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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자료

    콘텐츠/독립운동가 자료 [] 에 대한 전체 5845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5291 언론보도(미주) 2

    寄書(기서) 김씨 밀니사  상제를 믿고 나라를 치할 일  독일무이하신 상제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 인생을 내실 때에 온전히 선한 성품을 주셨으니, 감사한 일은 말씀으로 다할 수 없거니와 선한 성품을 지켜 상제께서 주신 은혜를 감당하는 것이 사람의 직책이라. 연이나 그 선한 성품을 지키는 자 되고, 세상 정도를 따라 죄를 또 지는 자가 많은 고로 상제께서 독생자 예수씨를 세상에 보내어 우리의 죄를 대신하며 십자가에 피를 흘리셨으니, 주 예수의 선한 은덕이 얼마나 크다 하리오. 주 상생하신 후 一千九百七년에 십자가 밑에 나가 상제를 믿고 주를 의지하며 나라에 청목된 나라가 많은 중 미국을 독립한 워싱턴 같은 영웅도 처음 전쟁할 때에 다만 七十七人 민병으로 더불어 싸움을 시작할 때에 군사와 맹세하고 상제께 축사(祝辭)하며 왈, 저의 형제에 독립을 주시든지 죽음을 주시든지 양도 중의 하나는 상제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독립 찾아 일어선 지 팔년만에 애국지성으로 황천만 믿고 나가 성사하였으니, 세계에 유명한 영국 여황 같은 빅토리아도 나라를 다스릴 때에 성경 일책을 손에 쥐고 치국만민하고는 세계의 일등국이 되었으니, 과히 상제의 선하신 능력이 거룩하고 어질도다. 깰지어다. 깰지어다. 전국 동포 깰지어다. 우리나라가 이와 같이 급한 때를 당하여 성신의 방패가 아니면 승전키 어렵도다. 우리 이천만 형제자매가 일심으로 상제를 믿고 대포 앞에 나가 원수를 대적하면, 대자대비하신 상제께서 도와주실 것은 명명백백하도다. 우리의 믿는 정성이 상제께 감동하면 지극히 공평하시고 널리 사랑하시는 상제께서 그 자비로 하여금 어찌 독립을 주시지 않으리오. 대개 죽음이 여러 가지 죽음이 있는 중에 오직 한 가지 요긴한 죽음이 있으니, 이는 나라를 위하여 이혈보국의 제일 죽음이니, 차는 하나님의 진실된 이치라. 진리를 모르면 어찌 기(己)가 죽고 남을 죽일 정신이 있으리오. 우리 상제를 믿는 형제자매여.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보는 나라와 동포를 사랑하며 선을 행치 못하면 어찌 보이지 않는 천국을 사랑한다 하리오. 이는 거짓 착한 체 하는 자라. 어찌 신앙으로 믿는다 하리오. 선이라 하는 근본을 행치 않고, 대저 선악이라 하는 것은 행하는 데 있으므로, 사람이 선을 한 번 행한즉 복이 지금에 돌아오지는 않지만은 악은 멀어지고, 사람이 악을 한 번 행한즉 화가 지금에 돌아오지는 않을지라도 복은 이미 멀리 떠났은즉 실로 가탄할 일이다. 그러므로 묻노니, 우리 이천만 동포는 어서 속히 정신을 차려 이때에 선을 행하여 살신구국하며 망한 국권을 회복하며 이천만 동포를 구하는 선과 내 한 몸 사는 사사정욕과 두 가지 중에 어느 것을 취하느뇨. 취하리라. 취하리라. 이혈보국 취하리라. 저 원수의 대포알이 우리 한국 독립 결과될 꽃봉이라. 이내 몸은 대포 알에 짐이 될지라도 내 나라만 독립되면 내의 죽음 꽃이로다. 동포, 동포여. 내가 참으로 고하노니, 나라를 위하여 피 흘리는 것은 백성된 의무요, 동포를 위하여 피 흘리는 것은 사람의 직책이라. 우리의 직책을 다하여 세상에 빛이 되고 나라에 꽃이 되옵시다. 나는 이 세상에 성명없는 일개 여자로서 애국하시는 동포에게 이같이 말씀하는 것이 당돌할 듯하나, 나라를 위하며 동포를 사랑하는 데는 남녀가 없음이요, 또한 나라가 망하는 지경에 어찌 적은 체면을 차리고 수수방관만 하리오. 이러므로 붓을 잡고 두어 줄 글월을 기록하여 애국하시는 형제자매에게 청컨대, 우리의 붉은 피로 대한제국의 독립을 찾고 대대손손에 빛내기를 축수하고 바라나이다.

