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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자료

    콘텐츠/독립운동가 자료 [] 에 대한 전체 5845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471 安昌浩가 이혜련에게 보낸 서신(1918.10.17)

    편지를 반가이 보았소이다. 내가 감기로 수일 누웠다가 일어났고 아직 목만 거북하외다. 이가 좋지 못하여 음식을 잘 씹지 못하니 소화가 잘 아니 되나이다. 속히 돌아가서 이를 고치려 합니다. 삼촌은 벌써 나서 농장으로 가셨소이다. 나는 이곳에서 볼 것을 대강 보고 잠깐 벼 농장에 다니어 하루라도 속히 집으로 돌아가려 하나 아직도 마구 출입하지 못하므로 곧 떠나지 않는데 예배일 일은 떠나기로 생각하나이다. 오늘 뚜루를 찾아보았는데 일년 동안에도 매우 늙었더이다. 아이들 목욕을 자주하게 하소서.

    472 安昌浩가 이혜련에게 보낸 서신(191?.11.24)

    나는 송맹낭 군으로 더불어 그저께 험한 산을 무사히 넘어서 벡건슬펠까지 평안 도착하여 그날 저녁 七시 반에 산다피차를 타고 어제 아침 七시 반에 상항(샌프란시스코)에 왔소이다. 최 부인 집은 다 평안하고 그 모친은 아직도 촌에서 돌아오지 아니하였소이다. 황사선 부인은 일어났으나 몸이 아직 약한 모양이고 황 군과 이건영 군은 그로서리(식료잡화점)를 시작하였더이다. 잠옷 저고리가 왜이리 적으오. 잘 때에 기어 올라가므로 등에는 잠옷이 없소이다.

    473 安昌浩가 안수산에게 보낸 서신(1925)

    너 잘 있느냐. 나는 너희들을 보고 싶다. 네가 하루 한 번씩 필선이한테 국문을 잘 배워라. 잘하면 내가 상금을 주겠다.

    474 安昌浩가 이혜련에게 보낸 서신(1918.12.22)

    나는 오늘 오후 一시 五十분에 삭도(새크라멘토)까지 평안히 왔고 오늘 저녁 七시 차로 상항(샌프란시스코)에 들어가겠습니다. 수산이가 머리가 덥더니 어떠하오닛까. 상항(샌프란시스코)으로 알게 하소서. 김홍균 부인은 깨끗하더이다. 이 아이는 사나이오. 어린애로 보기 좋더이다. 이곳 대회로 모일 집은 매우 좋은 것을 얻었더이다.

    475 安昌浩가 이혜련에게 보낸 서신(1919.1.6)

    나는 지금 상항(샌프란시스코)에서 편히 유하옵나이다. 국민회 일로 그저께 모여 의논하다가 끝이 아니 나서 오늘 다시 모이오니 오늘은 끝이 날 듯 하외다. 문서를 정리한 후에야 갈 터이오니 내일은 떠날 수 없고 몇 날 지체되겠습니다. 집안 아이들은 다 어떠하오니까. 필립과 필선의 편지를 보았소이다. 필선이 놈에게 총을 사게 하여 주시오.

    476 安昌浩가 이혜련에게 보낸 서신(1919.4.9)

    나의 사랑하는 혜련. 아이들 데리고 평안히 지내옵나이까. 나는 정환낭군으로 평안히 와서 오늘에 호놀룰루에 미쳤소이다. 당신께 고할 말씀은 이번에 나는 당신과 작별하기 매우 어려웠소이다. 그러나 나라의 일을 위하여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었소이다. 당신 네 아이를 기르고 가르치는 것이 큰 재미가 될 줄로 알며 또 부인회 일을 보는 것으로 즐거워할 줄로 아나이다. 나는 국민회의 일을 맡았고 당신은 부인회의 회장으로 있으니 우리의 짐이 더욱 무겁고 우리 동포들에게 빚진 것이 많소이다. 덕이 많으신 당신은 여러 여자에게 모범되도록 힘쓸 줄을 믿나이다.

    477 安昌浩가 이혜련에게 보낸 서신(1920.2.23)

