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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자료

    콘텐츠/독립운동가 자료 [] 에 대한 전체 5845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1601 대한독립 1주년 기념축하 경고문

    반만년 동안 열성 열종(列聖 列宗)이 심한 육혈(肉血)을 진하고 수호보존하며 금수강산은 강권의 허탈을 피하고 작소우거(鵲巢嵎据)의 세와 위하는 반만년 동안에 내조내부의 비호애육(庇護愛育)을 수하고 증조번영하며 신성묘?는 타인의 ?육과 객반의 주와 위를 욕에 당하며 명호비부(鳴呼悲夫) 우리등은 불충의 민으로서 부당의 자와 하심의 땅에서 천지신명의 소격을 우러러 어떤 면목에도 지하선인의 영혼을 향해서 어떤 녹치(鹿恥)를 해도 독립만국의 자유민에 대하여 한행황?천재의 긍축함에 있어서 천백세조령의 음우하는 것을 중복의 시운 부활의 기회로 여겨 탐차인복 10년 인으로 우리 2천만 동포는 우리의 자유 우리민족의 정신을 세견하고 결연히 의?하며 필연으로서 절규해서 세계에 주목을 끌어들여 우리들의 행동을 문명적으로서 정의적이 되고 천하에 여혼유사이래 미증유의 문명전이 되고 이로서 ?령?폭 해서 무의?도의 피적은 우리의 정의군을 폭민으로 하고 있으며 총을 발포하고 검을 사용하여 형제자매의 사상자 만명을 넘고 철제하에 감시를 받고 있으며 부자유의 대가가 중하고 여차 부르는 우리들은 세계에 대하여 조국의 대한 자하에 관하여 차위를 면하며 수자유독립의 대가는 무긍치를 요구함에 있어서 우리동포를 유?하고 강토를 회복하며 이와 같이 천만년 기념의 날에 있어서 우리형제는 이날을 경축하기 위해 방천지에 우리 신총검에 있어서 우리용의를 다시한번 발한다.실행규약1. 남녀학생의 휴교는 물론 우리동포는 일제히 자유만세를 절규할 것 1. 상업가는 폐점할 것 대한민국 2년 3월 1일 대한민국회

    1602 경성시찰단원 감상 보고서 송부

    지난달 30일자 기밀(機密) 이후 제43호에서 경성시찰단원의 이면의 감상을 먼저 송부하였고 이번에는 시찰단원 일동이 발표한 감상 보고서가 제작되었으므로 단원 일동이 경성에서 촬영한 사진 한 장을 동봉하여 별책과 같이 송부하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당일 회장의 모습은 아래와 같습니다.기 一. 거행일시 대정 7년(1918년) 5월 26일 오후 1시一. 폐회시각 오후 6시一. 회장 조선민공회(朝鮮民公會)一. 개회사 스나가(須永) 통역생 (별책과 같음)一. 감상 보고서 단원 전부( 별책과 같음)一. 청중 연일 이슬비가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시내 일본인 20명 조선인은 시내는 물론 20리 이상 멀리서도 온 사람이 있고 그 수 150명 정도임一. 회장의 모습 회장에는 천정에 미국기를 걸어 놓았고 네 기둥에는 홍백 천을 둘러 광채를 더하게 했다.혼춘보통학교의 탁자 및 의자 등을 이용하여 보고자는 교단에 서고 청중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一. 기타 참고사항(1) 경성과 다른 곳에서 받은 물품 및 기념촬영한 사진 등은 모두 모아 전시하여 단원들의 영광을 높이고 청중들의 감상을 좋게했다.(2) 폐회사 가운데 총독부로부터 온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연회가 있을 것임을 아라이(新井)영분관 주임이 간단히 인사하고 소개하고 폐회했다.(3) 위로연은 일본인구락부(日本人俱樂部)에서 거행하고 단원 및 참석자 전원 참석시켜 일본인 조선인이 함께 화기애애하게 진행하여 천황 폐하의 만세 삼창을 하고 민회장이 시찰단원의 만세를 삼창하고 스나가(須永)통역생은 혼춘(琿春)을 위해 관민의 만세를 삼창하고 오후 8시30분경 연회를 마쳤다.이상본신 사본 송부처조선총독부 재지공사 간도총영사글씨 작아 해독 불능 장● ●●● 신임통역관 우에다(上田)시찰관 사와다(澤田)사무관 마에다(前田)헌병대사 조선총독●●사 안창호(安昌縞) 외무●●사 오쿠무라(奧村) 단원 이인세(李仁世) 동 윤영복(尹永福) 동 박응칠(朴應七) 동 김상규(金相奎) 동 방두원(方斗圓) 동 한만여(韓万與) 동 이병●(李秉●) 동 최천●(崔天●) 동 박근식(朴根植) 카모모토(鴨本)사무관 도야마(陶山)통역관 이토쇼쿠타쿠(伊藤囑託)외무통역생 스나가(須永) 단원 이●●(李●●) 동 최중●(崔仲●) 동 박완●(朴完●) 동 김희영(金熙永) 반장 양하구(梁河龜) 반장 대병호(大秉浩) 단장 김명호(金明浩) 구와하라(桑原)함경북도장관 ●●●내무부장관 관광단장 황병길(黃丙吉) 반장 한●권(韓●權) 반장 구현문(具賢文) 단원 이●(李●) 동 나정화(羅正和) 동 김화석(金化石) 다지로(田代) 혼춘경성시찰단 기념촬영 [대정7년(1918년) 5월 4일 경성호텔에서]

