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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자료

    콘텐츠/독립운동가 자료 [] 에 대한 전체 5845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5371 " 「國務總理各總長 歡迎會」|| 『獨立新聞』(1913.10.19 - 11.2)"

    國務總理 及 各總長의 歡迎會가 本月 十五日 夜 上海 民團主催로 開催되다. 法務總長 申奎植(신규식) 氏는 身病으로 不參하다. 參席人 約 三百 名이라. 拍手裏에 總理 及 內財 兩總長 及 安總辦이 入場 著席하니 午后 八時 四十五分이라. 議政院 議長 遜貞道(손정도)氏가 歡迎辭를 述한 後 國務總理 李東輝(이동휘) 氏가 (精神的 獨立) 이라는 問題로 演說을 試하니 其大略이 如下라. (三月 一日 獨立宣言以來로 敵은 갖은 强暴無道한 지라. 然이나 今日은 敵의 創劍下에서 形形色色이 苦楚를 받는 同胞를 慰勞할 힘이 없는 今日이며 今日은 獄裏에서 갖은 惡刑을 받는 兄弟를 救援할 길이 없는 今日이라. 此 歡迎席에 出함에 戰慄을 禁치 못하노라. 吾人이 精神的 獨立을 完成하려면 精神的 團結과 精神的 軍備, 精神的 外交, 精神的 機關, 精神的 財團의 五가 具備하여야 할지니라.)『獨立新聞』, 1919년 11월 20일.

    5372 " 북간도 독립운동간부들에게 보낸 편지(일어번역)|| (1919.11.27)"

    국사가 도탄에 빠지고 민족의 생사가 눈앞에 급박한 지금에 와서, 나는 동지 여러분의 건강을 먼저 축원한다.동지 여러분이여, 나는 상해의 우리 임시정부의 사명을 받들고 지금 힘을 다하고 있는 중이며 월 1일 서울에서 독립을 선언한 이래 2천만 우리 형제자매는 결심하고 합의하여 이 몸은 멸할 지언정 이 뜻은 불멸불감(不滅不減)할 것이며 더 한층 격렬해져 왜노(倭奴)는 조선통치난 및 조선민족의 일본동화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문제로 크게 부르짖는다. 오늘에 와서 이에 의하여 만방일성(萬邦一聲)으로 우리 독립은 꼭 성공할 것이다. 우리 2천만의 고통을 감지하고 독립의 전부 책임을 지는 상해임시정부는 이에 더욱 2천만의 소망과 세계 여러 나라의 신임을 잠시도 소홀할 수 없다. 동시에 나는 무재능하나 그 책임을 도피할 길이 없는 것은 현재의 사실이기에 그 사이 노령국민의회가 주장하는 서울정부를 승인할 것이라고 하며 상해의정원이 주장하는 서울정부를 개조하여야 한다고 하는 것의 여하에 불구하고 나는2천만을 위하여 힘을 다하려고 한다. 이에 대하여 동지계(同志界)에서 혹시 오해하여 말하기를 이동휘(李東輝)가 개조하는 정부에 취임하면 동지계가 주장하는 승인에 큰 모순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2천만을 피차의 구분이 없이 생각하는 양심에 의하여 그 양심의 고통을 참고 동지 사이의 편론(偏論)에 설 수 없으며 왜노(倭奴)는 우리 사이에 …(원본판독불가)…일대(一大) 기화(奇貨)로 한다. 오늘 나는 노령의 주장을 고집하고 상해당국 제군과 정전(政戰)을 열 수 없으며 단지 하나 광복을 목적으로 하며, 단지 하나 독립을 요구하는 데는 승인보다 달리 일의 성공이 없고 개조보다 일의 불성공이 없음에 있어서는 오히려 우리 동지 사이에 의견충돌에 양보하는 이동휘(李東輝)가 되나, 나의 의견을 극단까지 주장하고 대국을 파괴하는 이동휘(李東輝)는 더욱 될 수 없는 문제가 된다. 동지 제군이여, 나의 고초를 감지하고 나의 충성을 알면 나를 도와 나의 책임을 전담한 국민정부를 옹대하시라, 나는 2천만의 부활을 위하여 동지에게 이를 희망한다. 나는 우리들의 대업 성공을 위하여 동지에게 이 말을 하여 간단하게 뜻을 표하며 동지 제군이 감량(鑑諒)하시라.

