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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자료

    콘텐츠/독립운동가 자료 [] 에 대한 전체 5845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1811 대판조선노조 제3회대회 안내전단

    歷史的으로 意義 있고 光韓 있는 在日本朝鮮勞働總同盟 第四回 全國大會는 千九百二十八年 五月 十三日 午前 八時 定刻의 제 東京市 本所區 柳島元町 帝大 셋츠르멘트 大講堂에서 雲集된 代議員 及 傍聽者 四, 五百 大衆의 霹靂 같은 拍手 聲裏에 司會者 金鋼(김강) 君이 登壇하여 『… 우리에게 加하는 모든 暴壓을 一蹴하고 우리의 힘으로써 勇敢하게 이 大會를… 』라고 개회사를 왜치자 臨席한 警官으로부터 中止 檢束을 당하여 場內의 風雲은 자못 平穩치 못한 가운데 이어 副司會者 姜駿燮(강준섭) 君이 登壇하여 開會辭를 繼續한 后 順序에 依하야 議長 選擧에 들어 「議長은 二人을 司會者가 指命하라」는데 滿場은 「異議 없소」하므로 司會者가 指命하니 宋昌濂(송창렴), 金天海(김천해) 두 분을 滿場 拍手로 選出하고 이어 當選된 議長 宋昌濂(송창렴) 君이 登壇하여 『… 現下 世界 情勢를 볼 때 가장 注目할 것은 臨迫하여 오는 새로운 世界戰爭의 危機이라. 世界 帝國主義 國家들은 極度로 反動化하면서 自國의 無産階級과 植民地 弱小 民族에게 極暴한 彈壓을 强要하면서 있다. 그같은 實例로썬 最近 日本 帝國主義가 自國의 無産階級과 우리 朝鮮民族의게 加하고 있는 暴壓은… 그럼 世界 無産階級運動의 本營인 勞界로서 아를 先須로 世界 無産階級 ●●運動은 强力的으로 發展하면서 있다. … 이러한 情勢 下에서 特히 日本의 政治的 中心地인 東京에서 열리게 된 우리 在日本朝鮮勞働總同盟 第四回 全國大會는 果然 歷史的으로나 또한 國際的으로나 重且大한 意義…」라는 就任辭는 그야말로 熱狂的 拍手로써 마치고 이어 順次로 書記 任命에 들어 書記 三人을 議長이 指命하라는 動議 自請으로 議長이 書記를 任命하니 姜駿燮(강준섭), 金斗鎭(김두진) 李相昌(이상창) 이와 같다. 따라 順序에 依하야 各種 審査委員 任命으로 이도 宋 議長이 指命 하기로 되어資格 査委員 鄭輝世(정휘세), 宋充啞(송충아), 權一宣(권일선), 金昶翼(김창익)議案 審査委員 朴烟采(박연채), 徐鎭文(서진문), 李友震(이우진)法規 審査委員 徐正洪(서정홍), 文澈(문철), 尹東鳥(윤동조)豫算決算 審査委員 徐鎭文(서진문), 李鎰(이일), 李成百(이성백)右와 갖히 選出하고 議長으로부터 客觀的 情勢가 너무 不利한 關係上 役員 選出할 銓衡委員도 指命 選出하는 것이 어떤가 함에 滿場一致로 異議 없다하므로 이도 一爲 議長의 指命으로李鎰(이일), 鄭輝世(정휘세), 徐鎭文(서진문), 李震(이진), 李璡奎(이진규), 李成百(이성백)右와 如히 選出한 后 大會準備委員會 報告로 姜駿燮(강준섭) 君이 登壇하여 報告를 陳述하다가 臨席 警官으로부터 中止를 받고 退壇하자 「準備委員會의 報告에 質向도 없고 全的으로 承認 通過하자는 動議 再請으로 滿場 拍手로 通過하다. 다음 順序로 內外 友誼 各 團體의 祝辭 及 祝文, 祝電 낭독에 옮겨 朝鮮 프로 藝術同盟 東京支會 金斗鎔(김두용) 君의 壯烈한 祝辭를 筆頭로 新幹 東京支會 張準錫(장준석) 및 關東電氣勞動組合 其他 各 團體의 祝辭와 祝文, 祝電 朗讀이 서이나 中止..로 또한 大衆의 霹靂 같은 拍手聲裡에서 進行되다가 臨席 警官으로부터 突然히 書記 姜駿燮(강준섭), 李相晶(이상정) 兩君을 檢束함에 橫暴한 警官의 不法 行爲에 또한 未曾有의 이 暴壓에 代議員席 及 傍聽席의 空氣는 자못 衝天의 勢로 緊張되었으나 議長으로부터『우리는 이 大會를 圓滿히 進行하기 爲하여는 모든 憤怒을 참아보자 더 冷靜하게…』 이같은 宣言에 「옳소 옳소」라는 소리로 이어 書記 補選으로 前例대로 議長이 指命하니 李炳燦(이병찬), 朴春植(박춘식) 二君이 被選되다. 資格 審査委員 報告 鄭輝世(정휘세) 君이 登壇하여 報告한 結果 次와 如함.東京 二八人 出席, 神奈川(가나가와) 二○人 출석, 大阪(오사카) 一○人 出席, 京都 一人 出席, 北陸(호쿠리쿠) 一人 出席全 定員 九五人 中 出席者가 合 六○人되므로 規約에 依해 大會를 圓滿히 成立됨을 議長으로부터 大會의 正式 宣言을 하고 이어 다음 順序로 옮기다. 中央委員會 報告 報告로 들어가기 전에 報告 說明者 南英佑(남영우) 君의 中央委員 資格 有無의 問題 - 南英佑(남영우)는 大阪(오사카) 組合에서 除名 處分을 當한 關係上 ●●●가 尊大하여 이어 尹東鳴{윤동명[大阪(오사카)]} 君의 上訴事件(亦 除名問題)으로서 南, 尹 兩君의 說明 및 大阪(오사카) 組合 代表 金文準(김문준) 君의 除名 理由 說明 및 一般의 質問 討議로 問題는 去益 傍大되어 說明은 매우 紛紜한 가운데에서 長時間을 지나고 이 甲是乙非의 모든 理論을 參考로 此 事件에 대한 對策 講究의 小委員 若干名을 選出하여 責任委員을 議長의 指命으로 李震(이진), 權一宣(권일선), 朴輝一(박휘일), 鄭輝世(정휘세), 李成百(이성백) 以上과 가히 五人을 選出하여 責任의 報告時까지 中央委員의 資格을 갖고 있도록 可決되었다. 議長으로부터 三十分間의 休會를 宣言하다, ○와 鄭南局(정남국), 金光軍(김광군) 問題午後 二時 十分에 副議長 金天海(김천해) 君이 登壇하여 總會를 宣言한 후 友誼 團體의 祝辭로 新中央黨準備委員會 本所 支部 代表 佐藤(좌등) 君이 登壇하여 「메세지」를 오히게 始作한 바 書頭로「極暴한 自由 反動內閣…」하자 臨席 警官으로부터 中止, 因하야 檢束하다. 이어 在日本朝鮮靑年同盟本部 李起澤(이기택) 及 東京支部 金文化(김문화) 君 其他 各 友誼 團體의 熱烈한 祝辭와 祝文, 祝電 朗讀이 있은 后로 中央委員會 報告로 南英佑(남영우) 君이 口頭 說明을 하다(報告書 押收)口頭로 한 關係上 매우 不充分한 것도 事實이오. 京都, 大阪(오사카) 各地 代議員으로부터 多少의 質問도 있었으나 客觀的 情勢에 의해 多少의 批判을 지나 그樣 全體的으로 承認 通過하자는 意見에 各 地方 情勢 報告東京 李震(이진), 神奈川(가나가와) 徐鎭文(서진문), 大阪(오사카) 金文準(김문준), 京都 鄭輝世(정휘세), 北陸(호쿠리쿠) 朴輝一(박휘일) (報告 全文 省略)各 地方 報告의 質問 討議를 지나 順序에 依해 中央委員會의 金天海(김천해) 君이 登壇하여 一般 情勢報告를 하고(亦 口頭로) 質問과 批判에 들어 多少의 質問도 있고 討議도 있었으나 口頭 說明이었던 만큼(議案 押收된 關係로)에도 未及된 点이 있더라도 全的으로 承認 通過하자 動議, 再請이 있으므로 그樣 中央委員會 報告는 이로써 마치다. 李震[이진(東京)] 君의 緊急 動議로서 大會에서 不當 檢束을 當한 몇 同志의 事件에 對하여 交涉委員 三人을 選出하여 派遣하자는 데에 絶對 多數의 贊成이므로 그 選出은 議長 指命으로 金世杰(김세걸), 朴太乙(박태을), 尹● 以上 三君을 選定 派遣하게 되다. 時間上 關係로 弟一日 大會는 이로써 休會를 宣言하여 午后 五時 十二分이라.