    5292 언론보도(미주) 3

    양(장인환·전명운) 의사 합전  창해자 우드손 저  장 의사 인환(장인환)은 인동인이라. 건국 기원 사천이백십일년에 평양군에서 생하였는데, 부모를 조실하고 집이 빈구하여 그 숙부에게 의탁하더니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미인 미교회에 세례를 받은 이라. 천성이 침정하고 견인하여 언어가 간묵하며 동작이 근칙하여 교문의 규구를 독수하여 신덕을 게을리 하지 아니하더니라. 왕왕이 통구대도에서 성경을 가지고 진세 욕해에 침륜 매몰하는 형제·자매들을 불러 천국의 좋은 소식을 전하다가 혹 교법의 종지를 논박하여 궁극히 힐문하는 자 있으면, 능히 대답지 못하나 문득 말하되, 너의 나를 굴하게 함은 입으로써 하되 나는 너에게 고함을 마음으로써 하노라 하여 권권히 말지 아니하더라. 사천이백삼십팔년 춘에 하와이에 이민하는 길이 열리는지라. 의사 또한 그 중에 참여하여 태평양을 건넜더니, 일 년을 지내고 다시 샌프란시스코 항에 이르러 혹 철로의 공역도 잡으며 농장의 고용도 응하며 객잔의 쇄소하는 집무도 이바지하여 영소한 임전으로 입에 풀칠하며 날을 지내니, 몸을 다스리기를 검약히 하여 분호라도 낭비함이 없으되 동포의 곤고함을 보면 문득 낭탁을 풀어 개연히 주급하여 조금도 아끼지 아니하더라. 항내에 새로 온 동포가 있어 질병을 얻어 여관에서 신음하고 영어를 알지 못하여 자생할 길을 얻기가 어렵거늘 의사가 그 동포를 자기의 주소로 옮기고 반비를 관상하며 치료를 간호하며 신습 의복을 공급하고 또 자기의 고용하던 사무를 사양하여 말하기를, 나는 또 달리 직업을 구하리라 하며, 또 다른 동포가 병으로 인하여 귀국할 즈음에 여비가 군졸한지라. 마침 몸에 장물이 없어 찾던 바 시표(시계)를 끌러 주며 말하기를, 애오라지 구구함을 표하노라 하였다. 알래스카에 있다가 돌아올 때에 뱃속에서 한 사람과 짝하였는데 그 사람은 아편을 즐기며 도박을 좋아하여 가졌던 금전은 호로가치에 다 잃어버리고 심신이 저상하여 뱃머리에 울울히 앉았거늘, 의사가 성경을 가져다 그 사람에게 주면서 말하되, 너는 금전을 잃었다 실심하지 말고 이 글을 받을지어다. 장차 너를 안위케 하며 만족케 하며 쾌활케 하여 너의 잃은 것보다 큰 것을 얻게 하리라 하니, 그 사람이 무연이 성경을 받는지라. 의사가 돌아와 힘을 다하여 구제하니, 그 사람이 드디어 전일의 그런 것을 회개하고 의사의 선행에 감복하여 친절한 교우가 되니, 의사의 행하는 바가 대략 여차하더라. 전(전명운) 의사의 이름은 명운이요, 적은 담양이요. 대로 한성에 있었으니 나이는 장(장인환) 의사보다 다섯 해가 적으니라. 또한 하와이로 샌프란시스코에 도달하여 노동으로 날을 지내는데, 천성이 명민하나 기습이 강맹하여 불평한 말이 귀에 이르면 문득 옷깃을 뽐내며 팔뚝을 저어 노목으로 서로 향하여 타매 질욕함을 조금도 아끼지 아니하며, 또 형체가 단소하여 칠척에 차지 못하나 눈이 밝고 손이 빨라 아무리 구간이 장대하고 여력이 초등한 자라도 주먹을 던지고 다리를 날리는 곳에는 뒤로 자빠지며 앞으로 거꾸러지지 않는 자가 없어 사람이 많이 그 성행을 꺼려서 혹 규구에 벗어남이 있는가 의심하되, 언어가 온공하며 선언과 선행을 당하여는 일찍이 강심하려 하여 복종 아니 하는 바 없더라. 알래스카에 있을 때에 일본 사람 보스[보스는 영어에 노동자를 감독하는 자란 말.] 아래에서 고역하는 바 되었으니, 그 땅은 어업에 종사할 일 외에는 달리 직업을 얻기가 어렵고 타처와 교통이 불편하여 출입이 여의치 못한지라. 이로써 보스가 우리 동포의 그 땅에 노동하는 자를 대하여 왕왕 난감할 사역을 방책하며 비리의 능학을 더하는지라. 의사가 그 무법 잔각함을 분하게 여겨 보스더러 말하되, 나는 이 같은 대우와 이 같은 고초는 결단코 견디지 못할 바라. 나는 해고하기를 청하노라. 보스가 듣고 노하여 육혈포를 들어 위협하여 말하되, 너는 이것을 볼지어다. 의사가 미리 육혈포를 몸에 감추었다가 마주 들어 향하여 말하되, 나는 네가 이러한 악습이 있을 줄을 알았노라. 나는 오늘에 너 같은 무도불법의 행위로 세상에 자취를 끊어지게 하리라. 보스가 대경하여 사죄하며 해고함을 허락하더니, 그 후 보스 또한 다른 동포의 임금을 간몰하고 기약이 지나도록 상환치 아니하는지라. 의사가 길에서 서로 만나 임금의 상환함을 권고하되, 듣지를 아니하거늘 의사가 두 발로 번개같이 차며 두 주먹으로 비같이 치자, 보스가 낭중에 있던 돈을 꺼내어 양수로 바치기까지 마지를 아니하니, 보는 자 다 쾌함을 일컫더라. 대저 장·전(장인환·전명운) 양 의사의 성격의 부동함이 이와 같아 장(장인환)은 문을 숭상하면 전(전명운)은 무를 숭상하며, 장(장인환)은 인을 즐겨하면 전(전명운)은 의를 즐겨하며 장(장인환)은 응용함을 좋아하면 전(전명운)은 호매함을 좋아하며, 장(장인환)은 개결함을 주장하면 전(전명운)은 척탕함을 좋아하여, 장(장인환)은 구추상천에 편운도 가리움이 없어 명월이 교결하며 옥우가 청숙함과 같은 수렴하는 기상이 있으되, 전(전명운)은 욱일염천에 녹음이 밀물하며 취우광풍에 낙화가 빈분함과 같은 발원하는 기상이 있으며, 장(장인환)은 암석이 쟁영하며 봉만이 중첩하여 심수 유한한 산과 같이 심중한 태도가 있으되, 전(전명운)은 안개가 일며 우레가 울어 만경창명에 파도가 흉용한 바다같이 경괴한 태도가 있으며, 장(장인환)은 쥐를 잡으려는 괭이처럼 알을 안은 닭처럼 한 귀로 들으며 한 눈으로 보는 만복의 전일한 정신이 있으되, 전(전명운)은 수풀에 나온 새끼 범처럼 멍에를 벗은 망아지처럼 겁도 없고 두려운 것도 없이 동서 도량하려는 정신이 있으며, 장(장인환)은 백옥을 가지고 준조(제기로 제사 받듦)를 받들어 수사행단(선비를 교육하는 교단)에서 읍양 진퇴하는 사군자의 규모를 보존하되, 전(전명운)은 술을 마시며 칼을 의론하여 연나라 남과 조나라 북에서 강개한 슬픈 노래로 방약무인하던 열사 협객의 유풍을 사모하는 지라. 한 번 봄에 수화빙탄이 서로 용납지 못할 거 같으나, 그 나라를 위하며 동포를 아끼는 일편열성은 양 의사(장인환·전명운)가 일찍이 같지 아니한 곳이 없더니라. 아일강화(포츠머스 조약, 1905) 이후로 본국의 정형이 날로 급급하여 사천이백삼십팔년 십일월에 일본 대사 이등박문[伊藤博文(이토 히로부미)]이 사령관 당곡천 등으로 군사를 거느리고 궁성을 환요하며 정부를 위협하여 오조늑약(을사늑약, 1905)을 핍성하니, 양 의사(장인환·전명운)가 이 소문을 듣고 분개함을 이기지 못하여 장(장인환) 의사가 항상 말하되, 나는 특별한 학식이 없어 나라에 별달리 갚을 방책이 없거니와 언제든지 우리나라가 일본을 대하여 독립전쟁을 여는 날에는 나는 반드시 칼을 허리에 하고 총을 어깨에 하여 떨어지는 날 가운데에 말머리 행오 앞에서 나의 한 창자 더운 피를 쏟을 뿐이라 하더니, 사천이백사십일년 삼월에 정부 고문관 미국인 스티븐스가 샌프란시스코 항에 도달하니, 스티븐스는 본디 일본에 신용하던 자라. 일본에 아당하며 일본에 복종하여 우리 외부에 고문으로 있어 오조약(을사늑약, 1905)을 체결할 때에 한마디 말을 발하지 아니할 뿐이 아니라 비밀히 일본을 도운 흔적이 있으므로 세인의 타매하는 바인데, 더구나 항내 신문기자를 대하여 한국이 일본 보호를 받음이 당연하다고 말하기를 마지아니하는지라. 항내에 동포들이 공동회를 모이고 최정익·문양목·정재관·이학현 사인을 총대로 정하여 스티븐스에게 그 무리함을 질문하니, 스티븐스가 대답하되, 한국은 일본의 보호를 받음이 행복이다. 한국은 황제가 포학하고 인민이 몽매하여 독립할 자격이 없느니라. 