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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자료

    콘텐츠/독립운동가 자료 [] 에 대한 전체 5845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2351 헐버트가 메이에게 보낸 편지(사본)

    8월 4일

    2352 헐버트가 메이에게 보낸 편지(사본)

    당신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무척이나 궁금하오. 전보를 부쳤는데 그걸 받고 당신이 내 안전에 대해서 덜 걱정했으면 하는 바람이오. 내 신변에 위험이 있을 거라는 증조는 보이지 않소. 서울을 걸어 다니고 또 릭샤를 타고 다 돌아다니기도 했는데 꽤 안전하게 느껴지오. 해리슨스(Harrisons)씨가 나한테 관청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허심 탄해 하게 내 상황에 대해 다시 얘기 해보라고 충고합디다. 그제는 미국영사 대행자인 고울드(Gould)씨와 함께 많이 아픈 빈스카운트 손(Vinscount Sone)을 대신해서 기관장 업무를 하고있는 사람과 한시간의 대담을 나눴소. 그들에게 내가 여기에 온 이유는 내 사무를 보고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라고 했더니 내가 필요로 하는 모든 편의를 봐주겠다고 하더군. 또한 만약 내 업무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 할 경우에는 대리인에게 일을 맡겨 놓고 갈 수 없고 꼭 그래야 한다면 다시 돌아와서 내가 직접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내 입장을 분명히 밝혔소. 김(Kim)씨와 오(O) 씨는 걸어서 나한테 빗으로 잡혀있는 재산을 현금화 시키기 위한 저당물의 유질 처분 준비작업에 관한 일들과 다른 일들을 처리하러 시골로 내려갔소. 스크랜톤(Scranton) 박사는 그 저장 창고에 대한 저당권을 가지고 있고 그에게 빛진 만엔 중에서 8천엔이 이미 갚아졌기 때문에 이젠 2천엔만 더 받으면 된 다오. 그가 관련 서류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내 돈을 확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오. 민(Min) 가가 가지고 있는 돈은 확보하는데 가장 긴 시일이 걸리겠지만 아주 잃어버린 것은 아니오.이것들과 관련된 일들은 진행되고 있소. 하타(Hata)와 관련된 소송에 대한 최종 결과는 21…(원본누락)…일날 나올 것이고 그 결과에 대한 어떤 의심거리도 없다오. 그 일이 잘 해결될 거라는 것에 추어도 의심이 없소. 우리집의 밑에 층은 만 팔천엔 이하로는 팔지 않기로 마음 먹었소. 여기는 현금이 아주 희석한 상황이라서 부동산거래가 힘들지만 그 가격이면 살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소.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내가 여기에서 계속 있거나 아니면 다시 돌아와서 문학에 관련한 도움을 주기를 바라고 있소. 여하튼 나는 아직 아무런 계획도 만들지 않았고 어떤 성명도 내지 않았소. 서울에서 곧…(원본누락)…모임이 있을 예정인데 그 때 내 책에 관한 문제를 처리할 계획이오. 아직까지는 그 상황이 어떵게 돌아가고 있는지 미지수요. 내가 보기로는 꽤 만족스럽게 일이 해결되리라 믿소. 그게 그 일에 관해 내가 현재로 할 수 있는 모든 얘기오. 근래에 많은 외국인을 보았고 그들 모두 아주 친절했다오. 벙커(Bunker) 여사가 지금 나에게 "메이(May)에게 그녀가 여기에 없기 때문에 내가 몸살이 났다."고 전하라고 했소. 어제 여러 사람들에게 연락을 했었소. 페리(Perry)양과 파시(Pash)양은 맥클렌(McKillan) 저택 앞에 있는 새집으로 이사했소. 전선이 팔린 관계로 서울에 있는 콜브란(Collbran)의 사업은 문은 닫고 있다오. 그는 집으로 돌아갔고 그의 아름다운 저택은 현재 시장에 내놓은 상태라오. 20만엔에 내놓았다고 들었소!내 생각으로는 그는 3만 8천엔인가 여하튼 5만엔 이하에 그 집을 샀다오. 나 또한 그가 그 값을 받기를 기도하지만 그렇게는 못 받을 것 같소. 그들은 우리 집에 집중하고 있고 어제는 버트 콜브란(Bert Collbran)과 그 일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 했소. 모든 것들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소. 모든 이들이 주권을 사려고 야단이고 어떤 이들은 175달러에 손을 내놓고 있소. 실제로 그것들이 더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 간단히 말해서 그들 눈앞에는 많은 이익이 있는 샘이지. 그들이 신고를 하는 첫해에는 40% 이상의 배당은 받지 못하겠지만 그 정도면 꽤 공평하다고 보오. 에이비슨(Avison)의 전보를 조금 늦게 받아서…(원본누락)…의 전부가 이미 팔린 상태라서 내가 그것들을 수중에 넣지 못했소. 아주 실망스러운 일이었소. 10만 달러 이상의 주권이 발급될 것이고 내가 그 중의 얼마는 확보할 수 있을 것이오. 갑산(Kapsan)에 있는 구리 탄광은 좋은 상황에 있고 그 주권의 일부는 내가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이오. 주권 발급 신청을 해 좋았소. 우리의 오랜 가구들이 동네 여기저기에 널려져 있다오. 테이블은 여기에, 의자는 저기에, 카펫은 거기에 말이오. 그들은 꼭 오랜 친구들의 익숙한 얼굴 같다오. 많은 진전이 있었소. 남문 양쪽에 있던 담이 없어졌고 양쪽으로 두개의 길이 바로 생겼소.그 문 자체는 멋들어진 난관으로 둘러싸이고 왼쪽으로는 옛 시절의 자취가 남아있소.

