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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자료

    콘텐츠/독립운동가 자료 [] 에 대한 전체 5845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1091 서재필에게 보낸 편지

    발신자: 스와스모어 대학(Swarthmore College)발신주소: 펜실베이니아주 스와스모어(Swarthmore)발신일: 1948-11-08서재필 박사님께,박사님과 함께 보낸 멋진 그날 오후에 대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한 박사님의 적절하면서도 용기를 불어넣는 말씀에 크게 힘을 얻었습니다. 새로운 결의와 용기를 가지고 이번 주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남한에서 최근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매우 실망하고 있었습니다. 대량 학살과 잘못된 길로 들어선 개혁, 민중들의 고통과 절망, 이 모든 것이 저를 절망의 나락으로 몰고 갔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너무나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특히 11월 8일자 타임지에 실린 것과 같은 이야기는 저를 밤마다 잠을 못 이루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박사님의 적절하고도 용기를 주는 말씀 때문에 살아서 싸우겠다는 신념을 다시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어두운 현실과 제가 처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공동 목표를 향해 싸우기로 결심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어려움도 고국에서 고통받고 있는 민중들에 비하면 지극히 사소한 것이겠지요. 앞으로도 저에게 한없이 귀중한 박사님의 격려 말씀을 자주 들려주시기 바랍니다.현만규(Hyun Man Kyu)

    1092 J.S.Ryang이 서재필에게 보낸 편지

    발신자: 한국문제연구소(Korean Affairs Institute)비영리기관발신주소: 뉴욕 M가 1507번지노스웨스트 버몬트 애버뉴 1029번지‘자유를 향한 헌신’ 위싱턴 5, D. C.1948년 10월 28일발신자: 서재필 박사수신자: 서재필 박사수신주소: 사우스 애버뉴 10번지 펜실베이니아주 미디어 친애하는 서재필 박사님께,박사님께서 집으로 돌아오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행복한 여행을 하셨으리라 믿으며 충분한 휴식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한국 문제가 해결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는 것은 박사님께서도 잘 알고 계시는 일이므로 박사님께서 한국에서 보고 경험한 내용에 관한 논문을 우리 연구소 간행물에 싣는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실 지 궁금합니다. 비영리 단체이기 때문에 논문에 대해 대가를 지급할 수는 없지만 한국 문제에 대해 박사님께서 공개적으로 의견을 널리 알리는 것이 매우 시기 적절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박사님과 말씀을 나눌 기회를 갖도록 워싱턴에 오시면 언제든지 저에게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소장 김용정(Yongjeung Kim)

    1093 서재필이 S.H.Chunn에게 보낸 편지

    발신주소: 사우스 애버뉴 22번지, 플라이모스(Plymouth) 홀 펜실베이니아주 미디어, 발신일: 1944-12-17발신자: S. H. 천(S. H. Chunn)수신자: S. H. 천(S. H. Chunn)수신주소: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친애하는 S. H. 천(S. H. Chunn) 선생님께10일 보내주신 편지는 잘 받았습니다. 선생님께서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신 줄은 몰랐습니다. 이러한 변화가 선생님과 가족들에게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길 기원합니다. 로스앤젤레스가 시카고보다 좋은 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기후입니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겨울에 떨며 지내지 않아도 되니까요.선생님의 자녀들이 학위를 취득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매우 기뻤습니다. 학위를 취득함으로써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선생님이 노후에 편안히 지낼 수 있도록 도울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저는 자제분들이 아버지의 땅으로 돌아가서 고국을 빈곤과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켜 정의롭고 풍요로운 나라로 변화시킴으로써 모든 사람이 신이 주신 자유인으로서의 권리를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만드는데 일익을 담당할 날이 오길 희망합니다.태평양의 접전 지역에서 오는 전황은 매우 희망적이지만 일본인들이 완전히 패망하는 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한국인들은 유엔군이 한국이나 한반도 근처로 진격했을 때 이들을 도울 준비를 철저히 갖추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한국은 조국의 자유를 다시 찾는데 제 몫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과 가족들에게 행복한 크리스마스와 알찬 새해가 되길 기원합니다.재배서재필