    5373 " 「臨時政府閣員及諸名士訪問記」|| 『革新公報』(1919.12.25)"

    臨時政府 訪問次로 本年 十一月에 上海를 往訪한 本報 特派員 一行은 順次로 我政府內外 各 高名志士를 訪問하다. 以下는 其 記錄을 收拾한 者라.

    5374 "「李國務總理의 兩新聞記者招待」|| 『獨立新聞』(1920.1.8)"

    四日 李 國務總理는 新大韓 及 本社 兩 新聞 記者를 一品香菜館으로 招待하였는데 參席한 이는 主人側으로 國務總理 其他 各總長과 學外 兩 次長을 除한 各部 次長 其他 政府職員과 主賓側으로 新大韓新聞社 編輯長 金科奉(김과봉)氏 外 九人과 本社에서는 社長 李光洙(이광수)氏 外 七人인데 主賓을 合하여 三十餘人이라. 晩 六時에 食卓에 就하여 同 九時에 歡喜 中에서 宴을 畢하였는데 總理는 兩 新聞의 過去의 功績을 謝하고 互相協調하여 우리 獨立運動事業에 對하여는 同一한 步調를 取하며 將來에 對하여도 더욱 用力하기를 바란다고 熱烈히 말씀하다. 本 社長 李光洙(이광수)氏는 이에 對하여 我政府의 招待의 榮을 受함을 感謝하고 將後로 더욱 奮發할 것과 新大韓과 互相協議하여 我獨立運動에 萬一의 補益이 있기를 期한다 하고 新大韓 編輯長 金科奉(김과봉)氏도 同樣의 謝意를 表한 後에 世間에서 兩 新聞社間에 무슨 不和나 있는 듯이 誤解함을 指摘하고 將後에 同一한 步調로 進行하기를 決心한다고 말씀한 後 各 總長 其他 數氏의 眞情의 吐露가 有하였는데 主旨는 다 兩 新聞 過去의 對한 讚揚과 現在와 將來에 對하여 兩 新聞이 和協하여 獨立運動의 指導者되기를 希望함이러라.『獨立新聞』, 1920년 1월 8일.

    5375 李東輝의 私信(1920.4.2)

    第二號 (譯文) 同志여 나의 사랑하는 兄의 祖國光復을 爲하여 忠誠을 다 하는 것을 感謝하는 바이다. 況次 今日 露領(러시아령)은 우리의 活動을 自由로이 할 수 있는 바이므로我兄의 熱誠의 度數가 增加함과 共히 우리의 事業도 增進할 것을 믿는다.我兄은 勿論 이미 諒解하는 바이지만 우리의 獨立運動에는 第一 우리의 衆心이 一致됨을 要件으로 한다. 去年 三月一日 以後 今日까지 內地가 二千萬이 一人도 異議者가 없고 또 自見을 主張하는 者 없이 오직 唯一의 光復을 目標로 하여 萬弩齊發하였으나 外地에 居留하는 同胞는 아직 獨立熱이 不足한지 또는 安全地帶인 故로 他의 壓力이 輕하고 人心의 激昂이 少한 까닭인지 大業에 關係없는 輕微한 問題를 도리어 大節보다 重視하여 그때마다 小를 不忍하므로 大謀가 紊亂하는 弊害를 더욱 疊出하였다. 此의 責任을 負擔하는 우리의 가장 憂惧하는 바이다. 然이나 大計를 斷行함에는 細節에 注意를 要하나 國家의 萬年大業의 創建함에 至하여는 各 匹夫匹婦로 하여금 滿足을 得케 한다는 것은 到底히 不可能한 일이다. 故로 現下 露領(러시아령)에 在한 一部同志 諸君의 不平 又는 不服에 不拘하고 露領(러시아령)에 關한 우리의 大政方針을 確定하고 軍事, 外交, 自治, 財政, 交通 五種의 名儀를 區分하여 玆에 特派員으로 安泰國(안태국), 李鏞(이용)의 二人을 密送한다. 此人에 依하여 詳細한 計劃은 口傳에 依하여 詳細 了承할 것이나政府는我兄의 至誠의 미치는 바 일이 順成할 것을 믿는다. 바라건대我兄은 專力 又는 專心 我 光復事業의 不日 成功할 것을 切望한다.我兄이여. 國家를 爲하여 自愛할 것을 拜祝한다.