    1812 대판조선노조 김문준 성명서

    우리 조합에 대항하는 민중 책동 가들을 폭격한다.10월 1일자 노동 농민 신문이 「오사카 조선 노동조합에 있어서 중요 간부인 김 문준군은 신당 조직을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추락한 간부들이 반대하고 있다.」라고 유언비어를 흘리고 있는다는 정보가 종종 귀에 들어오고 있지만 정작 그러한 가사의 신문은 아직도 내 손에 입수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찬성자들로부터도 반대자들로부터도 내게 질문이 쇄도하고 있다. 게 중에는 반기며 좋아하는 이도 있거니와 너의 태도를 분명히 하라는 힐문도 있다. 이처럼 바보스러운 짓이 또 있으랴. 동시에 신 노농당의 추태를 폭로 배격하지 않으면 아니 되겠다.원래부터 구 노농당은 확실히 지도적 매개 형태였다. 하지만 신 노농당은 지도적 절연체이며, 대립적이다. 그것은 부르주아 제3당이며 제2의 관허 합법당이다. 이를 배격하며 조직을 미연에 분쇄되지 않게 노력하는 우리 조합의 간부를 추락한 간부라고 한다면 감옥에 투옥되어 있는 다수의 희생자는 뭐라고 부를 것이며 그 수 많은 전위대들을 뭐라고 불러야 옳은 가? 물론 우리 조합의 간부가 전부 전위대라곤 말 할 수 없다. 필자 자신도 마찬가지임엔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곤 하지만 변절자인 신 노농당 수립의 제안자에게 추락한 간부 따위로 불려지는 자는 적어도 우리 조합엔 없다. 설령 내가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 말에 동조하는 자들의 편에 선다 할 지면 내 자신이 먼저 추락한 간부라 불릴 뿐이다.오사카 금속, 오사카 목재의 추락한 간부들 모두는 기계적으로, 신 노농당을 지지하고 있다. 한편 구 노농당, 신당 준비회의 대중적 행태에서 노농 동맹에 이르기까지 지도적 매개체를 필요로 한 것은 이미 「재●●일의 일이다. 실천적으로 의식 과정이 고양되기 시작하고 있는 대중은 쏘아놓은 화살과 같이 제안자전매의 유물 변증법으로 고스란히 되돌려주고 있다. 노농 동맹은 자기 발전적으로 소멸 과정을 거치고 있다. 대중은 이것을 지킬 수 있도록 더욱 더 전진하고 있어 나 개인 그 중의 일원으로서 행동으로 이들에 참가해 왔다. 헌데 이 노동 농민 신문의 중상모략은 이 무슨 어불성설인고?본디부터 신 노농당 수립에 반대하는 추락한 간부는 그 외에도 얼마든지 있다. 그처럼 딱지 붙어진 이른바 추락한 간부--예를 들어 보면 사민 일대 노대등의 사회 민주주의자들로 오히려 우리 조합의 무지한 반대자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와 동시에 나 개인을 찬성자로서 산정하는 신 노농당의--신종의 추락한 간부가 노동 농민 신문을 횡령 해 그 힘에 의지하여 선전 하여 무심코 있는 다른 많은 개인적인 찬성자들도 필경 내 경우와 다를 바 없지는 않을지? 아마도 많게는 이와 다르지 않을 듯싶다.신 노농당 수립에 찬성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소시민층에 불과 하지 않는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이는 오사카 중앙공회에 있어서 이달 3일의 그 연설회의 청중이 대부분이 그 종류에 속하는 대중이며, 투쟁적 반대자를 끌어들여 관헌에 인도한 ●●가 전부 쿄토, 코베 근방으로부터의 수입 물이었던 것에 비추어 볼 때 명확해지는 요소이다. 하지만, 이 대중도 결국 우리들 반대자를 지지해 버린 꼴이 아닐는지. 더욱이 신 노농당이 야마카와 히토시의 합법 정당에 뒤잇는 곳이 제2의 관허 합법당이다라고 한다면 오사카의 소시민에 널리 알려져 있는 일 아닌가. 여하간에 소시민이라고 하여도 관허 합법당의 무능 무 개성 무기력함만은 경험 끝에 얻은 지론이다. 출●●에 찬성자를 과대 평가하는 제2의 관허 합법당의 무 개성에 이르러 오히려 질려 버린다.전투적 노동자 농민 제군이여! 신 노농당은 모든 수단방법으로 제군을 기만 천도하고 있다. 이는 오는 11월 1일로 도쿄 시바구의 협조 관에 있어서 결당식을 올리려고 하고 있다.제군은 이를 미연 분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들은 제군의 영웅적 행동에 포●참가하리라.신 노농당을 매장해라!신종의 청산 주의자를 매장해라!전투적 노동조합 확립 만세!일선노동자 농민 공동투쟁만세!

    1813 제선공장 종업원 쟁의단 본부 격문

    나쁜 노동 조건으로 평소부터 조선 노동자를 혹사해온 일본 양산 살 제조 공업 조합 제일 제선 공장은 쇼와(昭和) 천황 폐하 행차에 이름을 빌리고, 5일간의 공휴를 마음대로 실시해, 휴일중의 일급을 전혀 지불하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또 불경기를 이름으로서 교대제(1일 일해 1일 휴일)를 채용해, 터무니없는 착취를 실시하려고 했다.우리는 스스로의 생활 옹호를 위해서, 이러한 무모한 처치로 단호하게 반대했다.처음은 스스로의 생활을 호소하는 취지도 있었지만, 그들은 완강히 응하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관할의 경찰서와 통모 해, 해고를 가지고 위협 해 왔다.이러한 무모한 자본가에 대해서는, 우리는 단연, 우리 힘에 의해서 해결하는 것을 결정해, 여기에 재일본조선 노동 총동맹 오사카(大阪) 조선 노동조합 동북 지부의 응원을 구해 일본 양산 살 제조 공업 조합 제일 제선 공장 쟁의단을 조직 하고, 그들과 철저하게 싸우는 것을 결의했다.녀석들의 난폭한 공장주 아라이(荒井)를 항복시킬 때까지 우리는 어떠한 박해와 어려움을 겪어도 이 투쟁을 계속할 것이다.즉시 응원 투사를 파송해!기금을 모집해, 즉시 보내라!

    1814 대판조선노조 동북지부 격문

    일본제 양산 살 제일 제선 공장 종업원 및 시오야마(?山) 공장 종업원 제군은 공장 측의 부당한 해고, 임시 휴업에 반대해, 성의 없는 공장 측의 태도에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기 위해, 지난 6월 13일부터 우리 조합의 응원아래에 일제히 파업을 결행해 싸우고 있다.조선인 노동자는, 단지 조선인인 것을 이유로서 일본인 노동자와 구별 차별대우 되어 항상 저렴한 임금과 열악한 노동 조건에 의해서 혹사 되어 그 생존은 항상 위협해지고 있다.자본가, 공장주는 이 일본인 노동자와 조선인 노동자와의 차별대우에 의해, 노동자의 단결을 방해해 교묘하면서 음험한 수단으로 그 배를 기름지게 하고 있다.시오야마(?山) 공장 및 제1제선공장과 같이, 그 조건은 말도 안 될 만큼 열악하다. 그들은××행차에 임하여, 5일간의 임시 휴업을 실시해 대규모의 착취 계획을 세워, 휴업중의 일급을 전혀 지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해고로 전종업원을 위협해, 제일 제선 공장과 같이 불경기를 이유로서 교대제를 채용하고, 심한 착취를 계획해, 시오야마(?山) 공장은 ●개월간의 무수당 임시 휴업과 같은 해고와 동일한 터무니없는 수단으로 도전해 왔다.이러한 너무 불합리적인 그들의 폭동에 대해서도, 우리는 우선 할 수 있는 한 수단을 생각해 제일 제선 공장에 대해서는 12일, 시오야마(?山) 공장에 대해서는 14일, 정식으로 요구서를 제출하고 회답을 재촉했지만, 그들은 이것을 수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면회를 거절해, 제일 제선의 사무원 모씨는, “자르든지 말든지 공장 측의 제멋대로이다!”라고 폭언을 토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한 사무원의 폭언이 아니라, 그들의 의지를 대표하는 도전의 말이다.이와 같이 불합리적, 무모, 비인간적 자본가에 대해서는, 우리들은 어디까지나 전 노동자의 이익을 위해서 철저하게 싸워, 경우에 따라서는, 전제 양산 살 공장 종업원의 총파업으로 그들이 전종업원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성의를 보여줄 날까지 어떠한 박해, 어려움을 겪어도 싸움의 기를 진행시키려고 하는 것이다.즉시 응원 기금과 투사를 보내라!

