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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자료

    콘텐츠/독립운동가 자료 [] 에 대한 전체 5845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11 청파일기

    靑巴日記 全

    12 광복회-광복회 부활 취지 연혁(1945)

    13 고광복회총사령 고헌 박상진씨의 약력(1960)

    14 우재룡은 고우 박상진의 약력을 수초(1946?)

    嗚呼라 朴尙鎭의 約曆을 中間幾年間 幾十分의 一이라도 記抄하려하니, 禹在龍 自身의 經曆을 먼졈 말하기 가소럽다. 그르나 안을 수 업다. 禹在龍은永川郡 鄭用基氏 再次 唱義時 結義을 하고 從軍하다가 敗戰되어 檢擧을 當하야 終身監刑을 바듯다가 韓日合倂時 出獄된 後 深山에 隱居하야 때을 기두리면셔도 對人酬酌은 敗軍之卒하라셔 此山가 갓치 餘生을 맛치겟다하고 累累 同志가 來訪하야시나 不應하고 잇는바, 梁벽도와 蔡基中氏가 朴尙鎭을 말하고累累히 勸告함을 바다시다 不聽하얏든바, 梁(벽도 : 편자 주) 長子 梁00가 來하야 朴尙鎭氏가 某日에 禹을 만나려고 山下까지 오기로 約束하야시니 其時對面이나 하야셔 彼此間 討論을 하야보라기에 豊基邑을 約束하야셔 相對하기 되엿다. 嗚呼라. 朴尙鎭의 遠大한 抱負중 滿洲陳野로 朝鮮式 水稻를 獎勵하고支那 露領에 居住하는 同胞 及 在鮮同志로 內外相應시길 方法과 歐米諸國에外交할 것과 後位에 後怪으로 向子傳孫하드라도 안을 수 업는 우리의 任務라기에 內心으로 참으로 伏從지 안을 수 업사여 盟警고 許身하앗다.

    15 고헌실기약초(1946?)

    鳴呼라 光復會의 舊日同志가 京城애 會合하야 舊日 會名 光復會란 看板을걸고 國內와 國外애 同志者를 招集하난 中 一邊壯烈하계 殉國하신 朴尙鎭氏의歷史를 幾年問 幾十分의 一리라도 抄錄 登印하야 天下애 布告코져 此筆을 擧하음애 悲憤感慨하야 泲橫流를 禁치 못하●(깃)다. 氏는 慶尙南道 蔚山郡 松亭里애셔 生長하야 慶州郡 鹿洞이란●(디) 居住하였다. 氏의 遠大한 抱負와 烈特한意志는 實로 凡夫俗儒의 窺測할배 안이다 一九一○年(1912년의 착오: 편자 주)애 自己所有財不動産을 日本 三井物産會社애 十年年附로 典當하고 現金八萬円을 出資하야 平壤同志 金德基와 全州 人 吳赫泰를 合資하야 二十四萬円의 巨額을 慶北 大邱애셔 尙德泰本店이란 商店을 設立하야 秘密리애 朝鮮獨立思想애 同志者를 求하는 場所를 定하엿셔 四五年間애 만흔 同志를 連結하엿다. 一九一五애 多數의 同志者를 神秘하계 大邱 達成公園애 會集하야 誓天決死의 團體를 組織하엿다. 一般會員은 氏를 會長 兼 總司令部長으로 推薦하엿셔 諸般任務를 獨身處決●(키) 하얏다. 氏의 處決壽策은 左와 如하다. 一. 滿洲 吉林애다가 朝鮮獨立機關 本部를 設置하야 部長애 安星一氏를 任命하엿고(平壤義倈安昌浩氏 從弟) 잘못된 표현이다. 안창일은 평남 평천군 검 산면 용포리 출신으로 新民會·大韓光復會·大韓獨立團에 활약한 인물이다. 편자 주) 一. 朝鮮農民를 滿洲로 誘引하야 開墾 榮農키하야 朝鮮獨立機關 食量을 保 掌캐 하되 誘引方法은 京城新聞社 編輯長 李相協氏와 社長를 協同하야 滿洲地 帶애 産業便宜와 良好함을 新聞紙上으로 累累 報道●(키)하야 國內民을 移住식히 엿다. 一. 滿洲애셔 朝鮮獨立機關食量 保掌委員을 各地애 選定하야 暗暗裏애 活躍 하야 告知文을 酪附하고 每年農作 中 一割를 保掌식히기로 하야 總委員長은 崔象悅氏를 任命하엿다. 一. 滿洲 牧丹江省 北便 密山애(大德山中) 朝然士官學校를 一九一八애 設立 하야 武士를 養成식히엿난대 其 責任을 安重吉氏의계 任命하여 왓다가 後復1) 필자는 朴孟鎭이다.金擎天氏(日成氏의 初名)의계 任命하얏다(重吉은 安重根氏의 親族: 잘못된 표현인 듯- 편자 주) 一. 軍隊 總司令長官을 推薦하난●(디) 黃海道 李錫大氏를 選定하얏다가 李錫大가 五六百名의 軍隊를 暗率하고 雲山金鑛을 襲擊하얏다가 誤中되야 滿洲로 避身하엿다가 未久檢擧됨을 보고 孫一民의 推薦으로 金佐鎭을 任用하야 多數의軍隊를 總管●(키) 하엿다(訓練바든 農民靑年) 一. 全鮮八道●(이) 光復會의 支部를 設置하야 支部長 一人式을 選置하고 支部長의 擔當地區 內애는 朝鮮獨立思想을 宣傳하야 獨立資金을 募集하기로 計劃하고 支部長 八人을 各道애 選定 任命하엿난●(디) 第一 忠淸道애는 張斗煥(自己財産 六百石 可量 本會애 義捐) 第二 京畿道애는 蔡淇中, 第三 江原道애는 金東浩, 第四 全羅道애는 李秉澯, 第五 黃海道애는 劉昌淳(庾昌淳의 잘못: 편자주), 第六 平安道애는 黃羲悳, 第七 咸鏡道애는 金炳植, 第八 慶尙道애는 金振萬을 任命하엿다 一. 支部長의 手下애 特別派員 五十人式 領率●(키)하야 武器를 携帶하고 出淡活動을 驚神泣鬼토록하엿다. 右와 如히 諸般機關을 敦設하난대 乙卯(丙辰 1916년의 잘못: 편자 주) 五月 日애 京城方面애셔 更次 主謀者 數十人이 合議하야 光復會란 會名을 大書하고 趣旨書를 潛印하야 中外예 宣布하고 武器가 不足함으로 幹部를 派遣하야露領及 海外諸國으로 붓허 武器를 購及하엿는대 同年 六月 頃애 朴尙鎭는 右任務로 滿洲 吉林으로 出發하고, 同年八月애 大邱 在留한 同志 幾人이 軍資金募集 目的으로 大邱 徐佑淳家 事件을 發生하야 同志 幾許人이 滯囚되고 朴尙鎭은 武器의 主人으로 連累되여 京城 沈相鉉家애셔 檢擧되야 一年間 大邱監獄애셔 苦問惡刑을 當하고도 光復會의 秘密은 頭露치 안이하야 體刑滿期로出獄하엿다. 歸嫁 卽時로 禹在龍을 滿洲애 派送하야 各 機關과 連結을 取하계하고 其他奉天 天津 上海 各處애는 韓文(韓焄일 듯: 편자 주)과 鄭淳榮을 派送하야 朝鮮人團體機關애 氣脙을 相通하엿다. 그리고 各項 條例와 規模를 擴張更新●(키) 하되 金漢宗(鍾이 옳다: 편자 주)과李基沃을 氏의 左右애 常在캐하야 幕賓參謨의 任애 選用하고 禹在龍과 裵相喆金鎭澤을 遠近縺絡事務部長애 任命캐 하여 金佐鎭과 馬林甫의계 奉天 吉林을主管캐 하고 安東縣 新市街애 三達洋行을 하고 잇난 李海量 文基成을 長春과天津 等地애 通信及 物資輸送事務를 擔任캐 하고 孫一民 韓文으로 上海臨時政府 連終專務委員을 任命하고(遁法과 縮地애 能한 人士) 崔浚으로 財務主任애擇定하여 各方面收入된 金額을 崔浚의계 保管하엿다가 海外各地 機關事業애酬用하고 上海政府애 送達하엿다. 一. 全朝鮮各處애 本會의 布告文을 發送하난●(디) 右文을 氏의 手抄로셔 各 地部가 贊同하고 長春과 滿洲 方面을 持去하야 直接 發送하기는 禹在龍이가 其責任애 當하엿다 一 布告文과 同封한 信號가 有하야 數字로셔 秘定하야슴으로 後任 査察員及 特派員의 眞假를 對照하야 本會의 派送을 判定 無疑캐 하고 信號數字方法은 重要斡部 幾人 外애는 不知캐 하야 會員 中애도 秘密을 極守하엿다 一. 布告文 發送 後애 接手者의 行動애 ●(ㅅ다)라 三種의 區別을 定하야 武斷的大政策를 施定하엿다. 布告文을 順應하는 人은 本會애 參入캐 하고 半信半疑하는 人은 査察員이 說明開誘캐 하고 反抗하야 親日을 더 힘시는 人은 武力으로 征服하계 ●(하)엿다. 如此히 進行하난 中 布告文애 順應하는 사람은 各道各郡애 小數애 不過하얏난저 誠心誠意로 順應하든 人士 數名을 玆애 記錄한다 全羅道 富豪家 號曰 朴八萬이라고 하는 朴台奎는 現金二十萬円을 本會애 義捐하엿고 開城富豪 金英培는 十八萬円을 義捐하엿고 慶北 義城郡 山雲里애 李泰大는 現金二萬円을 出捐하고 査業員 一行의계 誠心으로 射禮하며 自己 土地 七 百餘斗落을 財務人 崔浚의계 移轉하기로 決定하야 慶州까지 來着한 것을 崔浚이가 氏를 請하야 遂議한 結果 氏가 不可함을 말하기를 無限한 大事業애 箇人의 有限한 財産을 當할 슈 업실●(ㅅ분) 그르캐 順應하는 사람은 우리의 同志인 則 吉林本部로 派遣하면 自家의 世傳財産을 減損치 안코 農作事業애 投資하야每年 收入 中 一割 又는 二割式 本部애 納付하면 一人의 同志를 加得함이요無限애셔한 財源을 發用할 것시라 하야 移轉을 信止캐 하고 滿洲애 投資●(키)하엿고 慶北 新○ 李某家애셔도 現金五萬円을 捐하고 參會하엿다. 一. 全鮮士族 中 富豪로셔 右 布告文애 不應할 ●(ㅅ분) 안이라 親日을 主張하는 人은 死刑을 執行하야 大民重懲戒캐 하엿다. 一. 各地 商會를 起創캐 하되 富豪를 網羅하야 財源을 發用케 하난대 梁山人 尹顯泰를 勸誘하야 甲寅商會와 離春商會를 設立캐 하고 安熙載(安熙濟가옳다: 편자 주) 勸誘하야 白山商會를 設立캐 하고 平壤人 李仁實을 勸誘하야平北商會를 設立캐 하고 忠州人 金聖桓을 勸誘하야 忠州商會를 設立캐 하고其他 南北鮮애 多數의 商會를 創立 식혀서 暗暗히 富衰의 財力을 引用하엿다. 氏는 性度가 毅直하고 用彩가 俊美하야 事機애 臨하야 英斷이 非常함으로 交接한 者가 高亢할 氣㮣애 歎服하야시며 最初 上海를 渡할 時애 朝鮮人團體諸員들이 同一히 海外애 留連하야 握手活躍하기를 懇請하엿스나 氏는 諸員의계 말삼하기를 亡國의 民族 더구나 赤手空拳인 우리들 輩가 朝鮮政府라는 看板만 가지면 엇지하오? 外國租界애셔 外國人의 援助를 希望하●(킷)쇼? 朝鮮境內애셔도 人物다운 人物리 잇셔 內外相應하여가며 一般事業애 進行할 것을 結約하고 歸國하얏다가 其後 丁巳年(1913 癸丑일 듯: 편자 주) 七月 頃애 巨大한金額을 携帶하고 다시 黃浦江을 渡하야 所幹을 終了하고 孫文氏를 尋訪키 爲하야 南京附近●(ㅅ가)지 抵達하야 孫文씨의 副臺 魯月華孃의 紹介를 因하여 孫文氏를 面會하고 中國과 朝鮮의 自來關係上 相負치 못할 것을 烈烈히 말한즉 孫文氏의 壯烈한 意志를 讚揚할 ●(ㅅ분)만 안이라 自國의 複雜無緖함애 外顧의 手腕을暇用할 道理가 업슴을 發明하고 遠訪한 爲國誠意의 感謝紀念品으로 自己의 所持하엿든 最新美式拳銃一柄을 解贈함으로 持來하야 護身用으로 가●(ㅅ다)가 結局讐人의 毒手애 押收되얏든 것이다 氏의 部下애 死生同盟한 人士가 忠憤義勇의 男兒가 許多하지마는 金漢宗 禹在龍 權寧萬 갖흐신 분은 歷史的人物리 안이라 할 슈 업다 위선 禹在龍 한분을 論할지라도 永川郡 鄭用基氏(鄭鏞基의의 잘못: 편자 주) 再次 唱義 時애結義를 하고 從軍하야 日本兵과 累觸하다가 敗戰됨애 檢擧를 當하야 終身留刑을 바덧다가 韓日合幷의 時애 出獄하야 深山애 隱居한 것을 氏가 梁碧度(碧濤의 잘못: 편자 주) 有名한 人物을 使用하야 勸誘 出山캐 하다가 氏가 親히 訪問하야 經論을 討論하고 肝膽이 相照함으로 右 會애 要人으로 從事하엿셔 만흔 勞力을 하엿지만 特히 奇絶할 話題은 慶北郵便馬車暗襲事件이다. 慶北郵便局애셔 近日 慶州各處 地稅를 收合하야 郵便馬車便으로 大邱로 輸送하는 것을氏가 崔浚을 使用하야 日字를 探知한 後 禹在龍 權寧萬을 右任애 派遺하야 權寧萬은 漆身爲癩格으로 病人을 假粧하고 馬車主人家애 宿泊하야 大邱 病情애治療行을 稱託하고 翊曉애 馬車를 搭乘캐 하고 禹在龍은 信號를 가지고 乘嶢하야 孝峴橋 川邊애 企待하다가 馬車가 川邊애 當到함애 木橋가 破壞하및슴으로 馬가 越水를 ●(ㅅ거)리는 샤이애 信號를 相照하고 禹在龍은 車後을 ●(ㅅ다)르다가 斗垈 光明샤이 堂家 前애셔 權寧萬을 相逢 保護하야 鹿洞으로 歸來한 則 金額은 一萬八千七百円(《每日申辯》보도는 八千七百円: 편자 주)임으로 氏의 命令애依하야 崔浚의계 任置保管하엿다. 吉林과 海外各地애 其時 內容과 實況은 各各 連絡을 取하든 責任者가 有하기 ●(ㅅ대)문애 我 等은 責任者 某某를 逢着키 前애는 아즉 詳細한 事實을 모름으로 大綱 先後秩序도 업시 生覺나난●(디)로 記抄하와 將次 압흐로 各處 同志를 合席問讀하야 다시 正本으로 作成하기로 한다. 如此히 着着 進行하야 事業은 漸次蔗境애 抵至하난 中 不幸히 忠淸道支部애셔 公州富豪家事件을 發生하야 支部派員이 逮捕을 當하야 惡毒한 訊問刑梏애口招連犯되야 要人 中 二百餘名이 檢擧됨으로 首領된 氏가 免할 슈 업계됨애氏는 泰然히 縲線애 就하야 曠古未有한 刑罰를 甘受하면셔도 同志들 中 實犯者 幾人 外애는 모다 出獄캐 하난●(디) 有罪者도 無罪 無罪者도 無罪로 白旅토록 하엿스니 其 壯烈한 志節은 果然 感歎치 안흘 슈 업사며 況此 慶尙道富豪銃殺事件이 一年間으로 端緖를 不得하야 彼警察漢의 頭腦를 셕히든 餘地애 呀至寃絶痛하계도 六個星霜을 鐵窓 쇽애셔 보내다가 桎手襄頭로 一世記를 맛치시니 同袍를 爲하야 半生을 櫛風沐雨中 샤시다가 同袍를 위하야 大鍛電針下애視死如歸하신 特殊無雙한 事蹟은 千古애 不朽할 ●(ㅅ분)만 안이라 우리 朝鮮人으로셔 朝鮮의 魂을 求하고 朝鮮의 넉을 吊샹할 同時애 氏를 버리고 누기를 먼 쳠하오릿가? 禹在龍과 갓치 氏의 歷史를 抄하고 잇난 舊日 同志들은 아모리 無期 二十年 十年이라는 刑을 바덧다 할 지라도 아즉 陽界애 生存하야 今日과갖흔 讐國의 滅亡을 보앗슨則 氏애 比하야셔는 가륵한 榮光이다 氏의 獄中口招애 三百六十萬円을 海外로 送達하엿다는 新聞과 氏의 家族애 傳한 遺書가잇사오니 이것시 朝鮮애 公開할 証案이오며 各處애 秘密히 追入吊餞하온 輓誄가 一世의 公誦할 眞寶이오나 新聞과 遺書는 다 抄할 슈 업고 輓辭 몃 首와氏의 先府令監의 祭文 한 首만 ●(ㅅ배)셔 此紙애 登錄한다. 輓 君生之世我同生 君死之年不死生 萬古堂堂君死死 一疆踽踽我生生 卽持大義追君死 爲報其讐有我生 泉下若逢安壯士 語傅槿域此殘生 右 金嘉鎭 爲問東都人 東都倘有人 堤上千年後 其孫又此人右 安重吉男兒生世事多難 舊義殉身極所難 難不爲難難極處 君於此世更無難 右 金佐鎭子死非眞死 吾生亦謂生 家傳光字史 於此眞生 右 金逸成 日成 嗚乎汝得其死所而死吾於汝之死不足爲深痛極哀然而顧此痛之深哀之極者惟在於汝之生之苦死之慘矣汝之生也九到瀋陽六踰鶴嶺八至牧丹三過安津再渡黃浦周遊四海而風櫛雨沐則其生也可謂苦矣而汝之死也百經火緞十閱電樵梏於手足而桎於頭項漲腹如阜垂舌斷尺以縲以絏而終焉則其死也可謂慘矣千古志節之士縱不無生之苦死之慘者而孰有若汝之生死乎吾以是爲深痛極哀也 右 氏의 春府令監祭文 (생부 朴時奎의 제문, 번역문은 앞의 제문 참조: 편자 주)

