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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자료

    콘텐츠/독립운동가 자료 [] 에 대한 전체 5845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5381 "「姜義士追悼文」|| 『獨立新聞』(1920.12.18)"

    鳴呼 痛哉로다. 우리 大韓民族을 復活하기에 焦勞하며 우리 大韓靑年을 敎育하기에 盡瘁하며 우리 大韓獨立을 光復하기에 獻身하시던 姜 義士 老先生이 紀元 四千二百五十三年 十一月 二十九日로써 最終 結果의 仁을 成하셨도다. 先生의 氣象은 軀幹이 長大하며 容顏이 豊碩하며 聲音이 洪大하며 面色이 紅潤하니 人이 望見하면 可히 偉人이 됨을 認定할 것이오. 先生의 性行은 磊落倜儻하여 忠孝를 實行하며 義俠을 崇尙하여 正邪의 辨이 嚴正하고 克己의 工이 切實하셨고 先生의 事業은 基督敎의 篤信으로 敎會設立이 三이오 敎育界의 熱誠으로 學校設立이 六이셨다. 先生의 最終 結果는 一擊之下에 敵魁를 誅滅코자 南大門 外에서 霹火같은 爆彈을 一擲하니 비록 子房의 鐵椎와 같이 誤中副車되어 完全한 成切은 得치 못하였으나 皤皤老翁이 如斯히 激烈한 行動을 敢爲함은 世界上 創有한 事이므로 吾國民의 思想이 一層 興奮되고 天下의 耳目이 크게 驚動된 것이라. 自此로 吾國 靑年의 活動이 日로 猛烈하여 鴨綠沿岸으로부터 義州와 平壤과 京城과 大邱와 釜山과 敵京江戶에 至하도록 爆彈과 短銃의 聲이 續續 發生하여 敵의 心膽을 戰慄케 하고 世界의 注目을 更起한 것이 어찌 先生의 一擧로써 靑年界에 印象을 주신 效果가 아니리오. 先生이 當日에 成功할 目的은 達치 못하였으나 우리 全國 靑年이 將次 先生의 志事를 繼續하여 進行할 者가 無●●에 至할지니 先生이 平日에 努力盡瘁한 結果를 收獲할 日이 必有할지라. 오직 先生의 赫赫한 靈魂은 神을 左右하여 三島의 惡魔를 驅除하고 우리 大韓民族으로 하여금 迅速히 獨立自由의 幸福을 享受케 하실지어다.『獨立新聞』, 1920년 12월 18일.

    5382 "「北西墾島에서 慘死한 同胞追悼文」|| 『獨立新聞』(1920.12.18)"

    鳴呼 痛哉며 鳴呼 慘哉로다. 世界歷史에 國을 爲하여 生命을 犧牲한 者 何限이리오만은 我 大韓同胞 男女老幼와 같이 極慘酷禍를 當한 者는 未有하였고 兵을 縱하여 殺掠을 恣行한 者 - 何限이리오만은 彼倭賊과 같이 凶殘暴虐한 者는 未聞하였도다. 鳴呼라. 墾北一帶와 墾西一帶에 居留한 우리 同胞諸君이시여. 不幸히 百六의 厄運을 値하여 仇賊의 臣僕을 不認함으로 扶携渡江하여 風雪을 觸冒하며 荊棘을 斬除하여 千幸萬苦를 忍受하고 惟一 勞働으로 生活을 要求하면서 祖國 光復으로 祈禱하며 世界의 文化를 授受코자 敎會와 學校를 竭力 創辦하여 穹林荒野에 弦誦이 相聞하므로 吾族前途의 無窮한 希望이 此에 在하더니 乃彼倭賊이 盜國의 奸策을 旣逞함에 因하여 滅族의 毒計를 進行코저 數萬의 蠻兵이 墾北과 墾西에 侵入하여 우리의 善良한 同胞를 撲滅코저 할 새 或 生으로 埋하며 或 火로 燒하며 釜로 烹하며 或 江에 投하며 鼻를 穿하며 脅을 貫하며 腹을 剖하며 首를 斬하며 眼을 鑿하며 皮를 刮하며 腰를 斬하며 手足을 斷하고 砲殺과 刀殺과 杖殺과 縛殺과 拳殺과 踼殺로 함에 我 同胞는 或 祖孫이 同殺되며 或 父子 - 倂戮되며 或 其夫를 殺하여 其妻에게 示하며 或 其弟를 戮하여 其兄에게 示하며 或 喪主가 魂魄箱을 抱하고難을 逃하다가 兄弟俱斃가 되며 或 產母가 襁褓兒를 懷하고 禍를 避하다가 母子 幷戮이 되고 幾千戶의 家屋과 幾萬石의 粮穀과 幾十處의 敎堂과 學校가 一炬에 盡滅하였으니 世界 古今에 如此히 極慘한 血史가 有하며 如此히 殘虐한 蠻種이 有한가. 무릇 世界 上에 血氣가 有하고 良心이 有한 者는 다 髮이 上指하고 자眦가 橫裂하여 此等 蝎蛇인 蠻種을 鋤除코저 아니할 者 - 無할 터인데 况 吾族이리오. 痛哉痛哉라. 吾儕 未死者가 만일 ●●●報치 못하고 ●●泉下에 何顏 餘名의 勞働하는 同●를 對하며 ●●●● 該會에서는 機關을 對하여 人類라 自處한 ●의 事業을 行未死者의 良心이 苟存하면 一刻이 ●도 此를 健忘할 수 없고 우리 全國人民은 此로 因하여 激憤이 益增할지며 世界 各族도 此로 因하여 輿論이 愈騰하며 彼 - 三島 殘族도 此로 因하여 罪惡이 益彰할지니 諸君의 血이 吾族 前途의 鋒鋩이 되고 世界人道의 旗幟가 되어 吾儕가 仇賊의 頭로써 諸君의 靈을 慰할 日이 不遠할 줄로 確認하나 今日은 오직 憑風 遠弔하고 仰天痛哭할 ●인즉 鳴呼 痛哉며 鳴呼 慘哉로다. 『獨立新聞』, 1920년 12월 18

