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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자료

    콘텐츠/독립운동가 자료 [] 에 대한 전체 5845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461 安昌浩가 이혜련에게 보낸 서신(1918.3.14)

    편지를 반가이 보았고 차가 옴과 사진 두장을 다 잘 받았소이다. 당신의 마음이 좀 편하고 신체가 건강하여 十근이나 더 늘으셨다하오니 내 평생에 크게 기뻐하는 바외다. 내가 집에 있을 때에는 이따금 말로나 행동으로 당신을 불편케 하는 일이 종종 있으나 나의 중심에는 당신이 일생 편안치 못하게 오는 것을 한하고 애석히 여기는 바이라. 그간은 조금이라도 편하다니 크게 위로가 되나이다. 나는 몸이 혹 편하매 혹 불편하고 오른쪽 윗어금니를 마저 뽑았고 왼쪽으로 음식을 씹는데 윗어금니 하나만 남은 것이 이따금 괴롭소이다. 어제부터는 식사하는 처소는 옮겼소이다. 집에 아이들을 매우 보고 싶고 지금 같아서는 돌아간 후에 아이들에게 책망 한마디를 아니할 것 같소이다. 성경과 찬송가하고 합부한 책 한 권을 보내시오. 문영운 보던 책이 집에 있으리다. 또 찬송가만 따로 한 권 보내시오.

    462 安昌浩가 안필립에게 보낸 서신(1918.3.23)

    저번에 네가 보낸 편지를 보고 또 어머님의 편지를 보아서 네가 평안하고 공부도 잘하며 신문을 잘 돌리는 것을 알고 기뻐하노라. 또 네가 박아서 보낸 네 동생들의 사진을 반가이 보았다. 그러나 네 사진이 없으니 매우 섭섭하다. 나는 너를 항상 보고 싶다. 네가 신문 돌리는 일을 그같이 잘 견디어 오랫동안 일하니 내 마음이 매우 좋고 어머님 편지에 말씀하기를 네가 직각이 더 낫다 하니 더욱 기뻐하고 어서 가서 네가 큰 것과 힘든 것을 보고자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나는 편히 있고 이따금 몸이 좀 괴로우나 관계치 않다. 이곳에 있는 우리 나라 아이들은 해동학교라 하는 소학교에 와서 공부를 잘한다. 아이는 도무지 열셋이다. 나는 五월 스무날 전에 이곳을 떠날 듯하다. 너 짬 있는 대로 한국책을 좀 보아라.

    463 安昌浩가 이혜련에게 보낸 서신(1918.4.23)

    편지를 반가이 보았고 아이들의 사진을 다 잘 보았사옵고 집 생각이 일층 더 나옵나이다. 아이들 사진이 다 있는데 필립의 사진이 없으니 섭섭하오이다. 필립은 그 사이에 더 커졌을 터이지요. 내가 저간 주식금 걷은 것이 一만 七千여 원인데 二만 원은 채우고 떠나기 위하여 여지껏 머무는데 이달 그믐과 내달 초승에는 그 수효가 될 듯 하온데 五월 초 九일을 지나서 배편이 있는 대로 떠날 터이니 자연 오월 二十일께 떠나게 되겠소이다. 지금은 음식 먹는 처소를 옮기었으므로 전보다 매우 편리하오이다. 나는 저번에 이를 하나 뽑은 후에도 다른 이들이 늘 아프고 겸하여 두통이 일어나므로 무엇을 생각하거나 책을 보거나 글씨를 쓰기가 어렵고 그렇게 하면 더 아픈 고로 못하겠더이다. 지금은 약질하여 좀 낫고 이따금 쏘나이다. 이러므로 먹기도 성가시외다. 어떤 날은 집 생각이 너무 일어나서 쓸쓸하여 곧 떠나고 싶더이다. 이곳에는 물건값은 그냥 비싸고 어저귀실은 잘 팔리지 아니하므로 돈이 귀하여 백성들이 살기 어려워서 종종 난리를 일으켜 서로 싸우는데, 북방은 혁명이 좀 성하여 사람들이 내왕하기 어렵다하나이다. 내가 떠나더라도 북방에 혁명이 그냥 성하면 속히 가지 못할까 하나이다. 이즈음은 필선이가 국문을 좀 배우는지요. 매일 十五분 동안씩 두 번씩 가르쳐보기를 시험하여 보소서. 이곳에는 일기 덥고 모기가 많소이다. 그러나 과하지 아니하니 꽤 견디겠소이다. 망고라는 실과가 많이 나는데 맛이 좋소이다.