정재관이 분연히 일어서며 주먹으로 스티븐스를 쳐서 자빠지게 하는 곳에 제인이 각기 앉았던 교의를 들어 넘겨치니, 샌프란시스코 항에 제일등으로 유명한 페어몬트 여관에 일당 헌요가 기십백 신사 귀부 일의 당황함을 일으켜 혹 만지기도 하며 혹 화해도 하므로 사인이 돌아오니, 이때 전(전명운) 의사 또한 스티븐스를 보려고 여관에 갔다가 거절함으로 인하여 돌아 오니라. 그 이튿날 스티븐스가 대통령 루스벨트를 보고 한·일(한국·일본)관계를 말하려고 워싱턴으로 가는데, 일본 영사 쇼디가 전별하기 위하여 자동차를 같이 타고 오클랜드 부두에 이르니 양 의사(장인환·전명운)가 각기 육혈포(탄알 재는 구멍이 여섯 개 있는 권총)를 가지고 부두에서 기다리다가 스티븐스가 차에서 내림을 보고, 전(전명운) 의사가 몸을 가까이 하여 총의 방아쇠를 당기니 공교히 탄환이 총혈과 같지 아니하여 나가지 아니하는지라. 드디어 총을 거꾸로 잡아 스티븐스의 얼굴을 맹타하니, 장(장인환) 의사가 뒤에 섰다가 삼차를 연하여 발하는지라. 팽팽하는 한 뼘에 차지 못한 육혈단포의 세 마디 적은 소리가 이천만 단기유족의 충분강개 하는 탄식의 소리를 발표하며 사천 년 동반도 제국의 독립자유를 세계열강에 창언하는 소리를 대신하여 럭키산의 반향이 성세를 화답하는 듯 태평양의 구풍이 위엄을 돕는 듯 만인의 귀가 먹먹하다. 만인의 눈이 뚱그래서 일제히 돌아보니 제一방은 불행히 전(전명운) 의사의 어깨를 맞았으나 제二방은 스티븐스의 가슴을, 제三방은 스티븐스의 허리를 꿰뚫어, 우리나라의 녹을 먹고 우리나라의 원수에 아당하는 우리의 간흉한 고문관이요, 문명국의 인민으로 문명한 공리를 반대하는 저 교활한 외교가의 더러운 피가 오클랜드 부두 아침 날에 비린 냄새를 전하며 붉은 자취를 뿌렸는지라. 장(장인환) 의사가 조용히 육혈포를 길에 있는 순사에게 주고 경무청에 들어가니, 전(전명운) 의사는 상한 바가 중하여 혼절한 것을 경무청으로 옮겨다 눕힌 지라. 장(장인환) 의사가 그 상함을 알지 못하고 발을 들어 전(전명운) 의사를 걷어차며 말하되, 명운(전명운)아 일어날지어다. 어이하여 정신을 진발치 못하느뇨. 이윽고 전(전명운) 의사 회생하니, 지방 검사가 질문을 행하는지라. 대답하여 말하되, 일본이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아라사(러시아)와 개장한다 공언하고 우리 국권을 박탈하며 우리 정부를 위협하며 우리 토지를 늑점하며 우리 생명을 학살하거늘, 저 스티븐스는 우리나라에 국고 월급을 먹으면서 우리 도적을 음조하니, 나의 한하는 바는 나의 총으로 저를 죽이지 못함 뿐이로다. 장(장인환) 의사는 신문 방사인을 대하여 붓을 들어 수백 언을 써서 주었으니, 대개 말하되, 나는 죽기를 감심하는 자라. 일본의 불법 만행은 세계에 공언하는 바이거늘, 저 공리를 알지 못하는 스티븐스는 이를 도우며 이를 아당하니 나는 죽기로 저를 죽임으로써 우리 이천만 대한 국민의 애국심을 한 번 환성케 하려 할 뿐이로라 하였도다. 몇 날이 못 되어 스티븐스가 병원에서 죽으니 이때 미국 전경이 양 의사(장인환·전명운)의 충의를 탄상치 아니하는 자 없어 모두 말하되, 우리는 한국인은 발로 차면 노할 줄을 모르고 탱크유[땡큐(Thank you)는 영어의 감사하다는 말]이라 하는 사람으로 알았더니, 한국 사람의 용감 강의함은 우리의 경탄할 바이라 하며, 한 부인이 노상에서 이 일을 듣고 감동함을 이기지 못하여 스티븐스의 죽음은 당연이라. 양 의사(장인환·전명운)의 의거는 상쾌하다. 진진히 칭도하여 찬양하기를 마지아니하여 마치 자기의 원수를 갚은 듯이 쾌활함을 견디지 못하거늘, 곁에 있던 신문 파는 아이가 웃으며 물어 말하기를, 그대는 한국 사람과 혼인을 하려 하는가 하니, 듣는 자 절도(포복절도) 아니하는 자 없으며 항내 『콜』신문에 양 의사(장인환·전명운)를 극히 찬도하다라 하였으되, 일인에게 매인 한국의 인민들은 이 소문을 들으면 용을 타고 하늘에 오른 듯이 기뻐할지며, 일본인은 이 소문을 들으면 어찌하여야 한국을 파란(폴란드)과 같이 만들꼬 생각할 것이며, 각국 외교계에서는 이러한 일을 경동하여 미국이 장차 양 의사(장인환·전명운)를 어이 재판하는고 크게 주의를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리라 하였으며, 미국에 있는 기십만 청인들은 우리 동포를 만나면 손을 들어 치하하는 말이 고려 선생이여, 귀국 사람의 열렬굉굉한 절협 의거는 우리 사억만 인의 나약한 풍습을 부끄럽게 하는도다 하며, 일본 영사 쇼디는 총소리에 놀랜 혼이 몸을 숨겨 도망하였으나 남은 겁이 그저 있어 열흘이 넘도록 집의 문을 굳게 닫고 빈객을 사절하였더니라. 이에 미국 본지와 하와이와 멕시코에 있는 동포들과 일·청(일본·청)에 유학하는 학생들이 의연을 수집하여 율사를 고빙하며, 옥비를 공급하여 재판을 준비하더니 칠월에 이르러 전(전명운) 의사는 보방함을 얻어 영영 추구함을 면하였고, 장(장인환) 의사는 십이월에 이르러 정식 재판을 열고 율사의 강개히 변호함과 배심관의 애석하는 감정으로 모살죄 제이급에 단안하여 이십오 년 징역에 처함으로 선고함을 얻어 샌퀸틴 감옥으로 옮기니라. 전(전명운) 의사는 청년이라. 그 전정의 여하한 특행기절을 다시 세울 지 우리가 알지 못할 바이라. 즉금 벨린(베를린)에 들어 비스막(비스마르크)의 장도를 상상하며, 모스코(모스크바)에 다다라 제피득(피터)의 유풍을 관찰하고 시베리아 광막지를 건너 흑룡강 남북에 있는 우리 동포를 방문하러 갔으며, 장(장인환) 의사는 샌퀸틴 옥중에서 자루 짜는 집역을 안심하여 일월을 유유히 보내나 십칠년 후면 가출옥의 처분을 받을 것이요, 사오 년 이후라도 동포의 협력만 있으면 특사 은전을 얻기가 어렵지 아니하니, 이로 인하여 장(장인환) 의사의 전도가 또한 무궁할 줄로 우리 동포가 믿는 바이더라.  창해자가 말하되, 우리나라는 문명하던 고국이요, 우리 백성은 혈기 있는 남아라, 저 간휼 괴패한 일개 스티븐스를 어찌 한양 시상에서 격살하는 자 하나도 없고 저를 저의 모국 고토로 보내어 양 의사(장인환·전명운)의 손을 빌어 우리의 분개함을 풀게 함은 그 어인 연고이뇨. 창해자가 위연탄식하여 말하되, 그 그러함이 있도다. 황천이 우리나라를 도우심이 깊으며 감죽당상에 민충정(충정공 민영환)의 피 묻은 적삼이 오히려 걸렸으며, 대마(대마도) 옥중에 최면암(면암 최익현)의 오열하던 고혼이 어느 땅에 허여지리오. 민충정(충정공 민영환)은 국내에서 반은 썩고 반은 죽는 우리 인민의 애국심을 환성케 하며, 최면암(면암 최익현)은 적국에서 공법을 위반하며 정의를 능멸하는 만자야심을 최절케 하였으니, 해외 만리에서 우리 국민의 지위를 존중케 하며 우리 국민의 명예를 발양케 하여 환구 만국에 강명 공고케 하려면 양 의사(장인환·전명운)가 아니면 그 누가 능히 하리오. 황천이 이미 민충정(충정공 민영환)을 내국에 두시고 최면암(면암 최익현)을 적국에 보내었으니, 어찌 양 의사(장인환·전명운)를 제삼국 되는 미국에 있게 함으로써 스티븐스를 기다리게 하지 아니하시리요. 양 충신(민영환·최익현)과 양 의사(장인환·전명운)는 일은 다르되 행하는 바는 같으니라. 그러나 양 의사(장인환·전명운)는 빈궁한 무명 일평민이라. 민충정(충정공 민영환)의 혁세훈척의 벌열도 없고 최면암(면암 최익현)의 유문숙덕의 명망이 없으되, 능히 칠척을 홍모와 같이 하여 민충정(충정공 민영환)과 최면암(면암 최익현)보다 일층 강장 굉렬한 수단을 잡았으니, 양 의사(장인환·전명운)는 과연 그 누구를 위함이뇨. 박랑사의 철퇴는 요세상 한하던 임금을 위함 뿐이요, 함양전의 비수는 지기 상대한 붕우를 갚을 뿐이라. 형경과 장자방을 지하에서 다시 일으킬 수가 있으면 그 부끄러움이 장차 어떠하리오. 장하도다. 양 의사(장인환·전명운)는 그 누구를 위함이뇨. 힘쓸지어다. 동반도 사천 년의 우리 단기 유민이여.

