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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주흥사단

    콘텐츠/미주흥사단 [] 에 대한 전체 1490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881 김병옥이 김병연에게 보낸 편지

    지금의 형편이 대단히 어렵다는데 분주하신 중에 吾兄은 어떠하십니까- 저는 잘 있으며 건강도 하올시다. 이 病院에서 나가려 하면-弟가 이곳 올 적에 兄이 병원에 오셔서 會에 참석하셨으므로- 이곳에 오셔야 되겠습니다. 알아본즉 다른 사람이 와도 된다 하니 상항(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이에게 편지하시고 주소를 알게 하여주소서. 얼마 전에 몇 십 전에 우표를 넣어서 편지하였는데 아마 병원 우편국에서 검사를 하고 전한즉 보내지 아니한가 보올시다. 의복이 없어서 곤란하오니 弟의 行이에서 의복을 보내어 주소서. 一, 二원을 보낼수가 없어서 보내지 못합니다. 분주하시고 경제의 형편이 어렵다는데 미안하올시다. 兄의 건강을 빌고 이만 그칩니다. 不具

    882 박영관이 김병연에게 보낸 편지

    伊來晩秋. 兄候 連安하시며 同留諸友 均安耶? 仰祝至慰. 弟 此處에서 事役하고 있습니다. 아직 糊口나 하고 지내옵니다. 這番에 經營하던 果萊店事는 不如意하였지만 앞으로 어떤 機會가 다시 생김을 苦待하옵니다. 仰懇하옵는 바는 鄙兒 元圭가 開城白蔘 拾斤을 金龍善(김용선) 氏 子弟 便에 付送하였다 하오나 弟는 아직 時間이 無함으로 安往치 못하오니 貴兄께서 受苦로우신 대로 推尋 任置하심을 付望이외다. 關稅를 얼마나 주었는지 알아보시고 代給하시면 좋겠습니다. 金氏 子弟들에게 航海無撓를 傳賀하여 주심을 바라나이다. 以後에 便이 있는 대로 通寄할 터이니 其時에 付送하시옵소서. 詳細한 通情을 爲하여 어쩌면 一次 進謁하겠습니다. 餘圖不備上

    883 정국현이 흥사단 서무부에 보낸 편지

    김군을 뵈온 지 매우 오래되었습니다. 연중(동광)대금 보내라는 통지서 받고도 속히 대금을 보내드리지 못하여 매우 미안합니다. 三元쵁을 동봉하오며 연하여 김군 귀체 만안하옵시며 경영하시는 모든 일에 재미 많이 보시기를 바라고 이뿐 그치나이다.

    884 한승인이 김병연에게 보낸 편지

    日前에 주신 편지를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 동안 몸이 평안하시지 못하였다니 퍽 안되었습니다. 速히 快差되시기를 바라나이다. 「우라키」에 廣告를 許諾하여 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나이다. 左의 몇 가지를 말씀드립니다. (1) 鄭一亨(정일형)이란 學生이 入團키로 되었으니 約法 一部와 入團志願書類를 鄭一亨(정일형) 君에게 보내 주시오. 그의 住所는 如左합니다. 그의 問答을 通信으로 하고 通常 團友 問答은 今年大會에 하게 하시오. (2) 宋基柱(송기주)가 복단하기 원하니 다시 권고하시오. 그에게 보내던 東光이 아니 온다니 何故耶? 六月부터 아니 온다고 합니다. (3) 許然(허연) 君과 弟는 今年에 歸國하게 됩니다. 겨울에 뵙게 되겠습니다. 항상 평안하시기를 바라나이다.

    885 장성욱이 김병연에게 보낸 편지

    久阻인가 보외다. 무슨 幸運이 제제 下여서 그리 되는가 보옵니다. 學校로 歸來하기는 勿論 벌써 朔餘 前이오며 學課를 兩拾하였습니다. 너무 時間을 많이 虛費한 것이 忿하나 形便에 依하여 滿足할 밖에 없는가 보옵니다. 其間에 團에 對한 消息을 너무 듣지 못하여 아무 것도 모르는 判인가 보옵니다. 可能하시면 消息을 좀 주시오며 그리고 지금 崔熙松(최희송) 兄은 어디 계신지 좀 下示하여 주시옵소서. 늘 康旺하실 것을 믿으며 이만 쓰옵니다.