    5376 "「臨時政府及議政院의 祝賀」|| 『獨立新聞』(1920.3.4)"

    臨時政府는 開院 中인 臨時議政院과 함께 三月一日 獨立宣言 紀念祝賀式은 議政院議場內에서 擧行하다. 李 總理 以下 李 內務, 李 財務, 申 法務總長, 安 總辦, 金 交通代理와 其外 政府 職員 一同이 出席하고 議政院議員 ○○○○學生을 合하여 來會者 總 八十餘 人이라. 午前 十時 李 總理 司會로 愛國歌를 合唱하고 國旗에 向하여 最敬禮를 行한 後李 總理式辭를 述하여 昨年 今日은 半萬年 歷史의 權威와 二千萬民族의 誠衷를 合하여 吾族의 代表 三十三人이 獨立을 宣言한 날이라. 今에 臨時政府와 臨時議政院이 合하여 大韓民國 國旗 앞에서 이 날을 祝賀함은 歷史上 가장 光榮되는 事라. 그러나 우리의 先導者 三十三 人과 幾萬의 忠義男女는 아직도 鐵窓內에서 呻吟하는데 우리는 몸이 平安한 자리에 있어서 오히려 犧牲의 精神이 薄하고, 獨立宣言 一週年이 되는 오늘까지 우리는 寸土尺地도 光復치 못함으로 此式을 外國人의 家에서 擧行하니 이것이 우리의 二大遺憾이라. 이를 生각하며 余는 진실로 가슴이 아프도다.하고 鳴咽하면서光復의 責任을 진 諸君은 이날에 크게 盟誓하고 굳게 合하여 明年 이날은 이와 같이 遺憾되는 날이 되게 하지 말기를 望하노라.하고 孫 議長의 祝辭에 今日은 有史 以來 처음되는 羞辱을 當한 우리가 歷史의 權威와 民族의 衷誠을 合하여 世界에 獨立을 宣한 第 一回 紀念日이라. 지난 一年間의 우리의 正義와 人道를 爲한 血戰 거기 發現된 大韓民族의 勇氣는 暴惡한 敵의 肝을 서늘케 하고 世界에 一大驚異를 주었도다. 今日은 實로 永遠히 紀念할 날이라. 顧컨대 忠義男女의 敵의 銃劍下에 피를 뿌림과 志士의 鐵窓內에서 苦楚를 當함이 幾何오. 吾人은 마땅히 公約을 遵守하여 最後의 一人까지 最後의 一刻까지 奮鬪함으로써 敵에게 正義의 所在를 알게 할지라. 다음에 ○○○○學生 一同이 雄渾하고도 悲憤을 回音聲으로 獨立軍歌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를 唱함에 非常히 興奮된 會衆은 全身에 戰慄을 感하고 얼굴에 나타난 決心의 表情은 獨立戰爭의 將來를 祝하다. 李 總理의 發聲으로 民國 萬歲를 三唱하고 渾和裏에 閉式하다.『獨立新聞』, 1920년 3월 4일(1면, 4면)

    5377 "「李總理의 施政方針演說」|| 『獨立新聞』(1920.3.6)"