    16 관동창의록 존주록 상

      日記上猗歟我東國雖僻在海隅然自 箕聖設八條之後人文始闢迄于三韓猶未洽然也天啓 仙李聖王繼世眞儒竝時政以文武學以關閩人稱小華郁郁彬彬於斯爲盛噫彼島夷與我接壤常懷谿壑之慾向在龍蛇之變幾不兌犬羊之恥幸賴 皇明之顧東烈士之靡盬 宗社再靖三百有餘年余幸生熙皞之世仰沾雨露之澤亦化育中一物也昔我農隱公諱安富以麗季銓衡逮 我朝龍興屢 徵不起遯于山陰又 府君弦窩公諱致謙以至孝薦鄕撫育五孤勉余就傅私淑於 蘆沙奇先生諱正鎭諡文順之門人族叔稽樵公名致亮正言余數奇罰重晩繼 老峯先生諱鼎重諡文忠之後通德郞諱致禹之子歲乙未季夏謁萱堂在山陰特洞歸臥閒村與諸友讀書于東林書屋再曾孫注書丙星塾號時和黨滿朝神人共憤每聞國事之非徒切嫠婦之嘆忽一日有人自京來報 國家之變曰倭犯 宮闈弑我 國母天昏地坼不能爲懷耳可得聞口不可言自是以後四方動靜日入洶洶京中老少自漢江撤家上驪江者日以千數耕者停耒而嘆行者偶語而泣爻象慘酷頓無生況乃作儒通曰嗚呼夷狄之猾夏古今通患然未有若我東之甚且酷也壬辰 二陵之恥未雪臣民畜二百年切齒之恨乙未 國母之禍復起宰輔無一介人嘗膽之痛吁何言哉三千里江山五百年禮義一朝變爲倭土倭俗已矣勿論蓋父母之讎雖倭夷亦且知報今我則袖手傍觀有若越人之視秦瘠者然正所謂禽獸不若者而倭亦從以唾罵之矣不亦痛之甚哀之切者乎噫 列聖朝五百年休養之澤可謂至矣盡矣而朝野之間無一人義士有爲 國報讎者是可曰吾 王之赤子乎亦可曰禮義之邦乎吁亦戚矣天下之士其將執此而擯斥之誅討之亦無辭可對矣其將何以立於世乎禮曰父母之讎不反刃春秋曰亂臣賊子人人得以誅之吾輩雖下焉不信之地爲 國家而仗人人得誅之義建旗討賊報我國母之讎則夫孰敢曰不可乎子弄父兵古猶曰有罪而已矣況今日欲擧之兵亦非所以自衛也乃所以爲復 國母之讎也蓋爲復母讎而弄父兵亦是常理也大義也若曰子有母讎而待父命而後復者是豈子復母讎乎乃夫復婦讎者也此吾所以不度才力不揆時勢浩然結束期與同志誓心復讎乃已謹此揭示若能於此一款快得伸雪則自餘所謂奪人田畓劈破門閥毁焚經傳等邪說必將不攻而自破矣伏願僉君子深體雨露之恩先人之訓徐容再思如何若不則東門掛冠分所未敢而五湖泛舟眞實着題然與其逃命而偸生曷若擧義而盡悴熊魚竝登必有取舍之道矣只待僉君子好消息也云爾於九月十六日夜月色玲瓏寒風颯颯乃杖三尺劍潛步入驪州淸心樓揭還鷄鳴喔喔翌日聞之則觀者無不慷慨下淚本牧使下吏廣探隣邑後收入曰他邑無儒通之說而本邑先之則禍中於我後十餘日因投印歸家一日申商鉉來云樓揭儒通知之曰不知商鉉笑曰環顧左右非兄不敢行此事而且文辭近之余心笑知己而不答時金弘集金嘉鎭魚允中張博趙羲淵兪吉濬等號十部與倭煽禍以至月爲歲首創置新法一遵倭制革罷門閥奪人田畓稱以均排廢 通典禁聖經毁 文廟變官制分八域爲二十三道省吏僚罷鎭守服色尙黑於是乎禮義之邦一朝爲犬羊之域剃髮之禍將起焉十月始頒 國恤是年八月十九日曉倭猝犯宮闈侍御逃竄 聖后避之終爲遇害然掩藏不言民心以是愈益蒼黃多以壬午之事疑之凡有血氣者無不咬牙欲食倭奴之肉未幾十部逆臣與倭內應勒削 君父之髮卽 光緖二十一年乙未冬十一月十七日也時十部賊脅白曰外道之民盡剃倭以畿內之不削將害都民云則 聖上畏都民之罹禍而急剃之乃威脅都民斬人丱多者賞銀元八域震駭又使背淸而脅稱大皇帝用建陽之號此外推自主而內實絶援之計也時再曾孫進士丙台以其叔忠植有事在京欲陪還亦剃歸門老父兄孰不凄然以我東邦四千年禮義五百年文物豈忍一朝變華爲倭哉嗚呼人之所以異於禽獸者以其有五倫而忠孝爲之本不報 國讎何以見 先王變幻毛髮何以入 先廟巡檢巡捕輩橫行閭里逢人剃丱民心愈亂乃與湖西茂長居宋炯淳相議擧義向關東去時從侄都事泳采在京在鄕生母不幸炯淳欲馳奇而抵京則剃禍大熾未及告訃而亡歸驪 州因與之偕往十一月二十九日宿原州門[文]幕地十二月初一日抵到監營沿路人心去益蒼黃莫知攸措吁民心一般義士同志數日前砥平居李春永安承禹金伯善等倡義討倭之意起兵於本邑入原州觀察聞風走乃收軍器出屯聞慶島嶺梟首丹陽淸風之開化倅聲聞所及人心勇躍士氣百倍初二日夜夢所佩軍刀變化騰霧覺之心神爽然乃與李秉埰木川人宋炯淳安聖鎬橫城人等議之曰吾等皆以五百年 先王之民不爲 國出力於今日難免左衽之恥乃入客舍設 殿牌哭盡哀乃發檄招軍曰試觀今日形勢倭生則我死與其死於倭曷若死於 國耶噫彼倭奴者不憚 國母而行凶鋒則而況我百姓乎剃髮之禍急於目前聽之則身爲倭身而將未免淸國聲討之禍若不聽也則立地爲倭劍上血肉矣嗚呼痛矣此義兵之所以不得不起冀免目前之禍而且圖後日之安其各知悉父子相告兄弟相勉剋日濟會于此頃刻間百餘人左右觀者以千數時可興兵站倭聞兵起砥平偵探次突入原州府民逃散城中一空已四五日矣時府下居朴漢玉亦聚平日同隊逐鹿砲丁二十六人矣砥平義將安承禹在丹陽聞知委送砲摠帖漢玉不肯受中途捿皇矣適我入原州則浩然引兵歸之亦非偶然乃爲救剃急之郡不能久留初三日出屯新林爲壇欰血盟曰閔龍鎬李秉埰安聖鎬等同心同義誓復 國事有渝此盟神人共戮衆人推我爲將固辭乃許翼日乘夜發行轉入平昌郡昇平之餘民猝見旌旆擧皆荷擔上山余恐老弱之凍寒使徐熙元及都軍官追及曉喩民愈恐愈走乃偃旗息皷而過則民始覺爲義以牛酒相迎本倅嚴文煥已剃髮而剃其下吏亦數十人方行剃髮之急義旅突入乃與衙屬奔走逃脫府內一空忽有鬚髮盡白衣冠甚偉者三人出迎街頭余下馬泣謂曰余一介布衣之士豈敢擧義秉彝所在愧與倭奴共戴日月募集敵愾之士以報天地雨露之恩以全父母全生之髮非敢有一毫害民之心也三人揖迎請入政堂余辭曰古人臥薪嘗膽余豈可處華堂且以布衣處政堂豈非大案乎蝸屋容膝可也乃留陣府外發令各面山砲則人皆有踴躍來附之心且畏本倅之後患莫敢先赴矣三人款接余以父老呼之大義勉之莫不慷慨下淚入境先問鄕中位望俱重者則或薦鄭東秀鄭基澧李元廈李丙善故向三老而更問之三人者果是人也余笑謂曰公等胡爲乎諱之三人對曰未知明公之意故耳敵愾之心則豈異之於是誓同荊棘乃以元廈爲平昌留陣將招集山砲追後應援以東秀基澧丙善三人爲參謀士出給二千兩費用軍需勿侵一毫於民之意累飭入客舍序立以哭觀者無不凄然下淚江陵嶺西居士人金元燮木川居李鍾國來參軍謀聞橫城居洪先生在龜號遜志斯文之宗匠儒林之領袖年老在家乃使金元燮往迎備禮齎書曰國哀臣民痛入骨髓歲色如紗慕仰冞切伏不審此時道體候頤養神休每擬供灑掃之役而甘於下流一未晉候伏悚伏悚侍生林下布衣識見斗筲當此被髮左衽之日抱鴻略而拯生民之才賢於龍者不啻萬千豈敢擧義搶攘今糾合烏卒將讓與位望忠義之士執戈左右者也今日之擧寔 列聖朝培養多士之報則非平日斯文之宗匠士友之標準難可伸大義於天下激昻一國敵愾之氣也伏念 先生道扶正脈望重山斗蒼生觀先生之出處而卜安危 國家得先生之蓍龜而決吉凶焉則先生今日之義不可不幡然且先生之令季氏先生 之弟在鶴嘗以斥洋斥倭封章就死之日車軸三折玉鎖不開爲世直臣以今日之事諫於未然之前直聲震 朝至今謂鳳鳴朝陽識者莫不惜瑚璉不爲 宗廟之寶先生誠能忿發於今日則一國之士咸曰先生出也莫不欣 然赴義樂死願 先生以宗社生靈留念焉 先生辭以病老勉以忠義云爾初十日行軍到江陵芳林則義士雲集父老爭迎乃設賞試砲捐軍需三百金頒恤窮蔀又有金秉烈金昌浩自願出義四十金褒揚於衆而頒給軍卒乃檄告八域曰嗟我靑邱一域父老 國家滄桑未有若此時者也 國母被島夷之害天壤易處 聖上受薙髮之辱日月晦冥三千里禮義江山五百年小華文物果安在哉言顧言念痛入骨髓寧欲溘然而不知也蓋此讎未復則人理滅矣禽獸相食八域之內必無孑遺之類此恥未雪則人道絶矣强弱相殘四境之上都是魚肉之色此何言哉嗚呼痛矣彼旣不憚人之 國母而行此凶鋒則亦何惜蚊蟻之衆庶而不之殺乎又不畏人之 君上而任意操縱則亦何顧下僚之無名而不之兵乎此事勢所不免而況復有鑑於琉球國者乎倭於琉球亦是接壤誘以開和而初焉則削髮之旣削之矣便屠戮之而移置自己百姓而居之嗚呼戚矣酷之甚矣彼旣於彼焉如是也則何可望其厚於我而不之屠乎夫如是則吾輩雖積粟如山其可以爲吾食雖有子如玉其可以傳吾家乎旣不能食粟而生有子而傳則曷若求生於死圖安於危父詔其子兄勖其弟建旗招義討賊復讎一以報 列聖朝五百年休養之澤而扶立三千里小中華之綱紀一以全吾父母遺體之重而得免異日無窮之禍乎此吾所以不顧前後不憚强弱建義幟於關東而何幸天誘民衷應之者衆伏望八路有血氣抱大義之君子卽日相應各其地而起義期與斬賊復讎保髮免禍千萬幸甚時橫城居金甲洙謀擧義爲和黨鄭俊時所識罷方在獄中聞不勝忿惋謂中軍將金元燮曰橫城兵精士强而金甲洙且受辱事勢急矣率一枝兵往斬俊時釋來甲洙連令抄軍以壯軍勢又募原州雉岳寺僧二十一人作乞貸樣入邑探媒十二日踰沒夷峙時六面被水霜之災民食孔艱乃貿米二百石於平昌等地使金寅常孔兢烈金昌浩別定參謀士使掌本面曰列邑往來之兵皆由此路不可貽弊於嗷▣之民只以此爲供用時演常昌浩隨事應變臨發戒之曰今聞嶺東事機則觀察李暐參署朴承赫警務官高俊植主事及巡檢輩數百人樹黨列邑剃髮之政急於星火我當克日先討矣公等在此酬應往來之兵伺察民情早晩馳報四方動靜因乘夜踰嶺沿路之民皆以火燭之余撫慰曰月色如彼何用火爲以勞百姓乎卽一一罷送時所謂面任輩稱大陣支供每戶收米乃捉入嚴棍曰此何等時節而汝以幺麽面任擅行取斂構怨於民而速禍於義陣耶立地照數還給本戶別爲請貸於月精寺僧以支急用矣入江陵之日照數報給僧曰感謝而以氷藿相送余笑而辭曰旣貸而報何謝之有且此路一開效嚬生弊者多云云耳進陣于珍富驛宰牛致祭山川曰屹彼城隍東路喉咽用誠侃侃蔭庇淵淵非余構兵敢行禍煽島夷肆毒聖后賓天綱倫掃如黔首禍連人懷敵愾神怒腥羶杖義討賊孰不報先赳赳多士不期會千住札陣脚誠禱山川俾我邦域享萬斯年陰誅先人不待微虔旌旆所向和黨無前時或薦珍富面虎鳴洞朴東儀曰奇謀神算如今罕比公擧大義何不往求余乃備禮與十餘人夜渡寒川灘鳴㶁㶁霜凝馬蹄風來蕭蕭遙望高邱松疎竹脩停鞭顧瞻隱隱有龍岡之趣留從者在外躬自剝喙東儀欣然出迎曰將軍來耶待之久矣余敍禮曰久聞先生之名播於關東甲午匪徒亂東儀與姜禹瑞等擧義大破之共敦大義之意敢玆來謁生年纔二十七豈敢擧義戚係肺腑之臣圖報涓涘之萬一願先生黽勉一就以慰蒼生之望先生曰內實倥侗虛取人譽誤蒙將軍之辱臨悚愧悚愧然夫源深則流長根固則枝茂江陵關東之源也根也將軍先據其地以圖進取則國恥可雪禮俗可扶矣愚見如是千萬留念余乃斂袵更坐曰先生之敎果是金石何不銘肺所望者惟幡然一出也因留約而返陣翌日姜禹瑞韓仲甫等率三十五人來赴之卽往年討匪徒時有功績者至是勇義先到砥平義兵將安承禹率兵八十餘人來札芳林而召朴漢玉余謂漢玉曰今八域竝倡事無彼此之殊各有受制之義向日路梗未還安陣今可率原帶兵以歸漢玉泣曰安某素不相知創起之時只以砲摠帖遺我而已余之招集平日同隊逐鹿之車略干者果在此帖之前而卽將軍莅府之日也四方輻湊當是時不啻將擇幕佐下亦擇上屬軍於將軍則安某聞知又以後軍帖若不知而脅送非不固辭而今又頡頏將軍之所知也余若屈膝爲幕佐而復來是叛將之譏不免生面委帖脅人不往於義何關余曰然適足爲彼之口實而陋及於我也乃復于承禹曰執事多得英俊之士密謀左右僕初創之日色色生疎而有一漢玉爲耳目之資則恕諒焉十四日入城細作還報曰江陵亦設義所選民兵於嶺東十五面余曰勢如風雷同聲共倡不亦爲國家之幸乎然大軍入境漠然無聞猝有此擧不亦有詐乎細作曰此邑去年格殺東徒八十餘人今疑將軍之兵有死者之戚恐其肆毒平民民以是懼官畏禍及已吏民合心作孼且云西來之兵非義而賊也余笑曰此和黨之譎計也乃檄告江陵曰天不祚漢胡虜八關陳相滿朝許行用事三綱已淪九法亦斁嗚呼余爲是之痛而憤不顧身赤手入原州一呼義士雲興慨卒霧集始信秉彝之性雖極天而罔墜者也乃羽檄傳於八域義旗向於江陵蓋江陵人物府庫地理形勝左控濸海右扼關嶺北通元港南收萊浦誠不讓於齊之渤海蜀之隴右此而一失則左三道非復 國家之有此而一剃則吾萬民皆爲犬羊之類古語曰十室之邑必有忠信之人況江陵累千戶豈無幾箇義士者在耶惟願僉君子爲先招集父老激以忠義誘以禍福相率以正而頃刻不削也我往之後更不干於諸君子矣其各悉心奉行勿之有悔庶可以永保奠安而共伸大義於天下矣何幸何幸我言不再只此布告時參謀士李丙善年雖六旬剛毅慷愾杖策從軍熟練事體每事諮諏常曰將軍一麾關東影從殆天祚關東而出將軍也且將軍以德服人故雖吾老頹而不避風雨也東秀基澧亦盡心軍務隨事補漏將踰大關嶺使李丙善金炳哲黃學秀等略備果肴致誠中軍將元燮旋軍曰倭兵百餘人已據橫城兵小不能戀戰十五日修軍政乃以姜禹瑞爲前軍將李秉埰爲右軍將朴漢玉爲後軍將金元燮爲左軍將細作還報曰江陵府已屯數千人不可猝入余謂諸將曰自反而縮雖千萬人往矣今仗義討賊人孰不從乃促前進諸將皆有懼色余策馬前進宿邱山驛千山萬麓自北南馳峻極于天噴鯨碧波萬里澎騰九邑濱海地幅千里風土不服人心未諳似若局外之域脫或不利引兵孤入進退無路夜起步斗彷徨不寐十六日抵洪濟坪邑不過五里閭閻櫛比人物繁華可謂穢國之故都一道之大會也五里長沙十丈靑旗屹立中央大設軍門不知幾千人俯堞登山衣裳成帷百姓之觀者亦不知幾千人鴻門疑雲气气起沒密飭諸將曰變不可預測兵不可預忖各備其械各陣其軍隨方折旋如梅花樣隨變隨應乃相對爲壘使從事徐熙元致言于彼陣曰我老峰先生繼後孫而年淺知少豈敢擧義國運中否島夷害母法無不更體髮難保義不顧身敢效古人之聲討嘗聞貴府先賢遺化之地栗谷先生生江陵而多忠憤之士又名武勇砲多焉故共敦國事之意至此今貴邑先唱實國家之萬幸誠一道不剃之幸也彼使都事李承學校長韓匡胤監察李永燦來謝曰遠涉之餘軍務不爲薰惱否余揖而送之少焉細作還報曰彼三人者返謂諸軍曰入其陣陣伍不亂聽其言言辭婉有德觀其左右多士蹌蹌可謂義也勿恃力妄擧以取人笑於是一軍以觀機生事密約云爾余乃以禮請見彼反請曰客先入余笑語曰吾聞貴府格殺匪徒於昨年今疑其人之子弟參伍肆毒故百姓如彼煽動否且禮主迎客可乎客迎主可乎乃以單騎馳入彼陣彼使軍官急送中止曰當入城相禮見余旋還於是觀者附耳語曰彼誠爲國起事之人少有私曲其能若是堂堂乎乃拔陣退入我卽引兵隨後屯札城外李永燦曰明公之檄尾何加討滅觀察四字余曰豈有此事永燦曰二度檄文圖信相舛初更後諸軍各執火箭及器械蒼黃直前曰密書入幕皆以今夜觀察與民掩殺云吾等不如先發江陵背山帶海變出無妄一不救命往年之事足爲證鑑願將軍分付余伺察動靜群疑滿腹一若下手滿城生靈必多橫罹之禍顧謂諸將曰今初倡義旅得民上策鑑古嗜殺未有濟事者此擧不可率爾我先入城伺察彼情矣乃以三尺劍解與前軍將姜禹瑞曰諸將皆白袖初起君討賊往年顯名江東余入城不還必知遇害率諸軍下手乃緩步入城民砲相雜不知幾千隊月色照營冷風打戈直入都所則儒生滿座揖謂曰今聞公等外義內和將謀害我陰謀外泄我軍猜破方欲先手滿城生靈何罪我一縷之命不足惜況此說一傳八域義陣皆以江陵已倭擧兵問罪惜乎江陵從此荊棘矣諸儒聞之愕然曰此外人間我兩陣豈以義攻義曰然則人不可以肺腑相照者陣事也則我軍不可以言說解惑質我一將以免兩疑之禍如何李永燦突然請質乃偕還本陣連袂戲言曰吾等才不及古人而欲匡擧國之非者無乃以卵投石乎然聖人曰仁者無敵君其信諸否出城諸軍皆帶月荷戈而立以質將之事喩之軍心乃安余謂秉埰曰吾所以馳兵遠來者得一江陵號令列邑也今江陵先倡以義爲名名不可伐不去禍將及焉何如則爲好耶悶鬱度夜翼日都事李承學來候薄言人事旋卽起身低言囑余曰剃髮令方掛東門拂衣而去乃連吹角結陣市上滿城瞠密召軍官取剃髮令掛槊上遍告市民曰不願剃髮者從我以往此邑若扶義討賊剃令胡爲乎掛門退陣洪濟坪於是府民四散諸將忿惋欲屠之余謂諸將曰民國之本不可濫害且百姓如有轡之犢進退須人罪在執轡者第觀動靜未幾月色婆娑寒風冷冽乃馳檄府中曰假義而行和者罪浮於倭欺名而募民者惡加於逆讀孔孟之書而欲左袵者於古未聞居禮義之邦而行夷狄者於今始見爾欲爲先王之賊我欲爲先王之臣邪正不竝立義利不雙行治病者先治其源客邪不犯除禍者先絶其翼賦勢乃孤余非不欲加兵恐玉石但焚先此布喩旋卽回示於是彼陣將權益顯沈鴻鐸忿然曰此事若不善處江陵士夫之鄕難免百世之譏乃召百姓曰此邑和政之魁百姓之所共知則何不急先發明以免此禍於是軍民爭先破碎警務及巡檢廳結縛警務官高俊植請罪陣門曰謀剃一道罪在此漢觀察使參署官無意開和愛政溢民願明公諒處焉余曰募民何意曰鄙等聽和黨之言初則募民砲害公也今觀動靜實堂堂義士 國家之幸臣民之福我等雖愚無知豈不心悅誠服乎於是四軍入府踰嶺時以張斗相權攝中軍至是有乘時報怨一事乃汰巡十八日大設軍門於射臺與邑人都事李承學幼學金魯源監察李永燦幼學沈鴻鐸丁圭燮營吏崔燉翼金養善林翼相五衙將鄭憲仲全仁洙將吏全致雲閒良姜東五等授軍務帖有差歃血同盟同國事入客舍位哭 左右觀者以萬計乃梟首高俊植明其行和之罪惟觀察參署命軍官往慰之蓋以得民望故也時主事孟一鎬等皆已逃又召崔範植李澐夏崔仁燮爲參謀乃捐五十金出給府任輩曰誅俊植天道也葬俊植人道也於民不無前官之分乎人多是之倭律有傳重之法時進士及冤民爲傳重在囚者八人盡釋之授以行資歸之二十日揭榜曰口稱前日巡檢巡捕者斬時巡檢輩懼不自安乃以百金出 給使之一醉壓驚仍以軍官帖百張空名出付曰自願者不問根底但軍門施禮而已云則彼輩冀其僥倖換名冒入三日之間逃者畢返號別選軍官余一夜潛步抵選廳則彼或私語曰有變乎哉無變乎哉互相懷疑翌日傳令曰軍官夥數徒費軍財情不縻公者去之又多呈頉有父母者以米肉饋之有妻子者以財帛送之不肯去之又返曰將軍置我腹中於是群疑始定民心洽然乃招鄭益[憲]仲林翼相等曰汝邑之前此疑我招集數千民丁逗遛多日所費應不少矣汝其抱券來櫛計共四千餘金不斂窮蔀而損軍需以償之民愈益義之焚倭服二百八十件于通衢置烽燧將望海將於南北十二津捕捉出沒倭奴及馳報輪船之往來與倭通商者一切嚴禁倭物貯於各港者輸入軍用以萬計不侵一毫窮蔀民大悅設武士廳以金魯源爲都領將崔漢寔爲副摠將又以姜東五爲左杜領將蓋使令之役浩繁不欲煩民易於斥候也設禮賓所使參謀士李承學主之以接多士之往來軍用不足使梢饒者出義助力而崔都事熙球李丞旨海洙富於一鄕熙球出義一萬三千金而海洙出義一萬九千金圖信不用朱而用墨常謂諸將曰擁旄摠兵豈儒者所爲當千萬古所無之變行千萬古不得已之事凡事戰戰兢兢如不勝衣常恐越分濫職豈敢一毫放過以害吾義耶況今和黨之所以嫉吾輩不啻殺父之讐若一分有糢糊之事則他日禍網庸有其極今觀各道通檄之圖信則用朱似印吾常凜凜也環顧各陣用光 緖與墨信惟一江陵而已可不懼哉於是諸將服之乃發令管下列邑曰嗚呼春秋之義亂臣賊子人人得而誅之痛彼倭奴伺我 國運之中否革先 王之制害 宗社之母剃 君父之髮禍及黔首新亭豪傑相對楚囚之泣長安父老復思漢官之儀殺身成仁豈無李若水之抱主敵愾所激第觀顔杲卿之募兵微管仲今而後左衽爲淖齒復孰肯右袒越在龍蛇之變彼以百萬之衆猶不能乞甲以回者非徒天師之東援忠臣烈士仗義討倭 宗社再靖迄今三百餘年況彼之强大不如曩時而坐受犬羊之辱可乎猗欺我僉君子毋忝乃祖之忠烈則 先王陟降之靈必默佑於冥冥之中矣謂其賊勢之不敵而逃逸山林者與貪其金銀而付和表裏者非五百年化囿之臣民乃不忠不孝之賊子則當移兵先斬之敵愾勇兵烈于猛火不日同倡俾伸大義於天下生爲先王之臣死爲 先王之鬼無愧於 朝宗在天之靈今余以未滿數百之兵不畏在府之千軍到薄三日不期會同者以千數可見仁義之甲忠信之冑所向無敵而以一天下莫大義攻一天地難容之賊則何患不成功哉和魁旣以伏誅苛政旣以復舊則保形復恥正在今日雖有鎡器不如待時古人之格言也以我諸君子好義衛上之心各懷按劍嘗膽之忠則何患乎島夷哉若失此時坐受其剃彼必奴僕我臣民禽獸我妻子裂破我衣冠悔之何及詳陳禍福特此忠告凡管下列邑之巡檢和政一傡革罷擇有才量重望者各設義所參事諸員修單以來散在獵砲募集成伍以待知委二十三日嶺西參謀陣金昌浩馳報曰砥平陣將安承禹聞將軍之無疑入江陵自畏退陣平昌平昌留陣將李元廈收兵六隊再昨日到芳林放砲獵雉專事睚眦按兵不進民心致擾余曰此輩志不在報讐而以兵爲戲乎翌日以左軍將金元燮爲鎭西先鋒以金演常爲別營將代領芳林兵而斬元廈以送未及元廈知機率兵逃歸承禹承禹較漢玉之不歸欣然納之軍師東儀與金元燮從兄炳哲等來赴時京畿及湖嶺諸郡各設義所惟安東未宛[完]洛東兵站倭乘時猝至焚千餘家義士多被害聲聞駭慘不勝忿惋未幾金雲洛宋鳴玉等來訴曰安東素多巨族色論尤甚今仗義之時不論才智相恥爲下以此累日持議未及聚砲以致向日之敗余曰惡是何言也今八域竝起位望之賢於我者不知幾人且以若貴邑之右門名族受制於鄙陣萬萬無理也二員曰不然鄙邑之名族未有過於明公且湖中關東聲冠各陣左湖陣而赴關東者勢可以相及親多於舊不可避也因屢日呼請不獲已乃以李丞旨晩胤權正言玉淵柳正言▣等二十餘人授軍務帖感其同奮之義悚其坐屈之辱乃一一修單曰生材本樗櫟識見最下何敢與論國事獨以懶弱爲衆甘心强推爲將義士蜂起慨卒蟻赴試着關東和黨伏誅聲及關北遠邇同奮將胥有德以讓重任不意兩員雪裏賁枉人言過實探珠沮澤愧悚無已不知攸謝向日失守各陣均痛火及蔀民害被靑衿天使大義將欲不振謀事在人桑楡未晩請援則可言制則悚以余無狀智不自謀況屈尊威逼於誠懇勉焉承應修帖以封裁單以謝聊以塞白非曰必施記銜座右以寓識荊仍以宋鳴玉金雲洛爲召募士與兵一哨又收本散之卒歸振列邑之勢而鎭洛東一路一日月精寺僧來訢[訴]本寺莫重史庫奉安之地令襄陽明珠寺僧連年番守五百年定規而今爲和政所毁廢云云乃使依舊規奉行時分遣諸將於列邑以五營都摠督權益顯爲北各邑召募士收兵於襄陽杆城高城通川歙谷安邊六邑而暗探元港以權明洙爲嶺外北各邑召募士收兵於麟蹄楊口狼川淮陽平康金化金城七邑以李景煥金允熙監察嶺西人爲旌善三陟蔚珍平海興海五邑召募士以探嶠南之勢戒之曰今四方煽動各有相角不下之心勿入已倡之郡沮人之義而奪人之兵勿强募於民間而受人之賂召募之道非淸則斂怨公等不謂我之無似而惟恪其任時芳林居車丙轅奉參謀陣召募帖往旌善則本倅金▣捐官廩三千金助給官砲三十餘人而起送食祿而黨和者不亦愧此乎每諸將出使之時朗讀軍令曰所過秋毫不犯勿憑公營私使着押於狀尾而懸錄日時以明臧否以崔參奉文煥爲咸鏡道召募將戒之曰 