    886 천세헌이 김병연에게 보낸 편지

    比來 安寧하시오며 公務에 何等 勞瘁하시나이까? 이곳은 다 如前하외다. 弟 日前에 前方으로부터 學成錦還而路에 臨한 金聖采(김성채) 博士의 來訪을 際하여 吾團에 加入키로 決定된 고로 入團請願書를 台呈하옵는 바 入團式은 貴處에 當到하여 團所에서 擧行키로 하였사오니 以此後處하소서. 入團金 及 諸般手續을 다 貴處에 가서 하기로 하였사오며 貴處 當到 日字는 다시 通知 하오리다. 餘祝. 兄體 내내 健康하나이다.

    887 임창모가 보낸 편지

    같지 않은 사람을 同志로 두었다가 래임쓰로 콜롬비아로 시카고까지 電報질에 金錢도 勿論 消耗되었지만은 그 동안 마음은 어떻게 아팠겠니? 弟는 에임쓰에서 落望하고 떠날 때에는 시카고 오는 當日로 鳳成(봉성) 君과 商議하고 紐約(뉴욕)으로 하여 자취를 숨든가 移民局에 直接 自由를 하는가 兩端 間에 할 양으로 鳳成(봉성) 君을 버스 停留場까지 불러 내인 것인데 金君을 만나자 皇甫君과 朴君을 다 만나게 되어 마음대로 못하고 하루를 公園에서 허비하는 同時에 兄의 電報와 飛行書信을 다 받고 마음을 안돈하여 그 다음 月曜에 루이tm學校에 入學을 하여 에임쓰에서 하려던 科程을 다 擇하여 每日 八時 三十分부터 午後 三時까지 每週 二十五時間式을 學校에서 보낸다. 金錢으로 말하면 에임쓰에서 餘在 없는 九十弗인데서 八弗을 버스 주고 市俄古에 내려서는 皇甫君의 車로 다니기 아니 쓰고 八十二弗에서 學費로 五十六弗 書籍費로 七弗을 쓰고 餘在 十九弗에서 흐지부지 다 없어지는 모양이다. 只今 于中에 五弗이 있고 콜롬비아에서 書籍 살 때 割引으로 주는 金錢이 四弗 十錢이라고 再昨日에 첵으로 왔다. 九弗 가량이나 있으니까 이것으로 車費하여 가지고 學校에 다니겠다. 아직은 염려 말아라. 食事는 일을 한자리 얻어야 하겠는데 아직 못얻었다만은 將次 되겠지. 아직까지는 二食麵包와 或 三四日 一次式 外食으로 지낸다. 夏期에 羅城(로스앤젤레스)서 잘 먹고 온 기름이 아직 남아 있으니까 몸에 損害까지는 없다 근심마라. 房은 千君이 下層을 주어서 그저 있다. 千君이 他處로 떠날 때까지는 염려 없을 듯.... 食服은 日氣가 不時에 칩기로 컬럼비아로 傳書하였더나만은 四寸들이 必要한 것만 小床子에 싸서 부쳤다는 書信이 昨日 왔다. 千君과 黃君은 飮食店 하는 데 日七弗 商業을 못한다니 利子는? 皇甫君은 일 잘하나 貯蓄은 無望하고 朴君은 自己는 學校에 다닌다고 하나 남에게 들은 즉 가는 것 같지 않다고 한다. 自己일 自己가 處理할 터이니까 내가 左右하여 말할 수 없다. 그런데 崔熙松(최희송) 兄·金成奉(김성봉) 兄·申斗湜(신두식) 兄·沈相穆(심상목) 兄은 다 平安이나 한가? 그리고 무슨 잡들이나? 게다가 桂君과 金君이 더 參加하게 되어서 兄의 當面問題가 참 거북하겠고나.... 우리 經營하는 바가 된다면 明年이라도 前途가 보이고 不然이면 同志도 處問題가 우리 團內에 第一 큰짐이다. 三箇週日이 三年과 같이 길어 보인다. 一一이 消息이나 주기를 願하며. 內地 消息이나 더러 있나. 여러분들에게 問安을 빈다.