    나의 사랑 혜련. 우리가 서로 작별한 지가 달이 지나고 지나서 이제는 해가 지났소이다. 나는 바쁜 것만 생각하고 도무지 편지하지 아니하므로 큰 빚을 진 듯이 괴로웠소이다. 그런데 해가 지나고 보니 더욱 미안하여 큰 죄를 진 듯이 고통이 되옵니다. 나를 충성으로 사랑하고 나를 깊이 생각하는 당신의 뜻을 위로는 못하고 도리어 괴롭게만 함을 생각하니 스스로 무정함을 책망하나이다. 당신은 너그러이 생각하사 용서하소서. 지금에 몸은 어떠하며 아이들은 어떠하옵니까. 지난 겨울에 과히 춥지 아니하였나이까. 지금도 그곳 부인들이 전과같이 나라를 위하여 성충을 다하여 합심동력 하는지요. 내가 비록 편지는 하지 아니하였으나 날로 당신을 생각하고 아이들 보고 싶은 마음을 그치지 아니합니다. 로스앤젤레스의 모든 것이 다 눈에 어리나이다. 식구들의 사진이라도 보내어 주시오. 나 능력 없는 사람으로 한동안은 큰일을 혼자 맡아가지고 지내었고 여러 분이 모인 후에는 좀 나을까 하였더니 다시 복잡하여 분주함이 일반이외다. 내 평생에 처음으로 어려움을 당하였습니다. 이곳 모든 형편은 잘 진취하여 왔소이다. 그러니 앞길이 어려울까 하나이다. 본국 동포들의 열심은 전과 같다 하며 우리 조카딸 맥결이도 독립운동하다 二十일 동안이나 갇히어 고생과 욕을 많이 보았다고 합니다. 강서 댁에서는 흉년으로 큰 곤란에 빠졌다가 김창세와 나와 합하여 돈 百원과 아이들의 의복 감을 사서 보내었소이다. 내가 병원에서 유하다가 경비가 너무 많이 드는 고로 집을 잡고 밥은 한국사람 집에 十二원씩 주고 부쳐 먹습니다. 평안북도 강계군 사람 유상규라 하는 二十三세 된 청년이 이왕 영도(정영도)와 같이 나를 극진히 도와주므로 다행이외다. 두 주일 전에 뇌가 심히 아프므로 일을 할 수가 없어서 병원에 들어가 치료하였더니 지금은 좀 나으므로 다시 일을 하나이다.김창세 군 집안이 다 평안하고 그 내외가 나를 극진히 위하여 주므로 위로가 많이 되옵니다. 당신은 평생에 나를 멀리 보내 정신상 고생을 많이 받아 오던바, 이번에는 특별 국가와 민족의 큰일을 위하여 오래 맡게 되었나니 당신은 국사를 위하여 스스로 위로하소서. 바쁜 가운데서 되는대로 써서 보내오니 편지를 자주 주고 사진을 보내어 주소서.

    478 安昌浩가 이혜련에게 보낸 서신(1922.2.26)

    의 편지를 반가이 보았나이다. 집안 형편이 그 지경에 이를 것을 다 알았나이다마는 멀리 있어 어찌할 수 없으니 민망할 뿐입니다. 이번 대회사진을 받아 보는데 당신의 얼굴과 아이들을 다 보았나이다. 필립은 빠지었으니 웬일이옵니까. 혹 그때에 앓지나 아니하였는지요. 사진 속에 있는 당신의 얼굴 볼 때에 보고 싶은 당신이 더 보고 싶으외다. 말하지 아니하여도 당신의 마음을 미루어 나의 마음이 어떠할 것을 알줄로 믿습니다. 일전에 우편으로 부친 한국 엿을 받았나이까. 그 엿은 맥결(안맥결)이가 나를 먹으라고 평양서 보낸 것입니다. 손수건도 만들어 보내었더이다. 그 애 편지를 수차 받았는데 당신과 아이들 문안을 늘 하였으며 제 동생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고 하였더이다. 그 동생 성결(안성결)을 밧고지에 있다고 합니다. 아이들한테 맥결 형제의 말을 자주 하여 많지 아니한 친족간 애정을 기르게 하소서. 내 사정은 재정상 곤란은 극도에 달하였으니 장래가 더욱 걱정입니다. 몸은 다시 쇠약하여지기로 몇 날을 또 좀 쉬고 출입하지 아니하였더니 좀 낫습니다. 내일부터 난 또 나가보겠소이다. 내가 전과 같이 단소에서 자고 먹는데 음식은 우리나라 사람 사환하는 이가 지어줍니다. 혼자 지어먹는 것이 맛도 없고 돈도 더 드는 고로 한동안 그만두고 이곳저곳 먹다가 합당한 곳이 없으므로 도로 지어먹나이다. 차리석 선생과 같이 유하나 그이는 다른데서 방을 사서 자옵니다. 나의 경영하는 것은 원동에 농촌을 하나 설치하려고 하는데 언제 성공될 것은 예정키 어렵소이다. 이곳 모든 정형은 점점 더 어려운 것 뿐이니 이는 우리 민족의 정도와 실력이 부족한 때문입니다. 밧고지 형님이 내게 돈을 좀 보내어 주셨는데 남의 빚을 물고 나머지는 다 썼나이다. 하여간 사정으로 난 속히 만나서 가사를 정돈하여야 하겠으나 마음대로 못 되니 민망합니다. 여행권도 허락지 아니합니다.

