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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우회사건 미체포자에 관한 건[京鍾警高秘 제15066호의4](1937.12.13) |
본적 평안남도 강서군 강서면 덕흥리주소 진남포부 이하 상세하지 않음목사 박선제(朴璇齊)당 53세위 자는 이번 본 서에서 검거된 동우회사건의 중요분자임이 판정되었으며 "진남포경찰서(귀서)에서는 상기인 및 아래의 자에 대하여 엄중주택수색을 하고 상기인의 신병을 압송한다."위와 같이 보고(요청)한다기록1. 김기만(金基萬), 김순민(金淳民), 한병선(韓秉善) 3명 및 기타 동우회관계자로 인정되는 자에 대하여 주택수색을 할 것.2. 수색에 대하여서는 만약 흥사단, 수양동맹회, 동우구락부, 수양동우회, 동우회 등과 관련된 문서인 이상, 엽서 한 장이라 할지라도 빠뜨리지 말고 압수 송부하게 할 것.추가하여, 동우회사건의 검거에 관하여서는 신문기사 게재를 금지하는 동시에 관계자 수 십 명을 검거하고 그 중 중요한 자 안창호(安昌浩) 이하 33명은 기소예심 회부 중이며, 이미 다수의 증거품을 압수한다고 할지라도 증거를 밝히는 일을 완전히 거부하는 것은 공판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나아가 조선민족운동 타도에도 중대한 영향을 가지므로, 본건 주택 수색은 사건의 중대성에 감안하여 면밀히 신중을 기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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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우회사건 미체포자에 관한 건[京鍾警高秘 제15066호의7](1937.12.15) |
본적 평안북도 운산군 북진면 진도(鎭洞) 119주소 평안북도 운산군 북진면 진도(鎭洞) 119상민(常民) 광업(鑛業) 오경식(吳璟植) 당 45세위 자는 동우회사건 미체포자로서 소속 북진(귀)서에서 소환장 교부를 요청 중인 지난 14일 출두하었으며 취조의 형편상 일단 신병을 구속, 취조 중이다.위와 같이 보고(통보)함추가하여 상기인은 동 지방 관계자 채우병(蔡祐炳)을 소환, 취조한 결과 이를 석방할 예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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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우회관계자 제3차 검거에 관한 건[京高特秘 제5430호의1](1937||12.15)" |
12월 8일부 경고특비 제5430호에 대하여상기 제목 관련하여 대호기보(對號旣報)에서 보고한 후의 검거 상황은 아래와 같다.이상과 같이 보고 한다기록;본적,주소;족적(族籍);직업;성명,연령;비고;;평양부 염점리132의 1, 평양부 염점리132의 1;상민; ;진경선(陳敬善), 당 32세; 12월12일 소환에 응하여 종로서에 출두하였으며 불구속취조를 한다.;;평남대동(大同)군 추이미(秋二美)면 법수(法水)리, 평양부 상서리 271;상민;;번초 판매상;고형찬(高桁燦),당 50세;위와 같음;;평안북도선천군 선천읍 천남동 417,평양부 신양리(新陽里) 176;상민외인학교 교사;황희찬(黃熙燦),당 35세;위와 같음;;평양부 관복(館復)리 206,평양부 상서리 277;상민;피혁상;맹관호(孟觀浩),당 44세;위와 같음;;평양부염점리 79의 17,평양부채관리(釵貫里) 23;상민;투기업;백응현(白應賢),당 48세;12월 12일 평양서로부터 신병을 받아 구속취조 중;;황해도 안악군 안악면 소천리(小川里); ; ;상민;김용장(金庸壯),당 42세; 김선량(金善亮)의 취조에 의하여 사건의 주요 관계자인 것으로 판정, 안악서에 신병 체포 압송하기를 요청;평안남도 강서군 강서면 덕흥리,진남포부 이하 상세하지 않음.; ;목사;박선제(朴璇齊);당 53세;김선량(金善亮)의 취조에 의하여 사건의 주요 관계자인 것으로 판정,진남포서에 신병을 체포, 압송하기로 요청발송 주소보안과장 보안과 사무관사카이(酒井), 나가사키(長崎) 두 검사황국 신민으로서의 각오-민족주의사상을 청산하자-이종수(李鍾洙)(1) 제가 어떻게 되여 민족주의 사상에 물들었으며 또 그 불가능성을 어떻게 깨달았는지, 그 사이에 있었던 저의 사상적 변화를 기록하면서 자신을 반성하고 동시에 지금의 심경 및 각오를 서술하려고 합니다.제가 조선을 인식한 것은 만세소란(萬歲騷擾)이 있은 후부터 입니다. 제가 공립고등 보통학교에 입학하였을 때에 만세소란(萬歲騷擾)이 일어났습니다.처음에는 그 소란을 무슨 일인가하고 의심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선의 목표가 독립국이었다고 하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 것입니다. 그 당시는 민족사상이 유행하였던 시대로서, 당시 조선인 학생의 대부분이 그러하였듯이 저도 조선이 자립했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란의 동요가 진정됨에 따라서 이런 흥분도 저에게서 지워졌습니다. 