先王重地不可一刻爲倭兀[凡]事欽哉欽哉乃致檄曰嗚呼此何等時也誠臣子背城一戰之秋也十賊納倭害我 國母而天壤易處剃髮 至尊而尙夷狄之俗是可忍也孰不可忍也此嶺湖關東之士忿不顧身擧義討賊者也今旣屢月猶未聞關北動靜抑或尙未聞賊邊事義陣聲耶竊念貴道 先王重地 陵寢崇嚴豐沛大額餘澤偏深義當先人發後人止而寂無聞焉豈其忠義之讓人敵愾之無人歟不是適爾而然也則必是待時而然也玆遣幕下鎭北將崔參奉文煥布告大義非敢曰小視諸君子之義也正欲桴皷相應脣齒相依畢竟布大義於天下措 國家於泰盤豈有南北之分彼此之別嘗膽則一也扶義則一也噫父母之讐痛矣勿論非先王之法服猶不敢加諸身況黑齒之醜服傷吾身一髮之輕猶得罪於聖人況盡剃而幻形乎伏惟僉君子諒處焉二十四日發送以金進士亨倫爲慶尙道沿海召募士收列邑之兵以防往來之倭時南召募允熙離發午站於三陟界聞該洞首者追後更徵費於殘民卽招該洞首按問則果如所廉聞者嚴杖枷囚後乃發令一道曰凡諸將軍卒之出使四方計給資贐而憑公誅索之弊種種入廉自後如有一毫不償一分再徵之弊訢[訴]于留陣而陣將之不公決者隨訴以二卵古棄干城之將況假義而討賂於民乎一一揭榜通衢自此奸不施民時砥平首事義將李春英自以位望之不洽迎柳省齋從姪麟錫爲將自任中軍人欽慕高義參謀士李丙善五衛將從容謂余曰今各陣檄尾之正朔不同何不此時脫惑乃書大旗曰歲次光緖二十一年乙未十二月日關東復讐保形倡義儒生閔二十五字靑質赤繡時再曾孫注書丙星專送背子及冬衣輪示軍中而服之非綿屬也以李永燦爲掌財淸故也日使諸將練習軍卒於射臺一夜與東儀閒坐陰風自坤申疾入東儀曰數日後必火失東門果然橫城士人辛尙默來赴二十九日祭于大關嶺曰屹屹關嶺鎭我一方昔在龍蛇靈德尤彰倭醜犯境干戈八松諺曰壬亂倭至此嶺望府東十里餘 松林則甲兵眩目大怯反退一鄕賴活且云植松者應八萬金鎖陣故號八松亭而至今蔚然賊幟倒捲一境淸平此恩此德如地如天民到于今歲奠篚玄今日緩急險於前壬弑 后剃髮八域陸沈草木失色日月無光神人共憤天地蒼黃龍鎬林下一布衣雖不才無位家有喬木門多戚臣痛宗社之卵累擧義旅於海濱先以明幣潔牲敬告厥由伏惟關嶺之草毛石骨何莫非五百年雨露中長養神明所照何燭不明神明所佑何顧不成俯鑑微衷荐哀蒼生俾八松子復爲千鎗助我軍威勇我軍心掃淸腥穢早奏凱音丙申正月丙申朔旦率諸將軍卒入客舍 望哭歲除客館戀及家國不勝嗚咽初五日再從孫都事東植戚孫全錫永來自驪州仍以全錫永爲中軍以李永燦爲左軍將以沈鴻鐸爲右軍將去冬觀察使聞我踰嶺使管下列邑各稱義所使我無着足之處密令之因此列邑俱倡雖未滿百之卒自主生弊時三陟以鎭管之郡人物亞於江陵恃强自主惹起事端乃命前軍將姜禹瑞率兵往問之倡義將金憲卿自知理屈呼爲中軍尋復爲留陣將襄陽亦效嚬又使金養善率兵往之聞三陟之奇先自納款以進士李佑烈爲留陣將以進士李明烈爲守城將以進士崔龍珏爲杆城留陣將於是南自平海蔚珍北至高城通川歙谷各請留陣守城之任而其參義諸員則必擇位望者三四十人地方官亦一一慰安而使不相侵嶺外諸郡則或徵兵或隨請設所然每月朔望修單義員及軍額姓名馳報遠邇一體賞罰及軍財俱不得擅便時春川傍邑爲景應所領道外之邑則使受任者從便措置堤陣將柳麟錫發旌善甯越民兵數百人及湖中勇砲數千人攻破忠州和窟而斬觀察使金▣▣平昌倅嚴文煥春陣將李景應亦斬觀察使曺寅承余顧謂林翼相金養善曰此擧何如則爲好濫殺不可也不殺亦不可也濫殺則所殺者之所屬非嗾倭則黨和以致蕭墻之變不殺則專主和意末梢之禍無所不至然愚意不如輕刑而收人和也故俊植之斬我出於不得已而彼各陣濫殺之禍其將累於我矣聽者服之初十日春川義將李景應專報曰昨年十二月二十八日 聖上聞列邑之起義始悟見欺乃微服移御俄國公事館牌招警務廳三品官面勅曰十部中七人都是逆賊捕斬之三品官領巡檢巡捕幾百人直入闕內 傳入侍令其時鄭秉夏金弘集 直入其餘賊皆避于倭國公館云警務廳告示曰勅令을奉承하여 大逆不道罪人金弘集과鄭秉夏를梟首警衆하여 鍾路通衢에懸하고 玆에 告示하노니 大小民人은 如舊安堵하고 如或不道를捕捉하난 者有하거든 刻卽來納警務廳勅令軍部將卒曰時運不幸亂臣賊子年年作禍而今有告變者 朕臨御于俄國公事館各國公使齊會兵丁入來保護 朕躬而爾等皆 朕之赤子也向日作變此是賊魁之罪爾等竝大赦不問安心擧行逆魁趙羲淵禹範善李斗璜李珍鎬李範菜權瑩鎭等不問長短卽刻斬首來獻而爾等待于俄館事仍下密飭于義陣曰王若曰嗚乎痛矣予罪大惡盈皇天不祐國勢凌夷元元塗炭由是而强隣伺釁逆臣弄柄況予薙髮毁冕四千年禮義之邦至於予一朝爲犬羊之域哀我億兆共罹其禍予以何顔見 列聖在天之靈今旣至此惟予罪人一縷之命萬萬不足惜惟念 宗社生靈苟或保全於萬一勖爾忠義之士降此哀慟之文以領議政金炳始爲都體察使鎭撫中外以前進士桂國樑爲監軍指揮使勤王七路湖西爲忠義軍關東爲勇義軍嶺南爲壯義軍海西爲效義軍湖南爲奮義軍關西爲剛義軍關北爲愍義軍倡立義旗之士竝拜招募士密符當齎送各軍印信竝自刻用事觀察使郡守以下汝擇自從獵戶勇士良家材子竝召募信賞必罰歉荒尤甚邑減今年田租之半削髮爲先禁止安民樂生椽吏減額竝復舊例守令之不從命者爲先擇出以待處分凡雜犯死罪竝侑之新令亂出者竝勿施從從此以往閫外之事皆可自制坼輔八路爲殉義軍予當死社稷中外義士其體之惟一其心以宗社生靈爲念布玆知委乙未臘月二十八日夜亥時也拜受伏讀感淚交頤敵愾之士未敢正視乃謂諸將曰 聖意懇惻有誰體之能終始此事耶一日與秉採入見觀察秉採拔劍刮席語多不恭余不懌而歸謂秉採曰李暐之再莅此邑以不失民望余前後禮待者非畏其位乃慕其績胡爲乎失禮至此今各陣之不問其人之如何而謂曰和邊吏而殺之吾所不取時倭奴稱商出沒列邑浦港暗探陣中虛實前後捉得一百十一人盡誅之於是與諸將議出兵之計余曰倭奴之病國非一朝一夕熟知山川道路險易强弱之勢不可輕發先據鳥嶺竹嶺兩掖口與驪州忠州之勢相爲齒脣傍收尙州安東列邑之兵以防洛東倭路然後使辯士激動湖西義士則彼勢不能通陸但由海路而已利則順流而下勦都城之倭害則退居固守以觀其變若何軍師東儀曰不然先破元港招集西北兵與上國合勢事可濟矣余曰元港背山阻海脫或不利無全軍之策相持累日東儀力主入北强勉從之時前軍將姜禹瑞丁母喪俄而權宜從軍十五日祭興武王廟廟在府東五里維歲次光緖二十二年丙申正月丙申朔十五日庚戌關東倡義臣閔龍鎬使再從孫禁府都事臣東植敢昭告于故新羅興武王廟下伏惟德合三韓功蓋百王於千斯年民不能忘地靈不古島夷失職禍逼國母辱及 主上臣以畎畝之蹤敢擧義旅誓復 國讎先討港倭伏念 王靈赫赫在上陟降千古潔牲齎誠惶恐告由二十一日辰時拔寨入北以李秉埰爲留陣將使收餘兵以守江陵以再從孫東植爲江陵守城將專管財穀以調軍用戒之曰難得者民心與秉埰同心協力勿誤 國家大事乃入見觀察曰若破元港引兵入北今四方爭殺長吏吾恐人心不如我心願公束裝早歸李暐深然之先使五營都摠督北邑召募士權益顯控據安邊界探港倭虛實時各營軍卒服色尙黃旌旗蔽空選各邑有力者數十人號左右翼將而自翼將至牙將皆黃袖紅緣共二千三百八十餘人至住門津下令曰父子兄弟俱在軍中者父歸兄歸放送八十一人時各邑留陣將聞大軍之入北或恐召募不足之責多聚民間逐獵鎗手輩多者百餘哨小者五六十哨待之乃傳令各陣曰當此農務方殷之時致此紛撓切非爲民之本意砲兵外鎗民一切罷歸行軍之路秋毫不犯民莫不悅喜雖窮峽之士聞旌旆之向北皆以禮服候待路左或作詩送賀或斫木頌義二十二日抵襄陽謁七世祖諱光勳善政閣追慕之地不勝感愴二十五日到杆城翌日到高城留陣將權亨源捕港倭八人來獻遠涉之餘諸軍多困疲留二日本倅洪鍾憲來見款接之時江陵留陣將急報曰倭知大軍之入北有自橫城踰大關嶺之說余請東儀曰江陵吾之根底也此或見失各陣瓦解奈何東儀笑曰此浪說也吾預知今日之虛驚臨發時已作密書付與秉埰二十八日過通川石崖則金剛山千峯萬壑面面呈態歎曰關東八景金剛萬二千峰在眼前未知何日了畢公債而作閑人也時積苦兵間之餘忽落馬魂迷仆地少頃還甦諸將卒揮淚在傍晦日行軍到通川邑權益顯已省民瘼察軍情頌聲載路不勝感欣時淮陽李正宰申懋燮等率兵一百三十人來赴卽爲摠督將二月初四日到安邊仙坪市抵港口不過八十里時本倅任▣彭山後孫畏倭暗聚軍兵爲後援云亦可一助將使諸軍三路入攻使金養善出屯花川扼口使全錫永全致雲出屯飛雲嶺大軍直衝安邑計劃已定諸軍鱗次將發猝然雨下如注至翌日酉時憂悶待晴初六日晡時砲聲震天倭兵突入時雨雪交下弓不弛矢砲不放丸勢將危急先鋒將韓仲甫宋炯淳等先據禿峰力戰余率後軍朴漢玉金元燮李永燦等出陣疎林中力戰時元燮之父進士仁圭亦從軍及其砲丸雨下元燮披丸往陪其父大責曰汝與元帥誓同 國事今有急而歸我乎於是元燮又披丸來我摠督將申懋燮等出陣後市力戰噫我國兵器雨則無用彼恃自起砲肆然衝突至辰時末雲霧四散尺地不辨諸軍各自逃散倭尙黑故我軍衣黃矣至是不辨黃黑四散之際或反入賊陣爲生擒者多運耶天耶乃拔劍欲自刎諸將慰之曰勝敗兵家常事將軍將營一國之事而欲行偏將之事乎乃引軍退于通川士卒太半逃散初七日踰栗幕嶺淮陽界也雪厚數尺士馬困疲傷者呻吟之聲目不忍見屯于束沙洞龡[歙]谷留陣將報曰大陣退後八仙坪市則倭兵縱火燓數十戶惟軍務檢將黃▣尤被其害我軍死亡者數十人而倭兵所傷者一百八十餘人而酋長二漢申懋燮獨砲殺之引軍踰楸池嶺軍師東儀亦被亡聞不勝血淚漣漣初十日諸將各聚散兵來赴令各邑義所以備不虞乃引兵到楊口邑則參謀士李丙善金演常等來迎不勝欣幸十五日春川義兵將李景應使劉明夏等來請曰鄙陣亦與倭初六日戰于嘉平邑爲雨雪所敗春川方至見失之境願借一枝軍余固辭曰江東子弟歸家之心如矢復歸江東再整軍馬相爲齒脣之勢時春陣巡撫將張漢斗密言春陣各將其軍有朝暮內亂之機願赴幕下心許之十六日引軍踰五色嶺進士韓宅龍作餠數百片餉軍以此諸軍無飢踰嶺到襄陽留陣將李佑烈來迎軍容復振時高城留陣將權亨源之子來訢[訴]曰元倭聞將軍之踰嶺西十三日巡檢及倭兵五六名入府恐喝本倅則本倅捉囚老爺謀散義所諸員而赴戰砲兵姑未完聚乃召別營將金演常曰彼聞大陣之失利然也汝率五百人往釋亨源之囚速聚散兵以防北來之患十八日發送二十一日江陵守城將馳報曰留陣將秉埰自大陣入北後擅改軍政濫取民財酷刑同班變生朝暮願將軍剋日班師以制其變乃連船浮海直日抵連谷則民情快快不樂曰自大陣向北後二月初三日辰時秉埰率兵入觀察府逐李暐於閭閻奪七千金而一州之人憤其所爲別設義所於東門內互相詆毁秉埰密與鄭憲仲千金使砲輩乘夜放砲於儒會處幸無一人所傷又捉致帽山金進士虛砲幾死以此府民離散一空時守城將東植及儒生百餘人出迎船頭把袖相泣曰初六日之敗生等預知之余曰近千里之事何以知之曰吾鄕有號靑鶴老者其夜見天文衆星抱一星自北流東而明言將軍之復東故知之乃迎爲參謀士乃引兵入府秉埰閉門不納曰敗軍之將不可入城累次曉喩終不聽理軍官報曰有崔姓者在秉埰側劃此計於是諸將卒皆欲放丸屠之余笑謂曰倭奴未勦自相抗衡者非所以起事之本義也屠城略地是古人圖覇者之所爲非扶義復讎者之所爲也得失江陵於我何關恤民招兵亦何必江陵爾等勿較乃退軍二里餘則府民及留陣軍卒滿路泣遮曰將軍欲何之將軍之返旆若赤子之思母俄而秉埰自知孤立而又有叛將之罪乃跣走出請罪陣門左右諸將目光如炬爭欲刃之余抱秉埰泣曰斯人何其不思之甚耶吾非不欲斬汝而恐八域議之曰某據江陵勢大後殺其起兵時秉埰爭權而然也此變豈可以家喩戶說毋使余得不賢之名於來世也於是諸將雖不敢下手忿惋不已乃入府則見一少年偃然坐座儀表甚嘉動作甚傲余心知崔姓者而曲盡主客之禮少頃出幕點考留陣軍兵時忽聞呀聲自內掀地余驚惶入幕則無知軍卒各執物摳打崔姓者幾至死境余詰問其由軍卒稟曰今日使兩軍生釁專由此漢而俄者將軍入幕時彼幺麽少年偃坐不動於義當殺余亦已怪其不恭之習着枷牢囚夜深後召李秉埰以慰其怪後問曰彼崔某何許人秉埰曰橫城洪先生薦送將軍而今日始赴陣書簡在此書曰損下之門徒崔中奉志氣慷慨惆戃有大志可與圖事余覽書愕然曰先生薦人用之可也而事至如此若不幸而殺之是受斯文之累名而防後來之賢士也乃入牢所親釋其枷同袂上堂敍禮謝曰公抱大器而又有先生之命何不先見余而致此今日之辱耶中奉曰僕在先生之門聞明公之風秉埰之名無不延頸願交生踰嶺日明公已引兵入北乃留館聞秉埰之事則大違所望適明公還莅欲激于兩間以觀處事之周狹事至于此難容軍法然今觀將軍之處事果然名不虛得余因同宵臥內左右欲俟出害之達宵戶外余覺知恐害之移處東門五里餘密室調理傷處二十五日咸鏡道召募士崔文煥報曰今正月十九日申時奉將令入咸興營則萬民敵愾之心無不欲忿惋一死 先王豐沛之澤浹於骨髓雖走卒尺童皆有思漢不忍剃髮之心惟觀察使陸裕信主事皮洪兩輩自元港馱來倭服倭刀各二百件城底之民忽見此樣目光如炬而又促剃髮令於南北小將適到此時二十日夜捉囚觀察主事輩翌曉與萬民會萬歲橋頭三漢梟首徇衆後懸于橋樑黑服軍刀傡卽燒火 先王陵寢守護兀[凡]節復舊例巡檢輩歸化兀[凡]列邑之已行和政者一切革罷量邑大小傡設義所砲丁通邑大都 先王重地萬千生靈不可一日無官長故使境內曾經朝官有位望者參酌庶務伏望 啓達朝廷無至久曠官員又近遣該道儒生通連于淸人王明知以爲相接之勢余不勝喜切于中召諸將曰使 先王故都免左衽之恥壯哉文煥之功烈哉文煥之義隻身入大都不畏獍梟之勢而保萬千生靈之髮白刃之可蹈眞文煥之謂也柳進士在根亦北人來參軍務堤陣中軍李春永與倭戰于鳥嶺中丸而死諸軍哭聲蓋地聞返柩砥平上洞歎曰彼以義起以義死死亦何恨於私則畢而於公則未畢惜哉惜哉天不欲使宗社復復耶畿甸列邑義陣入據南漢山城和黨以名利誘砥平義將之守南門者彼乘夜開門納賊各陣星散城民多被害竟獲得其父子而斬之一快一憤橫城義將權仁夏與倭方拒原橫界令嶺西參謀陣各別候斥時聞倭奴以哀痛 綸音密下義陣事攀詰 大內則又下宣諭解義之飭 派送宣諭使各道一員而東路李道宰云嶺西參謀金昌浩報曰驪州義將沈相熙貪於名利納軍於和而惟先鋒李謙性不肯解兵獨引兵屠利川兵站倭聞甚快然時東路宣諭使李道宰畏怯不能宣諭各陣每遇義卒輒爬山越嶺而諭以名利南宮欞南宮檍傡使解兵於洪川二十七日別營將金演常馳報曰高城倅洪鍾憲定軍官方押送而其胤洪淳七衙客五六人傡跋涉下去而有元港倭二百餘人乘船浮海暗襲高杆兩邑義所之意到泊通川石崖之說卽使北各邑留陣軍卒及原帶兵抵敵二十九日金演常捷報曰待賊船之來及崖而放神機砲左右夾攻斬九十七首函呈乃大捐八千金分償諸將列邑多士作凱歌多賀之安東召募士金雲洛宋鳴玉等報所差軍任依節制施行而糾合列邑之兵軍容大振余喜曰嶠南義士其庶幾哉三月初一日時洪鍾憲兼官杆城兩邑儒生聯名封單呼主倅之曖昧而云方住襄陽竝齎到平日留陣設始時本倅往來諸員之書札其中多忠憤慷慨之說余曰亨源之胤雖欲雪渠父之冤又往訴春陣云豈有如許悖化之人乎吾聞洪倅眞學行之君子也時淳七及衙客先到曰當初此事畏彼姑息之道而非實有是心余款待之因以參謀帖授淳七而令襄陽留陣諸員陪送高城倅於本衙與淳七戀戀相別後書于高城倅曰入北之時暫候迄今茹悵伏惟春煦政體候淸穆慕仰之忱靡日不切生承風趨義敢荷莫大之事不能報 國家萬一之讐而元港之敗反沮多士進前之氣罪得公私復歸江陵欲收桑楡之功而姑無尺寸之效雖欲讓與賢者而入山弄月顧此不屑之狀惟有捨生取義四字於腔子裏趑趄而坐在那裏仰惟閤下出宰百里國恩隆深不可食息忘父母之恥者豈與林下之士語哉以忠言大義懇請在朝之執事無使京兵害義而傡力勦倭則發縱指示之功萬倍於走狗此生之所以望於閤下而閤下所以報涓涘之萬一者誠在今日也願閤下默識芻蕘之言向日之事寔出生之不明聽讒之罪而其在亨源之胤人子惶怯之情似或無怪也罪在於生而不在於彼恭候誅誚使召募士崔仁燮徵兵於三陟留陣將金憲卿摳打大陣諸員而復懷角立之心余曰彼擁兵自威但復國讐則快矣反貽書曰今八域同倡之日豈有相下之義竊恐小邑之受制管轄之州非義理之有大小而然也有形勢强弱之殊而然也生之所以擁軍蘂關猶愧於心況貴邑多士之氣乎前者姜禹瑞金允熙閔東植安聖鎬之往來正與貴邑多士繩愆糾謬壯軍益勢欲效賈生之係頸終軍之長纓以雪萬一父母之讐貴見棘門之兒戲欲行子貢之一出夫撥亂救溺非在軍之多小在人之賢否弱則逃之强則遇之如生之謂也當此枕戈嘗膽之日肯爲牛後而不展驥足哉望須勿以受制介意而拯蒼生也暫屈人下何損於高明而摳打之說生不足深聽自玆以往獨保一陣相爲齒脣之勢千萬千萬如是勸勉之憲卿謝曰不聽左右之讒而容人如此不勝愧汗終不懷貳也蔚珍倅沈奎澤馳書曰座下之中祖 農隱公寔奠雁於鄙門忠顯杜門座下以布衣爲國倡擧軍令分明三申而五令之靈芝醴泉必有其源也以若戚下不能執戈從之不勝恧汗又聞數捐官廩暢勸義士有喬木之風遂信息相不絶及三邑都摠安聖鎬下去時修復曰來喩不勝感激而汩於軍務未趁仰謝迄庸伏悵伏承審肇夏政體候萬安不勝仰賀區區戚生一介鯫生敢擧大義反爲識者之笑然人皆曰不贍我才而坐視 君父之辱國母之讐則烏在人人得誅之義乎生之崛起畎畝之意以之而然也且以今日之事言之三千里邦域凡有血氣者莫不欲一試霜刃而不可推彼推此也況閤下世食邦家之祿其所敵愾之心如何哉今京兵四出 宣諭截嚴晝宵惶凜不知所出拒父之命不孝也忘母之讐不孝也語云子不可以不爭於父臣不可以不爭於君則伏望閤下詳陳禍福於君父 之前而明言復讐之義於在朝之執事傡力勦彼則天下之人皆仰閤下之忠而一國之士皆曰閤下之力也閤下何吝一言而不欲報涓涘之恩乎屢捐官廩暢勸義士在閣下之心則可賀而在閤下之位則非賀也閤下今日之職在激君上之心而救一國蕭墻之禍也願閤下以周召之功自任焉初八日墨湖熢燧將馳報曰今日申時風帆船三隻泊于津頭倭則不知的數風浪濤天不得進退余曰是天助我也夜深後與先鋒將姜禹瑞守城將閔東植右軍將全致雲左軍將沈鴻澤後軍將申懋燮等各率本帶兵埋伏浦口昧爽襲擊左右適惡風翻海彼不得上岸而不知所出輒斷船尾砲丸雨下竟覆三隻於海而略濟軍仗初十日大設宴傡祭仙坪市死亡軍卒及軍師東儀文以哭之曰嗚乎痛矣棟樑其摧白首隱淪石室長吟沒夷之東關嶺之西薄言小試東徒鼠竄人言膾炙德音孔彰島夷犯闕神人共憤眇余小子敢擧義旗躬修禮幣造謁門屛憂國成疾幡然臨師籌策如神奸僞莫逃懇懇敎我誾誾撫軍未來者易吉凶若覩謂報 國讐謂復漢制嗚乎痛矣天道難諶仙坪雪飛五原星隕軍哀民泣山悲水咽泰山其頹于誰仰止雲霧漠漠誰提指南靑油三更我心如灰軍師來矣旗幟堂堂軍師去矣士卒圉圉嗚呼軍師何忍棄余以身殉國 軍師事畢以憂遣我我則何知痛哭秋原風慘雲愁千里狼窟子母返櫬時東儀之子與妻不畏元倭身往千里負屍至通川列邑留陣將誄而護送豈 非烈且孝哉橅柩哭奠血淚漣漣一軍掛孝載送靈車爲 國忠肝幽冥一般庶幾陰騭俾終此事不冥者存歆此微悃時點考死亡者皆以百緡救恤妻子而至是皆參余念其同憤之義哭之痛哭之構爲戚及觀者無不下淚時李秉埰畏諸將之構釁嘗請上京以觀形便余知其心佯許之此日不參宴亦不告而往連谷知其不還念其兩年披棘之義厚資贐而戒遄返秉埰深知我心之終不背渠而悔恨不已云乃分賞諸軍銀圓有次元港敗歸時至淮陽束沙洞使中軍全錫永參謀李鍾國定原州驪州砥平三邑召募士出送矣至是聞之則爲堤陣鎭東將李弼熙拘執盡奪所募兵而方在原州獄使人詰問則數日前已放歸本第云乃詳探裏許不過弼熙奪人之軍而誇功渠將之計也嘗使張漢淑全周瑞等置留陣所於旌善矣後堤陣亦使參奉李復永設留陣余曰一邑兩設事甚未穩及元港之敗旌善兵亦逃歸使李景煥定召募出送至是聞原州之事曰旌善之兵亦失乎不一日景煥無一卒見失而至余迎謂曰今番召募謂未能如意也果何以而有此耶景煥曰復永果欲携貳之故乃責以大義說以禍福彼乃感服而還爲周旋也余笑曰眞不辱其任也時洪先生遜志改余名爲哲鎬而又改權仁夏爲仁洙布告義檄于英德法美俄各國公館大義雪國家之讐護駕還 宮扈衛 宮墻數十條而以兩人之名代檄矣告後各國刊布此檄而改匪徒二字爲江陵倡義所談判時亦歸罪於倭時京兵四出攻義各陣勝負之說逐日以聞時嵪南晉州義將盧應奎兵精士强之聲播於遠近又嵪南郭鍾錫布義檄來到嶺西陣將馳報曰堤陣中軍安承禹捉去平昌參謀士李丙善鄭東秀鄭基澧欲使三人奪志歸已則三人曰爲國則一也爲義則一也各有受制之將吾等甯爲閔將之鬼不願效李元廈承禹心愧而釋之暗報漢玉之不歸余曰彼奪元廈之兵而不足耶吾聞伯善之見殺由於承禹果然時 