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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자료

    콘텐츠/독립운동가 자료 [] 에 대한 전체 5845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311 李剛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러시아 치타 ; 1912.10.3)

    伏頌大安이오며 弟亦依舊하외다. 李領도進退가 別無로이다 弟搬移한 初番地를 記록하나이다.

    312 李大爲가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샌프란시스코 ; 1912.4.24)

    惠函 卽承에 仰慰 萬千이 誰得 貴體 多有 滋味云하시오니 是幸이 且祝 如一이오며, 弟는 近有 奔走於學年 修都講而不得 顧慮 萬事이나 來月 十日 以後 則 少得 餘暇일 듯 이웨다.所示中 精神的 團結事는 各以 其心守其人民로 本分 則 自然爲團이니 何能 求特別之團乎 夫 國家之事는 惟 熱心, 惟 才能 , 惟 財政 三者中之一은 不可成功이오 必有三者 俱備 然後에야 成로이니 是誠難矣.然이나 相有盟約之同志此則 可爲少好之事일 듯 이지니 則可與 同盟 者誰也며 幾名乎. 弟는 當此事 하야 願 愛兄은 先以良策籌로 則 弟는 從之了已矣.餘는 不備謝禮

    313 洪焉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샌프란시스코 ; 1912.4.27)

    萬事多難하니 先生의 ●庇를 馨書而祝之하옵나이다. 噫 焉의 過를 何逭하오리까? 先生의 惠函을 捧承한지 今答彌月에 誰復이 尙闕하니 先生이 焉을 何如人이라 하오리까? 焉이 비록 稱冥不寁이나 難言苦衷이 有하오나 下示中留難莫發이라 하신 敎意가 此也하이다. 今 焉은 萬種愁偖로 神經이 過觸하여 意夜不眠하옵기 精神이 日削하고 記憶性이 全失하여 先忘後失이며 消瘦益甚하여 枯顔이 自慙하오니 擬欲退村在는 爲其靜養而復之이오. 非有他意也로이다. 今此病者가 雖內兩此나 亦復何用하오리까? 然이나 先生은 慈愛忠厚之碩人也 不謂焉之病廢하시고 欲之諭勉함에 叫竝施之以溫言하시니 嗚呼 先生之愛 焉이 厚矣라. 焉이 感極而泣하여 不知將何以仰報하옵나이다.嗟夫 歷來風波가 惕然自驚하여 執念이 灰冷하니 焉之不發可乎잇가? 方寸이 已亂하니 此不能强捱者也 매 如其恝然告過라도 重拂 先生之雅意하옴이 內疾良深하오니 監書悵然하여 旋復閣筆이 不知幾何이옵나이다. 然이나 先生의 珍重하신 偉訓이 印腦旣深하오니 淬礪 他日에 捲土重來하여 以備軀策이 焉이 願也라 하옵나이다. 一切關係를 從容整頓하려면 當於來月望 間起身이옵기 狀餘●不備上

    314 崔正益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샌프란시스코 ; 1912.4.30)

    持郵

    315 崔正益이 安昌浩에게 보낸 전보(샌프란시스코 ; 1912.5.4)

    서부연합전보회사(Western Union Telegraph Company)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Riverside)에서의 전보

