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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자료

    콘텐츠/독립운동가 자료 [] 에 대한 전체 5845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2811 한길수의 지하운동보고서(1940.6.1)와 일본의 전쟁준비설 신문기사(1940.9.3)

    1940년 6월 1일 미육군과 해군 정보부(G-2 해군 정보국)일본 해군 빌딩 소형 잠수함-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사용 우리의 정보에 따르면, 1940년 9월 3일 뉴욕 헤럴드 트리뷴은 “우리는 일본의 잠수함 수를 능가한다… 일본 잠수함의 용적톤수는 거의 같다… …. 소형 잠수함의 함대는 현재 수치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전했다. 1941년 윌리엄 D.힐리(William D. Healy)와 조지 C. 마샬(George C. Marshall) 장관은 각각 1940년 6월 1일 보고서와 관련해 나에게 질문을 했다. 회의는 워싱턴 D. C.군수품 빌딩에서 열렸다. 일본의 진주만 급습당시 일본 해군은 다섯 개의 잠수함을 잃었다.

    2812 조나단 조찬클럽에서 한길수에게 보낸 서한(1940.10.31)

    2813 한길수가 미국무부 극동국장 해밀턴(Maxwell Hamilton)에게 보낸 긴급보고서(1941.12.5)

    2814 한길수 활동 관련 The Nippu Jiji(1940.5.30)과 Honolulu Star Bulletin(1941.10.30) 기사|| 그리고 「태평양주보」 (1942.8.26)의 동지회 ‘비폭력주의’ 삭제 기사

    스스로를 중한민중대동맹의 대표라고 칭한 한길수는 1937년 주지위 승격 문제 관련 청문회에서 일본이 하와이 섬을 지배하고자 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진술을 워싱턴 의회 이민…(원본판독불가)…에서 했던 사람이다. 이는 예전부터 흘러나오던 진부한 내용이었다. 비극적인 것은 한길수가, 그의 혐의로인해 하와이 및 하와이에 있는 한인을 포함한 모든 인종의 주민들에게 해를 끼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그 스스로가 잘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무언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첫째, 한길수의 혐의는 하와이 섬 뿐 아니라 올 가을 선거에서 주만투표로 주 자격을 얻으려 하고 있는 섬의 열망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한길수의 행동으로 인해 주 자격을 얻는 노력이 삐걱거리고 있다. 둘째, 만약 국회가 한길수가 연류된 내용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한다면 이는 일본인 뿐만 아니라 중국인 및 그 자신의 국적, 한국인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지 모른다. 국회가 일본에게만 해당하는 제한적인 법을 적용한다면 이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는 과거에 동양인들에게 귀화와 이민을 제한 했던 사례처럼 동양인들에게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속담을 빌어 이야기하자면, 그는 제 무덤을 파고 있는 것이다.

    2815 " 일본 교토에서 공부중인 미국 출생 일본인 학생들 사진과 기사(The Nippu Jiji|| 1941.2.13) "

    니뿌 지지(The Nippu Jiji)지, 1941년 2월 13일 목요일

    2816 " 브래들리(Willis W. Bradley|| Jr.)가 한길수에게 보낸 서한(1937.5.11)와 한길수 지하보고서 "

    "미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그 어떤 것도 감수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교육계에 있는 사람들, 법학자, 국제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법률 용어 사용에 가장 완고합니다." "개인적인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일본을 지키기 위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미국인들이 많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2817 한길수 지하운동보고서(1941.9.29)와 각종 신문기사

    본 비정부 지하조직은 일본이 만주를 점령한 1931년 9월 18일 이후, 1932년부터 중한민중대동맹에 의하여 운영되었다. 본 조직의 목적은 일본에 대항하여 미합중국 정보기관과 미국 정부를 돕는 데에 있다. 미육군 정보부 하와이 본부와 동맹의 우두머리인 김규식 박사와의 첫 회의는 1933년 7월 하와이 샤프터 요새에서 열렸다. 1934년 미해군의 최근 대령인 윌리스 W. 브래들리(Willis W. Bradley)는 한국 지하조직 임무의 비공식 고문으로 지명되었다.

    2818 일본의 전쟁준비와 한길수 관련 신문기사들 : 4점

    2819 한길수 활동에 대한 비난기사들

    일본계 미국시민 연맹의 일본인 2세 임원이며, 로푸 심포의 편집장인 토고 타나카(Togo Tanaka) 씨는 미국에 대한 일본 전쟁 준비를 돕기 위해 일본 영사관과 협조하고 음모를 꾸몄다.제출자 : 한길수 일본의 패배 이후 송 씨는 온정(On Chung)과 나에게 다음과 같은 권한을 부여했다. "일본 영사관은 나에게 당신을 대항해 일본인 2세인 타나카(Tanaka)와 협력하라고 요구했다.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그 일을 해야만 했다. 한국에 있는 내 아내와 아이들의 목숨이 위태롭다···"

    2820 “미국방과 우리 입장” 관련 한길수의 비평기사 「태평양주보」(1941.1.18)

    …(원본누락)…FBI (일본계 미국시민 연맹 관리) 타나카(Tanaka)의 파일에서 이 메모 발견“C I 송(Song) - 로스앤젤레스 한국 연합 현장 배후에 있는 자자료를 입수하라 (그의 부인과 가족이 지금 한국에 있다.)묻기 위해 영사를 포섭하라 - (제안)1940년 7월 13일” 일본의 패배 이후 송 씨는 정 박사와 내게 “정부 영사관이 내게 일본인 2세인 타나카(Tanaka)와 협조해 당신을 대항해 활동하라고 요구했다”고 고백했다.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내와 아이들의 목숨이 위협을 받는다…”재패니즈 데일리, 라푸 심포, 1941년 2월 9일사설 “이제 더 이상 외국인 선동자의 신용할 수 없는 충격 증언은 없을 것이다. 한국인인 한길수는 로스앤젤레스와 호놀룰루의 한인들에게 신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