    1815 동대판 차가인조합본부 입회 안내장

    요즈음 우리의 생활은 더욱 더 저하하고 있다. 불경기는 심각해지고 각처에 있어서 공장 폐쇄, 임금 저하, 해고 등은 공공연하게 행해진다. 따라서 소상인의 매상은 전혀 없다. 우리 무산 세입자의 생활은 먹는 둥 마는 둥의 상태다. 그래서 호경기 시대의 집세와 아무런 변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높다. 조금 수리라도 하면 곧 가격 인상을 강제로 한다. 그들은 항상 세금이 비싸다고 해서 속인다. 하지만 그 세금은 집세 중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세금은 세입자가 지불하고 있다. 우리들은 그러한 속임에 속으면 안 된다. 우선, 우리 세입자는 가격 인하 운동을 일으켜야 된다. 우리히가시오사카(東大阪) 세입자 조합은 집세 3할 가격 인하 즉 실시의 슬로건을 내걸어 쓰러질 때까지 싸울 것이다. 가격 인상에는 물론 반대다.2, 보증금 권리금의 철폐 및 권리금 즉시 반환집을 빌리려고 하면 보증금 혹은 권리금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다. 화재로 인해 집이 없어지든가, 집주인이 파산하면, 보증금 및 권리금까지 허사가 된다. 이런 집주인의 제멋대로인 어처구니없는 말에는 따를 수 없다. 우선, 우리는 보증금, 권리금의 즉시 반환을 강요하지 않으면 안 된다.3, 강제 퇴거 절대 반대집세가 밀리지 않아도 집주인의 사정으로 언제라도 퇴거를 명령 받는다. 도로가 깔리거나 구획정리가 있으면 세입자의 사정을 무시해 강제 퇴거를 강요한다. 이것으로 세입자의 거주권은 완전하게 유린되고 있다. 거주권 확립을 위해서 쓰러질 때까지 강제 퇴거에 반대해야 된다.4, 세입법 철저한 개정 및 전국적 실시우리는 가장 불리한 민법으로 묶여 있다. 이것으로 세입자의 거주권은 보증되지 않는다. 완전하게 세입자의 거주권을 보증하는 세입법을 우리 자신의 손에 의해서 싸워 잡아야 된다. 또, 현재 시행하고 있는 세입법은 대도시에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우선, 완전한 세입법을 전국적으로 실시시켜야 된다.5, 재일본 조선인 거주권 확립조선인이기 때문에 집세를 지불해도 집을 빌려 주지 않는 것이다. 젊은 일본인을 이용해 빌려 들어갔다고 해도 곧 강제 퇴거당한다. 우리는 우선, 셋집 관계에 민족적 차별 절대 반대를 주창하는 것과 동시에, 일본 거주 조선인의 거주권 박탈 행위를 박멸하기 위한 투쟁과 일선인 거주권 확립을 위해 쓰러질 때까지 싸워야 된다.이상과 같은 요구를 내걸어 우리 히가시오사카(東大阪) 세입자 조합은 무산 세입자의 아군으로서 악 집주인, 이것을 옹호 하는 관헌, 자본가, 지주의 정부와 싸우고 있는 단체다.집주인은 돈을 맡겨 악덕 변호사, 건달, 3백, 악덕 대리인 등을 앞잡이로 이용하고 세입자를 괴롭히고 있다. 현재의 지주, 자본가의 정부는 완전하게 집주인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서, 전력을 다하고 있다. 우리 무산 세입자는 돈도 없고, 권리도 없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 자신이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으로는 진다. 모두 세입자가 한 집단이 되어 악 집주인과 싸워, 지주, 집주인의 손으로 만들어낸 법률의 개정 및 거주권 확립을 위해서 철저한 투쟁을 계속해야 된다. 우리는 부단히 대항할 수 있도록 전투의 준비를 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세입자 조합에 들어가 단결하는 것이다.그리고 전일본의 세입자가 손을 잡아 거주권을 지키고 잡기 위해 싸우면, 반드시 이길 수 있다. 무산 세입자는 거주권 확립을 위해서, 세입자의 해방을 위해서, 일선의 무산 세입자는 단단하고 단단하게 단결하고 적극적으로 싸우자. 거주권 확립을 위해서 싸워라! 직업적 대리 박멸!! 집주인 조합을 매장해라!! 세입자는 세입자 조합으로!! 일선무산 세입자 제휴 만세!!!오사카시(大阪市) 히가시나리쿠(東成区) 시기노초(鴫野町) 716히가시오사카(東大阪) 세입자 조합본부고문 변호사小岩井 浄       서명인 오사카시(大阪市)히가시나리쿠(東成区)시기노초(鴫野町)716  김 광…절…취…선…세입자는 세입자 조합으로 < 입회 신청서 주소이름직업연령집세보증금 년 월 일생(당 세)금 원 전금 원 전 집주인명대리인인체납 집세세입 연월일소속 단체 금 원 전년 월 일 귀 조합의 강령 및 규약을 승인 후 입회 신청합니다. 년 월 일 우히가시오사카(東大阪) 세입자 조합 귀중입회금 30전·조합비 1개월 20전