    316 이광열이 안창호에게 보낸 편지

    건국 4245년 5월 5일昨夏 過駕계신 後로 問候無語하야 居常  仰이옵더니 日前 치타에 留하난 李강 氏에 書信을 讀하온즉 大人이 美洲 桑港{{美國의 샌프란시스코.}}에 現留사심을 得知하오니 梢慰下懷之煎{{속타는 내 마음이 조금은 위로된다.}}이오며 伏未審辰下 貴體候旅安하시고 着事亦多慶이온지 遠外 區區無任切切이웨다.生은 無病善學이오니 伏等不少이오나 但이 如干한 學費에 末由함으로 綠하야 爲苦亦不少이웨다.{{약간의 학비를 마련할 길이 없서 고생이 적지 않다.}}曾以此由로 치타 地方 國民會에 求助하엿삽더니 該會가 亦以錢政無奈함으로 總督所請이오니 此亦失望이옵고 此相彼度에 無計可施하야 受業中 困難한 情況으로 貴處에 在中央國民總會에 원정하엿삽더니 총회長 崔正益 氏 回示內開 姑候下回리라 處分이 丁寧하옵기 滿滿欣喜하며 十分信仰하야 惠分을 善待함이 이무{{이무는 이미・벌써의 뜻이다.}} 五六朔을 過하도록 조白이 更無하오니 伏未知 有何岐論而然也이온지 抑有別件事而然也이온지 自訝自惑에 其所以然을 解得키 難하오며 於其間 困難한 情狀去去益甚이웨다.홀然이 廢業코져 하오면 全功에 可惜할 이 不少하옵고 是을 惜하야 仍學코져하오면 不可無者에 費金을 求得할 方針이 萬無하오니 此事을 何以則中乎잇가?生에 敬愛하기를 마지못하난 大人 安昌浩 氏는 一策을 借하옵소셔.學費로 말하오면 亦是 巨額이 非也로이다. 寄宿과 食節은 俄人의게 公得하엿사오며 但 衣服・書冊及紙筆 各약 些少 雜費이오니 若美貨 百元錢을 求得하여스면 節用하야 足히 有始한 學業을 善終할 希望이 有하오니 伏乞 大人은 三思恃愛此貧生하시와 總會에 保證이 되시고 會中主務하시난 諸公에게 善候傍論하시와 美貨 百元을 三年爲限하고 生에게 貸下하여주시면 這間에 所能爲之事을 快이 成就할 터오옵고 회 金額은 所業得遂日 卽完報할 터이웨다.四顧無親한 此地費救無處하고 請貸無路하야 玆如是 敢仰懇于座下이오며 此雖一張輕紙이오나 其所懇之志가 至大至深이오니 望大人은 海亮必施하시와 使此生으로 毋至 中途廢業之地 如何 如何 餘伏祝 照亮幷希 回音建國 4245年 5月 5日 英사라 留生 李光烈 上書安昌浩 大人 閣下

    317 崔正益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샌프란시스코 ; 1912.5.6)

    (宅第十三號)秌汀兄 上陸事에 對하여 可及的 方面으로 勞力하였으나 病勢가 如彼히 重旦深하니 移民局의 不許를 어찌 怨尤할 수 있나이까? 如彼히 自身을 不能動作하는 줄을 不知하였으면 渡美의 意를 生케 하지 않음 같이 못하게 되었습니다. 到今하여는 上海로나 或幸西奇로 移住療治케 하는 것이 上策이온대 竊想컨대 病中에 罹한 秌兄의 心意作用이 一倍激然케 되어 最後의 欲을 發할까 恐하며 灼悶하나이다. 無情한 太西洋上에 歸掉를 望하는 秌兄의 心事를 替想하건대 胸膈이 抑塞할 뿐이오다. 그러나 罔然徒想이 事爲上에 益을 遺치 않으니 過勿傷心하고 付諸天命하여 第二의 遷動을 速圖하옵시다. 貴邊樀檔의 機會를 乘하여 爲秋汀之募捐하여 보시는 것이 何如하옵니까? 何處로 往케 하든지 少不下四五百元을 가지고 將(不可無伴行者故)生意할 터이오니 若不早圖하면 神經過敏한 秋汀은 必自容의 慘劇을 演出할런지도 未可知이온즉 爲吾人하여 不可視之以策岸之火이오나 姜會長도 親來留務目下救急之第一策이오며 弟도 此를 請하지 旣久이오되 該事件에 對하여 皀白을 不答하옵니다. 아무쪼록 今番에 同行하소서.金聲權氏는 今十三日 西伯里亞號에 着桑하고 先通에 來하였사오며 鄙息棟兒는 事勢의 不容으로 今年學期에 停學한 故로 上海로 迂回하여 渡美하라고 準備하여 주었으나 讐地를 脫하기가 似不容易하니 於卽事에 蒲柳易衰의 報뿐이오다.

