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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자료

    콘텐츠/독립운동가 자료 [] 에 대한 전체 5845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2461 한길수가 미대통령 루즈벨트에게 보낸 서한(1934.3.8)

    기밀

    2462 캘리포니아 합동이민위원회 맥클래치(V.S.McClachy)가 하와이 호놀룰루의 리한(이용직과 한길수)에게 보낸 서한(1934.4.18)

    2463 중국 남경의 한중서(韓中書; 가명)가 리한(이용직과 한길수)에게 보낸 서한(1934.6.11)

    귀하가 최근에 보내신 편지 두통은 기쁘게 잘 받았습니다. 편지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스크랩까지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코포고(Kopogo)의 신임장과 관련하여 난징에 있는 저의 두 개의 대학교와 상의해 본 후, 저는 신임장을 그곳에서 직접 귀하께 보내달라는 요청을 하며, 항초우(Hangchow)에 있는 본교에 편지를 썼습니다. 저는 그들이 귀하를 하와이 특별 위원장(주하외래특파원-駐夏外來特派員)으로 지목해 주기를 바라는 저의 제안을 들어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리라고 믿습니다. 이는, 귀하도 아마 알고 계시겠지만, 미국 외무위원장(주미외무행서 외무위원장-駐美外務行署 外務委員長)으로 지명된 리 박사(Dr. Rhee)와의 오해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일을 이런 방식으로 처리한 것입니다. 저희가 공식 편지지가 없는 관계로, 신임장을 영어로 보낼 수 없게 되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따라서 귀하는 언제든지 필요할 때면, 스스로 영어 번역본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지역 중국 신문에서 귀하가 필요하거나 관심을 가지실 만한 뉴스 아이템 몇 개를 동봉합니다. 우리는 KNA의 현재 상황에 대해서 무척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기를 진정으로 바랍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버텨왔던 신문이 무책임하게 관리 되거나 의미 없이 폐간 된다면 매우 안타까운 일이기 때문에, 저는 귀하가 어느 정도 NH의 관리와 편집에 참여해 주셨으면 합니다. 또한, 우리 툰길 통망(Tungil Tongmang)이 KNA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었던 것을 귀하도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조직이 어떤 이유에서든지 해산이 된다면 이 섬에서 우리의 이해와 행동에 상당한 타격을 줄 것입니다. 왕해공(Wang Hai-kong), 일명 신익희(Hsin Ik-heui)(왕해공, 본명 신익희 군-王海公, 本名 申翼熙 君)과 저는 그 문제에 대해 긴밀히 이야기를 나눴고, 그는 만약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와서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그에게 초대장을 보낸다면, 그 섬까지 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들은 교통비와 그곳에 있는 동안의 경비를 그에게 지불해야 합니다. 귀하께서 이 문제를 고려해보시고, 몇몇 사람들과 긴밀하게 의논해 봐 주십시오. 저는 비공식 자격으로 유럽과 미국의 감사(inspection) 투어를 갔던, 텡 치에(Teng Cheih)(등걸-騰杰) 장군을 소개하는 편지를 지난 2월에 귀하께 보낸 적이 있습니다. 텡(Teng) 장군은 치앙(Chiang) 장군에게 우리 훈련 학교와 관련하여 우리의 활동에 있어서 가장 가까운 보조자이자 듬직한 지원자입니다. 텡(Teng)은 6월 말이나 7월 초에 미국에 있을 것입니다. 그는 아시아로 돌아가는 길에 호놀룰루에 들릴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오면 연락을 시도해 보시고, 그가 그곳에 있는 우리의 다른 친구들, 특히 M대령, 내가 귀하께 보낸 편지와 비슷한 편지를 보냈던 사람, 그리고 몇 주 전 여기에 미국을 위해 남겨진 장군참모 사무실의 시아오 푸(Hshiao Pu)(소발-蕭勃) 대령과 연락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마도 귀하가 그를 이미 만나봤을 수도 있습니다. 나중에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이 C.K. 씨는 제가 두 개의 수표와 우편환으로 건네준 미화 140달러를 저에게 송금해주지 않는 나쁘고 비열한 수법을 썼습니다. 이는 재정적으로, 그리고 다른 면에서 저를 아주 난감한 상황에 빠트렸습니다. 얼마 전에 김 헨리(Henry) 씨는 제게 다른 문제들이 해결된 후에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고 말하셨습니다. 그 후 비록 제가 또 다시 편지를 보내봤지만, 저는 그에 관하여 아무 소식도 듣지 못하였습니다. K. 감독파(Episcopal) 교회의 목사는 이 문제에 관하여 저에게 문의를 하셨고, 이 씨의 무리 중 누군가에게 제가 K.W.S.나 그러한 조직에게 받은 약 100달러에 관해 영수증이나 어떤 보고도 하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실 저는 둘 다 했습니다. 그 아이템은 이곳의 S. K. 동맹의 자금에 대한 저의 공식적인 보고서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복사본이 하와이와 미국, 그리고 S. K. L.의 공식 영수증은 다른 연수증과 함께 보내졌습니다. 저는 또한 김H 씨에게도 마지막 편지에 이 문제에 대해 썼습니다. 저는 정말 이 씨 혹은 누군가가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귀하와 감독주교 교회 . …(원본판독불가)…목사님이 이를 찾을 수 있기를 바라고 가능하다면 저와 S. K. 동맹을 위해서 해결해 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저는 동맹에 다른 영수증을 포함한 이 합계를 보고를 했습니다. 그러므로 저도 개인적으로는 책임이 있습니다. 저는 태평선(Tai Pyung-sun), 김이만(Kim Yih-man), 와시마(Washima), 와이루아(Wailua)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편지를 썼지만 아무도 답변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 쪽의 상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제가 긴박한 몇 가지 사안에 대해서는 다 짚고 넘어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학교 일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이만 마치겠습니다. 귀하께 제가 이 편지를 보내지만 답장이 없는 이원순을 포함한 그곳의 우리 친구들에게 좋은 추억을 상기시키길 바랍니다.추신: 다음의 주소로 편지를 보내주십시오.중국 난징치황치에(Chihwangchieh) 우체국사서함 14한 C. S. 귀하미국 우편 경로를 통해중국남경기황가우체국 사서함 14호한중서(韓中書) 선생 귀하

