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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선생서세一주년 소상제일을 당하야(『흥사단보」1939.3-6) |
뜻 없는 세월은 사정없이 흘러서 불 같은 고난 중에 부대끼는 二천만 남녀를 차마 잊지 못하시사 가슴에 넘치는 한을 품고 무도한 원수의 노옥에서 선생의 가신 날이 벌써 一년이 갔습니다. 잔인한 원수의 가혹한 계엄으로 선생의 묘문에는 인적을 끊었음에 성긴 가시 거친 풀이 묘상에 덮혔다던 하거늘 자비의 춘신만이 오히려 선생을 어여삐보사 황목공산에 꽃수레를 보내셨다니 슬프다! 선생의 외로운 혼은 지금 이를 보고 우스시는가 우리를 생각하여 울으시는가-. 선생은 이미 가시었도다. 영원한 곳으로! 그러나 과거 一년에 우리는 선생을 공석에서만 모신 것이 이미 五六차가 넘습니다. 어찌 그 뿐이리까. 종일토록 소망없는 길을 가되 앞이 캄캄하여 보이지 않는다고 낙망에 빠져 우는 저녁에 선생을 여러번 만나셨고, 도모하던 일이 그릇되여 평생의 정력이 허지로 돌아가는 때에나 나무를 지고 불을 찾아가는 길에서도 선생을 만나셨고, 게으름의 올무에 걸려 일어나지 못하는 시간, 거짓의 함정에 발길을 디디는 시간에도 선생을 뵈었습니다. 또는 조선사람으로 조선사람의 가해를 보는 시간, 자기의 주장을 펴고져 자기의 단체를 어지럽게 하는 시간에도 선생을 뵈었습니다. 원수의 악독이 동포에게 믿는 시간, 세계의 공리가 눈을 감는 시간에도, 소약국 민족이 악수를 청하며 동정의 우방이 후원을 허할 때에도 우리는 선생을 뵈었습니다. 영과 영이 고요히 접촉하는 시간에 감화가 있고 주의를 정하고 「애인 여기」의 활동을 일으키는 생물이라 하여 二천년 전에 가신 야소의 영생이 비로소 의미가 있나니 선생의 가신 지 一년 소상제일에 우리는 다시 마음에 굳게 작정하고 무실, 역행, 신의, 용감을 심폐에 심고, 입으로 외우고, 손과 발로 실천하여서 선생의 이상으로 용기있게 활동하는 투사가 되게하여 一년 전에 가신 선생의 영생을 광영이 가득한 우리 조선에 실현케하고 계속케하고 발전케함이 우리의 뜻이오 우리의 일이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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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dom Thought in English[徐載弼]원고(1938) |
안창호(Mr. Ahn Chang-ho) 씨의 너무 이른 죽음은 한국에 크나 큰 손실입니다. 저는 그의 동료들 중에서 그가 출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와 다른 많은 분들은 그의 비극적 죽음에 통렬히 슬퍼하고 있습니다. 저는 특히나 조직에 대한 그의 재능과 모든 다양한 환경 하에서도 친구들을 사귀는 그의 능력을 존경했습니다. 그의 성실성에 대한 신뢰와 그의 활동에 대한 감탄이 있었기에 그는 그런 친구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근래에 그의 동료들 중에서 그런 신뢰를 받는 다른 한국인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가 국가적 차원에서 이 능력을 이용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몇몇 고국을 떠난 한국인들과 그가 캘리포니아에서 이루어낸 것들은, 만일 기회만 있었다면 한국에서 더 대단한 지도력을 그가 보여줄 수 있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그는 다른 민족들 사이에서도 때때로 발견되는 보기 드문 성격의 소유자로, 고귀한 신분으로 자라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그 동포들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미국의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은 보잘 것 없는 가문에서 태어나 가난 속에서 자란 위대한 지도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안창호 씨가 링컨과 같은 기회가 있었다면 세상에 더 잘 알려졌을 텐데 말입니다.저와 안창호 씨와의 관계는 꾸준하지도 그리 친밀한 것도 아니었지만, 저는 그가 동부의 주들을 그가 방문했을 때 몇 번 그와 흥미진진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고귀한 이상을 가진 남자로서 저에게 감명을 주었고, 동시에 방대한 실천적 지식과 상식의 소유자였습니다. 그의 생각은 좁고 사소한 것이 아니었으며 자신과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에 대해서도 매우 관대했습니다.그것은 저를 매우 기쁘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관용이나 타협심을 가진 사람을 거의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마음은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이 주는 제안에 대해서 열려있었고, 그는 솔직하고 자유로운 토론이 요청되는 경우에도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애국심에 대한 진실성과 그의 보호 아래 있는 젊은이들의 복지를 위한 헌신은 그의 적들조차도 남몰래 존경했다는 평가가 있었습니다. 