    2353 헐버트가 메이에게 보낸 편지(사본)

    1909년 6일 금요일

    2354 헐버트가 메이에게 보낸 편지(사본)

    1909년 8월 11일

    2355 헐버트가 메이에게 보낸 편지(사본)

    1909년 8월 12일

    2356 헐버트가 메이에게 보낸 편지(사본)

    우리가 가는 여정 중에 가장 북부 지점인 아신스크(Achinsk)에 도착했다오. 비가 내리고 추웠었는데 지금은 햇빛이 나서 사람들이 역 플랫폼을 거닐고 있소. 여기에서 20분 동안 정착할 예정이오. 어젯밤에 내 소설을 많이 썼고 오늘도 더 쓸 참이오. 영국 선교사가 나한테 책을 빌려줬는데 그것도 읽을 참이오. 코카서스(Caucasus) 책은 다 읽었소. 어쩜 러시아 사람들은 자국민에게 지금 일본이 한국 사람들한테 하는 것보다 어쩜 더 큰 만행을 저질렀소. 한국이나 다른 어디라도 현재…(원본누락)…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보이오. 여기는 마치 3월 같소. 가끔 곡식을 거둬들이는 걸 보면 여기도 따듯한 날이 있기는 한가보오. 아무 소식도 없소. 내 목적을…(원본누락)…해야겠소.…(원본누락)…두 번째 벨이 울렸소.내 사랑을 모두에게 전해주시오,

    2357 헐버트가 메이에게 보낸 편지(사본)

    현재 우리는 시타(Chita) 시에 진입하고 있소. 날씨도 아주좋고 이곳도 아주 아름다운 곳이라오. 몇 시간 동안이나 창문 앞에서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농장 따위들을 바라 보았소. 아주 고약한 두통에 시달렸는데 이제는 좀 나아졌소. 여기는 날마다 날씨가 포근해 지고 있고 어제는 처음으로 침대보랑 요를 사용하고 잠을 잤소. 이불은 너무 더웠을거요. 이 기차는 이르쿠츠(Irkutsk)서부 탔던 기차보다 훨씬 좋소. 상상해 보시요! 내일밤이면 하얼빈에 도착할 것이요. 특별한 소식은 없소.이제 겨우 7분…(원본누락)…밖에 남지 않았으니 이만 줄이겠소.모두에게 내 사랑을 전해주시오.