저는 학과에 몰두하여 사상방면에는 별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던 학생이었습니다.경성제대예과(京城帝大豫科) 문과에 입학한 후부터 문학을 좋아했던 저는, 당시 소설가로 알려져 있었던 이광수(李光洙)를 방문하여 문학의 이야기를 듣는 중에, 그의 민족개조론- 조선인은 허위, 나태 그밖에 민족적 인격적 결함이 많으며 조선민족이 잘 되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러한 성질적 결함을 개조하고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이 말이 맞다고 생각하고 조선인이 잘 되기 위하여서는 덕(德), 체(體), 지(智) 3육(育)을 수양하여 먼저 인격적인 인간이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수양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에 수양동우회가 있다는 것을 듣고 거기에 가입하였습니다. 제가 이 회(會)에 입회한 것은 제 자신의 수양을 위하여서였지만 들어가 보니 이 회에 가입했다고 하여 수양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후 흥미를 잃어 누구에게도 입회를 권유하지 않았습니다.또한 이를 탈퇴하려고도 생각했지만 이 회는 합법적이고 위험한 단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탈퇴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그러나 지금 냉정하게 자신을 반성해 보면 그것이 합법적이라고는 하나 민족주의단체로 불리는 단체에 들어가 있었던 것은 저의 중대한 잘못으로 후회해 마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자신을 비판해야만 하는 것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선이 잘 된다면′이라는 생각과 ′조선이 자립한다면′이라는 망상을 완전히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며, 생각해보면 국민으로서의 본분을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2) ′조선이 자립한다면′이라는 막연한 욕망을 저는 잠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얕은 공상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조선의 자립이 불가능한 것은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망상을 완전히 청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조선을 내지(內地, 일본)와 대립하여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가지고 있었던 민족사상의 내용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제가 이런 생각을 왜 가지게 되었는지를 조용히 생각해 보면, 만세소란(萬歲騷擾) 당시 받았던 기분과 흥분이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기분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지금 일부 조선인의 민족의식이 변화하는 과정을 일반적으로 보자면, 조선의 자립을 공상했던 자는 그것이 절대로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이런 공상은 희박하게 되어 점점 없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조선인이라는 민족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선(內鮮, 일본과 조선) 융화를 하려는 적극적 의욕이 나지 않는 것이빈다. 그러면 통치에 반대하는 일 없이 유독 현실생활에 끌려 정치적 방면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실생활에만 몰두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던 사람도 그런 행동에서는 큰 차이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그러면 조선의 현실생활은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가? 