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글자크기조절

콘텐츠

선택

선택

    독립운동가 자료

    콘텐츠/독립운동가 자료 [] 에 대한 전체 5845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1071 벤자민 B. 웸스(Benjamin B. Weems)가 서재필에게 보낸 편지

    발신주소: 노스 글레브(Not고 Glebe)로(Road) 224번지 버지니아주 알링턴(Arlington)발신일: 1948-11-08발신자: 서재필 박사수신자: 서재필 박사수신주소: 펜실베이니아주 미디아친애하는 서재필 박사님께,보내주신 11월 4일자 편지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박사님께서 귀국하셨다는 사실을 알게되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이미 출발하셨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언제 댁에 도착하실 지는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조만간 박사님과 뮤리엘 양을 만나 제가 한국을 떠나온 이후의 일에 대한 박사님의 설명을 듣게 되길 고대합니다.클레런스(Clarence)는 박사학위 논문 준비 때문에 올 여름 내내 워싱턴에 있는 의회도서관에서 문헌과 씨름했으며 지금은 하버드 대학에서 약 10년 전에 중단했던 공부를 다시 계속하고 있습니다. 클레런스(Clarence)는 아직도 공군에 소속되어 있으며 학업은 다음 학기부터 통상적인 임무의 일환으로 공부할 것이며 그 기간은 더 연장될 예정입니다. 물론 클레런스(Clarence)는 이와 같은 임무를 맡게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습니다. 클레런스(Clarence)는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클레런스(Clarence)의 주소는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 38, 트로브리지(Trowbridge)가 20번지)입니다.제가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 방송에서 일한 것은 한시적이었습니다. 4월 1일부터 시작해 3개월여 동안 한국관련 편집국 임시 국장으로 일하기로 했으며 그 동안 이곳 중앙정보국(CIA)에 의뢰한 일자리에 대해 허가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 정부의 허가증을 받은 7월에 이곳으로 돌아왔고 그때 이후로 쭉 의회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최종 허가는 아직도 나지 않았습니다(무려 9개월이나 지났는데도 말입니다!). 하지만 그다지 힘들게 지내지는 않습니다. 어느 정도 수입을 벌고 있고 한국과 관련 문제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도 누리고 있으니까요. 제 가족(아내와 4살 난 딸)은 이곳에 머물고 있으며 가족 모두가 함께 있기 때문에 다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근처에 건축중인 작은 집을 구해서 그곳에 입주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데 아마도 크리스마스 무렵에는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국의 소리’ 방송국에서 제가 맡았던 일은 지금은 박사님께서도 서울에서 만난 적이 있는 유진 프로스토브(Eugene Prostov)가 맡고 있습니다. 프로스토브는 번스(Bunce) 박사의 국무부 직원으로 한국어를 모른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미국의 소리’ 방송과 같은 일에 탁월한 자질을 갖추고 있는 사람입니다. 프로스토브는 그 일을 잘 수행할 것이며 언어문제의 해결에 있어 많은 도움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박사님께서 추천하신 김요채(Kim Yo Chae) 씨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그 분이 뉴욕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잘 지내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미디아에서 4~5마일 내에 살고 있는 친구가 몇 명 있기 때문에 다음에는 박사님도 만나 뵐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친구들을 방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박사님의 편지에 감사드립니다. 벤자민 B. 웸스(Benjamin B. Weems)

    1072 Chas. M. Griffith가 서재필에게 보낸 편지

    안녕하십니까,매츠(Matz) 박사가 1932년 7월 26일자 박사님의 서신을 전해 주었습니다. 재향군인관리국(Veterans Administration)의 병원진료 분야의 채용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병리학자로서 워싱턴 D. C.나 필라델피아 혹은 펜실베이니아에 거주하는 사람이 우선 대상입니다. 위에서 말한 병리학 분야에서 자격 있는 의사들이 몇 사람 필요하지만 이에 대한 임명은 공무원시험국(Civil Service Commission)에 등록된 자격자들 중에서 선발합니다. 현재 공고된 시험은 없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만 직접 공무원시험국장을 만나실 수는 있을 것입니다. 공무원시험국(Civil Service Commission)은 워싱턴 D. C. F가 9번지 특허국 건물 안에 있습니다. 공무원시험국장은 다음 시험이 언제 실시될 예정인지에 대해 알려드릴 것이며 필요한 서류와 그에 관련된 정보도 제공해줄 것입니다.공무원시험국(Civil Service Commission)의 요구조건을 만족시켜 앞으로 공석이 생길 경우 채용될 수 있는 대상으로 이름이 올라간다면 박사님에 대한 채용이 검토될 수 있을 것으로 믿으셔도 됩니다.재배(서명)