    5293 언론보도(미주) 4

      자세히 들으시오. 장·전(장인환·전명운) 양 의사 결산공고서에 호항 공동회 의연금을 三十一元 十전으로 기록한 일에 대하여 이허를 모르는 동포들은 이론이 분분하다기에 다시 설명하노니, 기시에 기명된 의연금의 총액은 二百三十一元 五十전이나 미봉이 九十五元 二十전오 부비가 八十五元七…(원본훼손)…원금이 六十元 六十전이 …(원본훼손)…상항(샌프란시스코)공동회로 三十一元…(원본훼손)…때에 각인의 성명과 수…(원본훼손)…를 세세히 녹송하였거늘…(원본훼손)…부비를 등록지 아니하였…(원본훼손)…거니와 기시 부비로 말하…(원본훼손)…건에 한인의 전부가 …(원본훼손)…것을 변명하였고, 수三…(원본훼손)…의문을 간행하였으니, …(원본훼손)…동회의 중요한 일이며, 또…(원본훼손)…부한 二十九元 五十전은 …(원본훼손)…이 수합치 못하여 공고…(원본훼손)… 급이됨이로다.

    5294 언론보도(미주) 5

    한국이민의 뿌리를 찾아서…①초기 1세의 발자취와 자랑스런 2세들의 현주소美州 移民 80年…人脈을 캔다. [題字 姜昭志(강소지)]  미주이민이 올해로 80주년을 맞았다. 한인교포도 60만을 헤아리게 되었고 경제성장 및 교육·사회·문화·과학 분야의 활동도 눈부시다. 미주 내 소수민족 중 가장 빠르게 커가는 코리언커뮤니티의 뿌리는 누굴까. 초기 1세들의 독립운동은 어떠했고 그 후예인 2세와 3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본보는 미주이민의 역사를 정리하기 위해 「미주이민 80년-인맥을 캔다」 시리즈를 연재한다.(편집자주)장인환 의사=190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본의 교고문 스티븐스를 저격해서 온 세상을 놀라게 했다. (사진은 초기이민 Korea Kaleidoscope 에서 전재).인간 장인환 [1]  장인환 의사(InWhan Chang)-한말 나라가 쓰러져가는 비통함에서 분연히 일어나 일본 앞잡이 외교 고문을 쏘아죽이고 젊음을 옥중에서 바친 미주 내 첫 애국지사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뒤로 하고, 하와이 사탕수수밭에 노동이민을 온 것이 1904년, 장인환 의사는 1908년 3월23일 샌프란시스코에서 3발의 총성으로 미국인 Durham White Stevens(듀람 화이트 스티븐스)를 저격하고 일제의 한국합병(강제병탄, 한일강제병합, 1910) 부당성을 전 세계에 알렸다. 샌퀸틴 주립 형무소에서 10년을 복역(죄수번호 23295)하고 출감한 그는 말년을 불우한 나날 속에서 보내다가 54세인 1930년 자살로서 생을 마쳤다.  미주 내 한인 사회에서 독립운동의 기치들 높이 들었던 애국지사 장인환이 간 지도 벌써 52년, 그의 일대기를 더듬어간다.   본보는 지난 2월 9일 가주정부 문서국(Calif States Archives)으로부터 장인환 의사의 옥중기록(1909~1919)을 얻는 데 성공, 75년이 지나버린 스티븐스 사건을 연대별로 재정리를 할 수가 있었다.  초기이민의 행렬: 1903년 1월 13일. 1백2 명을 태운 노동이민선 S. S. Gaelic(S. S. 게일릭)호가 제물포를 떠나 호놀룰루에 첫 닻을 내렸다. 이로부터 2년간, 4천년 역사에서 정부가 처음으로 공식인정한 노동이민이 새 땅 아메리카를 향해 줄을 이었다.  모두 7천2백 명이 하와이에 노동자로 새 삶을 시작했는데 이들이 바로 오늘 이민시대의 뿌리, 이 사탕수수농장의 일꾼으로 장인환과 전명운도 하와이에 도착. 코할라 농장에서 3년간 노예와 같은 생활을 하던 장인환은 1906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 한때는 알라스카 통조림공장까지 뛰는 등 막노동꾼이었다. 이 당시 샌프란시스코에는 1백50여 명의 한인들이 자리를 잡아 가기 시작했고 공립협회와 대동보국회라는 단체도 태동을 했다.  또 샌프란시스코 한인연합감리교회가 미주 내에서 첫 예배도 보았다.  근면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낯선 새 땅에 친일발언의 회오리가 몰아치고 잔잔하던 한인사회가 노도처럼 변한다. 두고 온 고국산천에 대한 향수에 젖을 사이도 없이 나라가 망해가는 비보에 모두가 울분에 쌓여 있을 때인 1908년 3월 20일 Durhm White Stevens(듀란 화이트 스티븐스)가 밀명을 띠고 상항(샌프란시스코)에 왔다. 그는 미국인으로 일본의 외교 고문직을 거쳐 1904년부터는 고종 황제의 인가를 받고 한국을 위해 외교 자문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 오자마자 그는 “일본의 한국 통치는 한국 국민 모두가 바라는 것이다.”라는 망언을 하고, 이것이 샌프란시스코 『클로니클지』에 실렸다. 망국의 통한 속에 있던 우국지사 문양목·정재관·이학현·최정익 등이 그가 묵고 있던 호텔로 찾아가 항의를 했지만 그는 끝내 정정을 하지 않았다. 분함으로 의자를 들어 그를 내리친 후 다음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공립협회 회의장으로 돌아왔다. 이때 모임에 전명운·장인환도 참석. 혈기가 왕성한 전명운은 내가 해치워버리겠다고 나섰고, 장인환(나이 32세)은 말없이 듣고는 나가버렸다.  다음날인 1908년 3월 23일 상오 9시 30분. 스티븐스는 어제 한인들의 항의에 겁을 먹고 일정을 서둘러 워싱턴으로 가기 위해 페리정거장에 막 도착을 했다. 이때 먼저 나와 대기하고 있던 전명운이 권총을 쏘았으나 불발, 뒤에 있던 장인환이 세 발을 당겼다.  전 미주는 물론 일본까지 간담을 서늘하게 한 사건이었다. 미주 내 독립운동의 여파는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을 저격한 사건에 영향을 주었고 초기 광복운동은 거대한 불길처럼 곳곳에서 타올라갔다.참고문헌김원용 저 『재미한인 50년사』노재연 저 『재미한인사략』소니아신선우 저 『초기이민』동아일보 「1983년 1월 18일자」양주은옹 인터뷰(1977년 10월 27일)주정부문서국보관 샌퀸틴 형무소 장인환 기록이화목 장로 인터뷰(1983년 2월 12일)Warren Y. Kim 저 『Koreans in America』(English Edition)최봉윤 교수 저 『Koreans in America』현규환 저 『한국유이민사』하권상항한국인감리교회 70년 일지김운하 저 『대한여자애국단사』조광동 기자 「시카고한인이민사(한국일보 시카고지사)」김강저  『한말의사 장인환』