    464 安昌浩가 이혜련에게 보낸 서신(1918.4.30)

    일전에 보낸 편지를 보았는지요. 나는 좀 마르고 치통은 하루 혹 이틀 건너로 아프오이다. 나의 모집하는 주식금은 오늘까지 묵화로 일만 팔천여 원이 되었으니 떠나기 전에 한 二만여 원은 되겠소이다. 내가 오월 보름에 이곳을 떠나겠소이다. 이왕 필립한테 보낸 사진을 보았을 듯하오이다. 이곳 친구들이 사진을 박자고하여 먼저 번에 박았는데 그것은 다 없어지고 다시 앉아 박힌 것을 원한다고 하여 두 번째 박히었소이다. 이것도 없어지기 전에 당신한테 먼저 한 장 보내나이다. 나는 이즈음 한 나흘 동안 이 나라 야학교에 가서 이 나라말을 좀 배우는데 쉬이 떠날 터이니 입학하자 퇴학되겠소이다. 어서 속히 집에 돌아가서 아이들을 보고 싶소이다. 또 이를 고치고 싶소이다. 그러나 집에 간 후에도 집에 있지 못하고 또 돌아다녀야 되겠으니 이를 어찌 고칠는지 미리부터 걱정스럽소이다.

    465 安昌浩가 이혜련에게 보낸 서신(1918.5.11)

    그동안 평안하며 아이들도 다 잘 자라납니까. 나는 좀 마르고 치통은 그냥 멎지 아니하여 좀 괴롭고 이도 더 상한 고로 장차 고치더라도 힘이 많이 들겠소이다. 내가 이달 보름에 떠나서 집으로 가려고 하였더니 그때에 못 가게 되고 이달 二十九일에야 떠나겠소이다. 나도 돌아갈 뜻이 간절한데 마음대로 되지 아니하니 좀 클클하거니와 나를 오랫동안 기다리는 당신을 위하여 더욱 불안하외다. 이같이 늦어짐은 합자하던 것을 한 二만 원이나 모아서 기초를 세우고 떠나려하는데 지금에 一만 九千원이 되었으니 二만원을 넘기고야 떠나려고 함이오. 또 이곳에 돈을 환부치는 교환소에 환하기로 청원하였는데 아직도 환하여 주지 아니하니 이 뒤 모은 돈을 환하여 부치지 않고 떠나기도 미안하고 우선 여비도 환하지 못하였으니 보름 배에 갈수가 없고 보름 배를 지나서 그 다음 배를 타려한즉 그 배는 이달 二十九일에 떠난다고 하나이다. 오, 나의 사랑인 혜련. 당신의 평생에 몸 고생도 많았거니와 몸고생보다 마음고생하여 온 것을 생각하니 나는 어떻다고 말할 수 없소이다. 지금은 아이들이 여럿이니 좀 나을 터이지마는 이왕에 나를 멀리 두고 오랫동안 기다리고 애쓰던 그 마음 얼마나 고생하였으리오. 내 평생에 당신으로 더불어 같이 있기를 비로소 근래 수년뿐이니 그나마 시간은 다 당신의 고생한 시간이라 하겠소이다. 나는 멀리 나와서 집 생각이 간절한 가운데 그대의 은혜와 그대의 고생을 아울러 생각함을 멈출 수 없소이다. 당신은 내게 충성과 사랑을 다하여 왔으되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도움이 당신이 하는 것만큼의 만분의 일을 따를 수 없는 것 같소이다. 내 마음으로 당신을 정성껏 위로하여 은혜를 보답코자 하나 행함은 항상 등한하여 그렇지 못하오이다. 이즈음도 내 생각에는 이번에는 집에 돌아가서는 부부답게 서로 정다운 의논도 많이 하고 가정의 낙을 많게 하겠다하오. 그러나 막상 돌아가서는 삐죽하고 앉아서 당신의 부화나 아니 돋울는지 모르겠소이다. 우리가 소년시대에는 맛없이 살아왔거니와 늙어가면서 가정의 낙을 새로 지어봅시다.

    466 安昌浩가 이혜련에게 보낸 서신(1918.6.22)

    편지는 묵경(멕시코시티)으로 하시오. 다른 곳에 가더라도 받을 수 있소이다. 편지를 매우 기다리나이다. 오랫동안에 집안 소식을 듣지 못하니 참 궁금하오이다. 나는 묵경(멕시코시티)까지 왔소이다. 미주정부에서 새로 법령이 반포되기를 묵국(멕시코)에서 미국으로 가야하면 미국인이나 외국인을 물론하고 묵국(멕시코)에 있는 미국영사한테 인가를 얻어 가지고야 들어가는데 내가 이곳 미국영사한테 가 말한즉 처음에는 아니하여 준다고 하다가 다 하여줄 터이니 十二일을 기다리라 하더니, 다시 청하여 말하기를 일본영사의 여행권이 없이는 해줄 수 없다하니 一혹 달리 변통이 생길는지 모르거니와 지금 같아서는 전쟁이 끝나기 전에는 미주로 못 가게 될 듯하니 참 마음이 답답하오이다. 더욱이 당신이 애쓸 것을 생각하니 아니 되었소이다. 묵경(멕시코시티)에 있는 동포들이 찍자고 하여 사진을 찍었기로 보내오니 보소서. 먼저 보낸 사진은 다 남들이 가져갔소이다. 다시 집안 식구가 다 사진이나 한 장 찍어서 보내어 주시오.

