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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光洙로부터 申鉉謨에게 보낸 통신 [증거 제17호] (1934. 10. 9) |
현모(玄謨) 형 요즘 건강하십니까. 미국의 김(金) 군께서는 조선의 형세와 청년의 사상 경향(傾向), 향후 우리들 사업의 중심을 국내에 두는 것, 도산(안창호)씨의 출옥(出獄)이 가까움으로 그때 거행할 것에 대한 필요성 등을 장서(長書)로 보내왔습니다. 어찌해도 꼭 성공하길 바랍니다. 이경선(李慶善) 목사님은 작년(前年) 일본의 농촌 사업을 1년간 시찰한 것 뿐만 아니라 10년전 이 사업을 위하여 노력하셨습니다. 이분은 의지력(意志力)과 열정 면에서 정말로 존경을 받을 동지로서 이번 평남(平南), 용성(龍城)에 토지를 얻어 농촌 교화(敎化) 운동을 첫번째로 하기로 하였습니다. 아마도 통속교육업과 모임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번 이사(理事) 선출에 저를 빼고 이목사님께서 하시길 바랍니다. 상세한 사업경영에 관하여 선생님과 이(李) 목사님께서 협의한 대로 처리할 것을 바랍니다. 제가 특별히 책임을 회피하는 듯 합니다만,…(원본판독불가)….오는 5월경에는 또 성내(省內) 수양회에 전력을 다할 작정이므로 아무쪼록 양해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거수(擧手)한 서약은 영원히 변함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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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子英의 盟約書[증거 제18호](1934. 6. 1) |
나 박자영(朴子英)은 금일부터 동우회의 회원으로서, 나의 사회 봉사가 개인의 사익을 초과 할 것을 맹약(盟約)하며, 나의 단체를 위해 열심히 복종하며 헌신할 것을 맹약하고, 나의 동지를 애호하고 신의를 준수 할 것과 나 자신을 위하여 범사에 실무 역행하고 충의하며 용기를 고양할 것을 맹약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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修養同友會 議事部 會議錄[증거 제26호](1926 ~ 1933) |
출석자의사부원(議事部員): 김성업(金性業), 정두현(鄭斗鉉)(대(代) 김성업), 노기정(魯基楨), 김태진(金兌鎭), 조병왕(趙炳王), 김창세(金昌世), (이광수-李光洙 유고).이사부원(理事部員): 김항작(金恒作), 김윤경(金允經), 박현간(朴玄寰), 대상규(對相奎), 이윤재(李允宰).본회 창립위원장 김항작(金恒作) 군의 사회(司會)하에 의사부장을 투표하여 선출한 결과 이광수(李光洙) 군 3점, 김창세(金昌世) 군 2점, 정두현(鄭斗鉉) 군 1점으로 이광수(李光洙) 군이 피선되였으나 의장이 결석하였기에 임시의장으로 노기정(魯基楨)을 선출함.김윤경(金允經) 군으로부터 회의 경과를 보고함.1.회우 총 98명.2.재정 총 수입 1710,06엔. 총 지출 545,08엔.이사부원을 투표선출결과 김항작(金恒作), 김윤경(金允經), 박현간(朴玄寰), 이경선(李慶善), 정인과(鄭仁果), 조명식(趙明植) 6인이 피선되였으며 입회금 개정의 토의한 결과 10원을 5원으로 개정하기로 하였음.신규정에 따라 각각의 기초위원을 선출한 결과 이광수(李光洙), 조병옥(趙炳玉), 김윤경(金允經)등 3인이 피선됨. 회가(會歌) 작성은 이광수(李光洙) 군에 일임하기로 함.이밖에 각부 임시규정을 실행하도록 함. (별지)오후 11시 휴회.1월7일 오후 3시에 숭삼제(崇三齊)에서 속회를 개최함.회명 개칭 문제를 토의한 결과 ′수양동우회′로 개칭하기로 함. 기관잡지를 발행하기로 가결하여 잡지의 출판을 위하여 출연할 것을 승인함.의사부장 이광수(李光洙) 군이 사임함으로 개선의 결과 김창세(金昌世) 군이 피선됨.당일 오후 5시30분에 폐회.의장 노기정(魯基楨)기록사 박현간(朴玄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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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友會 理事會 會議錄[증거 제26호] |