    1094 F.H Garrison의 편지

    발신자: 육군성발신주소: 군사의학도서관(Army Medical Library) B 스트리트 SW 7번지 워싱턴발신일: 1929-01-19발신자: 서재필 박사수신자: 서재필 박사수신주소: 잔느 병원(Jeanes Hospital)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폭스 체이스(Fox Chase)친애하는 서재필 박사님께,1월 17일자 편지에 대한 답례로 책이 도착하면 기쁘게 서명하겠습니다. 손더스(Saunders)는 벌써 답장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우리가 함께 의학을 공부했던 지난 시절의 즐거운 기억을 떠올리며 박사님이 어느 때이든 최근 나온 일본의 의약품의 일반적인 명칭과, 개발내용 및 기관 등에 관해 새로운 자료를 보내주신다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정보는 정기 간행물이나 책에서는 좀처럼 구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일본에서는 현재 매우 다양한 정기 간행물들이 발행되고 있습니다만 이 간행물 대부분이 시험적인 발견에 대해 집중하고 있어 이미 제작된 것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습니다. 1911년 도쿄에서 나온 후지가와(Fujikawa)의 책은 루흐러(Ruhrab) 박사가 번역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박사님도 아시게 되겠지만 저는 일본의 기생충 학자 특히 흡충류에 관한 연구자에 의해 나온 획기적인 연구에 관해 상당히 많은 자료를 수집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도서관을 찾는 일본인 의사에게 자주 질문을 해보지만 이제는 나름대로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는 일본의 다른 의약 분야에 대해 제가 원하는 자료를 다 갖고 있지는 못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서명)F. H. 개리슨(F. H. Garrison)미군 의무부대 소령

    1095 Clarence N. Weems|| Jr.가 서재필에게 보낸 편지

    발신자: 에어(Air) 대학교 AU 도서관발신주소: 맥스웰(Maxwell)공군기지앨라배마(Alabama)주몽고메리(Montgomery)발신일: 1948-05-07친애하는 서재필 박사님께,근래 박사님이 보내주신 편지를 받고 무척 반가웠습니다. 한국과 기타 문제의 해결을 돕는데 지금 제가하는 활동이 좀더 유용하리라는 생각에서 당분간 미국에 머물고 있습니다. 박사님과 제가 이 일의 전체적인 개요에 대해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다면 분명 박사님께서도 저와 의견을 같이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제 마음은 그곳 박사님과 함께 있으며 박사님께서 하시는 일은 무엇이든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박사님께 알려드리기 위해 동봉한 내용은 (1) 하지(Hodge) 장군에게 보내는 제 친구 임(Liem)군에 관한 편지와 (2) 한국에서의 박사님의 활동에 대해 미디어에서 폴 보이드(Paul Boyd)에게 쓴 짧은 연설입니다. 박사님께서는 이 글을 읽는 즉시 제가 보관할 수 있도록 모두 되돌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자료는 공개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그 연설문 첫 페이지의 네 번째 단락 첫 부분, 즉 ‘서재필 박사, 한국에 다시 가다’라는 부분에서 저는 박사님이 한국에 오는 과정에서 있었던 어려움에 대해 ‘사소한 절차상 지연’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 이유는 한국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보여준 서투른 처리과정 때문에 육군성이나 국무부를 비판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연된 부분을 최소화하고 한국에서 우리가 결국 얻어낸 결과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임(Liem)군은 아마도 이 내용을 보면 발끈할 것입니다. 임(Liem)군은 박사님께 허가를 내주기 위해 미 행정부 관리를 설득하려 사방으로 뛰어다니고 있다고 저에게 말했었으니까요. 우리 모두가 한 팀이고 비록 그들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을 지라도 자신이 속한 팀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무익한 일이라는 것만 임(Liem)군에게 설명해 주십시오. 저는 아직도 임(Liem)군이 더럽게 잘난 척하는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이 잘못이길 진심으로 바라며 언젠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임(Liem)군과 함께 일하도록 진심으로 노력할 것입니다. 김규식 박사를 만나신다면 절대 눈에 띄지 않게 제가 최근 그분께 보낸 편지에 쓴 열 명의 학생들에 대한 정보가 긴급하게 필요하다고 은밀히 말씀드려 주십시오. 우리가 신속하게 행동하기만 한다면 그 학생들을 미국으로 데려올 수 있을 것입니다.꼭 답장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최근 워싱턴에서 전화로 스테파니와 얘기했는데 스테파니와 폴에게 연락을 하지 못했던 것이 매우 미안했습니다. 나중에 그런 기회가 생기길 바랍니다.뮤리엘과 임(Liem)군에게도 안부 전해 주십시오.클레런스 N. 웸스 주니어미공군 소령