    1816 김문준 재성명서

    1930년 2월 28일 오사카 김 문준친애하는 노동자 형제 제군! 우리들의 오사카 조노의 산업별투쟁을 통해서 전협으로의 해소를 지향하느니만큼 우리 전협 조선인 위원회의 오사카산업별 조직위원회가 확립된 것을 제군과 함께 기뻐하고 싶다. 또 제군과 함께 이것을 지켜갈 것을 맹세함과 동시에 우리 오사카산업별 재조직 위원회로부터의 나를 향한 비난에 대해서도 한마디 언급하고 싶다.친애 하는 노동자 형제 제군! 지난 1월 18일 이래 나에게 집중되어 오는 그 모든 비난은 두 가지 핵심 문제로부터 비롯되고 있다. 노총중앙으로의 그룹적 대립과 전협으로의 합동 반대와……이 두 가지의 죄를 나로 인해 기인되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허나 그로부터 서도 온갖…… 왜곡된 허무맹랑한 망설이 조작되고 있다. 때문이라도 이 모든 것들이 오해로 기인되었음을 입증하기 위하여 지난 25일 성명을 발표한 바도 있다. 그러나 이번에 다시금 만 천하에 분명히 밝혀져 진 사안들을 가지고 나의 입장으로써 좀더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안될 문제를 중심으로 피력해보고자 한다.(1) 파벌의 문제. 과거 조선의 전위가 여러 파벌로 나뉘어 있었지만 나는 그 당시 시골 선생 생활을 하고 있었으니까 파벌 싸움 같은 것에는 전혀 관계가 없다. 또 노총 제 4회 전국 대회에서 이 문제는 깨끗하게 정리되었기 때문에 무슨 파가 어떻다는 식의 논쟁은 쓸데 없는 짓이다. 노총을 지키려 노총의 투쟁을 나의 투쟁으로 해 온 뿐이다. 하지만 나의 투쟁, 나의 노력이 노총에 매료시키지 못 해왔던 일도 있다. 이것은 내가 간부 개인 간의 알력을 피하려 하여 얻어진 것들로 이로부터 나의 행동이 중상 모략되어 온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노총을 ●던 나란 존재는 없었지만 때론 경성 파 때로는 제주 그룹 등으로 불리어져 온 것은 앞서 언급한 경위 사실 이외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2) 희생자 구원 문제. 우선 항구 지부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순서인 듯 하다. 항구 지부는 도대체 어디 소속의 지부인 것인가? 노총의 오사카 조노 지부일 뿐 내 개인적인 지부일 순 없는 것이다. 더욱이 동 지부로부터 두 명이나 신의주 사건으로 희생자를 발생시키고 있는 관계로 이 희생자 두 명이 동 사건에 연관이 없다 하여 무죄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변호를 부탁하고 있는 인연으로 해서 구원 운동이 전 지부로 확산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신문 문제는 내 자신 혹여 존재하지도 않는 나의 개인파벌적 문제로 다루어질 것이 아니다. 오사카 조노가 떠안을 문제인 것이다. 다음으로 구원 뉴스의 문제로 들어가 보자. 매년 초마다 구원 단의 준비 회가 열렸지만 서로 이 민족적인 오류를 범하며 융합되지 못하여 중도에서 해체되었다. 그 당시의 뉴스가 머라고 언급했느냐 하면 신 ●용등 신의주 사건의 구원 보고와 청년 문제 희생자로부터의 소식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소암정 변호사를 신의주 사건의 「오사카 삼 인」의 변호인으로 내세워야 했던 내가 그에게 의뢰를 구한 것이 노총으로의 대립 문제로까지 번질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노총청년동맹을 시작해 손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구원해야 할 의무를 통감하고 있다. 또한 신의주 사건의 견해로써는 나는 내 나름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점이 있다. 하지만 나를 무슨 우상 숭배자처럼 떠들고 있는 점이 바로 이 구원 문제인 것이다. 제4차라든지 제7차이라든지 하며 불려지고 있는 명칭은 관헌이 붙인 명칭이며 재판정에서 그들 희생자가 부인하고 있는 것은 여러 사람들이 보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현실로부터 동떨어진 우상에 불과 한 것이다. 우상의 일체가 아닌 자를 돕는 자는 사실적이어야 하지 않는가? 새삼스레 구원 운동의 ABC부터 시작해야 할 점도 아니고 구원 운동의 전개로 인해 X의 분열에 이르는 경XX의 오류적 사실의 인식이 대중화 되어 얻어지는 것이 아닌가. 내가 오사카로부터 신의주 사건 희생자 구원 운동에 참가한 것은 분파 문제에서의 감정으로 인해 왜곡 될 행동은 아닌 것이다.(3) 지역차별 문제. 이것은 내 인식의 레벨을 도대체 어떤 식으로 평가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된다. 이와 동시에 오사카와 조선 오사카, 제주도와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 보고 있는가 하는 문제로 대두 될 수 있다. 우선 조합 내에서 지역차별을 불러 일으켰노라「주장하는 이와의 이름부터 틀리다」라고 일침을 놓고 싶다. 뿐 만 아니라 오사카 지방의 조선 노동자의 과반수가 제주 출신이지만 조합으로 편성된 비율은 3분의 1도 안 된다. 더욱이 민족적 범위 안에서의 정체성에서 전협으로의 진출과 결합을 오사카조노의 전위 분자보다도 앞서 호소해 오고 있다. 대중에게 지역차별을 불러 일으켜서 얻는 것이 무엇인가? 만일 제주도 공제 조합에서 관을 제조하는 컵 조합의 박멸이 섬 전체 민간 대회의 성명 운동이었다고 말할 문제라면 이것은 오사카조노 결의에 비추어 보면 안다.(4) 제주도 출신에 대한 「노총중앙에의 대립 배격 역선전」을 유일한 사업으로서 광분하여 계속 진행했다고 하는 문제. 이것은 스파이 김 수현 사건 남 영우 무리들의 중상과 천재적 유언비어에 근거 붙일 수 있던 이외의 그 무엇도 아니기에 입다물어 둔다. 하지만, 이 스파이 사건 모두는 혁명적 그룹인 듯이, 그 부하 김 경중을 앞세워 우리 위원회를 보호고 있는 것처럼 위장하고 있다. 이것은 오사카조 노동부 지부가 지난 27일의 확대 집행위원회 석상에서 폭로하여 성명서까지 나왔다고 듣고 있다. 이 스파이 사건 모두는 전 확대 집행위원회의 혁명적 그룹을 대표하고 있다. 노총은 김 수현 남 영우에 의해 지켜진 것이 아니라 반역자라고 말하는 내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지켜 온 것임을 분명히 해 둔다.(5) 근거지 문제. 제주 출신의 대중과 소년 동맹을 나의 근거지로 했다고 말하는 것은 근거가 무너진다. 이하 항목을 따로 하여 입증하기로 한다.제주 출신의 대중을 근거지로 하는 문제. 제주 출신만의 대중 조직은 오사카조노에서는 공장 반에 있어서조차 단 하나도 없다. 그러니까 전 조노 내에서라는 건 말도 되지 않다. 그렇다면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오사카 고무공 조합의 결성 당일부터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전력을 다한 때문이거나 아니면 전 조합이 반수 이상의 제주 출신의 대중을 가지고 있는 관계에서 그 점을 이르는 것이다. 이것은 김 수현 남 영우 등이 나를 전 조합 대중으로부터 떼어내기 위해 나에게 경성 파 제주 그룹의 독을 붙여 노총중앙의 김 호영군에게도 그것을 고발했던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 김호영군이 오사카 고무공 조합의 간부에게 노총의 깃발을 지켜 전조합의 지도를 자신에게 맡기라고 했던 것도 원인도 이 점에 있다. 하지만 전조합의 결성과 쟁기에(더욱이나 작년 연말 이전) 관여한지 얼마 안된 나를 여전히 중상 모략하여 왔다. 김 수현은 자기 자신이 관여하려고 했었던 것이 명백해 진 것이다. 회피하려 하지만 이것 역시 나와 결부 지을 문제가 아니다. 