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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자료

    콘텐츠/독립운동가 자료 [] 에 대한 전체 5845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2661 한길수가 민찬호 목사에게 보낸 서한(1941.8.28)

    우리는 이제 프랭클린(Franklin)의 경고와 충고를 심각하게 고려해 봐야 할 것입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우리가 마음 속에 간직해야 할 사실들 이승만 박사는 안타깝게도 우리의 협조 청원을 계속해서 거절하고 있습니다. 그의 1941년 6월 30일자 서신에서 그의 고의적인 책임 회피가 드러납니다. 김호 의장이 국무부로 보낸 6월 23일자 서한과 내게 보낸 8월 21일자 서한은 한인연합회가 불성실하고 위선적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들의 공식적인 행동은 제게 보낸 선한과는 분명 대조적입니다. 안(W. K. Ahn) 씨가 제게 보낸 서한은 회의 직후 내 관직에 대한 공지입니다. 김호의 1941년 6월 12일 서한도 같은 공지입니다. 김호는 국무부에게만 서한을 보냈습니다. “한길수 씨는 한인연합회의 미국내 공식 대표의 권한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또한 당시 예산액 논의에 대한 연합회의 의도에 관해 명확하게 설명했습니다(이승만 박사와 한길수 씨). 그는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우리 연합회 예산액이 일을 표준한 것이 아니고”-; 따라서 그들은 언제 공식적으로 나를 임명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미국 국방을 효과적으로 원조하는 책임을 지려는 의지가 전혀 없습니다. 이는 단지 이기적인 이유로 인해 미국 관리와 한국 대중을 호도하기 위한 겉치레이며 체면을 차리는 것입니다.그들의 우스운 주장 이곳 미국 관리들이 김호 의장의 6월 23일자 서한과 내게 한국어로 보낸 6월 12일자 서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이라고 봅니까? 두 개의 서한과 안(W. K. Ahn) 씨의 서한은 국무부에 자료로 보관돼 있습니다.신분증명카드에 대한 협상 6월 30일 저는 존 에드가 후버(John Edgar Hoover) F.B.I. 국장에게 신분증명 카드 발급의 특권을 보장해 달라는 청원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후 회의들(모두 네 개)은 저의 1941년 8월 20일 회보에 동봉되어 있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나았습니다. 이 사실을 주목하시오.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저는 중한민중대동맹을 대변했을 뿐만 아니라 해외 한인연합회 및 중국 내 조선의용군을 대변했습니다. 그러므로 법무부 이민국이 답신을 보냈을 때, 그는 중한민중대동맹만을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한인이라면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인연합회의 미리 계획환 한길수에 대한 혐오심 때문에 그 편지를 의문이 가도록 고의로 오역했습니다. 제가 후버(Hoover) 국장에게 보낸 편지를 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조 씨도 1941년 6월 30일자 사본을 하나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인연합회는 국무부에 6월 23일에, 내게 8월 21일에 각각 서한을 보내는 모략을 한 후에 어떻게 저를 그릇된 설명과 공식 재능(즉, 한인연합회에서 일하지 않는 것)을 비난 할 수가 있습니까?제안 그들의 협조 거부와 비열한 짓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진정하고 조심하며 머리를 써야 합니다. 저의 제안은 우리가 먼저 김호 의장의 공식 답신, 그리고 이원순의 공식 답신을 기다려야 합니다. 만약 그들이 한인에게 신분증명 카드 발급과 관련한 법무부와의 협상을 공식적으로 거부한다면 그때만이 우리는 나아가 우리의 계획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카드 및 브로치와 관련하여 당국자는 최종 승인을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너무 서두르지 맙시다. 해명을 요구하십시오. - 한인연합회에 문서로 된 답변을 요구합니다. 1941년 8월 21일 김호 의장의 서한은 확실한 설명이 됩니다. 그의 서한에 따르면 저는 단지 먹고 자고만 합니다. 저는 한국 사회, 정부, 외교, 국방봉사원에 관하여 그 어떤 것도 조사하거나, 제안하거나 가질 수 없습니다. 만약 이것이 그들의 김호 서한의 진정한 해석이라면 우리는 우리의 방침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하던지 간에, 우리는 건설적이고 효과적인 미래를 위해서 생각하고, 말하고, 계획하고, 쓰고 행동해야 합니다. 제가 그들의 공식 답신을 받는 대로 - 저는 우리를 돕고 가능한 많은 수의 한인들의 이익을 위해 최고의 방침대로 행해준 당국에 이 모든 문제를 가지고 갈 것입니다. 저는 나중에 초(K. C. Cho) 회장에게 상세한 보고서를 쓰겠습니다. ···(원본누락)···