    1603 독립신문 폐쇄에 관한 일·불영사 왕복문서

    저는 조선의 선동적인 출판물 “독립신문”이 프랑스의 묵인하에 장여리 51번지에서 인쇄되고 발행된다는 사실이 보고 되었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것과 관련하여, 1919년 10월에 “독립신문”의 사무실이 폐쇄되었고 출판물을 출판하는 것을 금지 당했으며 건물 내에 있던 한국 편집자들은 영사님의 중재를 통해 추방되었고 그 신문은 한 동안 절판되었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바 입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출판물이 다른 주소에서 다시 발간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저에게 그 출판물을 엄중히 금지시키고 인쇄에 사용되는 타이프와 기계를 압수하기로 약속하셨던,그 당시 프랑스 총영사 대리였던 로(Reau)/ 총영사 대리님께 그렇게 해 주실 것을 요청 했습니다. 프랑스 시 경찰이 건물을 조사하러 갔을 때 타이프와 기계는 중국인에게 팔렸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조선인들이 아주 교묘한 방책을 쓴 것입니다. 그래서 경찰은 조선인들을 체포할 권한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출판 금지 후 곧이어 “독립신문”이 세 번이나 발간되어서 저는 로(Reau)/ 총영사님께 쓸모 있는 상태는 아니었던 인쇄기가 발견된 그 장소를 조사하라고 경찰에게 명령을 내려 줄 것을 거듭 요청하였습니다. 저는 조선인들이 임박한 경찰의 검문조사를 눈치 채고 위급상황에 대해 대비했다고 추측을 합니다. 그 상황 하에서 프랑스 경찰은 이전의 경우와 같이 자신들이 체포할 권한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독립신문”은 경찰의 위와 같은 방해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출판이 중지된 적이 없으며, 경찰이 이전에 수색했던 바로 그 건물에서 비밀리에 출판물이 계속 인쇄되고 있다고 확실히 믿어지고 있습니다. 상당한 부수의 “독립신문”이 최근 조선으로 보내어졌고 비밀리에 조선인들에게 배포되었습니다. “독립신문”이 조선 독립을 선전하고 조선인들을 선동하는 조선어로 인쇄되는 비밀 출판물이라는 것은 제가 반복해서 말씀드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독립신문”은 상해에 있는 소위 한국임시정부/라는 조직입니다. 이 신문이 살해와 암살을 선동하는 동봉된 기사를 출판하는 데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을 제가 로(Reau)/ 총영사님께 알려 드렸습니다. 요청하신 대로 저는 또한 출판물 한 부와 더불어 그 신문의 최근호에 게재된 기사의 몇 구문을 번역하여 영사님께 보내드립니다. 따라서 총영사님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셔서 단호하게 이 출판물이 출판되지 않도록 해 주시면 아주 감사하겠습니다.총영사님과 존경하는 동지들의 충성스런 종이 됨을 영광으로 여기며

    1604 서재필과 Sidney L. Gulick가 Kato에게 보낸 편지

    친애하는 카토 씨께 당신이 보내주신 27일자 서한은 받아보았습니다. 저도 한국 친우동맹(The League of the Friends of Korea)/을 조직하는데 아주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미 톰킨스(Dr. Tomkins)/ 박사님께 편지를 드렸고 조만간에 박사님을 만나서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동양관계위원회/는 한 동안 한국의 상황에 대해 주의 깊게 연구해 오고 있습니다. 여행자들이나 선교사들이 대한제국에서 직접 가져온 많은 자료가 저희 손에 들어 왔습니다. 일본 경찰과 헌병대와 군인들이 언어도단의 잔인무도한 야만성을 보여 왔다는 것을 저희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현 상황에 대해 당국이 어떠한 발표를 하더라도 정당화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관대하고 개방적인 일본인이 많은 미국사람들보다 대한제국에서 일어나는 실정에 대해서 더 모르고 있다는 인상을 제가 받았습니다. 이곳 저의 사무실에는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상세하게 묘사하는 여러 종류의 수 백 페이지에 달하는 편지와 문서가 있습니다. 그러나 독립에 대한 대한제국 인들의 대망에 동정적인 내용은 없습니다. 다만 질서유지를 구실삼아 당국이 무기력하고 무장하지 않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 만행과 고문과 비도덕적인 행위에 대해서 뿌리 깊은 진정한 노여움을 적고 있습니다. 일본의 군국주의 체제는 여론의 제지에서 벗어날 때 다른 나라의 군국주의 체제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 명백합니다. 대한제국에 있는 미국인이나 영국인들이 일어나고 있는 일을 보면서 비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관대한 일본인은 공포에 떨며 비난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대한제국에 있는 외국인들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탄압에서 대한제국을 구출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미국에서 홍보운동을 벌이는 것이라는 보편적인 합의에 이른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홍보운동을 벌이는 것이 일본에 있는 일반 대중들에게 이 문제에 대한 정보를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저희에게 계속적으로 전해지고 있는 자료중 하나로 5월 31일자 문학 다이제스트 35페이지를 언급해 드리는 바 입니다. 당신께서 일본의 군국주의의 만행을 폭로하거나 비난하는 대리인으로 일본학생을 이용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미국에서 일본에 대한 진정한 우호적인 태도를 조성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일본의 지도자들이 저질러진 범죄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느냐에 달려있고, 일본의 정치생명에 놓여있는 지배력을 타도하려는 규탄과 노력에 달려있습니다. 선량한 일본인의 입지가 군부체제를 옹호하는 것으로 연합한다면 일본에 대한 미국인의 견해는, 독일 전체를 비난했던 것처럼 일본 전체를 비난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독일이 발생한 일에 대해 고맙게 여긴다는 것을 전혀 믿을 수가 없습니다. 군부체제가 독일을 무지 속에 가두어 놓고 세계에는 잘 알려졌으나 독일 국민들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폭행을 수행해 왔습니다. 대한제국에 있는 일본 군국주의는, 수 천 명의 무기력한 한인들을 십자가에 매달아서 등에 있는 살갗이 벗겨질 때까지 매로 때려서 나쁜 감정을 자극했던 것처럼, 전체 일본 국민들에 대한 악의와 증오와 경멸을 성공적으로 자극하는 방법을 택할 수 있었습니다. 책임 있는 지도자들의 여론을 모아서 이러한 관행을 의절하게 하고 중단하게 하는 길만이 서구 세계의 국가들이 일본에 대해 심적으로 다른 태도를 가지도록 하는 효과적인 길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안다면 그러한 방법을 절대로 묵인할 것이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모르고 있다면 그 자체는 문제이며 이러한 성명서가 나오면 일본 지도자들이 거짓이라고 규정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손에 입수된 증거는 절대적으로 결정적인 것입니다. 당신께서 일본인들을 잘 지도해서 올바른 사고를 하는 국민인 일본인들이 이 문제에 대해 진정한 이해를 하도록 도와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1605 김헌식이 일본 외무대신에게 보낸 편지