    5383 "「國務院布告第二號」|| 『獨立新聞』(1920.12.18)"

    여러분은 대한사람의 피를 받은 대한국민이시니 응당 대한나라를 사랑하는 끓는 정이 있을지요, 대한을 사랑하는 끓는 정이 있음으로 대한의 원수를 미워하는 끓는 정이 있으리라. 대한의 원수가 뉘뇨, 저 일본이로다. 二千년 래로 우리나라에 도적하고 우리 동포를 살해한 원수가 일본이며, 三百년 전에 八년의 긴 동안 三百萬의 동포를 학살하고 귀한 우리의 문명과 재산을 파괴한 원수가 일본이요, 十년 전에 五千년 우리 민족이 피로 지켜 오던 우리 나라를 없이 하고 二千萬 신성한 민족을 노예로 삼으며, 많은 애국자와 지사를 학살한 원수가 일본이요, 작년 三월부터 지금까지 무도한 총과 칼로 우리의 부모와 형제와 자매를 학살하는 원수가 일본이니 이를 생각할 때에 대한 산천의 초목과 금수까지도 언제나 이 원수의 피를 빨아 위로는 조상의 원통하심을 씻고 아래로는 자손의 부끄러움을 벗겨 줄까 하여 가슴을 두드리고 날을 갈거든 하물며 사람이랴, 대한의 사람이랴. 대한의 사람으로서 이 망극한 원수에게 대하여 죽더라도 네 살을 뜯고 뼈를 갈리라는 생각이 없는 자를 사람이라 하랴, 짐승이라 하랴. 하물며 국내에는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대한의 독립을 위하여 원수의 손에 피를 흘리고 갖은 고초를 당하는 이 때에 만일 어느 누가 감히 원수를 친히 하고 원수에게 붙으려 한다 하면 이를 사람이라 하랴, 대한 二千萬의 분노는 이러한 극흉극악한 역적을 위하여 끓어 오를지니 의인의 손에 든 날카로운 칼이 반드시 이 의리없는 무리의 가슴을 우길 것이라. 특별히 아령(러시아령)의 五十萬 동포는 자래로 애국심이 많고 나라의 원수를 갚을 결심이 굳기로 자랑을 삼아 우금 십수년의 빛난 역사를 가졌나니 「우리가 아니고 뉘라서 우리의 나라를 핍박하랴.」함이 아령(러시아령) 五十萬 동포의 밤낮에 부르짖던 바라. 그러하거늘 슬프다. 뉘 생각하였으리요, 이러하던 아령(러시아령) 동포 중에서 원수를 친히 하고 원수의 세력을 빙자하여 우리의 독립운동을 방해하는 무리가 생길 줄이야. 뉘라서 꿈이나 꾸었으리요, 해삼위(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 원수의 세력을 빙자하는 민단이 생긴다 하며, 어디 어디서는 원수의 군대에 보호를 청한다 하며 누구누구는 원수에게 복종하기를 맹세한다 하●●●서 더한 가슴이 터지고 피눈물이 솟을 일이 어디 있으랴. 더구나 아령(러시아령)의 五十萬 동포는 五十년 내로 아라사(러시아) 나라의 땅에서 의식을 얻고, 그 나라의 법률의 보호를 받았으며, 겸하여 혁명이래로 아라사(러시아) 국민이 우리 민족을 사랑하기를 동족과 같이 하며, 우리의 독립운동을 보기를 자가의 일과 같이 보아 진심력 하여 우리를 도와 주려 하거늘 이러한 은인에게 대하여 감사함을 표하고 그 은혜에 보답하기를 힘쓰기는 고사하고 도리어 그 은인의 이를 갈고 씹으려는 원수 일본에게 붙으려 하니 아아 이것이 사람의 일이랴. 