전 고무공 조합 결성의 선언문 일절과 결의를 자세히 살펴 보면 제주 그룹의 근거지 문제는 의혹이 풀릴 일이다.(선언의 일절) 일선노동자 계급의 민족적 이데올로기(로부터 파생된 편견을 가리켜 말했다고 사료된다.)의 양기와 전쟁적 전국적 화학산업별 노동조합 확립(10월 16일)(결의-집행위원회-). 전협 화학산업조합으로의 가입보아라!! 이들 대중은 여전히 올바르게 전진해 가고 있다. 지역차별과 근거지 등이 문제화되는 것은 김 수현 남 영우의 일류적 비계급적 중상모략이 숭배되기 시작한 나머지 레벨이 떨어진 얘기라고 생각하고 있다.소년 동맹과 근거지 문제. 9조와 중도에는 소년 조직 이외에는 조합에도 청동에도 조직이 없다. 그리하여 여기서부터 소년의 자연발생적 조직 운동이 1928년의 말기 및 다음29년의 연초에 상호 번성하기 시작한 것을 청동의 간부 제군과 조합에게 보고해 지도의 손을 늘려야 할 것이라고 재삼 건의 했다. 하지만 3월이 지나도 손이 닿지 않고 지도가 없는 채로 게다가 대부분 재래의 지방별 소년 운동으로부터 집단적 쇄신화의 형태로 4월 초순 결성된 것이 이 소년 운동인 것이다. 이것이 나니와니 항구로 확산되어 옴에 따라 조합 나니와 지부, 항구 지부에서 청년 동맹으로 연결시킬 수 있도록 지도하기 시작한 것은 6월 이후라고 듣고 있다. 지금 오사카 도처에 제주 무슨 리 청년회 및 소년회의 지방적 청소년 그룹의 간판을 걸고 있는 것을 봐도 이 소년 동맹의 지방적 쇄신 운동임을 알 수 있다. 연령의 제한을 17세 이하로 제한했던 것도 많이 쇄신 된 것 아닌가? 「청년 동맹과의 대립 24, 5세의 소년」. . . . .그들 소년 대중이 들으면 실망할 것이다. 나의 행동이나 이해가 이 열거된 문제와는 반대로 고양되고 있는 것은 오늘의 일이 아니다. 물론, 조합에 청년 부를 두어야 하고 이것이 문제라면 청년 부 설치 측의 입장이 되어야 하겠지만 소년 동맹을 근거지로 한다는 이야기는 말이 되지 않는다.(6)대산 일파의 「노농당」문제. 세박과 나와는 단 한 순간도 동석해 본적이 없다. 작년 8월 일호 유리 쟁기 희생자 구원 문제로 소암장이 있는 곳에 갔을 때 세박은 문전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소암장에게 소개되어 「아무래도 어려운 문제를 제안 드려 죄송합니다」 라고 불과 이 한마디를 남기고는 나는 「오사카」에서는 지금 논의 중입니다.」라고 한마디. . . 응수 하였을 뿐 더욱이 잠깐 지나가던 차에 서서 하는 이야기였던 것이다.(7) 협의 현재 조선인 위원회를 부인한 실천적 반 협의회의 문제. 이것은 오사카조노의 서부 지부의 문제이며 혹여 한 사람 하나의 파벌의 문제이지 않다. 길 거리의 문제에서도 소위 「김 문준 일파」식으로 연결시키려는 원칙은 있을 수 없는 얘기다. 더욱이 지난 27일의 전지부의 확대위원회에서 전혀 관여하지도 않았던 것이 증명된 셈이 아닌가? 김 문준 일파에게는 윤혁 재 한 명을 증원해 받았지만 전 제군의 반 응원 문제에서 조차도 전 서부 지부의 확대위원회에서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 되었던 것이다. (8) 어떤 석상에서의 내 소문에 대한 문제.「어떤」이란 글자에서부터 내가 아는 문제가 아니다. 「전협과 합동 할 때까지 파벌쟁의로 일관한다」라든지 또는 「조선 XXX는 XXX있어」란 무슨 말인가 모르겠다. 몇 사람으로 조선 XXX는 XXX대로 말한 것인가? 이야기가 성립되는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떤 석상」그 아래로부터가 문제이다.(9)「전협으로의 합동 반대」의 문제. 지난 1월7일 밤 오사카조노 집행위원회 석상에서 질문 토론 보고가 혼동 된 것은 이미 알려진 대로이지만 이것은 아무것도 조를 그룹적으로 옹호하려는 문제가 아니다. 그룹과는 동 떨어진 얘기다. 원래 「전협으로의 합동」노총의 어떤 곳에서 건설된 것인가? 오사카조노에서라고 하면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전협에 「즉시 가입의 건」이 오사카조노의 정치 교육부장 조 금구 군의 제창인 것도 역시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나는 한 지부의 정치 교육부 책임자로서 조의 제창의 긴급함을 본부의 정치 교육부에 의견을 건의했던 것도 결의 한 달여 전부터 대부분의 요구가 공장, 직장으로 물결을 이룬 뒤였다. 이른 봄 2월 이후 투쟁을 통해서 대중이 전협으로의 결합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우리들은 대중의 ●●●●●● 그리하여 민족적 범위 안에서의 정체성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려는 하는 대중의 행동은 항상 순간 적인 것이다. 어지러운 지금으로써나 현재로써 끝내어질 일이 아니다. 「전협으로의 즉시 가입」은 원칙적이며 절대로 올바른 것 이었다. 또한 산업이 정리되더라도 산업위원회가 위로부터 갖추지 않으면 안 되는 좌익 조합의 지도자부터 이미 교육받고 있을 터이다. 특히 가내공업적 ●●● 특징으로 하는 재 일본 조선 ●●●●●● (오늘의 우리 위원회의 확립이야말로 산업별 위원회를 창출하여야 하며 위로부터의 ●●● 지도●●● 이다. ●●● 적인 즉시 가입 ●●● 의 지도●●● 에 의해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전망이 이 건의의 결의를 ●●● 던 것 이었다. ●●●, 관서협의회가 열려서 이 건의 안에 있어서의 구체적 방침 의견이 결정되어 김두환 군의 팜플렛(재 일본 조선●●● 운동은 어떻게 전개하여 가야만 하는가?)이 발행되어 12월 중순 전 대회에서「전협으로의 가입」으로써 결의 되었다. 이 회의 결의는 절대적이어서 나중에 반대하는 자는 반역자로써 토를 달 수가 없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점에 있다. 전 대회의의 부인 …… ●●● 무지가 발휘되어 ●●● ●●● 이 아닌 나는 부하를 가질 필요도 없는데 억지를 부리는 ●●● 의 내 부하(김 문준 일파)가 이 무지를 부렸다고 한다. 한 곳의 조합에서 회 대의를 부인하는 바보가 있을까? 또한 위로부터 아무것도 없이 노총 중앙으로의 대립하려는 곳의 얘기만이 아니다. 근거 없이 당연히 ●●● ●●●. 「노동자의 적인 것 이다. 허나 오늘날 나에게 집중되고 있는 배격」 의 불씨는 이 「적」 이다. 라고 주장하는 데에서부터 일어나고 있다. 제군 혁명적 그룹은 나의 일파인 자를 말살하기 위하여 날뛰고 있다. (스파이 김수현 남영우 들도 한 몫 거들고 있다.) 나는 제군. 혁명적 그룹을 환영한다. 문제를 똑바로 보기 위하여 제군을 환영한다.혁명적 그룹 제군! 문제는 대 회의의 부인이 아니라 규약 초안에 있는 것이다. 중앙위원회의 통과를 필요로 하는 규약 초안이기에 중앙 위원인 자 중 그 누구더라도 통과까지의 비판 준비를 해 두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 다음으로 ●●● 문 이걸 가지고 예를 들어 보겠다. (제 2조) 본 총 동맹은 본 총 동맹의 결의 및 규약을 승인하는 각 종의 산업별 노동 조합 및 합동 조합을 근거하여 조직하여 본부를 동경에 둔다. 더욱이 재 일본조선 노동 총 동맹 ○○산업 노동 조합인 진귀한 산업 별 각 조합이 조직할 것.(제 3조) 지방에 두 개 이상의 조합을 가지고 그 조합원이 200백 명 이상에 달하면 중앙위원회의 승인을 얻어 지방 협의회를 조직할 수 있도록 한다. (제 22조) 지방 협의회의 최고 기관으로써 소속 조합에서 선출된 대 의원을 가지고 구성한다. 지방 대회를 두고 매년 1회 정기적으로 개최 할 것.노총의 재건이 전협으로의 해결의 조짐이 없이 항구적인 존재임을 분명히 하여 둔다. ●●● ●●● 독자의 의문으로는 남아 있겠다.