    2358 헐버트가 메이에게 보낸 편지(사본)

    8월 26일 목요일이제 6시 밖에 되질 않았는데 더이상 잠을 이룰수가 없구료. 단 두시간의 취침밖에 취하지 않았지만 남부행 기차 안에서 밀린 휴식을 취할 예정이요. 페독(Paddock)이 나한테 한 얘기를 당신한테 마저 해줘야겠소. 그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가족에 대해 허심탄해 하게 얘기하더군. 그의 딸애가 몇 달 전에 사망했고 여러국가의 사절단이 무어(Moore) 신부님의 주관 아래서 치뤄진 장래식에 참가했다더군.그애 엄마가 무덤으로 뛰어들어 가려고 했소. 그는 베텔(Bethell)의 장례식에서 관을 맨 사람 중에 하나였소. 베텔(Bethell)은 피곤과 방탕한 생활에서 야기된 심장병으로 사망했소. 그의 죽음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소. 죽음의 문턱 앞에서 그는 직접 호텔로 내려가서는 친구들 몇명에게 연락을 했소. 샴페인을 시켜놓고 마지막 남은 힘으로 잔은 들더니 "우리의 마지막 술을 위해"라고 속삭이더군. 아주 비참한 모습이었소. 서울 언론에서 그래도 그에 대해 괜찮은 기사를 실었더군. 하기야 이제는 그가 활동하고 있는 적수는 아니긴 하지. 페독(Paddock)이 그러는데 존스(Jones)는 신부가 되기 위해서 꽤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하더군. 나는 그가 잘 해낼 수 있을거라 믿소. 페독(Paddock)은 그에 대해 좋은 말을 할 수 없는 듯하오.콕번(Cockburn)이 떠나기 전에 페독(Paddock)에게 페독(Paddock)의 일본인들에 대한 판단이 옳았음을 언급했었소. 일본에 있는 한 신문에 콕번(Cockburn)이 그의 사무적 영향력을 개인적 이득을 위해 이용했다는 기사가 실렸었소. 페독(Paddock)이 내 부동산 문제 때문에 이또(Ito)에게 가서 미우라(Miura)가 그 일에 대해 아무런 조처도 마련하지 않았다고 했더니 그는 그저 "말도 않된다."는 대답만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독(Paddock)이 계속해서 밀고 나가니까 그제서야 이또(Ito) 측에서 미우라(Miura)를 공식적으로 비난했고 그러던 어느 일요일날 미우라(Miura)가 페독(Paddock)에게 와서는 자기가 망신을 당해서 사표를 써야하게 되었다며 울었다고 하오. 페독(Paddock)이 자신은 공적인 일로 이 건에 대해 싸우고 있는것 뿐이지 개인적인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고 하오. 결국 그일은 잘 추진된것으로 보이오. 서울에서 내 업무를 맡아볼 사람이 바로 페독(Paddock)이고 난 아주 흡족하오. 그가 할 수 있는 한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을 발휘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소. 일처리를 어떡게 할 것인지 자세한 지시는 내리지 않았소. 삼 사년 전보다 서울에 있는 영국인들한테서 좀 더 따듯한 환영을 받을 것은 명백하오. 페독(Paddock)이 말하길 태프트(Taft)는 잘 지내고 있고 중국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확실히 하겠다고 했소. 또 작별인사를 해야겠구료. 다음번에 더 많을 소식을 전하겠소.

    2359 헐버트가 메이에게 보내는 편지(사본)

