중에는 마적이 섞여 있고 무기는 러시아인이 비밀리에 공급하였다고 합니다.

    608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전수 제100호 회령에서의 폭도 봉기 풍문에 대한 문의 건 발간일: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발신일: 1909-01-13 발신자: 이토[伊藤] 통감 수신자: 이토[伊藤] 통감 전송(電送) 제100호 메이지 42년(1909) 1월 13일 제17호 봉천(奉天) 총영사가 보낸 전보에 의하면, 한국 회령(會寧)의 서남방에서 5천여 명이 폭동을 일으켜 우리 병사가 방비 중에 있다고 그곳 총독이 보고한 일이 있다고 합니다. 위의 폭동 사건이 사실인지를 전보로 알려주십시오.

    609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전수 제136호 회령 방면에서의 폭도 봉기 풍문에 대한 문의에 대한 회답 건 발간일: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발신일: 1909-01-13 발신주소: 경성 수신일: 1909-01-13 발신자: 고무라[小村] 외무대신 수신자: 고무라[小村] 외무대신 경성(京城) 발(發) 메이지 42년(1909) 1월 13일 오후 7시 33분 본성(本省) 착(着) 오후 10시 15분 제4호 귀하의 전보 17호에 관해서 회령(會寧) 서남방의 폭도 봉기 사건은 어느 지점에서도 이를 보고한 바가 없으므로 다분히 허보(虛報)라고 믿어지지만 만일을 위해서 회령에 사실을 확인하는 전보를 보냈습니다. 그렇지만 현재의 상황에 비추어 보면 2천명의 폭도가 봉기할 리 없음을 확신합니다.

    610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전수 제150호 회령에서의 폭도 봉기 풍문에 관한 헌병사령관의 보고 이첩 건 발간일: 메이지(明治) 41년 9월부터 동 43년 8월까지한국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과 동국(同國)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日韓協約)체결 건 발신일: 1909-01-14 발신주소: 경성 수신일: 1909-01-14 발신자: 고무라[小村] 외무대신 수신자: 고무라[小村] 외무대신 경성(京城) 발(發) 메이지 42년(1909) 1월 14일 오후 2시 40분 본성(本省) 착(着) 오후 5시 5분 제5호 저번 전보 제4호에 관해 군대와 관헌이 회령(會寧)에 질의한 결과 아래 같은 사항 이외에 귀하의 전보와 유사한 상황은 없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무산(茂山) 헌병 분견소의 상등병(上等兵) 2명 및 보조원 약간 명이 12월 23일 무산 서남방(즉 회령의 서남쪽) 약 5리 지점에서 약 100명의 적을 격퇴하여 이를 궤멸시켰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