우리들은 노총 상부가 권위를 가지며 이 권위로 하여 노총 재건 투쟁을 산업위원회를 산출할 만한 하등의 위원회 조직(오늘의 우리 전협 조선인 위원회는 정말로 이것이다)이 가질 만한 과정이며 노총 해체의 과정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각 조합들도 산업별 조직위원회가 조직(우리 오사카 산업별 재조직위원회 아래에) 됨과 동시에 해체하여야 하며 따라서 제2조(규약 초안) 와 같은 진귀한 민족 별 각 산업별 조합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나의 이와 같은 견해는 과연 무지한 견해인 것인가 이러한 견해 아래에서 앞서의 의문이 발생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단지 나뿐만이 아니고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견해이자 의문이다. 그의 집행위원회(오사카조노) 석상에서의 조의 보고(전 대표회의 및 종래의 경과 보고)에 대한 질문 전은 이 규약의 문제였다고 들었다. 이 질문 전에 참가한 것은 나의 부하만이었던가? 나의 부하와 나의 그룹이 도대체 어디에 있더란 말인가? 조는 아직 학교 서에 구속된 상태다. 여하튼 전말을 밝혀질 것으로 믿고 있다. 다행히도 우리들은 올바른 방침과 지도 밑에서 가야 할 곳으로 진행되고 있다. 규약 초안의 문제가 오늘에 있어서는 거의 문제가 없게 되어 온 것을 기뻐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관서 협의회 집행위원장으로서 대표 회의의 결정에 의한 노총 중앙 방침아래 주어진 임무의 수행, 특히 분에 넘치는 투쟁기금(독자적 부담) 조달에 분주함 속에 지난 1월1일 중진 서로 구속 되어 2월5일 병 보석으로 풀려난 후 뜻밖에도 전국적으로 비약하여 통신 기사 신문(특히 제2●●)의 기사가 되었을 뿐인가 오늘 또 이 비약적인 제군의 혁명적 그룹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나는 전회의 성명에서도 분명히 했지만 최초부터 이해와 열의와 노력을 가지고 전협으로의 해소투쟁을 나의 임무로서 적극적으로 수행해 온 한 명이다. 그룹 문제가 지렛대가 되어 나의 행동이 왜곡되어 오긴 하였지만 하루 아침에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것을 나는 촌각에도 잊고 있지 않는다. (10) 앞서 언급한 9항 10건의 문제는 원래 오사카조노 간부 사이의 감정(이것은 내가 경성 파라고 중상 모략하여 제주 그룹이라고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곳의 간부) 문제로부터 발단 하여 오랜 동안 나에 대한 시기 이외 별 의미는 없다. 나는 전협으로의 해소투쟁에 다음과 같은 이해를 가지고 왔다. A. 과거 우리의 재 일중 노동 운동의 오류와 청산. 우리 재 일본조선 노동 운동은 한 나라안에서 개개의 기점(공장 경영)으로부터 전 노선에 이르는 전형적 민족 운동이며, 이것 자체가 가내공업적 분산이다. 한 개 기점에서조차 2개의 지도가 혹은 공동투쟁에 혹은 대립투쟁으로 코스에 적절하지 못하고 부족한 채로의 쌍두 마차가 될 수 있는 운동이며 투쟁목표의 언제나 부족한 원칙적 혼란이다. 계급분란이 올바르게 갈 수 없는 이중적 공동투쟁에 지쳐 민족적 ●안에서의 제자리 걸음이며 국제적으로 더불어 될 수 있는 조직 단위의 몰각이다. 이것이 끝이지 않는 오류였다고 하는 것은 아무도 딱 잡아 뗄 수 없는 이야기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것이 깨끗한 청산은 전협에 대한 이해로 결부시켜야 한다는 이야기는 되지 않는다. B. 전협의 확대강화는 어떤 기준에 놓여져 있을까? 이것 역시 누구든지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나가 당면한 문제에서 보면 일단 명확하게 해 두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말하는 「나의 일파」라는 기명을 살펴 볼 필요성의 심각함을 느낀다.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것 일까 - 그것은 가두에 서 있다. 모두 길 거리에 서 있는 것이다.나는 가두로부터 전협을 본다. 그것은 더욱더 거세어져 가는 지하 투쟁이 한 편으로만 치달아 감에도 산천주의의 대중적 극복과 분파적 편향의 양기로 인한 구 평의회의 ××적 투쟁 전통을 고양시켰던 것-전국적 단일 산업별 조합의 총집결체로서의 대 기점(중요산업의 것)의 대중 조직과의 그 확대 강화의 기준을 두고 있다고 보고 있다. 전협에의 해소투쟁이 나뿐만이 아니라 누구라도 얻을 수 있는 이야기이었던가? C. 우리들의 조합 조직은 어떻게 평가해야만 하는가의―「일선무산 계급과의 강건한 제휴를 획책한다.」 (1928년 5월 이전의 노총 강령의 하나) 로부터 「일선노동자 공동투쟁」 (이후의 행동 슬로건) 에 이르기까지 자유 노동자소상인 학생 약간의 공장 노동자를 가두에서 집합한 것의 민족 별 협회 타입의 조합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부의 공장 조직을 가질 수 있던 것은 전협의 재건투쟁에 끌려나 와 원조되어 맨 주먹으로 지도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마저 중립적 중소산업의 공장 경영에 있어서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대중은 전협에의 결합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들은 전협의 지도에 잘 움직이는 곳의 대중이다. 이 대중을 전협에 집중시키는 일이야말로 가두 분자의 활동영역이 아닌가. 고귀한 임무가 아닌가? 혁명적 그룹 제군! 나에 대한 배격의 취소를 요구할 권리를 나는 주장한다. 「전협에의 해소투쟁에 반대는 하지 않으면 놈들은 시끌없게 떠들고 있지만」은 나에게 해당한 말은 아닌 것이다. 나는 그런 소극적 일을 한 것은 아니다. 최초부터 적극적으로 이 투쟁에 서서 왔던 것이다. 지금 제군 중에는 스파이도 범죄자도 비집고 들어가 있다. 조합 확대위원회에서 당당히 토론하며 반에서 강좌를 맡고 있다. 이 무슨 웃기는 일인가? 사회 투기 자에 이르고서는 나에 대한 타당한 낙인이 아닌 것이다. 제군의 그룹에 앞서 말한 괴물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그들은 오늘까지 무엇을 하고 왔는지의 그들은 당당히 도 나의 배격 전에 서 있지 안는가? 혁명적 그룹 제군! 오늘 나는 신경, 눈, 위, 폐(특히 담석)를 앓고 있어 자리에 누워있다. 하루 종일 비를 무릅쓰고 외출하였지만 올려다보며 글자를 쓰는 것으로 조차 부자유스럽다. 원고 없이 이 성명서를 쓰는데 몇 번이나 졸도했는지 모른다. 그러기에 제군! 그 김영수 군은 북부에 쫓아 들어가「비겁한 김 문 준! 조합을 정리하라」란 벽화를 그리고 있다. 한 조합의 정리란 무엇인가 금고! 명부! 뭐! 그런 것이 아니다. 그는 조합의 정리가 무엇인가를 모른다. 대중의 전협으로의 해소의 준비 이외에 오늘의 내가 조합에 무슨 정리를 하고 있는지를. 지난 1월5일 이래 조합에는 갈 수 없었지만 벌써 준비는 되어 있을 것이다. 3개월 전부터 기회주의자라는 말은 나에게 맞는 말이 아니다. 이런 사람 김영수군과 같은 사람에게 낙인 붙여 주어야 한다. 일년 동안 몇 번이나 동요했던 이는 바로 이 인물이다. 1928년-29년간에 그는 몇 번이나 상임의 임무를 방폐했는가. 혁명적 그룹 제군! 스파이란 나에게 어울리는 말일까? 위원회에서 언급한 나의 죄업(왜곡)이 많은 것은 나의 투쟁이 정력적 이란 반증이 될 수 있고 노총 중앙에의 대립은 되지 않았을 터이다. 지나간 말은 않기로 하자. 작년 1929년의 일년간에 있어서 투쟁은 오사카 지방에서 몇 사람이 하고 있었는가-투쟁은 전혀 하지도 않았던 무리가「반전협 합동」「경성 파」의 두 깃발을 내세워- 나를 파멸코자 제군과 함께 들고 일어난 것 이다. 「친애하는 노동자 제군! 그들의 배반을 일일이 열거 하자면 한계가 없다. 