    지난 이틀은 아주 극도로 흥미로운 날들이었소. 묵덴(Mukden)으로부터 작은 기차를 타고 오는 일은 과히 특별한 경험이었소. 내가 타고있었던 차는 요코하마에서 우리가 타 봤던 말차와 비슷한 서였소. 189마일을 거쳐오는데 이틀이 걸렸소. 홍수가 다수의 다리를 휩쓸고 가서 차에서 내려 걸어서 한 마일을 여행하고 배를 타고 급류가 흐르는 강을 건넌 후에 우리의 짐을 들고 손바닥만한 차로 또 조금가고 넓이가 5피트이고 높이가 7피트되는 상자같은 차에 12명이 함께 타고 여행했소! 그리고 나서는 또 하나의 강을 널판지로 건너고 이 산을 넘을 기차를 찾고! 그렇지만 산은 정말 장관이었소. 터널이 없는 이유로 산을 따라 꼬불꼬불 지그재그를 해야만 했소. 한번은 길이 얼마나 혼돈스럽던지 더이상 어디에서 꼬불어 지는 건지도 모르겠더구료. 그렇지만 그 경치란 정말 말할 수 없이 멋있었다오! 작은 산 하나에서 밤을 지냈는데 일본식 호텔에서 묵었고 아주 편한 밤을 보냈소. 여기에는 어젯밤 어둑할 무렵 도착했소. 우퉁(Autang)은 바쁘고 큰 도시라오. 오늘 아침에 서울행 기차를 타야하기 때문에 이 시의 구경을 제대로 하지는 못할 것 같소. 하지만 일반적인 느낌은 알 수 있소. 좋은 일본식 호텔에 들렸다 갈 예정이오. 어제 밤에는 밥, 대나무 순, 새우, 버섯, 김, 그리고 생선으로 저녁을 했소! 내 걱강은 더할 나위 없이 좋소. 서울에 도착하는 것에 대한 걱정은 조금도 없을 뿐 아니라 그것에 대한 기대가 아주 크다오. 손탁(Sontag) 여사는 떠났고 팔라스 호텔 주인이 여사의 장소를 맡고 있소. 어제 어느 한국 사람에게서 연간 장로회 모임이 서울에서 열릴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고 많이 기뻤다오.이제 겨우 5시 밖에 않됐지만 어제 9시에 잠이 들어서 잠도 오질 않고 아침식사가 배달되기 전 당신에게 몇 줄 쓸 시간이 되어 그냥 일어났소. 7시 반에 기차를 타려면 6시 반에 강을 건너가야 한다오. 서울에 연간모임이 끝나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으로 믿소.오늘은 여기서 작별인사를 해야 겠구려. 다음 편지는 스크랜튼(Scranton)이 그랬던것 처럼 "더러운 내 오랜 서울(dear,dirty old Seoul)"에서 발송될 것이오.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사랑하는 모두들에게.

    2360 헐버트가 메이에게 보낸 편지(사본)