    경계 우리 한인 마음은 외인 병사의 위력에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닌 것과 일한 화화복변론(전쟁으로 오는 불행, 화평으로 오는 복)략에서 서기 1905년 1월 8일에 미국에 주둑하는 귀공사 타카하라(高原)씨에게 구술하였습니다. 그리고 1911년 5월 26일, 1912년 2월 14일, 같은 해 6월 14일 세 차례나 글을 보냈습니다. 지금 또다시 길게 재론하지는 않겠습니다. 게다가 김헌식(金憲植)의 아주(亞洲) 정세는 매우 큰일이지만 귀국과 우리나라의 다툼은 작은 일이라는 발표문은 십여 년이 지났습니다. 이에 대해서 귀 정부 역시 반드시 조회해서 밝혀야 합니다. 그러나 귀국 정책은 지금 살을 베어 배를 채우고 자기만 만족하고 포식하며 호랑이를 키워 후한이 되고 스스로 안락하고 지킵니다. 귀국은 작게는 수천 년의 종묘사직을 위태롭게 하여 멸망하는 지경에 이르게 하고 크게는 동 아세아 분열이라는 화의 실마리가 되어 결국 극동지역의 속병이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 한인은 복수를 위해 부득이하게 이곳에 있지만 누차 충고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염려하는 것은 미래이고 도모하는 바는 큰 데 있습니다. 고로 다른 민족의 같은 종족이 서로 보호하는 심리 및 한국과 일본의 공수의 난이 정세를 대략 설명하였으므로 대저 재삼 생각하여 용감하게 고쳐 천하가 웃지 않도록, 대국이 패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귀국은 순망치한의 형세를 모르고 한국의 영토를 탐해서 은밀히 북쪽이웃과 결탁하고 홀로 궁 산에 앉아 호랑이를 놓아주고 자위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스스로 특히 영·일이 동맹한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에서 배일 법률이 이미 성립되니 미국과 일본 사이가 나빠지고 있어 영국의 인심이 동맹을 불문하고 동족인 미국에게로 향할까 우려하고 있습니다..동맹 또한 이와 같으니 그 외의 타 민족, 다른 나라는 말하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지금 귀국의 정세는 예년과 다르게 심각하고 러·일 전쟁후 한국, 청, 영국, 미국이 귀국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귀국을 도와주지 않을 뿐 아니라 사방에 전쟁이 일어나 장차 일본에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그런즉, 비록 귀 나라의 형세가 기울어질 정도의 힘을 다해서 군병을 다스리고 타인의 침략을 받아도 결국 감히 병사를 움직일 수 없게 되고 게다가 침략은 갈수록 반드시 심해질 것입니다. 귀국은 장차 고립되고 침략을 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한국과 중국의 토지를 탐하고 골육끼리 서로 다투는 것을 좋아하면 결국은 대국을 보존하지 못할 것 아닙니까? 만약에 황인종 이 동아세아에서 역시 서로 사랑한다면 즉 가히 전쟁을 하지 않고도 침략을 막을 수 있어실제로 막대한 이익이 되지 않겠습니까? 같은 종족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게다가 귀국의 말에 의하면 귀국은 꼭 황인종은 아니라고 누차 이야기하지만 그 말은 불가능합니다. 귀 얼굴 생김새는 감히 우리와 동족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귀 문화, 풍속은 말할 것도 없고 양생송사의 법(살아있는 사람은 잘 부양하고 죽은 사람은 공손히 장사지내는 법)도 자연적으로 우리 한국을 뒤따라 점차 심오한 경지에 이르렀으니 이것이 곧 증거입니다.귀국과 우리의 국어는 마치 약속처럼 일치하고 그 위치로 따진다면 우리가 먼저요 귀국이 나중이며 한국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 두 나라의 국어문법을 살펴보면 역시 천하에 이보다 더 똑같은 것이 없으니 이 또한 같은 종족이라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무엇이 이보다 명백하겠습니까?또 그 위치를 살펴보면 즉 귀 섬과 가장 가까운 대륙은 우리 한국입니다. 그 사전을 고찰해보면 즉 귀 종족은 우리보다 몇 천년 후이고, 귀 인종은 한국으로부터 따로 분리되어 하나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치와 형세가 모두 틀림없고 이치는 당연하고 형세는 자연스러워 더 이상 의심할 것이 없습니다. 하물며 귀국의 어법은 우리 것과 너무나 똑같지 않겠습니까? 만약 이 말을 수긍할 수 없고 끝내 스스로가 별종이라 칭한다면 상술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을 명백히 밝히십시오.대한 광무(光武)황제이래 동족국과 소원하고 스스로 별종이라 하는 나라와 친하여 대세를 그르쳐 하늘과 사람이 함께 분노합니다. 조종의 유업을 멸하여 끊어지게 하고 오히려 목전의 것만 섬기니 귀국은 어찌 잘 살피지 않고 도리어 전철을 밟아 대국을 망치려 합니까? 하늘이 책망하고 사람이 분노하며, 평화로운 기운이 동아세아에서 상실하고, 화를 황인종에게 초래하게 하는 것이 오히려 광무(光武)황제보다 더 심합니다. 그러므로 큰 것을 위해서 원수를 참고 충고하므로 동아세아 평화에 만의 하나라도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지금 귀국 스스로가 비행기와 대포를 믿고 한 치밖에 안 되는 칼조차 없는 우리를 침략하니 비행기와 대포는 귀국 혼자서 만이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인 또한 귀, 눈, 손, 발이 있어 군사무기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귀국 도시는 풀과 대나무로 이루어져 군화에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남만주에서 북해도(北海道)에 이르기까지 수비지역이 아닐 수가 없을 것입니다. 지킬 곳은 많고 방비하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 한국은 공격전에 이롭고 수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이고 귀국은 백가지 위험이 있는데 위험은 결국 바로 가까이 있습니다. 그러나 천하를 점유하는 것은 우리이고 귀국이 아니니 어찌 도움이 안될까 걱정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병사 만 명을 사용하지 않고도 비용은 조를 쓰지 않더라도 반드시 쳐부수겠습니다. 귀국은 공격이 쉽고 지키는 것이 어려운 형세라 함은 바로 이것입니다. 만약에 우리의 국권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즉 형이 죽고 동생이 싸우고 부모가 멸망하고 자식이 이어서라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가 그 뒤를 이을 것입니다.큰 과실을 먹지 않는 도리가 있는데, 하물며 우리 2천만 민족이야. 우리 조상서부터 전해오고 자손에 이르기까지 3천리 금수강산은 우리가 당연히 소유하는 것이지 외인이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깊이 양해 바라며 편히 계십시오.1913년 7월 3일 제4번째 글

    1606 대한국민회 군자금 모집원 검거

    다이쇼(大正) 10년(1921년) 6월 8일 접수 아세아국

    1607 원 미하일의 언동에 관한 건

    본건에 관해서는 이번달 2일부 기밀공신 제 62호로 보고 했던대로, 원 미하이루와시리이 정(鄭)이란 사람과 같이, 어제 밤 돌연히 당지(當地)에 들어가서 서문외최●정방(西文外崔●政方) (선인(鮮人)●관(館))에 숙박하던 본조러국(本朝露國)영사관(이번달 8일부 기밀공신 제67호 참조)원을 찾아가 관원2명과 4인(人)의 동도(同島) 시내를 배회(徘徊)하고 있었는데, 그 숙박 여관에 있으면서, 재주 조선인의 일본귀화(그는 이렇게 말한다) 수 및 지나 귀화수의 다과(多寡)(=많고 적음)를 물어 양국 귀화를 권하고 군대 입영(入營)을 권장한 숨은 선인(鮮人)이며, 우리 민족 공회에 입회하여, 우리에게 접근하는 것을 주저(呪咀)한다는 언동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격해지고 지방 민정(民情)을 혹란(惑亂)하는 사실이 있어서 용서 없이 이것을 단속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득공불취감(得共不取敢)을 위해 참고하시기를 바라며 보고를 한다. 경구(敬具)본신사(本信寫) 발송처

    1608 노령 및 간도 조선인 상황에 관한 건

    표제의 건에 관해서 최근 「체뷰우」방면에서 하얼삔에 온 조선인으로부터 밀정이 들어서 알게 된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부디 참고까지 보고하겠습니다.