聖上悶惻和黨之害義下 綸音曰嗚乎痛矣朕德薄政昧邪進賢退十數年來 國家危亂禍起股肱或變生骨肉半千年 宗社由是以數危億萬士民[民生靈]由是以漸劉果無[是]面騂背汗而皆出於朕之偏聽生奸自斷致誤屢成禍胎階一則朕過二則朕過今幸有一介忠良奮義除兇將有多難與邦危復奠安之想望此乃人心久鬱則必伸天道有否則必泰矣 朕當克庸惟輕之典而昨年六月巨榾今年八月逆魁斷不容貸也觀今兇徒次第伏法可雪神人之憤而其餘自內外官人及軍民吏胥輿坮勿論輕重之罪一倂大赦革面改心少勿疑懼各仍時仕安意治生也剃髮事尙忍言哉是何急務乎妖蜮之輩妄率勒督擁兵挾除自上達下一行至此決非 朕之本意中外想應先自洞悉也且夫八域淳古臣民發憤仗義處處蜂起胥動浮言自相殺害以至京軍鬪杖之境此亦非 朕之本意也奸兇之獍肚梟腸觸處肆毒千罪萬惡有難毛擧指屈也所謂京軍下送者其本則朕之赤子也許多外方義兵亦莫非朕之赤子也而譬如斫十指而何指不痛乎曠日相戰血漂屍積道路極塞商價不通哀哀蒼生必盡殘後乃已言念及此淚逬心寒矣京軍下送者令到卽時旋還各邑義兵散歸其家各安其業而剃髮一款不須更責衣笠制度從便爲之凡於民弊痼瘼朝家自可妥貼處分矣朕言不再各宜知悉內閣總理大臣署理內部大臣朴定陽奉飭云與諸將稽首伏讀感淚沾襟惟此十行可以明吾 君之心於天地鬼神矣時三陟留陣將金憲卿使後軍將朱明昇來謝前日摳打諸員之罪款待之時春川觀察使李載崐率京兵三百名到府後京兵上送而凡和政一切不行而逐日乘軺往來閭里甚安慰民心惟參署官擅行和政載崐累次曉飭而終持貳以此載崐欲解印歸余聞知欲使人於春營諸將畏黨和者面面相薦惟左軍將李錫範國範之兄也國範嘗黨倭爲主事八月變退居襄陽春陣欲倂殺兄弟余馳書春陣曰今三千里邦域黨倭者不知幾千萬人若欲盡誅之變生疊出不如誅魁釋脅惟範之兄弟諒恕焉以此範免禍而參義至是凄然下淚曰小將迄今保命者將軍之力也欲一死報而未得願勿辱今日之事余曰君已慣彼邊人雖遇和黨用黃蓋苦肉計則可不然不幾誤國家大事乎範乃指天誓日曰範之六親皆在嶺東而雖欲懷貳豈可得乎範雖無知早學孔孟之書也左右諸將白曰彼亦人也顧念兄弟之保命豈可背將軍乎余謂錫範曰吾聞載崐之賢久矣故送人探機君之背上可謂馱送三道蒼生勿負余意君之妻子當調給春窘家亦勿憂惟稱其任乃裁書于春營曰關東倡義生閔龍鎬齋沐再拜仰陳于棠陰之下古人曰人生於三父生之君食之又於父則曰致喪三年又於君則曰方喪三年然則君臣之義卽父子之親亘萬古而不易者也噫皇天弗弔我 大行王后奄遭凶變爲其臣爲其子者孰不欲按劍一報哉有如此之變而無如此之愾則乃獸乃禽便不是人此是天理中做出而非人道之强爲也況 列聖朝百世不易之典累千年衣冠文物一朝變夏胥倭哉今八域義士之忿不顧身就死惟恐不及而蜂起者誓不與倭奴共戴日月而報五百年化囿之恩也非懷莾卓操懿之心而起痛彼黨和者擁蔽 四聰構謂匪徒反嗾倭而邀其前送兵而攻其後惟恐不滅之盡誅之毒使倭反控視而腹笑之以之而民心愈忿曰此賊不討則 宗社顚覆人類化蜮以之而正貢不輸曰與其與賊而助倭不若食我而力鬪嗚呼自古未有不亂之國豈有今日之事自古未有不小人之亡國豈有今日之黨和者禍之孔極至於 玉駕蒙塵俄館 因山未卜兩年此是三千里邦域凡有血氣者無不咬牙欲雪 君父之恥萬國之笑而彼雖欲掩蔽耳目豈可得乎今黨和而宣諭曰國讎已復此必藉臘月之擧而言也彼十賊中逃在倭館者皆弑母之魁也其所誅者餘黨也倭反窩主逋藪而復欲希便圖禍廷臣如有堂堂之人及此時藉公法而說是非明弑母護逆之罪於天下則天下之人亦義之於是乎驅敵愾之兵而渡東則所謂制梃以橽秦楚之甲在朝之執事計不出此而反害仗義之士其猶不削髮者反削髮於哀痛詔下之後惟恐不媚於倭而惟恐不助於倭古今天下寧有是理又列邑義陣言必稱匪徒所謂匪徒二字出於甲午東徒者也今參義員者皆平日誦法孔子而曰匪徒則禹湯文武周公之道孔孟程朱之學將何所歸乎不可使聞於萬世也且京鄕軍兵互相鬪杖之變出於剃不剃之間則爲其上者相爲信誼之相通如羊叔子之事不出一月必談笑相迎如其不爾一國之勢三分五裂末梢之禍不待人亡而自亡矣初聞閤下率京兵三百名莅府余與諸將賀曰某閤下忠義熟著朝野必有爲而然也非戒前觀察隻身見害而施禍於義陣亦非自衛之計也將欲趨閤下之指揮望西翹待旋聞京兵則上送而只安慰激愾之士抑閤下見義陣之微弱不足成功而然歟抑初欲自衛率兵下來歟抑欲盡滅義陣畏公論而中止歟抑畏倭之勢反悔而然歟以若閤下世受邦祿之地如是顧瞻則況草土之氓豈欲樂上而赴死乎以若閤下之高明不辨義利忠逆之分少懷害義之心而來是尤不可使聞於史氏之秉筆此是外人之說而生則恒謂不然也閤下必有大主張而欲見機就事以文天祥食人食死人事六字必爲今日大頭腦矣伏乞明白存亡之機於 紸纊之下詳陳忠逆之機於在朝之執事使京鄕之兵倂力討倭速破衆人之惑則祖宗陟降之靈亦必曰予有斷斷一介臣願閤下下回焉二十九日躬餞錫範於陣外曰吾聞宣諭使李道宰畏義士不能宣諭入陣常徘徊山邑云今番竝爲我往候後詳言同舟之義俾使一驢一童無畏陪來且明白我陣之不妄殺時洛東兵站倭五十人及大丘兵丁八十人自豐基踰入三陟黃芷嶺使中軍率輕兵三百人埋伏於白鳳嶺下待其緣崖而上左右夾擊大破之得軍仗一百二十柄銀圓略干時軍用不足罷武士廳皆不肯去曰學武所以御侮也豈可以料之有無赴義乎乃減料十之三又召砲領將曰吾起兵以來夜不寢晝不食衣不過五升而用不過一緡爾等之目擊然而軍用不足吾等之此事豈探利而起乎減料十五之五則軍心安乎領將承命而出俄而還報曰雖減十無餘皆不以此掛意惟恨不倭奴之不滅也余感其義許給十牛於軍卒而減十五之四一日東植謂余曰胡爲而軍心樂赴諸將從命民心順服若是余笑曰雖廝徒之卒勿謂賤也而以義喩之以情安之雖左右之將先思其妻子之飢寒而後使之若民心則不一毫侵害於殘蔀而如其富也則從情而助義不以威力出財補軍使各盡其歡而已然必先奉我之薄忖人之情小心翼翼則不期而然君入陣後身不着一縷軍布所食之食猶與侍童常分云何其淸也然食則不可也一人之食幾費軍米也勿爾也東植曰吾之祖孫若不如是淸且儉何以服人有人自京來曰今二月初六日倭奴欲破碎松坡 大淸高皇帝勝捷碑則會大風自西北起揚沙走石畏之而已曰淸尙有運也余謂諸將曰毁我燕朝門稱獨立門間人世守逑之職又欲碎勝戰碑爀爀皇靈豈無譴怒乎  再呈顧道台嗚呼一自甲午年島夷之犯我上國後志溢氣驕若一片東土視如拾芥三千里社稷五百年文物欲一朝化蜮後乃已生以不才愚忠寧如其亡也不若擧旗一討倡義原營糾合三道對壘凡十七次斬獲數千級赤衿之見死者亦數千人吁時移事變以燕伐燕大事去矣於是謝送司起之士孑孑隻身喫苦風土之殊者願濺包胥之淚志陋人劣反作都門之丐乞三尺微命七尺短身無處可依可訴幸賴燭●泣璞之誠皆大人之力也伏望數年後無事於東則已有事於東則來呼於閣下矣勿謂薄施之遠涉今當告退不勝●[●衍字]悵仰  時顧台獨餞我轅門外  與隱峰安瑢序余觀人之取號腔子之體七分影外志在乎富貴者取薔桃之類志在乎隱淪者取蓮菊之類志在乎矯偏者取弦韋之說志在乎工夫者取自修之戒然則吾友隱峰之意得其七分哉夫山者不見運動而功利之及物者多焉故仁者而後能樂吾友非已仁者而欲進仁者也遽以樂山稱焉則非徒知己之解嘲於自己進修之上害乎自滿之義而無謙受之德故歸宿之功實在乎樂山而姑影假乎此也古人云隱几而工夫大況隱峯而不爲大乎見峰之毅然不動而取寧靜致遠之意見峰之起伏變化而取隨事▣▣之功且四時之往來山間之景亦隨時而不同則▣乎彼而推於物於是乎知天下之事莫不有進退消長之機然而後不欲隱而自隱不欲樂而自樂烟霞泉石明月淸風不期乎自主而主之富貴不能淫三公不能奪吾友腔子七分之心吾得三分之影於隱峰之號也  晩晦序學爲人之方也天下之人非不知學則好也或安於逸而不學或甘於下而自暴或學焉而不同邀名者取摘句而膾人之口干祿者急進取而口讀爲主於是乎聖賢爲己之學枝分派裂皮呑櫝買爲世間一種爲人之學而千載之下寥寥無聞焉噫浿北箕化先明之都而學不加闢人不加出者亦以此也幸遯菴首出破荒雲菴繼而明之誠菴從而唱之數三君子生於千載之後而行千載之學抗萬斛之橫濤而泝回於安流者二三君子之力也於是乎浿北之學者以二三君子仗濟川之楫而靡然孰之所謂一變而至魯也吾子亦來傡此時發憤於舜何予何之訓而以晩誨揭焉吾子非不學於前而所工者摘句也非不學於後而所構者義理也非不學於前而所干者口讀也非不學於後而所究者體用也較前後所行之志則不啻天壤然今日之學非別求一層也但把着前日爲向人之工歸於爲己之域則爭箇一毫之間譬如遇風之舟逢激湍而幾乎顚覆纔一柁而運之則何畏乎瞿塘何遠乎秦楚者哉若營屋者求椽幹之小而未得棟樑之大者便得一大木則可以爲瓊宮可以爲瑤臺吾子前日之所學舟則大也椽則多也只以今日之所學爲之柁爲之樑又以數三君子爲工師爲三老則何患乎不及數三君子然則晩誨之稱不是偉且壯哉  智齋序智者知也虛靈之發而心之機也知所止知所行辨好惡決是非莫非智之由也然賦心之天智無差等而智有差等何君子心圓而智通見善而知所樂見惡而知所懲然而君子之智安而樂少人滯物而知偏見善而不知從見惡而不知退其所智者反爲智者之不智然而小人之智偏而危噫天之於人豈有差等大小之別固人受之不同而自致差等大小之不同也反三之道在於好學天下一種好學之人不爲不多而或以事物之累而中止或以飢寒之切而中止世乏良材以是而然也知之深知之痛自外之賊一切防閉正如顔子之不改其樂然後吾心虛靈之氣明且正矣今吾恐子之學中道而改作吾子知不深學不好恐力不逮也則以顔子之不改其樂四字爲標準而於一種塵科不滔也則庶不負今日智齋之勉也哉  雲潭序龜山之陽龍頭之上有一居士性磊落不俗雲潭其號也夫龍非雲不能變化雲非龍亦不能施雨方龍潛沮澤之時便與蛟黿不樣不無鰌鱓之舞戲及其備五采變化之日大澤澎騰衆雲會合忽麗千丈而人亦被澤彼黿蛟鰌鱓者終作池中物而已正猶林下活淡樂道之士方其洽布本之時便是池澤蛟龍一般及其道成德立之日際會風雲而翺翔天衢則庸人走卒莫不思彼澤可望而不可企也然龍之施雲變化非一旦一夕之養士之所以際會風雲非一旦一夕之功士之屈蟄蔀屋亦龍之在沮澤也則吾子勉之哉吾子之居非偶然也則而吾與之號亦不偶然也則無忝所號以取人笑吾顧諟哉  忍齊序余嘗曰大夫而不忍則失其位士而不忍則失其身故君子之百行惟忍爲先▣儒之說忍言忍行忍忿忍慾忍心忍性莫非進前之梯也夫可已之事不忍則大可以傾邦國禍萬民夫可忍之說不忍則小可以忝所生辱一身然則言行君子之樞機也君子見忿懥而忍焉遇所慾而忍焉有不言而忍焉防外累而忍焉來患難而忍焉遇飢寒而忍焉無處不以忍爲主則自有無處分以樂爲做吾謂四字爲程箴之立脚而忍字亦吾子之立脚則做得如此做必有稅駕於前賢之日矣古人云當事而百事可做吾子可謂發軔●[於]古人之往轍而得古人之所未號者辭▣而無備字一而警百則烏可不妄拙說勉也  洲隱序一日余謂吾友曰子之號以滄浪孺子之意耶以烟波釣叟之趣耶否彼濯纓濯足從吾之所取吸風弄月惟心之所樂與塵臼之上下者較之綽矣然以學幼行壯將大有爲者言之則豈肯取二字而自放於慠世之料也吾之居卽滄海也與朱夫子之號偶爾故讀夫子之書於千載之後想夫子之容於千載之上效則之志景仰之私非不欲直取似涉先賢之僭托而恐傍人之嘲故以隱一字加之此是衣錦尙絅之意也余起敬曰世或有人以地名地以人名抑滄洲待吾子而名歟吾子待滄洲而名歟良不偶爾也則吾子居於斯隱於斯踐履篤行於夫子之道人必曰滄洲後復有洲隱也勉乎哉若不聽吾子之自解而妄以測管之見則幾不免吾子也唾矣遂呵呵一笑而敍次也  敬齊序中庸曰不誠無物誠之功卽敬也聖賢之所以澈上澈下學者之所以進下達上莫非敬字上出來以至一伸一窮會百神育萬物莫非敬也以至一語一默敦九族澤萬民亦由敬也是故天地之道誠而已人之道誠而已敬相終始於上下者也爲敬之方亦在心之收放操存而非釋氏所謂求敬於寂滅者也然敬之之功至矣難矣故曰敬以直內曰敬而自警前聖後賢同條共貫之道非敬無由致德之基也今吾子語默而安詳性無操暴之見以自暴棄者者[者衍字]已做得八九分工夫甘受和白受采古人之格言而程子曰天下難得難得[質美]者敎之誠吾子近之也及時收功則何患不到聖賢之域也今余不顧人微言淺强以敬勉吾子號以之然也深期十年後泰山下孫明復而餘也  與鹿門同諸友去月十八日月下不忍相別而把手揮淚之情孰忘孰不忘耶愚意海山執事必忘之謙軒丈必不忘全參奉丈必忘之而盧斯文必不忘雲溪丈必忘之順則兄必不忘禹秋浦兄必不忘徐子西兄必忘之金宅西兄必不忘全壽根兄必忘之白參奉兄必不忘洪齊兄七必忘之金昌連兄必不忘金在鶴兄必忘之心石兄必不忘白時降兄必忘之丙健兄必不忘允實兄必忘之丙極兄必不忘吉仲甫必忘之廷登兄常側目視我疾如雍齒必忘之已久矣詩云他人有心余忖度之吾評諸執事之忘不忘得題耶不得題則反不如開喙矣且不忘中必有相忘之友相忘中必有不忘之友申申評安也古人云不患人之不厚於己而患己之不厚於人但銘諸執事諸吾兄之晉容●子於七分心上雖復見於百萬稠中輒一見把袖可也今以忘不忘問於書字上而嗤且愚矣古人云至痛還無淚多情還無語今欲問鹿門同門生之友候而反沓沓筆如推沙所言者反不免俗故違格探候如或有知弟之深者反勝看氣體候平安等俗說也明日登鄧船入中州若有南來之偶若有同門友中上京後明言某月某日某往中州吾所目擊傳入吾家而以解吾慈倚閭之望千萬百拜懇祝餘不備上候  拜退後月已改矣春已仲矣景慕之私無日不向往已已自顧一身漂泊生生物態觴處感懷未知何日披雲覩天也  幼學請罪臣閔龍鎬誠惶誠恐頓首百拜上言于統天隆運肇極敦倫正聖光義明功大德堯俊舜徽禹謨湯敬應命立紀至化神烈大皇帝陛下伏以臣一介布衣生長昇平所習者俎豆而弓馬之事未之嘗學然想到浣花江鐵衣氣像無端血沸胸海激起萬丈屬濤也頃在乙未之歲 運國不幸凶賊竊柄 聖后遭凶弑之變 君父被毁形之辱臣痛哭仆地幾絶復蘇竊自以爲與其苟且圖存曷若一死之爲愈與其自經而莫之知曷若殺一賊而死其鋒而況臣君親之讐據禮經則寢苫枕干無時而終事也據春秋則亂臣賊子人人得誅也一身所處不得苟免一死故則義不可以區區鼠竄於巖穴也環東土數十里几[凡]爲 陛下之臣子者莫不皆然而況臣喬木世族厚受國恩其所圖報者豈肯讓於他人哉臣之所執有義理之所當爲事勢之所得爲者夫泳孝不軌之謀作於乙未之閏夏而弘集秉夏吉濬羲淵瀅鎭博範善斗璜範來等與日本賊三浦梧樓之徒腸肚相連鬼蜮閃忽凶弑之變廢后之擧出於萬萬不虞之外而陛下俯循公議礭斷大義復 中壼之位制臣民之服則凶徒之罪無所逃於白日之下矣渠亦自知計窮勒定毁形之議觀士民之從違鉗制一時之公議然後凶謀可伸而纂奪可行故挾籍日賊恐嚇 君父其所危辱靡所不至一席之外 陸[陛]下之威福不伸當是時也苟有天理民彝出於本然者豈肯低首下心俯循凶賊之矯命忘 君父之危不圖一半分拯救之道也寸鐵莫非義理之所使也一杖莫非忠憤之所激也羽檄四飛義旅雲集莫非思得凶賊而嚙骨臠肉欲見天日於坎陷之中此義理之所當爲者也三浦梧樓罔本柳之助馬玉原務本菊雨仲長安達謙長旣經廣島裁判罪案如彼其昭著而日本之誅戮未行泳孝吉濬羲淵瀅鎭博範善斗璜範來等越海逃命爲日人所留護而我 國之交拿不行臣爲是忿惋期欲提挈同志裹足赴京上告 天陛旁告友邦外賊內逆之逋逃日本者憑照數尺之書拿致 象魏之下懸首藁街之上以快神人之憤也此事勢之所得爲者也臣之斷斷一得之見參前依衡自不能捨故出萬死之計召募義士起壘江陵者歲幾周矣旣而宣諭屢降兵丁四出討臣以匪徒之名嗚呼冤矣此若一出於陛下之乾斷臣雖冥頑曷敢不解甲還鄕以安恒業也臣固知 陛下左右之人所醞釀而譸張也旣非 陛下之本心則臣無解去之理亦無就死之義而以待某年某月陳情伏死於 陛下斧鉞之下矣然後笑難期呼咷奈何遂抱無窮之冤忍冒寒暑竝日而食圖存於三千里之北者爲是故也顧眄之頃日月荏苒四山雪滿大野風鳴胡笳送愁倚北斗望京華不惟戀 君思親之情萬諳前日讐敵一未就戮而 因封已行除服將屆臣之於此自愧夙昔之志仰慙俯怍卽欲南向拜 關刎頸送死願作巡遠之厲鬼蜮殲凶盡醜以慰 母后不眛之靈然臣之於陛下分則君臣恩實父子恩義所在一陳素志甘受王府之誅也吁亦戚矣臣之負犯於公私而不容誅者有二起兵兩歲其於討賊驅獸寸功未效但貽宵肝[旰]之憂而未雪 宗社之恥其罪一也臣之所與同志者數十人也崔中奉朴東儀李乾弼申懋燮辛尙默等纏身兵場白骨未收前都事臣閔東植前正言臣權玉淵前監察臣李永燦前都事臣李承學前司果臣金燾鉉前五衛將臣李丙善前參奉臣李鳳九進士臣李明奎進士臣李虎成進士臣崔龍班進士臣朴載會幼學臣權仁夏金元燮權益顯金顯鄕權亨源金安洙張漢淑李秉埰朴漢玉金昌浩姜禹瑞金錫永沈鴻澤安聖鎬金魯源金演常全致雲李根周等蕩敗家産飄泊東西死生未知而臣以首倡獨保頭領以至今日其罪二也臣有此二罪義不可偸活於覆燾之間始焉以死而起義終焉以死而處義實所甘心故乃强顔入城恭俟 天誅於斧鑕之下與其戰亡者之毅魂烈魄同遊於九原之下矣伏願 陛下付之司寇以誅無狀之罪俾安私分之幸焉臣無任瞻 天望 聖激切呼痛之地謹眛死以聞批旨省疏具悉而嘉爾改悔許乃自新          十二月十五日官報同月初九日封事  諭勅諭使從事等王若曰倡義柳麟錫閔龍鎬等入北經歲想多勞苦嘉其素志朕甚悶焉特除參奉徐相懋爲勅諭使參奉金連植爲副勅諭使往諭朕志召還故國勿憚艱險汝其往哉 丁酉四月二十八日  諭倡義士柳麟錫閔龍鎬等王若曰咨臣柳麟錫閔龍鎬等綱常之義君臣爲大勸懲之法順逆有分此 列聖先王所以弛張之道也所在兢惕可不重歟往者皇天降戾于我有邦强隣乘釁逆臣竊命國變罔極羞辱莫雪罔非朕夙夜切齒之●也況爾修道之臣素有忠憤者乎湖關一旅●以敵愾死亡諸人極爲哀憐也戕命吏取民財斷以爲義理之所感然而人多爲尤流言日至先弛誥命後動師旅蓋由於不獲已也殷湯有言曰萬邦有罪在矛[予]一人矛[予]一人有罪無以爾萬邦此朕今日之謂也特赦前愆嘉及效誠玆遣臣徐相懋金連植除拜爾爵以諭朕志卽日促還以肅朝命父母之邦不可棄也衮職補闕深有望焉故玆詔示想宜知悉  電報天津我國公事館關東義將閔龍鎬在北京云特爲宣諭遵送  淸朝皇勅朝鮮倡義將閔龍鎬自該省照護渡鴨  袁都督賞賜湘平銀之時所贈韻●手擎天自有辰龍光豈得等閒新一●赤血奇男子萬國紅爐嗟我民誰把大東仁義字更延仙李十千春短琴訖處三盃酒爲祝橫流穩渡津 誰把大東仁義字更延仙李十千[誰把大東仁義字更延仙李十千衍字]  奉次袁都督所贈詩劍龍夜吼氣如虹此擧原營萬死中十里椎鋒麤膽聳八隅馳檄義聲雄男兒須讀春秋史醜虜猶知烈士風區隴斷非君意爲祝丹枕有克終        戊戌仲春 鄙族致胄謹上  幸贈閔斯文文賢龍蛇歲遠値今辰千里逢君百感新義在麟徑追古 聖生同蝶域愛斯民長夜漫天應有日●冬窮陸詎無春漢人迎送知名姓裹足何時渡鴨津  付一絶 戊戌仲春山陽李馝洙謹書●冠法服丈夫身同是箕封域裏人●獵關東歐鳥獸熊魚兼得許君眞龍巳餘怯又今辰大義當當白日新奮身不顧扶綱地寧死豈爲左衽民華夷遠國皆知某風雨寒天復見春士友趨欣還旆路山陰二月剡川津族人致胄爲說關東子在辰油然不覺此心新大明遺製衣冠族我祖宗祊敎化民手可擎天安少夏氣能回日到陽春知君立節重來日應洗龍光渡鴨津族末至爀謹稿  穢城之分袂可發一笑原營城裏夜相逢一劍遣君夢見龍平昌郡樓烟火夕芳林驛路雪風中一時元港腥塵起二月江鄕惹鬧同始識生還如夢寐聖恩海大祝心紅今日始知昔日過須看時局是如何期君欲保●程策不合長呼燕趙歌… (원본훼손) …風塵都是夢奈何一世目凶狂如今脫殼塵埃外將學神仙幻術方弟在西方兄在東不知何日更相逢此行老衲塵緣重擬將新歲信息通  丁酉臘月誼弟李秉埰  忠檄書嗚呼惟我東方檀君千年之舊邦箕聖八條之遺化恭惟我 朝登極悉與中華竝擬五百年之宗社列聖繼繼三千里之河山風俗熙▣夫何時運之中否噫彼異類之內侵改正朔而革官名忍看今日之域棄禮義而變衣制無復舊時之儀慘乎八月之事古今大變痛矣百世之讐神人共憤甚至斷髮而髡頂曷極沫血而切齒國謂有人乎漢賈生之痛哭夏以變夷者鄒孟子曰未聞莫非臣莫非民誰無忠憤肝膽受之父受之母豈敢毁傷身髮彼猾虜亂臣… (원본훼손) …罪則惟同夫志士仁人一其義而何異於是乎八表… (원본훼손) …四方奮激嶠南之通文士夫不日同心湖中之先檄州郡望風應響伏惟不佞以秉彝之沖心玆建倡義之首事會同人錄名悉聽踐土之盟興師旅皷勇須奔湯火之戰非敢小子之稱亂出不得已而用兵子房之報漢切憤五世之讐申將之存楚爲友七日之哭毛先生之兩言右招人於堂下周太尉之一節左袒者於軍中非爲名於伐齊是直走而入魏何必叶擾江東其當戮力河北終知謀於先伐不如約者可攻伏願僉 君子義之所在事可竟成仁者無敵戰則必勝      丙申正月日在江陵方義聲崢嶸閔龍鎬三字仰之如天上人問於嶺中士友始知二十年前舊識宇萬亦與有榮焉意●垂問以余爲同聲而可借色辭者耶顧此荒廢鑠無餘而異日不世之勳又安知不由於座下惟益懋崇深晦養以竢之書末示以遠行故仰復謄未知鄕駕在那間耶千萬在不言謹謝此      ●陽●月九日奇生宇萬拜手