아라사(러시아) 사람이 과거에나 현재에 우리를 사랑하고 동정함은 실로 우리가 나라를 잃고 죽더라도 그 잃은 나라를 회복하리라고 결심한 인민인 줄 앎이니, 우리를 이러한 의로운 민족으로 안지라. 우리를 존경하고 사랑하였거니와, 우리가 이렇게 제 나라에 대한 의리도 모르고, 은인에게 대한 의리도 모르는 비열한 민족으로 알았던 들 그때는 벌써 우리를 발길로 차고 배척하였을 것이라. 아아 동포여 무슨 낯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무슨 낯으로 아라사(러시아)의 국민을 대하랴. 여러분의 이번에 가증한 태도를 볼 때에 아라사(러시아) 국민의 가슴에는 분노의 불길이 일어 났을 것이오, 전 세계 인류가 우리 민족을 향하여 충을 빼앗을 것이로다. 우리 대한민족은 이렇게 의리를 모르는 자가 아니러니라. 우리의 조상은 나라와 은인에게 대한 의리를 위하여 용감히 자기의 피를 흘리던 백성이러니라. 동포여, 가슴 아프게 뉘우칠 지어다. 물론 이렇게 의리를 잊고 원수에게 붙는 행위는 아령(러시아령) 동포 전체의 의사가 아니요, 그 중에 소수 불량무뢰배의 소위일지며, 원수의 세력을 두려워하여 다수의 순량한 동포가 아직 잠자코 있음일지나, 그러나 五十만의 용장한 동포가, 이등(伊藤博文)을 죽이고 이완용을 찌르고 재등의 수레에 폭탄을 던지던 용사의 동족 五十만이, 몇 개 안되는 이러한 악류를 살려두어 우리 전 민족의 빛나는 명예를 더럽히게 하며, 만고에 대사업인 독립운동을 방해케 하도록 버려둠은 곧 아령(러시아령) 五十만 동포전체에 책임이라 할지니, 대개 몇 개 악류가 나라와 은인에게 대한 의리를 버리고 나라와 은인의 원수에 개가 됨으로 전 아령(러시아령) 五十만 동포가 다 그 누명을 쓰고, 따라서 전 대한 二千만 국민이 함께 그 수욕을 당하나니, 벌써 이 일을 아는 세계 인류는 「아아 망국민이로다. 한국의 인민은 나라도 모르고 은인도 모르는 의리 없는 백성이로다.」하는 치소와 저주의 소리가 들리는도다. 우리는 아령(러시아령) 동포의 의리를 믿고, 애국심을 믿고, 용기를 믿노라. 불의를 보고 매국적을 볼 때에 내 목숨을 없이 하더라도 이를 징벌하지 아니하고는 견디지 못하는 기개를 믿으며, 五千년의 나라의 은혜와 五十년 동안의 아라사(러시아)의 은혜를 깊이 깊이 기억하여 뜨거운 피로써 이를 갚고야 말리라는 씩씩한 의기를 믿노라. 이를 믿는지라, 이에 사랑하고 깊이 믿는 아령(러시아령) 五十만 동포에게 뜨거운●●을기울여 이 글을 보내노니 의기로운 대한의 동포여, 분발할지어다. 의기를 발할지어다.『獨立新聞』, 1920년 12월 18일.