    888 임창모가 흥사단 서무부에 보낸 편지

    前日 移民局에서 보낸 書類로써 마음 조렸겠지? 卽副으로 羅城(로스엔젤레스)에 回答하였다. 內容은 나로써 당신들께 用心하게 함이니 미안하외다. 羅城(로스엔젤레스)에 留하는 處地에 四寸病으로 秋期 入學에 所望이 托었다가 秋期에 늦음을 알고도 또 母校로 向하였습니다. 學期가 約 二週 늦어져 入學을 不許하고 不得已 此處로 와서 루이쓰 學校에 入學하여 科程은 數學·化學·物理 十五 유닛에 二十五時間 配當입니다. 渡來 後로 直接 內容報告는 일찍이 無經驗이기로 學校 當局이 하는 줄로 알고 아무 말 없음은 本人의 經歷 不足이외다. 以後는 住所의 形便이 變하는 대로 報告하리이다. 厚意를 빕니다.... 다음 一日을 지나 土曜에 華盛頓(워싱턴)으로 同樣의 書式을 보내었다. 아직은 염려 없을 듯... 日前에 朴正裕(박정유) 君이 桂君에게 오는 書類를 羅城(로스앤젤레스)으로 보내었는데 아직 받지 못하였던가? 今日 移民局에서 잡으려 왔다 갔다고 하데. 注意함이 可하고 金鳳成(김봉성)은 아직 말 없으나 不遠에 그럴 모양.... 弟는 아직 그렁 지나며 千兄이 自己 집에서 每床 十五錢式만 물라며 몸을 좀 돌보라고 그렇게 勸하기로 저녁 한끼만 千君 집에서 먹고 지나간다. 그래도 기쁨뿐이다. 네 書信 中에서 弟의 一生을 願하는 事業이 不遠에 始作될 것을 알게 된 後로.... 그것이 오직 우리 同志를 救하는 方策.... 우리 團을 건질 正途이다. 此後 團의 支持者는 오직 너와 내가 됨을 깊히 알고 우리는 그 目標로 죽으나 사나 나아갈 뿐이다. 어서 始作하고 또 다른 곳 보아서 相當한 應處 五六個만 만들고 明年 夏期는 할 세를 始作하자.... 弟도 온 길인 즉 一年을 지낼는지? 半期나 지나서 나갈지? 形便 보아 힘껏 兄을 도우마. 宋兄에게는 以後 長書를 하려 한다. 馬兄과 宋五均(송오균) 兄께 問安 못해서....

    889 임창모가 보낸 편지

    지나간 主日날 밤에 地方會로 모여서 大會일을 討議하더라. 어떤 이가 弟를 主席으로 薦하였는데 出論이 弟는 本團 將來와 經營에 對하여 演士가 됨이 主席보다 더 맞겠다고 하여 演士로 薦. 兄께 弟를 擇하기에 아무 말도 안했다. 그리하고 主席은 崔鎭河(최진하) 君이나 李炳斗(이병두) 君으로 하되 먼저 崔鎭河(최진하) 君에게 問議하여 할 수 있다 하면 崔兄이 될 터이다. 이 묻고 答하는 手續이 時間問題로 아직 確定이 못되어 報告를 못한 것이다. 日字는 一月 一日로 하자고 하였다. 弟의 辭免請願書를 修理하고 이 地方報告를 기다려서 措處함이 좋겠다. 房은 千君 借屋에 留하는데 재니터 하여 주고 방 벗이 있기로 하였으나 時間問題로 재니터 노름을 잘하게 못되기로 只今 두 주일째는 每週 一弗式을 내니까 千君은 未安하다 하며 사양하더라만은 사양한다고 마음에 定한 것을 내가 뉘에게 讓步하겠나? 일은 午後 一時부터 밤 十時頃까지 姜永文(강영문) 氏 飮食店에서 하고 每週日 주겠다 하더니 지나간 火曜가 雇價 주는 날 일을 넘겨 성의 있게 보아주니 五弗에서 더 깍을 수가 없다고 주더라. 一周에 五弗이 너나 나에게는 우스운 돈이 아니냐만은 自己가 生覺하는체 하니까 내가 알면서도 미욱한 체 하였다. 빈주 간에 잘 지내 가는 故로 어제오늘은 休暇이라고 學校가 없기로 終日 일을 하여 주었으나 그리하니 안심치 아니 하면서도 일은 더 못 주어야 다니는 듯 한 기색이 보인다. 있는 날까지 내가 姜氏에게 忠僕노릇을 하여 주고 갈 作定이다. 지나간 主日은 아니 이주일 日日間 車費로(一弗에 十五個 토큰) 八個 外에 一仙을 성냥 사노라고 쓰고 전 주일에 남은 것 一弗로 房貰주고 주머니에 五弗 十五仙이 고였다. 來 火曜에는 九弗(房貰 주고도)의 所有者가 된다. 이렇게 모아 來 一日 二日에 半學費라도 만들었으면 하는데 어디 알 수가 있나? 今日 市俄古 移民局에서 오라는 書信이 왔는데 二時에 오라는 것을 三時에 받었다. 그러므로 後期를 짖자고 書信을 써 부쳤다. 여러 同志들이 다 平安하지? 장명훈 君의 新家庭에 祝福한다. 沈兄과 馬兄과 崔金中(최금중) 兄이 다 어떻게들 지내는가? 내가 외롭고 困할수록 同志들의 生覺은 더욱 깊다. 田耕式(전경식) 兄이 日前 本部에 倒着이라는데 電報로 昨朝에 말은 잠깐 하였으나 아직 만나지 못하여 細細한 事情을 못 들었다. 約 二週間 本部에 留한다 하며 終日 만나기로 하였으니 만나면 알 것이나 經營이 잘 안 되는 모양이다. 兄아 今後에 무슨 要領을 적으려고 적은 手帖을 가지고 갔다가 그만 團所에 놓고 왔다. 누가 所用한다면 좋다마는 萬一 所用하는 이가 없으면 以後 書信中 넣어 보내라. 學科 時間에 公式은 적은 冊에 적어야 間日 보는 日科試驗에 견디어 배기겠다. (적은 黑色 革衣에 內部에 弟 姓名을 記錄하였다) 네 병이 낫고 事務를 繼續하는 것만을 한없이 기뻐한다.