    1609 재노령 조선인 상황 보고서

    사람에게 말하기를 지금은 포조(浦潮)에 있는 일본군은 러국은 물론 열국으로부터 대단히 경시를 당하고 있다. 우리가 어떠한 행동을 하고자 해도 거의 손을 대지 못한 상황이라고 한다. 따라서 포(浦)에 있는 우리 동지들이 이제부터는 크게 활동하자고 하는 것을 보니, 얼마나 선인들이 우리 육군의 위신(威信)을 의심하고 있는지알 수 있었고, 또한 ●보(報)에 의하면 2월29일 아군의 시위(示威)운동, ●1 불령선인(不逞鮮人)은 민중회의때 군중 앞에서 우리는 이러한 일에 놀라지 않는다고 오어(傲語)(=거만하게 말함)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정을 총합하면 선인이 오늘날 마음대로 독립선언 운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러국의 정황(情狀)에 의하면 어리석게도 하나는 아군 위신(威信)의 실락(失落) 때문에 그들에게 의심을 받게 된 것이 원인이라고 한다. 당(當)일(日)에 있어서의 정황을 상술하고, 현재의 러국 관민(官民)에 의한 조선인에 대한 태도 및 선인 활동상황을 밝힐 것이다.3월 1일 식장에 모인 단체는 약 20개국이며, 그 중심적인 단체는 다음과 같다. (러시아 신문에는 18단체라고 적혀 있다.)(재 포조(浦潮)사덕(斯德)일본총영사관)국민의회 노인동맹단 한인사회단 소년독립단 기독교청년회 한인노동단 유위회 재조원 동령(東嶺)일근회(一勤會)대한부인회(대한부인독립단이라고 한다.) 한국소년회3.1 여학교 청년회(중국촌) 청년회(석막동(石幕洞)운동클럽 삼류애진명(三流涯震明)학교 한민학교학국적십자회 기사단(기이스카우트) 길성(吉城) 친목회다리나니스 대진학교이 내대진(內大震)학교의 생도가 몇 명이 전날에 도착한 외에는 다 포조시내에 있는 자들이다. 각 단체에 관한 설명은 이것을 생략한다.기념식의 상황정오에 승막(昇幕)의 식이 있었다. 이것과 동시에 일동 동해수 백두산 이른바 국가라는 것을 제창(齊唱)하였다.[2page]29일 아군의 20위(威) 운동이 된 것이지만, 들은 바에 의하면, 헌병사령관으로부터 요새(要塞) 사령관에게 단속을 요구한 적이 있었고, 이것을 승락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총영사관으로부터 2월26일 히란쯔카 부영사 및 소관은 당시 총영사의 뜻을 받아, 육해군 사령관 크라코 우에소키 를 찾아가 단속 방법을 요구한 바가 있었는데, 국관은 당일 또 3월1일에 행사가 있는 것을 알린다고 하여, 직접 대표자를 불러 설득한 바가 있었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3월1일 선인들이 ‘조로토이 로그’ 에서 연회를 열어 러국 당국자도 초대했다는 것을 소관 스스로가 동석한 사람한테 들어 바로 이것을 총영사에게 보고했더니, 총영사는 3월2일 히라쯔카부영사를 동관한테 보내고 살며시 사실을 확인한 후에 내훈(內訓)을 바탕으로 정식적인 오판(誤判)을 하고자 했는데, 크라코 웨소키는 스스로 연회에 출석하면서 대 국기가 구한국의 기라는 것을 모르고 아마 일본의 어떤 ●장(章)일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고 시치미를 땠다. 그래서 ●를 대면해서? 그 부관이라는 자는 연회에 임한 조선인의 혁명당을 원조하여 일본을 배척한다는 연설을 시도했다.또 백해주[박해주(泊海州)] 자치회장한테는 3월2일 당시 총영사의 명으로 시마다(島田) 부영사가 방문했는데, 그가 말하기를 우리는 가장 책임 있는 당국자이다. 조선독립운동자의 사연(私宴)에 임하는 이유가 있으냐고 답하고, 또한 단속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법률규칙에 ●급(及)하지않는 한은 손을 대지는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 까? 동인은 선인의 연회석에 축전을 보내지 않았던 것이 밀(密)● 다. 그리고 연해(沿海) ●참사(參事) 회장의 이름으로 했다.[본인의 축전은 김만●(金萬●)가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법규칙● 및 등등을 구실로 삼았다. 오늘날 언론 집회 자유 해방의 때라서 조선인의 시위운동 및 언론이 러국신문에 빈번하게 기제 되고 있는 배일적 기사 또는 조선인의 독립선언서 게제(작년 3월1일의 러문선언서를 이번 3월 일 ‘로고스 로지느이’지에 기제하고 있다)와 함께 러국의[3page]이번의 독립선언 기념회를 앞두고 선인들의 활동이 아주 활발 해지고 의손금(義損金)을 모집하고 당일은 휴업하며, 대국기 게양의 요구는 드디어 시내에 거주하는 선인까지도 미치고 원래 친일자로서 약간 그들을 ●기(忌)되고 있으면서도 의손금의 요구를 일부러 하여, 이 선인들도 벌써 상당한 출금(出金)을 했다.러국 각 신문은 똑 같은 말로 반일의 기세를 부치면서 3월1일 전후에는 조선인의 독립운동에 관한 기사를 사양없이 공개하여, 러국관헌은 우리 단속 요구에 대해서 아직까지 법률 규칙에 ●급(及)하지 않는한 손을 쓸 수가 없다고 대답하고, 또는 전기(前記)와 같이 관헌 및 정당대표자가 더욱 선인의 혁명운동을 선동하여 원조한 바가 있다. 그들은 더욱더 이것에 기세를 얻어 도 유리를 모욕하고자 하는 것이다. 실제로 3월5일 불령선여(鮮女) 이의순?(李義⊙) 채은복(蔡殷福) 및 오성부(吳聖夫)의 부인들은 시중에 나가서 한 선인을 찾아 적십자사⊙로서 의손금을 요구하여 그 선인은 ●를 얻지 못하고 1만류(留)를 기부했다. 그후 기도(木藤)-통역관을 찾아서 그들을 단속하는 법이 없느냐고 호소했다. 이러한 기부자의 심사(心事)도혹시 약간 객의(客疑)할 점이 없잖아 있다. 혹시 우리 관헌의 위력을 의심하는 자가 없었다면 일이 이렇게 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참으로 한탄할 일이다. 