번역문(증거 제 2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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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昇寅의 일기장 제5|| 6페이지의 기사(1928년 1월 5일자)[증거 제37호]" |
1.지리적2.무식3.농업국4.부패(腐敗)정치5.국민의 경제에 대한…(원본판독불가)… - 야심(野心)6.태만(惰怠)7.피착취(被搾取)8.낭비9.산업의 제도와 그 대상이 완비 되지 못함1) 교육2) 학력3) 상업, 공업4) 국산 장려5) 외화불매(外貨不買)6) 경제적 합동 운동.7) 우리 정부의 수립8) 교통9) 절약10) 산업 제도 완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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培花文範(雜誌) 記事[증거 제46호] |
인생의 한면에 개인생활이 있는 동시에 다른 한면에는 사회생활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양면성(兩面性)이 있으며, 개인생활의 방면을 연구함에도 자연과학과 정신과학의 각 과학으로 분석, 연구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식(知識)의 범위에 들어오지않고 복잡하여 해결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 많겠지만 사회생활 방면을 연구함에도 사회적 과학의 각종 규범과학(規範科學)으로 분석, 연구하면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은 것입니다.현대 논리 문제로부터 보아도 이론적 방면이며 실제적 방면에 해결을 요술(要述)하는 몇가지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나는 이에 있어서 아무런 전문적 논리학설을 제의하는건 없지만 본 논문이 직접으로 관계되는 이유로 우선 현대 논리문제의 중점을 뚜렷하게 참고할 수 있도록 보여드리 겠습니다.우선 논리학연구의 범위에 속하는 이론문제를 봅시다.1. 생물적 방면에는 인격의 한 방면이 있는 동시에 정신생활의 기초가 되는 신체가치 문제(논리은인격 행동 궤법(軌範)을 연구하는 것에 의하여) 즉 자살의 비평이나 의, 식, 주와 관련되는 경제문제나 체태정서(體態情緖)의 문제, 생존경쟁 문제, 결혼과 출생제한 문제, 공중위생 문제, 범죄와 체질의 관계 문제 등이 있습니다.2. 심리적 방면에는 행위에 관계되는 문제 즉 행위의 성질이 어떠한가, 지식-감정과의 관계 의지, 자유의 동기와 결과, 행위와 본성과의 관계 등 문제와 도덕생활의 중심이 되는 도덕의식(意識) 즉 양심에 관계되는 문제, 그 성질의 작용, 요소, 기원, 발달 등 문제가 있습니다.3. 사회적 방면에는 논리문제의 중심인 골자(骨子)와 같은 중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또 도덕적인 사회생활의 필요를 위함에 발생되는 것입니다. 사회와 개인과의 관계 문제로는 이기(利己)와 이타(利他), 사욕과 박애(博愛)는 그중 제일 큰 문제로 되어 있으며 역시 사회단결의 종류로부터 보아 가정, 국가, 일반사회, 국제단체 등 각종이 있기에 이 문제에 대처하는 방법은 중대한 일입니다.