    5384 "「國務院布告第三號-간도동포에게」|| 『獨立新聞』(1921.1.15)"

    본직 등은 우리 국민과 국민의 정부를 대표하여 조국을 위하여 지난 十월 초생 이래로 용감히 싸우는 독립군과 무도한 적의 폭행에 생명과 집과 양식을 잃은 一百萬 간도 동포에게 감사하고, 위로하는 뜻을 표하며 아울러 장래에 더욱 일심하고 더욱 분발하여 최후의 일인 최후의 일각까지 우리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자유를 광복코야 말자는 첫 날의 결심을 더욱 굳게 하시기를 바라나이다. 이 바람 차고 눈 쌓인 만주의 벌판에 말할 수 없는 고초를 당하시는 동포제위의 정경을 생각할 때에 본직 등은 二千萬 국민으로 더불어 피눈물이 솟음을 금치 못하오나 이것도 사랑하는 조국을 위하여 그리함이니 충용하신 동포제위는 이러한 경우에 처할수록 응당 더욱이 애국의 피를 끓이고 무도한 적국을 향하여 한번 더 죽기로써 자웅을 결단할 새 결심을 발하실 줄 믿나이다. 아직 우리의 준비함이 차지 못하여 가슴 속에 넘치는 울분을 한번 싸워 쾌히 씻지 못함이 원통하거니와 일은 오직 시간문제라, 최후의 승리가 우리에게 있을 것은 밤과 낮이 분명함과 같이 분명한 일이니 오직 있어야 할 것은 우리의 오래 참는 용기와 일심하여 힘써 일함이라. 이제 만일 우리의 용기가 꺾어지고 소망이 떨어지면 우리는 영원히 다시 일어날 날이 없을지오, 이 더욱 분발하고 더욱 일심하여 二千萬 최후 혈전의 준비에 힘쓰면 우리에게는 불원에 독립과 자유의 영광이 이를 것이로소이다. 일심함이 어느 때에야 필요치 아니하리오만은 오늘날 앞에 강한 적을 둔 우리는 더욱이 한마음과 한 뜻으로 바위같이 쇠와 같이 굳게 단합함이 필요하고 전력을 다하여 일함이 어느 때에야 필요치 아니하리오만은 오늘날은 없던 힘에서 새 힘을 만들어 큰 힘을 가진 적국을 대적하려는 우리는 남녀와 노소를 물을 것 없이 모두 있는 힘을 합하여서 바라던 목적의 대혈전의 날이 하루라도 속하기를 기약하여야 할 것이니라.아아 저 수 없는 충혼을 무엇으로 위로하며, 유리하는 동포를 무엇으로 안위하리까. 오직 독립의 대혈전에 적의 목을 베어 대한의 독립문에 높이 달려 있을 뿐이니 대한의 아들과 딸들은 지금 이 한마음으로 하나가 되었나이다. 아아 독립혈전에 용장한 선봉이 되신 충의로운 간도 百萬의 동포여, 二千萬의 형제자매와 그네의 임시정부는 일심하여 제위의 뒤를 따르나니 행여나 일시의 고초에 낙심하심이 있을서라. 옛 조상의 크신 정신을 돌아보고 앞날 千萬대 자손의 자유와 복락을 내다보아 더욱 분발하고 더욱 인내하소서. 우리 독립운동의 근본방침은 오직 혈전에 있는 지라. 과거 일 년 넘어 힘써온 모든 일은 실로 이를 준비하기 위함이거니와 이로부터 더욱 전체 국민으로 힘을 함께 하여 적극적으로 진행하기에 노력할지며, 또 안으로 국민의 결심과 밖으로 열국의 동정이 우리에게로 향하니 점점 우리의 경영은 완실하게 될지라. 그러니 정부는 국민의 정부라, 정부의 경영이 이루고 못 이룸은 오직 국민이 일심하여 정부에게 힘을 주고 아니 줌에 있나니 원컨대 동포제위는 더욱 일심하여 본직 등으로 더불어 죽기로써 우리의 최후의 큰 목적을 담아 이를 맹약 하사이다.

    5385 "「新年祝賀會」|| 『獨立新聞』(1921.1.15)"

    지난 一日 上午 十一時에 我政府 職員과 議政院議員 一同이 聯合하여 前 民團事務所에 會集하여 盛大한 祝賀式을 擧行하다. 李 國務總理의 司會로 開式하여 最敬禮가 있은 後 李 總理는 左와 如히 式辭를 述하다. 過去 十年間 無比한 恥辱 中에서도 精神을 貯蓄하고 勇敢을 養成하다가 再昨年 三月 一日 內外 同胞가 一心으로 萬歲聲中에서 民國을 誕生하여 우리 民族의 榮光을 世界에 發輝한 시 第三年 一月 元旦인 今日이외다. 去年 우리의 事業 進行에 莫甚한 困難이 있었고 또 豆滿江과 鴨綠江 沿岸과 西北間島에서 우리 同胞의 慘狀이 出하였음으로 遺憾이라 하겠으나 過去 殉國諸氏의 流血이 爲花爲果하여 今年은 完全한 獨立으로 漢城으로 돌아갈 해가 되리라 하나이다. 昨年에는 若干의 慘辱이 有하였으나 今年에는 決心에 決心을 增하고 團合에 團合을 加하여 立法部와 行政部가 合一하여 目的을 成就하기를 望하나이다.『獨立新聞』, 1921년 1월 15일.