세계 정세에 대한 그의 예리한 통찰력과 미국과 극동에서 얻은 경험은 대학교육을 받지 못한 그의 약점을 충분히 보완하고도 남았습니다. 그는 경험 대학(University of Experience)의 대학원생이었던 것입니다.저는 안창호 씨에게 캘리포니아나 동양에서 몇 가지 사업을 해 보라고 제안한 적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가 자신의 능력과 나무랄 데 없는 성실성, 훌륭한 인품으로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싫다고 대답했으며, 40년 전에 한국에서 있었던 독립협회(Independence Club)에서 제 강의을 들은 후에 한국 재건 작업에 자신의 일생을 바치기로 맹세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1년 동안 혹은 제가 그를 알지 못한 기간에도 저에게 자신을 알리지 않고 제 강의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1896년에서 1898년 사이에 한국에서 했던 3년 동안의 제가 뿌린 교육의 씨앗들은 많은 젊은이들의 마음 속에 뿌리를 내린 것처럼 보입니다. 제가 안창호의 죽음에 대해 들었을 때, 저는 여하튼 한국에서 일어난 또 다른 순교자의 죽음에 제가 책임이 있다고 혼자 생각했습니다. 안창호씨는 조국을 위해 괴로워했고 죽었습니다. 그는 그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 속에서 안창호 씨는 훌륭한 조직가였고, 그가 영향을 미친 단체들은 만족스럽게 설립되었습니다. 하나는 로스 앤젤레스에 있는 대한인국민회(The Korean National Association)며, 다른 하나는 한국인 전문학교(The Korean Academy)입니다. 이것은 특히나 기쁜 일입니다. 왜냐하면 과거에 형성된 많은 다른 단체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모두 사라졌고, 최소한 저는 그들의 활동에 대해 듣지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활동을한 유일한 다른 단체는 미국에서 가장 칭찬할 만한 일을 했던 북미 한국인 학생연대(the Korean Student Federation of North America)였습니다. 하지만 이 단체의 대륙간 서비스는 대부분 외국 학생들 사이들에게 호의적인 미국인 위원회(the American Committee) 덕택이었습니다. 물질적이고도 정신적인 원조가 없었다면…(원본판독불가)…. 안창호 씨가 아버지 노릇을 했던 두 단체들은 그를 높이 추앙할 것이며, 그가 다른 회원들과 함께 남긴 잊을 수 없는 감동은 그가 직접 그 단체들과 함께 있는 것처럼 그들이 계속 나아가도록 꾸준히 그들을 격려할 것입니다. 어떠한 창조적인 영향도 그것을 망치고 그것을 얻기 위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건물의 기초가 탄탄할 때 재건이 될 것입니다.미국에 있는 한국인들이 안창호씨를 기념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설립을 도왔던 이 단체들을 통해 그의 사상을 계속 살아 숨쉬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우리는 한국이, 의심할 바 없이 그 시대 사람들보다 후손들에게서 더 높이 평가를 받을 그런 위대한 영혼을 낳았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한 개인의 일생을 훑어보는 것은 책 한 권을 읽는 것과 같습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후의 최종적인 감동은 그 책의 가치를 결정짓습니다. 안창호씨의 일생은 결과와 상관없이 선하고 숭고한 것을 따르기 위한 확고한 결심은 저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만일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서 내가 받았던 감동을 똑같이 받았다면 안창호씨는 정말 유익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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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鳥山安昌浩同志靈弔辭詩[趙素昻](『韓國獨立運動史資集』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6) ; 悼安島山(『기러기』1986.10 ; 번역)" |
維戊寅 4月 15日, 韓國 獨立黨 同人, 謹告于故 島山 安昌浩, 同志之靈曰,立志報國, 始于建陽, 俊材宏辯, 模楷一方, 憫時病俗, 慨然出彊. 混跡負戴, 西走檀香, 十年刻苦, 重返故鄕, 登壇怒吼, 萬人如狂. 建校設會, 日就月將, 新民蔚興, 大成鏗鏘, 隻手扶廈, 龍戰玄黃.爰及庚戌, 國破君亡, 滿廷狐狸, 遍地豺狼, 志士去國, 天日無光. 敵兵搜捕, 公亦遠航, 爲國興士, 學颱復颺, 歐戰告迄, 海陸滄案. 己未三月, 槿花重芳, 建府立院, 集我將相, 群雄聚首, 公始升堂. 中外多士, 拱衛中央, 根幹未固, 斧斤有戕, 獨立大業, 非黨不彰. 百日風雪, 夙夜靡遑, 樹我黨義, 立我黨綱, 基本確立, 旗幟堂堂. 自公入獄, 黨失倚淫, 離合隨勢, 是非成章, 人散力竭, 統一渺茫. 吳山楚水, 顚倒無常, 嗚呼賚志, 胡然而喪, 國仇未報, 剝我禎祥. 彼岸則遠, 奪我艅艎, 敵獄未破, 奄至束纊, 謦咳在耳, 典型難忘. 三韓抱澤, 飮泣于湘, 如見左右, 偉靈彷徨, 謹掬血淚, 遙奠椒漿.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