장래의 선인 단속에 대해서는 ●● 우리 출병전에 비교해서 한층 더 곤란한 것 같아서 실로 우려를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부 독립운동 단속에 대한 러국 관헌의 태도에 관한 건본건에 관하여 기도 통역관으로부터 조선총독부에 했던 보고는 다음과 같다고 말씀드린다.3월1일 독립선언 기념회 거행의 보고에 접할 때 소관은 실로 당지 총영사에게 보고함과 동시에 우리 헌병사령관 정무부장 등도 직접 상(相)●하여 또 사영(舍營)사령관인 무라우치 노부유끼(村內信乃) 소장(小將)을 상(相)●하여, 그 결과 드디어[4page]우토킹 과격파 신문 ‘크라스노에즈 나미야 ‘지 대표자(본인 ‘밤의 연극에도 임함)부인 2명 직업동맹회 대표자한 사람은 우라소와 한 사람은 당 좌인(左人) (동인은 밤의 연극에도 임함)시유미트 교수 (동양학원 교수) 라토비치 나라 대표임시정부 육해군 총사령관 크라코 웨 츠키 대좌(大佐)의 부관포주시 위수(衛戍) 사령관중화 고보 주필 및 기자지나 상무총회의장 및 임원3명마가에프 시학생단 대표자 본인은 브리야토 즉, 호(豪) 고인(古人) 시사범학교 교사임. (본인은 ‘ 밤의 연극에도 임함) 김만●(金萬●)는 오후 5시에 일어나 인사를하고 연(宴)을 연다. 동인 인사의 요지는 먼저 조선의 현상(現狀)을 말하고 작년 3월1일 독립운동을 일으키고 많은 희생자를 내고 오늘에 이르러서도 아직 이것을 계속하고 있다. 모두 일본의 병도(兵刀)에 죽고자 하는 각오를 가질 수 있도록 말하고, 선인의 혁명적 여러 단체 활동을 말하고 최후에 러국 정부의 지지를 부탁한다.동인의 인사가 끝나자, 연회로 옮기고 그 사이에 서로 일어나 연설을 했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육군, 해군 총사령관 부관러국 혁명을 ●탕(蕩)하여 조선의 혁명에 많은 기대를 걸고 크라코 웨츠키 사령관은 백방(百方)에서 조선의 혁명을 원조한다고 하고, 일본군을 서백리(西伯利)에서 철퇴하게 함으로써 만족했다. 조선의 독립이 혁명당으로 인해 성공할 것을 기대한다고 결론 지었다.레유미트교수 라트밤은 전쟁의 결과 드디어 러국의 ●●에서 이탈하여 독립한 조선도 그 예에 ⊙하는 것을 바란다. 우리는 전력을 다하여[5page]그래서 우리는 전력을 다하여 조선의 ● 그 곤박(困迫)함으로 부터 구해야 된다.연해(沿海) ●참사(參事) 회장 메도웨에프 의 축전초대를 감사하며, 3월1일 독립운동 기념회를 축하한다. 조선독립을 위한 혁명을 지지하고 그 압박자의 손에서 구출되기를 희망하고 경의를 표한다.박해주 참사(參事), 회장 메도웨 에프 영국 영사 전보 초대에 감사한다. 시간이 없어서 출석은 못한다.한(韓) 에고르 노농정부 레닌 만세(이때 레스토랑 부속 음악대 혁명악보를 연주한다.)이발(李撥) 노년의 나는 조선을 사랑한다. 나는 아름다운 조선을 기억하지만 지금은 없다.그러나 빨리 고국의 부흥을 보고 나서 죽기를 기원한다.장도정(張道定) 한인 사회당 대표자로서 한인 사회당의 목적은 극동에 있는 일본 제국주의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광복시키며 러국민당과 제휴하여 세계노동당을 구하길 기대한다.김하구(金河球) 작년 3월1일이래 약 10만명이 일본에 의해 잡혔다. 우리가 들은 바에 의하면 백해주 흑용주(黑용州)에서는 러인을 살아 있는체로 묻었다고 한다.모로세이 페트로우 ⊙게 박(朴)미하이루 미하로우 ⊙게 김(金)이 양자는 거의 동일한 뜻을 가지고있다. 그 요지(要旨)를 말하면, 우리는 베르사이유 강화회의에 많은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사욕과 이기적 단체들이 모여서 우리를 ●하(下)했다. 우리는 이것을 크게 배척한다.[6page]채계복(蔡啓福) [채성하(蔡城河)의 장녀 경성 유학생]작년 오늘, 33명의 인사(人士)가 독립선언을 하는데, 우리나라 여자 중에서는 오른쪽 손에 태극기를 흔들면서 만세를 외다가 오른쪽 손이 잘리면 왼쪽 손으로 이것을 흔들며, 왼쪽 손이 잘리면 입에 물고 흔들다가 마침내 참살 당한 사람이 있었다. 우리는 우리나라 여자 못지않게 ●● 분기(奮起)하여, 마지막까지 싸워야 한다.적십자대표왼쪽팔에 적십자 문장을 붙이고 오른쪽 손에 적십자 기를 들고 연단(演壇)에 나타난다. 우리 자매는 독립전쟁때 간호를 담당할 것이다.김득수(金得洙) (기독청년회대표)우리가 두려워하는것은 원수의 대포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한국에 있는 민족을 구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이다.우리는 내년 오늘에 반드시 이 회를 개최할것을 기다리지 않고, 1년 안에 하루라도 빨리 한성(漢城)에 들어가서 독립 할 날을 기대하며, 독립기념회를 개최하는 것이다.김경봉(金景奉) (운동클럽 대표)오늘날 러국 및 각국 보호 아래 이 기념회를 여는 것은, 우리가 행복으로 여기는 바이다. 이것을 단순히 신한촌에서 열지 말고 시내로 나가서 대대적으로 활동하자.(나중에 자동차 3대로 시내 한가운데에 나가려고 해서 우리 군대로 인해 도중에서 차단되어 되돌아갔던 것이 이 단체인 것이다.)김⊙(金⊙) (한인 노동회 대표)우리 한인 노동회는 회원 3만명을 모집하여 일심동체가 되어 의연금(義捐金)을 모아서 상해(上海)정부를 원조하자.이장미(李章微)왼팔에 붙인 적포(赤布)는 적심(赤心)을 나타내는 것이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태극기[7page]다음에 회장 이발(李撥)이 식사(式辭)를 한다. 이하 교대로 연단에 나타나서 연설을 한다. 그 인명 및 연설의 요령(要領) 다음과 같다.이발(李撥) 오늘은 독립선언 기념회이지만 내년 이달 이날에는 ‘선언’의 두자가 빠질 것이다.이흥삼(李興三) 한국 역사를 설명하면, 병합전 5조약, 7조약이 체결(締結)된 상황이고, 병합후 10년간 한국민이 일본의 압정으로 인한 고통의 상황이며, 수원 사건등을 열거하여야 하며, 현재 선내의 옥리(獄裏)에서 신음하고 있는 동포를 구원하여야 하고, 내년 오늘에는 선언의 두 글자를 빼고 한성에서 기념회를 열자.정재관(鄭在寬) 오늘의 독립선언 기념회는 즉 우리민족이 최후의 선전(宣戰)을 하는 날이다. 일반 동포가 총을 어깨에 메고 검(劒)을 받아서 일어나는 날이다. 오늘부터 무기 준비를 하고 상해정부의 명령을 받들어 행동하자.조영오(鄭永吾)조●군 지방에 있는 동포가 오늘 이 기념회를 연 것은, 하늘의 뜻에 따르고자 하는것이고 우리 민족의 행복이다. 우리가 왼쪽 팔에 빨간 천을 붙이는 것은 진실로 기회를 얻은 증거다. 입으로 기념을 외치는 것은 그만하고, 내년에 한성에 들어가서 이 회를 여는 것이 실체의 기념회인 것이다.