    5386 "「孫義菴先生의 壽辰祝賀會」|| 『獨立新聞』(1921.4.9)"

    昨 八日은 卽 天道敎主로서 아울러 獨立宣言의 三十三代表中 一人인 義菴 先生 孫秉熙(손병희) 氏의 六十一回 誕辰이므로 申肅(신숙), 南亨祐(남형우), 崔東旿(최동오), 李民昌(이민창) 諸氏의 主催로 盛大한 祝賀會를 大東旅社 大樓에서 擧行하다. 아침까지도 쌀쌀하게 춥던 日氣가 正午에 至하여는 따뜻한 볕이 本日式場으로 定한 大廣間을 녹이어 모여드는 人士들의 오금을 펴게 하고 一場和氣로써 室內를 채웠다. 式場의 正面에는 「義菴 聖師 六一 誕辰 紀念」이라 書한 金字紅緞을 橫付하고 그와 甚直으로 「聖壽無疆」이라 繡놓은 黑宇 紅絹을 垂掛하였으며 그 끝에는 弓乙을 形成한 天道敎旗가 걸려 있고 그 側面壁上에는 雄壯한 兩旒의 大國旗가 걸려 있어 嚴威를 放하였다. 來賓側으로는 我政府各總長 以下 職員 中 諸氏와 議政院의 議長 以下 議員諸氏와 其他 前 李 國務總理 以外 各界의 人士를 通하여 無慮 八十餘人이 參席하였더라. 正午 十二時에 至하여 申肅(신숙) 氏가 開式을 宣하고 連하여 式辭를 述한 後에 南交通總長이 鄭重한 音調로 祝賀文을 朗讀하니 其文이 左와 如하다. 李東輝(이동휘) 氏 祝辭 大意는 今日 先生을 爲하여 祝壽할 理由가 첫째는 그가 時代의 不利로 因하여 終當 失敗는 하였으나 王公豪族의 跋扈와 壓迫을 制禦하고 自由平等을 享有하기 爲하여 甲午革命을 起함이오. 둘째는 今日의 敵인 그 時의 日人을 利用하여 國事를 圖謀하려 하다가 一進會의 誤國함을 보고 猛省하여 저로 더불어 分離하여 自國의 精神을 保有하는 勇斷을 取함이오. 셋째는 再昨年 三月 一日에 各宗各派로 더불어 大同一致하는 團聚로서 獨立을 宣言함이라 하고『獨立新聞』, 1921년 4월 9일.

    5387 "「두공산당의 연합」|| 『붉은군사』제2호(1921.12.24)"