무수한 노동자의 투쟁을 자본가에게 팔아 넘긴 그들의 죄악은 오사카의 노동자 제군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지만 내가 기다리기 전이 될 것인가? -그렇다. 오사카의 노동자 제군이 그 누구보다 내가 가장 충실하게 투쟁 하여 온 것을 알고 있을 것 이다. 혁명적 그룹 제군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해야 하는(가 그처럼) 그룹적 관점에서는 왜곡하고 싶어질 수도 있겠다.혁명적 그룹 제군! 이번의 총●●에 내가 노농당의 후보 소산 석정을 응원하며 광분하고 있다고 도쿄에서는 선전 되어 있지 아는가. 동경의 노동자는 믿었으리라. 오사카의 노동자는......제군들은? ― 봐라! 혁명적 그룹으로 부유하고 있는 노동자의 적을. 유언비어는 노동자의 적이다」유언비어의 장본인 김 수현, 남영우는 노동자의 적이다. 유언비어와는 분파 병의 제3기이다. 스파이 투기 사회주의자 반공 분자 반전협 합동 반동 그룹의 수반 배신의수 없는 죄악......등등은 구름이나 바람을 근거로 한 유언비어를 직업으로 하고 있는 분파 병자 남영우등의 중상이 지도부의 시야를 어지럽혔던 것이다. 유언비어의 가두전이 과거 조선의 파벌투쟁이 아니고 무엇인가? 내가 경성 파라는 관점이 아니면 퍼부어지는 유언비어가 우리 지도부에 아첨할 수 있는 문제인가. 노동자에게 문제의 정시를 방해하는 것은 유언비어 이외에는 없는 것이다. 그들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김문준이 배신자! 스파이! 투기주기자! 오사카에서 단 한 명이라도 그런 김 문준이 있는지, 여하튼 간에 말이다.혁명적 그룹 제군! 전협을 이해하라. 유언비어의 가두 전을 없애자! 그렇지만 제군은 우리 지도부의 명령이니까 할 수없이 따른 것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명령 없이는 제지 당할 리 없다. 그럼 여기에 김 호영 군이 관서협의회 직후 노총 중앙을 대표로 하여 나에게 말한 얘기의 일부를 소개하자. 아니 그것보다 김 군에게 나가 보낸 편지(2월 7일 날짜)의 일부를 소개하겠다. 친애하는 동지 김 호영 군! 군은 ●관서협의회 직후 나에 대해서 뭐라고 말했는가? 역사는 교활한 것이지만 다음의 한마디는 부인 할 수 없을 것이다. 「군-나를 가리켜-는 오사카에 있어서 경성 파의 수령으로서 일화 견 사회민주주의자로서 투쟁에는 게으름 피우며 노총 중앙에 대립하는 책동만을 일삼고 있다라는 보고가 산을 이루어 있다. 동경에서는 김 문준이라고 말하기로 하면 예를 볼 수 없는 변절자로 선전 되어 있다. 거기서 지금은 빼앗긴 육 ××동지와 실지조사에 오사카로 오기로 했던 것이다. 혁명적 그룹이라도 조직에서 해치워버리자는 이야기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단은 견해를 )물어 보는 것으로 의견이 일치해 쿄토까지 와 중도에 사정을 멈추게 되었지만 이번 나 - 김 호영 군 자신이 오사카로 와서 상당히 오랫동안 실지를 조사해 보았지만 뜻밖이게도 저 쪽에서 들은 것 과는 전혀 달라 있다. 「청년 동맹에 대립 어려운 연령 무제한 소년 동맹이 문제였고 무●●로 나쁘게 보고 있지만 무엇 하나 소년 동맹은 제대로 17세 이하에 제한되어 있고 노총을 지키는 것에 그 철두철미 함을 말하면 몇 사람에 물어봐도 원하는 대답은 않을 뿐만 아니라 룸펜적 조노의 조직과 투쟁을 대중화 한 점에 있어서 오사카의 각 조직자에게 뛰어나다라고 하고 있다. 편향이 확실해 있는 것 행동이 올바른 것은 일본의 동지에게 잘 들어 알았다. 이제 중앙에서는 오해가 풀렸다. 과거의 파쟁이 군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줄 것인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알았다. 우리들 당면의 문제(전협에의 결합)도 동경●●에서는 엉망으로 되어 있는데 오사카에서는 맨 먼저 건설 안으로서 결정되어 있다. 군이 그 제기 자와 같이 보이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어찌되었던 간에 오해는 지금부터 일소될 것이다. ×××군의 보고뿐만 아니라 그 분파적 편향부터도 신용될 수 없다. 그는 잘 이해해 왔다. 투쟁이란 무엇인가 대중을 위해서 한 것도 적다고 하기 보다는 전무하다고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뭐, 제대로 한번 싸워보지 않겠는가? 대중을 위해서」이래 불과 2개월을 경과한 오늘 어찌하여「사태가 일변했다」고 말하는 것도 왠지 낙인의 비열과 함께 날아간 배격 격문은 「군의 노총 중앙을 대표한 ●●●의 말과 ●●●할까. 사태의 일변은 ●●●에도 운용에 지나지 않았던 것인가. 나에게 온 아무런 견책이 없었다(또 어떤 식으로든 이유가 없지만) 노총 중앙은 우리 위원회(전협 조선인 위원회)에 ●●●그렇지만 뜻밖의 ●●●●을 보고 했는가? ●●●의 말이 문제라면 별개로 취급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룹적 관점부터 상해 경성 오사카 동경이 늘어서 있는 그 긴자 거리 근처에서 구독료 1개월20원 광고료1페이지 300엔이나 하는 일간 일본 사회운동 통신 제90호의 6표제가 일면 기사화까지 된 것이 사태의 일변이라면 생각하면 그럴 것이다. ●월(1월) 10 일경까지는 군이 잘 보고 있었겠지? 내가 예로 어떤 형태를 취하더라도, 책동, 반대적 책동이 있었더라도(하지만 파벌적 문제이니까 어쩔 수 없다)란 하는 원칙도 있을 리 없다. 파벌의 문제는 나에게는 추상이다. 반드시 추상이다. 나는 그것을 추상 해 파괴할 권리를 주장한다. 노총 제 4회 전국 대회에서 또 노총 중앙을 대표한 군의 말대로 그래서 나의 이해와 행동으로 추상이다. ●●주장한다. ●●은 아닌 자는 아니다. 자기 행동의 부정이기도 한 곳의 무정부주의적 부인을 한다. 나의 행동과 나의 언동 문제가 무슨 공통점이라도 있는 것인가? 행동의 공통점 없음에도 그룹이 구성될까? 나는 노총 중앙권위를 사수해 왔다. 따라서 전 중앙에서 나의 문제가 있으면 뭐든지 ●●●을 할 수 있던 셈이 아닌가? ●●를 전협에 권위를 전협으로도 이중의 권위로 사실도 아닌 문제가 문제가 되어 오고는 조합의 가두적 주도를 쌓아 온 것은 아닌가? 군은 두 가지 문제에 있어서 절대 책임이 있다! 다른 건은 취소 요구서를 통해서 ●●●. 친애하는 동지 김 호영군! 나의 행동에 대한 말살 정도는 문제가 아니오. 소 풀의 명예가 실추 되는 것이니까. ●● 거짓으로 위장하여선 또다시 그것을 권위로 이를 관철하려 군도 마치 사제 적전이니 스파이라며 동경의 길거리에서의 괴로웠던 경험을 충분히 해 오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더욱이 기점으로 뿌리를 내린 곳의 회 협의 방침이 맞는다고 주장 하는 바이다. 우리들의 ●●● 혁명적 그룹 제군! 그들이 말하는 관념을 양기하자. 우리들이 주장하는 것이 올바른 것 이다. 그리고 나중의 김수현 남영우 김영수 김●중 들의 분파 병자보다 훨씬, 앞서서 좌익 노선에 서서 싸워왔던 나를 우리 지도부에게 보고하여 나에 대한 배격 투쟁의 방향을 그 분파 병자들에게 전환시키자! ! 나의 주장이 우리 지도부로 설령 들어가지 않더라도 좋다. 반드시 분파의 관념을 깨끗하게 씻어 내자. 그 때가 되면 나의 행동이 올바른 것이었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날 것 이다. 내가 제군의 친구였던 것을 깨달을 것이다. 나의 주장은 결코 올 바른 것 이다. 친애하는 노동자 형제 제군! 나는 투쟁을 방해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에게는 제군을 유혹시킬 달콤한 말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 제군들의 선두에서 힘 써온 주자로써 제군의 신뢰 할 만한 자로써 한 마디 하겠다. 제군은 나의 정체가 지금 이 시각 정 반대로 비추어 지고 있다는 것을 봐 왔을 것이다. 제군은 이것을 환영하여 바뀌어 질 것을 나는 믿고 있다.