말할 나위도 없이 조선은 일한합병 후 교육, 산업, 문화 등 각 방면에서 장족의 진보를 이루고 조선인은 총독통치 아래 20세기 문명의 혜택을 받고 있으며, 대일본제국은 일등국으로 정치, 경제,문화 등 모든 면에서 국위(國威)를 세계에 빛내며 일본민족의 우수함을 현실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이런 엄연한 사실은 조선인의 사고방식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고, 점차 조선인은 내선일체가 필연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특히 만주사변으로 인해 조선인은 그 민족적 관념에 크나큰 전환이 있었으며, 일본은 동양인을 위하여 동양평화의 낙토를 건설하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내선은 일체로 되어 여기에 맞추어야만 된다는 것을 깨닫고, 조선인도 일본국민이라는 국민적 자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적어도 저는 이런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 시절에 가지고 있었던 민족적 기분은 위에 진술하였던 현실의 발전, 거기에 제자신의 생활-고등교육을 무사히 마치고 실생활에 들어가서는 일정한 직업과 가정을 가지고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던 사실-은 나이를 먹음에 따라 이성이 감정적으로 움직이고 사물을 실질적으로 보게 될 수 있음에 따라 민족적 기분은 점차 자연소멸의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일본이 동양 평화를 현실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그러한 사실이 작용하여 자연히 그렇게 되였던 것이고 제가 의식적으로 민족적 기분을 완전히 청산하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국민적 자각을 가지게 되고 의식적으로 내선융화(內鮮融和)를 생각하게 된 것 역시 만주사변의 현실적 교훈을 계기로 그렇게 되었던 것입니다(3) 이상과 같이, 저는 제가 가지고 있었던 민족사상의 변화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아 왔던 것이었나 이는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가(不可)합니다. 내선이 융화하고 일체로 되는 것이 진정한 내선을 위하여서 뿐만 아니라 동양 평화를 위하여서도 필요하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깨닫기 시작했지만 저는 일시적으로 이에 대한 명확한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니고 점차 이런 신념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즉 때로 친구와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그 자리에서만 그것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활에서 행복을 느낄 때 등, 이와 관련하여 현 정치의 어려움을 생각하고 , 일본인(內地人)과 교제하고 있는 사이에 그 장단점을 조선인과 비교하여 보는 등,두 민족의 일을 생각하는 식으로 그 때 그 때 맞추어 이를 단편적으로 생각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금 그 단편적으로 생각하였던 사실을 종합하면서 제가 어떻게 하여 내선일체의 필요를 깨닫고 국민적 자각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진술하고 저의 과거의 잘못을 청산하려고 생각합니다.첫째로, 저는 조선민족이라는 말에 환상을 가지고 그것을 현실적으로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민족사상을 가진 자는 민족이라는 관념에 미혹되어 그 관념이 그늘을 이루고 현실을 간과한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조선의 현실은 전에 진술하였던 대로 합병 후 문화, 교육, 산업 등 모든 방면에서 현저한 진보를 이루고 조선인은 지금 일본국민으로서 행복한 생활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도(半島)교육의 향상에 따라 조선인은 제국신민으로서의 능력과 품성을 키우면서 내선일체가 되어 동양평화 확보를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이런 현실과 대세를 무시하여 조선민족이라는 관념만 고집하고 있는 것은 어리석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선민족도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고 각 종족이 합하여 만들어 졌던 것입니다. 내선인이 일체가 되여 혼연 일체가 되는 것은 조금도 부자연한 것이 아니며 당연한 것입니다. 특히 내선은 수 천년 전부터 역사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혈족혼화(血族混和)를 이루고 있었던 것은 역사가가 증명한 바입니다.