또 인류의 일반 목적과 이상처럼 논리학상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의무와 권리의 문제가 발생하며 그 수행(遂行)에는 덕과 부덕(不德)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또 인생관에도 비관과 낙관 두가지가 있으며 그리고 조합의 중심인 개선설(改善說)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일상생활과 직접 관련되는 실제 문제로 보입니다. 그러나 윤리상 구체적인 특수 문제로 보아 흔히 도덕문제라 칭합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무이하토(ムイハト)] 씨의 말씀에 따르면 종교계(宗敎界)에는 신앙과 이상(理想)의 평형이며 과학과 종교 또는 교회권위와 개인판단 사이의 모순이 있으며 정치계(政治界)에는 개인과 국가의 대립 즉 개인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한편 공민 의무를 알고 또 자기와 타인 사익과 공익 쾌락상 의무 자유와 필야복종과 자유......등의 사이에 있어서 발생하는 모순(撞着) 외 일상생활을 관찰해보면 몇가지의 모순에 초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이켄(ⅱⅳⅡτ)] 씨는 [원래 도덕의 교왕(交往)은 종교 상 신앙 및 그 실천의 반면에로 가는 것이며 지적생활(知的生活)에는 우이감열(友離減裂)하여 정리 통합하는 목적과 이상에 모자라는 것이며 생활의 다망은 정신수양의 여유를 흥하게 하며 주민의 이동이 심해진 원유로 사회적 제재가 나약하게 되였으며 산업조직의 변화는 인간을 기계화하고 자본가와 노동자, 부유자와 빈곤자 사이에는 조금의 동정도 없는 것 등으로 나뉘여졌다]고 지적하였습니다. 그리고 구라파 전쟁의 큰 영향은 가장 복잡다단하며 각종문제 또는 신 경향을 일으켰습니다.1. 개인생활에는 자기주장의 경향인 즉 유물적과 향락적 경향이 증대(增大)된 것.2. 가족 생활에는 가족 제도의 지연, 선조 숭배의 감퇴, 가정본위와 개인본위와의 충돌, 부인(婦人) 개방의 운동, 효우(孝友)도덕 권위의 쇠퇴 등 경향이 농후하게 되였으며.3. 국가생활에는 단체상(團體上)[데모크라시(テモクラシ-)] , 정체상(政體上)[데모크라시(テモクラシ-) ], 일반선권의 비판사법(批判司法) 즉 민중화요청(배심제도培審制度), 세무제도 정리의 요술(要述), 정치도덕의 부진(不振)의 경향이 농후하게 되였으며.4. 사회생활에는 철저한 사민평등(四民平等)의 요술(要述) (화족폐지(華族廢止)와 수평운동의 신평민 대우개선), 자본과 노동의 관계며 부(富)의 분배법의 개선 요술(要述),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선전이 번성하게 유행되였으며.5. 국제생활에는 권력주의와 문화주의, 군국주의와 평화주의, 국가지상주의와 인도주의 등이 대립하였고 또 국제연맹, 국제노동문제 등이 대두하게 되었습니다. 이상은 지방이며 국가의 국부적 경향의 문제가 되었지만 세계적 문제로도 되어 전세계 인류는 불안과 고민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각자의 도설(道說)로 되돌아가야만 한다는 것을 모르게 되였습니다. 나라와 나라사이의 공격, 백성과 백성의 공격, 가정과 가정사이를 적대시(敵對視)하게 되였습니다. 다만 충돌과 분쟁은 도처(到處)에 일어나 군대화 세계로 되였습니다. 정확히 독파노도(獨波怒濤)의 대홍수마냥 부침(浮沈)하는 민중들이 어떻게 해야만 살수 있을지를 모르는 까닭으로 파도(波)에 밀려 다시 침몰되고, 작은 목근 등에 매달렸다가 다시 침몰되고, 작은 배에 앉아서 표류중 바위에 충돌하여 파선(破船)되었어도 서로 자신의 길만이 정도(正道)라고 주장하고 다른 사람의 길은 부당하다고 배척하며 공박(攻駁)하는 원유로 너나, 나나 같이 멸망하는 것이 현상이다. 