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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자료

    콘텐츠/독립운동가 자료 [] 에 대한 전체 5845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421 林成基가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CAL ; 연도미상 6월12일)

    伏承 下書하오니 下懷 不覺 怳然이외다. 生은 狐疑的 書主이온지라 渡米后 主義 兩変之然이나 去國 當日에 正刻 二目標를 定하였삽기로 今日에 心志墜落을 僅免하였나이다. 生은 獨히 色眼鏡을 掛하였는지 現今 在米 靑年 中 其 成功할 者가 甚稀하와 百에 四五를 難尋이오니 此 安知 非秉乎잇가? 以生之聞眼으로 視컨대 吉元(길원), 鄭登燁(정등엽), 金寬儒(김관유), 尹必建(윤필건) 四氏는 神. 木. 文 等을 可見其終이오, 其餘에는 拾年之內에 難見其果일듯 하외다. 生은 肉眼으로 美國 政界 表裏를 到底히 觀察 看破키 難하온지라 此는 特別한 政治家 아닌 者 어찌 能하리까? 生은 自暴自棄하온지는 모르오나 樑椽이 各有其適인즉 生이 目眼으로 顧見 自己에 人格이 不堪馳奔 政界라 若 其 見成之業이 團不測之事면 亦非 狼狽耶있까? 北米 留學生 零星 與否 等事는 行政者의 不可不 注目處也로되, 生 一個에 有何大 關係잇까? 棋難取易는 生之心內事라 生은 安敢欺罔也잇까? 是誠可愧여니와 設或 旅美 拾載에 學得 圖畵止를 亦 不滿足에 奈何잇까? 此 不滿足 三字가 不 成功의 根源인지는 亦 不知로되 方今은 到底 難卞이오 支干語學하야는 不據他証하고 見 崔棟(최동)君 勝於中 學生 某某만 하야도 亦 可知 孰勝孰劣이라 在此 學語 恰如誦經牛耳而 待其自覺이라 難解其奧理 及 關係하며 不費 拾年 長年月이면 不可能이오니 一歎者也. 김규식, 신홍우, 李承晩(이승만), 尹丙求(윤병구) 閔贊鎬(민찬호), 鄭元明(정원명) 諸氏가 皆是 培材校 出身者이오, 其他는 不敢開口於西人之會席하니 此並例야라. 學語에도 此地가 非其適也니 此言이 誠可笑로되 亦非 尋常語인줄 自信하나이다. 醫學에는 德語(독일어)가 極緊하온즉 我那 靑年中 독일 留學生이 亦不貴乎잇가? 至於 信用上 關係하야는 學與 不學이 孰勝可하면 有口者必曰 學勝이라 日本留學과 設身 單野가 勝孰가하면 亦然 前答하리니 不必再言이옵고 許費巨額而 渡此 重詳은 曚昧目斷이니 誰怨誰仇리까 發는 前에 柳東悅(유동열)氏 渡米다가 納履回日하였고, 張應鎭(장응진), 柳東爵(유동작)氏等 前轍이 昭然하오니 北米를 何云 留學之地리까? 渡米而 成功者 誰인지 모르옵거니와 曲曲 一念이 去美去美하와 千百物色이 目不悅 萬般 音嚮이耳 不納하와 一刻三秋로 心內成灰하오니 此非 精神之耶変耶잇까. 生 軀甚弱하와 尤欲學醫하나이다. 今番이 最后 決戰이오니 度有擲筆執手연전 決無再度主義이로소이다. 生은 浮雲 空想이 或 登 靑雲하야 出將入相하고 出門車馬 如於族하고 道左에 觀者如諒이 非我之願乎아하며 或 提刀 躍馬하야 掃除 風塵 陷落 賊陣하야 各傳千秋 解振 當世라 非我之願乎내 하였사오나 現今은 唯 取見成之業하고 不做 不測之事하와 砍倒架空之賊하고 堅執 事實之中牛耳하나이다. 心內에 去美是良策이 라 하오니 如之何則可乎잇까.

    422 林成基가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다뉴바 ; 1915.7.16)

    伏承 下書 하오니 下懷 欣快之伏聞 醴●而 先生之 脫身 遠涼하오니 一爲 我 同胞 社會而賀하며 一爲 我 祖國 江山而抨합내다. 從此 以後로 北方 一隅는 先生之 剛毅敢果的 天性과 誠純正直的平段下에 統一思想之 圭角하며 確定 事業之 方向하야 蕩掃 文弱之 幣風하며 安頓先後之 秩序하야 亟亟 前進하겠사오니 生不勝 歡天喜地하와 不覺 大呌日天乎 祐我民族多矣

    423 姜永大가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CAL ; 1913. 10.16)