    5295 언론보도(미주) 6

    D. W. 스티븐스(D. W. Stevens)가 성난 방문객들에게 의자로 거세게 얻어맞다(Savagely Beaten with Chairs by Angry Callers)대소동이 벌어진 호텔 로비격분한 애국자들이 희생자와의 인터뷰에 이의를 제기하다지난 금요일에 조선에서 도착해서 페어몬트(Fairmont) 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던, 미국에서 파견된 대한제국의 외부고문인 외교관 더햄 화이트 스티븐스(Durham  White Stevens)가 어제 저녁 호텔 로비에서 격분한, 4인으로 구성된 조선인 대표단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도와달라고 소리치는 스티븐스(D. W. Stevens)의 외침에 페어몬트 호텔에 묵고 있던 투숙객들과 호텔 직원들이 재빨리 호텔 로비로 달려갔기 때문에 스티븐스(D. W. Stevens)는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다. 4명의 조선인 대표단은 만약 호텔 투숙객들과 호텔 직원들에 의해서 제지당하지 않았더라면 스티븐스(D. W. Stevens)를 살해하였을 것이라고 분명히 선포했기 때문이다.  스티븐스(D. W. Stevens)는 심한 타박상을 입었지만 치명상을 입지는 않았다. D. W. 스티븐스(D. W. Stevens)는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가진 인터뷰에서 조선인들은 일본의 보호로부터 많은 이익을 얻고 있으며, 조선인들은 일본의 보호에 대해 호의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였다고 말하였다. 스티븐스(D. W. Stevens)는 또 조선의 농민들이 일본인들을 환영하고 있으며, 조선의 관료층은 조선의 유일한 희망은 일본이 제안한, 오래된 제도의 재편성이라는 사실에 대한 자각에 있다는 이유로 일본인들을 호의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였다고 덧붙였다. 그가 인터뷰에서 말한 자신들의 모국과의 관계에서 일본에 우호적인 다른 발언도 조선인들을 격분시켰다. 격분한 조선인들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조선의 애국교육 조직(Corean Patriotic and Education Societies)이 함께 모이는 대중 집회가 개최되었다. 이 조직의 중요한 구성원이자 모두 열정적이고 지성적인 젊은이인 이을(Eul Lee, 이학현), 정재관(C. K. Chung), 문양목(J. M. Moon), 최유섭(U. S. Choy) 등 4명은 D. W. 스티븐스(D. W. Stevens)를 면담하고 언론에 발표된 스티븐스(Stevens)의 견해를 확인하는 대표단으로 임명되었다. 앞에서 언급한 4인의 애국자들은 어제 밤 9시 직후, 발코니에서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음악이 로비를 가득 채우고, 저녁 만찬을 마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값비싼 의자에 앉아 잡담에 몰두하고 있을 무렵, 페어몬트 호텔을 방문하였다. 이을(Eul Lee)은 호텔의 접수원에게 다가가서 D. W. 스티븐스(D. W. Stevens)에 대해 물었고, 마침 그 때 스티븐스(Stevens)는 대표단을 만나러 계단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는 4인의 대표단과 함께  복도의 북쪽 끝에 있는 방으로 걸어갔고, 그곳에서 곧 다섯 사람은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였다. 4인 대표단의 대변인 이을(Eul Lee)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였다. 이을(Eul Lee)은 스티븐스(Stevens)에게 신문에서 발표한 대로 그가 그런 말을 하였는지 질문하였다. 스티븐스(Stevens)가 자신이 한 말은 신문에서 발표한 그대로라고 대답하였다. 질문은 반대 심문 형태를 취하였다. 스티븐스(Stevens)는 각각의 질문에 명확히 답변하였다. 스티븐스(Stevens)는 위대한 일본의 업적은 모두 조선을 위한 것이고, 조선인들이 얼마나 일본 정부를 사랑하고 있으며, 일본 정부가 조선에서 펼치는 정책들을 좋아하고 있는지에 관하여 덧붙였다.의자로 스티븐스(Stevens)를 가격하다“스티븐스(Stevens)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순간마다 우리는 점점 더 격분하였습니다. 정말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습니다.”한 시간 반 뒤, 이을(Eul Lee)은 이렇게 토로하였다. “우리는 스티븐스(Stevens)의 이야기를 듣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네 명 가운데 한 명이 스티븐스(Stevens)를 쳤고, 스티븐스(Stevens)는 의자 아래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바로 그때 우리는 그를 공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가 스티븐스(Stevens)에게 사용한 유일한 공격 수단은 작은 등나무 의자였습니다. 등나무 의자는 굉장히 작고 가벼웠기 때문에 그다지 큰 상처를 입힐 것 같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등나무 의자로 스티븐스(Stevens)를 때렸습니다. 스티븐스(Stevens)는 도와달라고 소리를 질렀고, 호텔 안에 있던 사람들이 달려와서 우리를 스티븐스(Stevens)에게서 떼어놓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스티븐스(Stevens)를 때릴 수 없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우리들을 제지하였을 때 스티븐스(Stevens)를 거짓말쟁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람들은 우리들이 더 이상 싸우지 못하게 말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호텔에서 나왔습니다. 스티븐스(Stevens)에게 그 정도 밖에 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우리는 모두 굉장히 후회했습니다.우리는 사실 스티븐스(Stevens)를 만나기 전에 그를 페어몬트 호텔에서 만날 수 있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또 스티븐스(Stevens)가 신문에 발표된 말을 자신이 했다고 고집할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스티븐스(Stevens)를 페어몬트 호텔에서 만난다거나, 그가 자신의 말을 계속 고집하리라는 사실을 예상할 수 있었더라면, 스티븐스(Stevens)에게 대응할 준비를 좀 더 했을 텐데, 안타까울 따름입니다.”스티븐스(Stevens)는 4인의 조선인 대표단에게 공격을 당한 뒤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페어몬트 호텔 로비는 조금 전에 발생한 소란스러운 사건으로 엄청나게 들끓었고, 여성들은 특이한 사건에 놀라서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스티븐스(Stevens)는 상처를 치료받았고, 자신이 당한 공격에 관해서 논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 나타나는 것은 거부하였다. 스티븐스(Stevens)는 자신이 당한 공격에는 살의가 내포되어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일본인에 반대하다이을(Eul Lee)은 4인의 대표단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스티븐스(Stevens)가 조선 정부로부터 급여를 받으면서도 조선인들이 스티븐스(Stevens)가 하기를 원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하였다. 이을(Eul Lee)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즉, 스티븐스(Stevens)는 우리 조선인과 일본인에 관해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스티븐스(Stevens)는 일본을 위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이 조선을 ‘보호’하기 시작한 이래로 수천 명이나 되는 우리 조선인들이 일본인들한테 살해당하고 있습니다. 우리 조선인들은 조선에 대한 일본의 지배에 대해서 호의적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호의적으로 생각하기는커녕 오히려 전국 방방곡곡에서 우리 조선인들은 일본에 저항하기 위해 무기를 꺼내들고 있습니다. 일본 군인들은 농민들의 재산을 약탈하고 있고, 재산 약탈에 거부하는 농민들을 살해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시작된 이래로 겨우 일 년 남짓한 기간 동안 우리 조선의 대략 500곳의  마을이 일본 군대에 의해서 파괴되어 버렸습니다. 일본인들은 조선에 학교를 세워 자신들의 언어와 문자를 교육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일본인이 아니라면 어느 학교에서도 일본의 언어와 문자를 교육하지 않습니다. 일본인들은 조선의 군대를 해산하였습니다. 일본인들은 조선의 군대가 충성을 바친다는 이유로 해산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조선인들이 군대를 갖고 있는 한 일본인들이 우리 조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의 군대를 해산해 버린 것입니다.일본 정부는 지금 매달 수천 명이나 되는 자국민들을 조선 땅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선으로 보낸 자국민들을 우리 조선인들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에 배치하고 있습니다. 만약 일본이 우리 조선을 지배한다면, …(원본훼손)…