    1817 이상청의 격문

    全江東의 日鮮勞動者諸君!!!실업과 굶주림의 가운데서 일선합병의 8월 29일이가 왔다. 明治43년의 이날부터 조선형제들은 일체의 자유를 박탈당하였다. 선조부터 내려오던 토지는 일본의 자본가에게 박탈당하였다. 고향을 잃은 형제들은 길거리를 헤매였습니다. 현재 전 조선에는 수백만을 넘는 굶주린 대중과 하루에 12~3전씩의 품싹을 얻으면서 살아가는 수백만의 형제들이 있다. 그러나 일본의 생명선이라고 하는 조선에서는 초근록이라고 하는 무산대중이 충만하였다. 그리고 이 생명선을 탈취한 일본국내는 어떤가?全江東의 日鮮勞動者諸君!제군도 알겠지요! 일본국내에서도 새로운 「생명선」만주를 약탈해야 천황제정부의 「경지는 전쟁에서」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안이 그 전쟁 때문에 수백만의 실업대중과 수천만의 궁핍대중으로 쌓이어 있다! 자본가들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일본 로동자 보다 갑싼 일급을 강요하는 동시에 일본 로동자에 대하여서는 조선 사람을 싸게 사용한다는 이유로 품싹을 내리여 간다. 일선로동자의 단결된 투쟁을 무서워하는 자본가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 단결을 방애한다. 그리고 조선형제로부터 고향을 빼앗고 일선 로동자를 굶주림에 빠뜨리고는 일본 천황제 자본가지주는 야자같이 배를 불리였다. 친애하는 江東의 全日鮮勞動者諸君 일본제국주의가 천황제 자본가지주의 최후에 몰락을 태개하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는 간섭전쟁 (북철매수의 가투를 쓰고 노골적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보라) 제2차세계대전(이것은 중국의 재 ●●에서 시작 될려고 한다.) 은 우리들의 궁핍과 정치적 무권리에 더욱 심하게 할 것이다. 일본농촌의 한발, 조선농촌의 홍수, 대수해의 참극 등은 민중의 이익을 보호하지 않고 착취와 압박과 전쟁뿐 만을 일삼는 전 황제 일본 안에서는 필연적 일이다. 이것은 이미 시작된지 오래다. 친애하는 형제 그 뿐만 아니다. 자본가지주 천황제의 주구인 下尼龍野, 三田村은 공연히 일본의 특수성을 부르 짓으며 조선·대만 형제들의 착취를 합리화 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야 말로 일선 노동자를 분렬시키여 자본가지주 천왕제식으로 하려는 음모다. 안락한 생활- 米와 일, 토지와 자유을 추구하는 우리들은 결코 놈들의 이러한 공격 분열책과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재일조선노동자실업자제군! 제군은 악독한 놈들의 분열책에 불길●●●…신격으로 차별을 빼앗고 일본인이 가진 조그마한 자유조차도 없다. 몸으로써●●● 리익을 위하여 싸워온 우리 일본공산당동맹시강등 지구의 원회는 종내의 제군●●● 투쟁을 믿고 더욱 적극적으로 투쟁을 결발시킴을 기대한다. 백색테로에 무●● 침목을 지킬 때에는 우리에게는 영구한 평화와 행복은 오지 않는다. 단결●●한 투쟁으로 천황제를 타도하고 소베트정부를 수립할 그 ●●이 빛날 것이다. 제군의 고향 조선에 있어서의 삼일만세투쟁, 광주학생의 투쟁, 원산, 부산에 있어서의 게네· 스트들은 이곳 강동에서도 제군의 것이 되지않으면 안된다. 우리 강동지구의 원회는 일본로동자실업자의 선두에서 제군의 투쟁을 지지하고 협력할 것이다. 친애하는 가동의 일선로동자제군!공장에서 현장에서 지주에서 제군의 불평을 폭발시켜라. 간담회직장대회를 열어요 그것을 결의하고 공장구현장 구임·방면의 원·역소에 제출하라! 폭압에는 적색자의단으로 대하하라! 팔월이십구일은 원쑤의 날이다. 스트라이크·데모 싸우자!! 제군의 해방은 이 투쟁의 승리의 날에야만 올 것이다.☆ 전쟁실업자, 반실업자에 일과 밥을 내여라! ☆집을 무로 빌리라!☆수도세 전등을 정부가 부담하라☆일선로동자의 차별대우 반대☆동일로동에는 동일임금을 내라!☆조선의 수해를 구제하라☆략탈한 토지를 내라☆파시스트· 사화팟스트 반대☆좌야 확산전 촌의 음모를 분쇄하라!☆제국주의전쟁반대! 전쟁을 내란에로!☆조선·대만·만주의 완전한 독립만세!☆ 군사적 경찰적 청황제에 반대하여야 압박 토지와 자유를 위한 인민혁명을 위하여 일선로동자농민공동투쟁만세!

    1818 8·29국치일 기념 격문

    내지의 형제들이여! 너희들은 임금 저하, 시간 연장에 불만은 없는가! 이 임금 인하, 시간 연장은 단순히 일면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자본가는 제재 협회(자본가의 조합)에 의해서 순조롭게 정 공격의 준비를 마치고 있다. 놈들은 너희가 이전의 단단한 단결을 무너뜨리고 나서 틈 만나면 빈틈을 노리고 공격하려 했던 것이다!매일 9시간 반이나 노동력을 착취 당하여 뼈 마디마디가 아픈 것도 참으며 인간 이하의 수준의 생활을 할 수 없어도 견디어 왔었는데 이 이상 임금을 착취 당하며 게다가 노동시간이 연장되고는 우리의 살림은 도대체 어떻게 된단 말인가! 회사는 옳다구나 무노동 무임금이네! 옳다구나 해고네! 옳다구나 임금인하 시간 연장입네! 하며 자기들 제멋 대로 부려 먹다가 우리들 피를 빨아대며 더 이상 짤 수 없게 되면 바로 해고다! 라며 실업 지옥의 길거리로 쫓아낸다! 제군들도 잘 알고 있는 바요! 한 개의 화살을 꺾으려면 번거로움도 없이 접히지만 5개10개로 굳히면 그리 용이하게는 꺾어지지 않는 것을!조선의 형제는 자신들의 생활을 지키기 위해 떨쳐 일어났던 조선의 형제뿐만이 싸움이다 라며 우리 스스로가 강 건너 불구경 해 있어서는 시간 연장이나 임금 인하는 절대로 멈추게 할 수 없을 것 임을 명심하자!즉시 조선의 형제와 힘을 합하여 역습 해라!임금 인하 부당 해고 시간 연장 반대! 산업의 합리화 절대 반대!임시직 고용을 정규직으로 해라! 건강 보험은 자본가가 모두 내라!노동시간을 7시간으로 해라! 제재 협회를 분쇄해라!현장의 모든 설비를 개선해라! 민족적 차별 절대 반대다!감휴, 공휴일에는 일급 전액 내라! 같은 노동에 동일 임금을 보내라!전협 일본 목재의 깃발 아래로!

    1819 일본대학 노조 대판지부 대표자 회의 격문

    동아고무 공장주 아카마츠(赤松) 놈의 악마적인 행위를 보라! 여러분들이 알고 있듯이, 상식을 벗어난 급여인하, 인종적 차별 등의 조건에서 우리 조선인 25명은 결속을 다지고, 그에 대한 반대요구를 관철하기 위하여 40여일의 긴 투쟁을 해왔다. 하지만, 친애하는 노동자여러분! 그 자의 반대 선전을 보라!일본인 잔류직공(교체도 포함)에 대하여 달콤한 술 한 잔으로 매수하여 반 조선인직공운동을 일으키게 하고, 5명의 잔류직공대표를 차로 납치해 경찰본부로 보내어 그자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고 직공대 직공의 대립상황을 연출하여 우리의 생명을 빼앗으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친애하는 노동자여러분! 우리들은 끝까지 굴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배후에는 수천만의 동지인 노동 여러분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 우리들은 어떠한 희생이 있어도 그 놈들을 우리들 앞에 굴복시킬 것이다. 오사카의 모든 노동자여러분! 동아고무 공장과의 싸움에서 이기자! 우리들의 승리는 오사카의 모든 노동자의 승리이다. 데모와 파업에 계속해서 참가하라! 실업, 해고, 급여인하, 절대반대다! 친애하는 오사카 노동자 여러분! 기아에 쫓기고 있는 투쟁단에게 기금과 응원을 바란다! 동아고무 투쟁단 오사카 조선노동조합 동북지부 오사카 고무공조합 오사카 일반노동자조합

    1820 연말수당 요구 투쟁위원회 격문

    연말수당, 연말연초휴일의 급여를 다시 받자 형제 여러분! 츠지무라(辻村)는 매년 지불하던 연말수당을 작년부터 주지 않고 넘어가려 하고 있다. 「신년회를 하자」고 말하고 있지만, 그런 재미없는 술뿐인 회는 반대한다. 신년회로 연말수당을 지불하지 않을 속셈이다. 또「선물을 준다」고 지껄이면서 친절한 척 하고 있다. 이것은 연말수당을 안 줄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형제 여러분! 작년 쟁의는 조선 사람만 했기 때문에, 결국 연말수당을 츠지무라에게 빼앗겼다. 아무리 잘 싸웠다 하더라도 조선 사람한테만 맡겨서는 승리할 수 없다. 오히려 져서 손해를 본다. 따라서, 우리들은 조선 사람과 일치해서「수당을 지급하라」「연말연시의 휴일에 일급 전부를 지급하라」고 츠지무라에게 요구하자. 고토고무의 형제는 임금인하에 반대해서 종업원회의를 열고 고토에게 몰려가,「연말수당을 지급하라」고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는 것이다. 어서 우리들도 요구하자.