    2662 민찬호가 한길수에게 보낸 서한(1942.6.2)

    안녕하십니까. 귀하의 책이 출판되고 빠르게 팔리고 있다니 저도 기쁩니다. 그 책으로 꾸준한 소득을 버시기 바랍니다. 저는 코리안 위클리(Korean Weekly)의 지역 편집장인 전경무(Jacob Dunn)에게 보낸 귀하의 긴 서한을 잘 봤습니다. 저는 그 신문이 귀하와 귀하의 임무에 대하여 비방적으로 쓴 기사에 관한 귀하의 생각을 표현한 것은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즉각적인 답변 혹은 신문에서 공식 사과문을 내라고 요구하신대로, 저는 전경무(Jacob Dunn)가 귀하에게 답변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사람들이 지면상으로 그들의 실수를 인정하거나 사과를 하지 않을 것이란 걸 잘 압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그들의 답변이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제발 잊으시고 추가 행동을 취하지 말아주십시오. 귀하께서는 그와 같은 하찮은 문제로 소중한 시간과 기회를 낭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귀하에 관한 거짓말과 위조는 귀하께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입니다. 한인들에게 인내심을 가지시고 그러한 비방이나 거짓말에 대해 너무 염려하지 마시고 귀하의 목표를 향해 조심스럽게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그것만이 귀하께 위대한 성공을 보장할 것입니다. 한신의 유명한 옛이야기가 기억 나지 않으십니까? 옛날에, 지혜롭고 똑똑한 동양의 정치가(한신)가 있었습니다. 그의 나라는 강력한 적국에 의해 침략을 당했습니다. 이 사람은 이곳 저곳 도망을 다녀 매우 피곤하고 배고팠습니다. 그는 시내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여인들을 보고, 그들에게 다가가 그들이 점심으로 싸 온 밥과 떡을 구걸했습니다. 그들은 조롱하고 비웃으며 그에게 자신들의 다리 밑에서 기어가면 밥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다리 밑을 기어 밥을 얻어 먹고 몸과 마음에 힘이 생겼습니다. 이 사건이 그에게 새롭고 힘찬 용기를 주었고 그는 경국 적국을 정복하고 그의 국가를 오랫동안 동양에서 강하고, 평화롭고, 번영하는 국가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동포들이 귀하의 계획을 동의하기는커녕 귀하를 적대적으로 비방하려 할 때,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이런 일은 모든 인간 사회에서 다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 입니다. 물론, 귀하께서는 언제나 귀하의 임무가 목표를 향한 정도를 가고 있는지 아닌지를 살펴 보셔야 하고, 귀하의 임무가 국가 운동에 진정으로 도움이 되고 이익이 되는지 주시해야 할 것입니다. 부디 모든 한인들과 조화롭게 협조하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은총이 귀하와 함께하길 바랍니다. 귀하의 성공을 빕니다.

    2663 이승만이 한길수에게 보낸 서한(1941.6.30)

    2664 미국 최고연합사령관 보좌관이 한길수에게 보낸 서한(1944.9.2)

    안녕하십니까. 루이스 마운트배튼(Louis Mountbatten) 경은 “일본의 승전 계획(How Japan Plans to Win)”이라는 제목의 책을 귀하께서 번역하여 사본을 보내주셔서 대단히 감사하며, 속히 읽어보고 싶으시다는 말씀을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행운을 빕니다.

    2665 미국 백악관의 얼리(Stephen Early) 보좌관인 루멜트(Ruthjane Rumelt)가 한길수에게 보낸 서한

    얼리(Early) 씨는 키노아키 마쓰오(Kinoaki Matsuo)가 쓴 “일본의 승전계획(How Japan Plans to Win)” 번역본의 사본을 보내주셔서 대단히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서재에 이 책을 추가 할 수 있어서 기뻐하십니다.

