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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자료

    콘텐츠/독립운동가 자료 [] 에 대한 전체 5845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2471 윌콕스가 하와이 중한민중동맹 리한(이용직과 한길수)에게 보낸 서한(1935.5.18)

    안녕하십니까. 입법부에 1935년 3월 27일에 제출되고, 상원 교육 위원회(Education Committee of the Senate)에서 인용된 중한민중대동맹의 청원서와 관련한 15번 째 문서의 문의에 대한 응답으로, 청원서는 위원회에서 예전과같이 고려 되었다고 전해드립니다. 이에 대해 어떠한 조처도 취해지지 않았고, 청원서는 회기 마감에 상원으로 돌려져 보관 중입니다.

    2472 일본방송협회가 발행한 “해외방송” 팜플렛(1935.6.1)

    설립: 1923년간부회장: 고수케 이마이(Gosuke Imai)씨비서: 요시히로 마나카(Yoshihiro Manaka)씨회원: 각 도(prefecture)의 해외 단체들, 그리고 해외 확장의 지식이나 경험이 있는 사람들로 구성. 단체 - 27. 개인 - 17.목표: 단체와 각 도 사이의 관계에 협력하고, 이 단체들의 개발을 안정되게 한다.업무1. 일본 이민자들이 거주하는 영토의 상태에 대한 감사, 연구, 그리고 정보2. 해외 문제에 대한 대중의 고려를 자극하기 위해 다양한 일3. 해외 확장을 위한 지도와 교육, 그리고 가능성 있는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것을 원조4. 여러 도의 해외 단체를 원조5. 다양한 동종 단체와 접촉하고 단결6. 해외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과 친선 유지와 관련된 일7. 정기간행 신문 출판8.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모든 업무본부: 산시 카이칸(Sanshi Kaikan), No. 7, 1-촘(chome), 유라쿠초(Yurakucho), 코지마치-쿠(Kojimachi-ku), 도쿄.타키 오쿠무라(Taki Okumura) 목사, 하와이의 일본어학교의 설립자(1935) "오늘날 세력의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일본 사회는 더더욱 일본화 되어가는 것 같다." …(원본누락)…

    2473 패링톤이 리한(이용직과 한길수)에게 보낸 서한(1935.1.26)

    출판인인쇄인 - 석판 인쇄공

    2474 LA Times 칼럼니스트 카(H. Carr)가 리한에게 보낸 서한(1935.3.29)과 한길수의 메모

    2475 중한민중동맹 대표 리한이 하와이 상원 의원들에게 보낸 서한(1935.3.27)

    1935년 정기국회

    2476 중국 남경에 있는 김규식이 한길수에게 보낸 서한(1935. 6. 1)

    귀하의 전보는 제때에 잘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곳에 참석할 수가 없거나, 참석 여부에 대한 즉각적인 대답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 문제를 다른 관계자들과 상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어제 귀하께서 지난 5월 22일에 보내주신 편지와 동봉한 것과 함께 받았습니다. 저도 감사 드립니다. 또한 저는 코네이션(Konation)으로 아래와 같은 말로 전보를 보냈습니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인물인 한길수를 지원하라 - 규식 이것이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는 저도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알리려고 귀하께도 동시에 전보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대개 급보를 보낼 상황에서만 해당되던 대로, 입금이 되어 있지 않으면 전보를 "가지러 와서" 보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곳에서 호놀룰루로 전보를 보내거나 무전을 보내는데, 단어 당 3.05달러가 든다는 것을 알고, 이를 SKPL의 자금으로 지불할 수 없어서, 저는 편지를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결국에는 이 방법이 더 만족스럽게 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코네이션(Konation) 사람들의 귀하께서 대한 태도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으며, 이에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사실 그들 중 몇몇은 저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 중 어느 누구에게도 답장을 쓰지 않았습니다. 저와 여기에 있는 저의 모든 동료들은 귀하와 깊이 공감하고, 이 사안을 대표하는 귀하의 꿋꿋함과 희생정신에 감탄합니다. 다시 청원서 이야기로 돌아가서, 우리는 귀하께서 동맹을 대표하여 그것을 제출할 줄은 정말 예상 못했습니다. 우리는 귀하께서 …(원본누락)…의 이름으로 제출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귀하께서 이제까지 한 어떤 것도 철회하거나 취소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만약 가능하면 귀하께서 지역 당국자를 만나 직간접적으로 완강한 요소들을 압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일한 효과적인 방법일 것입니다. 또한 귀하께서는 여기에 있는 특정 지령을 제외하고는, 절대로 귀하께 보내진 신임장을 다른 목적으로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시도하려는 진짜 계획에 대하여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절대 누설해서는 안 됩니다. 귀하께서는 표면상 활동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분명 우리의 주요 업무를 상당히 조심스럽게 처리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그 코네이션의 태도에 관한 모든 것이 상당히 불행한 일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무언가가 될 수 있다고 계속 믿어 봅시다. 저는 귀하께 언급하신 그분들과 연락하기 위해서 노력을 해 보겠으며, 귀하께 그에 대한 경과를 알려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이는 시간이 상당히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므로 저에게 즉각적인 답신이 없더라도 너무 노심초사하지 마시고 귀하의 일에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결국에는 선의가 이길 것이라고 믿어 봅시다.행운을 빌며, 진심으로 존경을 표합니다.

    2477 한길수의 한인지하운동보고서(1935.12.5)

    하와이 해군정보국 두 명의 한국인 요원들은 일본 위임통치를 받는 섬으로 보내졌다.임무 목표:1. 일본 군대와 해군활동2. 아멜리아 어하트(Amelia Earhart)- 어디에 있나, 죽었나 살았나? 두 명의 한인 지하운동 요원들이 위임통치섬으로 보내졌다. A. 한국 태생. 일본에서 자람. 31세. 북태평양 수산 무역을 하고 있는 초안 마루 배에서 2년간 근무. B. 한국 태생. 일본에서 자람. 35세. 북오스트레일리아와 캐롤라인 섬에서 운영하는 아마직 마루 배에서 어부로 5년간 일함. 위임통치섬에서 2년간 지냄. 이 두 명은 일본 기업의 소유인 450 톤의 트롤 어선, 신츠 마루 배에서 일했다. 1935년에 신츠 마루는 일본 제국 해군에 의해 캐롤라인과 위임통치를 받는 섬에서 조업하라고 지정되었다. 이 보고서는 미국 해군 호놀룰루 해군정보국에 제출되었다.해군정보국과 한길수 사이의 오해 해군정보국이 일본 내 한인 요원들의 승인을 얻어 이 임무의 전반적인 비용을 알고 싶어 했을 때, 나는 호놀룰루 해군정보국 관리가 승인한 1,200 달러를 요구했다. 그러나 해군정보국은 돈을 조금씩 나눠 총 300 달러를 줬다. 그 임무가 끝나자, 해군정보국은 그 차액을 주기를 거부하고 300 달러 ···(원본누락)···

    2478 " 일본인계 미국인의 일본군 징병에 대한 보고서(호놀룰루 니푸지지|| 1936.5.22)"

    호놀룰루 니푸지지(Nippu Jiji) 1936년 5월 22일

    2479 하와이 공공교육부에서 한길수에게 보낸 서한(1936.11.18): 태평양문제연구회(IPR) 미국인위원회 서기에게 보낸 서한(1936.6.30) 포함

    2480 “일본인어학교가 직면한 새 문제”에 대한 신문기사(1936.4.25)

    새터데이 노트(Saturday Notes)야수타로 소가(Yasutaro Soga) 4/2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