    금년 유월에 알구쓰크에서 고려공산당이 조직됨은 일반 당원이 다 아는 바인데 상해에서도 고려공산당이라고 조직하여 두 당이 서로 승강함으로 국제공산당에서 명령으로 두 당을 연합시키고 양축에 있는 이왕 간부위원은 다 취소하고 대표회의가 모일 동안까지 임시간부위원 팔인을 한쪽에서 사인식 국제당에서 임명하여 사무를 계속 처리케 하였더라. 우리 당원된 자는 물론 국제공산당의 명령에 복종할지에 따라서 새 간부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주의자의 직분임은 물론이라. 과거의 시비나 충돌되던 조건을 가지고 사사로운 언론이나 감정적 언론이나 불공평한 행동을 결코 말지며 또 새 간부위원 여러분도 진정한 공산주의자의 정신과 정성된 마음으로 양당 연합에 대한 다수당원의 오해와 ●의심을 없이 하도록 주의하여 행사할 것뿐이로다. 一九二一년 一二월 十五일 오후 세시에 새 간부위원 이동휘, 홍도 두 동무가 두 당을 연합하던 과거 정형과 ●국제 공산당에서 결정한 사실보고를 고려혁명군 여단 안에 있는 공산당 지부에서 보고하였는데 그 대략을 아래 기록하노라. (一) 이동휘 동무의 보고 우리 두 당의 과거는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것을 관계치 아니하고 장래를 위하여 우리공산주의자들은 국제공산당에 복종할 것뿐이오. 결코 네 당 내 당의 분별이 없어야 하며 새 간부위원은 이왕 두 당 간부위원 중에서 공평하게 나갈 만한 사람을 한 당에 에식 선정하였으니 우리는 새 간부에 절대로 복종하는 것이 이론이 없기를 요구한다하며 다음에 한인사회당의 역사를 말하다가 그 당의 성립을 대략 말하면 어느 나라를 물론하고 좌당우당의 분별이 없지 아닌지라. 사회당은 一九一八년에 하바로프스크에 성립되었다. 一九○七년에 고려 서울서 신민회라는 혁명기관이 성립된 후 나는 아령(러시아령)에 있어 많은 사람을 연락하였노라. 一九一八년에 신민회회원 유동렬, 양기택, 조성환, 이동녕, 안정근 등 수십인이 회의하다가 의견이 부동하여 나는 그 회의에서 탈퇴하여 사회당 조직에 착수하여 ○오와실리, 김립, 이한영, 오성묵, 오하묵, 김종, 딴깨비취 여사 등 수십인과 같이 당무를 처리하다가 一九一九년 독립운동이 일어난 해 칠월에 박애, 박진순, 이한영 세 동무를 모스크바에 파견하여 제삼국 제공산당에 참가케 한 후 나는 상해 입시정부에 취임한 후로 향상주의를 표방하여 나아가려 하였으나 성공하기 어려우므로 정부에서 나와 당무에 전력하였노라. 상해공산당 성립은 금년 오월 二十一일에 내지 사회혁명당과 한인사회당이 합하여 성립된 후 일구쓰크와 충돌하다가 이제 다시 연합하게 되었으니 이 역시 다행이라 합니다. 본인은 이에 대하여 정성과 힘을 다하노라 하고 다음 말은 에게 대하여 권고에 말을 한 것이다. (二) 홍도동무의 보고에●●● 나는 내지사회혁명당의 역사 말하고자 함에 고려국 자래●●사상 습관을 약언하노니 一九○四년 동학당운동은 ●●료와 부유계급을 타파하고 다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으나 국의 간섭을 인하여 실패하고 합병 후 십년동안에는 양반 곧 일본군벌파가 득세함을 인하여 사회혁명은 민족혁명운동으로 변하니 이는 다 근세역사의 대●●●오. 사회혁명당의 역사를 대략 말하면 一九一一년에 ●려국 어학자 주시경(周時經)의 발기로 배달모음이란 ●체가 일어 났는데 그 중● 고려에 정치혁명을 실현한 풍속개량과 기타 여러가지 명사업이었다. 一九一五년에 일본동경에서 고려, ●주, 안남(베트남) 등 각국 유학생들이 신아동맹단(新亞同盟團)을 조직하였는데 그 종지는 일본●● 주의타파와 서로 도움과 민족 평등과 국제평등 여러가지인데 고려배달모음은 신아동맹단의 지부로 행사하였고 중국에서는 학생계를 낙하여 구국일보를 (救國日報)중심으로 하여 배일운동을 취하며 고려단원들은 ●국에서 각 방면으로 연락하며 ●은 중국에 나가 혹은 폭발탄 만드는 법도 배우고 사관학교 공부도 하였소이다.신아동맹단이 사회혁명 상으로 ●●●●하던 역사一九二○년 六월에 서울에서 제●차 대회를 열고, 일반 단원은 제의 각오로 인하여 사회혁명당이란 이름을 고치고 선언서까지 발표하였는데 그●●는 계급타파와 사유제도 타파와 무산계급전제정치와 전국인구의 십분지 칠되는 무산자들과 함께 혁명운동을 실행할 여러 가지라 하다. (三) 한명세 동무의 보고(1) 민족 혁명에 관한 사과(2) 본당에 관한 사건 두 가지로 나누어 이왕에 있던 모든 재료를 의지하여 국제공산당에 보고함에 저쪽에서도 역시 이런 보고가 있음으로 국제당에서는 이를 불관하고 두 당이 연합하라고 명령하나 나는 승낙하지 아니하고 국제당에 재판을 요구하여 二十여일만에 그냥 연합하기로 단결하였는데 그 중요한 증거는 민족기관이 둘이 됨을 따라 공산주의 기관도 둘이 생겼다 하며 또 상해당은 내지와 연락이 많이 있고 일꾸쓰크당은 중아령지(러시아령지)에 연락이 많은 즉 두 기관이 합하여 일함이 적당하다고 검사위원회에서 결정하여 집행부에서 승인하뇨. 두 당의 과거의 관한 시비는 공산당 대의회에서 판결케 하고 현금은 서로 충돌이 없이 일하라고 명령하였다. (四) 보고에 대한 문답 새 간부는 몇사람이며 한 아문서기는 누구뇨? 새 간부위원은 여덟 사람이오. 서기는 새 간부의원이 다 이곳에 있지 않기로 결정치 못하였소. 배달모음은 어떤 단체인가. 민국기관인데 민주주의를 목표로 하고 신아동맹단으로 변하였는데 동아 전체혁명을 목적하였던 이라.(미완)