    5296 언론보도(미주) 7

    다섯 명의 조선인이 일본인에 찬성하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국채회의 고문을 공격페어몬트 호텔(Fairmont Hotel) 로비에서 의자와 주먹으로 외교관을 공격D. W. 스티븐스(D. W. Stevens), 『The San Francisco Call』지와 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업적을 찬양하고, 소동을 벌이다황제의 고문에게 황색인종의 나라가 겪고 있는 고통에 관해 질문하다조선의 국책회의의 자문인 D. W. 스티븐스(D. W. Stevens)는 친일본적인 발언 때문에 페어몬트 호텔에서 다섯 명의 조선인들에게 공격을 당했다.조선의 외부 고문인 D. W. 스티븐스(D. W. Stevens)와 어젯밤 페어몬트 호텔로 스티븐스(Stevens)를 만나러 온 다섯 명의 조선인 사이의 논쟁은 결국 난투극으로 끝났다. 페어몬트 호텔 로비에 놓여 있던 의자들은 공격하고 방어하는 무기로 돌변하였다. 그 난투극은 저녁식사가 끝난 직후, 로비에 투숙객들이 많이 모여 있을 시간에 발생하였기 때문에 엄청난 소동을 빚었다. 일본인들이 조선을 지배하는 것에 반대하는 조선인들은 스티븐스(Stevens)가 표출한, 일본에 찬성하는 정서에 반대하였다. 다섯 명의 조선인들은 스티븐스(Stevens)를 방문하였다. 조선인들이 방문할 당시 스티븐스(Stevens)는 호텔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그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다섯 명 중 세 명은 학생으로 짐작되는 젊은 남성이었고, 나머지 두 명은 중년 남성이었다. 이 다섯 명의 한국인 중 스티븐스(Stevens)가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섯 명의 조선인 중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청년이 스티븐스(Stevens)에게 다가가 자신들을 소개하고, 자신들이 조선에서의 스티븐스(Stevens)의 활동에 대해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서 왔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는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으로 가자고 제안하였다. 스티븐스(Stevens)는 다섯 명을 로비 밖의 무도회장 근처로 안내하였다. 『The San Francisco Call』지와의 인터뷰 인용대화가 계속되었다. 조선인 가운데 젊은 청년 한 명이 토요일자 『The San Francisco Call』지를 발췌한 것을 보여주었다. 토요일자 『The San Francisco Call』지에는 스티븐스(Stevens) 인터뷰 기사가 실려 있었는데, 인터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본은 지금 미국이 필리핀에서 필리핀인을 위해서 한 것과 같은 일을 조선에서 조선인을 위해서 하고 있습니다. 단지 주어진 상황이 다소 다르기 때문에 다른 상황에 맞추기 위해서 방법을 수정할 뿐입니다.”조선인들은 스티븐스(Stevens)에게 『The San Francisco Call』지 와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을 책임질 수 있는지 질문하였다. 조선의 고문인 스티븐스(Stevens)는 책임질 수 있다고 답변하였다. 그러자 조선인 다섯 명이 모두 한꺼번에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하였다. 젊은 조선인은 일본인이 조선인들을 학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알고 싶다고 하였다. 스티븐스(Stevens)는 그런 일은 없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또 그 젊은 조선인은 조선인 관료가 모두 제거된 것은 아닌지 알고 싶다고 질문하였다. 스티븐스(Stevens)는 그런 일은 없다고 대답하였다. 그는 또 그 젊은 청년이 조선을 떠나온 지가 너무 오래 되었기 때문에 모국의 정확한 상황에 알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바로 그 순간, 중년의 조선인이 스티븐스(Stevens)를 공격하여 그를 쓰러뜨렸다. 스티븐스(Stevens)는 머리를 대리석 바닥에 부딪혔다. 스티븐스(Stevens)는 즉시 일어났지만, 다섯 개의 의자가 머리 위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가장 앞쪽에 있는 적대적인 조선인의 의자에 오른쪽 턱을 맞아 쓰러졌다. 스티븐스(Stevens)는 그 뒤 의자를 붙잡고 벽에 등을 대고 자신을 방어하였다. 곧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경비, 짐꾼, 도어맨 등이 달려왔다. 레이몬드 휘트콤 투어스(Raymond-Whitcomb tours) 매니저인 찰스 A. 쿡(Charles A. Cook)은 난투극에 끼어들어 조선인 한 명에게서 의자를 빼앗았다. 난투극 장면을 모두 볼 수 있는 계단은 여성들로 가득 찼다. 스티븐스(Stevens)는 이마가 찢어지고,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아래에서 계속)샌프란시스코 콜(『The San Francisco Call』) 1908년 3월 23일자, Slurs on Korea End In Fight(위에서 계속)접질리는 부상을 당했다. 스티븐스(Stevens)가 조선인들이 페어몬트 호텔에서 물러나는 것 자체에 만족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체포되지 않았다. 국책회의 고위직스티븐스(Stevens)는 1904년 11월부터 조선국책회의 고문으로 일해 왔다. 스티븐스(Stevens)는 1883년부터 1904년 조선에서 활동하기 전까지는 워싱턴에 있는 일본 공사관에서 법률 자문으로 활동하였다. 스티븐스(Stevens)는 워싱턴에서 휴가를 보내기 위해서 일본환(日本丸-Nippon Maru) 호를 타고 지난 금요일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였다. 스티븐스(Stevens)는 어제 밤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 모든 일들이 한 편의 코미디 같습니다. 나는 그 조선인들이 누구인지 전혀 모릅니다. 조선인들 가운데 세 명은 틀림없이 학생인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한 명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조선에서 2년 전에 만난 사람인 것 같습니다. 나는 학생들에게 대해 전혀 반감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조선인들은 단지 자신의 조국에 대한 열성 때문에 그저 상황을 잘못 파악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조선인들이 무장을 하고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조선인들 가운데 한 명이 잭나이프를 갖고 있다고 말했지만, 나는 잭나이프를 본 적이 없습니다.”

    5297 언론보도(미주) 8

    더햄 W. 스티븐스(Durham W. Stevens), 미국 외교관 저격당하다어제 아침 미국의 외교관이 페리(Ferry) 선창에서 조선인 암살자에게 저격당했다. 미국 외교관의 목숨과 당시 외교관과 함께 있던 일본 영사의 목숨을 노린 두 명은 그 암살 시도는 조선의 혁명적인 계획의 결과라고 …(원본훼손)…