    467 안창호가 받은 미영사에게서 온 편지

    작성일: 1918-06-29미국 영사관(American Consular Service)멕시코, 과달라하라(Guadalajara)1918년 6월 29일C. H. 안(C. H. Ahn)프란시스 호텔 20호시티선생님께,귀하의 오늘자 편지를 받았습니다. 귀하께서는 한국 국민이고, 지난 13년간 미국에서 살았으며, 11월 1일부터 5월 29일까지 멕시코의 마리다(Marida)까지 여행을 다니셨다가 지금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으시다는 내용이었지요.제 친구인 E. H. 그레고리(E. H. Gregory) 씨가 어제 저녁 귀하의 서류를 저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귀하의 한국 여권은 1902년에 발행된 것이더군요. 귀하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멕시코 영사에게서 멕시코를 여행할 수 있는 여권을 받으셨습니다. 이 서류는 미국 영사인 O. 게이로드 마쉬(O. Gaylord March)가 이서한 것이었습니다.귀하께서는 단지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과달라하라(Guadalajara)를 통과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에 본 영사관에서는 귀하께서 자국의 여권을 소지하고 있다 하여도 어떤 허가를 내어드려서는 안됩니다. 귀하께서는 이곳을 단지 통과하시는 것뿐입니다. 본 영사관에서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은 귀하께서 자국의 여권을 획득하시거나 아니면 원래 계획대로 멕시코의 노갈레스(Nogales)로 가시라는 조언입니다. 그곳에서 미국에 입국하시기 전에 멕시코 노갈레스 미국영사와 입국을 의논하시기 바랍니다. (서명)미국 영사

    468 安昌浩가 이혜련에게 보낸 서신(1918.7.6)

    나의 사랑하는 아내여 저간에 나를 얼마나 기다리나이까. 나는 속히 당신이 지어주는 밥을 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오이다. 내가 지금 과들라하라 라는 곳에 와서 이곳 미국 영사한테 말한즉 미국영사의 인준장이 없어도 들어갈 수 있다 하기로 그와 같은 편지를 하나 얻었소이다. 어쩌면 무사히 집에 돌아갈 듯 하오이다. 내가 내일 떠나서 골나마와 만산니요를 지나 마사틀랜드로 가겠소이다. 그곳에서 몇 곳 토지형편을 살펴본 후에 노갈래스로 말물어 집에 돌아가겠소이다.

    469 安昌浩가 이혜련에게 보낸 서신(1918.8.9)

    먼저 달 三十一일에 한 편지를 이달 三일에 받아보았소이다. 송 군한테서 돈 부쳤다는 편지는 보았으나 돈은 아직 오지 아니하였는데 우편국에서 말하기를 로스앤젤레스에서 부친 돈이 이곳으로 바로 오지 않고 멕시코 서울로 갔다가 이곳으로 온다 하니 어느 날이나 받을는지 참 갑갑하오이다. 이번 길에 묵경(멕시코시티)에서는 메리다에서 보낼 돈을 기다리느라고, 마사틀랜드에서는 묵경(멕시코시티)에서 올 돈을 기다리느라고, 이곳에서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돈 오기를 기다리느라고, 공연히 시간을 허비한 것이 한달이 넘었으니 따라서 정 손해도 불소하오이다. 돈이 온 후에 노갈래스에 가서 며칠 시간이나 허비될는지 좀 답답하오이다. 당신은 편지나 또 한번 하여주시오.

    470 安昌浩가 이혜련에게 보낸 서신(1918.8.26)

    단소로 한 편지를 들어서 내가 이달 二十일에 노갈래스까지 온 줄은 알았으리다. 내가 미국영사한테는 허락을 받았는데 이민국에서 엘파소 이민국에 알아보아서 말한다 하여 오늘 갔더니 아직 답장이 아니 왔다고 내일 다시 오라고 하나이다. 나는 날이 더울 때에 발가락지가 물러지기로 푸락싸이 가지고 자주 씻었으나 한곳에 그것이 진물이 나서 종기되어 근모양이 든 고로 의원을 뵈었더니 포이즌이 들었다 하는지라 한 주일동안 치료하는데 아직도 다 낫지 않고 밤이면 더 쏘나이다. 의원비와 약값이 벌써 十五원 가량 되었소이다. 우스운 데 돈이 다 없어지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