    479 安昌浩가 이혜련에게 보낸 서신(1920.4.22)

    나의 사랑하는 혜련. 나는 오늘 좀 짬이 있기로 혜련한테 편지를 쓰려고 붓을 듭니다. 평시에도 당신에게 향하여 생각이 많았지만 붓을 드는 이 시간에 생각이 더욱 많소이다. 나를 사랑하고 내게 충성을 다하는 내 혜련한테 나는 멀리 와서 편지까지 자주하지 아니하여 혜련의 마음을 위로는 고사하고 도리어 괴롭게 하니 참 아니되었다 하여 엽서라도 자주 하여야 되겠다고 하나이다. 혜련이 여러 달 동안에 편지를 끊고 김창세 군한테까지 아니하니 매우 민망하외다. 몸이 편치 아니한가. 편치 아니 한들 그같이 오래 편지 아니하는가. 나는 편지를 아니하나 혜련이야 어찌 그럴까 하나이다. 나의 사랑하는 필립, 필선, 수산, 수라가 매우 보고 싶으외다. 이것들이 다 잘 있나이까. 어떤 때에는 다 데려와도 좋겠다는 생각까지 불현듯 하나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고 참나이다. 내가 당신을 멀리 떠나는 것은 내 한 몸의 무엇을 위함이 아니요. 오직 국가와 민족의 관계임을 당신이 잘 아는 바니 당신은 네 아이들 데리고 스스로 위로하여 지내소서. 나는 달 반전에 몸이 편치 아니하여 홍십자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지금은 나왔소이다. 병은 신체가 쇠약하고 뇌력이 약하여 일하기가 어려웠소이다. 지금은 많이 낫소이다. 나는 필립의 이모 신실(이신실)에게 극진한 사랑을 받나이다. 신실은 천성이 간사하고 꾸미는 것은 모르고 다만 근본 생긴 대로 이름같이 신실하고 충성됩니다. 꾀라고는 너무도 없소이다. 그러한 이가 나를 아버지 이상으로 믿고 사랑합니다. 신실의 사랑을 받으므로 위로도 되고 편하여 혜련의 생각이 자꾸 납니다. 김 의사 창세(김창세) 군은 흥사단에 입단하였고 나를 극히 위하고 보호하나이다. 신실은 완구하여 집을 잘 다스릴 줄 모르다가 흥사단 단우회에 가서 개량에 관한 강연과 내 권면을 듣고는 정성을 다하여 집안 살림하는 제도와 규모를 고치고 집과 모든 것을 정결하게 합니다. 나도 기쁘거니와 창세 군이 대단히 기뻐 뛰나이다. 신실이가 내말을 당신보다 몇 배나 더 잘 들어요. 신실이가 내말을 잘 들을 그때에 옛날 내가 당신한테 무슨 말을 좀 하면 당신은 잘 듣지 않고 입을 삐죽하면서 ′나는 생기기를 그렇게 생겼어요′ 하던 것이 생각나서 혼자 속으로 웃었소이다. 내가 이왕에 내무총장과 국무총리 대리로 있을 때에 자연 여러 직원과 같이 복잡하게 지내었거니와 근간에 지내는 형편은 이러합니다. 부엌까지 다섯 칸 되는 집에 한 방은 내 침방으로 쓰고 한 방은 나를 주야에 같이 있어서 도와주는 유상규 군의 침방으로 쓰고 한 방은 내 사무실로 쓰고 밑층 한 방은 응접실 겸 사무실로 쓰는데 서기는 김복형 군이라 내가 상해왔을 때부터 내 서기로 늘 도와주었소이다. 또 심부름하고 보호하는 이 전지순 군이라. 이이도 처음부터 오늘까지 충성을 다 하나이다. 그런즉 나는 진실한 세 청년과 같이 관청 겸 가정을 이루고 지내고 밥은 밥하여서 파는 한국 집에서 갖다가 먹는데 맞은 집인 고로 싫지는 않소이다. 그 집에서 정성은 다 하는 모양이외다. 밥값은 매달 十二원인데 혹 더 줍니다. 내 혜련, 나는 집에 한번 다니러 갔다 올 뜻이 종종 있소이다. 나를 사랑하는 혜련은 몸의 형편과 아이들의 사정과 사진까지 다 자세히 보내주면 멀리 있는 자의 위로가 되겠소이다.

    480 安昌浩가 이혜련에게 보낸 서신(1920.5.3)

    中華民國 上海 法界(프랑스조계) 愷自爾路 一百七十号 尹顯振(윤현진) 氏 朝鮮 慶南 梁山郡邑 中部洞 三七七番地 尹光五(윤광오) 上書 이것은 본국에 있는 九 살된 아이가 쓴 봉투라. 내 친구의 아들이외다. 필립이 이것을 보고 공부에 주의케 위하여 보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