내선이 예로부터 역사적, 지리적,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지금 일체로 되어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나, 이런 관계가 생긴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될 실제적 필요에서 필연적으로 된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가령 조선이 일본의 보호를 받지 않고 병합되지 않았다면, 현재 조선인의 생활은 어떻게 되었을 지 모릅니다. 안으로는 폭정주구(暴政註求)와 무지와 불안한 생활이 있고 밖으로는 외국의 침략이 있었을 것을 상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만약 조선인이 그 민족적 성격과 내지인의 성격을 합하여 생각하면, 그리고 내선융화(內鮮融和)를 하여 일체로 되려는 합병의 정신을 생각해 낸다면, 일시동인(一視同仁)의 큰 은혜를 받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고맙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우리는 반드시 국민적 자각과 애국심을 가지고 국민적 의무를 다하도록 해야만 합니다.저는 전술(前述)한 바와 같이 무슨 적극적인 민족사상을 가지고 있는 자는 아니나,기분에 젖어 사물을 실제적으로 생각하는 사고가 부족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진술하였던 바와 같은 명백한 사리를 의식적으로 깨닫지 못하고 민족주의 단체로 불리는 수양동우회에 가입하여 국가 비상시기에 국가에 폐를 끼치게 된 것이 매우 죄송할 따름입니다.이 기회에 저는 생각이 부족했기 때문에 가졌던 민족사상을 의식적으로 일소함과 동시에, 내선이 융화되어 일체로 되는 것이 우리의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통감하고 있습니다.지금 우리나라는 비상시국에 임해 있고 제국은 동양인을 위하여 동양평화를 위하여 아직 각성하지 않은 중국 응징의 대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황군은 나라를 위하여 제 일선에 서서 국위를 빛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제 일선에는 서지 못할지라도 국민이 일치할 수 있도록 마지막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저는 굳은 결심과 신념을 가지고 황국을 위하여 힘을 다할 것을 각오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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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우회사건 처분에 관한 건[京鍾警高秘 제15066호의6](1937.12.14) |
상기 제목의 건에 관하여 이번 달 10일에 선고(宣高) 제 5295호를 통하여 선천경찰서장(귀관)으로부터 동우회 사건 관계자 백영엽(白永燁)에 대한 목사의 사표 제출 의뢰를 받았다. 백영엽(白永燁)은 지난 달 11월 경성지방법원 검사정(귀관)으로부터 기소처분 있을 예정으로 해당 서(署)에서는 위 자에 대하여 시달(示達)할 것이다.위와 같이 보고(통보)한다.추가하여 선천경찰서장의 통보를 별지와 같이 첨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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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修養同友會事件 처분에 관한 건[宣高 제5295호](1937.12||10)" |
상기 제목 건에 관하여 이번 해 6월에 귀서(貴署)에서 검거된 자 중에 신성학교(信聖學校) 교장 장리욱(張利郁), 보성학교(寶聖學校) 교원 박창준(朴昌俊), 동(東)교회 목사 김진수(金珍洙) 등은 무엇이나 귀서의 지시에 따르고 사표를 제출한 데 관하여는 이미 보고한 대로 입니다. 북(北)교회 목사 백영엽(白永燁)만은 지금 아직 제출하지 않고 교회 측에서도 가능하면 속히 사직시키려고 하는데 해직(解職)은 교회 단독의 의지로써 할 수 없으며 평북(平北) 노회(老會)에서 의결하여야 하는 등 수속이 복잡하므로 급히 본인의 사표를 제출하여 송부하여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이상, 조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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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우회사건 관계자 일부 석방의 건[京鍾警高秘 제15066호의10](1937.12.22) |