    17 관동창의록 존주록 하

    尊周錄下三月初洪先生遜志命門人宋鍾大金芝谷及金▣▣齎大殿還御之意布告各國文字及儒通定條約十餘件來各國文字及儒通條約先生所製然皆以余之名布告草本見失於驅馳中而光本只在先生巾笥中猝未收錄露海檄草本亦見失而元本在先生乃令列邑留陣曰嗚呼八路臣民之失慈母而呱呱猶痛入骨髓況 玉駕播遷蒙塵俄館奄及兩載乎仗義閱月非不欲糾合各陣直衝賊壘辦一死生恨彼倭奴咫尺 楓階先占社鼠城狐之利未敢造次晝宵憂戚何幸洪先生遜志以士林宗匠 國家重望期欲護 駕還宮以余及權仁洙之名義喩各國書示列陣走儒遍告大定條約此誠義士惟恐不及之秋也其意以爲今天下各國之所畏而重焉者卽民權黨也故民權所在兵不加焉載在萬國公法則我們今日之擧便是民權也奉天下之公法而行天下之大義夫孰敢詰之期以來月二十日文武相戒整衣束帶嚴陣列隊以備不虞於城門之外使各邑儒生通達慷慨者就公館而說是非籍公法而論利害則倭雖叵測亦莫之敢嬰而各國從以談辦矣夫如是則 宗社再安生民有福可庶幾矣不亦幸乎因此而更圖則 國母之讎 君父之辱可以暴露天下而有可復可雪之日矣各國之人雖或有黨於倭而生釁者亦畏萬古之大義恐天下之公法更不敢如許矣雪我臣民之憤果不在於此一擧乎是先生之高見而非一毫贅言者則其各惕念赴期勿之有誤以南各陣儒生及軍卒八千餘人量邑大小分定而令各校會又使本邑校長議選一州生進筮仕及儒生五百餘人三從孫都事義植與砥平徐淳學等來赴去冬義植參干堤陣與金伯善攻兵站倭累戰有功見伯善之被殺故也京居金亨鎭者留邸月餘授參謀帖鍾大言于余曰伏閤此是國家大擧不可不預言于各國公事館在京周旋與先生門人力圖矣明公調發儒生及軍卒萬餘人趁期來到春間各道義檄多抵公事館而西洋各國以不識漢文及我人言語之致居間通使侍從官金鴻陸語不以實蔽各國之耳目則各國不知我國何許兵亂及先生累次發明各國始知義兵則各國法民不欲而自事者曰民權黨吾輩今日之擧卽外國民權黨也勿疑趁期乃使宋鍾大齎五百金赴京露海巡將出仁川港時 先生又使在京數三人徑赴軍艦以關東閔哲鎬權仁洙關西申芝秀洪大鼎四人之名檄告而詳言金鴻陸言不以實之罪巡將大悟入城詰十部出兵攻義之意時先生使東床金▣亦齎送露海檄及事實未幾新聞誌曰關東倡義欲護駕還宮義則義也未知勢能爲此乎云以金芝谷爲嶺西召募士橫城義將權仁夏來住城外暗懷奪權之志時本陣參謀士金亨鎭往來彼陣同謀傾軋之策仁夏許以事成後授中軍亨鎭尤極用奸一日設酒肴伏軍士强請本陣林翼相李永燦等酒至數巡口稱用奸誤將結縛威脅翼相落落不服杖囚又誘致鄭憲仲囚之是皆絶吾爪牙之計也楊口義將金安洙率一百八十人來赴之意到船橋仁夏使人中途要請以歸安東先鋒黃騎龍亦來赴之意到大關嶺下又中途送人迎合之金亨鎭與本陣遊擊將徐淳學結誼誘利淳學淳學率兵夜亡去仁夏以亨鎭爲中軍於是仁夏志驕欲大生釁端出屯船橋十里兩陣軍卒若讐敵之對壘余時以小疾臥席不知民心之所向召參謀李承學曰我才薄之人仁夏可與圖事吾欲讓與江陵而退陣三陟承學曰今四方動靜尤思將軍之簡而廉雖百仁夏其於將軍何時參謀號靑鶴老者頗明易象按明字解之輒曰主日也客月也今當望而猖獗當晦則無影彼當不遠間失軍而囚矣時春陣巡撫將張漢斗來赴漢斗素與安洙結義安洙絶仁夏而歸聽漢斗之說而趨人心之所服崔中奉傷處至是快愈膂力才器過人時中軍義植敏於事而剛毅臨事相依而强欲歸家故不得而送之淮陽前摠督將申懋燮來赴二十九日設軍門於射臺以崔中奉爲中軍申懋燮爲後軍將金安洙爲北各邑巡撫兼軍務將捉囚橫城義將權仁夏梟首金亨鎭叛將之罪嚴杖黃騎龍囚之淳學夜逃去果如靑鶴老之言一日余使軍官持酒饋仁夏以愧其心守城將東植誓心敦事克淸克儉余從容謂曰兵死地一家祖孫甚危如則歸之東植變色曰余起復而從軍者以報祖先食祿之恩今軍中父子兄弟同參者有幾各修臣民之道於今日今小我之義而逐乎恐諸將聽之也余心愧而服其斷斷無他時春川觀察使李載崐答書來曰尊周之大義孰不欽仰然國讐已報擁兵猖獗反害於初起之義斯速解義以保自愛云云範且使人馳書曰抵春營則巡閤大加稱賞而小將欲上京觀機故不趁復命余謂左右曰開門請[請衍字]狼此之謂也範胡爲乎上京果範入京締結十部及倭奴盡說軍中虛實十部大喜以範爲東路出駐司令參謀官時江陵距京迢遠各陣盤錯西北以此起兵四五朔但與倭累戰聲聞壯大和黨不敢送兵惟範作孽京兵之送始此乃造十放砲造木砲百餘筒時聞宣諭使李道宰與洪先生在龜有密約冀其不送兵余日待之終不踰嶺使進士金仁圭李鍾元車鍾虎金載會參謀黃冕鎬朱冕相等派送西北兩道探上國事機及和政民心迎淮陽邊錫龜爲參謀時宣諭使李道宰書我曰剃髮已止 國讐已復十行 綸音哀蒼生之羅禍而不加兵宣諭則早解兵以保性命復于道宰日銜命臨境先屈手喩況戒之以 絲綸丁寧伏不勝惶恐萬萬耳噫龍鎬之當初爲此也豈有見於義耶 母后被害無獨生之心君父受辱有一死之念憤呼左右應之者衆此亦人心之天歟欲先掃元港反受其恥轉戰蔚浦小慰軍心列陣九邑迎敵半年倭兵死者不過千數萬人一心期於掃滌可爲復讐也雪恥也何謂今日閤下來喩大言國讐已復剃髮已止 聖上下懇測之旨其各解兵歸業云云何喜如之繼以惶恐戒懼也蓋 國讐果已復矣則 宗社之福生民之願何喜如之如其未也而苟且云云則弑逆之禍干戈之慘從此益大無人收拾矣閤下其能安心曳裾乎剃髮之禍亦次第件也噫十部賊或誅或逃者其可曰復讐乎此不過一脅從之治而倭酋尙在疆場戴頭噓氣於天壤之間此將奈何閤下宅墻亦有數株喬木何不朝夕間仰觀俯思耶然復念閤下今日之來必有大主張大經綸有可以復讐報義之計矣伏望不以干戈相疑早卽賁枉于此論討可否計得長策共扶國事千萬千萬耳且絲綸之旨孰敢不奉今內外相隔朝野相疑者將一年餘矣軍疑難解衆心不服則其 九天絲綸元本敬奉賁臨與有開示解破群惑也 君命所在孰敢貳之千萬再思焉時遞觀察李暐路梗未歸入山潛蹤不知所在嘗謂諸將曰今日之禍秉埰招之使李暐雖遞挽執于此則其中自有京兵退却之道也使崔熙福等四探一日余適登樓上出使人得一文籍來納視之乃李錫範將與京兵下去則預徙家眷以避匪徒之禍云余甚忿◉(耒+未)卽使輕騎直往襄陽捉致範之至親矣比往已逃余環顧城堞圮毁猝難完築於本城中衙後高阜巍然乃與諸軍築土城身負土石士卒莫不極力不日功訖可容千人初砥平孟英在以討平匪徒之功出宰本邑及八月變其部屬金伯善入見英在曰往年則以我攻我不可使聞於隣國今逆黨亂朝倭奴猖獗復起兵討賊何如英在畏和不諾伯善大罵而出與李春英等起兵英在深愧之乃擧義反與倭內應於相戰之場爲下卒所殺其子一鎬嘗爲江陵主事余到軍之日逃去後代領父衆擧義一日余馳書曰子之先府君立功前後卒死於死足下又欲死於忠而死於孝忠孝之難足下果欲兩全耶甚暢賀之以勸其心時一鎬拘執李秉埰於中路誘以同義秉埰樂與之及京兵下來出迎而納其軍又縛秉埰踰嶺東而欲誘我云乃馳書于一鎬曰柳火已灰麥浪芊畝伏惟此時 體候錦安而陣務不爲薰惱同舟共濟之義尤極仰慮生賦性未完恐不及復讎而爲化也近或傳京兵下來出迎納軍余深責曰國家之恥姑舍父屍未冷豈有黨和之人乎夫讒人者安知不讒我於足下哉當先斬妄言者以謝足下忠孝之全而姑爲牢囚先此奔告未知足下之敎何如耶蓋此意余欲揣知一鎬之心而彼果無答余謂諸將曰一鎬亦付和乎世豈有犬父而虎子時平海留陣參謀士李虎成來謁因言英陽居金燾鉉聚勇士數百人往來洛東捕捉倭奴各陣以彼門閥之卑不肯授制自謂突擊將無所托將軍卑辭招之彼不遠千里而來也余使進士李虎成送燾鉉馳書曰僕聞足下平日口談忠義熟讀春秋常欲一試屠龍之手當此枕戈嘗膽之秋一麾白袖勇士聽命名振洛東和黨解綬累戰與倭身執旗鼓其在同義尤切傾悃但地分涯角未參軍功之賀筵愧赧愧赧夫大廈之顚非一木可支洪濤之奔非一葦可抗則今日之義八域義陣尙一乃心力然後可雪不共之讎矣或可同盟共進否方掃榻而待矣果燾鉉謂虎成曰安分取義觀此墨信可知遂欣然率六十人來赴而三人外皆服親余深敬服之卽爲先鋒將時春川義將李景應率二百人來赴時聞張騎濂及沈宜燮率京兵與堤陣相拒使金演常往慰則柳麟錫曰沈履燮亦以義陣參謀付和招禍亦猶關東之錫範也釋前囚權仁夏爲右軍將而全致雲以病見遞時新觀察使徐廷圭參署官趙觀顯中隊長金鴻權附和孟一鎬李錫範等率京兵二百八十餘人下來方住洪川宣言踰大關嶺沿路民心潮湧一鎬誘我歸和而書中自言不忠不孝四字謂諸將曰彼云不忠不孝四字亦知天地否急使先鋒姜禹瑞申懋燮等分屯嶺西束山里及沒夷峙令金安洙收北邑兵以防踰嶺之患時京兵晝伏夜行自春川反踰五色嶺抵襄陽留陣將卒聞風瓦解而江陵隔一百二十里也余大會諸將軍卒及鄕人謂之曰暫避其鋒以觀動靜亦今日就義處變之道也將卒及鄕人雖不形言以沈相熙南宮檍之類多疑余無不欲一死戰乃作曉喩文送兵丁及隊長曰嗟爾京兵丁爾等之頂踵毛髮果生於何而長於何耶頭戴足履食息偃仰處果何天何地耶飢食渴飮冬裘夏葛果誰恩誰澤耶豺獺報本慈烏反哺況我萬物之中最靈者人耶嗟爾與我均是吾 王之臣民而胡爲此尋常對壘有如仇讐者然耶言之痛心涕淚竝濺也噫倭之禍我始於壬辰於其時也爾等之祖曾考死乎否乎今日之禍甚於壬辰而 國母被害於汝心樂乎否乎 聖上剃髮連及爾曹於汝心樂乎否乎爾之老父愛妻幼子穉孫見而泣乎否乎想必有哀痛迫切之情而欲食其肉也今反助倭而逆我欲試而干戈此誠何意耶此所謂兄弟彎弓處也然吾亦識其故而得其說也噫我稱義旗先禁剃髮則剃髮之人懷疑懷恥轉爲禍胎釀成今日嗚乎痛矣我心非席不能捲而示人也爾居都內我處都外內外懸殊爾則剃而我則免我若在內雖鐵石心肝不削何爲 聖上受辱之地復何言哉雖百削其髮而其心不移則眞個義士也忠臣也何擇外貌之同不同而是非之也哉我心如此爾其聽之卽速改圖共扶 宗社爾髮再長爾義尤著唱凱而歸復與妻子論古談今爲如何哉我言不渝爾各再思又致書于觀察使徐廷圭曰竊聞之古人有以義爲外者豈意今日便見外義之事耶近日所謂稱兵四起者果爲何而然也其欲自謀者耶抑亦爲國者耶世間必有明知者矣若曰自謀也則人孰肯爲人私計而樂從之應乎如曰爲國乎則必有其義之取而 朝廷之反待以匪徒而加之以兵威者何耶噫外義之說正合今日事也然一時之是非不足甚畏而萬古史筆天下公論自有所歸矣閤下之初欲不赴任者豈非有見於此乎古道[云]明者所見略相同也然則胡爲乎中途改轍擁兵臨境咫尺對壘有如敵國者然驚人耳目惑人心志其將攻我而破義使倫紀墜地禽獸食人耶抑將設威中立得一便勢利處而定其去就耶否則將變化軍心納諸仁義共討國賊以復舊制耶於此三者必有其一矣然難測者事也未知者人也所謂李錫範卽我軍中最信任者其送春川者亦以此也而不圖其反測至此也使人狼狽者卽其心腸也其自罹禍網抑何故耶此愚所謂難測者事也未知者人也耳伏望察納焉彼不回答但云王師到境無至玉石俱焚之歎四月十二日京兵自連谷乘曉突入余不得已迎敵捕十九人退屯臨溪時宣諭使李道宰追京兵後入與觀察詰言曰今日京鄕之兵無非 聖上之赤子而遽加以兵哉卽日不快而去春陣將李景應率原帶兵欲赴堤陣退屯旌善麗浪時金安洙遇京兵於中路大戰一場見敗而不返直踰嶺西權仁夏出屯船橋亦見敗而不返直往芳林收散兵姜禹瑞申懋燮等亦出屯而未及相援至是來會臨溪平昌留陣將鄭基澧飛報曰前橫城權仁夏叛將韓廷敎付和爲三陟參署官金城吏廉錫夏爲蔚陵島參署官傡欲謀行剃政方往云故密報三陟留陣將矣不一日留陣後軍將朱明昇來謁曰使輕騎出守要路捉囚本邑余嘉其功爲突擊將還送本陣逼食不能留峽乃率諸將踰白茯嶺樹林森天道路崎嶇士則卷甲卒皆椽木到後坪市三陟留陣將金憲卿率兵來迎軍容復振卽日梟首韓廷敎叛義付和之罪釋廉錫夏曰今日之事是非黨立然莫非吾 王之臣民胡爲乎氷炭若是大義勉遣之十九日昧爽京兵自江陵踰花飛岺抵三陟乃使先鋒將金燾鉉守城將閔東植暗伏城內令留陣將金憲卿率兵屯于竹西樓東親與中軍崔中奉姜禹瑞李永燦全致雲申懋燮等掘坎邑後三峰山上預伏軍卒矣彼乃肆然無疑入府一時放丸左右夾攻自卯時至申時幾至勦滅藥丸見乏京兵乃變服入城中放火火光衝天乃退屯五十川留陣統義將李乾弼與京兵力戰格殺十餘人中丸而死不勝嗚咽淚下沾衿京兵生還江陵者僅五十餘人乃與諸將議曰破竹之勢不可失也復踰黃芷嶺入旌善時留陣將張漢淑全周瑞及堤陣守城將李復永款接時召募士李景煥牙將李鍾國翼將金弼賢林道集趙克普都軍官崔龍達從事徐熙元申秉澈鄭澈夏軍官金彦珍李應石李萬石等前後從軍有功各賞有次乃冒雨夜屯臨溪右軍將權仁夏復收兵芳林衆至二百餘人來會之春川兵丁哨長成益賢與其下五百人誓之曰國家之所以設關防養兵威以其討賊也今世道倒懸開門納賊使我爲倭反討仗義之師禍延蒼生寧不慟恨淸州大丘平壤完營已剃髮付倭吾等同義同死誓爲助義之兵自領其衆屢戰有功至是自通川入高城殺本倅洪鐘憲又殺襄陽倅泛海而下夾攻江陵京兵之意致檄于我觀察參署中隊長等又聞此奇畏怯乘夜逃去襄陽邑時從事崔禧福使其子專報曰速反大陣以慰人望乃倍道入江陵前出使張斗相得廉錫夏交通京兵及連船入島剃髮之文字追斬錫夏以送納余曰吾所以前釋者希其改過終至於此天道之福善禍淫此之謂也乃致檄蔚島曰嗟爾蔚陵島民王靈所曁千里如尺紀綱於斯文物於斯若祖若父傳傳至今何謂近日皇天不弔十賊釀禍倭奴肆毒 聖母遇害 主上剃髮此何言哉此何言哉寧一死而復讐豈偸生而忘義此所以近日草野人之先起義於嶠南湖西關東之地而八路響應者也海路雖遙想應聞知矣所謂廉錫夏者方做貴島參署官剃髮次入去故爲先獲斬舒爾目前剃髮之禍玆以布告其各率義共扶 宗社時宋鍾大馳書曰今日京兵之驟下專由護駕還宮之擧而和黨沮敗之意也率列邑兵爲先消滅後大義可擧時咸鏡道召募士崔文煥來告曰小將革罷化政於關北之日獨不斬參署官金澤秀而迎李濟馬者爲參謀矣濟馬與澤秀內應二月後反捉囚小將於牢獄爲百姓救出復見將軍滿面下淚余曰運也奈何時也奈何時進士金載會進士金仁圭黃冕鎬等聞京兵之下至肅川而還時中隊長金鴻權請益嶺西列邑京兵又添江華剃兵五百餘人與成益賢遇於襄陽束沙津益賢敗退屯杆城乾鳳寺以此信息相隔余謂諸將曰成益賢要我夾攻累次送檄而今京兵之速退襄杆以其腹背受苦也我若坐據不亦視畏賊之意乎乃率諸將入北至連谷細作飛報曰參署觀察方欲乘船走北乃飛馬到津頭遞參署朴承赫帶內衙及觀察內衙在津村束裝惶惶余壓驚後把手語曰胡爲乎參商若是是秉埰之過也乃護送本府因發至襄陽時京兵符同耶蘇學輩五六百人屯據杆城而徐廷圭趙觀顯金鴻權等皆在遂催軍入杆城燧火山時無日不雨望見則千巖萬壑橫亘西北無涯碧海浩漫東南慮或不利進退維谷於是乎悲懷萬端又益賢退在乾鳳相望百餘里乃激諸軍曰吾等若不交而旋旆彼必怯也掩後不如一場大鏖因怯入杆城良久日暮京兵及耶蘇輩千餘人而又鉛丸輸來自元港猝不可破僅捕三十餘人而傷我兵六七十人退屯巡浦時五月初二日也彼恃自起砲因雨勢而至諸軍冒死力戰斬獲二百餘人而耶蘇輩多死乃復下江陵冒雨入神勒寺午饁後出谷口金剛餘脈片片奇奇忽見疎林中五六牧童騎牛而前余曰昔玄德見牛背牧笛嘆吾不如也今以後果知古人艱難也成益賢流卒放火錫範家以叛義招兵故也時洪先生使人下書略曰三涉[陟]之報快然而使伏閤之擧失便不勝悲痛乃令金元燮備書往問候歸逢京兵投函簡于汚溝云云余曰先生何言曰深賀諸軍近日不素餐時京兵累敗之報至長安[京城]朝議紛紜以按撫之意凡各陣首義人除官而使解兵人自京來報除我本道觀察人或賀之余曰本擧大義只欲報臣子之分雖復恥之後吾還耕讀今母讐未復而貪名利解義者是憑母讐而求榮汝欲比我於無父無君之流乎此事實釣魚以香餌之計汝非賀我實弔我而來乎且見仕牒乎其人慙而退余使掌書司林翼相馳書于李暐曰侍生深知閤下之忠義而期欲同復國讐好事多魔爲秉埰所沮伏歎而可因此時還京乃備馬資贐及勿禁帖於沿路義所送之則李暐復書曰昔雲長活張遼張遼亦活雲長吾豈忘今日之惠余乃出餞李暐及朴承爀于大關嶺下謂李暐曰迎敵京兵不得已也以士欲復父母之讐亦不得已也不得已之地有得罪於朝廷之端歸語在朝之執事李暐朴承爀亦執手謂余曰早早以朝端相見怏怏而別後僕夫自京來告曰觀察使參署官路遇義陣兩次幾不免閤眷見害而賴將軍之勿禁無事抵達而兩位見三角山起舞馬上余聞甚笑之使從事張在根義和宮渭 陽別營將金演常等納上疏曰關東倡義儒生臣閔龍鎬誠惶誠恐謹百拜上言于紸纊之下伏以臣矣身故文忠公臣鼎重之六代孫也贈右議政臣景爀之繼後孫也臣本布衣豈敢擧義噫彼倭奴懷不饜之慾變革我 先王之法章禽獸我 先王之臣民八月之變至月之禍孰不欲忘身一死眞千萬古所無之變也臣矣身等不顧僭越糾合義士誓不與倭奴共戴日月去冬十二月初三日自原州起義轉入江陵開和之逆締結倭奴勒削致變中外臣民之所共知也故梟首警務官高俊植行和之罪今春正月糾合列邑之義陣入此先討港倭不利而退屯九邑與濱海往來之倭無日不戰期欲雪萬一之讐不意四月十二日觀察使徐廷圭參署官趙觀顯中隊長金鴻權率京兵二百餘人構誣臣矣身等謂匪徒欲陷沒乃已噫莫非 先王之赤子而自相攻擊恐貽萬世之恥笑累次哀呼終不聽理畢境突圍臣矣身不得已相敵徐廷圭趙觀顯金鴻權等又引兵退屯襄杆符同邪蘇學輩終欲盡滅嗚呼父母之讐未復而反被匪徒之惡名死於蕭墻之兵抱亘天之冤故膽[瞻]望北極晝夜呼泣伏乞 廓揮乾斷 使移兵討倭則臣矣身等肝腦塗地有不敢辭子弄父兵之罪雖萬被誅戮固所甘心而報讐存髮之日死猶榮焉無任屛營激切祈懇之地時聞堤陣中軍安承禹與倭接戰于丹陽淸風界士卒四散獨不避曰吾等初起之義欲死於死而見賊逃耶終爲賊所擒忠言大義使人揮淚及其遇害之場其門人一少年者曰吾師死於國吾死於師就執安承禹之手而同被害又洪思九者亦以從事見執倭欲受降大罵之倭以劍斷右臂亦不屈又斷左臂罵猶不絶竟爲所害倭亦感義斫木書之曰萬古義士洪思九余揮淚謂諸將曰烈哉承禹毒哉思九行人所不能是何堤陣之多出義士足不愧後人也時再從孫恒植馳書曰一手擎天不折者幸矣不如還歸田園又再曾孫丙星馳書曰不如待時而動余謂東植曰君須還家以守先廟我當以身殉國東植曰義植旣歸我亦歸之無愧於人乎我亦殉國後乃已相執手楸然京兵復下據襄陽乃率諸軍復攻之中軍崔中奉曰小將與敢死卒數十人連船數十隻每船設偶人數百陣於洛山寺口爲疑兵將軍親率諸軍入攻彼必三路受兵可大捿矣余許之適成益賢率二百餘人復踰嶺來赴余輒責曰高城襄陽兩邑倅胡爲乎殺之洪鍾憲位望之人泛謂和邊之倅不問長短而害乎吾人之事必歸宿於朝廷矣汝聞吾殺長吏之說乎便欲梟首諸將曰强賊之[在]場恐起內亂遂止之乃使人裁書于徐廷圭及中隊長曰嗚呼島夷犯闕是國之恥而況有無前之變無後之禍滿目慘痛又欲行此兄弟彎弓之事吾人相惡姑舍勿論彼天下萬國之人抑將何謂乎公等之祖曾曾不蒙 先王之雨露耶且今日之養其口繞其體者非吾 王之所賜乎蓋食其祿而死其難想必講之已熟而承襲亦久矣胡爲乎此之不思而反爲此付賊事讐之行耶生則草土野人公則朝著貴人也以處而論之則公可先我而擧義圖復國讐者是矣今反擧兵而欲攻復讐之義陣吁亦戚矣天道人理寧有是哉千萬其深思無爲後人之歎也甚善甚善如是反覆曉喩而彼反答曰假義而行難免劍頭之魂余甚忿恚令先鋒將權仁夏屯于邑案山親率諸將乘曉暗屯邑後彼覺之專攻邑後彼新附之兵銳氣益倍我軍亦夾攻斬中隊長金鴻權及八十餘人彼憤渠將之見殺奮戰力攻時余在前督戰不覺士卒之散後砲丸雨下無暇避之有軍卒李鳳吉者輒扶余曰願少避之不然卒亦同死因呼泣余隨鳳吉幸脫出十餘里散卒復聚候待之且日暮歇軍于山村明日引軍至先鋒所則百姓及軍卒皆揮淚偶語曰一道免剃之禍將軍之所賜而將軍死矣忽見還皆欣欣然蹈舞乃五月十五日也連日長霖退屯明珠寺谷口待晴欲復攻彼反乘雨勢突圍我軍雨則器械百不當一乃退兵江陵中軍崔中奉泛海而追下至連谷爲京兵所擒言辭慷慨而忠憤之氣發越京兵亦下淚相顧曰彼眞義士也然不殺不報吾將之讐竟害之一軍慘怛府民亦畏怯祝天曰悠悠倉天胡爲乎閱月長霖乃令軍中服哀三日時南各邑留陣兵冒雨入救乃謂諸將曰今年之雨運也不如暫避待晴因乘夜退兵三陟雨猶不止累戰之餘將卒困疲目不忍見時六月初旬也分給軍卒夏服乃與諸將議曰三月長霖是天使義士見敗也不如入西北得中國之器械然後可雪倭奴之恥否則徒貽各國之笑也惜乎三千里江山何無自起砲也又緣雨退屯蔚珍時先鋒金燾鉉使從事一員來請曰小將奉令還南後屢戰兵站倭尙無尺寸之功以答將軍萬一之憤而近將與洛東倭及大丘兵丁相戰對壘九郡義陣不謀相合伏願親率大軍賁枉則敢聽指揮乃使左軍李永燦率兵略干往救遺書曰因時制變乃軍政之急也十圍弱避古人先見今執事獨以偏師直衝賊腰使不得任意猖獗則吾軍之賴以振氣者何啻萬萬乎若使人人能如是則何患賊之不滅讐之未復乎攢賀且企待耳相捄之請何待提示竊念義理之風莫如南北金革之堅無愈北强故今已下令帶願從者入北收兵轉而西振作多少義士欲與執事相會於臨津南漢水北共伸大義於天下矣此一事斷不容已故不得應副別令左軍將李東[永]燦率二百人往赴之至則善遇共相鑄畫想無差謬矣諒恕之時聞提川義將柳麟錫請兵中國次已離陣向北而諸將亦鱗次繼發乃與諸將議曰東南陣相爲脣齒已抗京兵與倭奴今猶我獨存勢難抵敵不如吾亦入北乃傳令各陣曰嗟我列邑義陣將卒一蹴渡海直掃賊穴當日立旗之初心也左謀右諏捨短取長今日臨敵之良策也自初至今歲月幾一周强場亦十數而內賊尙偃息於 禁側外寇猶連絡於關津傷我軍卒害我良民此心惙惙尙十倍於前日終夜不寐計無良策抑非計之良乃是力之弱天或使我終於斯而使幾萬人義士得無一日之快乎一快而得伸此義則列陣之枕戈席甲擲風沐雨冒矢石辦一死生之志可謂無愧於天下古今矣言念此事髮凁骨戰寧我一介溘然忍使萬人喫辛大抵西北古稱天下强兵中州尙是四海 盟主計欲躬率親隨軍卒若干入中州訢[訴] 天階得蒙一枝之許則驅而渡東收拾西北義士强卒一鼓以進可獲賊酋矣夫如是則可以伸大義快萬人幸孰大焉凡我各陣將卒勿渝初盟堅守本界勿輕出戰先挫軍銳忍痛耐久以待天心如或有從我而北者卽日來到毋有失期此豈余所樂爲之者耶誠不得已也吾輩雖各自姓名其心則一體也其情則兄弟也欲離一心之兄弟而赴萬里生面江山顧我心爲當如何哉想像爾等亦一般情景矣言之心痛書之淚落然何可以一時區區之情誤却大義堂堂之事乎揮淚割情書此以告其各知悉惟其心所欲而爲之幸而有天則當有再見之日矣只此布告遂移屯畜川復踰黃芷嶺至月精寺口嘗使牙將李鍾國徵兵於旌善矣至是路梗未還時京兵一枝自旌善追入麗浪倭兵一枝屯芳林一枝屯束山里倉村京兵一枝踰大關嶺一枝自三陟追入雨猶不止衣甲盡濕泣諭士卒曰吾等有何罪而天亦雨耶自願者從我以往凡五百餘人而歸者十八九乃與成益賢李景應先鋒權仁夏後軍申懋燮朴鳳九閔東植各分隊伍倍日入北至麟蹄鬼屯與京兵相遇權益顯黃鶴秀崔漢絅權仁夏成益賢於亂中相失又收餘軍至瑞化龍山則景應軍失其渠將之所在而多付之余謂軍卒曰爲卒而不知主將之所往非義也幸人之敗而納其軍亦不義也遂不納士卒揮淚之時雨勢甚大百川漲溢十顚八沛至淮陽花川市時上國欲探我國事機孔昭生來察而與申芝秀遇於鐵原偕入北云堤陣召討將徐相烈隨柳麟錫引兵至狼川邑府中一空京兵預知一一暗伏麥田中至軍卒午饁後猝然四圍諸將請相烈避之相烈曰我不如李春永安承禹不肯避之倭兵突至相烈以劍自刳其腹而死召討左防將李鳳九慶州人參奉父爲倭所殺乘夜負尸暗葬逃歸我陣余嘉其誠卽爲後軍將時九邑召募士辛尙默募五邑兵來會之不勝欣悅引軍至通口津渡軍後破船者時京兵二百人屯札淮陽邑恐襲追之至金城倉頭時七月初一日午時日有食之余於馬上仰天嘆曰因山未卜兩載 玉駕播遷俄國公館廷臣曾無一人殉節建議討倭而反爲倭表裏相應征討義士天豈無譴告下國泣謂軍卒曰吾與爾等俱無匡世之才行此不得已之事毋曰獨賢其勞正其義不謀其功古之巡遠其吾等之儔乎今和黨之謂我亂賊自有百世之公論爾等毋惑於是將卒默默以淚相視至平康邑本倅聞風逃走自春間鐵原敗後諸將卒逃竄山谷至是爭先來赴若孟文起朴壽亨李永達李芳春等也砲兵亦願赴者百餘人特以辛常默從軍前後有功又爲召討將以察軍情余謂金元燮曰汝往京中凡國家形便各國情僞陸續通奇使我勿失惟乃之功又謂曰前江陵觀察李暐參署朴承爀吾待之以禮內實有爲國之心則彼必不沮我往謁兩人詳探朝廷之機而勿效錫範元燮曰兄歸弟於無義之人乎仍發送時三邑都摠安聖鎬不告而歸余曰彼欲以身殉國之人乎以崔文煥又爲左將軍後數日元燮之父仁圭自江陵來曰本陣入北後左軍將李永燦與嶠南義將郭鍾錫率兵二千人入據江陵觀察使徐廷圭在將軍蔚珍時已逃歸而上京之日斬錫範曰汝曾爲東徒而反討匪徒傷人數百又參義所受制爲左軍而反請京兵害義士吾今聽余之言折了許多軍卒及中隊長而貽笑於後世汝之罪難容覆載云余謂諸將曰徐廷圭之下來吾非不知出於不得已而錫範之斬其義之所在可知不亦快乎仍行軍至谷山邑入客舍位哭府使李民夏殺牛款待暗埋京兵至八月初二日晡時突入諸軍未及措手各散余爬山越嶺至文城收軍纔一百四十人時聞堤陣入北至江界爲和黨所敗搆謂義士爲匪徒餘衆逃還者太半渡江入中國者亦太半云乃反踰安邊延豐社至高原則該倅款接之入客舍位哭時觀察金裕成無意行和則參署官金澤秀內囑十部曰裕成但順民心願兼銜則一月之內行和政云十賊欣然罷金裕成以澤秀兼任澤秀期欲行和自元港馱倭服設巡檢云余謂諸將曰一道之民迄今保形者左軍崔文煥之功也余當斬澤秀以雪 先王之恥乃引軍至 璿源殿留軍于下馬閣外與再從孫東植及崔文煥辛尙默李擎國本名鳳九申懋燮閔致南金仁圭柳在根等於 殿門外四拜出齋房見門楣上周豐漢沛四字追念五百年 我太祖功業之隆而爲今日賊臣之賣國則凄然下淚撫瞻 陵楸尤不勝追悵時定平人爲陵官謂余曰我朝立規之初陵官及禁軍料不薄矣數年前賊臣允中爲經略使陵官料陵軍一切減蠲自昨年八月後四節日 陵享一切闕廢只有 我太祖誕辰祭而向日朔朝請蠟燭二柄於該倅則該倅曰和政無燭又所存 陵土成卷將賣云所謂陵官料每月二十四兩自秋以後有名無實自古未有不危之國豈有今日之勢乎今年五月十七日雪下 陵寢內數寸 先王陟降之靈豈無譴怒於冥冥之中乎言罷握手相悵然時風雨蕭蕭少歇引軍入永興府捉囚本倅全宇燮數罪曰陵官之祿何以不給禁軍何以減之朔燭何以不貢陵土何以欲賣 陵享何以闕之府吏何以減額先王之制何以革之倉生之髮何以剃之國家正貢何以輸元港倭關卽欲梟首諸吏胥免冠請罪姑容之余曰入咸興府措處矣入 客舍位哭見 豐沛館三字尤不禁懷謁六代祖 老峯先生去思閣東植伏地涕泣不起余亦泣止之不勝感愴午饁後冒雨抵定平本倅方行和政聞風已走洪原入 客舍位哭時一鄕章甫聞義旗入境皆以禮服候立路左余下馬而過乃傳檄咸興府曰猗歟我咸興卽 先王之本都而人之所以涵泳先王之澤者卽周之豐漢之沛也際此島夷犯闕賊臣賣國聞東溟之波聲思拂鐵衣見北極之星拱思欲補闕之士者於諸道尤最也故文煥之來不謀同倡免剃髮之恥 先王陟降之靈於冥冥之中豈不曰吾之赤子乎噫彼李濟馬者眩惑觀聽外義內和以致文煥之囚幸賴多士之憤免送三木之禍足見炳日之忠不爲和黨所沮也僕一介布衣累世簪纓不忍見 宗社之累卵生靈之和蜮奮袂原營轉鬪濱海才魯識鈍不能成尺寸之效而徒貽志士之恥者於焉兩年于玆今欲哭秦存楚捲甲向北聞貴府澤秀强欲行和政於 先王之都强欲禽先王之民吁亦戚矣彼澤秀者胡爲乎食君之祿而行倭之政彼濟馬者胡爲乎參義之員而返倭之黨不掃窩主則外禍將迫矣伏願僉君子奮敵愾之義同作 先王之臣千萬千萬時咸興府參署官金澤秀乃關北和政之窩主聞義兵之來檄文之到卽以二千五百金賞給官砲百名誘之曰汝等皆吾心腹一從吾言復必有重賞矣彼所謂義兵者皆是黨盜也來必殺汝而奪汝財其各一心努力期於勦滅我當直報軍府使爾重用云云砲領官乃與其衆曰此事當如何衆皆忿怒曰吾等之衣冠文物保存今日者皆義陣之功也寧餓死於溝壑不願受此賞而行不義之事爲背恩忘德之人也余聞此奇謂諸將曰此所謂人心之天也乃引兵長驅到萬歲橋頭數千府民擁立左右見左軍崔文煥旗號無不欣欣相謂曰文煥來再乎存髮之功一道之民結草難報澤秀於鎭岳亭上望見百姓景光暗出東門隱伏秫田逃入洪原余入 客舍見周豐漢沛之楣自然感懷下淚乃作回心歌一百四十餘行揭於四門曰어와八域同胞덜아 말잠간들으시요 三角山놉파잇고漢江水흘너넌데 瑞雲이玲瓏하니 萬千年王都로다 죠흘시고죠흘시고 衣冠文物죠흘시고 文廟配享十八賢은 敎民禮讓하여시니爛衫深衣 道袍冠帶 先王舊制分明하니 小中華가안일넌가 統營통냥 韓山모시 玳瑁갓건 琥珀풍잠 嬋姸이裁斷하여 八尺長身俱備하니 風采는杜牧之요 人物은子都로다 長安大道十字街 강동강동것난도 各國의第一이라 檀君箕子餘風인가 소즁하고소즁하고샹투한아 소즁하고 우리父母劬勞하샤腹中의바든털을 한나차나毁傷하여 古聖人의罪人되랴 울이父母날길울져 아가마가멸이빗쟈 이멸이언제길너남과갓치成人할고歲月이如流하여 二八年光얼넌하니 大家의議婚하여 三加後冠禮하니 同房花燭明月夜 分明한쟝부로다 어와親舊벗님야 禮義東方三千里 져倭놈언일고 壬辰年나뭄수 禍及二陵하여시니 生民塗炭말할소냐湖西의高敬命과 嶠南의郭再祐는 일布衣寒士로셔 國事을각하여 草萊일어시니 하물며喬木世臣 王事의靡盬하랴 平壤花月이와 晉州論介난 그안이娼女런가 忠臣不事二君이요 烈女不更二夫節노 夜深三更방울딘과 창낭수깁푼물 視死如歸하여시니 千古의깃친芳名 烈丈夫가안일넌가 아망하고 함독하다 져倭놈거동보소 前日羞恥이졋넌가 開和라稱託하고 姦臣을締結하여 仁川元山大都會을 져의開港만근後 人心物情窺測하고 電奇線이언일고 變服도不足하여 國母을害할소냐 新法도不足하여 멸이를길소냐 孔子孟子장한道는 五倫의源流거든 大成殿을헐난말가 五畝之宅百畝田는 生民의分福인데 奪人田畓하단말가 上下等級分明하미 國家의元脈인 闢破門閥하단말가 살님을하넌法이 後事을발니歲月이일어하니 竹杖芒鞋短匏子로 八路人心살펴보세 喬木世臣하넌말이 君臣大義父子親은 萬國이一般이라 九重宮闕깁푼곳 울이聖 母어간고 聖上의슬푸심과 東宮哀痛은 붓굴엽다붓굴엽다臣子되여볼안말가 天地도無心하고 日月도冥冥하다 廉頗李牧이젼將帥 凶奴을滅가 龍逢比干이젼忠臣 殺身成仁엿던가 그才죠不足하여 雪恥을못할진졍 開和의參預하여 世德을陋할소냐 베슬도죠꺼니와 節義도소중하다 달알고기낫기굴음속밧갈기 이젼살암게잇넌가나도한아갈가 東門의掛冠하고 五湖의泛舟하면 이一身苟安하나 울이聖上어이할고 樂人樂而死人事은 文天祥이어간고 갓튼十賊놈아 八月變도不足하여至月禍을닐을소냐 며늘손쟈불너노꼬朝服冠帶주넌말이 被髮左衽하넌날에이것하여무엇할이 角帶의雙鶴佩은아무의단쵸하고 官服의日月光단아무의칠여하셰 白髮을헐날니며 雙袖龍鍾넌거동 令人痛哭어이할이 야차마못보갓나 靑樓夜明月肆에 豪傑男子거동보소 은상투손들고 三盃酒마시後 痛哭長嘆하던말이 어마머마언일고 妻子보기붓글업 禮義邦의生長하여 倭놈이될안말가 易水의荊軻劍과 燕市에漸離筑은 不平懷抱잇넌가 南村의아무大臣北村의아무宰相 倭놈이라됴하더니 國事을일이한가 무지한이놈더라 너기도졀통꺼든 무고이가는사 한도들어샹투치니그살암骨切之恨네눈피가난다 勸君更進一盃酒는 울이親舊양마소 珊瑚동곳눌너고 豪氣잇단니던게 어졋날이녓날이라 너도중놈나도중놈 중놈보고싀님할가 어와이일어이할고 義氣男子어간고 居鄕士夫하넌말이 累代로디낀班名闢破門閥하단말가 이젼친구永訣次로 기젼에차자보셔 이멸이긴後에 古祠堂분하랴 先靈도놀나갓 어와밧비안하지 五百年디낀班名 一朝에虛事로다南田北畓壯한世業놈을주란말가 廣州楊州다기니 八路監營次第로다 英雄烈士어간고 나도한丈夫로다 樵童牧豎하넌말이 일낫다네일낫다네 漢陽城中일낫다네긴다네긴다네 울이멀이긴다네 아모얼운아모양반 간마다숙떡인다 샹쟈안에고운옷과 줄우궁추기 놈을줄란말가 풀속에수머가 倭오거든하여보세八路人心이러하니 民心이天心이라 여보져兵丁자녀어지긴넌고 자녜얼운아무은 國事의忠臣이라 지금도流傳하지 져兵丁거동보소 喟然長嘆하넌말이 얼인妻子고푸고 늘근父母봉양하기 죽도사도못하여셔兵丁의일음걸어 國料을먹여니 萬古의져倭놈 울이멸이길소냐 外貌은變할진덩 中心 좃차變할소냐 이아무는 竹馬朋友알아니 이멸이긴後에路上에잠간만 數語하고얼는가니 눈치야몰을소냐 變形도통꺼든 친구좃챠일얼소냐 英雄烈士오넌날에 와丹衷暴白하지 兵丁말삼일어하니 그도한義士로다 砥平에李春永과堤川의柳麟錫은 白袖로起義하니 堂堂한丈夫로다너도한丈夫로셔 捨生取義갓치하셔이一身돌아보니 二十七歲먹은 나이 울이 님굼恩澤이라 憤不顧身오늘날에東南義士糾合하여 八百餘里險한길에너의剃髮救하져구 咸興地境다달으니姓名三字閔龍鎬라 이咸興大都會은先王重地그안인가 周豐漢沛녓날은澤一時덜닛즐소냐 어와八路蒼生덜아 倡義을글니마소 和黨에罪人이요 萬古에烈士로다 丹靑에기틸일음 回復復字한字로다 이젼사람 하넌 말이 委人亡於魚羊이지 이回心忠義說을 부부銘心하소萬民罷市觀者無不灑淚爭誦放春間與崔文煥參義人爲澤秀迄今見囚者五人各賞有次召砲領官賞三百金乃使人四探澤秀往迹則或入元港或入北靑數日後的知踰咸關嶺使崔文煥李擎國等率兵八十人往追之又使崔龍達爲召募官等五十人出送定平永興府初七日裁書訪一鄕聞人及韓斯文致序則致序復曰未嘗學陣不能從軍然以若高風俾倡大義拯民於水火之中 宗社幸甚生民有福云云時一鄕多士候外翹首而畏澤秀未敢先至噫彼澤秀亡慝洪原府使人請兵於北靑北靑曾設倭兵丁四百人澤秀諱言義兵而意外火黨突入咸興府云兵丁百餘人罔夜出來至咸關嶺與左軍相遇文煥作曉喩文投之則兵丁相顧曰吾等雖拘生涯參伍豈可害義乎見欺參署官面面相視不放丸澤秀又見此樣撥馬與洪原倅逃入北靑文煥退高石嶺屯札時咸興城砲已聞北靑兵出來相爲煽恐曰脫或義陣見退吾等受罪矣不如反擊見媚十日昧爽城砲四圍時余只與數十軍留府而已使諸將分道南北及候斥海口且城砲朝夕侍側以恩結之無意此變猝遇急驚透出東門諸將卒不及措手生擒者十九人餘皆渙散乃隻身入左軍則和黨入北靑又出送三百名諸將無不震懼乃引軍踰浮絶嶺城砲又追至對戰彼傷者數人時十五日也余謂軍卒曰吾等非乎何疾之者衆相以淚視之於是自長津踰靑山嶺至三水邑則澤秀已頒令列邑和吏三甲兩邑砲候至伏要余使文煥屯兵山谷與金和洙博川人先渡鴨江訪見白頭山下內侍貢李養禧及淸人王明智俱言來由養禧曰近日瑞雲照遼東果然與王明智忿惋使淸人數十人各持丸砲候待江邊士卒之先到者護渡之俄已文煥又盡令諸軍一一作行旅樣無擾繼渡時八月二十九日也使人探聽咸興則再從孫東植致南的知脫危而惟申懋燮參於十九人而見殺云以此諸軍無不咬牙欲報定平府亦生擒五人云遠外未知誰某以此煩鬱度了王明智曰公入中國訴冤則諸軍我當分置我人幕云云余感其言卽發行以絶句一詩泣別左軍崔文煥金和睦車芝元李永達金奇洙曰風塵出沒已多年爲國丹忱又朝天關東子弟君須保鐵馬來嘶鴨江邊至厚昌界聞之則向在初秋堤陣將卒見死於江界者三十餘人而惟權南圭李範植等臨死忠言大節使人灑淚沿江言語衣表之異者見執死者五六人或勸我不履江右界乃越左村村乞食至帽兒山自白頭山至此七百餘里也時木落有聲秋風冷骨遙想家 國則心腸寸斷又思李白草解衣衣我之恩則古人不忘綈袍之恩良不誣也乃冒雨訪我人家則乃李文河也文河曰此嶺無人境百餘里也嶺下有我國人家數十而訪李元植云乃擣玉秫作餠十片以免踰嶺之飢余仍荷橐出十里餘則五六人自疎林中下來一人躊躇謂余曰我驪州先鋒將李謙成也去冬與沈相熙起兵與倭屢戰相熙探於名利反義付和余與諸將屠利川兵站所仍與知己數三人發行入江陵聞閔龍鎬之據蔚珍而又耶蘇輩逢人見害故直入北方留于此又言各陣參義人誰某姓名甚熟且謂曰今春袁大人世凱使人來探我國信息而出送木牌四千介以表勒剃心剃之別而又地圖及軍銜付送云故不得已時公在遠未能致言而以公書驪州左翊將以公之再曾孫注書丙星書運糧官及各陣某某人姓名矣不言擅書甚悚甚悚余曰不言何關余默默然始知非害我者俱言實迹余曰彼前去者誰謙性曰從事金知德李寅和軍官金順明三人也此等與我復國事排荊棘入來也余與謙性抵元植家澣濯濕衣探聞可與偕入中國者則或薦金奉奎能識淸人言語及風土道理往于其家則奉奎家親年老在堂余謂曰吾等欲報五百年 國家之恩仗義討倭勢窮力盡將訴 上國無人可偕非賢胤難可與之答曰吾雖寓居邊外祖宗俱有王家食土之恩則豈愛一胤乎欣然款接翌日與金奉奎及李謙成等四人踰嶺累日到通化縣言語風土色色相殊與淸人姜栗和詩此界西通瀋陽南通鳳凰城北接吉林時天兵渡江訛說朋騰義陣先入者遍滿各處而瀋陽刺史費銀數百兩云左軍崔文煥自湯河先我抵通化縣余曰胡爲神速若是風聞將軍中有所失故晝夜倍道平康人車芝元博川人金和睦兩從事繼至乃呈書于通化倅梁老爺答云今春 皇上下詔曰今以後朝鮮自主則邊外地方官勿預彼人事近聞瀋陽刺史以義陣渡江事 啓達云公等之志可謂發明且我等不可擅便云云自通化轉入瀋陽則西大嶺至此一千五百餘里山氣秀麗大野天抵眞所謂天府之地也風土不服言語相沮齊人若聽楚人之喉也十月二十九日是余初度回憶萱堂倚閭之望則心腸寸斷聞瀋陽刺史卽兵部尙書李如栢而中途暴痛委臥乃使人上書陳情送崔文煥於吉林者土倅韓秉和聞義士之越江欲見云故也時後軍李鳳九先我入天津杳無音信時柳麟錫在通化縣付一幅書曰向者入北之日庶冀天助何使吾道不振而終不欲曝白於天下萬世耶相烈之狼川範植之江界聞不勝溘然欲死而使志士遺恨千秋也生之咸興之恥尤不可形言而姑存視息於覆載之間者欲滑已摧之轂更馳羊腸之險使宗 社萬分一安而庶伸死者之忠徒負食言之罪於今日愧歎瀋天兩處消息近聞快否向者生之回時以忠言大義告于瀋都下依刑房矣姑無快聞甚鬱今以吹沙成飯之謀反回於七道洞未晉探候容俟否時內侍貢留兵聞一一返國尤不禁踽踽之懷十八日艱到七道洞逢李君行言及大義則彼云我與遼東蕩雜輩多結誼可獲數百人云余內責曰彼淸人之心不正者驅而渡江彼以暴掠爲主我反失信義於天下而徒貽生民之塗炭矣事之不濟由吾心之不忠而亦天也余嘗留陣平康時鐵嶺防守砲軍譏得異服人三負送納陣門一一按問則二人乃本國人而剃髮作倭爲遠近細作者仍出斬之一人乃露國卽俄羅斯大人號十一老圃之通詞者而方向上海去乃迎入堂上謝曰愚卒無知冒瀆尊威勿咎待以賓禮留日致送行資若干因其便而付檄於十一老圃其略曰我 聖上移御貴館免倭奴之餘禍爲臣民者孰不感戴其義伏望終始一義俾我 君父早早還御以慰蒼生之望嘗聞春陣與倭戰于瀟陽江時倭潛入城縱火從事李守春冒火衝入身負客舍聖殿位牌而出置民舍余嘗屯兵江陵時共二千餘軍時雨下如注軍糧不繼一軍惶惶乃冒雨親慰之後入幕則軍官進飯余責曰士卒吾之手足也子姪也士卒不食吾何以食終不食士卒聞知相戒曰將軍視吾等無間不食而自飽也或有異言者自相警責之以此闕食一日半而軍無慍色余離陣入北之日列邑之士冠服來餞者數百人而在三陟黃芷時則安東之民八十里負簞食而來餽在淮陽時則九十里之人來候路次咸曰存髮之功也禁之不得可見人心之樂善好義也    誠菴先生書自座下別後因朱生便書格聞梗槪中間消息漠然無聞或曰上言蒙優批或曰參斟協會時傳說紛紜莫之敢信今於徐友書中得見同封手書始知前後所傳不是虛言而前日手段庶可移以用之於從容儒者事業甚幸甚幸拜審數年來體宇起居一向萬重區區仰想之餘不勝欣瀉病夫腐敗日甚又益之一年病苦自顧形神已是可駭惟座下尙置之記念慇懃去益不已愚陋者何以得此感感何言第有一言奉告或可垂省吾男兒何所不宜而顧今異說彌滿互相爭能而一線陽脈幾乎滅息有之泫歎不翅巡壁則必切想座下不能無隱憂於此類幸舍却多少事業付與別人取小學四字等書靜室危坐俯以讀仰以思得之心體之力不以寒曝以間之優以歲月積之自少至老不厭不改則以座下之英魄畢竟古人同歸者自有其日未知如何能留意耶否第極惶悚不敢當者書中小子也雖謙之之至受之者其可安乎自後往復幸削去謬例以存體面甚望餘病倩不備謝上 己亥二月十九日海東尊周錄