    5388 "「사랑하는 내지동포에게」|| 『東亞日報』(1925.1.8-1.22|| 5회연재)"

    나는 먼저 東亞子를 通하여 現下 饑饉에 呼泣하는 數百萬兄弟들의 慘苦를 함께 울어주며 그 一條의 活路가 어디 있는가를 다시 찾아보려합니다. 그들은 目下政治 及 經濟 方面으로 壓搾이 酷毒한 中에 저같이 굶주림에 몰리게 됨은 그야말로 雪上加霜이외다. 그런데 饑饉은 年災의 近因이나의 壓搾은 人爲의 遠因이외다. 此 近因과 遠因의 死亡이 迫頭한 朝鮮의 無産群衆은 그 生門方을 찾음에는 오직 根本的으로 解決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地主의 庫間에는 穀食이 썩으며 富者의 鐵櫃에는 돈에 동녹이 끼면서도 社會에는 兄飽弟飢의 慘狀을 演出케 됨은 現代社會制度의 遺物인가 합니다. 그리하여 通川의 어느 學校에 通學하는 十四歲의 朴春赫(박춘혁)君은 冊褓낀 채로 途中에서 凍死한 것이 곧 資本社會의 常態를 雄辯으로 說明한 것이외다. 이 같은 朝鮮無産群衆들은 떼를 지어 南北滿洲와 시베리아에 流離하는 것을 或은 求活의 方法으로 생각하지마는 그도 容易치 못한 것이며 一時的 療法이고 永久의 根治는 못될까 합니다. 이에 우리는 우리의 意識을 支配하는 社會의 意識을 우리의 意識으로서 支配하도록 그 運命을 改革하여야 될 것을 깊이 覺悟할 것입니다. 저 無産群衆들은 손발이 닳토록 終年을 벌고도 굶주리고 죽게 되는 것은 오직 勞力者뿐이니 이렇게 不合理하며 沒人情한 세상을 누가 그대로 둘 것입니까?東亞子! 貴報特派員 趙東祐(조동우)君은 北京에서 孫文(손문)同志의 入京을 機會하여 李東輝(이동휘) 某某는 언제나 漢陽에 入城할까하는 感想의 通信을 보고 많이는 놀래면서 나는 동곳을 뺍니다. 趙君은 好意的으로 誇張의 筆法인지는 모르나 東輝 自身으로는 不敢當일 뿐더러 만일 朝鮮 어느 革命界에서 東輝의 漢陽入城을 苦待한다면 그는 零加零입니다. 何哉오하면 東輝는 元來寒微의 出身으로 처음 武夫職으로서 時勢의 推移를 伴하여 敎育 或 宗敎 方面에 從事하였고 中年에 民族運動으로 社會運動에 轉換됨은 그 方向이 正當하고 必然的으로 最後 勝利의 逕路일까 함입니다. 그러나 일찍 民族運動 方面에서 많은 國民의 囑望을 등지었고 더욱 同志者間에 互相紛糾가 있었음에는 撫心自愧할 것 뿐입니다. 그는 東輝의 不敏일뿐 아니라 海外一隅에서 어느 政府나 軍司令의 이름으로서 全國民을 呼令함은 너무도 迂闊하며 其實은 紙上空文이였습니다. 所以로 東輝도 그 方面을 轉換하려고 많이 努力하였으나 終乃는 誤解와 憾情으로서 早退하였습니다. 現在 社會運動에도 한 分子로서 素養한 識見이나 經驗이 없음으로 自己分內事나 지킬 뿐이요, 全群衆을 左右할 能力은 없습니다. 우리 過去運動에는 頭領밑에 群衆을 引入하려하였지마는 只今은 群衆自體로서 그 階級의 利害를 잘 打算할만한 代表者를 自選할 것입니다. 그런데 貴報에 海外記事를 보면 東輝가 頭領이니 團長이니 하여 마치 權能이나 있는 듯이 宣傳됨은 良心에도 不堪일 뿐더러 더욱 群衆을 愚弄함에 많이 悚愧한 일이외다. 故로 東輝의 漢陽入城은 個人의 所願일지언정 決코 全體의 渴望은 아닐까합니다. 이런 자리에는 차라리 漢城 고무工場에 女子나 鐵工場의 靑年들이 차지하는 것이 正當한 일이며 그리 되어야 우리의 運路가 바로 開拓되리라고 믿고 바랍니다. [寫眞은 李東輝(이동휘)氏]

    5389 "丹羽賢太郞|| 「復命書」|| 『機密書類綴』(1907.8.23)"