이의순(李義⊙) (이동휘(李東輝)의 여자, 오영선(吳永善)의 처) 본인 = 태극기 뒷면에 자유라고 크게 쓴 기를 숨겨서 들고 연단에 나타나면서 우리민족은 10년간 자유를 빼앗겼지만 오늘날 이 자유를 회복하고자 해서 숨어서 들고 있던 기를 꺼내고 이 기는 10년간 동해의 물에 매몰되어 있었지만 오늘 꺼낸 것이다. 오늘 과거 1년간을 회고할 때 우리민족은 과연 무엇을 했는지 진실로 참괴(慙愧)(=부끄럽게 여김)하지 아니 할 수 없다. 내년의 오늘은 선(宣)● 진실한 독립기념회를 열자.[8page]를 손에 드는 것보다 총을 어깨에 매는 것이 더 낫다고 믿고 있는 우리는 불원(不遠)간 한국으로 진발(進發)하자. 동지의 사(士)는 함께 오는 것을 희망한다. (본인의 연설에 대해 비한자(誹韓者)(=한국을 비방하는 자)가 있다.)한(韓) 에골(●창해(●滄海) 이름 군명(君名) 국민의회 대표전에는 상해정부를 반대했지만, 앞으로는 연락을 하여 그 명을 기다리고 각 단체 각 사회가 일심동체가 되어 일하자. 구주전쟁의 ‘ 바르캉’반도 토이(土耳)는 100년을 기다리며 독립하였다. (무언가 틀림?) 우리 한국이 10년만에 독립선언을 한 것과 같은 것은 모(某) 서양역사에서는 그 예를 볼 수 없고, 앞으로 각자 자성심(自誠心)으로 단결하여 노인은 자제(子弟)를 지도하며, 청년은 노인을 멸시하는 일 없이 각자 마음을 하나로 모아, 내년의 오늘은 독립기념회를 할 것을 기대한다.모 노인(석막동(石幕洞)에 사는 자) 노인단 대표우리 노인단 대표자를 경성으로 파송해서, 현재 여기에 있는 이발(李撥)선생은 경성에서 피를 ●하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러면에서 청년 자제들이 ●●분기(奮起)하지 않으면 안된다.김광언(金光彦) (김광국(金光國) 의 남동생) 학생단의 대표우리 2000만 동포는 당당한 양반이고 천민이 아니다. 발해(渤海)국의 사적을 보니 세계는 진동하고 지나 전부(全副)를 점영했는데 당당한 양반이 아니고서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 2000만 동포는 빈약자(貧弱者)가 아니고 부자이다. 고려의 사적을 보면 황금탑과 자기가 세계에서 그 가치를 인정 받은 부자라고 되어있지 않은가?.백제의 사적을 보니 왕 인(仁)은 일본에 건너가 글씨를 가르치며 여파(呂波)를 주었다. 당당한 선두자라 이니라고 볼 수 있는가? 이런 양반, 부자와 선두자의 자손으러서 당당히 독립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청년 학생은 동심동체로 공부하여 독립을 위해 힘을 다하자. 김진(金震) 한인 사회당 대표[9page]조영선(趙永善) 내년 3월1일 이번에 조선에서 축연(祝宴)을 열 우리는 일본 군국주의에 반대하고 극동점령에 반대 해야 한다.우리는 내일부터 총을 어깨에 매고 혁명군에 가담하여 승리를 기대하자.니코라이 이와노우 ⊙치 김(金)지나 만세.이 연회는 오후 5시에 시작하여 7시 30분에 끝났다. 성회(盛會)하고 선인들이 ‘레양항’ 에서 입맛을 다시고 기염(氣焰)을 올렸다. 연회가 끝나자 자동차 4대에 나누어 타며 신한촌으로 돌아갔다. 관극(觀劇)을 희망한 러국인 또 한 사람이 가담했다. 이 연회비 13만 6천류(留) 자동차 1대 1500류 이번 기념회 때 모은 의연금(義捐金)은 포주(浦洲)에서 약 25만류, 한(韓) 에고루 이나 니코리스크 로부터 모은 것이 10만류인데, 이것이 약 하나 반(半)을 연회에 투자한 것이다.3월1일 한민학교에서의 연극 (자주(自主) 오후8시, 다음날 오전1시)주최자 장기영(張基永) 이흥삼(李興三)배우 이의순(李義橓) 채계복(蔡啓福) 정재관(鄭在寬) 3.1여학교 생도,한민학교 생도, 부인회 ●●● 입장권 1등 4백류(留), 2등 250류, 3등 100류제1막 유명한 가정조선 이기(李基)라고 하는 사관(士官) (장기영(張基永)이 이 역할을 한다.)동인의 처(이흥삼(李興三)이 이 역할을 한다.)남아 2명여아 2명군대 해산의 명이 내리자 이(李)는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일본병사한테 잡혀서 총살 당했다. 생전 아내에게 말 하기를 내가 죽은 다음에 자녀 3명을 미국으로 유학보내 군사 교육을 받게 해서, 우리의 원수를 갚아라고 했다.[10page]자녀 3명 업(業)?을 ⊙해서 미국에서 돌아옴.이완용(李完用) 송강준(宋康俊) 이치용(李致鏞) 박제순(朴齊純) 이용구(李容九) 등이 집합하여 협의한 자리에 3명의 자녀에게 폭탄을 던져서 모두를 죽였다.제2막 배일 친일배일자 (이의순?(李義⊙) 선복(鮮服))친일자 (채계복(蔡啓福)) 프록서로 도상(途上)에서 해후(邂逅)(=우연히 만남)하여, 복장으로 봐도 친일자인 양장자를 비웃고 스스로가 겉옷 부터 속옷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선복이 아닌 것을 보인다.제3막 독립선언여학생 (이의순(李義⊙))이가 33명의 독립선언 기록문 여러장을 겨드랑이에 끼고 경성 ‘파고다’ 공원으로 가려고 종로를 통과할 때, 선인인 형사가 발견하고 뺏을려고 다툼한 여학생은 이것을 노상에 던진다. 주위에 모인 많은 학생들이 잽싸게 주워서 만세를 외친다.제4막사탕 장사사탕 장사(이의순(李義⊙))를 가장하고 경성의 각 집을 돌면서 지사(志使)를 물색해서 애국 단체를 만든다.제5막대 국기의 포●(包●) (조선의 혼의 뜻…)이흥삼(李興三) (배우) 대 국기로 싸놓은 동그란 물건을 안고 올라와 관객을 향해 내용을 설명하면서 이것을 사도록 권장한다. 한 관객 남자가 3천류(留)를 제공하는데 팔지 않고, 한 여자가 3천5백● 제공하는데도 이것을 팔지 않고, 한 남자가 4천 ●를 말하는데도 또한 이것을 팔지 않고, 한 여자 4천8백●을 제공하자 드디어 이것을 팔기로 하고 무대에서 떠난다.‘물건이 무언인지 관객이 전혀 판단하지 못함. 그것은 조선 의 혼 혹은 애국혼은 돈을 가지고 팔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이 5막의 연극이 끝난 것은 11시인데, 군악대의 주악(奏樂)으로[11page]무도(舞蹈)를 개시하여 전(前) 1시에 이르러 폐회했다. 당일 오전 6시부터 7시까지 재조원 유조회(有鳥會), 운동클럽원등 군내대(軍來隊)를 선두로 신한촌(新韓村)을 돌아다녔다.오후 8시 ‘바라바레’ 부근 ‘치야모야’의 선인 학교 생도 13명 ‘아물’항(港)의 빙상(氷上)을 건너 내착(來着)하고 한민학교에서 환영받아, 또 병대(兵隊)를 데리고 촌내(村內)를 돌아다닌다.