    드디어 오랜 서울에 도착했소. 위주(Wiju)에서 평양까지 꽤 편한한 여행을 했소. 나야 평양을 그대로 통과할 참이었는데 평양역에서 제7일 그리스도 재림설교자 선교사와 그 부인을 만났소. 그 양반들이 올해 장로교 집회가 평양에서 한참 열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소. 가방만 허겁지겁 챙겨서 기차에서 내릴 시간 밖에 없었지. 릭쇼(rickshaw)를 잡아타고 폴웰(Follwell) 박사 댁으로 바로 갔다오. 나를 보고서는 얼마나 놀라던지 귀신을 보고도 그만큼 놀라지는 않았을거요. 그 부부한테서 뿐만 아니라 그 부부 댁에서 잠시 머물고 있던 벅월(Burkwall)씨 한테서도 아주 따듯한 환영을 받았소. 핀다(Pindar) 양 또한 거기에 있었소. 그 아가씨가 바로 우리집에 세를 살고 있는 그 영국 아가씨라오. 그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눈 후 장로교 연합회에 가서 일요집회에 참석했소. 내가 들어갔을 때는 집회가 이미 시작한 후 라서 한 두명이 내가 도착한 것을 알아차린 것에 그쳤지만 집회가 끝남과 동시에 더할나위 없이 따듯한 환영을 받았다오. 여러 명의 새로온 선교사들이 있더군. 다들 엄격하게 선별되었음에 틀림없는 훌륭한 청년들인 것 같았소. 어빈 스미스(Irvin Smiths), 보렌즈 존슨(Borens Johnson), 아담스(Adams), 게일 밀러(Gale Miller), [?], 언더우드(Underwood), 웰본(Welbon), 클락(Clark), 피터스(Peters), 스칼린즈(Scallins), 모펫(Moffett), 윗트모어(Whittemore), 허즈(Hirs), 샤록스(Sharrocks), 로스(Ross), 와이팅(Whiting), 베커(Becker), 리(Lee), 바이어드(Baird), 번히젤(Bernheisel),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과 그들의 아내들과 악수를 나눴소.게일(Gale)의 두 딸은 아주 괜찮은 아이들로 보였고 듣자하니 아주 성숙한 아이들이라고 합디다. 웹(Webb) 여사는 물론 연세는 더 드셨지만 아직 건제하시더군. 다들 서로 다투면서 당신 안부를 묻더군. 다들 나에게 따듯한 환영인사를 주었소. 다들 내 제의에 동의하더군. 게일(Gale)이 설교한 저녁 집회에 참가한 후에 거기에 돌아가서 저녁을 했다오. 사업 얘기를 시작하는 것은 월요일 아침까지 기다리기로 했소. 나는 선교구 집회에 참가해서 그를 시켜 쉬는 시간 마다 몇명의 남자들과 이야기 나누도록 했소. 그들은 빈톤(Vinton)이 나에게 그렇게 많은 돈은 밪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자 매우 놀라더군. 게일(Gale)이 장로교 선교 장부를 뒤져보고 혹시 빈톤(Vinton)이 내 돈을 사용해서 선교자금을 막는데 사용했는지 알아보겠다고 했소. KRTS 건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정보를 알아낼 수는 없지만 내가 보기로는 그들의 수중에도 별로 현금은 없는 듯 싶소. 여기에서 그것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밖에. 9월에 여기에서 KRTS 모임이 있을 것이오. 웰즈(Wells)에서 점심을 하고 스웰런(Swallen)에서 저녁을 하고 또 많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오래된 친구들도 만났소. 월요일…(원본누락)…이 끝나고 야구 경기를 하기 위해서 회의를 미뤘소. 내가 심판을 봤지. 너무나도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소. 새로온 간호사 중에 한명이 경기에 참여했는데 공을 얼마나 잘 첬는지 1루까지 진출을 했다오. 화요일, 오늘아침에는 연간 모임에서 기도회를 주관하고 허스트(Hirst), 벅월(Burkwall), 피에터스 여사(Pieters), 여사의 딸, 그리고 새로온 선교사와 함께 2시 50분 서울행 기차를 탓소. 고백하건데 남부 역에 들어온는 것이 긴장되더구료. 허스트(Hirst)가 나에게 많은 좋은 얘기들을 해줬고 일본인들이 나의 비판에 대해 얼마나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말해 줘서 무슨 일이 생길 것인지 안봐도 눈에 선하더군. 내가 피에터(Pieters) 여사의 딸을 데리고 내려야 했지. 그런데 사실상 중요한 순간이 오니까 지금만큼 떨리지도 않더군. 여하튼 한국인들과 일본인들 인파 속에 파뭇쳐서 다행히도 잘 빠져 나왔고 하룻밤 머무르려 허스트(Hirst)의 집으로 갔소. 병원 부지가 아주 딴 곳이 되어버렸소. 주변 울타리에 화분을 놓고 15피트에 달하는 큰 나무들이 주의를 감싸고 있소. 그것만 해도 분위기 전체가 달라지더구료. 