    1073 클레런스 웸스(Clarence Weems)가 서재필에게 보낸 편지

    발신주소: 사서함 1256호 워싱턴 D. C.발신일: 1948-07-29친애하는 서재필 박사님께,개인적인 문제와 한국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국제 정세에 드리웠던 모든 부담과 불확실성이 사라지면서 현재 내년 혹은 그 이후 나타날 상황에 대한 대략적인 윤곽이 매우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직접 만나기가 힘들다면 서신을 통해서라도 박사님과 제가 다시 지속적으로 긴밀한 접촉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공통된 주요 관심사에 대해 협의를 지속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올 여름동안 한국에 관한 저술에 전념할 예정입니다. 또한 9월초부터 약 2년간, 다시 말해 정치학 박사과정을 마치기 위해 필요한 기간동안 하버드 대학교에 다니기로 되어 있습니다. 이번 학업은 공군 민간기구 프로그램에 따라 공무원 신분으로 맡게 된 것으로 대단히 흔치 않은 기회입니다. 국제적인 위기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군 복무를 계속해야 한다는 박사님과 저의 공통된 생각에 어긋남이 없이 군대에 남아있을 수 있게 되었으며 동시에 국제 문제에 대한 이해력을 새로이 정립하고 넓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또한 박사 학위가 가져다주는 학문적 인정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든 이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위에 적은 사서함을 계속 사용할 계획이므로 이 주소를 통해 언제든지 저와 연락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9월 25일 경에는 실제로 캠브리지에 거주할 예정이므로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 트로브리지(Trowbridge)가 20번지 아파트 3호)로 연락하실 수 있습니다.박사님으로서는 상당한 노고가 따르는 일이겠지만 일주일에 한번씩 시간을 내어 저에게 간단한 글을 보내주신다면 더없이 기쁘겠습니다. 상세한 일지 형식의 글도 가능합니다. 이를 통해 박사님의 공적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뿐만 아니라 지나간 사건과 그 사건의 중요성에 대한 박사님의 생각을 저에게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이런 식의 현재적 설명은 나중에 제가 박사님의 일대기를 쓰는 작업에 착수했을 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일은 제가 반드시 하겠다고 굳게 마음먹은 일입니다. 또한 현재 일어나는 일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데 있어 저에게 커다란 지침이 될 것입니다. 뮤리엘과 임(Liem), 신(Shun)군과 동기(Dongki)를 비롯하여 그곳에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안부 전해주십시오. 신(Shun)군에게는 제가 한국역사기록보존소(Korean Historical Records Society)에 보관된 43,349장의 문서에 대해 며칠 안으로 편지를 쓰겠다고 전해 주십시오. 의회도서관은 이 문서의 슬라이드 필름(glass negatives)에서 두 장씩의 출력물을 얻는데 필요한 화학 물질을 한국으로 운반하고 있습니다. 복사본 중 하나는 서울에 있는 역사기록보존소에 보관될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곳 의회도서관 소장본으로 활용하기 위해 이곳으로 옮겨질 것입니다. 이 사업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는 모든 학자들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사업입니다.클레런스 N. 웸스 주니어미합중국공군 소령