그중에도 우리들은 사상의 확실한 입장도 없고 교육의 완전한 입장도 없고 경제의 충실한 입장도 없는데다가 치유하기 어려운 질환의 유전을 받아 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특히 시대의 고(苦)에 신음을 심하게 했습니다. 어찌하여도 생기를 되찾는(蘇生) 길은 있다고 말하지만 우리들은 생활의 각 방면을 일일이 상세하게 검사하여 보아도 기대가 없으며 낙관점이 보이지 않습니다.아니 ...... 위기일발(危機一發)의 위경(危境)에 있을 이 현상은 모두 공임(共認)하고 있습니다.이처럼 무정한 참경에 부딪칠때에는 한방면으로 대단한 용기와 비상한 수단을 써서 전도를 개척하려고 하고 향상의 노력에 끓는 건설적 사상도 생기지만, 한편으로는 비관하고 낙망(落望)하여 자살적 타락의 심원에 빠지는 파괴적(감열적)사상도 생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불행하게도 전자보다도 후자에 기울어져가고 있습니다. 혹은 전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찬성 협동, 노력하는 것은 물론 타매(唾棄罵)가 쏟아져 속수대사(束手待死)할 것같은 현상입니다. 속담에 [호랑에게 물려 가더라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말합니다. 냉정(冷靜)하게 사고하여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부허(浮虛)에 흘러보내지 말고 일시적으로 안일(安逸)해서는 안됩니다. 한편 우리들은 심사숙고(深思熟考)하여 봅시다. 어떻게 할것인가? 무엇을 할것인가? 이에 대한 해결방침의 답은 많은 것이 당연합니다. 또 대립되는 방침을 세워 진행하여 가는 종교적 운동이며 사업도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쨌던 확실한 것이다는 자신만 있으면 계속 진행할 것을 권고합니다. 구조망이 많이 있으면 어떠하든 해낼수 있다고 밑습니다.그러나 편벽(偏僻)하며 고집(固執)하는 사상의 전제가(專制家)로 되기에는 전혀 불가능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믿고 실행하여 왔었어도 그것이 착오란 것을 느꼈을 때에는 버림 받기에는 당연한 일로서 주저할 것이 당연하며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도 그것이 가능한 진리라고 느꼈을 때에는 받아서 이행 하는게 당연함으로 주저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의 진보하고 싶어하는 것이 그 진보의 원인이고 또 이처럼 편협(偏狹)한 고집(固執)이 있는 사람들의 불행으로 되는 원인입니다.하지만 이와같은 사상과 주의의 관용성(寬容性)과 무골충(無骨蟲)과 같은 맹종(盲從)의 노예성(奴隸性)과는 절대적으로 혼동하면 안됩니다. 또 큰 실책이 있습니다. 즉 진리에는 용감자가 되고 착오에는 약자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이 있습니다.우리들은 과거에 있어 실패한 경험이 제법 많이 있습니다. 개인 생활에도 이처럼 있으며 사회 생활에도 이처럼 있습니다. 지금 그 아픈 기억의 사실을 하나하나 떠올려도 그 원인을 상세하게 연구해야만 합니다.그렇지만 그 원인은 내적, 외적 양방면으로 고찰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진정 중요한 내적 원인을 많이 무시하고 외적 원인만 중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혹은 외단세력에 귀임하며 혹은 경제력에 기인(起因)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와같은 외계력부터 받은 영향이 우리들의 사업의 진행과 실패를 좌우지하는 일도 흔히 있습니다. 