    복명서(復命書)8월 17일 강화도에 출장 전(前) 참령(參領) 강화도 보창(普昌)학교장…(원본판독불가)… 부회장 이동휘(李東輝)의 경력 및 8월 9일 강화사변의 관계가 있으므로 취조하였는 바 내용은 아래와 같다.1. 이동휘(李東輝)는 함경남도 단천에서 태어나…(원본판독불가)…전 경리원 이용익(李容翊)의…(원본판독불가)…으로 되어 동인의 기밀에 …(원본판독불가)… 참령으로 강화진 위대(衛隊) 대대장으로 되었으며 장래 동도(同島)에 주택을 구비하고 빈번히 인심을 수람(收攬)하였으며 꽤 인망을 얻고 또한 예수교도가 되어 일종의 세력을 가지고 있다.1. …(원본판독불가)…9년 1월…(원본판독불가)…에 보창학교라는 것을 설립하여 현재 학생 150명이 있다.(예수교도이다) 또한 동인은 경성에 있는 한업흥(韓業興)학회의 유력한 회원이며 금년 3월 또한 자강회(自强會) 지부를 검설하고 친히 부회장이 되어 전문 세력을 확장하기에 노력하고 있다.1. 7월 20일 강황동에 본 성(城)의 사변 및 대한 매일신보(每日新報)에서 한황(韓皇)을 일본에 보낸다고 운운하는 기사를 전파하고 있다. 동 월 24일 이동휘(李東輝)는 동 교도인 김동수(金東秀), 허성경(許聖京), 김남수(金南秀), 김광천(金光天), 김팽암(金彭岩)과 상의하고 동 읍내 열무당(閱武堂)에 대중을 모아 아래의 의미의 선동연설을 하였다.…(원본판독불가)…이번 또한 한황(韓皇)을 일본에 보내려는…(원본판독불가)… 사방에 전하자 각 곳에…(원본판독불가)…상태를 심사숙고하면 칼산에 오르고 기름가마에 들어갈지언정 죽음을 각오하고 우리 동포의 수치를 씻을 것을 확지한다. 방청한 제군은 우리의 중요한 회담을 우둔한 말이라고…(원본판독불가)…각각 집에 돌아가고 숙고하면 국사를 위하여 죽음을 싫어하지 않는 것을 감지하여야 하며 현재 우리 동포의 상태를 보면…(원본판독불가)…1.7월 26일 다시 열무당에서 자강회의를 열었으며 그 내용은 숙지 할 수 없다.1. 7월 30일 …(원본판독불가)…김동수(金東秀), 허성경(許聖京) 등과 함께 예수교도를 모두 400명 모아 놓고 합성친목회라고 제목하고 앞의 내용과 같은 선동연설을 하였다.이상과 같이 이동휘(李東輝)는 인민 및 교도를 선동하는 동시에 그가 동지의 대대장인 관계로 병사도 암암리에 사촉(使囑)하였으며 특히 전등사(傳燈寺)와 같이 먼 지역에 집합을 …(원본판독불가)…교도 및 원 병사만을 입회시키고 충분하게 선동을 한 후 중인의 격앙을 보고 계책을 하려고 하였으며 경성의 상황…(원본판독불가)… 8월 12일…(원본판독불가)…이상 복명(復命)한다.

    5390 "「吳氏捉囚」|| 『皇城新聞』(1907.12.29)"

    李東輝(이동휘), 鄭永澤(정영택) 兩氏가 期成會會長 代辦總務 吳榮根(오영근) 氏를 某處 友人家에서 逢着하여 國債報償金 乾沒을 質問한 즉 吳氏가 橫竪의 說로 百般塗抹함 뿐 아니라 反히 無理의 言을 發하거늘 卽時 其 調査한 文簿를 送人 推來하여 一一査考한 즉 吳氏의 欠宿이 金四千餘●과 正租 一百石과 金銀屬 四拾餘 兩重이라. 掩護不得하여 切切自服하는지라. 李東輝(이동휘) 氏가 其 熱血이 沸湧하는 中 其 逃躱할 虛가 不無하여 吳氏를 警廳으로 捉去하여 警官에게 告發하여 曰 此漢이 人民의 分分 收合한 國債報償金을 盜食하였으니 卽 爲 捉囚하고 一一 推給給라 함에 警官이 亦是 痛憤하여 當嚴懲推拾하마 하더라니 李,鄭 兩氏는 可謂 全國義捐同胞를 代表한 者로다. 吾儕는 筆을 擧하여 汗顏함을 不勝하노라.『皇城新聞』, 1907년 12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