    1074 박송이 뮤리엘에게 보낸 편지

    작성일: 1948-09-06친애하는 뮤리엘 제이슨(M. Jaishon) 양에게,계절의 변화를 반갑게 느끼며 제이슨(M. Jaishon) 양의 건강을 기원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몇 자 적습니다.국제 정세는 날이 갈수록 미묘해지고 국내 문제는 더욱 바삐 돌아가고 있으며 여성들의 책임은 점점 더 무거워만 갑니다.제이슨(M. Jaishon) 양은 유럽의 유용한 지식을 지니고 있으므로 좋은 건강상태를 유지하리라고 생각했는데 이삼일간 앓아 누워 있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이국 땅에서 병석에 누워있으면서 제이슨(M. Jaishon) 양이 느꼈을 외로움에 대해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지난 금요일 원고 문제로 제이슨(M. Jaishon) 양에게 편지를 쓴 후 원고를 가지러 오늘 아침 당신의 거처에 들렀습니다만 낙담하여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원고 때문에 낙담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병으로 누워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제이슨(M. Jaishon) 양과 이야기를 나누고 몇 가지 출판물을 얻을 생각이었는데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갔습니다. 전화를 걸어 당신을 괴롭히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 대신 편지로 안부를 전하게 된 것입니다. 나는 당신의 건강을 위해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망망한 푸른 바다를 건너 미국으로 항해를 할 당신이 이처럼 허약해진 것을 생각하니 다소 불안감마저 느끼게 됩니다.창공을 향해 나르는 화살이 대지의 푸른 지점을 정확히 명중하듯이 나도 제이슨(M. Jaishon) 양을 향해 화살을 쏘고 있습니다.한국과 한국의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서 왜 이 나라를 떠나야만 합니까? 빛나는 달도 외로움을 느끼고 있고 푸른 언덕은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는 것 같습니다! 결국 이렇게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께서는 우리 곁을 떠나야만 하나요? 이제 떠나면 언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나요? 만약 고국이 너무 그리워 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내가 부탁할 말은 우리를 위해서도 다시 돌아와 달라는 것입니다. 또한 한국 여성을 잘 알고 그들을 존경하는 사람으로서 부탁드리는 것인데 일생동안 한국을 위해 일할 여성 한 사람을 추천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나는 그 여성을 모나리자로서 존경할 것입니다. 개인적인 삶은 소박했지만 조국 프랑스를 위한 애국적 열정은 비할 바 없이 컸던 프랑스의 잔다르크와 같은 존재로 말입니다. 한국은 위대한 인물을 원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여성을 원합니다. 이 나라에 대한 당신의 애정에 변함이 없고 한국 국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스스로 잘 알고 있으면서 무엇 때문에 이 나라를 떠나야만 합니까? 만약 당신이 돌아올 수 있다면 나는 매일 당신과 당신의 연로하신 아버님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그 기도는 우리에게 더욱 절실한 지도 모릅니다. 내가 써 보낸 시나리오를 다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부탁한 당신의 원고를 보내주세요. 둘 다 나에게는 절실한 일입니다. 나는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마련하여 전 세계의 뉴스를 모두 수집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미국에 도착했다는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해주기 바랍니다. 당신이 내 시나리오를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되돌려 받을 때까지 촬영 작업을 연기해야만 합니다.나의 두서없는 글을 너그러이 보아주리라 믿으며 빠른 시일 내에 건강을 회복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박송(Park Song)한국속기사협회(Korea Stenographer Association)서울 중구 도동 1가 103번지한국전화번호: 2-1609

    1075 박송이 뮤리엘에게 보낸 편지

    친애하는 제이슨 양에게8월 31일 오후 5시 30분에 나는 인편으로 아버지의 땅이라는 1백장 가량의 시나리오 원고를 제 명함과 함께 당신의 아버님께 보냈습니다. 9월 2일 오후 7시 30분에는 시나리오의 주제에 대해 얘기하고 의견을 구하기 위해 당신의 아버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당신 아버님은 너무 바빠서 시나리오를 읽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길 시나리오를 미국으로 가져갈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당신도 시나리오를 보지 못했나요?우리는 그 시나리오로 촬영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 준비해 왔습니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찾지 못해 촬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 시나리오를 찾아 저에게 돌려주시기를 희망합니다. 아무리 바쁘시더라도 한국 영화계의 발전을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시간이 촉박해 당신 아버님께 마지막 인사를 못 드린 것이 매우 가슴아픕니다. 만약 당신도 곧 한국을 떠날 예정이라면 떠나기 전에 시나리오를 되돌려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앞으로 가능한 한 자주 한국의 예술과 상황에 관하여 편지를 쓰겠습니다. 나는 조선속기사학교(Chosun Stenograph Academy)를 운영하고 있으며 미래 한국 영화계의 발전을 위해 시나리오를 쓰는 속기사이며 각 언론사와 유대관계를 맺고 있습니다.당신의 친절한 배려와 빠른 답변을 희망합니다.박송(Park Song)조선속기사협회 회장한국속기학교(Korea shorthand College) 교장서울 중구 도동 1가 103번지한국