    18 서정일기

    丙申日記 西征日記

    19 강북일기

    夫人必自侮而人侮之國必自伐而人侵之自壬午武衛之兵倒戈以來朝著益紊曁于甲午東擾之跳梁國勢日非人心益悖而況乙未八月之變 國母被害 玉駕播遷俄館乎戊戌獨立協會又起外稱改革國政而內實腸肚與日謀覆 政府也若尹致昊李商在宋秉畯等雄辯演壇會者數萬於是復讐疏廳人若許蔿李相天李文和黃輔淵李建中蔡光默等以對抗之策糾合同志設皇國協會然獨立會勢力澎漲都下捉致大官於演壇之下如呼孩提 禁門咫尺之地晝夜演說拍掌可否之聲聲動宮殿然兵不能施威法不能施刑者不徒名藉泰西之民權若一放丸則環視列邦各稱保護公館聯軍而來也故非人衆制彼內鬩拳棒之道外無計可施爲國同義之士密贊時宜徵諸道褓負商者舊設惠商工局維持萬商褓者謂右社負者謂左社各有任所頭領病死勘葬親愛之風如同親戚皆櫛風沐雨亦多勇敢之士國有兵戒[戎]則任運輸之役故 朝家之保恤久矣在甲午百度更張時革罷也至是召集京城已數十萬人上自公卿下至閭巷凡爲國出力者莫〈1〉不爭先赴會莫不榮參任名手持木棒頭戴蔽陽子而風露宿於農商工部門外凡數朔外稱請認可而內實延拖驅全國之多士也十月初上始以商工局長吉永洙爲十三道都班首摠領之余與沈相熙洪鍾宇李基東金燦奎金弘濟宋振玉李在華羅奎[裕]錫許蔿李相天黃輔淵等數百人驅策左右破獨立協會於大安門今改●大漢門外餘黨退會於龍山麻浦等地又追亡逐北格殺數人傷者不可勝計首領皆匿竄于泥峴日租界而日公使林權助不右袒傍觀者 朝廷許以自東萊至義州貫國中鐵路之權故也余與沈相熙黃輔淵金燦奎李圭恒李懋重等數十人聯名請討協會員斬草除根之意上疏累爭疏本●●[見失]收錄在各人時各軍隊列屯五部要路使不得相聚演說然黨與彌滿都下恐朝夕勃發故同義之士設商務社而組織全國者以備不虞也 上以社長副社長使大臣例兼句管司務長以信任之臣除之其下置本社公事員掌務員各十三人使之分掌各道事務其外又置各道都公事員一人掌務員二人監視列郡公掌之賢否社用以商標收稅百物而充之朝著除拜多用破會之功時曾經統領於惠商工局者在南部設社揚言各道頭領差出之權在我掌握〈2〉誘騙人財巨萬亦濫用社費勢將流毒萬商故爲國托商圖報涓涘之士相與議曰向日同舟遇風共濟艱難今無陰雨之戒而只圖肥己恥孰大焉乃在北部又設社余以掌財員苟非社用毫不濫冗且都城內外以破會之功設支社六十餘任所受制於南者謂南黨受制於北者謂北黨互相擯斥漸成氷炭朝廷亦疑懼一日上使社長申箕善副社長閔泳綺司務長李根澔會同南北黨社員及京城內外六十餘支社員於鍾路商務社互相爲國和解處理公務於一社之意奉勅而來余以公事員入社則南北社員分列東西圭步不相近只受勅令而已申台曰今南北諸君會同一社明則[是和]解也明則[當]視務梗則以法且京城內外各支社勅令章程今還收入待更刊出給以除南北之嫌時公掌務二十六人皆文武三品以上惟余一人獨書生俱無一言乃突前以陳曰似若變起不測而以和同復命台監何以善後乎申台瞠視李根澔蹶然而起握余手問曰君是何人答我是閔龍鎬也李台曰聞公之名如雷慣耳一未接唔常爲慊歎今日之事亦 朝廷之憂第言之余曰京城內外六十餘社員多者萬餘小者數千人風餐露宿數朔之餘靡費巨額勤勞 王事亦云嘉尙而 上之所以報者乃 勅令復設章程也聞今日會〈3〉同之勅不知 朝廷之如何處分惶急赴會者數十萬人鍾路無立錐之隙而今忽還收待更刊後出給云則不啻各社解體彼獨立協員者煽嗾曰 朝家收 勅是狡兔死走狗烹之計則安知不變起蒼猝哉台監恃巡檢之羅織左右乎不信生言第察檻外民心李台曰計將安出余曰朝家之失信於民久矣雖明日刊布民不深信而彼之欲不黨南北只奉復設之章程則於心足矣 朝家處分實欲保護萬商則待日後刊布之時各自交換以去之旨宣諭何如乎司務長乃以此意宣飭於各社則皆擧旗揚揚呼萬歲而散李台又曰南北之爭何以和之余曰南黨朴裕泰金光熙等以舊習統領際此復設之日宣言各道頭領勢將出於南遐鄕圖囑者不知幾十人而財之已動巨萬且剝奪商民之意濫冗之費已巨額世所共知夫天下之事先整財政伏聞 朝家將行商標則必有全國之收入收入之日以未合前冗費南五北十北一南五則南北之爭終未息也先勘文簿從其厚薄而出給在朝廷處分也然後南北混一閔泳綺曰在北掌財何人而冗費幾何余曰我是掌財而統計一萬三千餘金也申李兩台曰北社盡是爲國淸流之士何節約之如是也召金光熙等問〈4〉之則答十六萬餘千也閔台奮起曰朝家則依北用標準當以此復命乃以目視余而起回顧左右南黨目光如炬拳風將起會意隨諸台之後而急還翌朝閔泳綺喜形于色曰昨復命之筵申李兩台聯奏南北和同皆叔之力則自 上大加稱賞曰龍鎬之一心爲國朕知已久惜調用之已晩是同年十一月事也己亥春正月余以公事員掌平南各郡組織公掌一日與毅齋台閔丙奭穩話之際謂之曰士之出仕者徒資門閥阿附及許多手段深切恥之余於往年解兵三水郡對岸從左路循江至通化縣界則千餘里山峽我同胞之漏化移居者不知幾萬戶 朝廷如若等[抛]棄視列邦保護民人之例反不愧乎吾欲宣化收籍然後爲出仕之道則幸隨機奏陛焉毅齋台曰荷汀台(閔泳駿)爲西箕伯時謀歸化而狼狽我亦箕伯時亦難化者奉命之人或縛以投江或割鼻驅逐小無忌憚彼恃越江及極北之遠也朝廷經營三四十年或歸化者只沿江對岸數千戶然今日歸明日反惟意所欲現使李匡夏往諭然非民情之悖戾而然耶余曰民非性惡而忘本 朝廷不得其人往則剝割惟恐不及豈咎民哉是年八月二十九日別軍官〈5〉田龍河來傳自 大內有招待閔龍鎬之處分俄而沈景學又傳標信而促入卽自布德門入鳳陽門待 命於公事廳則內官姜錫浩傳 勅命曰汝往元帥府少頃參將李學均躬進偕往元帥府屛人語曰自上洞燭公之往年在遼左之苦倘知遼左民情否余意毅齋台曾稟故乃詳陳無告之民情然後又謂學均曰以言轉奏恐或差失不如以書更達乃退出翌朝荷汀台曰白衣入闕有損事體遲則有恩命何不拒而不往余曰連次承促豈貪一命之榮而回避乎荷汀笑余儻直乃書陳方略曰伏以臣年前自三水渡鴨江卽白頭山下先春嶺也我國之民西至分界江北至湯河近千里之間與淸人三五雜處者殆數萬戶矣樹木森天風土未闢然人民之所以携幼扶老輻湊者以其土地肥沃可資生業誠兩國無告之遺民也逼遛數月遍訪土人之俊秀者從容謂曰人生之所貴者忠孝也公等去父母之邦處荒服之北何樂而不返聞者或泫然流涕曰來此之民不一其端或不堪邊官之貪虐或不耐飢寒而流離或有罪逃命托於淸人而生活者居多花開爲春葉落爲秋然不能食息忘故國之事者有二焉甲午以前則以其所居地對岸指點故國某郡某縣界自謂某邑〈6〉之屬民歲收三緡納官以表故國之情則官不以上聞而自謂[爲]私橐矣一自乙未之變後頓絶不關此其義理之端一也平壤之亂淸人敗歸威怯吾輩曰爾等數千居在交界紹介韓日不願與我同衣服者皆返國吾等聞國家之變相與泣曰進不得爲國報讐退不得自保形骸與其胥倭不若付淸一切歸之及聞故國從便之令後吾等亦復襲舊日之衣冠是亦義理之端二也臣遍告土人曰天日復明國讎將復奉慰問之詔來收版圖之藏則公等將何以處之乎土人曰吾等先入者已經三世後入者已過一紀雖不能一朝撤歸豈惜數緡錢逃漏於版圖之上乎然絶域荒北風俗頹頑以義諭之則從之者十七八以威制之則或有誘囑淸人指謂和黨按劍試之非名聲之如雷灌耳者雖[雖衍字]家喩戶說雖奉命渡江卒未歸化也乃詳聞風土之情周覽山川之遠近則分界江以內亦可當內地一道古之人取域外之民貪尺寸之土擧數萬之衆邀切萬里之外況遼左是兩國交界遊閒之地我國之民先占其土者洽過累萬則保護而民而民歸之何患土之不廣哉置領事撫民況今日各國通行之章程乎惜執政者不能上聞以雨露之赤子投諸荒北不復問也不費半日之糧不勞一旅之師得國家數萬之民舒國家〈7〉無限之力者在於一使之往來雖憚而久不爲此乎然彼誠漏化自暴之民也若不迨此時設維持之道而復過幾年則若子若孫認彼桐鄕而孰肯曰我國之民乎其所以鎭撫之方急之則令不能伸緩之則竟失其民不若安其土而樂其業先之以學問導之以忠孝査戶之日較其歲入以三之一廣設學校選入俊秀歲增其榮則秉彝之民孰敢不服彼柳麟錫之徒一介布衣近寓江左四五年間文風蔚然江左之民稍知義理之別亦知華夷之辨況 朝家勸奬之道乎使深知江左人情者奉咫尺之詔諭之以義理激之以忠孝一年而收其籍二年而收[施]其恩三年而行其威者斷在今日國家鎭邊之方莫大於此然量彼居民之多土地之産而糾之以義措之以道則亦不費國家絲毫之財矣此則在朝家得人之如何耳如臣之愚不顧覼縷如是詳 稟者非欲邀功於絶域之外願效犬馬之誠不勝悚凜是日學均又傳自 上有待 命處分時李漢英爲司務長將組織十三府都公事員以解協會之功有力者已擢用於朝若社而其餘京鄕間未及收用者三三五五自陳燋頭爛額之功者以千計漢英言于 上曰一道之頭領非其人則不堪且論功行賞之地一從公議而擢人必不怨 上曰從便爲之於是漢英會諸人於農〈8〉商工部內以姓名盡書揭壁後諭于衆曰今日之擢論功也非私也設皇國協會及商務社破獨立協會之日勤勞足可以遍人耳目者高唱姓名人皆擧手在公議之不當者默默勿譁於是參拔者百不二三余又參選翌朝李漢英請余曰平安北道都公事員以公差出面承勅命則以商籍收江北流民潝然內附 聖意攸在期圖 對揚且緣於各道員之派急銅印未及製下姑以木章行公而觀察使例兼分社長郡守例兼分司務長都公事於觀察爲報告而郡守則相公札一一勅裁公式也任輕責重不日赴任左右掌務員雖自辟然亦奏達乃以李重英閔泳夏薦達十二月與李重英閔泳夏渡淸川江握手相誓曰今十三府頭領俱以爲國之士要出者不知幾人而吾輩亦以世臣之後裔不能對揚而還渡於江神不愧乎且國家之欲歸化江北幾十年于玆然而梗化未得其人也是以農商大臣閔丙奭力稟于 上而司務長吉永洙判尹李漢英參將李學均諸台申申誨余用意江北則吾輩之着手江北在於內地之善否同心協力勿負 朝家時分社長時觀察使趙民熙號庸軒修理道社預遣人候江岸入南門則寧邊是平北首府然閭閻不稠衙署陋隘而山川有百二函關〈9〉之阻故謂鐵瓮山城也一日分社長握手敍懷曰共濟王事何嫌何疑初聞諸兄之來俱是少年恐生岨峿爲政淸簡甚協所望或有無妄之過幸須匡直其後分社長或有自欺[浸潤]已發之令余往言則猶恐不聞而還收也時發號施令一從民望則有寧府二觀察之說而各郡守宰畏忌入寧府則先枉道社庚子春正月時各郡公掌圖差者以賣帖爲能弊源滔天凡前日弊生之公掌一切除汰廣探一郡公正之士一一改差且自都社刊出道社規則三十卷分布課條舊帖另使公掌換給而但捧紙價八分新帖則明査三兩公員二兩五戔執事二兩內制喪葬疾病之規使立本而摘利出帖之規自道社專管印出時西土之俗婦人之脫裳出入及受先幣於嫁娶以篩角巾參人婚葬突夜縛寡之習便同胡俗口不可形言言于分社長(趙民熙)曰觀察是觀風察俗之職也一道之禮讓廉恥掃地斷喪國家之元氣竊爲台執恥之民熙曰余非不欲矯救此俗今上下征利之時各邑守宰無非餓虎之狀一出此言[令]則但問富家翁是開苴苞之路而無益於救俗也見今淸白之政一道風動則倘矯正此俗使西路蒙君子之澤否我當專推其政余乃慨然許之於是使各郡公掌擇報各面有文閥及德望〈10〉者各一人言于分社長曰今各郡公掌之報文學行誼者以百數差出正倫明査之帖塡生之名示專擅之意亦非待士之道則帖年月下塡分社長銜我以援助之意裁書可以風動一道亦允合事體分社長曰諾於是修書于各正倫明査員曰龍鎬再拜言雖無御李之誠恒切識荊之願南北涯角每恨參商帝曰咨汝來 宣商務㢢源滔天對揚沒策恐負委托夙夜凜栗無事則商有事則忠設社大旨感激 皇恩往年破會豈修臣分不以賜罪乃反嘉尙至有五百年忠義一心乃修之勅京設本社鄕設支社道設道社子惠萬商恐一失職惜我公掌不知帝德之何有逖矣西土八條箕化先漸西土秉彝之性豈曰後君迄無皷動實緣遐陬籍哭窮途墨悲染絲天賦則一人情則岐彝倫倒喪忠孝何施先幣女袴勒寡男巾此何夷俗人道滅矣不敎義方只取設社不啻狼莠反爲蠧國分憂棠陰 宣化正倫命我承令才愧後先周道如矢惠我君子風尙草偃豈曰痼瘼存心愛物一命有濟況我商社擧國共奬顧此愚昧與誰承誨惟公之義惟公之志激勵頹俗砥柱綱倫廉頑立懦舜何余何帖送正倫不勝猥汗不避屈嫌共濟明倫庶幾海涵無遐 玉音乃刊出正倫篇三百餘卷分布曉飭〈11〉未及數朔社弊之整汚俗之淨稍有其漸然平民商民分兩路與各郡守宰事多岨峿分社長隨事另護事無大小正倫篇第一條曰凡我萬商咸聽我言夫婚姻者人倫之始生民之本故易首乾坤詩首關睢此聖人所以重人倫也人倫之明不明卽華夷之辨人獸之分也古人嫁女娶子論人不論財取賢不取富所以正百福之源也苟或擇壻不取賢則今日豪富子來日都門乞賢則今日蓬下士明日府中相嫁女不擇人則十年掌上珠一朝泥中糞愛育之女反不奴僕於人則娼妓於人餓莩轉壑無所不至擇壻苟其人則懸鶉三尺裳化爲錦繡裙突破煙生席轉爲三重茵然則嫁娶之際爲其父母者論財不論人重貨不重倫非倫綱之罪人歟且婚姻論財夷虜之道也近日西土之俗嫁娶之際不問人閥之賢否專論財貨之多小稱云先幣論財甚者呼千金約者呼數百金苟或不充其欲雖今日定婚明日退婚只趨呼幣之多少上承祖宗之重下繼子孫之榮者反似牛馬之爭價乎旣以在床遺矢之女便論數百金則入廚擧瓠之息呼價六七百視以常事是以貧賤之童雖年至三十終不得有室多錢之兒雖未滿二八有妻有室末流敗倫之習東隣有昨日之寡則呼哭未絶無〈12〉室之類流涎謀縛乘夜突入者以其殖貨求匹則力不可企及之致也噫綱倫日敗月頹爲其夫婦者宴閒相鬪之時不言父母之定倫而謂其買得之婦夫不視婦婦不視夫其或貧寒到骨夫或致怨肆毒其婦則婦必呼冤曰吾之父母胡爲乎生女而賣女貴我而賤我反疎夫婦之情哉子不視父女不視母不啻父母之恩夫婦之義一朝掃地秦晉之誼亦絶後乃已且以士族言之則[則衍字]勢或不足則成俗呼價之場吾何以獨廉言必擧人亦不知愧至若孀婦言之雖有自貞之心爲脅毁節雖欲終喪改適抱恨莫遂以之而習俗叵測以之而冤獄頻起嗚呼痛矣嗚呼惜矣先王戒愼於人倫 王章森嚴於倫綱豈意數千年檀箕舊邦一朝化爲犬羊之域哉人倫倒喪忠孝何施玆以嚴立社規以正倫綱自今以後凡我諸寮中稱云先幣於嫁娶呼價多小者與受者竝爲現發之日負皷輪示猛杖十度以社傳社輪布各郡照人耳目廓掃舊習變夷胥華若至貧無資則稱家有無禮云禮云則酌水成禮滌洗成粧可也成婚之後則吾之子彼之壻彼之女吾之婦半子之情連楣之誼隨其榮枯貧富互相扶持亦人倫之大義也大經也不思〈13〉來日無窮之誼先行目前夷虜之俗使鍾愛之子女反不如牛馬論財傷倫豈爲人父母之所可忍焉哉各郡公掌專任此責者或謂其成俗難變循私不報受囑受賂者代施其罪矣且立規前約婚一切不問立規後則以明年月正元日施行而如或不問女家之言而欲藉此抑婚或曾有怨銜而藉此誣告者亦當背書其罪負皷輪市若彼此間俱有婚說而聞禁欲退者俱施此罪後告于分社長及分司務長與道社俾圖成婚且勒寡之習尤極痛駭現發之日亦當一依此罪平民亦有犯此規者自道社及各社告于分社長及分司務長以勘論財之罪以治勒寡之罪事第二條曰古之媒者所以通而家之言而論地德談賢否使之成婚也今之媒者不論地閥與賢否專論貧富與先幣且居媒而食先幣中幾貫爲長技噫深閨女子未成摠角視若市上興販之物而食口文者是人物之賊也綱倫之罪人也居媒而先以先幣之多小勸兩家者棒[嚴]杖十度居媒而犯財者與先幣者同勘事第三條曰凡我萬商咸聽我言糟糠之妻不下堂適人之道終身不改近日西土之俗夫或不協其婦則推當日先幣於他人而越賣婦或不合其夫則乃叛夫而改適婦或喪夫未及有改適之心爲其父母者藉托無依暗招越賣於人且家有十歲〈14〉之女則藉托預壻謂先幣而先捧幾百金又使雇傭於家後或背婚其或孑孑無親則預壻似或然矣況預捧先幣者乎是預賣女息者也此何夷俗綱倫絶矣人道滅矣究其傷倫之源則由於先幣之俗也從玆以後婦有三從之道則婦不敢叛夫婦有七去之惡外夫不棄婦已嫁之女則守貞毁節在於彼家而爲其父母者干攝互行悖倫者現發之日竝而[以]論先幣之罪同勘事第四條曰人之衣服可不重歟可不敬歟服華夏之服者是華夏之民也服戎狄之服者是戎狄之民也居戎而服華可居華而服戎人之大變也故先王爲文章以表貴賤以辨華(而)[夏]制衣裳以正上下以辨男女禮樂之所由始人倫之所由正也噫近日西土之俗男則或頭纏一尺布或頭着篩角冠則雖人之婚葬及出入遠近俱爲無礙 明朝頒賜之綱巾我 國禮俗之黑笠與士族之服無地可施力食之人貧寒之士纏布而漁樵於山水着篩角而出入於閭巷則可參人婚葬出入十里之外而不知恥焉則烏可免夷俗哉又有甚焉者女之所以外裳內袴逢人互避 先王所以重男女之別而戒鄭衛之〈15〉淫也西土之俗太半女不着外裳而出入街路與男竝行或上着男裘而往來無恥以之而禮廉大潰淫風行焉成俗已久爲其夫者不敎其婦爲其子者不諫其母是夫敎婦淫也子陷母於不義也在上者爲[謂]其成俗而不禁必爲夷狄而後已以小華化育之民驅入犬羊不知大懼者豈仁人君子之心哉風尙草偃理之常然從玆以後別立社規男以布巾篩冠出十里外及參婚葬者不復以士族待之而待以奴隷女不着裳立於街巷與人往來者各社公裳[掌]採探其夫姓名捉入該社立卽喩不能齊家之罪不能衣室家之罪笞五度負鼓輪市後直報道社無夫之婦則捉入其子以不能諫母之罪不能奉母之罪笞十度亦報道社事第五條曰犯倫之罪當到底査覈嚴禁而或有互相掩諱終不得快祛夷俗之慮則造木函長廣各一尺懸于市上外書正倫筩遠近之人投書只詳記某村居某姓名人論幣幾貫及叛夫賣寡之罪而每月該公掌前後望開函使密密到底確探再三又招兩隻對質後犯者不留一刻立卽申戒犯倫後負皷輪示以社傳社該郡則傳于道社道社則傳于支社互相受到記事第六條曰凡我各社公掌至若先幣女袴勒寡男巾之禁〈16〉大有關於風化而華夷之俗人獸之分係焉則身爲萬商頭任對揚聖化之地敢不一心奉行哉自該郡各面該公掌各薦報門閥文學行義冠於一面之士族各一人自道社禮問後帖送明査此是正倫明査也該明査只專任倫綱之所禁轉飭村長有或梗化不服者商民則無礙懲治或公札于公掌公掌或報于道社隨事輕重操縱平民則公札于該公掌公掌或報于分司務長或報于道社甚者自道社報于分社長隨事措處事乃刊出正倫篇三百餘卷分布曉飭未及數朔社㢢之整汚俗之淨稍有其漸然平民商民分兩路與各郡守宰事多岨峿分社長隨事另護事無大小二十七日人自渭原楚山來言江北民擾大起李視察不能奉 命之故云云其後入府則民熙曰江北民情淳薄何如耶對曰數年前解兵三水對岸逶迤下江左則民心之淳朴懷土之義氣今世桃源在傍一人遽答曰動輒作民擾實是淆薄余曰朝廷不擇人去則貪虐驚弓之鳥追而弋之民孰與之民熙恐我言失急問曰兩兄在洛不知耶是李匡夏今視察江北也余曰若如公言四年之間人心大變乎哉於是匡夏隨我到社備言江北民擾之起不得已逃去答[云云余曰聞]公與金承洙構釁而縛無辜良民二人投鴨江云果然否匡夏有慙色曰豈有是傳之者妄仍要余曰〈17〉公庚差我二歲願結伯仲之義余曰桃園之盟劉關張外守之者有幾況初面結誼之說公何妄耶然匡夏諜諜不已翌曉餞匡夏于南門外入府則分社長曰 朝廷不專責放於一人而送李匡夏又私[使]兄密收商籍余難左右袒今匡夏辱 君命而去迨此時兄與我收拾流民非國家之事業乎非兄聲望誰復招撫我亦與有榮焉今李重英直閣泰容之胤是故人之子而閔泳夏 東宮妃之至親兄老峰之後我是四大臣之裔則可謂一室之人團聚於千里之外圖報涓埃何患不成又曰 朝廷用力於江北久矣終未歸化余亦一心隱憂故往年自費銀照會瀋陽刺史曰我民之願歸故國者使之返國不願者特爲保護矣其後視察下來故余乃閣手而意[深]謂[每]歸化事至狼狽兄須力擔使國家無西顧之憂感激屢敎退修設社方略以陳則分社長序焉而又刊出江北章程二十餘卷二月使李進士東翼及從者一人修書渡江先諭老人嶺內知舊及父老使金宣傳貞燮往渭原楚山昌城碧潼等郡設社戒之曰一遵規則使名聲播越江左之人有奚爲後我之歎然後便着手可解近聞江北人情如驚弓之鳥勿忘威生於廉恩生於淸又使五衛將姜晃祖司果尹永碩李日善遍行沿江各郡打聽民〈18〉情而恃●行悖之習一切嚴斷凡社員執事之往來冗費自道社支給而雖一盂飯一盂羹不得取於民三月使閔泳夏往江界厚昌慈城三郡設社戒之曰凡係民事到底周察嶺以南吾當自任時金貞燮累次要余入北曰江北之民庶有來暮之歎卽嚴飭沿江使帖章不得一張越送江北第觀動靜去冬歸化流民之意爲李匡夏差員而入北者爲民斷髮十五人被打者亦無數若聽風說而輕先下手誤國家大事公等之罪也時分社長發訓沿江各郡曰該社都公事員前往敷陳我 聖上懇惻之至意則從玆後各郡守宰不得越侵江北民人雖民刑事都公事員專管以此均悉事四月初二日分社長謂余曰內地事推於兩掌務吾當帮助胡不速往以收江北民情余曰有三畏而迄今躕躇者無 政府公蹟而未免自下周旋深入彼地中途狼狽反得罪於 朝廷一也民經劫四散轉入嶺內者數千戶沿江則人散餘古宅隔江一帶之地猶不服心況深入三四百里民必恃故國之不能侵焉不可以時月可期且李視察未知何以往 稟若誣生政府則安知不反陷罪戾者二也余於乙未〈19〉古無之變擧義臣子之所當爲而反被匪徒之名處燕京三千里之外幸蒙君恩召還故國復見天日又於往年投身商社竝參協黨之破雖出漆室之憂長舌之輩必謂生可畏今若誓心盡瘁使江北潝然內附則人必誣我曰彼據江北擁民數萬彼非前日匪魁云則安知廟堂之上反不投杼乎[者三也]民熙曰當行臣職豈有是理我當立保另誦政府勿疑勿慮惟患事業之未成又曰四時之序成功者去理之當然願限一年而歸且江北之民畏吏貪虐久矣今日渡江明日取社費於民則以暴易暴聞沿江九郡鹽槽稅收入寧府不過數千緡而在外漁利歲巨萬計則專付道社以資今行何如民熙慷然許之曰此是漏公之物而前使之私例也吾何愛之於是自熙川逶迤抵江界已十五日嘗聞堤川義陣柳麟錫部下權李兩從事及士卒十九人在丙申夏隨柳帥入北至江界爲和黨見執被殺累塚於狄踰嶺下一山谷念其向日爲國出義則一也故余操文一哭曰嗚呼公等俱以匡世之才忠義之胄値國步之艱難懷敵愾而右袒冒彈丸於湖關之日强場累次受鴟毒於和黨之目藩羊幾觸被荊棘而前進誓包胥之存楚暮當馬陵萬弩俱發路出淆山三帥〈20〉見縛捨生取義名存千秋草綠南原魂猶未返木落虛汀冤聲撤天如生之愚仗義穢關同聲相應事之顚沛避弋天津承召返國又莅玆道適過江州我心惙惙二十一塚義士之骨我酒旣馨我牲旣潔臨風痛哭血淚漣漣不昧者存庶歆我觴留數日人來報新楚倅兼官江北下來者李匡夏也又打聽江北民情則荷擔而立撤耕而嘆余喟然長歎曰朝廷竟失江北之民乃已乃書于分社長曰生今遲遲臨江幸莫大焉民必復擾生若已渡彼必誣生 朝廷民或自擾謂我煽嗾不如反歸故中途捿遑第觀動靜長江一帶便作吳越伏俟再敎十九日閔泳胄使人傳渭原信息曰金貞燮昨日到江余急令人促返曰今民與楚倅相詰事若釀大必不免煽嗾之禍二十日出高山坊隔江而坐轉聞長江一帶[上下]則互相煽動老人嶺內則喜其深入居生越視秦瘠而變將朝夕叵測余深憂邊圉不靖二十七日余與江界社員金鳳塤等數十人携妓飮于野亭夕暉自野外旋風而來者納一函乃楚倅書也略曰愚兄三月十二日奏本又伏蒙楚山郡守兼江北流〈21〉民管理使之命去益惶懍而自京今月十一日發程從陸十八日抵寧府則賢弟業已行旆云而二十日自府續發二十五日午時楚山赴任三日內地各項事務矯正後一邊通奇于賢弟一邊發訓于江北爲計矣不意楚山舊倅今日昌城新倅也以到任次從水路下去之際金承洙及貴誼弟金宣傳領率五六百江北亂民輩揮辱昌倅欲奪其行裝楚山民之作別次出去江邊諸人與昌倅揮打江北亂民捉囚揮辱之强盜漢尹哥者而還入楚城矣其翌日金宣傳率七百餘亂民卽向楚城金承洙留在江北車渠溝連續募兵云故遇[愚]兄於左於右都不干涉而且赴任纔二日矣依若新嫁之女株守官旁[房]金宣傳及江北民等與昌倅及楚城民兵相爭于楚城南門外江北民雖曰敗去此何爻衆耶於此於彼遇[愚]兄雖無干涉其在郡守之地有此不美之事且金承洙及金宣傳又欲作無端惹鬧之事此豈非强盜逆賊之行乎以若吾賢弟誠忠公正之下豈有如此悖弟乎誠所未料者耳蔽一言事在急迫時不可緩書到卽時吾賢弟罔夜三倍道卽爲行旆楚山越邊以不得無禮之意責退金承洙金宣傳隨卽入來楚城以爲兄弟相敍許久〈22〉之懷且自此暗度其事實則金宣傳因金承洙之千萬奸計而陷入不義之地豈非痛憤處耶以金承洙論之背恩莫此爲甚云云余謂左右曰向者李視察赴京時囑余曰若入江北金承洙可使則使之不可則殺之意申申未知承洙何許人金貞燮櫛沐同苦乙未以後難惑以非心如金石胡入此中累及於我言未已執事一人自江北息喘來告曰奉令往淸官王懋忠家於路聞江北人每戶負米一斗皆會楚城下之意飛傳文字淸人亦助力云云余立促啓行左右力挽曰公纔到德令未布民安肯信從乎如民不從則必不免禍矣往亦無益且公與楚倅先後來到不過七八日彼雖誣言其證自在坐觀楚戰何患之有余曰不可此是兩界亂漸於國家何且楚倅之向日要我結誼豈可視彼我哉往而事不諧天也奈何卽登程至渭原界鷄初鳴曙色繞遠二十九日下午二點至楚山新道市距郡十餘里砲聲隱隱民皆四散逃亂田舍一空卽馳入則楚倅聞至欣喜令禁砲聲邑樣蕭條楚倅形燋口黑愀然握手曰新莅之初此何大厄吾與承洙無讐怨而去年遞楚倅令捉承洙往捉之校卒數十人砲傷承洙故吾累次〈23〉稱怨于舊倅彼承洙則但知吾之敎遞楚倅行暴不知我之護彼世豈有如許背恩之漢且金宣傳必爲民所陷而來別無他言但云民要我行故來與遞楚倅數語而歸數日之內兩界大亂宣言渡江都是舊倅之罪民怨則以戶布八百五十兩還推舊倅事也賢弟何以妥安耶余曰弟以所聞直言之聞公之復管江北耕者撤耕種者投鋤曰耕而不食種而何爲或云不如一決死戰或云撤家入嶺內自去年後沿江一帶人戶半空胡專推舊倅而掩自己之過公今誣告江北之歸化故有此恩命反至投印逃歸之境不思妥安民心使兩國無事專思掩過兄自爲之事已去矣往冬爲民所逐只竊馬牌而逃反不愧江左淸國官吏而辱 