하지만 동일한 환경에서 성공한 사람이 있고, 실패한 사람이 있습니다. 또 더욱 한발작 진보하여 [동일일한 공간과 시간에 의하여 어찌하여 나는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환경을 소유하게 되였는가?]를 고려해 보면 누구라도 외적원인이 파생적(派生的)원인이며 근본적인 원인은 아닙니다. 이것은 제2차적 원인일뿐 제1차적 원인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합니다. 하면 그 근본적원인 즉 제1차적인 내적원인은 그 사물의 주체로된 인격이 어떤가라고 말합니다. 동시에 환경이 성패의 분별이 가능한 것도 인격이 어떤가이며 따라서 공간과 시간을 소유하고 행과 불행의 환경의 차별이 되는 것도 인격이 어떤가에 있으며 그것을 부인(否認)하지 않는 것이 명료(明瞭)합니다. 만일, 건전한 인격을 완성하고자 한다면, 그리고 또 그들은 공고한 단결을 완성하기 위해 그 경영하는 사업이 어떠한가 하늘에 물어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건전한 인격이 많아야 하며 이에 따라 공고한 단결이 커질수가 있으며 정도에 따라 그 개인과 그 사회가 번영하며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 역시 번영하며 행복이 있는 곳에는 필히 건전한 인격자와 공고한 단결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며 이러한 곳에야만 바름(是)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히브라족]의 선조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성을 멸하시러 할 때 여호와께 엎드려 땀을 흘리면서 빌었을때의 회답이 의미심장(意味深長)하게 느껴집니다.[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하시나이까? 소돔성에 의인 50명이 있다면][만약 의인 50명이 있을지라도 멸하시나이까?][만약 그 50명중 5명이 부족하다면 어찌 하시렵니까?][만약 의인 45명만 있어도 멸하지 아니하리라.][만약 40명을 찾아내면 어찌 하시렵니까?][만약 의인 40명만 있어도 멸하지 아니하리라.][30명이 있다면 어찌 하시렵니까?][30명만 있다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20명만 있다면 어찌하시렵니까?][20명만 있다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만약 최종에는 의인 10명뿐 이라면 어찌하시렵니까?][10인이라도 찾아내면 멸하지 아니하리라.](창세기 18장 참조.)나는 단언합니다만 도성에 의인(완전한 사람 즉 건전한 인격자)가 50명의 비례라도 있다면 어떠한 방면으로 보아도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며 최소한도로 10명의 비례라도 생활 파멸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건전한 인격라는 것은 무엇을 이르는 것인가?] 라는 의문이 떠오릅니다. 역시 그것이 어떤 개념이라는 것은 이상에서 말한 바와 같이 불분명하다고 믿습니다. 지금 인격의 정의로 부터 그 내용, 그 건성의 방법을 순서대로 설명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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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昌浩의 檄文[증거 제48호](1929. 2. 8) |