    1076 박송이 뮤리엘에게 보낸 편지

    작성일: 1948-09-03친애하는 제이슨 양에게,바쁘신 줄 알면서도 당신의 조언을 구하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하며 당신의 노고에 감사 드립니다.1. 과거 가장 행복했던 시기는 어떤 시기입니까?2. 양성 평등에 관한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할 때 여성이 정부에 참여하고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지지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3. 남북 통일이 모든 한국인의 염원이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통일을 이루기 위해 여성은 어떻게 노력해야 합니까?4. 유엔 상임위원회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5. 어떻게 이 나라의 교육 제도를 개혁해야 합니까?6. 여대생에게 군사훈련을 시키고 국방을 공고히 할 군대 건설을 역설하여 군대를 강화하는 것에 대한 의견은 무엇입니까?7. 한국 영화를 진흥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유럽과 미국에 있는 해외 영화인들을 통해 장비와 필름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지금 우리는 다른 나라와 동등한 예술적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도 장비가 부족해 영화를 만드는데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당신은 유럽과 미국에서 살아 본 적이 있으신 데 이 점에 대한 타당한 해결책을 알고 계십니까?8. 현 세대는 기계 산업과 물리 화학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국가는 갈수록 부와 권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대책은 무엇입니까?위에 적은 8개의 질문은 잡지 편집을 위한 것으로 유럽과 미국에 있는 해외 영화인들에게 보낼 예정입니다. 당신의 고견과 답변을 듣는다면 저로서는 큰 영광입니다.박송(Park Song)대한속기사협회 회장서울 중구 도동 1가 103번지한국

    1077 Abernathy가 Muriel 에게 보낸 편지

    존 A. 에버나시(John A. Abernathy)남부 침례교 선교회(Sou. Baptist Mission)군사우체국(A. P. O.) 301% P. M.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해외선교위원회(The Foreign Mission Board)남부 침례교 협의회 소속(the Southern Baptist Convention)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몬드 본부침례교 선교 본부(Baptist Mission Headquarters)서울 충무로 5가 55번지한국 회외 전신주소 약호KOBAP 서울존 A. 에버나시(John A. Abernathy)사무국장 겸 회계책임자1955년 8월 30일제이슨(M. Jaisohn) 양필라델피아주 미디아친애하는 제이슨(M. Jaisohn) 양에게,어제 예배가 끝난 후 조셉 리(Joseph Lee)(이(Lee) 왕자의 아들)가 이(Lee) 왕자와 함께 나를 찾아와서 조셉에게 제이슨 양이 최근 보낸 편지를 전했습니다. 소포가 제이슨 양에게 되돌아가게 된 점은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제이슨 양도 아시다시피 올해 5월 30일부터 미 정부가 고용하지 않은 미국 시민들은 모두 군사우체국을 이용할 수 있는 혜택을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한국 정부가 수차에 걸쳐 자신들도 우리 미군과 같은 수준의 안전한 우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요금을 부과할 수밖에 없다고 통보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민간인들은 더 이상 혜택을 누리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이후 곧 한국정부는 우리의 우편물을 개봉하고 수표와 돈을 종류에 관계없이 모두 빼내어 별도 지시가 있을 때까지 보관하도록 우편담당 공무원들에게 명령했습니다. 이 조치로 인해 많은 충돌이 발생했고 그 결과 미 육군이 제1종 우편물에 한해 군사우편의 혜택을 민간인들에게 다시 부여하도록 결정하였습니다. 따라서 편지는 군사우체국을 통해 보낼 수 있지만 소포는 전달하거나 받을 수 없습니다. 소포를 보내는 유일한 방법은 국제우체국을 경유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방법으로 안전하게 많은 소포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포가 개봉되어 있었고 물건을 꺼내어 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아무리 신품이라도 개봉되지 않은 채로 통과하리라는 보장이 전혀 없습니다. 만약 이미 사용하고 있는 물건이라면 간단하게 원조용이라고 표시하십시오. 그러면 개봉되지 않은 채 통과될 수도 있을 겁니다.이(Lee) 왕자의 가족은 이전에 비해 요즘 경제 사정이 훨씬 나아졌습니다. 그들은 만나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그 이유는 지난 몇 년간 그들이 생활에 다소 어려움이 겪었기 때문입니다.축복이 함께 하길 기원하며 신학박사 존 A. 애버나시JAA/pbi