    5298 언론보도(미주) 9

    사회면과 개인면백악관에서의 리차드슨 부부(Mr. and Mrs. Richardson)일본 공사관에서 만찬을 즐기다다카히라(Takahira)씨는 더햄 화이트 스티븐스(Durham White Stevens)에게 경의를 표하며, 공사관 직원들을 접대하였다. 더햄 화이트 스티븐스(Durham White Stevens)는 조선 고종황제의 자문으로 활동하기 위해서 조선으로 갈 예정이다. 이곳에서는 커전 부인(Lady Curzon)의 병 때문에 걱정하고 있다. 뉴욕의 클리포드 리차드슨(Clifford Richardson) 부부는 루스벨트(Roosevelt) 대통령 부부의 초래를 받아 지난 목요일 저녁에 뉴욕에서 도착하여 백악관에서 만찬을 즐겼다. 어제 아침, 루스벨트(Roosevelt) 대통령의 영부인과 리차드슨(Richardson) 부인, 그리고 에델 루즈벨트(Ethel Roosevelt) 양은 드라이브를 하러 갔다. 앨리스 루스벨트(Alice Roosevelt) 양은 대통령이 주최하는 파티로 돌아오는 대신 북부에 있는 친구들과 친척들을 방문하기를 원했다. 일본 공사인 다카히라(Takahira)는 어제 저녁 공사관에서 공사관 직원들에게 저녁 만찬을 대접하였다. 지난 몇 년 동안 공사관의 카운슬러로 활동했던 더햄 화이트 스티븐스(Durham White Stevens)의 환송 만찬이었다. 그는 조선 고종황제의 고문으로 임용되어 조선에 갈 예정이다. 스티븐스(Stevens)는 10월 3일 인도의 엠프레스(Empress) 호를 타고 뉴욕에서 출발할 것이다. 여름을 해외에서 보낸 프랑스 대사와 그 부인인 저스크랑(Jusscrand) 10월 16일까지는 워싱턴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대사의 카운슬러인 데 포테 더 인 포세(des Portes de in Fosse)와 데 포와르(des Pories) 부인은 타라강세트 피르(Narragansett Pier)에 있는 여름 대사관에서 여름을 보낸 뒤 코네티켓 애버뉴 1711번지에 있는 자신의 워싱턴 자택으로 돌아왔다. 워싱턴으로 돌아온 유일한 다른 공사관 직원은 드 샘프룬(de Chambrun) 자작이다. 드 번(de Bearn) 왕자는 태평양 연안에 머물고 있다. 이탈리아 대사와 메이어 데 플랑쉐(Mayer des Plancher) 남작은 현재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평화 회담의 회원들을 기념하면서 월요일에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저녁 만찬회를 개최할 것이다. 이곳 워싱턴에 있는 메리 커존 부인(Lady Mary Curzon)의 많은 친구들은 런던에 있는 부인의 병 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메리 커존 부인(Lady Mary Curzon)을 알지 못하는 이들조차도 부인의 상태가 호전되었다는 소식을 듣기를 갈망하고 있다. 메리 커존 부인(Lady Mary Curzon)은 이곳 워싱턴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리고 메리 커존 부인(Lady Mary Curzon)만큼 모든 이들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축하를 받으며 결혼을 해서 워싱턴을 떠난 여성도 없었다. 메리 커존 부인(Lady Mary Curzon)의 결혼식이 열린 세인트 존스 성당은 역사적인 건물이 되었다. ●●● 부인과 ●●● 양, 그리고 두 자매의 유일한 남자 형제인 조셉(Joseph)은 현재 ●●●의 대표이고, ●●●을 격려하기 위해 목요일에 시작된 런던으로의 여행을 “…(원문 훼손)…”필라델피아의 루스 스나이더(Ruth Snyder) 양과 벨기에의 달톤(d'Alton) 백작의 결혼식은 지난 목요일에 퀘이커 시티(Quaker City)에서 열렸다. 그 결혼식은 굉장히 중요한 사건 가운데 하나였다. 그 결혼식은 매우 간단하게 진행되었고, 일반 참석자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루스 스나이더(Ruth Snyder) 양의 ●●● 토마 알렉산더 레이(Thoma Alexander Reihy)는 참석하였다. 미국 주재 벨기에 대사인 몽쉐(Moncheur) 남작이 레폴드(Leopold) 왕을 대신하여 결혼식에 참석하였고, 핵심적인 외교관들이 많이 참석하였다. 결혼식은 윌리엄(William) 목사가 진행하였다. 눈에 띄는 하객들 중에는 벨기에 대사인 몽쉐(Moncheur) 남작과 부인, 네덜란드 대사, 독일 대사 ●●● 부부, 벨기에 주재 미국 대사인 로렌스 타운젠트(Lawrence Townsend) 씨 부부, 베를린에 있는 미국인 ●●●. 신부는 신랑의 어머니와 함께 나타났다. ●●● 워싱턴의 존 O. 에반스(John O. Evans)는 최근에 가을 여행을 위해 브래튼 우즈(Bretton woods) N. H.에 도착하였다. S. W. 우드워드(Woodward) 부부와 딸은 ●●●에 있는 여름 별장에서 돌아왔다.●●● 해피(Happy) 부부의 딸인 ●●● 해피(Happy) 양은 다음 ●●●에 워싱턴에 도착할 것이다.워싱턴의 ●●● 부인은 최근에 뉴포트(Newport)에서 돌아왔다. 그녀는 틸몬(Tilimon) 여사의 ●●●이다. 우즈(Woods) 부부는 올 겨울에는●●●에 있는 그들의 아파트에서 머물 것이다. 앨버트 에반스(Albert Evans)목사 부부는 펜실베니아 주 서부(Western Pennsylvania)에 있는 온타리오 호수(Lake Ontario), 그랜드 뷰 벤치(Grand View Bench), 웨스턴 뉴욕(Western New York)에서 두 달 동안 휴가를 보낸 뒤에 어제 워싱턴으로 돌아왔다. 에드윈 J. 프린들(Edwin J. Prindle) 부부와 그 가족, 에머슨 F. 프라우티(Emerson F. Prouty) 씨가 블루리지 산맥(Blue Ridge Mountains)에 있는 애프톤(Afton)에서 한 달 동안 휴가를 보낸 뒤에 워싱턴으로 돌아왔다. C. A. 데비스(Davis) 박사는 벨리 아일랜드 미(Balley Island, Me)에서 여름휴가를 보낸 뒤에 워싱턴으로 돌아왔다. 토마스 A. 고먼(Thomas A. Gorman) 부부는 어제 저녁 노스이스트 워싱턴(Northeast Washington)에 있는 자신들의 멋진 자택에서 결혼 12주년 기념일을 자축하였다. 많은 친지들과 이웃들이 모여서 12주년 기념일을 축하하고 카드놀이 등을 하면서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자정에는 근사한 뷔페가 제공되었다. 식사를 한 뒤에는 행복한 기념식을 축하하는 ●●●플리모스(Plymouth)에 거주하고 있는 존 G. 프라이스(John G. Price)는 뉴잉글랜드 여행에서 돌아온 오하이오 주 캔턴(Canton)의 리차드 S. 리드(Richard S. Read) 부부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리드(Read) 부인은 프라이스(Price) 부인의 여동생이다.