    (國民아 政府를 도와 實現케 하라.) 三月 二日 議政院에서 國務總理 李東輝(이동휘) 氏의 施政方針의 演說이 있다. 이는 民國成立以來 初有의 事일뿐더러 實로 我國 有史 以來 初有의 事이라. 吾人은 此演說을 試한 李 國務總理로 더불어 우리 國民에게 今日이 有한 것을 欣幸으로 하는 바로다. 今次의 施政方針은 다른 나라나 다른 時代의 그것과 比較할 바 아니며 대개 今日 我國의 施政方針은 內務 外交가 全혀 獨立運動의 進行方針일 것이라. 이제 李 總理의 演說한 바 八項의 方針을 보건대 最後의 敎育 司法 及 勞動局에 關한 條項은 그렇게 直接으로 獨立運動에 關係된 것이 아닌 즉 여기 評論치 아니하거니와 其餘의 五項 卽 內政, 外交, 財政, 軍事 及 交通에 關한 方針 (無論 이는 大綱領뿐이오. 詳細한 內容에 言及함이 없으되)은 時宜에 適하다 할지니 假令 內政의 中心을 內外國民의 統一에 置하며 外交의 主旨를 獨立戰爭의 後援을 得함에 置하여 그 方針으로의 對外宣傳의 主旨를 三에 分하여 韓國의 獨立이 東洋 及 世界의 平和에 必要함과, 日本의 統治下에서는 韓族은 到底히 生存 繁榮을 享樂치 못할 것과, 韓族에게 獨立國民이 될 資格이 있음을 宣傳하여 世界로 하여금 韓國의 獨立戰爭을 援助케 하도록 한다 함 等 모두 徹底하게 肯綮에 中하였다 할지라. 其他 財政 交通에 關하여서도 政府는 이의 細密한 進行方針까지도 確定하였다 하니 이제 國民이 政府에게 要求할 것은 이를 逐條하여 實現함이라. 아무리 名案妙策이라 하더라도 實現이 없으면 何益이 있으리오. 李 總理는 內政의 要諦가 國民의 統一에 있다 하고 統一하는 方針으로 (一) 國內國外에 細密한 聯通制를 實施하여 民心의 趨向을 歸一케 하며, (二) 內外各地의 團體를 調査하고 糾合하여 그대로 하여금 政府와 行動을 一致케 함을 들도다. 이는 實로 平凡한 듯하면서도 가장 確的한 名案이라. 그러나 이를 實現하는 方針이 어떠뇨. 이미 着手하였나뇨. 將次 着手하려느뇨. 또 이미 着手하였다 하면 過去의 成績은 何如하며, 將來의 預想은 何如하뇨. 具體的으로 論하면 聯通制는 얼마나 한 程度까지 實施되었으며, 民心의 趨向을 歸一케하는 方法이 어떠하뇨. 이 事業을 爲하여 今年度에 人員은 幾人이나 使用하고 金錢은 幾圓이나 使用하려 하며 施設完了의 預定 期間은 幾個나 되나뇨. 또 外交에, 世界 列國으로 하여금 韓國의 獨立이 東洋 及 世界의 不和에 必要條件임과 韓族이 日本의 治下에서는 生存 繁榮을 享受치 못할 것과 韓族에게 獨立國民의 資格이 있음을 宣傳한다 함도 果然 今日 我國 外交의 大旨일 것은 無疑하지마는 이 目的을 達하기 爲하여 어떠한 方法, 얼마나 한 金錢, 얼마나 한 人材로써 어떤 事業을 얼마나 實行하려 하느뇨. 