    昨日 書는想必入鑑일듯 昨夕 宋鍾翊氏便에 側聞즉 島山兄付托에 新渡三士之請邀事를 如是如是云하오니 羅城會員之請邀一事는 是不過表面上礼式이오, 究其內况眞情則使彼三士로 或居羅城一事而已라. 夫三士之 或茲가 一則勞働上關係은 一則團躰上關係也?於此於彼間에 三士之或을 書亦切願이오. 又는 我團設備與實務에 對하여서도 苟得才德?人이면 如弟軰는 徉在背彼하여 贊之成之나 하였으면 豈悲痛決處乎이까? 故로 弟亦此事를 力贊이오. 至若他人하여도 [韓人之有事는 收錢事]라는 異論이 決無할터이나 此事周旋하는 方針을 좀 달리하였으면 何如乎이까? 該三氏가 請邀를 被키 前에 兄丈께서 李大爲氏에게 미리 말씀하시되一은 羅城兄弟가 三士를 一見無憾云이라 하시며 又는 羅城同胞가 三士를 礼式請邀뿐 아니라 三士가 羅城에 或居하기까지 願한다 하시며 又는 勞働形便도 羅가 幸보다 勝하다고 說明하시기를 바랍니다.如此히 하게 되면 李氏가 躰面上으로라도 萬無不表同之理인데 萬若表面은 首肯하면서도 中心이 不悅하게 되면 曲在李兄이라 李兄이 三人의 執照稠査人이 아닌 以上에 어찌 兩足其人의 洞庭來徃을 關念할 權이 有하다 하리오.又弟가 當初 仁兄의 易之한 處事를 마다고 難之한 境愚를 處하자 함은 無他라. 第一은 羅城會에 三士淸邀事로 總會長에게 請願하더라도 李亦非愚人이라 初指之一屈에 "옳지 데려가려는구나" 再指之一屈에 "옳지 某團機關設備로 데려가려는구나" 三指之一屈에 "옳지 此事는 某氏之週旋이로군" 할터인즉 不如使李兄으로 先知該事情이라 하노이다.又는 以若???所見에는 於千萬事에 踐之行之를 浮碧樓가 大同江上에 在한 것같이 하기를 願하는 까닭이다.弟가 今日에 다시 YMEA에 가서 책을 달라 한 즉 一冊子를 주는데 此는 章程冊이 아니오, 靑年會歷史也라. 歷史內에 如干章程이 有하오나 此가 無用之 보인 故로 夬章程冊을 달라한 즉 答이 章程이 别로 成冊한 것이 無하고 四部로 分하였는데 一은 傳道部 二는 敎育部, 三은 勞働部, 四는 무슨 部인데 每部에 各其自己의 章程을 用하는데 成文者가 不過幾条인데 成文보담 不文成風者가 多하다.(弟가 伊徃兄丈의 團風問題를 想出)하며 又月此等法文이 居韓人에게 不合者多할 것임에 萬若事實을 잘 일러주면 自己가 成文助力하여주마(到此聞에 弟之全關心中自語日有餘於誠而不足於智라 하였오이다.) 弟가 對答하기를 後日相遇면 更有談話하리다 하고 辭歸하였는데 以上은 該靑年會鑑督之言也라. 弟之又一欽佩不已는 彼兩人之愛人敬待也와 爲人謀而盡忠一事也라. 어니 Office를 가던지 上賓의 禮로 待遇하면서 一言之發에 常之動容稱善하니 (到此에 伊往兄丈의 我韓兄弟는 冷情動物云을 想出) 大抵 지여 먹고야 누가 그렇게 하리오? 又一自覺은 向者에 我韓人中英語者之自稱外交熟乎云者를 可知也로다. 此等人을 交際하는데야 苟川之無骨虫이면 熟不得同情이리오. 弟는 近日에 머리가 좀 아픕니다. 此가 杜門不外한 結果인지 잠자지 못한 結果인지 모르거니와 此亦身體康健時만 못하외다.這間에 卒團的?에 一字를 記錄 못하였나이다. 執筆欲思則雙斧가 下頭하는 것 같소이다. 鄭仁男氏之人團에 弟雖不知其人이나 間接 兄丈의 말씀과 같을진댄 我團의 幸福이외다. 近日自同胞界로 自討論會로 弟의 杜門不外하는데 對하여 贊者問者가 紛至畓或하니 彼意는 此人이 不傷心이면 必無熱誠云일터이나 我韓兄弟가 아직까지 實際上處事에 夢然하여 此等言을 發함이라. 出外搔風하며 與人談笑야 熟不能之리오. 我가 在房晝寢을 아니하거든 彼兄弟가 胡爲乎疑哉오.已上은 皆聞談이외다.