본적: 평안남도 강서군 동진면 고일리(平安南道江西郡東津面古逸里)주소: 위와 같음양반 점진학교(漸進學校) 교사안맥결(安麥結), 안맥길(安麥吉)37세본적: 황해도 봉산군 만천면 유정리(黃海道鳳山郡萬泉面楡亭里)주소: 평양부 창전리 48(平壤府倉田里四八)상민, 무직, 이선행(李善行)40세위 자는 동우회 사건관계자로 취조 중이며, 이미 보고한 점을 취조한 결과, 안맥결(安麥結)은 대정(大正) 15년 겨울 남경(南京)에서 흥사단에 가입하고 조선에 귀국한 후, 소화(昭和) 3년 3월 수양 동우회에 가입하였다. 이선행(李善行)은 소화(昭和) 3년 여름 미국 ′뉴욕′에서 흥사단에 가입하였으며 조선에 귀국한 후 소화(昭和) 7년 8월부터 동우회에 가입하여 계속하여 운동 중이었다. 안맥결(安麥結)은 임신 중이며, 이선행(李善行)은 대수술을 필요로 하는 부인병으로 당분간 체형(體刑)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또한 결사(結社)의 목적 등에 대하여 자발적으로 [이선행(李善行)은 임의 출두] 자술하는 등 개선의 낌새가 보인다.또한 안맥결(安麥結)의 남편 김봉성(金鳳成), 이선행(李善行)의 남편 최윤호(崔允鎬)는 본 건에 따라 전자가 해당 서(署)에서 취조 중이고 후자는 예심 중인데, 이 두 사람을 엄벌하여 어느정도 제재(制裁)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인정하여 경성(京城) 지방법원 검사정(檢事正)(귀관)의 지휘를 받들어 일단 석방한다. 후일 기소유예의 의견에 따르고 우선 서류만 송부할 예정이며, 석방할 때 임의로 아래 사항을 서약한다. 이의 실행상황에 관하여는 각 관할서에서 시찰한다.이상, 보고(통보)한다.기록서약사항1. 공범자에 대하여 죄증인멸(罪證湮滅)을 하지 말 것.2. 조선독립운동을 한 동우회 사건 피의자, 피고인 등을 직, 간접적으로 구제하거나 동적적(同情的)으로 대하지 않으면 장래의 ●죄(●罪)를 조장, 장려하게 되므로남편에 대한 차입(差入) 외에 일체 간여(干與)하지 말 것.3. 안맥길(安麥吉)은 속히 교원을 사직하고 근신의 뜻을 표할 것.추가: 이선행(李善行)은 병 때문에 일시 경성(京城)에 체재할 것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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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우회관계자의 교직사임에 관한 건[京鍾警高秘 제41회](1938.1.6) |
본적: 평안남도 강서군 동진면 고일리(平安南道江西郡東津面古逸里)주소: 위와 같음양반, 점진학교(漸進學校) 교사(초등학교)안맥결(安麥結), 안맥길(安麥吉)위 자는 흥사단 및 동우회 관계자로서, 지난해 11월 9일부터 검거 취조 후 같은 해 12월 21일 일단 석방한 것은 이미 보고하였으며, 같은 달 29일 점진학교(漸進學校) 교사를 사임하겠다는 취지를 동교 교장 김상현(金相鉉)에게 별지[검사정(檢事正) 앞]에 쓴 대로 통보하였다.이상, 보고(통보)한다.증명서:본교 교원 안맥결(安麥結)선생님은 교원의 직무를 해직하였음을 증명한다.소화(昭和) 12년 12월 29일평남강서군 동진면(平南江西郡東津面)사립 점진학교 교장 김상현(金相鉉)경성부(京城府) 종로 경찰서 고등계(高等係) 귀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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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우회 會歌발견에 관한 건 [京鍾警高秘 제41호의 2] (1938. 1. 8) |
동우회가 조선독립혁명을 목적으로 결사되었다는 것은 경성(京城), 평양(平壤), 선천(宣川) 등의 관계자 취조에 의하여 이미 명료하게 밝혀졌다. 기타 지방 회원의 의식 정도와 명료함의 여부를 알기 위해 연말부터 안악(安岳), 진남포(鎭南浦), 영변(寧邊) 등의 각 관계자에 대하여 피의자의 동행, 가택수색 등을 부탁한 결과, 안악(安岳)의 회원 김선량(金善亮)으로부터 유력한 증거품 다수를 발견하였다는 것은 이미 보고하였다. 이번 예심 중 피고 장리욱(張利郁)의 후배인 평북운산군북●면대암동(平北雲山郡北●面大岩洞) 동양합동 광업회사 외광(外鑛) 사무실에 근무하는 오경식(吳璟植)씨로부터 ′펜서′(ペン書)의 동우회 규약 말미에 동우회가(同友會歌)를 부기하였음을 발견, 압수하였다. 그 회가(會歌)는 별지와 같으며 내용 중에 "몸과 마음 전부를 나라에 바치도록 한다."고 적혀있고, 조선의 건설을 진행할 것을 명시하는 혁명적인 내용이다. 이 회가(會歌)는 이광수(李光洙)의 작품으로서 이광수(李光洙), 장리욱(張利郁) 두 명을 통하여 오경식(吳璟植)에게 전달된 것 같다. 상세한 취조에 대하여 위와 같이 보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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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우회사건 기소유예자의 통신에 관한 건[平南高秘 제17026호](1937.12.8) |