假令 重要 各國에 代表者를 派遣하느뇨, 한다 하면 어느 나라, 어느 나라에? 또 假令 韓族에게 獨立國民이 될 資格이 있음을 世界에 證明한다 하면 무슨 方法으로? 또 軍事에, 一邊軍事의 智識을 普及하고 義勇兵을 募集하며 戰略上에 必要한 某某 地點에 軍事的 施設을 한다 하니 그것은 어떠한 方法으로, 얼마의 期間에, 얼마의 金錢으로, 義勇兵數의 預定은 얼마? 또 이 모든 事業을 一貫하는 根本的 事業은 宣傳이니 國民을 統一하기도 根本은 宣傳에 在하고 外國의 援助를 得함도 根本은 宣傳에 在하고 義勇兵을 募集하거나 公債 國債를 募集함도 根本은 宣傳에 在한 지라. 英·美(영국·미국)같은 完成되고 訓鍊있는 國民을 가진 國家에서도 이러한 大事業을 經營할 때에는 宣傳에 全力을 다하거든 하물며 우리와 같이 初創의 際에 在하여 內로는 國民의 統一이 不完하고 外로는 列國의 信任이 薄弱한 臨時政府로서 이러한 大事業을 經營할 때에 어찌 宣傳에 全力을 다하지 아니하고 可하리오. 李 國務總理의 施政方針 中에 마땅히 있어야 할 宣傳의 條項을 缺함은 甚히 疑訝하는 바이어니와 亦是 政府는 宣傳에 主力을 集注하기를 믿고저 하노니 그럴진대 그것은 何如한 方法으로 얼마나 한 또한 어떠한 人員, 얼마나 한 金錢을 使用하여, 얼마나 한 範圍, 얼마나 한 期間을 預定하고 實行하려나뇨. 또는 이미 着手하였나뇨. 하였거든 過去의 成績은 얼마나 하며 아니 하였거든 언제나 着手하려 하나뇨. 그보다도 宣傳을 重視하나뇨. 아니하나뇨. 나는 이 中에 大部分이 秘密에 屬한 줄을 잘 아노라, 그러므로 나는 이 모든 質問에 對하여 或은 議政院에서 或은 演說로 或은 新聞紙上으로 일일이 答辯하기를 政府에 强要하지 아니하거니와 第一 强要하는 것은 政府自身이 當局者 自身이 이러한 諸質問에 對하여 明確하고 詳細한 答辯을 가지고 아울러 勇敢果斷한 實行이 있기를 바랄 뿐이로다. 그러나 秘密秘密하여 너무 秘密만 지키면 民心의 趨向을 歸一케 한다는 宗旨에 違反될지니 國民이 政府의 方針의 大綱領과 實現方法 及 其 成績의 幾部分을 알지 못하면 國民은 政府에 服從할 길을 모를지오. 또 國民이 政府를 信賴할 根據가 없을지니 國民의 信賴와 服從이 없이 무슨 일을 하리오. 다만 「내가 잘 하니 너희는 말없이 나를 따르라.」 함은 現代에 處하여서는 不可能한 일이라. 그러므로 可能한 대로 政府의 意思와 現在 實行의 形便과 過去의 成績을 알림이 政府 自身의 信任上에도 必要하거니와 國民의 進路를 指示하고 決心을 確固히 함에 有助할 지라. 