(여기서 군병대의 한시간의 임금은 2천●이다.)3월1일 이후의 상황각 인 몇일의 준비 기타에 대해 대단히 곤란해 하고 있었는데, 2일 밤9시경 포조(浦潮)시가지 무(戊)(다섯째) 사령관은 전화로 민회에 내보(內報)하며 말하였다. 일본군헌(軍憲)이 2,30명의 유지 선인을 체포한 모양이었다. 조심해라 하면서 말입니다. 이것으로 불령패의 낭패(狼狽)는 한군데로 장소를 정하지 않고 방황(彷徨)하기 시작했다. 다음날 밤에 또 같은 경보를 전했다.김하석(金河錫) 강양립(姜楊立) 최의수(崔義洙) 장도정(張道定) 김영학(金永學)(백하(白下)) 등은 이날 밤에 구 조선정(町) 즉 일본인 임석(賃席)에서 놀며 일박했다고 한다.3월3일 김진(金震)은 도중에 한 선인인 나를 만나 일본군이 아군을 잡는다는 말이 있어서 아주 위험하다. ●정(情) 어떠하냐고 묻길래, 모른다고 대답했다.김진(金震)은 동일한 또 한 선인을 찾아, 시내 러국인의 집에 숨어 있게 할 수 있도록 힘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또 이의순(李義⊙)은 3월3일 선인의 부인으로부터 여자 양장과 모자를 빌렸다. 즉 양장을 해서 시내에 숨어 있고자 하는 것이다.이제는 불령선인은 전전긍긍(=매우 두렵다)한다. 령구⊙소(寧口⊙笑)할 만하다. 단지 일본군이 그들을 체포한다는 취지의 소문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모르나, 시가 무 (戊)사령관이 뒷 전화로 그들에게 내보(內報)한 것은 사실이다.그동안 혼자 장기영(張基永)은 항상 술을 자주 마시고 태연하면서 놀라지도 않고 인간은 한번에는 죽지 않는 것이라고 오어(傲語)하고 있다고 한다.3월1일 전후의 상황[12page]무기를 다루는 일은 어렵지 않고, 각자 마음만 있으면 쉬운 것이다.이곳에 모인 다수의 동지는 다 무기를 지니고 함께 독립운동을 하러 가자. 3.4개월사이에 한번 독립연(宴)을 열어서 만세를 부르자. 김진(金震)의 연설이 끝나자 동인의 지휘하에 소년 건국가를 제창하며 끝내고,대한민국 만세 삼창러국혁명군 만세 삼창(이 때 군악대는 혁명의 음악을 연주한다.)대한민족 만세 삼창이것이 끝난 다음에 일동 촬영하고, 행열을 한다. 행열은 러군악대를 선두로 하여 각자 2열 또는 4열이 되어서 신한촌(新韓村)을 돌아다닌다.연 회러국 관헌(官憲) 열국 영사, 신문사등을 초대 한것은 전에 기록 한대로이지만, 연회는 포주(浦洲)시의 1등’레스토랑’으로 시가지의 중심 자리인 ‘웨토랑스카야’ 가에 있는 유명한 ‘조로토이, 로그’ 에서 연 연회에 참석한 선인은 다음과 같다.이발(李撥) 에고리 한(韓) 김만●(金萬●) 세레브리 야곱 장도정(張道定) 니코라이 이와노우 정천금(井千?金) 김하구(金河球) 미하이루 이와노우⊙치 김(金) 김치보(金致寶) 마칼 김(金) 위혜림(韋惠林) 모이세이 패트로우⊙치 박(朴) 이재익(李在益) 한모(韓某) (미국유학생출신, 국민의회가 미국에서 특별히 초대한 자. 나이는 40살쯤)로망,니코라우⊙치 김(金) (김겸학(金兼學)의 자녀, 일본유학생. 본인은 ‘에키’의 기자겸 러국 정보 통신사원이다. 이번에는 통신사의 대표로서 참석했다. )외국인 내빈라레쯔 사회민주당 대표, 본인은 구매조합 중앙위원 회원임.[13page]케테 조선인을 돕는다.에호지(紙) 주필(主筆)1918년 크라코우 에쯔키 대좌(大佐)와 함께 조선에서 지내면서 경성의 고적(古績) 시골의 풍경등에서 많은 감격을 받고 많은 기사를 썼다. 우리도 그렇지만 하물며 해외에서 사는 조선인은 모국에 대해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에호’지는 항상 조선을 기쁘게 도울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자유의 조선을 축하한다.우토킹 과격파 즉 공상당 대표자‘바바로흐스크’에 있는 전에 기술한 노병회 대표자 스탕케우⊙치는 일본병(兵)한테 총살(銃殺)당했다. 오늘 러국인 ‘코르차크’ 정부 도괴후(倒壞后)가 전부 연합국 출병에 반대하고 있다. 일본병(兵)에 대해서도 그렇다. 일본국은 러국의 주권을 대단히 경멸하고 있다.이제 조선의 혁명은 기억될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선인과 함께 노동자의 승리를 위해 싸우자.라레츠 사회민주당우리 국민 의회원 세레부리 야곱 김만●(金萬●)씨로부터 조선인으로 인한 작년 3월1일의 혁명운동의 상황을 들었다. 지금부터 러일선 3국의 민주당은 서로 체휴 연락해서 제정(帝政)주의를 망하게 하자.우라소와 부인벨사이유 강화회의는 근본적으로 틀렸다. 러국민주당을 배척했다. 우리는 항상 소약국에 동정을 느끼고 있다. 특히 곤박(困迫)속의 조선에 대해서도 그렇다. 민주당의 일반적 활동을 하면서 제국주의인 일본을 타도하여, 내년 지금쯤에는 자유의 조선 보기를 소망한다.중화고보주필(中華高報主筆)우리는 조선인의 동포이다. 일본의 행동에 대해서는 아주 분개를 느낀다. 특히 산동(山東)문제에 대해서는 그렇다. 유명한 21개조 조약에 대해[14page]법률규칙에 ●급(及)하는 바가 있을까? 안의하게 그들은 참●(參●)해서 전혀 이웃과의 교류를 중요시 하지 않고 있다. 하나의 이론과 ●사(詐)에 불구하고 이와 같은 배(輩)를 상대하여 러영(露領)에서 불령선인의 단속을 하고자 하는 것은 ‘십(拾)도 나무에 ●하여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은것이 아닌가?이 이외에 3월3일 및 4일 접수한 정보에 의하면, 러국혁명의 군사령부는 선인의 간원(懇願)(=간절한 소망)을 받아들여, 가까운 시기에 한 중대의 병사를 신한촌의 한민학교에 주둔시킨다고 한다. 이것으로써 러국 관헌이 불령선인을 보호하게 하는 것이다.우리 중앙정부는 재 러영 선인 문제를 소흘히 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우리 조선문제가 재국의 기초를 위태롭게 만들 원인이었 기 때문에 상(想)● 하지 않는 이유인데, 총독부에 있어서 크게 정부의 주의를 끌수 있기를 갈망하는 바이다.이상 가까운 시기에 본건을 명확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사진 19장(각호 5, 17호는 (重)●에 부(付●한다)를 첨부한다.