    1078 Sutfin이 Muriel|| Smarty|| Alice에게 보내는 편지

    작성일: 1948-09-17친애하는 앨리스(Alice), 스마티(Smarty), 뮤리엘(Muriel)에게,한 사람에게만 쓰는 편지는 아닙니다. 네 사람이 서로 얘기를 주고받자는 것이 바로 제 생각입니다.오늘 세 사람 모두 한국의 추수감사절을 축하하기 위해 이곳에 돌아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한국인들이 추수감사절이라고 부르지는 않는 것 같지만 수확이 풍성함을 즐거워하는 날이므로 나에게는 추수감사절과 같다고 생각됩니다. 모든 한국인들이 밖에서 즐겁게 놀 수 있도록 금융기관이 오늘 문을 닫았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대부분 갑자기 아프면 약국으로 달려가야 했습니다. 이때 왼발의 엄지발가락에 통증이 너무 심해 점심때까지는 돌아올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어제 나는 태평양에 있는 최악의 항구로 차를 몰고 가 사람들이 콜린즈(Collins)호에 타서 우리의 천국을 떠나 당신들의 천국으로 향하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다섯 명의 동료와 같이 있었는데 그밖에 부산에서 온 질레트(Gillette) 양과 윌리엄 가너(William Garner) 씨 부부를 비롯하여 이름도 모른 채 단지 인사만 나눈 사람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들이 부두에서 빠져나갈 때 무리 속에 끼어서 무척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집에 가고 싶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도 집에 가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지난 주 재팬(Japan)지와 인터뷰를 하려고 했지만 재팬(Japan)지에서는 내가 리스트#1에 올라 있다는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리스트#1에 대한 정보를 흘린 인사담당자에게 전화를 해 인터뷰 요청을 했습니다. 그들은 나를 막을 수는 없지만 계약종료일(1949년 1월29일) 전까지는 자유로워질 수 없을 것이며 재팬(Japan)지는 그렇게 오랫동안 나를 기다려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나에게 일종의 위로하는 말로 10월 10일 경에는 괜찮은 제의가 있을 것이며 만약 그때도 우리가 한국을 떠날 결심이라면 재팬(Japan)지는 다시 인터뷰를 원하게 될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약속을 지킨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알기 위해 그다지 오래 기다리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소문에 의하면 미국의 소리 방송이 우리에게 한국에서의 계약을 제안할 것이고 만약 우리가 가기를 원한다면 중국과 ETO의 제의도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너무 그럴듯한 제안이라 실현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우리는 수요일 저녁 9시 30분쯤 영화를 보고 나서 24군단의 클럽에 들렀습니다. 그 넓은 클럽에 단 세 쌍이 있었습니다. 한국은 이렇지는 않았는데 당신들 모두에 대해 미칠 듯한 그리움을 느꼈습니다. 도요타에서 나온 최근 규칙은 나를 거의 돌게 만들고 있습니다. 정말로 맹세코 매일 손님들에게 카드를 열 장씩 나눠주는데 제때에 카드를 한 장 받으면 저녁식사를 같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 그런 냄새나는 음식을 먹으려 하겠습니까? 일요일이나 공휴일을 제외하고는 점심이나 아침 손님이 전혀 없습니다. 이 모든 일은 불만을 품은 세 명의 도요타 종업원들이 육군참모총장에게 몰려가서 자신들이 굶어죽을 지경에 이르러 체중이 감소되었다는 둥 불평을 늘어놓았기 때문입니다. 아 그리고 다른 새로운 규칙은 식사시간은 1시간으로 아침은 7시에서 8시, 점심은 12시에서 1시, 그리고 저녁은 5시 30분에서 6시 30분 사이에만 제공된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그 세 명의 여자들이 음식이 다 식은 상태로 나온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고 나니 집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겠지요?우리 18명은 지난 일요일 함께 모여 전차를 탔습니다. 야외에서 먹을 음식을 마련해 가서 아주 즐겁게 놀았습니다. 7사단 소속 스미스 대위도 이 모임에 참가했습니다. 기차는 돌아오기에 편리했습니다. 페러럴(parallel)로 갔던 또 한 번의 유일한 여행에선 지프차를 몰고 갔는데 그날 저녁 다소 피곤을 느꼈습니다. 하트 리(Lee Hart)는 아직 한국에 있는데 사환 일을 하면서 아주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는 일본이 곧 보복 당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세 사람 모두에게 무한한 애정을 보냅니다. 뮤리엘 제이슨(Muriel Jaisohn) 필라델피아주 미디아앨리스 패리시(Allice Parrish)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사우스저머니 구역 #215 525번지유젤리아 스마트 엘렌보로(Euzelia Smart Ellenboro) N. C. RT#2

