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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방위원회 고문단에서 한길수에게 보낸 서한(1941.2.7)과 한길수 활동 메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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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한족대회 의장 안원규가 한길수를 미국방공작봉사원으로 임명한 사실을 알린 서한(1941.11.28)과 영문번역본 (1941.4.29) |
(한영번역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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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수가 스크랩한 미일전쟁과 관련한 각종 언론 기사 및 문건 |
한인지하운동 보고서 1941년 1월 8일 한길수가 루즈벨트(Roosevelt) 대통령에게 제출일본의 전쟁계획 책자3국 동맹과 미-일 전쟁도쿄에서 1940년 10월 출간초기에 일본이 “평화 공사관”을 워싱턴으로 보내, 평화 회담 중 일본이 하와이 섬을 몰래 공격한다고 밝혔다. |
2844 |
한길수의 미일전쟁 관련 기사와 문건 |
1941년 9월 1일부터 1941년 12월 7일까지 98일 동안, 나는 일본의 하와이 급습과 관련하여 미국 안보를 불안해 하고 걱정하며 살았다.예를 들면: 루즈벨트(F. D. Roosevelt) 대통령에게 보낸 우리의 보고서를 토대로 함. 일본은 진주만 급습을 준비하고 있었다. 1941년 9월 1일, 나는 하와이와 캘리포니아로부터 정보를 얻었다. “미국 내 일본인과 일본계 미국인은 전쟁 초기에 미국이 나타나 그들의 전쟁 계획을 망쳐놓지 않는 한 파괴적인 행동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
2845 |
한길수의 활동을 보도한 Washington Post 기사(1943.5.27) |
9월 이후는 안됨 |
2846 |
" 국가간첩행위로 체포된 두 명의 일본인 관련 기사(Washington|| The Evening Star|| 1941.6.10) " |
1941년 6월 22일 UCLA 학생 타틸라나(Tatilana)는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서 일본으로 이송되었다. |
2847 |
" 미주한인의 한국국적 등록 관련 기사(The Nippu Jiji|| 1040.8.27/ 9.4/ 등등) " |
워싱턴 8월 20일 - 사법부는 외국인 등록 프로그램에 한국인은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으로 등록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얼 G. 해리슨(Earl G. Harrison) 외국인 등록부 부장과 한길수 중한민중대동맹 대표에 의해 만들어진 이 규정에 의해 이제 국제적으로 한국인은 등록할 때 한국인으로 등록할 수 있게 된다. 국무부 관리는 국제법상과 외교 절차상 한국인은 일본의 백성 이외엔 아무런 자격이 없었으며, 한국은 1910년부터 일본 제국의 일부였다. |
2848 |
" LA 한인들의 반일운동 기사(LA Times|| 1941.3.6)와 일본의 미일전쟁설 관련 글 " |
1941년 12월 7일 전루즈벨트 (Roosevelt) 대통령 일본의 정쟁 계획 오산해 일본 도왔다 |
2849 |
일본의 미일전쟁 준비관련 한길수의 보고 |
일본인은 진주만 비밀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일본계 미국시민 연맹(JACL)이 일본의 급습 계획을 도왔다. |
2850 |
"재미 일본인학교의 동향을 보도한 신문기사(LA Times|| 1942.1.24/ S.F. Japanese Daily|| 1939.8.20) " |
일본어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