    424 이석천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북미 ; 연도미상 6월 28일)

    제식하옵고 저간 안녕 하시온지 알고져 엿보는 중 우리 몇 사람은 아직까지 아무 연고 없삽나이다. 취백 다름 아니라 우리의 농장은 지 거판할 경우가 당하였으니 이일을 어찌 할 런지 하늘이 캄캄하여지고 성이 아득하내다. 까닭은 다른 것 아니고 금번 감자 시종을 밭에 주어서 심었더니 돌감자가 되었든지 감자씨종이 늙어서 그랬든지 보기에는 잘 되였는데 알이 도무지 없으니 이것을 어찌하며 또 올 감자는 한 천여원을 사겠으나 절반은 주인이 가져가니 일군의 월급 줄 것이 당장 一千 四百 元이라 올 감자 캐어서는 주지 못하나 늦감자라도 바로 되였으면 하겠지 만은 늦감자 다 틀렸으니 이 일을 어찌하며 당장에 거판을 하잔 즉 땅 주인은 쇠줄과 말과 연장으로 주던지 하려니와 서양인의 쌀값 二百元과 말 값 三百 九十 元과 셋 말 값 一百 二十 元을 줘야 할 터인데 그중 한인의 월급 一千 四百 元을 줘야 하게는 되겠지 하며, 만일 거판한다는 말이 한인에게 들리면 거판도 못하고 큰일만 나서 오도 가도 못하고 우리 몇 사람은 감옥소에서 잠자게 되겠으니 어찌 하리오. 김기만씨가 금일에 타운에 와서 저와 만나서 울기도 하고 걱정도 하다가 할 수 없이 농장으로 들어가는데 우리도 사람의 걱정하고 한탄을 하는 것은 한인은 농사에는 다시 착수 못할 것과 또한 우리 몇 사람들의 장래 형편을 살펴본 즉 답답할 뿐 중 할 수 있는 대로 붙잡아 금년 종당을 보아야 할 터인데 시재 돈 천이나 있으면 감자 씨를 사다가 심으는 대로 더 심으고 그 여재는 묵히드래도 우리의 훗길은 막힐것이 없을 듯하나, 돈을 어데서 구할까 오린수씨 형님은 식음을 전폐하고 지금으로 거판하는것이 좋다 하나 거판할 수가 없소이다. 하여간 의논할데 없어 지금 막막한 중에 이와 같이 몇 자로 알게 하오니 생각하시와 의향을 알게 하시옵소서. 아직까지는 우리 보수 몇 사람만이 알고 있사옵내다. 감자 겉으로 보면 제일 잘되었으나 속이 없는 것은 모르고 일군들은 잘되었다고만 합내다. 아무런지 이일은 혼자나 알고 계시며, 또한 방책을 좀 말하시오. 우리 몇 사람은 정신이 있는 듯 만 듯 하내다. 매우 답답 중 이내다.

    425 安昌浩가 文讓穆에게 보낸 서신(191?.2.12)

    阻懷가 山積하고 離情이 水深하여 雲去雲來에 馳想脛耿하더니 玆後에 德翰이 涉瀁院涯하니 寵德殊異에 成荷從深하외다 春暄이 如璋한 此時에 兄候時旺하오며 寶禫이 竝禧하심을 參祝하옵니다. 病弟는 一週間 治療後에 身恙이 少愈하여 現在 클리몬트學生養成所 閒養中이오니 以次 惠諒하시옵고 또 第 自命令來汝之敎는 雖不忘却이오나 間以賤流律住하여 有誠未遂이더니 今則可以動一身而 命令現狀이 未知 如何하여 先此遠問하니 總會內情을 或可得問耶잇가 弟之一行이 果有功效我大韓人國民會則已어니와 弟之此去가 徒勞而無效 則事必不濟하고 傷情則多矣되니故로 弟는 見有玉成之機 然後에 赴招爲計也라 奉加 惠諒하시고 從速賜答을 翹企翹企 하옵니다 弟之此書는 命令現時情況에 弟之看涉이 或恐有損故也니 深加諒存 하시옵소서. 餘在續後하는故 草不如秘

    426 클래어몬트 학생일동(學生一同)이 안창호(安昌浩)에게 보낸 서신(클래어몬트;연도미상10월7일)

    제식경달자(除式敬達者). 본교생일동(本校生一同)이 본월(本月) 십삼일(十三日)에는 서인연회(西人宴會)를 개(開)하옵고, 십사일(十四日)에는 한인연회(韓人宴會)를 개(開)하오니, 해양일전(該兩日前)으로 부디부디 왕림(枉臨)하심을 천만(千萬).10월 7일 클래어몬트 학생일동(學生一同)안창호(安昌浩) 씨(氏) 각하(閣下)먼저 회시(回示)하심을 절요(切要)

    427 鄭英道(남수)가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필라델피아에서 피스벅으로 향하는 차내 ; 연도미상 8월 3일)