命再莅乎欲奮然而起楚倅曰賢弟計將安出余曰民之來訴者兄發軍器還收是何意思莫重馬牌抄募砲軍是何事體方今之計不管江北之意布告萬民金承洙事妥帖之意明誓神明而已楚倅大喜曰賢弟之言果是果是乃書自今以後江北管理使事務使義弟閔龍鎬專權代辦本郡守永不干涉以此均悉事金承洙之這間事當水流雲空而如或再言使義弟閔龍鎬立保爲證質諸神明事光武四年庚子四月晦日楚山郡守捺名銜章捺馬牌〈24〉及楚郡印急付曰但願賢弟解此大亂又以馬牌馬牌 牌面刻雍正年號畵雙馬形示我曰此是所重迥別留我乎留君乎余曰今日之事出於迫不得已而馬牌君之所賜豈可私越於人乎但完封後互相捺章只勿爲使用何如李令曰然余曰事急矣民忽渡江相接必有殺戮之變乃一騎一童出東門踰一大嶺冥色生樹堇投一幕口苦心亂翌朝渡江乃五月初一日至車溝山川生川[生川衍字]生疎言語相殊幸逢我人輒問曰民會何處疑楚倅之偵探不答余自言姓名曰汝等胡爲疑我欲撫汝而實非害汝之人也其中一人忽來拜曰聞名久矣俄而一淸人來拜泣曰一自白頭山下相離以至於此乃詳問則同義未歸之卒也乃言民會距此不遠各持兵器淸人亦混雜而自吉林界湯河至老人嶺內外及長江上下一切同胞之來寓者盡入於此余曰君導我至會所否乃踰小嶺則頭民及金承洙高設雲幕於數間屋左右露處者數千人而宛如軍門乃以名先通則三通角聲左右列隊緩步而入見承洙則爲人軒昻舊鐵山吏也曾以內部派員入江左果得民心而匡夏以視察剝割猶恐不及相與岨峿去年秋舊楚倅使校卒八十人渡江砲傷承洙左目而飛丸〈25〉又透出兩股民猝起數百追至楚城則楚倅畏而出給民載而歸自願守直砲軍十名暫不離側者迄兩年承洙曰公之大名振驚一世況今淸白之政爲內外民敬服哉承洙之冤上不徹天下不容人行此不得已之事誓與匡夏不共陽界余曰不然公以一時之忿揮動數千人屠楚城則城必屠矣匡夏死矣於公心不快乎然楚城亦多兵器則屠城之日兩邊殺傷如山是兩國之交界也自朝廷派兵江岸則居民之還縛承洙而納者多矣如逃則君非政治與國事犯不過因私憤而獲大罪則照會各國各國必詗捉公將安之必禍及妻孥今楚倅已解江北管理使之職則雖欲害公其勢末由也公急解民以保首領我當擔保乃出示楚倅布告則承洙疑曰公與楚倅何結伯仲之誼耶余以藥山府中初敍時酬酌之說告之承洙曰彼之逃歸時已胎今日之禍心而强結誼否余笑曰人辨玉石豈以義弟二字何疑哉承洙泣曰公旣保擔則三尺之軀任公自裁余曰神明在左萬民立會豈欺神人於是與承洙曉喩於衆曰凡我江北寓民咸聽我言人性則善人情則一居父母之邦沾父母之化源源於親戚之間優優焉桐榟之鄕出入〈26〉相友患難相救是人生之至樂胡爲乎携幼越江自投絶域耕而不能食織而不能衣穴居而草食自苦如此樂而忘返者非性之惡也非情之薄也雲歸天末指點故國雁帶夜月夢魂鄕里伯兮相離叔兮闊別欲一超渡江之心豈不油然而作也此心乍退留情漸深者念昔邊吏之侵虐年饑之荐至誰知傷虎之毒一年于此二年于斯欲歸故國則鄕無尺土之資欲擔入境則先怕親戚之譏勢出維谷以殊邦還認相[相衍字]桐鄕親無所依以結誼爲弟兄拳强者暴法無所訢[訴]忍痛耐冤冤獄頻起外人來侵孤踪或散吁亦戚矣仁愛我 大皇帝陛下念切爾等之寄捿他邦矜惻赤子之彷徨失所俾安其寓之意 代宣皇恩不啻一再迄無沾化非爾等之罪也非吾父母之遐棄也於父母之心則斫十指何指不惜但奉命之臣不能率職仁天化雨半空成雹雷雹之下安得不然噫余以匪材冒 承設社之命期圖 對揚 聖恩欲與公等疾痛相濟疴癢相恤顧余一心斷無他意竊恐驚弓之鳥見半月而飛傷虎之兔見走狐而仆嗟我寓民居非我土人是同胞冤抑者伸之强梁者制之共作沾化依法之民孰敢不從保護自己〈27〉民人萬國一也況 淸韓公法自在淸之君子亦豈曰不可今設商務社欲組織文明之界俾均雨露之澤一遵章程凜或勿替又以江北愚婦稚子曉喩申申之意如歌曲而眞諺揭示曰져긔오난 都公事는 이 冤情들어보쇼性正도 一般이요 人情도 가지라父母國의 사라잇고 仁天雨露저저잇셔出入의도 相愛며 患難의도 救濟며親戚의 多情고 鄕曲間의 優遊미人生의 樂이거 엇지여 우리衆生越他道移他官도 人情의셔업거든어린쳐 잇러셔 불고 可憐다萬里江山他國의 이 一身漂蕩여男耕女織不廢되 衣食죠귀여이거슬 죳타고 故國각멀니문[은]이 性情惡민가 이人情薄민가다시금 각니 그럿치 아니다天邊의 니난구름 우리 皇城指點고[三]更의 발근 달은 고향각 졀노난다兄弟四寸相離고 姻婭親戚相別 情〈28〉이마음니러날졔 大江을 超渡할듯이마음간이요 留情이 更深은야속[野俗]고 無情다 우리 邊方官吏드른[은]不勝飢寒우리게다正供은 姑捨고無名雜稅許多名目將校 使發送여三니[里]우슬驚動고 이것져것 토니傾家破産어니며 어가셔 호[呼]訴할가 아무리 無智들 名公巨族後裔로셔正供을 괴럽다고 逃避越江할 理잇나범의게 樵夫入山할듯 情의업다歲月이 如流여 二年三年 지後에故國의 가들 鄕無寸土어니며男負女戴渡江할듯親戚보기 붓럽가도오도 못고서 他國을 아親戚업난 외른마음 張三李四結誼여拳風이 第一이요 暴惡이 上策이라呼訴할 업난곳의 人道大義어이리殺獄大事이러나면 外國人도 侵擄[漁]다無故엽페람 어가 安定할고年富力强 이몸이 移鄕離戚엿시니〈29〉某山某水노든테와 某戚某族알거니와日月이 如流야 白髮이星星니稚子은 壯成고 弱孫이 層生여家勢은 零替고 이一身不幸면姓字은 傳여도 先塋親戚難記로다祖宗墳墓失傳면 白楊之歎어이리先塋罪人 이몸도 그지경 免할숀야他國의 기른子息 가르치기 힘쎠보셰故國風俗講習고 先王古法직키여셔이子孫懷土면 落葉歸根이안인가어화大韓 우리地方仁聖신 우리陛下불다 우리赤子他國의 산다말가불 우리百姓彷徨失所단말가살림田庄갓초와셔 一朝召還못여도사난나 살게게 禁暴制强실마음邊方官長保護라 宣諭使야 네가거라九重宮闕깁푼곳에 若保如傷실마음一分이나 奉行면 이다지설울숀가歸化다오난이와 保護다난官長不孝不悌 안무르면 訓長風憲파라먹기〈30〉雜技罪로 안부면 尊問기일이로다冤抑일 呼訴면 討索기일이로다傾家破産冤痛之心大叫一聲난날에北闕이 迢迢니 皇上洞燭실숀가江北民情들어보니 이마음凄涼커든父母되신마음이아 愛子之心엇더가얼손략 물으면 언는 손이 안압풀리어늬 子息 미워며 어늬 百姓 랑리奉命 제 臣下가 臣職을 못닥가서仁天의 惠化비을 雷搏으로 施行니불다 우리百姓 可憐다 제赤子야幺麽 이몸이 皇恩을 感祝여이의 오난마음 商務社로 設始세流民을 慰勞고 君命을 對揚가夙夜의 凜栗之心蛟負泰山이안인가已往의 놀百姓 쇼리듯고 놀걋다활거름놀 半月보고 나라간다범의게 상퇵기 여위보고 업[톄]진다슬푸다 우리百姓난데난他國이나우리同胞 그안닌가 商務社을 힘쎠보셰〈31〉冠婚喪祭問賻고 冤抑詞訟決處여强暴놈壓制고 疾病死葬慰로며村村學校設始고 一張同名記錄야文明組織난날에 우리 皇恩그안인가어화江北百姓드라 부부 驚心마쇼日久月深난날에 玉石을 分辨세百姓保護法은 萬國이一般이라淸韓公法自在니 淸國君子말할숀가一部章程森嚴니 章程로여보셔時使人朗讀民或涕泣欣踴或拍地大叫曰何若是明燭民情乎向日金宣傳之來拘執今日者聞公與楚倅結誼宣傳亦公之誼弟必行苦肉計然也今覺福星之照何不從令日已暮欲與金承洙同宿則民往往偶語岸上後三三五五把守要路伺察動靜余披心瀝膽終不氷釋民之緊隨承洙若蜂之抱將往往以砲聲警夜余乃揮脫衣冠鼻息如雷翌朝謂民曰汝等去夜得幾賊乎甚哉民之懷疑又語貞燮曰汝若同歸民心未解君須與民進退相隨江北得失在彼民情之解惑又備陳禍福於是承洙泣告于衆曰都〈32〉公事員炳日之義人孰不知今來玆土民又梗化前去者反藉口曰民俗素惡無如之何盍釋兵歸順以伸無告之冤咸曰諾余乃揚言于衆曰余現帶商務之名則當以商籍收戶也只排戶主明査員帖一張而帖價三緡中立學校資本及社用之規載在章程毫無道社之收入只春秋兩等有戶稅三緡之規此則納政府者也然以二戶作一戶役以倣內地元挾戶之例咸須知悉今社之公掌卽內地風憲執綱也哀哀同胞雜寓淸人之間地非吾土亦無句管之員則豈有定界之名然施政之日不得不割界定名以便公務之往來何如民曰是兩國數百年棄地今始民聽居自白頭山下至寬甸縣沿江千餘里只有頭二三四五六七八九道溝之名者指兩脊谷向江開面成溝之謂也自江岸直往二百餘里則卽峻急向巴池江之老人嶺也嶺內我民尤多又吉林界西大嶺下曰湯河亦多我民此去八百里而今皆參會云云余自三水對岸從民所指隨地形定社界名曰拜韓社三水郡對岸延化社厚昌界對岸帽山社慈城中江對岸皇城社蓮上社蓮下社江界對岸水上社水下社渭原對岸新上社新下社楚山碧潼對岸新興社昌龍社長化社慕華社小華社老人嶺內及巴池江左右〈33〉湯河社吉林界凡十六社也余曰民之司命卽今日之公掌也況民刑事俱係乎擇社內之最賢者望薦於是一一推薦以公章樣子示衆曰各社公掌各自立刻行公卽刻章來納使之一一禮謁頒章懽聲掀動天地乃殺牛大飮費至二百餘圜也第三日將渡江各社公掌聯名報曰生等久爲無告之民裁抑剝奪任彼淸人官兵保正及郡縣之呼來捉去傾敗者多且官侵門戶錢春秋數十緡則今歸化之日豈堪兩役而受彼之虐乎特望革祛云云以從當矯正之意題下余急報楚倅曰不啻金承洙及江北之民解惑旣定十六社公掌則可謂江北盡歸化矣當此農務之時四散之民招諭入城已募之兵釋甲歸農以鎭民心時楚山之民欣悅迎我於江頭江北之民餞我岸上欣賀之狀大凍嚴霜換作一夜春風兩界融融入城李令殺牛大排握敍甚欣其夜以妓桂香慰我旅懷翌日人急報曰都掌務自寧府入來在高山浦卽啓行與楚倅未盡情話而歸江界則分社長聞楚山民擾使李重英戒我力救以安邊界初七日使明査李東俊李東翼往慰水上社民人曰李管理不復干涉則民無更危之端各自安業民心〈34〉稍安翌日社員數人語余曰年來歸化之官隔江而坐但傳令威民也公則親行閭里面面喩民不然民不服心余乃欣然渡江至篁城社沈尙一林秉洙劉漢弼安鳳初等周旋左右然淸人王懋忠往在團練官時我人挾雜輩請懋忠專管韓民自乙未後每戶十餘兩討索威毒我民已三四年時自謂懷通寬三縣都統領兼韓民專管監理宣言于衆曰閔是假官欲謀害見逐如坐針席翌日淸官團練淸官[淸官衍字]賈殿武送官兵一人請余談判余乃直往談判之際賈殿武曰貴國之官雖我人疾視者前後韓官稱以撫民來則討索貴民之流離者穀腹絲身無非借於我人安得無債貴官之來討輒一夜逃去去年後我人之失債於貴民者不知幾千萬兩今聞韓官之來不無助力之心且去年貴民干涉殺事故押送李大人則不治放送貴國之法如是乎至於貴大人昔年過去此地後雖我人無不知名若被害我地豈不損我地之名乎望須不待庚炎卽往懷通兩縣條約則我亦助公且有兩國公蹟乎余答曰條約已成韓淸議約在此有何別樣公文乎逗遛數日第觀民情則民心各自派分支裂淸人煽嗾尤甚分遣社員雲遊諭飭〈35〉民心漸化十五日馳下楚城謂楚倅曰江北民情分爲四派水下則見金承洙之冤抑民不信法也水上則王懋忠煽嗾我人也嶺內初不受韓官之虐不知幾十年生長於斯幾忘故國也帽山以上則自謂高居上流目笑受侵也使國家竟失乃已乎匡夏曰我當代薦而願安枕楚郡也望賢弟不使國家失江北流民獨賢其勞且君往懷通兩郡則白衣往彼彼必不從事事岨峿且深入數百里山川阻塞馬賊橫行傷人如若兒戲故韓江[官]之越江古無其例君須膽大豈可踏虎狼之域哉余曰我亦深思則飾公服而得罪朝家猶爲甘心力能可爲而嫌於小節使大事狼狽國家大罪古人云使於四方不辱君命且以便宜矯詔發賑者存則吾欲行處權之道秋毫不犯愛民如傷馬賊其於余何留一日馬疋從者及服色一切飾公服儼然若一大人十七日至蓮下社金貞燮金承洙及山谷老叟來迎貞燮曰幾爲賊人所殺深夜持銃突入要捉假官承洙一自砲傷承洙後韓官謂假官罔有紀極俄而民狀還至伸承洙前後撫民之冤及楚倅之虐民脅余報京部余不得已百般撫慰後裹狀送分社長乃謂貞燮曰〈36〉絶域他邦惟成事業爲貴勿拘小節我深知兩國人情故江北執事服色一如兵丁樣之意已稟于分社長乃以百餘金買布倣軍服而着十名又使之擔銃在後十名着蔽陽子揷綿花如拳而導前喝途與金貞燮連轡而進於是淸人惶怯避路曰眞韓官來亟日八九十里至第四日到懷仁郡沿路見之則平原廣野皆爲淸人所居我人則絶峽山頂如蜂窩燕巢男女竝播見少者諭之見老者慰之備言我 聖上不忍忘汝常遣命吏恒臣不對揚迄未沾化甲午以來租稅輕減國勢復振往年汝等之冤抑夫悉下燭遣[命]余來撫之意乃令乃飭民或愀然曰我等歲懲門戶錢於淸人或三四十兩或百餘金或我人煽嗾淸人突入歐打傾家覆産間間有之有罪無治有冤無訴恒爲淸人之威脅今年寓於此谷明年居于彼谷遷移無常者開墌林木四年前則不懲稅四年後則懲地稅於淸人雖移去之日垣屋不能賣皆任田主或定稅居之則穀出隨地力年減而懲稅如一聞不勝矜悶到處諭之曰朝家之所以特恤汝等非取戶錢民惟邦本故也內地籍有元挾戶之別戶則雖擧實報政府公納二戶作一戶勿疑組織時年前同義之士多流落此地賴左右宣力之效貞燮謂余曰〈37〉吾輩無政府可證之蹟而又無印章只是木章彼若見疑反逐無一生還於中途余笑曰深念此事已製鐵章內書江北商務社章藏之久矣事完後以此得罪 朝家顧所甘心至懷仁縣住城外塡街觀者以百數駐縣邊兵二千餘人云官兵問來由願報正堂余但以名帖給之已而官先使人探來由答曰我欽差江北流民商務都公事員兼專權代辦管理使者也交涉之地賓主一見禮也別無他由時該郡守高暄陽赴任纔十餘日云下午二點請余乃率二十餘人僕從前呵後擁而進則大開政堂正門左右羅列兵隊百餘人六科吏屬序立鋪陳堂上預備筆硯紙物高着官服而出謂通辭曰以公禮見乎余曰客訪主則豈當公禮高曰然遂上堂分東西而坐余曰久聞大名今遂識荊感幸新莅之餘不是薰惱否高曰遠涉無惱否今賜寵臨有何公務余曰兩國水陸相[緊]連休戚相關故往年條約已成各收民人之權環球公法敞承朝令特撫恤貴界流民之意臨江閱月其在交涉互相往來面敍議約無事兩界豈非兩國之幸乎高曰願看議約余曰議約兩國紳商之遵守抑貴國未頒歟乃出示之覽迄願借一部卽與之高曰向日見車溝巡檢衙門所報則貴〈38〉流民民擾死者七人贓錢未知楚倅出給民否余曰非有死乃傷者七人高示余民訴一張乃流民李盛芝等願以淸人王懋忠爲管韓民備言韓官之失德余實汗顔答曰緣於地遠民訴寥寥向自朝家洞燭此狀故余帶都公事而來高曰貴國軍士可一用否如何而倣倭制余備言國勢之復振及乙未多士擧義之餘顚沛渡江往天津依袁世凱營中承召還國之由及戊戌協黨之起設皇國協會對抗仍設商務社破協會之後今帶職撫恤江北設社之意則高愕然釋筆後環顧左右問曰昔年果有義旅之渡江乎咸日唯唯乃擧大拇指指天曰壯哉壯哉暄陽亦有心者如天下有事則當以一旅相助仍言必稱大人而起敬百倍余曰兩界撫民之政祛㢢相恤之事當一一錄呈高曰諾日已暮還館余渡江時聞淸人於江界對岸奪我人沿江下來桴木二十一隻又掠蕩鄕里及砲傷我民修書[約]中竝言此事及三條件事一兩國交界撫民互相奉准兩國大皇帝批准議約之地詞訟及犯律之民雖一遵第五款第七款然非兩國民人交犯殺事則許多民事互相派員聽審似涉煩擾相知照施行至禁戢犯本國律禁之民貴大人知照敞員則敞員指揮各社公〈39〉掌期圖査明押歸不得隱慝[匿]袒庇敞員知照貴大人則貴大人指揮團練公局及保正期圖査明押歸不得隱慝[匿]袒庇一第四款內有永租暫租納稅之約則敞員居住依暫租例而稅則論其立商社地廣狹年給田主事一第十二款內邊民已經越墾者聽其安業俾保性命財産我流民旣種穀於中國地則地稅可納地稅外門戶錢按戶懲捧者永爲廢止嚴禁事高倅答曰昨承枉顧快挹淸芬頃誦華函益深欽佩承示兩國交界撫民各條尙與約章無礙自應遵判惟令保正禁止門戶名色一節校與約章不符礙難照判査韓國民人早年流寓中國者一切地糧租稅門戶差徭均照中國民人一律完納一秉大公若禁止門戶各錢不惟于我國自主之權有礙且恐貴國民人貪圖利益從此潛越邊界者更多轉於貴國無益然旣經重托惟有嚴飭各保正不准格外多派韓民之錢以示中韓一體承賜紙物謹領恭俟[謝]弟擬本日三四點鍾親造貴館再聆雅敎先此奉聞附呈綵箋兩匣洋毫六管點心兩匣伏乞笑納恭問行安另擬商判鴨綠江面事宜順請核奪弟高暄陽頓首高暄陽字樸庵江西九江府彭澤縣人壬午科擧人甲午科進士補〈40〉授懷仁縣兼理事府余乃以門戶錢連續送書力言不可曰今環球公法無越民征稅之法必是貴保正輩挾雜望須嚴斷高倅終抵賴回答曰复函敬悉査門戶名色是敞國保甲團練章程由政府飭判竝非保正私自挾雜載在淸韓約章第四款第四條居住納稅各事句內按各事二字所包甚廣何謂公法所未聞至另商江面事宜亦與約款第九款撈起船貨章符合而兩有裨益何所不便草此布達餘在面敍卽請旅祺弟高暄陽拜言余又修書曰吾意保正輩弄奸今云由政府飭判貴國以團練費不足侵虐我民征法外之稅則貴國商民來住敞邦設棧漢城及港口內地都市居留者累千戶毫無所征然則我國國小以軍部經費不足索出數十年門戶稅矣索出大淸之地安得不言于各國來住者乎各國必議之曰一國背約各國受侵必擧兵討不法之國貴國其擔之乎今以橫豎之說欲傷交涉和氣耶時高使人定鴨江條約三件事曰謹將現在應行商辦各款擬議呈閱是否可行祈卽示復一中國人民在鴨綠江上游山裏斫伐木植串簰由江面順水下放若遇大水沖失祗准本字本號槽船在兩〈41〉岸査認如木植沖在韓國江岸不准中國民人越江打撈在中國江岸亦不准韓國民人越江打撈以杜爭端一韓國民人設或過江採買木植必須呈驗護照有准其過江採買字樣方准放行以杜假冒一韓國民人撈獲中國人沖失木植經本號槽船認明立卽交領每料板給撈力銀一錢每夾板給撈力銀一錢二分每大檀給撈力銀一錢六分每二尺上下頂頭杆子給撈力銀一錢以照平允余謂金貞燮曰第二件護照事不得不計防懷仁界起自江界對岸而我界沿江別無藪木楚碧之民多入此界巴池江等地伐木若定護照彼必執此討我民慈厚以上則淸人多伐木我界若往通化縣不聽我護照則豈不反㢢生於下流界我民乎翌日高暄陽枉旅舍余以茶果待之因提出門戶錢事日斜不決余曰流寓之民兩國一也貴國謂門戶而逐戶收錢是我國戶錢也民不入籍不能按戶貴國請我政府乎當報我政府一場談判索出前後不義侵討之錢矣高倅乃不得已答曰非按戶派攤乃按地派攤不種穀於地則無此錢余曰旣承盛諾感謝萬萬我流民旣寓貴界種穀於地則地稅外門戶一款永除之意及各款互相交換文憑如何高倅曰然余曰公新莅必詳不〈42〉知兩界事貴民人入我界伐木者千萬我民入貴界伐木者不過數千然皆燒竈之供瀋陽大連天津北京烟台營口及大東溝杞檀美木材如山堆積者皆我界白頭山南麓木植也年前朝廷擬收入山稅而迄今未行者以其兩國敦誼也公若以護照惹起事端朝廷亦藉此行入山稅則貴國木植之貴騰十倍於今日我國之受益亦歲以巨萬計安知不責及於公乎高顧問左右良久曰願承敎日已曛余互換條款之意先書送呈矣聞之則高招各廳頭吏爛議云翌日高回答曰先後迭接手書竝淸韓交界條約一本昨以俗冗未及作復歉仄殊深門戶錢一節弟回署詳細査明除團練保護公費外實無格外橫侵之事且實係按地均攤竝非按戶苛派曾經敞[敝]前任出示曉喩在案劃永掠去桴木共二十餘隻一節現准貴道防禦來文業已派差飭査應俟査明再行核判至交界立社條約非我輩所能擅專必須徐欽使與貴外部議妥方能照判前商鴨綠江面事宜不過彼此私自商量如以爲可行卽請回國通行沿江各城出示曉諭第亦曉諭江北境內居民遵照亦不毋庸互換免侵政府之權尊意以爲然否承示示下午一占鍾光臨敞[敝]署謹當恭〈43〉俟交界條約一本謹璧容面敍祗請升安再請金文明兄均此致候高暄陽頓余乃入見曰詳覽貴札理則當然各飭民人亦好然以韓民來管流民之意另飭貴民使作梗之貴民見戢如何高曰願看貴 政府公蹟余汗出遽招執事曰汝速往持來箱裏 政府文蹟執事飛往良久返曰箱裏無公蹟余乃高聲大責復謂高曰下隷不敏未收拾而來云出去入送高曰止口說似或未可何無貴邦往徐欽使關文乎看看多疑揷眉端余曰詩云他人有心余忖度之貴國欲傷交涉和氣耶高曰來秋看之山[方電告瀋府]待回示辦法余曰諾翌朝高又枉館曰瀋電不必苛索韓民以示寬大之義則門之備一穎[戶一款]永除豈可食言余曰以已講之各條出示曉諭貴保正及民人如何高曰卽當辦法余曰公前後送官兵六名保護於弟多感玆後信息相續之意言及二十四日與高公握手相敍別使官兵二名護送出城外五十里留宿見巴池江上玉女峰突然半空秀麗如春粧淡泊乃太淸宮所在祈禱處云入興頭村召金枝秀差出公掌枝秀曰民等今春往柳毅菴受直月約長帖近洞願入鄕約則豈參商務乎余曰此是公私則公私竝行甚好遂任公掌而招〈44〉父老百般諭之社名曰新興社沿路峽民欣欣然相賀曰今日始見愛民之官門戶一款又爲祛弊先沾流民數萬金之利益豈不內附乎每一宿苦味醬腐粟飯欣欣對之臨發必一一給價民雖却之期於授之曰分社長資我數千金行贐有餘豈一盂飯取民哉民尤感謝至五道嶺回送官兵深謝高暄陽之友誼越嶺乃通化界左右藪木森天方開墌之地土沃水淸黍稷秫藷郁郁被原野望之則左右千餘里若鴻濛世界杞檀美材彌目無涯種蔘之圃不知累千百畝顧謂左右曰美哉美哉眞流民之福地也路出訪花村道路崎嶇人困馬乏夜已初更暝不辨東西涉一大川傍林下逗遛則幸逢一淸人問訪花村則曰不遠而請一圓錢前導又曰柳麟錫在處云忽一砲丸透出會中從者股栗曰淸俗多悍黨日暮人不能行關鎖門戶見吾輩必疑賊黨而然也余曰受命他邦死亦何恨然中道不幸死不瞑目從者一人遙見山川曰曾經此地此必訪花村等地乃登山四探良久大叫曰從某路來乃隨入不出數百步卽柳毅菴所住乃投宿毅菴曰往年同病同義之地握敍他邦互覺緣淺仍出示當日各處義將之錄一冊中甚悉余之〈45〉往事又曰李弼禧往羊解義後入舊日魯國訪孔氏家奉夫子像來營建 聖殿於此地招工匠次渡巴池江不幸水中吾輩終建 聖廟于家後山名曰覩龍山正殿與左右廊廡已成以華西重菴省齋誠菴配享云又曰方設鄕約則凡入商者入約可也由約入商萬萬不可且金枝秀吾已差約長何差出公事員而無禮余曰此是分民也我之所行公也公之所行私也公私竝行甚好甚好公若如是反不妨於朝令乎謂門人玉山曰當今朝令至嚴如是携貳必不免累談玉山曰戶布自約所上納何如余曰亦不可無朝令而收戶納[稅]竊恐讒言從此起時內地各郡來學者十餘人翌日冒雨抵新下界見溪上瑞氣橫亘於黃昏此是金銀氣也金貞燮曰聞此處之背負鴨江與大嶺深入近三百里之致煽嗾淸人睚䀝[眦]之怨必砲傷傾家覆産不知幾十家恐向通化則中道見敗何且從者無不戰慄而我人之已剃髮在通化縣官兵也衙屬也多馬[焉]奪我人妻奪我人財産亦不知幾十戶必法正則恐禍及其身百般謂假官而誣害爲主伏要路砲傷後謂悍黨則何余曰吾與賢弟櫛沐同苦近十年一心爲國天必佑之時從者皆以水土不服二十餘人中完全者是四人余又以水土不服及飮暑吐痰如注勺水不入口頓臥床上喟然嘆曰〈46〉誓使江北打成一片故秋毫不犯而債至六七千金得罪分社長死不瞑目從者揮淚貞燮亦頓臥同憐相病於淸館中頓無生況留兩日强起抵卯乙溝使人招沈正河不在家云時雨色濛濛衣裝盡濕渡巴池江謂貞燮曰難側者人事豈意再渡此江入通化縣住城外乃以名牒及書札送呈時六月初三日該倅乃陳璋山東人也書曰敬啓者載陽載雨氣候不齊遠聞德音識荊在邇預切爲榮蓋我兩國昔則一家今則自主往年條約已定交涉尤篤僕以匪才去年臘月猥承管轄平北全省之商務之命繼又蒙貴界流民撫恤之勅故臨江巡察有日向於貴隣郡懷仁地方民多犯約趁不一面穩議似損交涉和氣故冒暑躬進去二十二日入懷仁縣四宿而返多蒙款厚竊聞貴大人陽春和政普及流民交界交涉之禮約又所載故路又不迂故願承德音旋歸之意纔抵城外專此仰佈敬頌勛祺致書後寥寥無答竊聽人言則春間慈城倅使隷二鵬持該郡照會往通化矣彼自稱四品官官出見禮待官又付禮物於慈倅二鵬反自肥私造慈倅書答之且通倅爲其母生辰求海蔘次預給銀五兩二鵬亦自肥其後通倅覺之曰彼國官與吏〈47〉間皆無禮恨見悔欺又我人洪龍己劉基宗輩以通詞出入該郡多作孽橫侵於流民故金承洙屢爲要捉矣及砲傷承洙後楚倅移照則此輩棄此機反要捉承洙謂假官通倅出送官兵蕩我人家産而民起議逐則此輩凡前日睚眦無辜之民四人謂揮逐官兵自官捉囚已三朔餘而又嗾言假官復來更要作梗而淸人疑惑交集不知眞假不敢竝力我民則畏從者之多亦不敢作梗宣言夜襲余謂金貞燮曰騎虎之勢也不制則反嚙彼主我客不得不更言又書曰敬頌斗落政體萬祺生亢炎驅馳欲與貴大人一以敍交涉之尤篤一以定交界相安之約也實非私意寔出我政府已定之約也呈牒跨日尙靳一賜交涉之地如是斥薄安有兩國脣齒之誼哉倘聽細人之說拒人千里之外乎生公務蝐[蝟]集不得不遄歸暫且一唔申祝且不引公而來求見之地如是待人實非敞邦所聞也餘惟冀勛安始乃送人請余余入見分賓主而坐以茶果待之只敍閒說而眉揷疑惑且爲人望之不似余正色曰今日專來者論交涉之事而以閒說拖過乎敍一場各收民人之權答曰貴民貴官我民我官而已且日將曛卽還館以紙物送之彼不〈48〉受回答曰敬啓者昨日面談貴國欲在中國境內征收戶口捐一節中國地方官向以上憲札文爲憑此事貴國竝無印信公文僅止口說不獨中國無此公事諒貴國亦無此辦法嗣後一切公事務須用印信公文或緊要事件由貴國政府知照中國政府地方官以奉到本國上憲公文可以辦理至送來條約一本査閱係各海口通商章程敞縣早經奉到至於敞縣與貴國接界係陸路事宜査陸路通[章]程尙未議定頒發請査送來條約本內第十四款便知海口與陸路兩不相涉想貴道尙未將條約細看故也承賜紙疋實不敢當敬以奉璧送到條約一本仍奉還請登收是荷餘不盡敍敬請升安餘維台照翌日使中房送羊肉及饌物一擔使守門者拒而不納招中房大責曰汝國官吏無禮太甚汝官無印信公文云汝且目見乃以勅令章程及內外地商務印章視之號令如霜曰吾方啓往瀋陽府談判一切事宜而前後剝奪韓民之贓我已收錄且不以禮待人而只送羊肉則謂韓國之無羊肉乎見中房戰栗退謂從者曰誤聽細人之言以失主客之禮我當力稟老爺余謂金貞燮曰官不重則聽不重向日楚倅之說凡往來公文以管理使兼〈49〉任行之書格式送之不得不行之今事或不諧梗化之民安得從令今[急]照會于彼以壓狐疑可也乃照會曰欽差平安北道商務都公事員兼江北流民專權代辦管理使事務閔爲照會事大抵兩國交界只一條鴨江敞民流寓貴邦者多年故議約第十二款邊民之已經越墾者俾保性命財産貴縣之於敞民胡爲聽理捉囚傾蕩敞國內部派員金承洙何爲令捉議約第五款第一節中國民人在 