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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인국민회

    대한인국민회 에 대한 전체 4117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601 대한인국민회 멕시코 메리다유카탄 지방회 보고 제44호(1945. 11. 26.)

    1945년 11월 26일 대한인국민회 멕시코 메리다유카탄지방회 위원장 유필준이 국민회 지방총회 총무 조원두에게 보낸 보고서 제44호이다. 1) 메리다지방회가 국민회 지방총회에 재무결산서(1946,11까지), 사업성적결산서, 실업성적서, 인구조사표, 의무금·군사운용금·독립금·인구세·추도금·기타 성금 납부자 명단과 금액 등 각종 재정과 명록(名錄) 서류, 1946년도 신임 임원 명단 등을 부송하며, 2) 재정 총합 2045.50원을 환표번호 23761호로 부치니 추심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메리다지방회의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 문건이다.

    602 대한인국민회 멕시코 유카탄 파출위원 김기창이 국민회 중앙총회장 윤병구에게 보낸 보고 제7호(1919. 11. 8.)

    1919년 11월 8일 대한인국민회 멕시코 유카탄 파출위원 김기창(金基昶)이 국민회 중앙총회장 윤병구(尹炳求)에게 보낸 보고 제7호이다. 1) 유카탄지방에서 동포들을 대상으로 인구세를 거두어 중앙총회에 우편환으로 보냈으며, 2) 인구세 납부자를 기록한 출금표를 별지로 만들어 상세히 보고하니 살펴보기 바란다고 하였다.

    603 대한인국민회 멕시코 유카탄 파출위원 김기창이 국민회 중앙총회장 윤병구에게 보낸 보고(1919. 11. 11.)

    1919년 11월 11일 대한인국민회 멕시코 유카탄 파출위원 김기창(金基昶)이 중앙총회장 윤병구(尹炳求에)게 보낸 보고서이다. 1) 미국인 몰레이(J, I. Mollay)는 뉴멕시코주 출신의 장로교 선교사로 유카탄에 와서 7-8년간 목회와 교육 사업에 큰 공을 세웠으며, 2) 몰레이가 한국인과 특별한 인연은 없이 친하게 지내던 차에 한국 독립운동이 개시되자 멕시코 언론에 한국에 관한 좋은 이미지를 홍보하고 미화 5$를 성금으로 낸 사실을 있으며, 3) 몰레이의 성금을 우편으로 보내니 추심하기 바라며, 몰레이에게 감사의 편지라도 보내주는 것이 어떠한가 요청하였다.

    604 김기창이 백일규에게 보낸 서한(1919. 10. 7.)

    1919년 10월 7일 대한인국민회 멕시코 유카탄 파출위원 김기창(金基昶)이 백일규(白一圭)에게 보낸 편지이다. 1) 정부에 대한 인민의 세금 납부는 당연한 일이나 유카탄 동포들은 생활난으로 인해 세금 납부가 어려운 실정이니, 2) 멕시코 유카탄지역에서 9시간 노동을 하면 미화 50센트를 받지만 물가는 매우 높아 동포들이 노동수익으로 일상생활도 어려운 처지이며, 3) 동포들의 어려운 처지를 고려해 인구세를 멕시코화 1원(미화 50센트)으로 반포해 거두는 불가피한 상황을 고려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605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의사부 보고서(1941.4.)

    1942년 4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의사부가 작성한 보고서 중 집행부의 제안 부분만을 떼어놓은 문건이다. 문건에는 1) 비상시기의 일반 운동비 마련을 위해 재미한인에게 1인당 5원, 10원, 20원, 20원 이상액의 전시부담금을 내게 하며, 2) 일체의 재정을 집행부로 집중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606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의사부 위원장 이원순이 재미한족연합위원에게 보내는 보고서(1942.3.15.)

    1942년 3월 15일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의사부 위원장 이원순(李元淳)이 재미한족연합위원 제1회 전체위원회에 연합위원회 조직 후 의사부의 사업성적을 간략히 전달한 보고서이다. 1) 제정된 결의안에 따라 12인으로 출범한 의사부 사무원수를 16인으로 늘렸으며, 2) 독립성금 모금액수가 1만 원에 달하고 예약인수가 1천여 명에 달하며, 3) 지방마다 주무원과 수봉위원을 배치하여 시무케 하고 있으며, 4) 중한민중동맹단과 차신호는 재미한족위원회에 방해가 되며, 5) 하와이의 육해군 장교들을 초청 대접했으며, 6) 일제의 진주만 공습 이후 하와이 육해군 당국과 적십자회와 교섭을 벌였던 사항 등 6가지를 보고하였다.

    607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 보고서(1942.5.)

    1942년 5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가 설립 1년간의 활동상을 정리하여 보고한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 보고서다. 보고서에는 1941년 5월 18일 제1회 위원회 회의를 개시하여 집행부를 조직하고 임원을 선임한 사실, 각 단체에 공문을 보내 독립금 수봉위원을 1인씩 천거 보고하게 한 사실, 1941년 6월 15일 로스앤젤레스에서 민중대회를 개최하고 연합회의 시업진행을 공포한 사실, 7월 24일 회의에서 조선의용대후원회 대표 이경선(李敬善) 대신 신두식(申斗湜)을 집행부 서기로 대리케 한 사실, 하와이 의사부에 집행부 결산서를 보내고 동시에 의사부 결산서를 청구키로 한 사실, 이승만이 요구한 한미친우회 조직 운동비를 지출하고 이를 의사부에 통지한 사실 등을 비롯하여 시간순으로 총 27개 집행부 활동상이 수록되어 있다.

    608 재미한족연합위워회 재정 지출 보고1942년 경)

    연월일 미상의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재정 지출 관련 메모이다. 1) 미본토 2만 원 중 집행부 사무 진행경비 5천 원, 외교위원부 지출 5천 원, 임시정부 송부 1만 원 등이며, 2) 하와이 4만 원 중 의사부 경비 5천 원, 준비금 5천 원, 외교위원부 지출 1만 원, 임시정부 부송 2만 원이다.

    609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제1차 전체위원회 준비회의 회의록 초고(1942.4.7.)

    1942년 4월 2일 열린 재미한족위원회의 의사부와 집행부 연합회의인 의집연석회(議執聯席會) 회의록 초고이다. 1) 의집연석회 참석자는 이원순, 조병요, 김호, 송종익, 김병연, 송철 등이며, 2) 의집연석회 참석자들은 4월 2일 준비회의에서 4월 3일부터 열리는 집회를 제1차 전체위원회로, 작년 집회를 해외한민족대회라고 이름을 붙이고, 제1차 전체위원회(임시서기 홍언)를 4월 3일 오후 3시에 개최하기로 했으며, 3) 경제난으로 워싱턴을 떠날 형편인 장기영에게 200원을 지불해달라는 이승만의 전보에 대해, 200원을 경비로 지원하겠지만 주차구미위원부 협조원 인선문제는 장차 전체위원회에서 결의할 것을 이승만에게 통지하게 하였다.

    610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제1차 전체위원회 회의록 초고(1942.4.7.)

    1942년 4월 3일부터 4월 7일까지 개최된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제1차 전체위원회 회의록 초고이다. 제1차 전체위원회는 4월 3일 오후 3시에 개회하여 의사부와 집행부의 보고를 듣고, 이어 의사부와 집행부가 제출한 제의안을 토의하는 것을 시작으로 회의를 진행하여 4월 7일까지 진행되었다. 이 회의록 초고에는 회의 1일차부터 5일차까지 5일간 제1차 전체위원회에서 논의 가결된 다양한 사항들이 간략히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