2대주의건전인격, 공고단결 3대수련덕육, 체육, 지육4대정신무실(務實), 역행(力行), 신의(信義), 용기(勇氣)끝으로 독자여러분이 이 일편(一篇)을 읽을 때, 문장보다도 그 내용을 많이 연구하고 잘 습득하기를 바랍니다.문장에 졸렬(拙劣)한 곳이 있으면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동지 여러분은 이 일편(一篇) 중에 우리들의 근본정신과 모순(矛盾)되는 점, 어긋나는 점, 오류(誤謬)가 발견되면 용서하여…(원본누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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興士團 約法[증거 제49호] |
제 1조. 본단의 명칭은 흥사단이라 칭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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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友會 通報文集[증거 제51호](1931. 3 ~ 1933.10) |
1. 동광사 이사 사면의 건.귀군의 동광사 이사 사면의 건은 1931년 2월 22일 동우회 중앙위원회의 가결에 따라 이상 통보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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修養同友會(發起會) 記錄[증거 제56호](1922) |
1922년 2월 12일 오후 10시에 수양동맹회 발기회를 경성(京城) 서대문 거리 1가 9번지에서 개최하여 발기인 공동 서약례를 행하였음.발기인제 1회우 김항작(金恒作).제 2회우 박현간(朴玄寰).제 3회우 김기준(金起濬).제 4회우 곽동주(郭童周).제 5회우 홍사용(洪思容).제 6회우 김윤경(金允經).제 7회우 운달호(元達鎬).제 8회우 강창기(姜昌基).제 9회우 김태진(金兌鎭).제 10회우 이항진(李恒鎭).서약문나는 하늘 신과 땅 사람들 앞에서오늘부터 수양동맹회의 회우가 되어무실역행(務實力行)을 생명으로 덕, 체, 지 삼육(三育)을 일생동안 끊임없이 수련하여 건전한 인격을 완성하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다.우리 회의 규정과 의결안에 복종하며 회의 유지 및 발전을 위하여 회우와 같이 일심으로 전력을 다할 것이다.회와 회우를 믿으며, 사랑하며 우리들의 동맹의 목적에 달성하기 위하여 나의 일생을 봉헌할 것을 서약한다. 년 2월 12일.창립위원 3인을 투표 선정함.창립위원: 김항작(金恒作), 김윤경(金允經), 박현간(朴玄寰).회우회는 매월 첫번째 금요일 오후 8시로 정한다. 이상.2월 17일 오후 4시에 이인수(李寅洙) 군을 문답하여 예비회우로 입회를 허용함. 장소는 서대문(町) 1가 9번지.문답 주체자: 박현간(朴玄寰).참석: 박현간(朴玄寰).3월 3일 오후 8시, 제 1회 정기 회우회의를 서대문(町) 1가 9번지에서 창립위원장 김항작(金恒作) 군의 사회(司會) 하에 거수(擧手)식 회의를 개최하고 목적 및 실무를 낭독한 후 회우 동정(動靜) 보고가 있었음. 김항작(金恒作) 군의 강연이 있었으며 청원에 의하여 이광수(李光洙) 군을 회우로 허입하였음. 동일 9시에 폐회.당일 출석: 회우 9인.4월 7일 오후 8시35분, 제 2회 회우회의를 남미창(町) 1번지에서 창립위원장 김항작(金恒作) 군의 사회(司會) 하에 거수(擧手)식 회의를 개최하여 본회의 목적 및 실무를 낭독한 후 폐회함.출석 회우: 7인. 