    5299 언론보도(미주) 10

    D. W. 스티븐스(D. W. Stevens), 조선인 암살자에게 저격당하다고종황제의 외부 고문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치명상을 입다두 사람이 스티븐스(Stevens)를 공격하다의사들은 스티븐스(Stevens)의 회복을 믿고 있다스티븐스(Stevens)가 친일파이기 때문에 조선인이 증오하다샌프란시스코, 3월 23일 - 1904년부터 최근까지 조선 고종 황제의 외부 고문이었던 더햄 화이트 스티븐스(Durham White Sevens)가 오늘 아침 워싱턴으로 출발하려고 하던 중 페리(Ferry) 선창에서 저격당하여 치명상을 입었다. 스티븐스(Sevens)를 저격한 암살범은 조선인 장인환(InWhan Chang)이다. 어제 밤 조선인 네 명이 페어몬트(Fairmont) 호텔에서 스티븐스(Sevens)를 공격한 사건이 발생했고, 그 공격사건에 뒤이어 오늘 아침 저격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어제 밤의 공격사건과 오늘 아침의 저격 사건은 모두 스티븐스(Sevens)의 친일 행위 때문에 샌프란시스코의 조선인들이 증오심을 느꼈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다. 장인환(InWhan Chang)의 리볼버에서 발사된 총알이 스티븐스(Sevens)를 두 번 맞혔다. 첫 번째 총알은 스티븐스(Sevens)의 오른쪽 허파를 관통하였고, 두 번째 총알은 그의 사타구니를 관통하였다. 세 번째 총알은 암살자 장인환(InWhan Chang)의 동료인 전명운(M. W. Chun)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스티븐스(Sevens)는 평소에 체력이 튼튼하고, 건강 상태가 양호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담당 의사들은 그가 회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희망적으로 진단하고 있다. 저격사건은 일본 총영사와 동행한 스티븐스(Sevens)가 역에 도착할 무렵 발생하였다. 조선인 몇 명이 스티븐스(Sevens)에게 접근하였고, 그들 가운데 한 명이 무언가를 말하면서 그의 얼굴을 쳤다. 또 다른 조선인은 손수건으로 감싸 숨기고 있던 리볼버로 스티븐스(Sevens)를 쏘기 시작하였다. 스티븐스(Sevens)는 이 사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페어몬트 호텔의 전용 버스에서 내렸을 때, 조선인 여러 명이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그 사람들 중 한 명이 내 얼굴을 쳐서 턱이 찢어지는 상처를 입혔습니다. 얼굴을 친 사람을 뒤쫓아 가고 있을 때, 다른 조선인들이 나를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총알은 나를 빗나가 내가 뒤쫓고 있던 조선인을 맞추었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총알은 내 등에 박혔습니다. 이번 사건은 분명히 샌프란시스코 언저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소규모의 조선인 학생 운동가들의 짓입니다. 그 학생 운동가들은 일본이 조선을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에 분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학생 운동가들은 현재 자신의 나라가 처한 상태에 내가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스티븐스(Stevens)는 애틀랜틱시티에서 살고 있는 여동생들에게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회복에 관한 희망적인 발언이 나오기를 고대하고 있다. 스티븐스(Stevens)는 오래 동안의 해외 체류 생활 뒤의 휴가 기간에 애틀랜틱시티에 가서 여동생들을 만날 예정이었다. 조선인들이 갖고 있는 스티븐스(Stevens)에 대한 적대감은 주로 그와 일본과의 관계에 기인하고 있다. 조선인들의 말에 따르면, 일본은 자신들의 조국을 억압하는 국가이다. 조선인들은 또한 스티븐스(Stevens)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발행되는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했던 발언에 대해서 분개하고 있다. 조선인의 대중 집회에서 선출된 4명의 조선인 대표단은 어제 밤 페어몬트 호텔에서 스티븐스(Stevens)를 기다리고 있었다. 4명의 대표단 가운데 한 명으로,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이을(Earl Lee)은 스티븐스(Stevens)에게 인터뷰 기사에 담긴 말을 실제로 했냐고 질문하였다. 스티븐스(Stevens)는 자신이 그런 말을 했다고 대답하였다. 조선의 청년들은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학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스티븐스(Stevens)는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이을(Earl Lee)은 모든 조선의 관료들이 제거된 것은 아닌지 알고 싶다고 물었다. 스티븐스(Stevens)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였고, 조선의 청년이 너무 오래 조국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정부의 상태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바로 그때 공격이 시작되었다. 스티븐스(Stevens)는 쓰러졌고, 의자로 맞았다. 그는 머리를 대리석 바닥에 부딪혔다. 하지만 그는 재빨리 일어나서 의자를 잡고 벽에 등을 대고 서서 도움의 손길이 도착할 때까지 자신을 공격한 조선인 청년들이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였다. 공격 사건이 발생한 뒤 이을(Earl Lee)은 이렇게 말하였다. “스티븐스(Stevens)에게 그 정도 밖에 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우리는 모두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오늘 스티븐스(Stevens)를 저격한 조선인 장인환(InWhan Chang)은 기껏해야 12살 정도의 소년처럼 보인다. 하지만 장인환(InWhan Chang)은 자신이 30세이며, 하와이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지 2년가량 된다고 진술하였다. “그렇습니다. 내가 스티븐스(Stevens)에게 총을 쏘았습니다.”장인환(InWhan Chang)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후회하지는 않느냐구요? 아닙니다. 스티븐스(Stevens)는 나쁜 사람입니다. 그자는 일본의 앞잡이입니다. ●●●”스티븐스(Stevens)는 1873년부터 외교관계 일을 해오고 있다. 스티븐스(Stevens)는 1871년 오벌린(Oberlin) 대학을 졸업하였다. 그리고 워싱턴의 컬럼비아 대학(Columbian University)과 하워드 로스쿨(Howard law School)에서 법률을 전공하였다. 스티븐스(Stevens)는 1873년에 변호사직을 맡게 되었고, 같은 해 그랜트(Grant) 회장에 의해 도쿄 주재 미국 공사관의 비서관으로 임용되어 외교단(Diplomatic Corps)에 들어가게 되었다. 스티븐스(Stevens)는 미국 공사관의 비서관으로서의 임무를 훌륭하게 해내었기 때문에 곧 일본 천황 정부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1883년 7월, 스티븐스(Stevens)는 미국 공사관 비서관 자리를 그만두었고, 워싱턴 주재 일본 공사관의 비서관으로 임용되어 일본을 위해 일하기 시작하였다. 다음해인 1884년, 스티븐스(Stevens)는 도쿄로부터 일본 정부의 외무성에서 일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스티븐스(Stevens)는 이노우에(Inouye) 백작과 함께 조선으로 갔고, 조선에서 수행한 일에 대한 대가로 욱일장(旭日章, Third Class of the Order of the Rising Sun) 훈장을 받았다. 스티븐스(Stevens)는 욱일장을 받은 뒤 오랫동안 워싱턴에서 일본 공사 아래서 일했다. 1904년 능력과 동양의 상황에 관한 지식 때문에 스티븐스(Stevens)는 일본 정부에 의해서 조선 고종 황제의 외부 고문으로 임용되었다. 고종 황제의 외부 고문은 굉장히 중요한 자리였기 때문에 스티븐스(Stevens)는 은자의 왕국 조선의 미국인 독재자로 알려지게 되었다. 최근에 일본은 스티븐스(Stevens)에게 10,000 달러의 보조금과 840 달러의 연금을 하사하였다. 한심한 앰뷸런스 시스템시장을 위해 조사하고 있는 나탄 비주(Nathan Bijur)가 말하다“우리의 앰뷸런스 시스템은 정말 한심합니다.”2년 전에 맥클레란(McClellan) 시장에 의해 구성되어 워싱턴의 병원 운영을 조사하고 있는 위원회의 위원인 변호사 나탄 비주(Nathan Bijur)는 어제 저녁 의료 아카데미(Academy of Medicine)에서 개최된 카운티 메디컬 소사이어티(County Medical Society)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앰뷸런스 문제는 우리 시에서 완전히 무시되고 있습니다. 도시 어디에나 소화전이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에 경찰서에 전화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앰뷸런스가 필요한 경우가 발생한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도시 전체에 앰뷸런스 서비스를 관장할 조직의 책임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앰뷸런스 스테이션은 인구수에 비례하여 설치되어야 합니다.”

    5300 언론보도(미주) 11

    열성적인 애국자들조선인들에게 암살당하다조선의 외교관이 샌프란시스코에서 공격당하다조선에 대한 일본의 통치에 호의적인 스티븐스(Stevens)의 발언이 조선인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스티븐스(Stevens)는 페어몬트 호텔에서 공격을 받고 쓰러졌다[『타임스(TIMES)』 직통 전화에 의함]샌프란시스코, 3월 22일(독점 기사) - 조선국책회의 외무부 고문으로 조선에서 출발하여 금요일 오후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여 페어몬트(Fairmont) 호텔에서 여장을 푼 조선인 D. W. 스티븐스(Stevens)가 오늘 밤 페어몬트 호텔 로비에서 분노한 조선인 네 명으로 구성된 대표단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쓰러졌다. 페어몬트 호텔 투숙객들과 종업원들이 살려달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즉각 달려왔기 때문에 스티븐스(Stevens)는 겨우 목숨을 건졌다. 나중에 폭행 사건에 참여한 조선인들은 자신들이 방해받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를 죽였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스티븐스(Stevens)는 심각한 타박상을 입었지만, 치명상을 입지는 않았다. 스티븐스(Stevens)는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가진 인터뷰에서 조선인들은 일본의 보호로부터 많은 이익을 얻고 있으며, 조선인들은 일본의 보호에 대해 호의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였다고 이야기하였다. D. W. 스티븐스(Stevens)는 또 조선의 농민들이 일본인들을 환영하고 있으며, 조선의 관료층은 조선의 유일한 희망은 일본이 제안한, 오래된 제도의 재편성에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에 있다는 이유로 일본인들을 호의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였다고 덧붙였다. D. W. 스티븐스(Stevens)가 인터뷰에서 한, 자신들의 모국과의 관계에서 일본에 우호적인 다른 발언도 조선인들을 격분시켰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조선의 애국교육조직(Corean Patriotic and Education Societies)이 함께 모이는 대중 집회가 개최되었다. 이 조직의 중요한 구성원이자 모두 열정적이고 지성적인 젊은이인 이을(Eul Lee, 이학현), 정재관(C. K. Chung), 문양목(J. M. Moon), 최유섭(U. S. Choy) 등 4명은 D. W. 스티븐스(D. W. Stevens)를 면담하고 언론에 발표된 그의 견해를 확인하는 대표단으로 임명되었다. 4인의 대표단은 신문에서 발표한 대로 그런 말을 하였는지 질문하였고, 스티븐스(Stevens)는 신문에서 발표한 그대로라고 대답하였다.“스티븐스(Stevens)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순간 우리는 점점 더 격분하였습니다. 정말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스티븐스(Stevens)의 이야기를 듣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네 명 가운데 한 명이 그를 쳤고, 스티븐스(Stevens)는 의자 아래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바로 그때 우리는 그를 공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가 스티븐스(Stevens)에게 사용한 유일한 공격 수단은 작은 등나무 의자였습니다. 등나무 의자는 굉장히 작고 가벼웠기 때문에 그다지 큰 상처를 입힐 것 같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등나무 의자로 스티븐스(Stevens)를 때렸습니다. 그는 도와달라고 소리를 질렀고, 호텔 안에 있던 사람들이 달려와서 우리를 스티븐스(Stevens)에게서 떼어놓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스티븐스(Stevens)를 때릴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굉장히 후회했습니다. 그에게 그 정도 밖에 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