    1096 Rovert T.Oliver가 서재필에게 보낸 편지

    ‘아시아에 대한 조망’한국의 45개 신문발신자: 한국 태평양신문(Korean pacific Press)발신주소: 워싱턴 지국 노스웨스트 아이스트리트 1620 워싱턴 D. C. 발신일: 1949-09-08발신자: 서재필 박사님수신자: 서재필 박사님수신주소: 펜실베이니아주 미디어친애하는 박사님께,박사님을 생각만 해도 늘 기쁘며 언젠가 특별히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기원합니다. 박사님께서는 한국을 둘러싼 위험과 고난에 깊이 상심하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마침내 이승만 박사의 자서전에 전념할 수 있도록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박사님으로부터 가능한 한 상세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박사님의 적극적인 협조 없이는 제대로 이야기를 전개래 나가기란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 일이 박사님께는 큰 부담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박사님의 따뜻한 마음 때문에 정확하고 풍부한 내용을 담은 자서전이 쓰여질 수 있도록 이와 같은 부담을 기꺼이 감수하시리라 믿습니다.특별히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하는지 박사님께서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시리라는 것은 알지만 다음과 같은 내용에 대해 박사님께서 자료를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1) 18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독립협회에서 박사님이 하신 일과 그 당시 이승만 박사가 한 역할에 대한 박사님의 견해(2) 1905-10년 사이에 미국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박사님의 도움을 받아 이승만 박사가 취했던 노력(3) 1919-20년 사이에 망명 정부 조직과 발전의 배경저는 어떻게 비폭력 시위가 조직되었는지, 그리고 시위 직후 망명정부의 수립을 가능하게 만든 특별한 과정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명확한 설명은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그 당시 박사님이 필라델피아에서 하신 활동이 이 자서전에 모두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에 대한 대략적이고 부분적인 윤곽만을 파악하고 있을 뿐입니다.(4) 박사님께서 가지고 계신 이승만 박사의 편지 복사본을 모두 보내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겠습니다. 또한 일반적인 주제에 대해 기술한 노트나 신문기사를 오려붙인 스크랩을 가지고 계신다면 매우 유용한 자료로 활용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박사님께 무거운 부담을 드리게 된 것을 절감하지만 아시다시피 박사님의 적극적이고 이해심 있는 도움 없이는 정확하고 풍부한 책을 쓰기란 전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재배로버트 T. 올리버(Robert T. Oliver)

    1097 서명원의 편지

    발신주소: 테네시주 내슈빌(Nashville) 4, 하이랜드 애버뉴 2204번지발신일: 1950-04-14발신자: 서재필 박사수신자: 서재필 박사수신주소: 펜실베이니아주 미디어, W 스테이트 스트리트 330번지존경하는 박사님께,이토록 아름다운 계절에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저 또한 잘 지내고 있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저는 1950년 6월 2일에 심리학 석사학위를 받게 됩니다. 제가 한국의 정부 장학생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기간이 아직 9개월 남아있기 때문에 1951년 5월까지 마칠 수 있는 심리교육학 공부를 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뉴욕에 있는 우리 장학재단의 시행기관인 국제교육협회로부터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학업을 좀 더 연장하도록 제공할 수 있는 기금이 전혀 없다는 것에 대해 진심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이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기금은 극히 한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학생이 기금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경우 각각의 학생들이 하나의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도록 보장하기 위하여 우리로서는 학위취득을 기금 지원의 종결 시점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귀하가 자신이 전공하는 분야에서 배워야 할 지식을 모두 배우지는 못 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학생이 두 개의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공부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생각하며 돈 때문에 과정을 다 이수하지 못해 학위를 하나도 얻지 못하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다른 학생들에게 지급해야 합니다.방침이 결정된 이상 현 시점에서 1950년 6월 23일 이후 귀하가 미국 체류 시 쓸 수 있는 자금에 대해서는 어떠한 지원도 없을 것입니다. 귀하가 그 때가 되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에 대해 진심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이제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제 목적은 단순히 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박사학위까지 받는 것입니다. 하지만 상황은 매우 비관적입니다. 제에게 친절하게 조언을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따님과 아주머님께도 안부 전합니다.재배서명원(Myong Won Suhr)

    1098 J.S Ryang이 서재필에게 보낸 편지

    발신주소: 한국, 서울 필운동 285번지발신일: 1948-09-01발신자: 서재필 박사 수신자: 서재필 박사 수신주소: 조선호텔 한국, 서울친애하는 박사님께,이 곳 신문들이 수 차례에 걸쳐 박사님께서 곧 한국을 떠나 미국을 가실 예정임을 보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박사님께서도 그날 저녁 창덕궁에서 여쭈어 보았을 때 그것이 사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우리는 박사님이 고령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한국으로 돌아와 주신데 대해 매우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박사님은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전 민중에게 지금 같은 중차대한 시기에 꼭 필요한 실제적이고도 바람직한 충고를 해 주셨습니다. 지난 12개월여 동안 박사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은 앞으로 더 큰 결실을 맺으리라고 확신합니다. 더욱이 박사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이 박사님을 뵐 기회를 가졌던 우리 모두에게는 크나큰 영감과 은총을 가져다 주었습니다!현 상황에서 박사님으로서는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하고 적절한 길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어떤 특별한 여건이 조성되어 박사님이 태어난 나라이며 그 나라의 복지를 위해 박사님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해 온 곳이기도 한 한국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기로 마음을 바꿀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박사님께서 한국을 떠나신다는 것은 정말로 가슴아픈 일입니다. 특히 한국이 3천만 민족 모두의 경험과 능력과 지혜와 지식, 그리고 힘과 애국심을 필요로 하는 바로 이 시점에서 말입니다. 박사님은 위에 말한 것을 전부는 아니더라도 상당부분 가져다 줄 수 있는 위치에 계시는 것입니다!저는 오늘날 한국에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혹은 종교적 활동에서 조차 적극적인 참여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분야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저의 미흡한 의견으로도 한국의 일반국민은 물론 한국 정부의 대통령과 관리 모두가 박사님의 한국 체류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박사님이야말로 70년 전 한국에 민주주의를 처음 도입한 위대한 개혁자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 계신 분이며 한국 정부에 특별한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날 한국에서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독립은 박사님과 박사님의 동료들이 시작하여 수많은 세월동안 희생한데 따른 직접적인 결과하고 생각합니다. 박사님의 마음이 바뀌어서 한국에 남기로 결정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J. S. 양(J. S. Ryang)