수금: 30엔.5월 5일 오후 8시, 제3회 회우회의를 서대문(町) 1가 9번지에서 개최하여 김항작(金恒作) 군이 본회의 목적 및 실무를 낭독하였으며, 노기정(魯基楨) 군의 입회 문답식을 거행한 후 폐회함.6월 3일 오후 8시반, 제4회 회우회의를 서대문(町) 1가 9번지에서 개최하여 박현간(朴玄寰) 군이 본회의 목적 및 실무를 낭독하였으며, 이연수(李寅洙) 군의 서약례를 행한 후 폐회함.7월 7일 오후 4시, 제5회 회우회의를 남미창(町) 1번지에서 개최하여 박현간(朴玄寰) 군이 본회의 목적 및 실무를 낭독하였으며, 후 이광수(李光洙) 군이…(원본판독불가)…의 진리 견지에 관한 강연이 있은 후 9시에 폐회함.7월 7일 오후 9시에 노기정(魯基楨) 군의 서약례를 협상하여 진행함.10월 8일 오후 4시에 제5회 회우회의를 협동 개최하여 박현간(朴玄寰) 군이 본회의 목적 및 실무를 낭독한 후 이광수(李光洙) 군의 강연이 있었으며, 후 5시에 폐회함.11월 5일 오후 8시, 제6회 회우회의를 남미창(町) 1번지에서 개최하여 박현간(朴玄寰) 군이 본회의 목적 및 실무를 낭독한 후 강창기(姜昌基) 군의 입회 후 경과, 소감을 이야기하였으며…(원본판독불가)…폐회함.12월 19일 춘원댁에서 오봉빈(吳鳳彬), 박태준(朴台俊) 두 군의 입회 문답을 거행하여 예비회우로 허락함.1923년 1월 7일 오후 8시, 제7회 회우회의를 서대문(町邑) 1가 9번지에서 개최하여 박현간(朴玄寰) 군이 본회의 목적 및 실무를 낭독한 후 윤병근(尹澤根)의 입회 문답을 거행함.2월11일경 조기●(趙基●) 군의 입회 문답을 거행할 것.2월22일경 이현재(李炫載) 군의 입회 문답을 거행할 것.2월4일 오후 8시, 제8회 회우회의를 전기(前記) 장소에서 개최하여 박현간(朴玄寰) 군이 본회의 목적 및 실무를 낭독한 후 춘원선생의 무실역행에 관하여 강연이 있었으며, 후 동일 9시에 폐회함.3월 4일 오후 8시, 제9회 회우회의를 전기(前記) 장소에서 개최하여 춘원선생의 주석하에 오봉빈(吳鳳彬), 박태준(朴台俊) 두 군의 서약례를 행하였으며 폐회 후 희락회(喜樂會)가 있었음.1924년 1월 6일 오후 7시에 제10회 회우 회의를 전기(前記) 장소에서 개최하여 척사회(擲柶會)에 의하여…(원본판독불가)…1월 13일 오후 7시 반에 박●영(朴●永) 씨를 청하여…(원본판독불가)…에 대하여 수양강연을 함. 1월 27일 오후 7시 반에 김양수(金良洙) 군을 요청하여 국가…(원본판독불가)…에 대하여 강연을 함. 2월 3일 오후 7시 반에 제19회 회우회를 개최하여 춘원선생의 과학에 대하여 강연이 있었음.2월 10일 오후 7시 반에 윤병도(尹炳度) 씨를 요청하여 생물학에 대하여 강연을 함.2월 17일 오후 7시 반에 현상윤(玄相允) 씨를 요청하여 세계 영구평화(永久平和) 및 사회주의 유입(流入)과 조선민족의 사상에 대하여 강연을 함.3월 2일 오후 7시 반에 제20회 회우회의를 개최하여 척사회(擲柶會)를 개최함.4월 6일 오후 7시 반에 제21회 회우회의를 개최하여 상호 담론 함.4월 20일 오후 7시 반에 특별회의를 개최하여 이승동(李昇董) 선생과 춘원선생의 강연이 있었음.5월 4일 오후 8시, 제22회 회우회의를 개최하여 박현간(朴玄寰) 군이 본회의 목적 및 실무를 낭독한 후 김항작(金恒作), 이준용(李濬鏞) 두 군이 소식을 전달함. 동일 30분 폐회함.5월 24일 야외 산보를 동대문 외 신오사(新奧寺)에가서 유람함.6월 1일 오후 9시, 제23회 회우회의를 개최하여 춘원선생님의 희생적 정신에 대하여 강연과 남국선생의 입신(立身)에 관한 강연이 있었음.6월 8일 오후 1시에 최창문(崔昌文) 군의 입회 문답이 있음.6월 8일 오후 8시반에 최●식(崔●植) 군의 서약식 및 최창문(崔昌文) 군의 입회식을 거행함.8월 3일에…(원본판독불가)…유기준(劉基峻) 댁에서 놀았음.10월 5일 오후 8시, 제24회 회우회의를 서대문(町) 1가 9번지에서 개최하여 춘원선생이 수양회 진행에 관한 강연이 있었음.10월 12일 오후 3시, 서대문(町) 1가 9번지에서 홍노길(洪魯吉) 군과 정병순(鄭昞淳) 군의 입회 문답을 치렀음.11월 2일 오후 7시30분, 제25회 지방회우회를 낙원동(樂園洞) 37번지…(원본판독 불가)…에서 개최하여 채수반(蔡洙般) 군의 서약식을 거행하였음.11월 15일 오후 8시, 서대문읍(邑) 1가 9번지에서 김국(金國) 군의 입회 문답을 거행하였음.11월15일 오후 7시반, 안국구(安國區) 37번지 에서 ●준탁(●俊鐸) 군의 입회 문답을 거행하였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