    2464 리한(이용직과 한길수)이 하와이 공공교육부 감독 홀(Oren E. Long)에게 보낸 서한(1934.9.14)

    2465 하와이 일어학교 보고서(1930년 중반)

    지역 조직을 통한 하와이 내에 일본화 행동과 매우 관련이 깊은 인물이며, 전직 일본의 영사 장군이었고, 현재는 일본 외국문화부의 우두머리인 카네카주 오카다(Kanekaju Okada)는 1934년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거의 눈이 먼 채 열광적으로 서양의 문명화를 채택하였습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의 문화를 새롭게 하고자 하는 충동이 생겼습니다. 이러한 재건설은 현재 하와이에 있는 일본인들에게 화급을 요하는 중요한 문제 입니다." 신류(Shinryu) …(원본판독불가)…스님은 섬 전체의 강연과 3-27-34 조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저는 일본 사회의 일본어학교와 불교 법당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것들은 민족 의식의 온상이며 일본 문화와 정신의…" 일본인 기독교 출판물인 파라다이스 타임즈(Paradise Times)는 1935년 1월에 다음과 같은 글을 실었습니다. "오늘날, 하와이에 있는 일본인들은 일본의 색깔을 완전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의 민족주의의 부활에 대한 반응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일본은 더더욱 일본화 되어야 합니다. 많은 일본 학교들이 일본화 되었습니다. 황제칙서(Imperial Rescript)는 대담하게 읽히고 가르쳐졌습니다 ... 몇몇 선생님들은 자신들이 일본 정신을 일어를 매개로 가르치겠다고 공공연하게 선언했습니다." 1935년, 타키 오쿠무라(Taki Okumura) 목사 (기독교) "오늘 세력은 완전히 성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더더욱 일본화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하와이에 있는 일본어학교에서 배우는 일본 제국칙서에는 "우리는 세계 전체에 우리의 수도를 지을 것이며 온 세상을 우리의 영토로 만들 것입니다."라고 쓰여있습니다. "해외 주민 교육 위원회(The Institute of Oversea People′s Education)는 일본의 정신을 해외 일본인 2세들에게 주입시키기 위한 조직입니다. 달리 말해, 2세들을 그들이 거주하는 곳에 두십시오. 하지만 그들이 일본의 정신을 잊게는 하지 마십시오. 이런 방식입니다. 살 때는 일본 제품을, 투표할 때는 일본인들에게 친절한 정치인을 고르는 것입니다."(이시(Ishii) 대통령의 성명 - 7 / 2 / 1934) 비스카운트 이시(Viscount Ishii)는 우리의 랜싱(Lansing) 주장관을 이해 시킨 사람이며(유명한 "랜싱-이시(Lansing-Ishii)"조약), 태평양 관계 협회의 일본 고문의 회장이며, 최근에 일본 국제 연합을 외무부 반공식 조직으로 합병 시킨 사람이자, 해외 일본인 협회의 회장입니다. 위에 언급된 조직의 목표는 "해외에 거주하는 일본의 어린이들에게 그들이 미래 해외 발전의 기반이 되게 하기 위해 교육한다. 그리고 이 아이들의 교육문제를 해결함으로 해서, 해외 확장을 독려한다."입니다.하와이 일본어학교 성장:미국 공립학교 출석률:일본어학교192119,31118,612192528,36319,648193039,11538,162193545,12142,665194046,67043,1509학년을 위한 독자들28과pp. 169-171"일본어의 힘" "…미국과 브라질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은 일본어학교를 설립하였고 그들은 그들의 자녀에게 일본어를 가르칩니다. 우리 나라는 대가 끊이지 않은 천황 하에 있으며 세상에서 그 어느 나라와도 비길 대 없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전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언어는 또한 우리 나라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어는 우리 선조의 감정과 정신 사이에 결혼 반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한 오늘날 한 몸의 시민으로써 묶여있습니다. 