우리의 希望대로 말하면 敵이 알아서 아니된 將來의 計劃은 絶對로 秘密히 함이 可하되 過去의 成績은 그것이 大하거나 小하거나 成功이거나 失敗거나 國民이 듣고 愉快할 것이거나 失望할 것이거나 分明히 公開함이 國民과 政府를 密接하게 하여 政府로 더불어 그 喜와 悲를 같이 하고 決心과 努力을 같이 하기에 最히 有利하다 하노니 李 國務總理가 좀 더 詳細하게 좀 더 具體的으로 議政院에서 施政方針을 說明하였기를 바라고 또 過去 一年間의 獨立運動의 實績을 公開하였기를 바라노라. 아무로나 敵에 알리는 것이 무서워 國民에도 알리지 아니함은 上에 言한 바와 같이 어떤 程度까지는 必要하다 하더라도 卽 將來의 計劃에 關係한 때에는 必要하다 하더라도 過去의 弱點의 現出을 두려워함이라 하면 이는 甚히 勇氣를 缺함일 뿐더러 公明正大의 精神에 違反되는 것이니 우리 獨立運動의 實力, 우리 政府의 實力, 卽 人材, 財政, 統一, 外勢같은 實力을 事實대로 國民에 公開함이, 만일 그 實力이 虛弱하다 하면, 一時 國民에 失望도 주려니와 同時에 國民에게 警告와 激勵를 주게 되어 虛弱하던 것을 充實케 할 可望이 있으되, 弱點을 늘 隱蔽한다 하면 이렇게 充實할 機會조차 없을 뿐더러 도로히 國民의 疑惑을 살지라. 虛弱한 것을 슬퍼할 者도 國民이오, 虛弱한 것을 充實할 者도 國民이 아니뇨. 우리는 發表한 限度의 施政方針에 對하여 雙手를 擧하여 歡迎하노라.獨立運動의 進行方針이 確定되었다는 것을 歡迎하고 또 그 大綱領이 時宜에 適한 것을 歡迎하노라. 그러나 그 具體的 方針의 內容과 實行의 決心과 能力에 對하여 더 알기를 願하노니 우리는 國民으로 더불어 政府에 對하여 可及한 範圍內에서, 一二의 實例라도 들어 具體的方針의 確立하였음을 實證하고 아울러 이미 着手한 事業의 成績의 實績을 例示하기를 바라노라. 終에 臨하여 우리는 同胞에게 一言을 寄할 必要를 感하노니, 同胞에 이미 我臨時政府는 獨立運動 進行에 關한 施政方針을 確定하였고 또 그 大綱領을 正式으로 臨時議政院에 說明하였은 즉 이는 我政府가 처음으로 그 確定한 方針을 國民에 보이라. 그러나 이 方針의 實現與否는 政府의 能力에 달렸다 하기보다 國民의 爲不爲에 달린 것이니 아무리 政府가 統一을 부른들 國民이 듣지 아니하면 何用이 있으며, 아무리 政府가 獨立戰爭을 計劃한들 아무리 財政方針을 立한들 國民이 此에 應치 아니하면 何用이 有하며, 아무리 훌륭한 外交方針을 立한들 國民의 信任과 血과 金錢의 後援이 없으면 何用이 有하리오. 그 內政, 外交, 軍事, 財政, 交通 等 獨立運動 期間을 一貫할 大方針이 確立되었나니 이를 確立한 政府에 對하여 우리는 그 誠意와 力量을 感謝하고 同時에 此를 實現하기를 督勵하려니와 우리 一千萬大韓男女는 政府와 一心一體가 되어 此 大方針을 限死코 實行할 義務를 自覺하여야 하리로다. 이 大方針을 實現하기 外에 우리의 目的을 達할 길이 없음으로『獨立新聞』, 1920년 3월 6일.