    1610 의용단 검거

    이번 경성 종로 경찰서에 있어서 의용단이라고 하는 비밀 결사의 조직이 분주 하는 사실을 탐지해 관계자 4명을 체포하고 의용단 규정 그 외 다수의 불온 문서를 발견 압수해 조사한 후 보안법 위반으로서 형사 소송을 일으켰다. 그 개요는 다음과 같다.1. 범인의 주소 이름 (별지와 같다.)2. 범죄 사항의 개요(1) 김석황(金錫璜)은 다이쇼 9년(1920) 4월 중순에 평안 남도 평양에 있어서 김동선(金東宣)과 만나 설득하기에 상하이 임시 정부에서 손정송(孫貞送), 김철(金撤), 김립(金立), 윤현진(尹顯振), 김구(金九), 김순애(金淳愛) 등의 발기아래 의용단이라는 것을 조직 해 본 단의 목적은 물론 국가의 독립에 있고 그 수단으로 우선 일본 요로(要路)의 고관 및 친일 조선인을 살육 해 일본에 대해 선전을 포고한다.1은 준비중이니, 나는 상하이 임시 정부의 명령을 봉 해, 동지 규합을 위해 온 동포들도 해외교포가 지금 신산(辛酸)을 핥아 악전고투를 계속하고 있는 상태임을 알면 동포의 의무로서 이것에 가맹해 단원의 모집에 분주 해야 한다고 김동선은 이 행동에 찬동 해, 김석황이 그 후 병 때문에, 평양소재의 미국인 경영의 기홀병원(紀笏病院)에 입원하고 나서 두 사람은 자주 같은 병원 내에 있어서 동지 모집의 방법에 대해 의의의 결과, 우선 경성의 동지와 연락할 필요가 있다고 하여, 김동선(金東宣)은 경성으로 향해 가, 황중극(黃中極)과 만나, 그 사람을 이 행동에 가입시켜 연일 협의를 거듭해 동지를 물색하여 적당한 인물을 얻음으로서 5월 하순에 일단 평양에 귀환해서, 김석황(金錫璜)은 동지 규합의 곤란한 것은 1에 상하이 임시 정부의 활동을 증명하는 문장이 없기 때문에 기● 해야 한다고 해서 도중 관헌에 발각되는 것을 우려해,월 상순에 그의 첩인 강도성(姜道聖) 29세에 의용단 규율 50여 부 그 외 불온 문서를 휴대해 서울로 향해 가게 해 이것을 황중극(黃中極)한테 교부시켜 황은 이것을 수령해 이래동지 규합에 분주 하고 있었던 것이다.(2) 김태복(金泰복)은 김석황(金錫璜)이 기홀병원에 입원중 지인이 되어, 입단이 권유되어 이것에 따라 이래동지의 규합에 노력해 또, 김재순(金在淳)은 김동선(金東宣)의 권유에 의해 가맹하여 마침내 군사를 일으키는 날에 사용하는 목적으로 구(舊) 한국기(韓國旗)의 제조에 착수하고 있던 사실이 있다. 또한 김동선(金東宣), 김석황(金錫璜) 등은 평양교통국장 김창빈(金昌彬) (소재 불명)이라는 사람과도 연락하고 있던 상황도 있지만, 본건의 주모자 김석황(金錫璜)이 미체포 때문에 그 내정은 판명 하지 않는다.발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