일본어가 만약 우리나라 언어가 아니었다면, 우리의 이상은 오늘날 여기저기로 흩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국가적인 어려움의 시기에 전진하고, 우리의 황제를 행복하게 하기위해 "만세" 부르고 일어는 …(원본판독불가)… 언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방법으로, 일본어는 나라와 시민을 함께 끌어 안습니다. 일본어를 잊은 사람들은 일본인이 아닙니다. 일어를 존중하십시오. 일본어를 사랑하십시오. 나라의 언어는 시민의 정신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교과서 5, 2과, - 번역 우리 황실(Imperial House)의 조상이 이 나라의 시초였습니다. 그 때부터 백성들은 우리의 눈부신 국가를 부양하고 보호하는 노력해 왔습니다. 충성심과 나라의 진보를 위한 애국심으로 한 몸, 한 마음, 한 가족으로 모두가 힘썼습니다. 우리 나라는 가장 오래된 혈통을 가진 국가 입니다. 그 위엄 있는 나라는 다른 국가들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신성한 국가는 몇 년 간의 번영을 통해 더더욱 진보하였습니다. 또 다시, 사람들은 단결 정신의 힘을 위해 하나로 뭉칩니다.교과서 5, 1과 우리의 거룩한 지도자는 우리의 제국을 오랫동안 지배해 오셨고, 우리는 그 분의 신하입니다. 천황의 조상인 태양의 여신은 어디에서나 큰 존경을 받아왔습니다. 아주 먼 고대 시기에, 태양의 여신 니니지 노 미코토(Ninigi No Mikoto)는 그녀의 자손에게 내려가서, 그에게 앞으로 나아가 일본의 섬들에 제국을 세우라는 신성한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제국이 하늘과 땅과 함께 존재했기 때문에, 신성한 명령이 내려진 후 국가는 발전하고 번영했습니다. 우리 천황께서는 우리 나라를 영원히 창건하셨고, 최초에 거룩하게 내려오신 지도자 진무 천왕(Jinmu Tenno)의 즉위식에서부터 바로 지금 이 순간까지 이천육백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황실은 우리 나라의 중심입니다. 성공한 지도자들은 모두 나라의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했습니다. 그들은 훌륭한 부모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된 마음이 그 분들에 대한 충성심과 애국심의 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줍니다. 이 같은 왕족 혈통이 있는 나라는 없습니다. 당신이 일본인이라는 사실에 감사하고,제국의 가족을 숭배하십시오.교과서 5, 27과, 요이 니뽄 진(Yoi Nippon Jin) [훌륭한 일본인] 우리의 훌륭한 일본 제국의 거룩한 왕께서는 만 세대를 지배해 오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분의 신하이며, 그분의 신하로서, 우리는 우리의 조상이 온 길을 확고하게 계속해 나가야만 합니다. 우리와 비교할 만한 나라는 없습니다. 천황와 황후에게 충성하는 거룩한 정신을 지켜나가고, 그분들의 목표를 달성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 나라의 정부와 정부가 직면한 문제를 이해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의무이자 업무이기에 우리는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합니다. 큰 마음으로 하십시오. 언제나 당신의 나라와 천황를 사랑하십시오. 당신의 몸을 단련하시고, 모든 것을 공부하시고, 근면하십시오. 당신이 배운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만약 당신이 이 모든 것을 행한다면 당신은 훌륭한 일본인이 될 것입니다.