    5378 "「國民皆兵의 第一聲」|| 『獨立新聞』(1920.3.23)"

    犧牲하라 團結하라勇敢하라 堅忍하라續하여 祝辭에 入할 새 李 國務總理 먼저 登壇하여 「今年은 血戰의 年이라. 우리가 血戰을 圖할진대, 血戰하여 이기기를 圖할진대 모든 理論과 모든 不平을 다 버리고 온전히 一致하여 國家에 몸을 犧牲하리라.」孫(손)議長은 立하여「오늘은 昨年 三月 一日 以後에 처음으로 기쁜 날이라. 우리의 一年間 平和運動으로 多大한 效果를 獲得하였으나 우리가 最後의 目的을 達하려면 血戰으로야만 하리니, 세계의 敵이오. 吾族의 讐인 日本을 退治할 우리 正義의 軍士는 應當 勇猛 前進하리라.」『獨立新聞』, 1920년 3월 23일

    5379 "「崔在亨先生의 歷史」|| 『獨立新聞』(1920. 5.27)"

    上海 居留民團 主催로 故 崔在亨(최재형), 梁漢默(양한묵) 兩 先生과 殉國 諸 烈士의 追悼會가 去 二十二日 午后 八時에 同團에서 擧行되다. 天도 殉國魂을 弔함인지 初夏의 細雨가 蕭蕭히 오는데, 이에 不拘하고 參席人은 定刻까지에 場外에 溢하는 盛況을 呈하다. 三百內外의 會衆中에는 國務總理 李東輝(이동휘), 內務總長 李東寧(이동녕), 財務總長 李始榮(이시영), 法務總長 申奎植(신규식), 勞働局總辦 安昌浩(안창호) 等 各國務員과 婦人席에는 故崔在亨(최재형) 氏 令孃 等이 參席하다. 鮮于爀(선우혁) 氏 司會下에 一同 愛國歌를 唱한 後 開會辭가 有하다. 順序에 依하여 故 崔在亨(최재형) 先生의 歷史를 李東輝(이동휘) 氏가 述하다. 崔在亨(최재형) 先生의 歷史를 말하자면 限이 없겠소. 先生은 元來 貧寒한 집에 生하여 學校에 다닐 때는 雪上에 맨발로 다닌 일까지 있소. 先生이 十二歲 時에 饑饉으로 因하여 故鄕인 咸鏡北道 慶源에서 渡俄하여 事業에 着手하며 크게敎育에 盡力하였소. 學生에게 學費를 주며 留學生을 年年히 派遣하였소. 先生은 實로 俄領(러시아령)의 開拓者이었소. 先生의 이름은 俄國人(러시아인)라도 모르는 者가 없었소. 또한 當時에 郡 自治會 副會長 되며 多大한 努力이 있었소. 또한 年前 韓日條約의 羞恥를 참지 못하고 安重根(안중근) 氏와 合力하여 한 團體를 組織해 가지고, 희뢰 等地에서倭敵을 討伐한 事實이 있소, 그리고는 昨年 三月 以後에 臨時政府 財務總長에 被任이 되었었소. 如斯한 偉大한 努力을 하다가 去 四月 五日에 不幸히 敵에게 捕縛되어 敵은 野蠻的 行動으로 公判도 없이 氏를 銃殺하였소. 先生은今年 六十二의 老年으로 十男妹를 두었는데 氏의 長子는 方今 루시야 니콜라스크에 있어서 自己 父親과 民族의 敵을 爲하여 準備하고 戰鬪하는 줄이오.『獨立新聞』, 1920년 5월 27일.

    5380 "「陳亡將士追悼文」|| 『獨立新聞』(1920.12.18)"

    鳴呼 痛哉로다. 今回 延琿 一帶에서 陣亡하신 將士 諸君이시여. 五千年 祖國의 獨立을 光復하며 二千萬 民族의 自由를 享有키 爲하여 忠信으로써 甲胃를 삼고 赤血로써 ●●●하여 劍林彈雨에 萬死를 觸冒하고 ●風虐雪에 凍饑를 忍耐하면서 手足이 皸瘃하되 勇氣가 益奮하고 蟣援이 乏絶하되 一步를 不退하여 數百의 殘兵으로써 百倍의 强敵을 對抗하여 苦戰血鬪에 勝捷을 屢奏하다가 終乃 身膏 鋒鎬하고 骨委 林莽한 忠義의 壯烈과 光彩의 燦爛함이 文信國의 八百鄕兵과 趙重峯의 七百義士로 더불어 芳徽를 倂耀하여 永遠無窮할 지로다. 鳴呼 諸君이시여. 諸君은 祖國의 獨立과 民族의 自由를 爲하여 犧牲을 樂爲한 것은 우리 韓人同胞만 哀弔痛哭할 뿐이 아니오. 世界各國人이 다 同情의 淚를 灑하는 바인즉 吾族 將來에 正義의 勝利로써 半島 江山에 自由의 花가 爛慢할 것은 곧 諸君의 血로써 培養한 結果가 될지니 吾族 萬代에 諸君의 恩賜를 受함이 어찌 窮極이 有하리오. 吾儕는 無狀하여 諸君의 義旗를 擧하는 日에 이미 執殳의 役을 周旋치 못하고 諸君이 殉國한 後에 또 戰地에 馳往하여 撫臨을 不能하고 頑忍苟生하여 天涯萬里에 臨風遠弔하니 窮天徹地에 負罪何極이 오직 諸君의 忠魂●魄은 駕風鞭達하여 三島의 妖魔를 ●逐하고 우리로 하여금 迅速히 獨立●下 獎忠壇에 牲酒를 獻케 할지어다.『獨立新聞』, 1920년 12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