    2666 한길수의 대일첩보활동을 보도한 신문 기사(1945.1.14)

    1945년 예보…(원본판독불가)…

    2667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한길수에게 보낸 서한(1942.9.8)

    2668 한인구제를 위해 한길수가 작성한 보고서를 수록한 미국회 회의록(제78차 제1회 회의|| 1943.11.18)

    일본에 대한 승리 이후 한인을 돕기 위한 준비를 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

    2669 "한국의 독립과 자유를 동정하는 신문 칼럼기사(The Washington Daily News|| 1943.12.8) "

    화요일- 어제 오후 내 손녀딸인 엘러너(Eleanor)와 나는 국립 미술 갤러리에 가 해군 비행 그림 전시회를 봤다. 작품들은 그림으로서 교훈적이고 매혹적이었으며, 우리 인간이 훈련하고 싸우는 여러 세상의 생기 있는 암시다. 중역 사무실에 있는 내 남편의 책상 위에 있는 머레이(Murray) 사령관의 초상화는 첫 갤러리의 한쪽 편에 전시되었다. 나는 이 그림이 상당히 흥미 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은 이 방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대상인 듯하며, 꼭 닮은 초상이다. 나는 인물보다 배경에 중점을 둔 이러한 작품을 선호한다. 날마다 해외 회의에서 나온 뉴스가 들어온다. 나는 미국, 중국, 영국은 한국의 궁극적인 자유를 보장하기로 맹세했다는 사실이 이 나라 사람들에게 큰 흥미를 주는 일 같을 것이다. 한국인들은 호전적인 사람들이 아니며 그들은 수년간 견디기 어려운 일본의 지배 하에 있어왔다. 미래엔 그들이 자신의 문명화 및 문화 개발에 힘쓰는 기회를 찾고, 평화롭고 조용한 곳에서 살기를 바란다. 일본이 궁극적으로는 실패할 것이며, 그들의 점차적인 영역 확장은 태평양에서 박탈 당할 것이다. 일본은 이에 대한 새로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들은 이 모든 나라의 경제와 농업 개발이 인간 전체의 남부럽지 않은 생활 수준을 제공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일본, 중국, 인도의 많은 사람들은 지난 몇 세기 동안 굶주려왔다. 오늘날 자연의 힘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이 있어 재앙적인 홍수의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반 사람들에게 공급할 충분한 식료품이 있을 수 있다. 이것이 전후 세계의 첫 번째 목적 중 하나이다.

    2670 한길수가 워싱턴의 미군사 본부와 맺은 정보기밀 서약서(1943.8.16)

    1. 군수품이 동부 군사지역 혹은 그것으로부터의 지대 그리고 그 외에 미국이 1942년 2월 19일자로 대통령령 9066에 준하여 규정한 유사 지역에서 귀하를 제외한 명령서 발급이 필요한지를 묻는 문의에 대한 조사가 진행중임을 이에 통지합니다.2. 귀하는 관리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할 기회가 부여됨을 통지합니다. 이 위원회는 1943년 8월 19일 오후 1시 30분, 워싱턴 D.C. N.E. C가 2145 105호에서 만날 것입니다. 귀하께서는 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하여 증인으로서 증언할 기회가 제공되며 귀하의 증거자료를 제출할 수도 있음을 아울러 알려드립니다.3. 귀하께서는 청문회가 시작되기 24시간 전에 귀하의 참석여부를 알리는 자기 앞으로 쓴 편지봉투를 동봉하여 위원회에 보내주시기 바랍니다.4. 참고가 되시도록, 다음은 위원회 청문회의 행동에 대한 관련 규정입니다.a.청문회와 관련한 모든 자료는 기밀이며, 위원회도 공개하지 않을 것입니다.b.귀하는 원하신다면 위원회에 고문과 동반 입장하실 수 있습니다. 고문은 귀하가 신뢰하는 친인척이나 친구일 수 있습니다. 그의 유일한 목적은 귀하에게 조언을 하는 것입니다. 그는 증인을 심문하도록 허락되지 않을 것입니다.c.귀하는 대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엔 세부적인 이유를 설명할 필요 없이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