    1099 서재필에게 보낸 편지

    발신일: 1949-10-04수신자: 대한민국 대통령 관저수신주소: 서울발신자: 서재필 박사수신자: 서재필 박사수신주소: 웨스트 스테이트 스트리트 330번지 펜실베이니아주 미디어시서재필 박사님께,적당한 때에 박사님의 반가운 편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편지 보내 주신 것에 감사 드립니다.박사님과 뮤리엘 양이 건강하시고, 집(미국)으로 돌아가서 사신다 하니 무척 다행입니다. 저희는 현재 유엔총회의 추이를 열심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이 합법적으로 유엔의 정식 회원국으로 인정받기를 그저 바랄 뿐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지금껏 우리가 염원한 바이고, 또한 꼭 이루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날씨가 풀리는 내년 봄, 박사님과 뮤리엘 양이 방문해 주십사 부탁드립니다.이승만(李承晩) 배상(拜上)

    1100 서재필 박사님께 보낸 편지

    발신주소: 노스 레이크 쇼어 드라이브 1212번지 301호 일리노이주 시카고 10발신일: 1949-10-06발신자: 서재필 박사수신자: 서재필 박사수신주소: 링컨 and 게일리 스트리트 펜실베이니아주 미디어시 서재필 박사님께,몇 주 전 의사에게 진찰을 받고 난 뒤, 제게 한국 문제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는 사람이 있더군요. 한국 문제라면 박사님께서 도움을 주실 듯 싶습니다만......박사님께서 서울에 있는 동안, 임영신(任永信) 여사가 유엔에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만, 박사님께서 미국에 와서 여사를 만났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박사님께서 서울에 있는 동안, 중앙여자대학을 찾아가 보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중앙여자대학은 임영신(任永信) 여사가 지난 수년간 주도적으로 발전시켜온 교육기관입니다. 학교 건물은 서울의 한강 너머 노들 강변의 서쪽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 학교에는 외관이 훌륭한 석조 건물들이 몇 채 있었습니다. 임영신(任永信) 여사가 제게 말씀하신 바로는, 부유한 미국 여인들이 여사의 일에 관심을 갖고 학교에 기증을 한 덕분에 이 학교 건물들을 세울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임영신(任永信) 여사가 여러 사람 가운데서 특히 록펠러(Rockefeller) 여사와 알드리히(Aldrich) 여사의 이름을 언급하며 학교에 후한 기부금을 냈다고 하신 게 생각나는군요. 그런데, 이 미국 여성들의 기부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사석에서 누가 묻더군요. 박사님이나 뮤리엘 양이 중앙여자대학에 대해 아는 바가 있으시면 알려 주십시오.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답변을 하는 데 도움이 될까 해서입니다.그리고, 이 학교와 기금 모금과 관련하여 임영신(任永信) 여사의 전남편인 한순(Soon K. Han) 씨에 대해서도 아시는 게 있으시면 알려 주십시오. 기금 모금에 관한 정보는 다른 사람에게 흘리지 않을 것이며, 박사님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일도 없을 터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제가 여기로 돌아온 뒤, 한국 학생들의 대규모 모임은 없었습니다. 현재 시카고 대학 예술학과에 박사님과 성이 같은 서희자란 사람이 등록해 있습니다만, 인터내셔날 하우스(외국인학생 기숙사)에는 살지 않더군요. 서희자 씨는 가족과 함께 있는 모양인데, 내일 이사를 가는 터라 그 여자분의 다음 주소도 정확히 모릅니다. 혹여 뮤리엘 양이 알고 싶어할 지도 모르니, 나중에 보내 드리겠습니다.(서명) 테릴 E. 프라이스(Terrill E. Price) 배상(拜上)미국, 콜로라도주테릴 E. 프라이스(Terrill E. Pr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