지금은 자정이 지난 지 오랬지만 내일 아침 일찍 영사과 라미노우스(Laminous) 씨가 미국으로 떠나기 때문에, 당신이 이 편지를 받는 것을 확실히 하고 싶어서 전해주려고 아직까지 편지를 쓰고 있는 거라오. 편지를 검열한다고 다들 그러고 이 방법이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도 모르겠소. 한국사람들 한테는 상황이 더 좋을 수도 아니면 나쁠 수도 있다오.일본인들이 한국인들을 강탈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들은 모든 도서, 문학을 점령해 버렸고 자명하게 한국어를 소멸시키려 들고 있다오. 모든 선교사들은 이것에 대해 이해하고 알고 있다오. 생각해보시오. 어떤책은 보스톤 티 파티에 관한 얘기가 써 있어서 금지 되었다오. 또 조 허버 주니어(Geo. Herber Jr.)가 쓴 책이 거부당했는데 그것이 두루미가 조개 한 마리를 잡았고 그 조개가 두루미의 부리를 조개 껍질로 닫아버려서 결국 두루미가 굶어 죽었다는 얘기가 나오기 때문이었다오.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이 그 이야기를 일본과 한국에 견주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오. 프램톤(Frampton)이 쓴 책은 "나는 국기를 위해 싸울 것이다."라는 문장이 들어 있어서 거절 당하기도 했소. 일본인들은 그들의 적이 될 수 있는 모든 분야,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해도 압박하기 위해 정말로 무한정한 고통을 감수한다오. 그들은 선교 교회에서 사용되는 성경의 승인을 막으려고도 했지만 라밍(Lamming)의 확고한 입장 표명에 눌려서 사용해도 된다는 약속을 하고 말았소. 선교사들은 일본인들과 기독교인들 사이에 마찰은 거의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믿고 있소. 곧 우리의 치외법권이 빼앗길 것과 선교사들이 그 후에 많은 고통에 시달릴 것은 자명하오.내가 보기로는 일본이 선교사들을 내쫒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할것이오. 선교사들은 일본이 기독교를 싫어하고 무서워 한다는 것을 알고있소. 미국 정부가 그런사태를 막기 위해 모든노력을 하지 않는 한 그들의 내일은 아주 어두워질 수 밖에 없다오.서울 언론 편집자인 토모토(Tomoto)는 스티븐스(Stevens)이 실패한 일을 처리하러 미국에 갔소. 여기는 돈이 모자라는 상황이라서 노래 한 곡이면 멋진 놋쇠 장식을 살수 있다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훨씬 크고 좋은 화로 두개를 9엔보다 적은 값에 사라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소. 아직 내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오.하지만 곧 더 많은 것을 알게될 것이고 그러는 대로 당신에세 알려주겠소. 탄광에관한 가장 좋은 보고를 받았고 우리가 한 투자가, 비록 작기는 하지만 꽤 좋은 수입을 벌어다 줄것을 확신하오. 원하기만 한다면 내 2천달라 상당의 주가를 7천달라에 팔 수 있지만 난 싫소!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전에 이편지를 보내야 하니 미안하지만 사몬즈(Sammons) 씨에게 내일까지 편지를 줘야하오. 듣기로는 일본인들이 우리 집에다가 예전에 나무 울타리가 있던 자리에 돌담을 놓았다고 합디다.그것이 집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오. 킨더(Kinder)양이 집을 많이 살려놨고 돈도 많이 썼다오. 내가 집을 못 알아볼지도 모른다고들 하더군! 벅월(Burkwall) 양이 그녀와 하루에 2엔을 내고 하숙을 하고 있소! 싸기는 싼값이지! 포도나무는 벽을 둘러쌌고 나무들이 잘자라고 있소. 당신을 위해서 다 사진을 찍어 두겠소. 마음에 있는 얘기는 다 못했소. 당신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서 내일 전보를 치겠소. 내 생각에는 내가 안전할 것 같지만 모든 주의를 다하고 위험한 일은 절대 하지 않고 있소.감리교 선교 단체는 이구동성으로 조 허버 주니어(Geo Herber Jr.)가 그가 바라는 데로 신부의 자리에 오르지 않기를 바라고 있소. 사실 그들은 격한 반대를 하오. 노블(Noble)은 강 위편에 있었지만 얼굴을 보지는 못했소. 이사회가 9월 8일 혹은 9일날 여기에서 모임을 가질 예정이오. 당신 생각은 어떻소? 챔프먼(Champman) 전도사가 10월초에 서울에서 여러 모임에 참석할 계획이라오! 이제 그만 접어야겠소.다들 안부 전하라고 야단들이오. 아이들에게 내 사랑을 전해주고 물론 당신에게 내 가장 큰 사랑을 전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