    890 이혜주가 송종익에게 보낸 편지

    저간 하와이에서 올린 편지는 받아보셨을 듯 합니다. 다시 문안 드리오니 형후와 부인 님과 아이들이 다 안녕하시옵니까? 앙축이올시다. 제는 평안히 집에까지 왔사오니 염덕인 줄 알고 감사합니다. 앙고하옵는 바는 Security First national Bank, L.A. Sixth and Spring Office 561 South Spring Los Angeles, Calif에서 받은 Draft. no. 77381號를 잃고 다시 Draft Cheek 얻는 일에 대하여 형님에게 위탁하옵니다. 형님께서 담보하셔 서로 따로 부쳐서 보내 주옵시기를 천만 앙탁하옵니다. 평양에 있는 미국선교사 William N. Blair의 소지 증명하는 편지와 저와 형님의 담보하는 서식을 동봉하여 드립니다. 편지는 은행에서 제에게 통지하기를 한 담보인과 평양은행의 증명서를 얻어 보내라 하였기에 財産家 李春燮(이춘섭) 氏 署名 擔保人과 같이 은행에 가서 문의한 즉 은행 사무원이 우리 은행으로 교환 아니하였고 또한 문견한 편지도 없는데 증명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답함으로 李春燮(이춘섭) 氏 自筆 署名捺印한 담보서식을 결정하옵니다. 아마 형님의 담보만 받고 곧 하여 줄 듯 하온 즉 별 소용이 없을 듯 합니다. 이 사람이 영문을 쓸 줄 알지 못하여 제가 썼습니다. 朝鮮 법대로 漢文만 自筆 署名과 捺印 있으면 되는 일이올시다. 혹 소용되오면 형님께서 그렇게 설명하시옵소서. 이 사람의 재산은 백만금 부자이올시다. 그렇기에 은행 사무원의 말이 담보인이 불신임된다는 것 아니옵고 은행에서 하등 관계가 없으니 증명서 할 이유가 없어서 아니 하여 주겠다 하면서 以後 이춘섭 씨의 신분 조사하는 편지를 羅城(로스앤젤레스)銀行에서 平壤朝鮮銀行으로 보내면 그 시에 담보인 재산가 된다는 증명을 써 답장하여 주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와 친구되고 이전 같이 선교일 보던 Dr. W. N. Blair 목사를 찾아 문의하니 그의 말이 羅城(로스앤젤레스)계신 친구에게 부탁하여 담보시키고 다시 드래프틱 얻도록 주선함이 제일 첩경이라 하면서 자기 편지와 담보식 양서도 써 주기에 형님에게 이렇듯 앙탁하오니 괴로움을 기탄치 말으시고 극력 도와 주시옵소서. 참 퍽이나 미안스럽습니다마는 형후 늘 건강하심을 빌고 이만 실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