    1079 Channing Liem(채닝 리엠)이 뮤리엘에게 보낸 편지

    발신자: 뉴욕주립대학교발신주소: 사범대학 뉴욕주 뉴 팔쯔(New Paltz.)발신일: 1954-08-14친애하는 뮤리엘(Muriel) 양에게,지난 몇 일간은 매우 기분이 별로 좋지 못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당신에게 좀더 빨리 편지를 보냈을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말했던 것이 최선인 것 같습니다. 만약 내가 좀더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당신의 아버님에 대한 백(Paik) 박사의 전기를 잊어버리고 가져오지 못했다는 소식을 전하게 되어 정말 미안합니다. 틀림없이 짐 가방 속에 책을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에 도착해서 가방을 열어보니 책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파트에 세들 사람이 9월초에 입주하면 그 책을 나에게 보내달라고 할 작정입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아주 즐겁게 여름을 지내고 있습니다. 주말에도 일이 있어 내가 맡은 일에 대한 책임이 다소 무겁게 느껴지긴 하지만 말입니다.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다면 한국의 벌레들에게 온통 물어뜯길 테니까요. 지금 걱정하는 것은 가을에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학기가 몇 주밖에 안 남았는데 내년에 어디에서 살지가 아직 불투명합니다. 예일과 프린스턴 대학관계자들과 접촉해 보고는 있지만 주거가 보장될 것 같은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잘 되길 기도나 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주거문제가 해결되는 즉시 여행을 떠나 뮤리엘(Muriel) 양도 만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나는 뮤리엘(Muriel) 양의 친구에게 한 약속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친구에게 내가 여름 일이 끝나는 대로 곧 연락하겠다고 말해주겠어요?늘 행운이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채닝(channing)

    1080 아더 살링거(Arthur Salinger)가 서재필에게 보낸 편지

    파크 드라이브 318 오하이오(Ohio)주, 데이톤(Dayton)시 10작성일: 1950-06-16친애하는 서재필(JAISOHN)박사님께우리 둘의 공통의 친구인 로버트 앨런(Robert Allen) 대령에게서 방금 긴 편지를 받았습니다. 이 편지에서 그는 아사픽(ASAFIK) 협회와 지난 가을 메릴랜드(Maryland)주, 포트 미드(Fort Meade)시에서 열린 협회 모임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미국 협회의 회원으로 저는 그 협회에 대해 알고 회원이 되는 것에 대해 무척 관심이 있습니다.저는 당신이 저를 기억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저는 조선호텔에 있었고 항상 노스웨스트 항공사(North West Airlines)의 메리먼(Marriman)씨 옆에 앉아있었습니다.당신은 377번 역 병원 사령관이었던 육군 중령 허브 위트(Herb Witte)씨를 기억하시는지요? 그는 아직도 한국에 있고 오늘 그에게서 긴 편지를 받았습니다. 저를 한국과 “오랜 친구”에 대해 향수병 나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다시 그 곳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지만 지금은 퇴역했고 그 가능성은 매우 적습니다.아마도 언젠가 저는 미디어(Media)시와 가까운 도시에 머물 것입니다. 당신을 또 보게 된다면 기쁠 것 같습니다. 당신의 소식 기다리겠습니다.최고의 소망과 따뜻한 개인적 관심을 담아당신의 충실한아더 샐링어(ARTHUR SALINGER)(퇴역 육군 대령)서재필(JAISOHN)박사남쪽 가 22펜실베이니아(Penna.)주, 미디어(Media)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