韓國者如有犯法之事中國領事官按照中國律例審辦韓國民人在中國者如有犯法之事韓國者[領]事官按照韓國律例審辦此一節彼此都城及通商港口之約也韓國民人性命財産在中國者被中國民人損傷中國官按照中國律例審辦中國民人性命財産在韓國者被韓國民人損傷韓國官按照韓國律例審辦兩國民人如有涉訟該案應由被告所屬之國官員按照本國律例審辦原告所屬之國可以派員聽審承審官當以禮相待聽審官如欲傳詢證見亦聽其便如以承審官所斷爲不公許詳細駁辨此一節在彼此地方交涉之約也然則貴縣於我流民不啻不能保護每每以官兵及貴界人換服形者出捉我無辜流民傾家覆産民狀遝至於敞到之日現〈50〉今捉囚我民四人已至三四朔云原被告俱是我民貴縣之聽理於環球公法未聞者也於兩國議約未有者也且敞國堂堂內部派員貴縣之令捉是輕我 政府也敞管轄內地商務兼管貴界流民保護之地越江暫到欲與貴縣一遵條約交涉和氣之意也貴縣不諒公法之所重謂門戶錢而貴保正輩橫侵我民多至數十金變之甚極貴界人吳漢白晝奪我國人裴允亨之妻寓於貴地且種穀於貴地則地稅可納按戶捧錢萬國之未聞也不啻我民流寓貴界貴國民人亦多敞邦毫無所侵各治其法各治其民環球公法我民貴治我法貴法是何政令如我民訴于貴縣言之敞旣來護則原被告俱爲我民還送其官於公格當然且公法害他國之官賠償自在以我內部派員金承洙言之如不善則罪與不罪在我政府處分而貴國何關內部派員之令捉有貴國政府處分乎承我國政府處分乎如當捉而言之我國官吏亦足何惱於貴官乎且議約言之均爲兩國公法逐條査閱則或水陸竝言而立款或港口與地方竝言而立款或曰陸曰水分言而立款且善後續款及陸路通商章程亦定貴言則但云海口是何臆說且議約自大淸光緖二十五年十一月十〈51〉二日兩國 大皇帝批准頒賜紳商使之凜遵也則此是亘天下之公法俱爲臣民之道孰敢貳之惟貴縣損傷交涉和氣則敞將修報我政府及敞邦住貴領事官故如是詳陳幸須一一逐條回照否又書曰伏惟夜過政體萬福公務庶不惱神否區區仰祝生驅馳餘憊轉益難耐風土不服又且飮暑良覺悶斯蓋生與貴大人所爭者公也公務姑閣一邊請以私仰陳幸須俯諒否生向在乙未倭奴弑我 國母剃髮蒼生天下所共知也生於此時不忍忘喬木之恩一呼右袒事又不幸轉投貴國賴袁欽差矜恤于斯時與中州士大夫逐日相携厚受深恩故生於華夏君子尤常欽慕以今日言之引公姑舍兩界只隔一江則躬進貴境一以覽山川之美一以交結君子之意也顧今大勢梯船交通正男兒廣交之秋也且貴大人轉聞家在山東華閥蓋世尤切欽佩鄙誠還淺昨日承誨只閒談而不能陳懃懇之情情呈之物又承還却雖出此生之無似其在華夏君子容人似不可如是斥薄也忸怩之際俄承珍需當拜受僕僕然甚悚之過猶不往謝又偃承惠餽實涉添罪故還呈實非與貴大人未協於意而然也幸須恕諒否且易地而言〈52〉之主不恕客敢當禮乎望須細過付于太虛隨事相確相救非古人之相交乎不備崇照且使人宣言曰今若違背公法勒壓我民必報我政府期懲橫侵我人之賠償矣俄而回照內但發明因楚倅之照會而要捉承洙云云余謂左右曰人必自侮而後侮之彼亦內部派員如有罪以法從事可也輕發砲軍民心不服一切梗化見侮他國禍及百姓乃不得已答曰俱以命吏自相凌辱以致楚倅解管理之職云又前後札回答辭意款曲深深謝過繼枉館而僕從威儀勝我統相余曰我無辜之民胡爲滯囚三四朔而烏在議約第五款之法耶辭氣勃勃璋卽使人放送四民於自外滯獄之費一切補給云仍出示懷仁私約正本則陳曰何不早示使人眩惑立卽使戶科一依懷仁私約曉飭保正及民人等時從人朴陽潝言于余曰三日之費欠銀四十兩將若之何貞燮曰那處有江界牛商則付利益而得幾隻牛若何余招商人議之欣欣從之貸三隻牛淸盤費時劉基宗畏得罪逃在淸衙門內使執事直突入捉來猛杖十度善諭放送將渡江使四民尾隨同登舟淸人相與語曰如彼愛民吾等願長髮爲韓民此後不敢侵討韓民云時陳璋使官兵二人護渡巴池江至五十里而還送深謝厚誼於陳〈53〉時李輸城晃[冕]厚投名邪蘇敎往年嗾洋人入瀋陽府得來寓韓民拆[折]衝中國管理之告示已布各郡侵虐流民以煽嗾之罪捉來百般曉飭而放沈正河以中國月報示余曰朝鮮匪徒李匡夏金承洙貪虐流民云則民心安得不三分五裂而淸官亦不濫法乎余拍地曰我國奉命官吏觸處見侮民肯內附乎我深入險域如是喫苦皆前人之過也於是分送公正人罪者安之弱者慰之少者喩之孤者弔之嶺內潝然引領望風余冒暑而稍稍前進以察民情故也六月十一日踰北老人嶺暑雨滂沱憊困難振然從者莫不喜悅余亦謂從者曰打成一團從此可期庶免分社長專托之重而朝家四十年經營今幾成功耶步步欣悅乃使李東俊往西大嶺等地喩民使金貞燮往新上杜設社喩民戒之曰以威生於廉四字勿負朝家乃傳飭各社公掌曰痛彼亂類觸處煽嗾淸人作梗於無辜良民深庸慨歎玆後隨現隨捉以報惟淸官王懋忠管轄我民私自虐政收賂四五年間已出巨額近又差出專管韓民監理帖又風憲尊位帖云余當付公法以裁辦之證密密收帖以納十三日至皇城社舍弟柱鎬自京跋涉一千三百餘里而〈54〉傳 皇恩於中道兄弟相逢殊邦感喜尤倍余之渡江解民擾在五月初而受勅在十二日何其迅速也舍弟曰分社長電陳民擾及解散之由則自上卽召內部大臣李乾夏曰朕欲調用閔龍鎬久矣毋奈多廷臣之反對今聞江北之事則深庸嘉尙卽以御筆書禧陵參奉親踏啓字下賜曰不必出部聯奏使之前席署帖是謂恩賜齋郞也又呂農商工部大臣閔丙奭奉勅傳諭兄主又使農商大臣閔丙奭奉 勅曉諭江北民人故弟齋[齎]詔勅及曉諭勅專來而從姪泳采幹旋之力亦多云農商工部大臣議政府贊政閔丙奭謹奉勅光武皇帝詔曰哀哀我赤子轉徙江北歲以萬計豈無越鳥之思不耐飢寒而然邊吏常乏保護之策 朝廷未暇招倈之政 朕甚悶焉以前參奉閔龍鎬前往以撫戶口多小人才賢俊風土情況一一啓報以舒朕霄旰之憂欽此知悉農商工部大臣議政府贊政閔丙奭謹奉勅光武皇帝詔曰雖在一國一省之內離親戚棄墳墓去而之他人所不忍況棄我五百年父母之邦投身於數千里異域甘與彼人同處者豈其心所欲哉是必苦楚〈55〉萬狀勢有所不得已然也北土荒寒去京絶遠有冤而白日不照有才而靑雲莫致其中傑驁者悲憤所使遽有何往不可之心長江一帶拭淚北望渡則他邦初以一時逃避爲幸而男女負戴一年二年遂作未歸之人言念情勢恫若在己夫垈馬懷北越鳥戀南在物猶然況以爾等天良之心回首故園累累先塋草樹立望姻婭親戚皓首髧髮歷歷在眼錦城雖樂應有首邱之心矣朝廷自更張以來痛救民瘼商務擴張冤枉必伸惟才德是用爾等是思之江北今於爾等便是竝州一朝還國勢係卒難臣[身]本韓民士農工商一從韓規須與都公事員閔龍鎬另究殖貨安業之方欽體我 皇上視遠如邇視民如子之誼焉奉承 皇勅及農部轉勅感激圖報惶凜無地宣布各社民人又精寫一件宣傳于懷仁通化寬甸三縣倅一自渡江後東馳西走暫不着席到高山鎭民訴遝至堆積如山大抵江北久爲無法之地辭訟十之八非强盜事則乃殺獄重罪乃定規則付章程宣布各社公掌曰債訟昨年正月後與受者聽理然待秋熟非當分間六犯罪外一切辭訟庚子正月前事雖六犯罪勿爲受訟云云則反側者乃安以處權之道欲修伐登鎭鎭〈56〉撫內外之民使李東翼只修伐登鎭舊衙數間高山鎭民亦願留該鎭與伐登鎭民互相爭先男土女汲不兩日兩鎭俱修理余禁之不得威之不得乃與鎭民議曰姑未承朝家處分先望則居高山鎭後望則居伐登鎭俯循民情如何咸曰諾往年楚倅以要捉金承洙事移照通化縣官兵藉此竝捉金承洙主人淸人劉樹藩矣咸聚保淸約正王克好又乘此機煽嗾我人金允程金君石崔珍弼李允三亂類輩曰我當要韓風憲矣汝四洞民皆附淸歲約按戶大豆二斗要害劉樹藩曰樹藩與金承洙謀設官許地云則通倅方捉承洙及劉樹藩時承洙爲民所奪樹藩捉去時官兵討銀二錠事平後樹藩懲費於承洙次言及承洙捉致金允程輩則四漢又嗾王克好去十五日夜三更淸人四五十名我人三四十人環帀派員住我人李鳳己家打破屋宇家産汁物至於衣服一切蕩去王克好又威囑四洞民曰將入縣求韓風憲排懲銀一百兩縛去承洙及通事書記執事五六人一名眼精流出其餘方在死境之意新上[新上衍字]新下新以[上]兩社公掌飛報余大驚送人布諭則執事又被打回乃照會于通化倅曰敞邦內部派員金承洙躬親閭里撫恤貴界流民之意往來之日暫寓貴民劉樹藩家〈57〉矣貴咸聚堡[保]約正王克好與大陽里流民煽嗾要逐韓國官員自爲管轄歲收逐戶大豆二斗自肥之意向日誣告樹藩與韓官謀設官許地則貴大人捉劉樹藩時貴官兵向劉樹藩討賂元寶二錠矣日前劉樹藩家人來訴派員曰以貴國之事談燭得罪生費元寶二錠韓官當懲報云云則於派員之意兩國之人互相主客猶爲感激豈可由我而費財乎誼不可推委故捉致大陽里敞流民金允程金君碩崔珍弼李允三四人以同嗾王克好生事兩國之罪責出二錠銀寶則今十五日深夜三更王克好嘯聚貴民亂類四五十人各持銃劍圍帀派員住敞民李鳳己家顚覆屋宇凡衣服釜鼎財産等物及公蹟行橐銀貨汁物一切掠去派員則以鐵絲縛去無數亂打通詞韓志玉父子書記奉昌祚及李鳳己執事二名竝縛去一名眼精流出其餘諸人王克好使敞民連日號令猛打死生俱爲未辦王克好又威嗾敞流民曰打殺韓官吏及諸人後當入縣圖嗾韓民鄕約則無物難成威脅敞四洞民以納縣圖差之意已排捧銀一百兩云敞聞不勝驚駭捉來敞民亂類先治之意發送官兵一人又被打回告則貴鄕約强盜之罪罪亘于天是豈鄕約而保民乎不可使聞於隣國也尤切深痛者彼王克好凶悍之〈58〉謀恒以敞民爲刺人之刃自爲刺人之柄無事則曰刺人者柄也而誇大於敞民有事則曰刺人者非柄也乃刃也而反抵罪於敞民當此交涉和氣之初有此頓傷和氣之徒進退兩穴反覆煽禍豈非兩界之莠民乎且貴民奪敞民裴允永之妻於白晝是咸聚保事也裴民往告于王克好則克好覓給云而反懸裴民於大樑一宿而後歸之此等悖類今古所未聞也望須貴大人罔夜派送官兵捉致王克好照中國律聲治正法後明布兩界爲先內部派員及諸人一一救出排懲銀百兩及掠去之物連日亂獗未及令査則敞當詳査更照矣貴大人一一査還使之還給敞民安堵之境如或派員及官隷諸人一或見殺則隨品賠償民人代死公法自在敞告我政府[外部]及貴領事官使至兩國談辦之境矣不啻交界之不幸必施兩國之公法貴大人一遵議約預防張大無傷交涉之和氣噫彼王克好無法之說謂金承洙假派員云故敞邦政府公蹟竝呈一覽後還璧焉時李重英謂余曰雖內地沾化之民猶有叵測之輩況江左久爲梗化之民哉兄雖撫恤百方然彼性惡之輩挾勢淸人種種惹起事端一人作梗百人被害一人撓頭百夫影從政府使徐欽使勿侵韓民隨㢢嚴戢淸民之意頒布公文於各郡以壓淸人又設兵丁〈59〉一隊鎭亂類之氣然後江北之民不敢妄動於是乎兄布恩德如何不然此等王克好之亂無日不起甚於防川不如防源近聞安州地方隊移設江界云然於兄無急難招用之權浩歎浩歎余曰兄言甚是然至於我不敢請也未知長舌之輩何以誣告而事或不善方略國家必竟失江北而後已是所心懼者也向日入嶺內躬親閭里撫慰老小則咸曰今日始見我[愛]民宣化之官不行我如此之苦辛不行我如此之淸愼則今日歸明日反事有大小理無大小諸葛七縱七擒使南蠻非力服也乃心服也我行渡瀘之苦於數朔兄必知之我當布陳方略稟于政府惟待政府處分而已如有設兵一隊以鎭兩界處分則餽饗之預算在何重英曰吾料江北之民盡爲收拾必過五六萬戶兄以戶役合二計一之意從民願報政府則視視民如傷之政而更喩民排算一隊之費則民必影從者較歲懲門戶於淸則未及十分之一也況擇其俊秀者參隊長之榮則亦爲人才售用之路也一心乃公何患欠算余愕然曰智士所見略同余思長舌之輩不思爲國專事巧令故不敢强請政府也二十一日以咸聚保王克好作梗事更寄書于通化倅陳〈60〉璋曰一別如昨懷仰尤切近聞邪敎屛息日洋船俱敗於大沽等地云抑子夜一雷擊破天地之否氣而萬戶千門從此開否敞邦士大夫相與言曰以若中州之大四海之廣四億民族之衆往年困於一島夷蔓延之禍遂使敞邦有不共之讎大小俱瘁脣齒尤講陽復何其遲耶燕趙悲歌往往發於擊筑之市轟天喜信今自西方在東之士莫不風生袖端仰祝華夏君子獨賢其勞而如生之愚隔坐江頭聞半夜江聲鐵衣東征之氣願效古人而一念徘徊而已又聞貴郡境內邪學之徒亦一朝聲討云果爾否夫子之道日月也亦蒼生之耳目爲雲所蔽日月冥冥下民之失耳目久矣安得不迷東西於㓒夜哉以大人衛正斥邪之功將啓萬民之耳目則雖敞盲者豈不欣往願氓哉欽仰欽仰生去十三日返國寓高山鎭方修理舊衙憊困難振第今日交涉和氣之時蚩蚩之氓不知法網之嚴怙犯豈有如鄕約王克好者乎其事其實詳陳照會中覽後特正其罪彼我之民互相流寓一也貴民之在敞邦漢城猶敞民之雜居貴界情誼相孚物貨相通屢百年便是一室望須貴大人以勿侵韓民之意更飭各鄕約又出給貴執照於敞民頭領十人如自下有事則敞頭民有直稟大人之權〈61〉民必互相敬畏如王克好者必不更有矣豈非防源之道哉貴民在漢城亦有此例只有有事來告敞府之權使敞民不敢犯貴民以示保護之友誼則貴大人亦望須俯諒焉太極扇二柄生紬兩端仰呈笑納情領否伏頌庚炎勛安公務不至惱神否二十二日淸人於江界沿江等地奪我人流下桴木三十餘隻砲傷我人事江界倅及懷仁倅檢尸次方會于江頭云是地方所關非我所管然余則再往修契誼次往中道要見懷倅懷倅不來而見刹溝衙門王濬敍一面而歸二十三日時舍弟柱鎬將還京使李重英同往寧府而付信于諸弟及家族踽踽絶域懷緖萬端二十八日又裁書于通化倅陳璋曰伏頌亢炎貴政體勛安敞內外公務無展眉之暇而今見安鳳初報告則該社公務不能就緖者玉石洞民許再昨日薛際亨寄書曰王官懋忠方在鳳凰城而公文內今望前行三縣都統官兼朝鮮人官云云而如有韓官往來者卽其地結縛捉待于團練局而從當嚴勘云云矣事若如是於敞國萬幸萬幸貴國商民人在我漢城及沿海各港口與地方者不知累千戶未有如王官之歲懲流民軍需錢逐戶十兩事也未有如王官韓民監理之事也兩國條〈62〉約纔成去冬貴領事又於去春來住敞邦則我政府必質問此事矣實有是事敞國亦懲出貴流民三十餘年居住稅而差出淸監理矣彼此一也何惜之有若約外事不待敞國之質問貴國必施不法之罪矣且各國公法不伐人之國民不易治故雖聞此說置之度外且貴敎不信奸細云則敞在邊隅惟以交涉和氣爲務噫彼王薛兩人表裏煽惑且敞民申鳳仁金永純同聲相和欲派差捉來則王薜兩人必作亂乃已議約第五款第四節只有犯本國律禁在彼國地方者派差協同査明押歸本國不得隱匿袒庇故玆以仰煩尊聽望須承遵兩國條約卽發公局兵申金兩漢押送敞署如何王統領敞承皇勅撫恤流民之地豈不報政府而請談辦乎竊聞海外通信則貴國近日傷德國公使及暗助義和團列國軍艦聯合而至深恐殃及池魚之歎正兩國君子憂慮之秋也二十九日通倅回照內王克好已飭刹溝衙門査明押辦而金承洙及諸人遺失之物當俟貴照辦法云云時以花氈一對送之七月時淸國燕京及山東關東等地義和團大熾素忿各國之凌侮中國皆以排外思想不謀同起然以二〈63〉十五字符呪選民間十五歲童稚敎以擊劍超躍之術過三日便云能通術法眩惑爲主若漢之張角我國甲午東學之類也皇親端親王及西太后惑於邪術幸或風雲變化之術能掃淸列强之侵迭然在[畏]列國條約不敢陽煽動故陽抑陰護而暗令各省巡撫都督降義和拳到處依例擧行之勅於是如潮忽漲日起千萬妄殺外國公使及商民燒邪蘇天主各敎堂各省大擾日美英法俄德奧意八國兵艦雲集天津以日本爲司令官號聯合軍累次接仗義和團及官兵死者以百萬計聶士成宋慶將官等死者三十餘人云故念昔毅軍營窮途之款待不勝追悼之懷八[是]月聯合軍陷北京光緖帝及西太后播遷峽西省百官在荊棘中而各國據天津及北京權設政廳以治民人愛新宗社幾將亡焉時李鴻章以講和專權委員方周旋于列强而各國議端親王處罰我國與淸水陸相連恐有西北之憂使安州地方隊及海州地方隊移屯鴨綠沿江九郡軍容服裝皆倣外制者日久峽裏我民與淸人不見軍容之餘誤認日洋兵自東而來凡義和團及淸兵之在始興府及瀋陽等地者謂防日洋兵而雲屯〈64〉沿邊對岸兩界一朝胡越民心大擾沿江我民之擔負避亂者日以千計時霖雨支離百川漲溢余與數十人住伐登鎭令數三人達夜巡警望見皇城社等地五色旌旗彌滿廣野入江界府則沿路哭聲震地府中一空謂郡守李昌濂曰速募民砲聲言迎擊則沿邊山川險要彼恐有備不敢肆然渡江昌濂曰余今貶罷年前淸國馬賊欲侵沿郡故募砲防備以免其禍之後請經費於軍部則部訓曰今新式賊不內侵而生費是無證不支出云云故余擔其費也朝暮治任之人豈問邊憂哉余浩歎而出議於地方隊崔參尉則彼亦不知所出且越邊寓民尤爲惶怯逐日偸過江岸逼余起兵迎敵以濟蒼生余泣謂左右曰距京千里若承朝令後備邊警所謂障漳河之水以活鮒魚涸轍之說將焉用哉將求邊民於枯諸市乎余非不欲一朝蹶起立招十萬之兵以防兩界之侵迭不啻官卑今各國條約先動者賠償則第觀侵入我數郡後我當發謀出慮以濟邊民若先妄動反貽國家之憂且以往年擧義和黨常有害我之心奈何然告邊警于 朝廷是我處邊隅之職俄而崔參尉使兵丁登山涉川告急于平壤鎭威隊云時各〈65〉站軍隊必使人轉探江北動靜者以其我掌握江北之權而江北各社公掌及有志之士以槽船夜則偸渡備報情形如紛紛雪片余急使人專送寧府電報于京社曰義和團聲言渡江事在朝暮地方隊寡不敵衆自商務社爲先募砲兵防禦何如伏俟處分又裁書于觀察使趙民熙矣噫時自沿江至寧邊府四百餘里無電線山川阻阨若百二秦關信息之阻隔若天上自上聞聯軍之陷北京召公使徐壽朋問曰淸朝二百餘年根本深固何其一朝如彼而甚至帝后播遷峽西哉壽朋對曰朝廷不用賢人只聽小人之說賣官瀆職數十年今日之禍亦云晩於是 上內省大懼免各道觀察中趙台亦與焉然趙台爲人慈詳剛明一道賴安里門夜開時各郡守宰亦多遞罷訛言四起民心胥動趙台亦惶急還朝而余在絶峽漠然不知中外情形十五日余自江界至渭原郡守徐榮九握手曰遞職之後不聽政屢日邊警如是奈何余請新聞誌一一覽閱則淸匪逼境不無北邊之憂派送鎭威隊地方隊備邊之意照會於淸公使徐壽朋一段及論說中北京大亂一則脣亡齒寒之慮二則甚痛洋夷之猖獗一段〈66〉言辭令人灑淚公證可質彼眼余謂徐榮九曰持此新聞渡江以解非日洋兵之惑則邊警可解不然訛言添薪火發必燒榮九曰此是國家大功彼方嚴備江岸渡則發砲孰肯挺身以渡哉翌日與一隷渡江往段統領書田營一場談辦以證三千年大小華之誼及交隣處變之道乃輟[撤]沿邊之警備民心稍安然京信杳然騷說去去叵測余謂喫苦於邊者爲國殫竭而逆黨復據朝權吾輩將安歸乎乃中夜撫枕而思則江北民心如是汹湧而戶戶獵士也江右則沿邊砲丁一國精兵之最而地勢環千餘里天塹也古之遼金勃海肅愼皆興旺之地余之收拾民心反不幸也迨此時長舌之輩以跋扈之意讒于上則曾母之投杼亦未可知且嫉姤之輩與淸匪表裏云則日前發電反疑讒言者之資往在壬辰以若忠武公李舜臣之功防禦沿海猶被讒言況幺麽如我之類乎迄今無回電不若速往面 君受命乃自疑自惑之心晨起抽爻使瞽者解之速往則吉遲則凶以金元燮沈尙一李東俊等署理社務羈縻江北民心二十六日乃冒雨登程收藏江北設社劃區之地圖歸化收籍之摠戶口表懷通兩縣私約之各款正本及李匡夏〈67〉民擾時納侤管理使委任之證平北正倫篇等也八月初一日抵寧府觀察趙台赴京有日人思去後方立頌碑回思春間府與社源源靡盬之誼則若一場春夢有隔世之感府主事韓鎭國惠我一絲帶時使姜元秉留寧府以察各郡社務又寄書于四從姪泳夏及金元燮江北各社公掌曰朝廷晏然所傳皆訛說暫往京師以觀動靜而至於社務不可自下擅廢者奉勅如昨千萬專一視務以待余復還初五日抵平壤十六日抵京往見碧洞農商大臣閔丙奭則大驚曰倘知事變而來何迅速哉去五月人讒柳麟錫付於淸匪方欲內侵又僞造通文使丹陽堤川等地知委預積糧草故朝廷方十分危疑中大父請募兵防匪之電又到此時人已密讒大父與淸匪合勢已陷平北●[●衍字]社長李鍾根[沈相薰]持電報入稟時政府閣議日也或云是內實謀作亂而陽請備邊之策或云已陷平北之說外間喧騰朝議紛紛上大怒卽使警務官文鳳梧拿致柳麟錫閔龍鎬處分則法部協判李根澔力稟曰閔龍鎬必無與淸匪陷平北之理者雖不與臣密邇然往年南北黨和解之地臣見其爲國公直也召之可也召而不來以拒王命討之可〈68〉也拿取亦可也傳說近於虛也備邊之電是實也信虛疑實反捉命遽下進退維谷逃命他邦亦未可知雖已叛言之無益於事而徒損國體而況以江北專管之命如昨乎至若柳麟錫赦罪宣諭已有年而處絶域嫌疑之地如何措[處]分臣未敢質稟云故余又聯奏則大父以召還處分而柳麟錫終拿來次警官已登程且 命余傳勅於大父故發電於署理觀察寧邊郡守不過十日云云余乃以前後經歷及文蹟詳言則毅齋台曰我嫌於至親難可質稟云云乃見商工局長吉永洙則極北千餘里何其還朝之速哉余曰久無回電故欲面受 君命而自沿江至平壤千餘[近千]里跋涉霖雨中抵甑南浦登輪船方入城也詳言社務之顚末而受[示]前後可證之文蹟紫陽台慨然曰有功者蔽之可乎當隨隙詳陳而柳麟錫近做何況余曰與五六門徒不脫深衣大帶沈潛乎聖賢之書絶域荒北以闢破[闡明]斯道自任玉秫之飯猶不充腹往年擧義時鎭東將李弼熙往古魯國見孔子祀孫衍聖公因謁 聖廟痛哭告起義之顚末得夫子眞像副本歸與麟錫議設聖廟於江北訪花村招工匠次渡巴池江今春氷溺死毅菴悼知友之不遂其志今春創聖廟以尤菴華西省齋雲菴從配廊廡〈69〉仍設鄕約但彼詰我以商務之名不正言不順之帖施約員而已七月初義和團毁文廟反被逐方住江界等地誰謂柳毅菴之付淸匪也昔人以華西先生學邪蘇而朝廷至有拿質之事矣我與麟錫付淸匪內侵云者誠天道之未解也紫陽台聽未了歎曰一部春秋無地可讀誰謂閔友之亂類乎當力稟 天陛時李根澔握手慰余曰人不識閔友之幹蔽北邊向日電報之來朝廷讙然曰早殺此類迄今存養以起北方之憂噫亡國者皆此輩也吾與兄俱退耕田野以待天下淸淨可也閏八月一日吉永洙入稟余之還朝 東宮侍側先問曰柳某之黨幾許吉永洙以余言一一詳奏 皇太子乃轉稟于上曰曩日之言皆欲讒害柳麟錫今聞龍鎬所傳則只與五六門徒麤飯講學反被團擾渡江內寓情景不忍聞 上曰果然乎哉吉永洙奏曰臣豈欺一言乎 上曰龍鎬前後文蹟皆收入越五日永洙入侍時細陳民擾之散署理管理使之由與淸官談判締約顚末以處權之道倣軍服鑄印章禁門戶錢兩鎭民爭先修理渡江輟沿邊之警夜已深時侍上左右只東宮嚴嬪而已 上欣然大贊曰眞可用之臣也治通詞〈70〉釋罪囚奇哉奇哉地圖及前後文蹟一一乙覽後付與皇太子曰正倫一篇尤足嘉尙地圖當再入於後日顧謂吉永洙曰除楚山郡守管理江北何如永洙對曰此在上處分而閔某眞非常之才置於西北足當一面之長城 上曰使之待 命過月餘聞文鳳梧拿柳麟錫自江界至黃州界時申芝秀聞我直稟柳某之事訪余曰當何以蒙放余曰吾使張漢基周旋久矣吉台方病臥不然彼樂善好義之心豈至今日居無何閔致憲力稟于上曰聖主在上然後賢臣可容於下柳麟錫橫被罪命 閔龍鎬可以質明 上曰聞之熟矣乃令警務官傳 勅文鳳梧放柳麟錫乃還余嘗在江北時柳麟錫以鄕約員許布商帖[商帖之布鄕約員]累詰於余曰公欲行羲淵輩之事乎余以公私之務不同反駁矣適有拿來之命彼門徒囂然疑我讒上故往年堤陣後軍將申芝秀與我深契而或[反]回避於道欲發明其師毅菴之冤往言于毅齋台則只云鄙族龍鎬知之焉則彼愈惑其答及毅菴之放芝秀來謝曰今日之事伊誰之力余笑曰儒者迂曲每每如是我朝五百年曖昧之被者豈其小哉芝秀甚愧之時宋敬仁付局長玄相健視察三南以捕東學餘黨民心甚沸貪賂尤〈71〉甚使玄相健詛毁萬端而能歸化江北歲增巨萬財源上乃以宋敬仁除西北視察兼江北視察又以曆書三千秩傳下吉永洙曰使閔龍鎬除頒曆使往頒江北永洙不受曰今若頒曆荒北流民宜宣詔命諭民乃國家大體只令某頒給不近於私事乎臣以一方之才薦于朝而聽細人之說延拖五六朔絶江北民情一也恐北邊之無備二也某若不稱職願以全家保之時閔致憲閔丙奭亦聯奏 上意猶未決謂軍部協判李漢英曰龍鎬江北之功甚嘉尙然毁者衆朕甚苦焉對曰隨機應變足可以禦邊之才 上曰使龍鎬除義州郡守而姑先除中樞院議官何如對曰朝廷四十年未遑之事今始內附又使他人臣恐民心又不服也時公事廳內官或拍地曰誤國之輩力蔽天聰竟失江北之民惜哉惜哉上使吉永洙再入地圖乙覽時永洙因陳荒北民情 上曰第待之而奄及歲暮余謂吉永洙曰君疑臣危幸賴諸公之力復往江北譬若擧千鈞之重於萬仞之上而墜下之速在一錘之傾侫口吾何防哉吾欲雲遊四方永洙百方撫言然不聽乃裁書于江北各社公掌及在鎭視務諸公曰吾爲國不忠事不諧則諸公待〈72〉賢者期圖完成吾今南走於越卽發向海外辛丑元月望自仁港乘輪船泊上海周覽江浙福建諸省名山大川自香港轉入越南東京海陽頓定及雲貴諸省越明年壬寅夏返國八月蒙 明成皇后緬奉準備時監造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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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丁酉仲冬 復齋稿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