    318 최광이 안창호에게 보낸 편지

    도산(안창호) 선생 혜감.伏惟 이래 體事 萬重하옵신지 切切遠禱소이다. 弟陳옵기는 추정(이갑)장께서 금월 십이일경에 德港 한보에서 편지하시기를 동 십사일에 해항에서 기선 빅토리아호로 출항하여 동원 이십 오륙일경이면 뉴욕항에 상륙할 예정이며 무사히 상륙될 경우에는 곧 덕경(베를린) 김중세 씨에게 電奇하여 自김형으로 차지에 전기케 하겠다 하셧는데 于今 二週에 如今間 통신이 무하오며 차 사월 이십 육일로부터 금일까지 旣히 二週라, 뉴욕에서 우체로 통신하엿더라도 벌써 당도할 만한 기한이 되엿는데 그도 저도 도무지 소식이 막연하오니 일시를 안심할 수가 업사오며 출발하실 당시에 在하여도 병세로 침중하실 뿐 아니라 상륙 一款의 불확실함을 인하여 가시는 이나 있는 사람이 일체로 種種 의구를 抱하엿는데 황금 여차히 소식이 중단되엿스니 어찌 스스로 마음 진정할 길 있사오리까?바라옵건데 속속히 추정(이갑)장 안착 여부를 회시하여 주시옵소서. 먼저 아우를 진정한 연후에 百事를 가히 做去하는 터이어늘 근일은 더욱 침식을 온전히 할 수 업사오이다.이곳 형편은 별고 업사오며 다만 力食할 방법을 얻지 못하와 생활이 곤란할 뿐이오이다. 이뿐 그치옵나이다.건기 4245년 5월 10일. 최광 재배.봉투 : 안 선생이 계시지 안커든 崔正益 씨나 姜永韶 씨 기타 신문사에 계시엇든 어른이던지 이 편지를 보시고 곧 답장하여 주시기를 감히 바라나이다.

    319 姜明化가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샌프란시스코 ; 1912.5.27)

    兩 度 惠書 及 提議書는 竝承審이옵니다. 弟가 代議會員 僉座에게 送呈한 請原書는 仰想入燭이실 듯하오며 此 書意가 與前日 意向으로 少有差異한 것은 無他라. 深思하여본 즉 但總會事務員만 解任하고 桑港(샌프란시스코)에 前往視務하더라도 總會長의 任名이 自在하여 總會公文 等 其他事務가 隨身來着하여 觸目掛念치 아닐 수 없으니 以前 氣短手鈍으로 浩繁한 社務 外에 總會務까지 兼帶할 수 有하리오. 故로 事實을 擧하여 總會長 任名까지 辭免하기로 請願이온 즉 待其 各代議員之可參하여 卽當 出往 桑港(샌프란시스코) ●耳. 若或代議會에서 總長 任名을 帶하고 新報社 事務員을 兼帶하라고 하면 弟는 決不可施行이오니 諒處하옵소서. 貴 提議書 內에 公衆의 事業을 姜 會長 一個人의 猶豫로 時日을 遷推함은 不可라 하였으니 果是愛國愛種爲公斥私之正論也. 此 一個人의 私情이 多多한 姜明化(강명화)를 何必 執留於公會中이며 丹忠이 貫日한 諸公들은 何以 西人家雇役으로 金錢만 注意하옵니까? 此不可知者一也. 且 兄公을 向하여 書法을 問코저 하오니 以其英雄筆力으로 此卄世紀에 籠絡하는 手端인지오? 以弟所見으로는 不可理 東方禮義之遺孫也. 今世上에 出言實行者 其誰오? 兄이 昨年부터 布行한다고 宣言하고 至今 不果함은 特緣時勢也며 姜藩(강번) 兄이 兄 前에서 往布할 양으로 已諾하고 不過一兩日 後 再變不去하기로 言하였으며 崔正益(최정익) 兄은 往年에 往布할 양으로 弟를 紹介하여 布哇(하와이)서 船費까지 送來한 것을 又緣時勢하여 不去하였고 李元益(이원익) 兄은 東方에서 專來 桑港(샌프란시스코) 視務한다고 廣佈하고도 終不來하였으니 以上 諸兄이 一個人의 私情만 爲하여 然한 것이 아니오 皆瞻前顧後하여 昨日之思와 明日之勢가 不同함을 緣함이라. 何必 姜明化(강명화) 一個人에게만 無踏實한다고 哨責이 藉甚好 他人之無禮는 辱之叱之라도 歸於尋常이어니와 至於安昌浩 氏之無禮하여는 無一辱談하고 無一叱責하고 但筆端上에 模糊文字만 有하여도 可知其深言警責也.

    320 李甲이 安昌浩[전보]에게 보낸 서신(러시아 치타 ; 1912.6.27)

    한국샌프란시스코치타로왔소 리강일호남으로 돈좀 전환(Chetarowatso Likangilhomuiro Donjomchunw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