    今日은 八月 三日이오. 先生을 뵈온 지는 一朔間이 되는 日이외다. 只今 필라델피아에서 피츠벅으로 향하는 급행車中에서 선생님을 生覺하다 뵙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하여, 차의 흔들리는 형편은 글을 쓸 수가 없지만 두어 말을 드려서, 같이 뵙고 싶은 감상을 위로코자 하나이다. 先生님 지금은 어디 계시며 몸이 어떠하신지요? J·F는 Longlas Nuiso(?) 단녀 지금 Pisburge(피스벅)를 向하는 바이라. 二日後는 Oico(?)로 가서 三日後는 LA(로스앤젤레스)로 가겠소이다. 몸이 평안하올시다. 八月에 遠東을 ●야 떠나시고 아니 가심을 알게 ●사되

    428 白一圭가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샌프란시스코 ; 연도미상 6월 15일)

    試함이 目今에는 不得已한 事勢오니 私行을 作하시되 安敎漸(안교점)氏 先生님이 請渡하시는 것으로 하였으면 어떠할는지오. 渡去하시기 곧 하면 表面은 私行인 듯 하나 內容上 所圖는 如意하리니 何關이오리까. 且 布 當局 諸君의 書信 上 意見으로 見하건대 伊今까지 朴氏의 處事에 對하야 少許의 歸怨이 無히 用足히 思維함이 明確하오니 當此 伊時하야 請人의 必要가 無하다는 推想이 刻印되었으니 此는 金 不饒의 歎이 有할지언정 人 不足의 缺이 無하다 함이라 然함으로 私行이라도 一次 試할 수 밖에 없다는 少弟의 愚見이외다.團友 河相玉(하상옥)氏의 新人 禹淑子(우숙자)는 該 父親으로 더불어 十二日 入港한 麗船으로 渡來하야 方囚 移局이오대 明再明間 得陸일 듯하오며 此外亦 學生 渡來인바 尙今 險査를 未經하였으나 現 必 得陸이올 듯.河君은 斯速히 婚禮를 行할 모양이온데 또 捐金을 거두어 보내라고 文字를 돌리기가 참 창피하온데 이를 어찌할까요? 弟는 아무리 公式 上 處務지만은 實로 어렵습니다. 收金의 發文이 畓至하옴이 當事者의 極難事오며, 又는 우리 團友가 擧皆 不饒한 處地라 可意할 바 아니지오 좀 指明하야 주시옵소서. 참 속상합니다. 續次 未書

    429 吳林河가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북미 ; 연도미상 8월 7일)

    今番 旅行하시는 中에 別故없이 잘 지내신다 하오니 듣기에 얼마나 즐거운지 測量할 수 없습니다. 저 멀리에서 부쳐온 一片에 不幸한 消息으로 先生님의 맘을 甚히 괴롭게 하였을 줄로 確信이올시다. 우리 부여족에 한 슬픈 消息이 되였나이다. 참으로 아픔 올세다. 先生님! 아무쪼록 自慰 하시옵서 뒤로 오는 靑年들로 慰勞를 받으시옵소서.上達코져 하옵는 것은 小生이 本月 二十日 頃에 때는 바로 葡萄를 따러 가겠나이다. 先生님께서 朴君을 彼處로 같이 오시기를 願이올시다. 若 朴君이 때는 바로 오기를 願하오면 다시 上達코져 하옵는 것은 如左하올세다.向者에 우리 新韓民報에 記載된바를 依하여 尹炳奎(윤병규)氏의 番地 及 該氏게서 多方面으로 學生들을 引導한다 한 것을 先生님께서 仔細히 탐문하시와 좀 알게 하여 주실 수 있겠습니까? 時間이 계신대로 하여 주시옵소서. 그만 上達 이옵나이다.

    430 임성기가 임준기에게 보낸 편지

    8월 1일萬里의 山海를 隔하와 恒常 뵈옵고 십흔 마음 간절하오나 如意치 못하오니 下懷伏 이올세다.三從弟가 此地에 來到한 后 三度河邊으로 上書하와도 回示가 업삽기로 今番에는 良處로 하오니 無漏下覽하시는지오 謹未審辰下 氣體候萬康하옵신지오 三從弟는 全家 此地에 搬移하엿습다가 今日에 弟는 渡美次 出發하와 直히 海參威로부터 곳 유럽 諸地를 經하야 뉴욕에 到着할 터이오니 兄님께서는 速히 國民會에 紹시하사 移民局에 擔保케 하심 바라옵고 蔥蔥하와 이뿐 上途이 이올세다. 餘不備上.八月 一日 三從弟 (임)成基 拜上(麟字 改)林俊基 閣下 至急至急臨發途上 三從弟 (임)成基 上 8月 1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