11월 27일 경고특비(京高特秘) 제5345호본적: 평안남도●●군●●면●산리432(平安南道●●郡●●面●山里 四三二)거주: 평양부 염점리 112 (平壤部 鹽店里一一二)변호사: 노진●(盧鎭●)당 38세위 자는 동우회 사건 평양관계자로서 경기도(京畿道)에 검거되었다. 검거된 이래 지난 잘못을 뉘우치고 개전(改悛)이 보이므로 기소유예의 은전을 베풀고 석방, 귀가 조치 후 바로 관내 평양서(平壤署)를 방문하여 "귀중한 경험을 얻어 미몽에서 깨어났다."고 말하였다. 그 후 경찰이 수색 중인 동 사건관계자 김광신(金光信), 백응현(白應賢) 등의 가족에 대하여 "도피하는 것은 도움이 안되며 과거를 완전히 청산하고 시국을 인식하여 대동아주의(大東亞主義)에 공명하는 것은 우리로서도 당연한 일이며 빨리 출두취조를 받는 것이 유리하다."고 자발적으로 설득하였다. 그 외, 오봉선(吳鳳善) 등에 대하여도 "다시 생각하여야 할 때가 왔음을 통감한다."고 솔직하게 심경을 털어놓은 사실이 있는 등 개전(改悛)이 보인다. 각 관변(官邊)및 주위에서 자기의 전향이 확실하게 인정받을 때까지 변호사를 다시 개업할 생각을 갖도록 한다. 사정에 따라 내년 봄부터 가능한 범위에서 사실 방면에 거래를 넓힐지도 모르나, 겨울 기간에는 조용히 근신하고 보양에 힘쓸 것이다. 현재 사교방면에도 힘쓰고 소극적이지 않아 본 지방 민족운동의 정화 및 시정에 기여하고 있다.이상과 같이 보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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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우회사건 제3차 검거에 관한 건[京高特秘 제5430회](1937.12.8) |
이번 관하(管下) 종로(鍾路)경찰서에서 검거하여 국(局)으로 보낸 흥사단(興士團) 동우회 사건의 기소중지 처분자 중, 조선 내 현재 거주하는 자에 대하여는 경성지방 법원 검사정(檢事正) 귀관(貴官)의 지휘를 받는다. 그리고, 그 사범의 경중에 따라 직접 체포, 구인, 부탁 소환장(召喚狀) 등의 방법에 의하여 제 3차 검거에 착수하고 현재 7명의 신병을 구속 취조 중인데 상황은 별지 그대로이다.위와 같이 대략 보고한다.발송처경무국장, 보안과장, 경무과장, 도서과장, 보안과 사무관동우회 제3차 검거자 표;본적,주소;족적(族籍);직업;성명,연령;비고;;평남강서군동진면고일리(平南江西郡東津面古逸里),위와 같음;양반;사립점진학교(漸進學校) 교사;안맥결(安麥結),안맥길(安麥吉),37세;11월 9일 평남강서경찰서로부터 신병 수령 구속 중;;평남강서군동진면고일리(平南江西郡東津面古逸里),위와 같음;상민;위와 같음;김봉성(金鳳成),김봉성(金鳳性),38세;위와 같음;;평남강서군초리면포리323(平南江西郡草里面浦里三二三),함흥부대화정4의 67(咸興府大和町四ノ六七);상민;회사원;조종완(趙鍾完),47세,11월 12일 함남함흥(咸南咸興)경찰서로부터 신병 수령 구속 중;;함북경흥군웅기읍웅상동516(咸北慶興郡雄基邑雄尙洞五一 六),부산부좌천정769(釜山府左川町七六九);양반;목사;송창근(宋昌根),40세;11월 13일 경남북(慶南北) 부산 경찰서로부터 신병 수령 구속 중;;황해도안악군안악면훈련리338(黃海道安岳郡安岳面訓鍊里三三八),남암리215(南岩里二一五);상민;지주;김선량(金善亮) 39세;11월 26일 황해도 안악 경찰서로부터 신병 수령 구속 중;;황해도봉산군갈천면유정리(黃海道鳳山郡葛泉面揄亭里),평양부창전리48(平壤府倉田里四八);상민;무직;(여)이선행(李善行),40세;11월 28일 종로경찰서에 자수, 신병구속 중;;평양부기림리(平壤府箕林里),위와 같음; ;숭실상업학교(崇實商業學校) 교장;김항복(金恒福),40세;12월 4일 평양서로부터 신병 수령 구속 중;;평북선천군신부면승지동283(平北宣川郡新府面承旨洞二八三),선천읍천남동175(宣川邑川南洞一七五);상민;목사;김진수(金珍洙),37년;종로서의 소환장(召喚壯)에 의하여 11월 29일 출두함으로써 일단 검속, 취조하여 범죄를 자발적으로 자술하고 목사를 사퇴하는 뜻을 주장하는 등 개전(改悛)이 현저(顯著)하므로 12월 1일 석방한다.또 위 자의 아내 조성은(趙聖恩)도 흥사단원지만 12월 1일에 출산하여 당분간 출두 예정이 없다.;;평북선천읍천남동335(平北宣川邑川南洞三三五),위와 같음;상민;농업;김석룡(金碩龍),37세;종로서의 소환장에 의하여 11월 30일 출두한 데 관하여 신병 불 구속으로 취조한다.;;평북선천읍천북동185(平北宣川邑川北洞一八五),신의주부노송정6의23(新義州府老松町六ノ23);상민;잡화 식량품상;노정민(魯晶珉),40세;종로서의 소환장에 의하여 12월 1일 출두한 데 관하여 신병 불구속으로 취조를 행한다.;;평북선천군수청면가물남동1004(平北宣川郡水淸面嘉物洞一ΟΟ四),평북선천군수청면가물남동 368;양반;잡화상;차희선(車熙善),48세;종로서의 소환장에 의하여 12월 2일 출두한 데 의하여 불구속으로 취조한다.;;평북선천읍천읍동372(平北宣川邑川邑洞三七二),위와 같음;상민;농업;박춘근(朴春根), 48세;위와 같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