    2466 해군 정보부 엘리스(Hayne Ellis)가 리한(이용직과 한길수)에게 보낸 서한(1934.5.5)

    Op-16-B-2A8-5 / EF37 / 14 N. D. (4-21)A-7 / P8 /중한민중대동맹(4-21)

    2467 리한(이용직과 한길수)이 하와이 학교위원회장 콜린스(George M. Collins)에게 보낸 보고서(1934.12.11)

    2468 일본의 해외방송 관련 기사(연도미상)

    일본방송협회(The Broadcasting Corporation of Japan)는 이미 단파로 만주국, 조선, 호주로 매일 프로그램을 5시간 내지 9시간에 걸쳐서 방송하고 있고, 그 반향은 의외로 크며 북미, 남미 모든 지방, 하와이, 오스트레일리아 기타 지역에서의 청취보고는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습니다. 우리 일본방송협회는 이 좋은 성적을 거울삼아 또한 우리 국제관계가 나날이 복잡해 지고 있는 오늘날, 잘못된 인식과 고유의 문화를 선양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기 때문에 이번 방송개시 10주년 기념으로 해외거주 동포 및 모든 외국인을 위하여 특정시간을 마련하여 매일(연중 무휴)특별해외용 프로그램을 단파로 방송하게 되었습니다. 이 해외방송은 적어도 다른 지역에서 분투하는 동포여러분에게 위안이 되고 격려가 되기를 바라며, 또한 우리나라에 대하여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는 외국인에게 올바른 일본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일조하리라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충분히 이용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람과 동시에 청취성적의 보고와 프로그램 기타 에 대한 희망을 계속해서 보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방송시간 해외방송을 실시함에 있어서 가장 주의해야 하는 것은 시각의 문제입니다.이미 호주, 만주국용 단파가 수신되고 있는 여러분에게 다양한 충고를 받고 있지만, 시차의 관계상 전체적인 의견에 따라 최적의 시간을 선택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재외동포 대다수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매일 일본시간으로 오전 10시 반부터 1시간동안 방송하게 되었습니다. 각 지역의 시간은 다음 표와 같습니다.일본(동경) 송출 동경시간 오전 10.30-오전 11.30브라질(리오데자네이로) 전일 오후 10.30-전일 오후 11.30아르헨티나(브에노스아이레스) 전일 오후 9.30-전일 오후 10.30칠레, 벨기에 전일 오후 8.30-전일 오후 9.30워싱턴, 뉴욕 전일 오후 8.30-전일 오후 9.30시카고 전일 오후 7.30-전일 오후 8.30멕시코 전일 오후 6.30-전일 오후 7.30북미태평양연안 및 캐나다 전일 오후 5.30-전일 오후 6.30하와이 전일 오후 3.30-전일 오후 4.30구주방면 당일 오전 1.30-당일 오전 2.30중화민국, 시암, 필리핀 일본시간과 30분 내지 2시간의 시차네덜란드령 인도, 해협식민지, 호주 등 방송시설 일본방송협회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국제전화주식회사의 이바라기(茨城)현 명기(名崎)송신소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명기(名崎)송신소 위치 이바라기(茨城)현 결성(結城)군 명기(名崎)촌, 북위 36도 10분 44초, 동경 139도 51분 0초.송신기 20킬로와트 사용파장 및 주파수 JVH 20.55미터, 14,600킬로사이클을 사용합니다.주파수를 변경할 때는 사전에 방송으로 예고합니다. 방송종목 방송종목에 대하여는 정확한 뉴스, 흥미있고 유익한 강연, 일본고유의 음악 등을 편성하여 방송하고 있지만, 다양한 프로그램을 위하여 양악, 중계방송, 신판 레코드도 방송합니다.

    2469 " 브래들리(Willis W. Bradley|| Jr.)가 한길수에게 보낸 서한(1934.10.18)"

    2470 하와이주재 일본총영사관 서기관이 한길수에게 보낸 서한(1934.5.26)과 일본인 미국시민권 획득조사보고서(1924~1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